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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날아가는 솔개산

창작동화 이규희............... 조회 수 1139 추천 수 0 2005.02.17 21:54:40
.........
하얀 목련꽃이 활짝 웃고 있는 한낮입니다.
˝다롱아,왜 자꾸 멍멍 짖어?˝
마루에서 숙제를 하던 수정이는 다롱이를 야단쳤습니다.그러다간 고개
를 쭉 빼고 대문 밖을 내다보았습니다.읍내에 나갔던 할아버지가 웬 낯
선 아저씨와 남자아이와 함께 오는 게 보였거든요.
˝할아버지이!˝
수정이는 강아지처 쪼르르 달려 나갔습니다.
˝오,그래,인사하거라.우리 솔개마을을 찾아온 손님들이다!˝
˝안녕하세요!˝
수정이는 낯선 아저씨에게 꾸벅 인사를 하였습니다.남자아이에게도 방
긋 웃어주었습니다.그러자 두 사람도 고개를 까딱이며 눈인사를 하였습
니다.

집에 돌아온 할아버지는 엄마 아빠에게 손님을 만난 이야기를 들려주
었습니다.
˝아,읍내에서 부터 같은 버스를 타고오는데 우리 마을에서 며칠 묵을
집을 좀 소개해 달라더구나.곰곰 생각해봐도 어디 마땅한 집이 있어야
지.농사철이라 다들 일손이 바쁜 판에 손님 맞을 겨를이 있겠어? 그래,
내가 이렇게 우리 집으로 모시고 온게다.참,자네,일본 나고야에서 왔다
고 했던가?˝
˝네,어제 나고야를 떠나 서울에서 하룻밤 자고는 이렇게 솔개마을을
찾아오는 길입니다.˝
˝그 먼 곳에서 우리 마을을 찾아 오다니……? 저희 마을에 뭐 특별한
관광지나 유적지가 있는 것도 아닌데 무슨 일로……?˝
아빠는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습니다.그러자 그 일본 아저씨는 머뭇
머뭇거리다간 마지못해 대답을 하였습니다.
˝저,뭘 좀 찾을 게 있어서요…….˝
˝찾다니요? 뭘 말씁입니까?˝
˝죄,죄송하므니다.말씀 드리기가…….˝
일본아저씨의 얼굴이 갑자기 복숭아꽃잎처럼 빨개졌습니다.
˝허허,아범아! 뭘 그렇게 꼬치꼬치 묻느냐? 무슨 볼 일이 있으니까 이
렇게 먼 길을 찾아 온게지! 어쨌든 우리 집에 온 손님이니 사랑방에서
며칠 편안히 머물도록 해드려라.참,이름이 야마다 히로구찌라고 했던가,
저 아이인 히로꾼이고?˝
˝네,그렇습니다.그냥 야마다상이라고 불러주세요.˝
일본아저씨는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솔개마을을 찾아온 낯선 손님인 야마다 아저씨와 히로는 그렇게 하여
수정이네 집에 머물게 되었습니다.엄마는 깨끗한 이부자리를 사랑방으
로 내갔습니다. 맛있는 저녁상도 차렸구요.
˝잘먹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아저씨와 아이는 활짝 웃으며 된장찌개며 매운 김치,잡채,나물들을 맛
있게 먹었습니다.
˝아니,일본 분이 한국음식을 어찌 그리도 잘 드시우? 게다가 한국말을
이렇게 잘하는 걸 보니,혹시 부모님이 재일교포 아닌가?˝
할아버지는 신기한 듯 물었습니다.
˝아,그렇지 않습니다.저흰 일본사람입니다.그렇지만 제가 살고 있는 나
고야에 한글학교가 있지요.거기서 저하고 히로꾼,둘 다 한글을 배웠습니
다.서울에서 오신 젊은 한국선생님이 가르쳐 주시는데 아주 재미있습니
다.˝
˝거 참,아버지와 아들이 똑같이 한국말을 배웠다니 놀랍구료.뭔가 특
별한 이유라도 있는 게요?˝
˝그건,저희 아버님의 유언 때문이었습니다.˝
˝아니,유언이라니……?!˝
할아버지는 수저를 든 채 놀라서 물었습니다.
˝죄송하무니다!˝
야마다 아저씨는 또 다시 자물통처럼 입을 꾸욱 다물었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습니다.솔개마을을 찾아온 아마다 아저씨와 히로는
다음 날부터 배낭을 짊어진 채 날마다 솔개산을 올라가기 시작하였으
니까요.멀리서 보면 마치 커다란 솔개가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여 옛날부터 ´솔개산´으로 불려지는 바로 그 산을.
