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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수남이

창작동화 김자환............... 조회 수 1072 추천 수 0 2005.01.20 15:37:39
.........
다들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겠지?˝
아빠의 얼굴은 긴장으로 조금 굳어 있었습니다.
˝…….˝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셨고, 나는
˝네, 아빠.˝
하고 조그만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우리 식구들의 얼굴에는 이제 어찌할 수 없다는 체념의 빛이 서려 있었습니다.
호랑이 할머니!
그 할머니가 지금 우리 아파트로 오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잠시 들르시는 게 아니라 아주 함께 사시기 위해서.
´이제 우린 죽었어!´
나는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커다랗게 부릅뜬 할머니의 눈이 떠오르면서, 그 쇠꼬챙이처럼 날카로운 목소리가 귀에 앵앵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무슨 여자애 걸음걸이가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겅중거리는겨? 얌전얌전 걷지 못할겨?
――에미 너, 나 좀 보자. 아침 상이 왜 이리 부실한 거냐? 이딴 걸 먹고 애비가 어떻게 밖에서 힘을 쓰겠냐?
간혹 할머니가 들르시는 날이면 우리 집엔 초비상이 걸립니다. 식구들 모두 마치 큰 죄 지은 죄인들처럼 고개를 숙이고 살아야 합니다.
할머니는 이것저것 간섭하지 않는 것이 없고, 그럴 때마다 호통이 빠지는 법이 없습니다. 물론 말대꾸나 변명 같은 것은 아예 상상조차도 할 수 없습니다. 할머니의 불같은 성미를 익히 알고 있기에 우리는 그저 끽소리도 내지 못한 채 숨을 죽이고 있어야 합니다.
´큰아빠 나빠!´
새삼 큰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큰아버지는 수입품 때문에 농산물값이 자꾸만 떨어져 더 이상 버틸 수가 없게 되자, 홧김에 그만 농장과 땅을 모두 팔아버렸습니다. 그리고 미국으로 이민을 신청해 버렸습니다. 미국으로 들어가 농사를 지으면서 그 땅 농부들과 한판 겨뤄 보겠다는 것이 큰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물론 할머니는 펄펄 뛰셨습니다.
그렇지만 큰아버지의 고집도 결코 할머니 못지 않았습니다. 끝내 할머니를 이겨내더니, 마침내 오늘 큰아버지네는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지금 우리 아파트로 오시고 있는 것입니다.
˝형님네는 잘 가셨을까요? 배웅도 못나가고…….˝
엄마가 아빠의 눈치를 살피며 말꼬리를 흐리셨습니다.
˝잘 가셨을 거요. 너무 걱정 마시오. 심지가 곧은 분네여서 꼭 성공할 거요.˝
아빠도 큰아버지네 배웅을 나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 모양이셨습니다. 담배를 꺼내 물고는 여러 번만에 겨우 불을 붙이셨습니다.
´할머닌 너무하셔!´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민이 오빠랑 수희 언니랑 이번에 떠나면 또 언제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데, 할머닌 한사코 큰아버지네 배웅을 나가지 못하도록 못을 박으셨습니다. 그리고 할머니 마중도 허락하지 않으셔서 지금 우리 식구는 아파트 경비실 앞에서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저기 저 차!˝
갑자기 엄마가 이쪽으로 오고 있는 택시를 가리키셨습니다.
˝할머니!˝
나는 택시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보다 먼저 할머니의 호통소리가 택시에서 내렸습니다.
˝수나 너, 걸음걸이가 왜 그 모양인겨? 여자가.˝
그리고 할머닌 아빠를 쏘아보셨습니다.
˝마중 나오지 말란 말 못들었냐? 자식 잃고 오는 사람이 뭐 벼슬한겨?˝
할머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찬바람을 씽싱 일으키면서 우리 집의 통로로 들어가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택시에서 팔짝 뛰어내려 할머니의 뒤를 쫄랑쫄랑 따라가고 있는 강아지 한 마리를 우리는 보았습니다.


수남이는 집안으로 들어오자마자 흙 묻은 발로 발발거리며 여기저기를 마구 뛰어다녔습니다. 처음 와 보는 아파트가 신기한 모양이었습니다.
˝저런, 저런! 저 식탁본 새로 빤 건데…….˝
할머니 눈치 때문에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엄마는 아예 눈을 질끈 감고 계셨습니다.
˝내버려 둬라. 식구들과 헤어지고 마음이 허해서 저런다.˝
할머니는 찬바람을 일으켜 놓고 이제 할머니의 방이 된 아빠의 집필실로 들어 가셨습니다.
˝이걸 어쩌지? 아파트에서 개라니…….˝
엄마는 속이 많이 상하는 모양이었습니다.
˝너 이리 내려오지 못해!˝
부르짖듯이 낮게 외치면서 수남이의 코앞에다 주먹을 들이대셨습니다. 그러자 수남이는 자세를 낮추면서 곧 덤벼들 듯이 크르릉거렸습니다.
˝어머머, 이게 대들기까지!˝
엄마는 질겁을 하며 뒤로 물러나셨습니다.
˝그래도 귀여워요, 엄마.˝
내가 수남이 편을 들자 아빠도 얼른 거들고 나서셨습니다.
˝내놓고 키워서 저런데, 수남인 진돗개 순종이란다. 귀랑 꼬리랑, 다르지 않니?˝
˝흥! 수남이가 뭐예요, 수남이가. 쟤가 사람이에요? 우리 애들 돌림자를 쓰게.˝
엄마의 볼멘 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할머니의 그 날카로운 목소리가 밖으로 달려나왔습니다.
˝수남이란 이름이 어때서 그러냐? 사람이나 짐승이나 정들면 다 한식구나 매한가진 것을.˝
˝그래도 그렇지, 개한테…….˝
엄마는 할머니께 들리지 않게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며, 할머니 방에다 혀를 벌겋게 내미셨습니다.


