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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뿔밀깍지벌레와 보물찾기

창작동화 송재찬............... 조회 수 1732 추천 수 0 2005.02.11 19:03:00
.........
통지표에는 내가 가야할 새 학년의 교실이 정성스런 글씨로 쓰여져 있었다. 5학년 5반. 그리고 덜 받았던 5학년 수학 교과서를 받는 것으로 5학년의 모든 것이 끝났다.
묵은 학년도 새 학년도 아닌 봄방학. 운동장으로 쏟아져 나온 아이들의 얼굴은 모두 상기되어 있었다. 쥐꼬리만한 방학이라도 학교에 안 나오는 것만으로도 우린 즐겁다. 봄을 기다리는 봄방학. 나는 아이들에게 섞이며 천천히 교문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봄이라니…? 아직 멀었어!´ 하듯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이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소리없는 함성보다 더 큰 아이들의 함성. 내리던 눈이 주춤할 정도로 아이들이 함성이 컸다. 또 눈. 올해는 왜 이렇게 눈이 많은 걸까. 유독 추웠다. 엄마, 아빠가 집을 나가서가 아니라 이십년만의 추위라고…할아버지가 그렇게 신경을 썼는데도 보일러가 터져나가게 맹렬한 추위였다.

나는 이제 눈이 싫다. 겨울이 싫다. 더구나 엄마, 아빠가 안 계시는 겨울이 얼마나 추운지 나는 뼈저리게 느꼈다. 엄마, 아빠가 집을 나간 것은 지난 가을이었다.

늦잠이다. 봄방학이라고 할아버지는 나를 깨우지 않았다. 누가 마당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 빠져나온 침대 위를 대강 정리하고 거실로 나와 보니 할아버지가 거실 창가에 동상처럼 서 있다. 뒷짐진 동상.
˝또 눈이 와요?˝
나도 동상처럼 할아버지 곁에 서며 물었다.
˝올해는 무슨 눈이…˝
창가에 서서 적군처럼 쏟아져 내려오는 눈을 보는 할아버지의 눈빛은 깊은 겨울이다.
틈을 주지않고 내리는 눈은 금방 땅을 덮고 있다. 겨울에 내리는 것도 부족해 봄방학에도 눈이 내린다.
˝추위가 감나무의 병을 치료하는데 도움을 주면 좋으련만.˝
마당의 감나무는 두어 해 전부터 병을 앓고 있다. 아빠가 할아버지를 위해 심었다는 감나무는 우리가 사는 2층 만큼 자라 올랐지만 온몸에, 특히 연한 가지마다 하얀 벌레들이 잔뜩 붙어있다. 연한 가지마다 하얗게 붙어있는 동그란 벌레들. 그게 감나무의 진액들을 모두 빨아 먹는지 감나무는 나날이 시들어갔다. (…그게 벌레이기나 한 걸까. 아니면 감나무의 병인가.)