학교가 끝난 후 당산나무 밑에 모여 구슬치기를 하던 아이들은 마침
산을 내려오던 두 사람을 보며 수군수군거렸습니다.일본에서 온 사람들
이 무엇 때문에 솔개산엘 오르내리는지 알쏭달쏭 했거든요.

˝도대체 솔개산엘 왜 왔다갔다 하는 거지?˝
˝틀림없어! 일본사람이 여길 왜 왔겠어? 저 아이의 할아버지가 유언
을 했다면 분명하잖아? 쟤네 할아버지가 일제시대 때 솔개산 어딘가에
보물을 숨겨뒀는 지도 모르지.그 걸 알게 된 저 두 사람이 보물을 찾으
러 온거야! 틀림없어!˝
명호가 씩씩대며 말했습니다.
˝정말 그럴까? 하긴 배낭을 메고 하루종일 산을 헤매다가 내려오는
걸 보면 수상하기도 해.˝
˝혹시,저 배낭에다 날마다 조금씩 보물을 넣어오는 게 아닐까……?˝
솔개마을 아이들은 탐정이라도 된 듯 눈을 반짝였습니다.
˝수정아,너희 집에 온 손님이니까 네가 한번 그 배낭을 열어볼래? 만
약,솔개산에 묻힌 보물을 가져가려고 온거라면 그냥 놔 두면 안 돼! 무
슨 수를 써서라도 우리가 빼앗아야 해.˝
˝그,그렇지만 내가 어떻게…….˝
˝넌 매일 그 사람들과 가까이 있으니까 살펴볼 기회가 많잖아.그러니
까 네가 해야지.˝
˝아,알았어!˝
수정이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떡였습니다.하지만 자기 집에 온 손님의
짐을 뒤진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콩콩 뛰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수정이는 엄마가 만들어 준 식혜 두 그릇을 들고 사랑방
으로 갔습니다.마침 히로가 툇마루끝에 앉아 있었습니다.얼핏보니 히로
의 등산화에는 진흙이 잔뜩 묻어있었습니다.바로 솔개산의 빨간 진흙이
었습니다.
˝자,이거 마셔! 식혜란다!˝
˝고마워!˝
히로는 수정이가 내민 식혜잔을 받았습니다.수정이는 괜히 히로의 옆
을 뱅글뱅글 맴돌다간 은근슬쩍 물었습니다.
˝히로꾼! 산에 가서 뭐했니? 너희 아버지가 찾는건 찾았어?˝
수정이는 마른 침을 꼴깍 삼키며 물었습니다.
˝…….˝
히로는 말없이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찾았어? 그,그런데……?˝
수정이의 가슴이 와랑와랑 흔들렸습니다.
˝그걸 꺼내기가 너무 힘들어.그래서…….˝
˝그,그게 뭔데?˝
수정이는 바짝 다가앉으며 물었습니다.
˝그건…….˝
그런데 그 때였습니다.히로가 마악 무슨 말을 하려는데 방안에서 야마
다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히로꾼! 어서 들어와서 옷 갈아 입어야지!˝
˝네!˝
깜짝 놀란 히로는 부리나케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야마다 아저씨가 일부러 말을 못하게 하려고 부른걸까……?´
수정이는 히로가 찾아냈다는 게 뭔지 궁금하기만 하였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안채로 나오려던 수정이는 툇마루 밑에 놓인 두
개의 배낭을 보았습니다.바로 야마다 아저씨와 히로가 산에 갈 때마다
메고가던 빨간색과 파란색 배낭이었습니다.
수정이는 소금기둥이 된 아이처럼 그 자리에서 꼼짝을 할 수가 없었
습니다.아이들의 부탁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아,어쩌지? 하지만 아이들 말대로 저 안을 열어보면 야마다 아저씨가
뭘 찾았는지 알 수 있을꺼야.그래,기회는 지금 밖에 없어!´
수정이는 깨금발로 살금살금 배낭 옆으로 다가갔습니다.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가슴이 쿵쾅쿵쾅거렸습니다.하지만 떨리는 손으로 살그머니 배
낭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던 수정이는 더욱 소스라쳐 놀랐습니다.
