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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누굴 닮았나

창작동화 김상삼............... 조회 수 1416 추천 수 0 2005.01.06 00:04:25
.........
봄방학이 되었습니다. 찬이는 엄마랑 시골에 있는 외갓집에 갔습니다.
바람 끝은 차가웠습니다. 그런데도 양지쪽에는 푸른 빛깔이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들판의 아지랑이들이 논두렁을 태우는 농부 주위로 몰려가고 있습니다.
˝엄마, 왜 들판에다 불을 놓아요?˝
˝풀에 숨어있던 나쁜 벌레들을 죽이고 재는 거름이 되라고 태운단다.˝
˝저러다가 불이 나면 어떡해요?˝
˝큰일나지. 그러니까 들판에 잇는 논두렁만 태운단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외갓집에 다 왔습니다.
˝외할머니!˝
찬이는 뛰어가며 외할머니를 불렀습니다.
˝아이구, 우리 찬이 오는구나.˝
외할머니가 무척 반겼습니다.
˝외할머니 잘 계셨어요?˝
˝그래. 찬이 공부 잘 했니?˝
외할머니가 물었습니다. 곁에 있던 어머니가 나섰습니다.
˝공부는 잘 하지만 대장이 되었대요.˝
어머니가 이렇게 말하며 찬이를 봅니다. 찬이의 입이 툭 튀어나옵니다. 어머니를 보는 찬이의 눈에 유난히 흰자위가 많습니다. 찬이는 불만스런 얼굴로 어머니를 흘겨봅니다.
˝골목대장도 대장인데, 대장이면 어때서.˝
˝골목대장이면 좋게요. 지각대장이래요.˝
어머니가 놀리듯이 말했습니다. 찬이의 얼굴이 일그러집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도 엄마는 모른 척하고 더 약을 올립니다.
˝찬이는 누굴 닮아 그런지 모르겠어요.˝
어머니가 픽 웃으며 말했습니다.
˝누군 누구야. 너 어렸을 때를 쏙 빼 닮았지.˝
외할머니는 찬이를 한 팔로 안으며 말했습니다.
˝외할머니, 엄마도 어렸을 때 지각대장이었나요?˝
˝말도 마라. 지각하는 날이 더 많았으니까.˝
˝사실은 나도 그래요.˝
˝게으른 것은 네 엄마를 닮았구나.˝
외할머니가 이렇게 말하며 어머니를 향해 눈을 씽긋했습니다. 어머니가 픽 웃으며 더 약을 올렸습니다.
˝난 그래도 통지표에는 그런 말 안 쓰였으니 찬이보다는 낫지.˝
˝그럼 통지표에도 지각대장이라고 썼단 말이니?˝
˝찬이한테 물어보세요.˝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찬이는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각대장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지각을 줄이고, 게으름만 피우지 않으면 큰 인물이 될 거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사실인가 보구나. 아빠를 닮으면 용감하고 부지런할 텐데.˝
˝2학년 때부터는 아빠하고 같이 일어날 거예요.˝
˝그렇게 부지런해지려면 연습을 해야지.˝
˝연습요?˝
˝그래, 이 할미와 나물 뜯으러 가는데 따라가자.˝
˝예. 가요˝
찬이는 돋보기를 가지고 할머니를 따라 나섰습니다.
찬이의 꿈은 과학자입니다. 과학선생님인 아버지는 이런 찬이를 위해 좋은 돋보기를 하나 사주었습니다. 찬이는 외갓집에 올 때도 돋보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봄에 피는 꽃을 관찰하기 위해서입니다.
할머니는 소쿠리를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양지바른 산모롱이에 아지랑이들이 아물거리고 있었습니다. 파란 보리 골 위로 종달새 노래가 쏟아졌습니다. 외할머니는 둑길을 따라 저만큼 앞서 걸어갔습니다.