하얀 벌레들의 칩입은 아주 천천히 이루어졌다. 두어해 전 누가 무심히 꺾어 던진 것처럼 떨어져 말라버린 감나무의 가지를 나도 보았다. 그 때 하얀 벌레의 칩입을 눈치챘어야 했다.
˝누가 잘 자란 감나무 가지를 뚝 따서 이렇게 버렸구나.˝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손가락이라도 짤려나간 것처럼 안타까워했지만 아빠, 엄마는 관심조차 없었다. 그 때만 해도 녹색 잎과 연한 가지에 생기기 시작한 하얀 벌레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시골, 감나무 집 아들이었던 할아버지조차도 그런 ´감나무의 병´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자란 시골에서는 감나무가 병충해로 죽는 것을 한번도 본일이 없다고 했다.
처음, 감나무 잎이 떨어지기 시작했을 때, 손을 썼더라면 감나무는 여전히 할아버지의 자랑거리가 되었을까.
˝우리 집 감나무. 이거, 아들 놈이 내가 좋아하는 나무라고 사다 심은
걸세….˝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렇게 자랑하던 할아버지였다. 그러나 지금 감나무는 죽어가고 있고 아빠는 빚쟁이를 피해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감나무도 우리 집을 닮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빠의 사업이 기울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 아니었을까. 모든 것은 그렇게 천천히, 아무도 모르게 이루어지는 모양이다. 세상 모든 일들은.
누군가가 감나무에 벌레가 생기기 시작한 것을 알았더라면, 처음에 농약을 쳤더라면 감나무는 병들지 않았을까. 그처럼 아빠의 사업이 기울기 시작했을 때, 어떤 조치를 취했더라면 아빠는 사업은 온전했을까.
˝할아버지, 올해는 특히 추웠으니까, 감나무의 병균이 죽지 않을까요?˝
여전히 쏟아지는 눈을 보며 내가 말했다.
˝글세 말이다. 에비는 밥이라도 얻어먹고 있는 지….˝
결국 할아버지는 좀채로 내비취지 않던 속내를 내 보였다.
˝굶고 다니기야 하겠어요.˝
˝워낙 식성이 좋은 사람이…이 추위에…에미는 또 어디서 무얼하는 지…. 동호, 네가 외가에 다시 한번 전화해봐라. 거기도 소식 없는 지.˝
˝그럴게요. 전화해 볼게요.˝
엄마 아빠가 티걱거린 부부싸움이었다면 할아버지가 벌써 전화기를 들었을 것이다. 외할아버지와는 사돈이기 이전에 고향 친구 사이여서 흉허물없이 지내는 가까운 친구였다. 그러나 아빠는 외가의 돈까지 끌어다 써서 외가 사람들까지 빚더미에 앉게 만들어 버렸다.
˝허긴 니 전화인들 반갑겠니….춥다. 들어가자.˝
예. 할아버지는 안방으로, 나는 내방으로 향했다.
˝핸드폰으로는 아무 소식도 없고?˝
할아버지가 무심히, 문득 생각나서 말을 꺼냈지, 관심이 있어서 묻는 것은 아니라는 듯이 물었다.
˝예.˝
할아버지는 방으로 들어가며 기침을 했다.
안방에서 들리는 할아버지 기침 소리. 그리고 텔레비전이 살아나는 소리.
내 방은 춥다. 얼지 않을 정도로만 불을 땐다.
책꽂이에서 4학년 책을 빼내고 새책들을 꽂는데 누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책상 구석에 놓여있는 아빠의 핸드폰. 나는 아빠 손을 만지는 것처럼 그것을 들어 손에 쥐어본다. 아빠가 분신처럼 들고 다니던 핸드폰이다.
엄마는 떠날 준비를 했던 것처럼 핸드폰이며 패물, 전화 번호 수첩같은 것들을 남기지 않았지만 아빠는 핸드폰도 챙기지 않고 집을 나갔다.
처음에는 아빠를 찾는 전화가 하루에도 수없이 걸려오더니 지금은 가끔 씩만 걸려온다.
˝김남준씨 핸드폰 아닌가…?˝
˝아, 아빠 건데요….˝
˝핸드폰도 놓고 나갔어? 허긴…˝
허긴…쫄딱 망해 빚더미에 앉은 주제에 핸드폰은 무슨…그러나 그들은 어린 나에게 이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엉뚱한 소리를 하며 전화를 끊었다. 공부 열심히 해라. 예전에 살던 집은 그대로지?
˝핸드폰을 두고 나갔다…비상 연락망이군….˝
이렇게 말한 핸드폰 저쪽의 얼굴을 나는 모른다. 그러나 ´비상 연락망´이라는 그의 말만은 내 가슴에 그대로 박혔다.
´아빠, 일부러 핸드폰을 두고 가신 건가요? 그럼 전화하세요. 제가 할아버지께 말씀드려 핸드폰 사용료는 내도록 할게요. 꼭 연락하셔야 해요. 꼭요.´
나는 그 때부터 부지런히 핸드폰을 충전시켰다.
그 분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아빠에게 돈을 받을 사람들은 아빠의 핸드폰이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 같았다. 그 친구 죽지는 않았구먼. 아직도 핸드폰이 살아있는 걸 보니까…. 그들은 한결같이 이런 소리를 하며 전화를 끊었다.
´우리 아빠는 돌아올거예요. 걱정마세요.´
그러나 아빠는 전화하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 걸까. 엄마도….