˝앗!˝
그 안에는 정말로 나침판이며 땅을 파는 호미,작은 삽같은 도구가 들
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말이 맞아! 이 사람들은 솔개산에 묻어둔 보물을 가져가려고
온 게 틀림없어!´
수정이는 후들후들 떨리는 몸으로 사랑채를 빠져나왔습니다.그리곤 꽁
지에 불이 붙은 꿩처럼 아이들이 놀고있는 당산나무로 뛰어갔습니다.
˝얘,얘들아……!˝
˝수정아,봤니,봤어?˝
아이들이 금방 모이를 본 병아리들처럼 모여들었습니다.
˝봤어!˝
˝뭐가 들었든……?˝
˝뜸들이지 말고 빨리 얘기해 봐!˝
수정이가 숨을 가다듬는 사이 아이들이 재촉을 하였습니다.
˝삽이랑 호미,나침판같은 게 있어!˝
˝그것 봐! 내 말이 틀림없잖아! 그 일본 아저씨는 숨겨둔 보물을 찾으
러 온거라구!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리가 막아야 해.˝
명호는 싸움터에 나가는 대장처럼 말했습니다.
˝그래도 괜찮을까,어쨌든 그건 우리 보물이 아니잖아!˝
기웅이가 겁먹은 얼굴로 물었습니다.
˝자아식! 솔개산에 묻혀있는 건 솔개마을꺼지! 그걸 그대로 가져가게
둔단 말이야? 우리 할아버지가 그러는데,옛날에도 일본 사람들이 우리
나라의 도자기나 그림,불상같은 문화재들을 수도 없이 가져갔대! 일본
박물관에 가보면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국보급 보물들이 잔뜩 있
대잖아! 그런데도 우리 마을에 있는 보물까지 눈뜨고 그냥 내주란 말이
야?˝
명호는 성난 황소처럼 씩씩거렸습니다.
˝그럼,어떻게 하지?˝
아이들은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하였습니다.하지만 별 뾰쪽한 수가 나
오지 않자 그저 송아지처럼 눈만 꿈뻑꿈뻑거릴 뿐이었습니다.

다음 날도 야마다 아저씨와 히로는 솔개산에서 하루종일 살다가 온
모양이었습니다.해가 설핏 서쪽으로 질 무렵에야 그림자를 질질 끌며
마당으로 들어섰으니 말입니다.
˝오늘도 산에 다녀오는 게요?˝
˝네.˝
야마다 아저씨는 할아버지가 앉아 있는 평상 옆에 조심스럽게 걸터
앉았습니다.그리곤 방금 내려온 솔개산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습
니다.
˝여기서 보니,정말 솔개 한 마리가 날개를 펴고 있는 것과 똑같군요.
아버님이 늘 말씀하시던 것과 같아요.˝
˝아버님이라구? 아니,야마다상 아버님이 우리 솔개산을 안단 말인가?˝
할아버지는 뛸 듯이 놀라 물었습니다.
˝젊은 시절,이 근처에서 사셨다고 하였어요.˝
˝뭐라구? 그럼,일제시대때……?!˝
˝네!˝
˝원,세상에!˝
할아버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큰 기침을 하였습니다.마루에 옆드려
숙제를 하고있던 수정이의 귀도 나팔처럼 커졌습니다.물론 부엌에서 저
녁을 짓던 엄마도,마당에서 일을 하단 아빠도 깜짝 놀란 건 마찬가지였
습니다.
˝그 당시 저희 아버님은 이 마을 주재소의 순사를 지냈다고 하셨습니
다.˝
˝여보게 야마다상,그,그렇다면 늘 동그란 금테 안경을 쓰고 다니던 땅
딸막한 야마다 순사가 바로 자네 아버님이었단 말인가?˝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습니다.
˝그럼,어른께서도 제 아버님을 아신단 말씀입니까……?˝
야마다 아저씨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어허,그러고 보니 닮았네,닮았어! 눈매며 입술,턱언저리까지 다 닮았
어! 세상에,자네가 야마다의 아들이었다니! 그럼 저 히로꾼이 야마다의
손자란 말이지?˝
할아버지는 믿을 수가 없다는 듯이 야마다 아저씨와 히로를 번갈아
보고 또 보았습니다.그리곤 엉킨 실뭉치를 풀듯 가만가만 이야기를 시
작하였습니다.아빠와 엄마,수정이도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끌려 평상 옆
으로 다가가 앉았습니다.