˝아빠처럼 부지런하려면 어서 따라 와야지.˝
˝게으름 피우는 것이 아니라 관찰하고 있다고요.˝
˝관찰은 나중에 하고 어서 오라니까.˝
외할머니는 이렇게 말하고는 아지랑이 속을 걸어갔습니다.
아지랑이 사이사이로 초록빛이 어렸습니다. 산으로 이어진 양달은 더 짙은 초록빛깔입니다. 꿩 소리가 산비탈을 타고 내렸습니다.
˝찬아 여기에 꽃이 피었다. 빨리 와서 관찰해 보렴.˝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할머니가 서 있는 양지쪽에 노란 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노랗게 웃는 꽃잎 위로 봄 햇살이 눈부셨습니다.
˝외할머니, 이 노랑 꽃 이름이 뭔 데요?˝
˝응. 민들레란다.˝
˝왜 민들레꽃은 이렇게 노랗지요?˝
외할머니는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몰랐습니다.
˝왜 노래요?˝
˝그건 엄마와 아빠가 노랗기 때문이지.˝
˝할머니, 그럼 저 꽃은 이름이 뭐예요?˝
찬이는 양지쪽에 피어있는 꽃을 가리켰습니다. 가는 꽃 허리가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만 같았습니다. 작은 봄바람에도 간들간들 흔들리는 작은 꽃이었습니다. 작지만 예쁜 보랏빛 꽃이 찬이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제비꽃이란다.˝
˝저 꽃도 엄마 아빠가 보랏빛이라 보랏빛 꽃을 피우나요?˝
˝그렇지.˝
˝그럼 저 흰 제비꽃은?˝
˝그것도 엄마 아빠가 흰 꽃일 거야.˝
˝그럼 아빠가 보랏빛이고 엄마가 흰 빛깔이면 어떤 꽃이 필까요?˝
˝글세. 어떤 꽃이 필까 할미도 모르겠는데.˝
˝그걸 모라요?˝
˝그럼 넌 안다는 말이니?˝
˝예. 알고말고요.˝
˝무슨 꽃이 피는데?˝
˝이른봄에 피는 꽃은 보랏빛이고, 늦게 피는 꽃은 하얀빛이에요.˝
˝그건 왜 그렇지?˝
˝부지런한 아빠를 닮으면 보랏빛이고, 게으른 엄마를 닮으면 흰빛이니까 그렇지요.˝
할머닌 고개를 저었습니다. 어머니를 나쁘게만 여기는 찬이의 마음을 돌려놓고 싶었습니다.
˝찬아, 추위 속에서도 부지런히 꽃을 피우는 것은 아빠를 닮고, 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슬기와 예쁜 모습은 엄마를 닮았을 거야.˝
˝그럼 엄마 아빠의 좋은 점만 닮았네요?˝
˝그렇지. 너도 엄마 아빠의 좋은 점만 닮으면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맞아요. 나도 아빠처럼 부지런하고 엄마처럼 예쁘게 자랄 거예요˝
˝그래가. 너도 이제 2학년이 되었으니.˝
˝예. 할머니. 2학년 때는 달라질 거예요.˝
찬이는 이렇게 말하며 꽃을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음매음매 송아지가 엄마를 찾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고개를 드니 들판은 아지랑이로 가득 차 있습니다. 햇살은 너무너무 따스했습니다. 일어서려던 찬이 곁에 바짝 마른 쇠똥이 있었습니다.
´이 쇠똥도 탈까?´
찬이는 쇠똥에 돋보기를 갖다 대었습니다. 눈부신 햇살들이 쇠똥으로 모아졌습니다. 한참 있으니 연기가 났습니다. 찬이는 입으로 호호 불었습니다. 오랫동안 가물어서 풀들은 바싹 말라 있었습니다. 그런 풀에 불이 붙었습니다. 환한 햇볕 때문인지 불길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불은 빠른 속도로 산쪽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어쩐지 산으로 불길이 올라갈 것만 같았습니다. 덜컹 겁이 났습니다.