이틀이 지나도록 할머니는 식탁으로 나오질 않으셨습니다.
˝네들이나 먹어. 난 생각 없으니.˝
우리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큰댁 때문에 속이 많이 상하셨을 텐데, 저러다 병이라도 덜컥 나시면…….
할머니도 할머니지만, 수남이까지도 우리들의 조바심을 박박 긁었습니다. 우리 집의 음식을 좀처럼 입에 대려들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햄버거나 소시지나 치즈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고깃국을 끓여줘도 본체만체였습니다.
˝너까지 왜 이러니, 응?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고 있는 거니?˝
엄마는 울상을 지으셨습니다. 화를 낼 수도, 그렇다고 그대로 굶어 죽게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음식이 틀려서 그런다. 쟨 통멸치를 넣은 된장국을 좋아하거든. 조미료를 넣어도 안 먹는다.˝
마침내 할머니가 귀뜸을 해 주셨습니다.
˝아유, 내 팔자! 개한테 우리 식구도 안 좋아하는 된장국을 바쳐야 하다니…….˝
된장국을 끓여 바치자 그제서야 수남이는 밥을 먹기 시작하였습니다. 덕분에 우리 식구는 날마다 냄새나는 된장국을 억지로 먹어야 했습니다.
수남이는 참 영리했습니다. 발자국 소리만 듣고도 우리 식구인지 아닌지를 척척 알아맞혔고, 또 한사코 누워만 계시는 할머니의 옷자락을 물고 늘어져 기어코 식탁으로 모시고 나오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식구의 한 사람(?)이 되어 갔습니다.
수남이는 우리 집으로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마침내 식구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나나 아빠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싫어하던 엄마까지도 머리를 쓰다듬게 하고야 말았습니다. 엄마가 부엌일을 하실 때면 뒤를 쫄쫄 따라다니면서 필요한 물건을 척척 물어다 바치고, 눈치 빠르게 엄마의 비위를 착착 맞추는 것이었습니다.
˝얘 봐! 얘가 사람보다 낫네.˝
어떨 땐 나를 무색하게 만들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엄마의 그 ´사람´이란 나를 두고 한 말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밤이면 수남이가 자주 창밖을 내다보며 캉캉 짖어댔기 때문에 이웃 사람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마침내 반상회에서 그 문제가 거론되기까지 했습니다.
˝어머님, 이 노릇을 어쩌죠? 사람들 항의가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입을 꼭 묶어둘 수도 없고…….˝
아빠 못지않게 할머니도 당황하고 난처한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글쎄다. 별걸 다 간섭하는구나.˝
결국 반장, 통장에 이어 관리소장까지 들고 나서는 바람에 수남이를 어떻게 하지 않고는 배겨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아빠가 비장한 얼굴로 이런 제의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어머님. 이 건너 주택단지에 가면 개를 좋아하는 제 친구가 사는데요, 수남이를 거기다 맡기면 어떻겠습니까? 보고 싶을 때 잠깐 데려오든가, 운동 삼아 그 집으로 가서 보든가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할머니는 수남이를 외면한 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계셨습니다.
˝낯선 집에 가서 식구들 보고 싶어 울지나 않으려는지…….˝
이렇게 해서 수남이는 우리 집으로 온지 꼭 열흘만에 다시 집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수남이가 떠나던 그날 밤, 할머니 방에서 새어나오던 울음 소리를 나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아, 너까지 가버리면 나는 어떻게 살라는겨, 응?˝


큰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우리 나라를 떠난 지 열하루 만이었습니다.
˝어머님, 이제 겨우 자리가 잡혔습니다. 어머님, 성공하면 곧 모시러 가겠습니다.˝
˝일없다! 내 나라, 내 선산을 두고 내가 어딜 간다는겨.˝
굳이 할머니의 칼로 자르는 듯한 대답을 듣지 않더라도 나는 할머니가 결코 우리 나라를 떠나지 않을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수남이는 잘 있습니까? 애들이 옆에서 묻습니다.˝
큰아버지의 물음에 할머니의 얼굴이 어두워지셨습니다.
˝그래, 잘 있다. 수남이가 너희들처럼 어미랑 할미를 두고 날 떠날 애더냐?˝
할머니는 송수화기를 꽝, 하고 소리나게 내려 놓으셨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요란스럽게 문 두드리는 소리에 현관문을 슬쩍 열어 본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빼꼼 열린 문틈으로 번개처럼 집안으로 뛰어들어오는 것, 그것은 바로 수남이가 아닙니까! 할머니랑 우리 식구들이 보고 싶어서 수남이는 주택단지의 새 주인 집을 도망쳐 나온 것입니다.
˝어이쿠, 내 새끼!˝
할머니의 외침은 바로 비명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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