봄방학 마지막 날에도 폭설이 쏟아지고 3월에도 눈이 내리더니 4월이 오자 꽃들이 피기시작했다. 우리 골목으로 들어서는 길가, 연립주택의 목련이 탐스런 꽃봉오리를 달더니 어느새 세상은 꽃천지가 되었다.
굳게 닫혔던 문들이 열리고 꽃이 핀 화분들이 베렌다에 나오고 울타리에서도 개나리가 노랗게 피어났다.
할아버지는 봄볕을 맞고 있는 감나무를 자주 올려다 보았다. 감나무는 죽은 것처럼 보였고 가지 끝마다 하얀 점들이 닥지닥지 붙어있는 게 징그러울 정도였다.
4월 두 번째 토요일. 내가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할아버지가 사다리를 타고 감나무 끝에 올라가 있었다.
˝할아버지, 뭐해요? 위험해요, 내려오세요.˝
나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소리쳤다.
˝이게 뿔밀깎지벌레라는 거래. 약을 쳐야 돤단다. 슈퍼 집 주인네도 이게 많이 생겨서 손으로 다 떨어내고 약을 쳤댄다. 진작 해줄걸. 얼 마나 욕했을꼬.˝
˝내려 오세요. 제가 할게요.˝
나는 내 키가 닿는 가지를 손을 끌어다 하얀 딱지같은 것들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하얀 페인트로 점을 찍어 논 것 같은 이게 벌레라고? 뿔…무슨 깍지벌레?
˝올 추위가 대단했잖니. 보일러가 다 얼어터지는 데도 이놈들은 오히려 더 피둥피둥 살이 쪘구나. 오늘 보니 동백에도 허옇고 모과 나무 에도 허옇더라. 다 잡아떨구어야 겠어. 이게 감나무에 붙어 겨울동안 더 많아진 것 같애.˝
˝그래요?˝
감나무 곁의 동백화분에도 하얀 점들이 닥지닥지 붙어있고 대문 옆모과 나무 가지에도 벌레들이 하옇게 붙어있다. 용케도 연한 가지를 찾아 붙어있다.
˝올라올 생각말고 넌 동백에거나 쓸어내어라.˝
˝예, 그럴게요.˝
˝신발장에 봐 니 엄마가 끼던 면장감이 있을거야.˝
˝예.˝
엄마 면장갑은 깨끗했다. 나는 그것을 끼고 동백나무 잎과 줄기 끝
연한 가지에 납작 달라붙어있는 하얀 벌레들을 떼어내었다. 벌레들이
터지며 보랏빛이 장갑에 묻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이게 벌레들의 피일까요?˝
˝그러겠지. 이것도 수컷 암컷이 있단다. 큰 게 암컷이래든가?˝
이게 벌레라고? 이게…? 어느새 면장갑은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그만큼 뿔밀깍지벌레는 많았다.
˝어이쿠!˝
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할아버지 비명과 함께 들렸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감나무에서 떨어지신 것이다. 할아버지를 이겨내고도
남을 것 같은 굵은 가지가 맥없이 부러져 있었다.

할아버지가 깁스를 하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나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감나무는 깁스를 한 할아버지를 발목처럼 굵은 가지들도
잘 부러진다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나는 감나무 가지 위로는 올라 가지 않았다.
사다리라고 해서 위험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바짝 긴장하며 조심 조심 올라갔다. 높은 가지에 있는 깍지 벌레를 떼기 위해서는 양쪽 다리로도 펼칠 수 있는 알루미늄 사다리를 한줄 다리로 만들어야 했다.
밑에서 보면 죽은 것처럼 보이는 감나무는 그러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보니 곳곳에 어린 잎눈들이 붙어있었다. 깍지 벌레 - 이 놈들은 처음 어디에서부터 왔을까.
사다리 위에선 2층 내 방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방에선 못 보았던 무질서가 높은 곳에서 보니 한 눈에 모두 들어온다. 내일은 방도 정리해야지. 그 때였다. 내 책상이 깜짝 놀라게 전화벨이 울렸다. 죽은 감나무처럼 한동안 침묵만 지키던 핸드폰이었다.
벌벌 떨며 올라갈 때와는 다르게 빠르게 사다리를 내려왔다. 다시 후다닥 이층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내가 현관문을 열기도 전에 전화벨은 뚝 끊겼다.
´누구 전화였을까.´
나는 내 방문을 열고 감나무를 보았다. 감나무가 살아있기나 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나무는 아직 깊은 잠에 빠져있다. 모과나무가 가지끝마다 연초록 잎눈을 틔운 것과는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죽은 게 아니다. 감나무는 늦어. 대추 나무는 더 늦지.˝
병원에 실려간 할아버지의 음성이 훈훈한 바람 속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다음 주에나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할아버지는 절대 감나무에 올라가지 말라고, 나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동호야, 너까지 다치면 큰일난다. 절대 올라가지 마라.
나는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며 창밖을 본다. 사다리가 걸쳐진 감나무에는 이제 깍지 벌레가 많이 사라졌다. 군데 군데 누여겨 보아야 깍지벌레가 보인다.나는 그것들을 눈여겨 본다. 저기, 저기 그리고 저 높은 곳에…나는 눈으로 그놈들을 꼽아둔다. 다시 올라 가서 저 놈들을 떼어내야 한다.