´이걸 어쩌지?´
찬이는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가까이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들판 끝에 농부들이 있습니다. 불길은 타고 있습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찬이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습니다.
˝할머니 불!˝
찬이는 다급하게 외쳤습니다. 잠시 사이인데도 봄바람을 탄 불길은 빠른 속도로 퍼져 갔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본 산불이 머리 속에 떠올랐습니다. 머지 않아 불자동차가 오고 비행기가 불을 끄러 올 것 같았습니다. 가슴이 쿵쿵 뛰었습니다. 빨리 꺼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아이구 불길이 산으로 가면 안 되는데 어떡해.˝
할머니는 우는 듯한 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러나 주위에는 불을 끌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개울에는 물이 흘렀지만 그릇이 없었습니다. 급한 할머니는 소나무 가지를 꺾어 물에 적셨습니다. 할머니는 물에 젖은 소나무로 불길을 덮어나갔습니다. 그러나 끄는 것보다 더 넓게 불길은 번져갔습니다. 할머니 혼자 힘으로는 불을 끌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불길이 더 높이 번져갔습니다. 찬이도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소나무 가지를 꺾으려고 했지만 꺾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문득 걸레에 물을 묻혀 불을 끄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을음이 묻은 외투는 빨면 되겠지만, 불 타버린 산은 다시 살릴 수 없지.´
찬이는 이런 생각으로 자기의 외투를 벗었습니다. 할머니 손질 사이사이로 불길은 더 활활 타올랐습니다.
찬이의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꾸물거릴 시간이 없었습니다. 찬이는 자기 외투를 물에 넣었다 꺼냈습니다. 그리고는 물이 흐르는 외투로 불길 앞에 맞섰습니다. 뜨거운 기운이 확 다가왔습니다. 그래도 찬이는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찬아, 위험해 물러나.˝
할머니가 다급하게 외쳤습니다. 그러나 찬이는 들은 척도 않고 물 묻은 옷으로 불길을 때렸습니다. 쉬지 않고 옷을 휘둘렀습니다. 숨이 차 올랐지만 쉴 겨를이 없었습니다. 게으름쟁이 같지 않았습니다. 초등학생 같지 않았습니다. 마치 불속에서 불을 끄는 119아저씨 같았습니다.
´내가 낸 불을 지금 잡지 못하면 온 산은 불바다가 된다.´
오직 이런 생각뿐입니다. 게으름뱅이 찬이의 손길이 점점 빨라집니다. 몸 놀림이 운동 선수보다도 더 빨랐습니다. 할머니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습니다. 행동이 느려 게으름쟁이라는 별명에 걸맞지 않았습니다. 내려보던 종달새도 신나게 응원의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빠른 찬이의 손끝에서 불길이 서서히 잡히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찬이의 손길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그런 찬이를 힐끔힐끔 보며 마지막 불길을 잡았습니다.

드디어 불이 꺼졌습니다.
˝찬아!˝
불길이 잡히자 할머니는 찬이를 덥석 안았습니다.
할머니의 얼굴은 검은 그을음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찬아, 넌 게으른 엄마를 닮은 게 아니라 엄마의 지혜를 닮았지. 거기에다 용감하고 부지런한 것은 네 아빠를 닮았고˝
˝왜요?˝
˝산길로 향하는 불길을 가로막는 용기와 부지런함은 아빠를 닮았고, 옷을 이용한 너의 지혜는 엄마를 닮았으니까.˝
˝제가 그랬나요?˝
˝그렇게 날쌔게 불을 끄는 네 모습이 미덥기만 했단다.˝
˝당연하지요. 내가 뭐랬어요. 2학년부터는 달라질 거라고 했잖아요.˝
찬이는 한껏 웃었습니다. 검은 그을음으로 얼룩진 할머니의 주름에도 웃음이 번지고 있었습니다. 따사로운 봄햇살이 눈맞춤하는 할머니와 찬이의 어깨위로 내리고 있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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