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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깔끔이 아저씨

창작동화 이규희............... 조회 수 1172 추천 수 0 2005.02.17 21:55:44
.........
어느 회사에 ´깔끔이´라고 불리는 아저씨가 있었습니다.그 아저씨는 늘
말끔하게 다림질된 양복이며,구두코가 거울처럼 반들반들 거리는 구두,
방금 이발소에서 나온 듯한 머리며 어디 한 군데도 흐트러짐없는 차림
새를 하곤 하였습니다.
하루는 사장님이 깔끔이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자네 인도 출장 좀 다녀와야겠네.요즈음 그 곳에서 우리 회사 자동차
판매량이 자꾸 떨어지고 있다는데,도대체 그 이유가 뭔지 조사 좀 해오
게!˝
˝네,알겠습니다.˝
깔끔이아저씨는 큰소리로 인사를 하였습니다.사장님이 자기를 믿고 커
다란 책임을 맡겼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어깨가 으쓱거렸거든요.
며칠 후,깔끔이아저씨는 가방 속에 갈아입을 깨끗한 옷이랑 손수건,
양말을 준비해서는 설레이는 마음으로 비행기를 탔습니다.
그런데 막상 인도의 공항에 도착한 깔끔이아저씨는 눈이 휘둥그레졌
습니다.얼굴이 까맣고 바짝 마른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서는 깔끔이아
저씨의 옷을 서로 잡아끌며 짐을 들어주겠다고 아우성치는 게 아니어
요? 그 뿐 아니라 쬐그만 아이들도 까마귀같은 손을 내밀며 돈을 달라
고 아우성이었습니다.그 바람에 깔끔이아저씨의 은회색 양복에 더러운
손때가 묻고 말았답니다.
˝에잇,저리 비키지 못해!˝
깔끔이아저씨는 간신히 마중나온 차에 오르며 짜증을 냈습니다.하지만
길거리라고 별다를 게 없었습니다.여기저기서 웅크린 채 새우잠을 자는
사람들이며,간신히 거적대기만 덮은 집들,모든 것이 방금 전쟁을 치루고
난 도시처럼 엉성하고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정말 너무하군,너무해! 이렇게 지저분한 곳으로 날 보내다니!˝
깔끔이아저씨는 혀를 끌끌차며 호텔로 향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깔끔이아저씨는 더러운게 묻을 까봐 몸을 잔뜩 움츠린
채 거리로 나섰습니다.그런데 어쩌면 좋아요? 파리떼처럼 달라붙어 구
걸을 해대는 아이들을 피하려다가 물컹하고 소똥을 밟았으니 말입니다.
˝젠장,새구두에 이렇게 더러운 소똥을 묻혔으니…….˝
반들반들한 구두밑창에 누우런 소똥이 철거덕 달라 붙어있는 걸 본
깔끔이아저씨는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그러자 구걸을 하던
아이들이 와르르 웃어대는 게 아니어요?
˝이 녀석들,저리가지 못해!˝
깔끔이아저씨는 소리를 버럭 지르고는 길바닥에다 구두밑창에 달라붙
은 소똥을 문질러댔습니다.하지만 구두는 이미 더러워지고 만 뒤였지
요.화가 난 깔끔이아저씨는 지나가는 인력거를 불러 세워서는 약속장소
로 가자고 하였습니다.
하지만,인력거를 탄 깔끔이아저씨의 얼굴은 여전히 구겨진 휴자처럼
펴지지 않았습니다.코끼리처럼 여기저기 갈라터진 맨발로 달려가는 인
력거꾼의 모습이며,홑바지를 내린 채 아무데서나 쭈그리고 앉아 볼 일
을 보는 사람들,한결같이 못마땅한 풍경이었으니까요.
˝정말,더러운 나라야,
깔끔이아저씨는 그저 어서 빨리 깨끗한 호텔로 돌아가고만 싶었습니
다.온 몸으로 스물스물 나쁜 병균이 기어다니는 것만 같았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깔끔이아저씨는 뉴델리에서 서너시간 가야만 하는 작
은 도시로 일을 하러 가야만 했습니다.회사에서는 낡은 자가용과 운전
수,라쟈니를 딸려 보내주었습니다.