살아가는 방법들이 참으로 희안하다. 둥근 페인트 자국같은 저 놈들 저 놈들도 암수가 있고 번식까지 한다니. 그럼 우리 몰래 움직이기도 한다는 말일까. 언제 인터넷으로 들어가 검색해 봐야 겠다. 저 놈들이 벌레라니, 살아서 움직이는 걸까.

내가 다시 운동화를 꿰어신고 나가려고 할 때였다. 잠깐, 하듯 전화벨이 울렸다. 핸드폰 소리였다.
˝여보세요?˝
핸드폰 저쪽에선 아뭇 소리도 없다.
˝여보세요?˝
역시 대답이 없다. 잘못걸린 전화일까, 하는데 핸드폰 저쪽에서 빵빵거리는 자동차 소리가 났다. 문득 떠오르는 얼굴.
˝아빠?˝
여전히 대답이 없다. 아빠, 맞지요? 아뭇 소리도 없지만 핸드폰은 살아있다. 전화기를 든 사람의 숨결이 느껴진다. 그리고 다시 자동차 경적 소리.
˝아빠, 돌아오세요. 다시 힘을 내세요. 아빠대신 할아버지가 감나무에서 떨어져 병원에 가셨어요. 깁스를 했어요. 할아버지가 감나무는 살 아난대요. 아빠! 아빠! 돌아오세요. 제가 혼자 집을 지켜요. 아빠, 전 아빠를 이해할 수 있어요. 전 이제 어린애가 아니예요. 와서 엄마를 찾아봐요.˝
전화가 턱 끊기는 소리. 아빠! 아빠! 역시 아뭇 소리도 나지 않았다.
´아빠가 아니고 엄마였을까?´
나는 다시 전화가 걸려올 것 같아 의자에 앉았다. 그러나 전화는 다시 걸려오지 않았다.

소풍을 겸하는 현장학습 날이지만 마음이 가볍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김밥집에서 사온 김밥과 터무니없이 많은 과자들로 채워진 가방을 메고 나는 운동화 끈을 매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김밥을 사오시며 과자도 한 보따리를 사오셨다. 엄마, 아빠가 안 계시는 쓸쓸한 내 마음을 과자로 채우려는 사람처럼.
˝할아버지, 다녀오겠습니다.˝
˝차 조심하고.˝
˝예.˝
내가 손을 흔들고 층계를 내려가려 할 때였다.
˝동호야, 잠깐!˝
할아버지는 나를 급히 세우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셨다.
˝어제 좋은 꿈을 꾸었다. 이거 가지고 가거라.˝
핸드폰이었다. 나는 의아한 얼굴로 할아버지를 보았다.
˝꿈에 무지개를 보았다. 너무 선명하고 아름다운 꿈이었어. 혹시 니 엄마에게서 전화오면 아뭇 생각말고 들어오라고 해라. 다시 시작하자고. 꿈에 무지개를 보았다.˝
할아버지의 얼굴은 모처럼 환했다. 그처럼 어둡던 눈빛에 무지개가 떠있는 것처럼 밝았다.
˝잘 알겠습니다. 할아버지.˝
나는 마당에 서서 다시 큰 소리로 인사를 하고 학교로 향했다.
무지개. 무지개…웬지 나도 기분이 좋았다.

봄볕이 두터워져있다. 망우산 나무 숲들이 모두, 신록의 싱싱함으로 가볍게 흔들리고 있다. 나는 모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망우산을 뛰어 다녔다. 소풍은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하지만 막상 가보면 싱겁기 짝이 없다. 소풍 장소에 도착하고 자유 시간을 약간 가지면 해는 언제나 머리 위에 와 있다. 점심. 멀리 가지 말고 요 근처에서 놀다가 모여라. 보물찾기하니까. 나는 점심을 못 먹더라도 선생님들이 어디에다 보물을 숨기는지 잘 봐 두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들과 어울려 김밥을 먹는 사이에 보물 생각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비록 김밥집 아줌마가 싸준 거지만 내 마음이 이미 두터워진 봄볕으로 가벼워져 있었기 때문에 아주 꿀맛이었다. 핸드폰은 조끼 주머니에 잘 넣어두었다. 나도 할아버지 꿈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핸드폰이 울리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점심을 먹는 동안에도 잊지않고 있던 핸드폰을 보물찾기를 하는 동안 까맣게 잊어버렸다. 우리 꼭 찾고 말자! 오케이! 나는 보물을 찾으러 숲 속으로 들어갔다. 찾았다! 보물을 일찍 찾은 아이들의 고함 소리가, 놀라서 푸드륵 날아가는 새소리만큼이나 내 마음을 자지러지게 한다. 나는 자꾸 안으로 들어갔다. 오리나무들과 떡깔나무들 그리고 아카시아나무들과 이름모르는 나무들이 울창한 속을 나는 이리 저리 살피며 안으로 갔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그날 그처럼 깊은 숲으로 들어간 것은 아무래도 하느님의 힘이 아니었을까. 보물찾기라고는 하지만 나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거기까지 간 게 틀림없다.)