˝한참 징용이 심할 때였지.그 때 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나한
테도 징용이 나왔지 뭔가.하지만 그 무렵 어머니께서 몹시 편찮으실 때
였다네.난 곰곰 생각을 하다가 그 날밤 주재소로 찾아갔지.마침 자네
아버님인 야마다 순사 혼자 주재소를 지키고 있더구먼.난 울면서 애원
했지.당신도 일본에 어머니가 계시지 않은가? 제발 어머니 병환이 나을
때까지 만이라도 징용을 미뤄달라며 통사정을 했네…….˝
˝그,그래서요?˝
˝묵묵히 듣고만 있던 야마다순사가 그러더군.자기도 한국에 나와있는
동안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기에 내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말이야.그리곤 집에 돌아가서 기다리라고 하였다네.˝
˝결국,저희 아버님께서 징용을 미뤄주셨군요.˝
˝그렇다네.그 후 몇 달 후,우린 해방이 되었지.하지만 내가 만약 그 때
저 뜨거운 남양만 군도로 끌려 갔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아마도 낯선
땅에서 죽었을 지도 모르지.그 날,자네 아버님이 날 살려준 게야.살아가
면서 가끔 자네 아버님 생각을 했다네.그런데 이렇게 자네를 만나게 되
다니 꿈만 같구먼,꿈만 같애!˝
˝그랬군요.˝
야마다 아저씨도 분홍구름처럼 화사하게 핀 벚꽃나무를 바라보며 고
개를 끄떡였습니다.
˝아버님은 돌아가시기 얼마 전,제게 유언을 하셨어요.꼭 한국의 솔개
산에 가보라구 말입니다.˝
야마다 아저씨의 말을 듣던 수정이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습니다.이제
모든 비밀이 밝혀질 듯 했으니까요.
˝그래,무슨 유언이었는데……?!˝
할아버지도 궁금증을 못이긴 채 말머리를 재촉 하였습니다.
˝그건 솔개산 꼭대기에 박힌 쇠말뚝을 빼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니,쇠말뚝이라면? 일본사람들이 우리 나라의 맥을 끊어 놓으려고
박아놓았다는 그 쇠말뚝이 우리 솔개산에도 있었단 말이오?˝
돌부처처럼 묵묵히 할아버지와 야마다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던 아빠
는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그렇습니다.저의 아버님도 그 일에 참가했던 모양입니다.하지만 전
쟁이 끝나고 일본에 돌아가서도 늘 그게 마음에 걸렸다고 하셨어요.마
치 누군가가 아버님 가슴에 쇠말뚝을 꽂아놓은 것처럼 평생 가슴이 답
답 했다고 하셨어요.하지만 그동안 사느라고 바빠서 솔개마을을 찾아
갈 겨를이 없었노라며,저보고 꼭 찾아가서 그 쇠말뚝을 없애라고 하셨
습니다.그래서 솔개산이 다시 힘차게 날개짓을 하도록 하라고…….˝
˝세상에,우린 깜쪽같이 모르고 있었구먼! 예로부터 큰 인물이 많이 나
오던 우리 마을에서 언제부터 그런 인재가 안나온다 했더니만 다 이유
가 있었어! 쇠말뚝이 솔개산의 기를 그렇게 꽉 막고 있었으니,허허!˝
할아버지는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래,그 쇠말뚝은 찾았는가?˝
˝네,하지만 워낙 깊이 박아놔서 저희 둘이 뽑아내기에는 너무 힘이 들
더군요.솔개마을 분들께는 아무 말없이 히로꾼과 둘이 해보려고 했었지
요.그래야,저희 선조들이 저지른 죄를 용서받을 것같아서…….˝
야마다 아저씨는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수정이는 그 때서야 야마다 아저씨가 보물찾기를 하려고 산에 올라간
게 아님을 알았습니다.
´괜히 의심했잖아!´
수정이는 부끄러움에 혼자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다음 날 새벽이었습니다.아직 솔개산에서 아침해가 뜨기 전,할아버지
와 아빠,수정이,야마다 아저씨,히로는 집을 나섰습니다.
할아버지는 그 어느 때보다 성큼성큼 앞장서서 산을 올라갔습니다.그
뒤를 삽과 곡괭이를 든 아빠와 야마다 아저씨가 따라갔습니다.수정이와
히로도 굵은 새끼줄을 안고 그 뒤를 걸었습니다.
아무도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마침내,일행은 가파른 비탈길을 헉헉거리며 솔개산 꼭대기에 닿았습니
다.그러자 야마다아저씨는 나무 가지 사이를 헤치며 노란 헝겊으로 표
시를 해놓은 쇠말뚝을 가리켰습니다.