˝이건 완전히 고물차로구먼!˝
깔끔이아저씨는 말을 탄 듯 덜컹덜컹거리는 자동차 뒷자석에 앉아서
먼 길을 달려갔습니다.시골로 갈수록 길은 점점 더 푹푹 패어서 이건
자동차가 아니라 망아지를 탄 느낌이었습니다.게다가 후덥지근한 날씨
에 에어콘도 고장난 자동차를 타고 가려니 숨이 턱턱 막혔습니다.
그런데,어느 만큼 왔을까요,그나마 그릉그릉 앓는 소리를 내며 달리던
자동차가 갑자기 탁 멈춰서는 게 아니어요?
˝아니,라쟈니! 왜 그래?˝
˝기름이 떨어졌어요.˝
˝뭐야,먼 길을 오면서 기름도 안넣어왔단 말이야?˝
깔끔이아저씨는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그러나 운전사인 라쟈니는 여
전히 굼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화내지 마세요,아까 지나온 마을에 가서 기름을 사오면 되니까요!˝
˝뭐라고? 오늘 안에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그렇게 먼 길을 되돌아 갔
다 온단 말이야? 내 원 참! 빨리 빨리 갔다 와!˝
깔끔이아저씨는 기름통을 들고 소풍가듯 천천히 걸어가는 라쟈니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를 질렀습니다.정말이지 생각할수록 화가 나고 짜증
이 났습니다.모든 것이 뒤죽박죽인 기분이었습니다.

한낮이 되자 햇빛은 점점 더 뜨거워졌습니다.자동차 속은 마치 찜통처
럼 푹푹 쪘습니다.하지만 더위보다 더 큰 일이 생겼습니다.인도에 와서
낯선 음식과 물을 갈아먹은 탓인지,아까부터 자꾸만 뱃속이 꾸륵꾸륵
하더니만 설사가 터져 나오려는 게 아니어요?
´이걸 어쩐담!´
깔끔이아저씨는 궁둥이를 오리처럼 둥기적거리며 어떻게든 참아보려
고 애를 썼습니다.그러나 참으려고 하면 할수록 배는 더 뒤틀리고 이마
에서는 진땀이 바작바작 났습니다.이젠 숨만 크게 내쉬어도 뒤에서 설
사가 터져나올 것만 같았습니다.그렇게 되면 속옷도 바지도 모두 엉멍
진창이 될 게 뻔했습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깔끔이아저씨는 배를 움켜쥔 채 간신히 길 옆 밀밭으로 기어 들어갔
습니다.그리곤 푸른 밀밭 사이를 헤치고 들어가서는 바지를 내리고 볼
일을 보기 시작하였습니다.그렇게도 흉을 보던 인도사람들처럼 허연 엉
덩이를 다 내놓은 채 말이지요.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풋풋한 밀냄새와 엉덩이 사이로 스치
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똥을 누던 깔금이아저씨는 갑자기 어린시절
로 되돌아간 듯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뿌직 뿌지직!˝
깔끔이아저씨는 그렇게 향긋한 흙냄새,밀냄새를 맡으며 오래오래 똥을
눴습니다.마치 동무들과 놀던 그 시절로 돌아간 듯 그렇게.

˝휴유,이제 살았다!˝
몸과 마음이 날아갈 듯 후련해진 깔끔이아저씨는 슬금슬금 마을 쪽으
로 다가갔습니다.어쩐지 그곳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궁금했기 때문이었
지요.지붕도 없는 흙벽돌집에서 사람들은 마당에서 뭔가를 끓여먹으려
는 듯 불을 지피고 있는 모습도 보였습니다.한 쪽에는 땔감으로 쓸 소
똥을 수북이 쌓여있는 데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마을을 돌아다니던 깔끔이아저씨는 그들의 궁
색하고 초라한 모습에 마치 무얼 먹고 체한 것처럼 명치끝이 답답해왔
습니다.
그런데 그 때였습니다.
˝아니!˝
무심코 어느 집 마당을 들여다 보던 깔끔이아저씨는 자기도 모르게
주춤하고 멈춰 섰습니다.