보물은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꼭 찾아야하는데…지금쯤 찬영이도 기태도 찾았을텐데. 꼭 찾기로 했는데. 그런데 나무 숲으로 들어가 조그만 연못같은 습지를 보았을 때였다. 청둥오리같은 새가 푸드득 날아올라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주저앉았다. 여기가 어디일까. 나는 혼자 숲에 갇혀있었다. 나는 갑자기 무서움을 느꼈다. 여기가 어딜까. 지금 몇 시나 되었을까. 그 때였다. 어디선가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엄마다!´
나는 재빨리 조끼 주머니를 보았다. 아니, 핸드폰이 없다. 어디서 떨어뜨린 것일까. 어디선가 핸드폰 소리는 계속 울린다. 그러나 온통 푸른 숲에서 그게 어디쯤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엄마! 끊지마세요. 제발 엄마! 나는 이리 저리 헤매다 겨우 핸드폰을 찾았다. 저쪽 아카시아 숲 바위 밑을 뒤질 때, 핸드폰이 떨어진 모양이다. 그러나 내가 핸드폰을 들었을 때, 핸드폰은 입을 다물어버렸다.
누구였을까. 할아버지의 예감대로 엄마였을까? 나는 말없이 핸드폰을 보았다. 핸드폰 화면에는 ´복있는 사람 김남준´이라고 써 있다. 복있는 사람 김남준이 5월의 눈부신 햇빛을 받고 있다.
´아빠…엄마….´
복있는 사람은 그러나 지금 내 곁을 떠나 숨어버렸다.
˝동호야! 동호야! 김동호˝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김동호!˝
˝김동호!˝
분명 나를 찾는 소리였다. 보물찾기가 끝나고 어느새 돌아가야 할 시각인데 나를 잃어버린 것이리라.
˝여기 있어요! 동호 여기 있어요.˝
나는 소리치며 나를 소리를 찾아 뛰기 시작했다. 내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까. 나를 찾는 소리가 가까이 들리더니 다시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소리치고 나서 힘껏 뛰기 시작했다. 어느새 온 몸이 젖고 있었다. 그 때였다.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나는 숨을 헐떡거리며 급하게 입을 열었다. 핸드폰 저쪽에는 분명 사람이 있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았았다.
˝여보세요? 아빠? 엄마?˝
여전히 아뭇소리도 없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아빠예요? 아님 엄마인가요? 나는 안타갑게 소리쳤지만 핸드폰은 아뭇 소리도 드려주지 않았다. 그러나 아빠를 찾는 전화는 아닌 것 같았다. 아빠일까? 할아버지 꿈처럼 엄마일까?
˝엄마, 돌아오세요? 전 지금 소풍이예요. 점심 잘 먹었어요. 할아버지 께서 과자도 많이 준비해 주셨어요. 아빠, 돌아와요. 할아버지가 돌아 와서 다시 시작하자고 했어요. 아빠가 너무 욕심을 부려서 이렇게 된 거라고. 욕심을 털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하셨어요. 엄마, 보고 싶어요. 아빠 맞지요? 기다릴게요.˝
나는 천천히 걸으며 계속 말했다. 전화기 저 쪽의 사람은 아무 소리도 않고 그러나 전화를 끊지도 않고 말없이 듣고 있다.
나는 다시 감나무 이야기를 했다. 문득 무슨 신호처럼 저 쪽에서 기침 소리가 났다.
˝엄마구나! 엄마! 엄마! 할아버지 꿈이 맞았어요. 할아버지가 꿈에 무 지개를 보았대요. 엄마! 보고 싶어요. 빨리 돌아오세요. 아빠도 아직 안 돌아 왔어요. 엄마가 오시면 아빠도 돌아오실거예요.˝
다시 기침 소리가 났다. 그건 엄마 기침이었다. 분명코 엄마 기침 소리였다. 아, 엄마가 나를 잊지 않고 전화를 해 주었구나.
전화는 끊겼다.
전화가 끊기자 다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김동호 여기 있어요!˝
나는 크게 소리 지르며 뛰기 시작했다. 나를 찾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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