˝저,저기입니다!˝
쇠말뚝은 이리저리 얽힌 칡넝쿨이며 다래넝쿨 사이에 있었습니다.
˝세상에! 솔개산 정수리에 이런 걸 박아놓았으니 어찌 솔개가 날개짓
을 할 수가 있었담,쯧쯧!˝
할아버지는 빨갛게 녹이 슨 쇠말뚝을 보며 혀를 찼습니다.
˝죄송합니다.저희 혼자서 이걸 없애야 하는데…….˝
벌받는 아이같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야마다 아저씨는 큰 곡괭이
를 들고는 쇠말뚝 옆을 쾅쾅 내리찍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닙니다.우리 마을의 산에 이런 쇠말뚝이 꽂혀있는 줄도 모른 채 몇
십년을 살아온 우리도 잘한 게 없지요.그러니,같이 힘을 합해 당장 이걸
뽑아 버립시다!˝
아빠도 삽을 들고 야마다 아저씨를 거들어 흙을 파내기 시작하였습니
다.두 분은 그렇게 힘을 합해 깊게 박힌 쇠말뚝의 옆구리를 넓게 파들
어 갔습니다.
어느 틈에 두 분의 얼굴에선 구슬땀이 주르르 흘렀습니다.하지만 쇠말
뚝은 워낙 단단하게 박혀있어서 좀처럼 빠질 줄을 몰랐습니다.
˝쿵쾅,쿵쾅!˝
솔개산 자락을 타고 망치 소리와 곡괭이 소리가 퍼져나갔습니다.
한참 그렇게 실갱이를 하자 쇠말뚝은 흔들흔들 조금씩 움직였습니다.
˝이제 웬만큼 빠진 것 같구나.이럴 때는 힘으로 밀어부치는 것보다 살
살 요령있게 흔들어야 잘 빠질 게다.마치 흔들리는 이를 뽑듯이 말이
다.옳지,이제 아범들은 좀쉬고 수정이하고 히로꾼,둘이서 해보련?˝
할아버지는 숨을 죽이고 있던 수정이와 히로에게 말했습니다.그리곤
쇠말뚝에 새끼줄을 단단히 감아서는 둘이 양끝을 잡고 이리저리 잡아
당기도록 일러주었습니다.
˝수정아,힘껏 당겨!˝
˝히로꾼,이 쪽으로 당겨!˝
둘은 운동회날 줄다리기를 하듯 새끼줄을 잡고 안간힘을 쓰기 시작하
였습니다.그러자 얼마 후,이가 빠질 때처럼 쇠말뚝이 마구 흔들흔들거리
는 게 아니어요?
둘이는 얼른 새끼줄을 내려놓고 쇠말뚝으로 달려들었습니다.그리곤 두
손으로 꼬옥 움켜쥐곤 그야말로 젖먹던 힘까지 내어 힘껏 잡아당겼습
니다.그러자,빠질 듯 말 듯하던 쇠말뚝이 무우가 뽑아지듯 쑤욱 빠지는
게 아니어요? 수정이와 히로는 쇠말뚝을 안고는 벌렁 뒤로 넘어졌습니
다.
˝우와! 우리가 해냈어!˝
˝야아! 우리가 빼냈다아!˝
둘은 엉덩방아를 찧은 채 서로 얼싸안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잘했다,잘했어!˝
할아버지와 아빠,야마다 아저씨도 활짝 웃으며 손뼉을 쳤습니다.

마침내,야마다 아저씨와 히로가 떠나는 날이 되었습니다.히로와 수정
이는 툇마루에 앉아 멀리 솔개산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때,수정이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습니다.
연두빛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솔개산이 갑자기 커다란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게 아니어요?
˝히로꾼! 저길 봐! 솔개산이 날아가고 있어!˝
˝어디,어디?˝
˝저기 저 꼭대기!˝
수정이는 마당으로 내려서서 솔개산 꼭대기를 가리켰습니다.히로도 그
걸 보았는지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집에 가면 할아버지 사진 앞에서 꼭 이야기 해드릴꺼야.이제 솔개산
이 훨훨 날아가기 시작했다고.그러니 안심하고 눈을 감으시라고 말이
야! 그럼,우리 할아버지도 무척 기뻐하실꺼야!˝
히로는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으로 수정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수정이는 말없이 옆으로 다가가 히로와 어깨동무를 하였습니다.마치
오래된 단짝 친구처럼.히로가 떠난 후 빨리 이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들
려줘야지,다짐하면서 말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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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창작동화 [창작동화]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이윤희 2005-02-11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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