분홍사리를 걸친 조그만 여자 아이 하나가 우물가에서 자기 몸보다
몇 배나 더 큰 낙타의 몸을 닦아주고 있는 게 아니어요? 온 몸에 덕지
덕지 더러운 오물이 잔뜩 묻은 낙타를.낙타는 마치 말 잘듣는 어린아이
처럼 눈만 꿈뻑꿈뻑거리며 아이에게 몸을 내맡기고 있었습니다.
깔끔이아저씨는 자기도 모르게 그 옆으로 다가갔습니다.
˝아저씨,안녕!˝
아이가 먼저 낙타 다리 사이로 얼굴을 내밀며 방긋 웃었습니다.
˝얘야,그 더러운 낙타를 왜 닦아주는 게냐?˝
˝더럽다니요? 낙타는 저희 식구인걸요.하루종일 우리 집을 위해서 무
거운 짐을 져나르느라 힘들었으니까 이젠 편히 쉬게 해줘야지요.˝
아이는 자기 몸보다 더 굵은 낙타 다리를 닦아주며 말했습니다.
˝……더럽지 않니?˝
˝더럽긴요.아빠가 그러는데 제일 더러운 건 사람의 마음이랬어요.그래
서 보이지 않는 마음을 닦는 일을 게을리 하면 안된댔어요.저기 보세
요! 아빤 지금 더러운 마음을 닦고 계시잖아요!˝
아이는 손가락으로 나무 밑을 가리켰습니다.
깔끔이아저씨는 아이가 가리킨 쪽을 바라보았습니다.거기에는 낡고 때
묻은 사리를 걸친 깡마른 한 남자가 지긋이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보
였습니다.반듯한 책상다리를 한 채로.
깔금이아저씨는 우두커니 그 남자를 바라보았습니다.
이상하게도,비록 낡은 옷을 걸치고 더러운 맨발을 하고 있었지만 그
남자의 얼굴에서는 마치 임금님같은 우아함과 고귀함이 풍겨왔습니다.
문득 겉차림만 깨끗하고 요란한 자기가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
그렇게 한참동안 남자를 바라보던 깔끔이아저씨는 자기도 모르게 슬
그머니 아이 옆으로 다가갔습니다.
˝얘야,아저씨가 도와주련?˝
˝네에? 아저씨가요……? 에이,안돼요!˝
아이는 말도 안된다는 듯 방싯 웃었습니다.
˝이리 줘!˝
깔끔이아저씨는 아이의 손에 든 젖은 수건을 빼앗아서는 낙타의 몸을
닦기 시작하였습니다.아이의 손이 잘 닿지않던 낙타의 등어리며,말라붙
은 똥이 덕지덕지 묻은 엉덩이까지.그 바람에 입고있던 양복에 구정물
이 튀고,구두며 양말까지 흠뻑 젖고 말았습니다.
˝아저씨,구두랑 양말이 다 젖었어요.이제 그 수건 이리 주세요!˝
˝괜찮아! 이까짓 거 다 벗어버리면 되지 뭐!˝
깔끔이아저씨는 신었던 구두랑 양말을 휙 벗었습니다.그리곤 아이와
힘을 합해 낙타의 몸을 깨끗이 닦아주었습니다.더럽던 낙타의 몸이 점
점 깨끗해질수록 자기의 마음이 점점 깨끗해지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아저씨,우리 낙타가 고맙다고 웃어요!이것보세요!˝
아이는 말갛게 세수 한 듯한 낙타의 얼굴을 보여주었습니다.
˝허허,그 녀석 참 잘생겼다!˝
깔끔이아저씨는 낙타의 순한 눈망울을 보며 빙그레 웃었습니다.

그 때 기름을 사온 라쟈니가 ´빵빵´ 크락숀을 울려대며 깔끔이아저씨
에게 어서 오라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얘야,아저씨 그만 간다! 잘있거라,낙타야,너도!˝
깨끗하게 낙타의 몸을 닦아준 깔끔이아저씨는 구두랑 양말을 손에 든
채,맨발로 길을 걸었습니다.부드러운 흙의 느낌이 발바닥에 닿자 어쩐지
기분이 줗았습니다.물론 더럽다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들지 않았지요.
˝아저씨,안녕!˝
맨발로 걸어가는 깔끔이아저씨의 등 뒤에서 아이가 오래오래 손을 흔
들었습니다.분홍 사리가 한 송이 꽃처럼 작아질 때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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