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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밤마다 소꿉장난하는 두 병사

창작동화 이동렬............... 조회 수 1641 추천 수 0 2005.02.21 21:44:12
.........
해가 지자 산골짜기 덤불마다 꼭꼭 숨어 낮잠을 자고 있던 어둠이 스멀스멀 기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둠은 서로 손끝을 잡고 히히거리며 낮은 골짜기부터 검은 치맛자락으로 덮기 시작하더니 이내 산기슭이며 등성이까지 순식간에 몽땅 휩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검은 하늘에는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개구쟁이의 눈빛 같은 별빛이 하나둘 솟아났습니다. 하늘은 금새 유월의 꽃밭처럼 별꽃들로 가득했습니다.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난 산자락 같은 밤하늘입니다.
그 하늘 밑 산자락에는 오두막집이 한 채 있었습니다. 산에 사는 띠로 지붕을 별만 안 보일 정도로 가린 다 찌그러져 스러져가는 초가집이었습니다.
그 집에는 초가집처럼 아주 늙은 노인이 한 명 살았습니다. 산을 의지하며 평생 동안 약초를 캐며 이 산자락에서만 살아온 노인은 아무렇게나 자리에 누웠습니다. 누워서 바라보이는 문틈 새로 장난꾸러기 아기별이 막내아들처럼 눈을 깜박이며 방으로 들어오고 싶어합니다.
´모두들 어디 가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오늘따라 집을 떠난 식구들이 더 보고싶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오십 년 전 전투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큰아들 생각이 더 나 쉽사리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자, 오늘도 시작해 볼까?˝
엠원(M1) 총을 멘 군인이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그러지. 그런데 우리도 참 어지간하군. 이 소꿉장난을 여기서만 오십 년이나 했는데도 질리지 않고 계속하니 말이야.˝
이번에는 따발총을 멘 군사가 대꾸하며 조팝나무 꽃처럼 잔잔하게 웃었습니다.
˝오십 년이라면 길기는 긴 세월이지만 이렇게 마음이 맞아 재미있게 하는데 뭐. 나는 소꿉놀이가 너무 재미있어서 그런지 오십 년 세월도 한 오 년밖에 안 되는 것 같은데 뭐.˝
두 병사는 어린아이 같은 웃음을 입가에 흘리면서 약속이나 한 것처럼 엠원총과 따발총을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치고는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정답고 꾸밈이 없던지 꼭 한 고향 마을 친구 사이처럼 보였습니다.
˝오늘은 내가 누구 역할을 할까?˝
˝너는 우리 여동생 역할을 하고 내가 오빠 역할을 하기로 하지.˝
엠원 총을 메었던 병사는 아직 소년 티가 나는 얼굴에 눈웃음까지 지어
보이면서 한쪽 어깨를 으쓱해 보였습니다.
˝그럼, 그러지. 어서 시작하자고.˝
˝좋았어.˝
두 병사는 이 산 중턱에 한 오십여 년 같이 살면서 몇 십 번이고 주고받은 두 집안 이야기라 그런지 말만 꺼내면 서로 자기 추억처럼 척척 알아 듣고 기억해내 손발을 맞췄습니다.
˝오빠! 나도 오빠가 하고 있는 것 같은 도라지꽃으로 목걸이 만들어 줘, 응?˝
따발총을 메었던 병사는 콧소리를 섞어 어린아이 목소리를 내며 오빠를 졸라댔습니다.
˝도라지꽃 목걸이를? 우리 남매가 똑같은 도라지꽃 목걸이를 걸고 있으면 보기가 안 좋을 텐데. 내가 너에게 도라지꽃 목걸이보다도 더 멋진 목걸이를 만들어 줄게.˝
엠원 총을 메었던 병사는 목을 일부러 누르며 더욱 어른스런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정말? 그게 무슨 목걸이인데?˝
˝정말이지 않고. 내가 이 엠원 총알로 인디안 추장 목걸이를 만들어 줄게. 그리고 이 박격포 포탄으로는 네 방에 놓을 멋진 꽃병도 만들어 줄게. 네가 좋아하는 도라지꽃이라든가 쑥부쟁이, 들국화 등을 철따라 꺾어다가 꽂아놓을 수 있도록 말이야.˝
˝아이 좋아라! 야, 우리 오빠가 최고다!˝
소녀역을 맡은 병사는 오빠의 선심에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 바람에 놀란 나뭇잎들이 파르르 떨었습니다.
˝얘얘, 꽃분아. 너도 이제 조금 있으면 곧 숙녀가 될 테니까 내가 이 총알 껍데기에 입술을 아름답게 꾸미는 연지를 만들어 넣어 줄까? 후후후......˝
오빠역을 맡은 병사는 총알 껍데기를 아랫입술 밑에 대고 불어 휘파람 같은 소리를 내면서 말했습니다.
˝입술에 바르는 연지를? 호호호, 그거 바르면 아버지와 어머니한테 혼나지 않을까?˝
소녀역을 맡은 병사도 연지라는 말에 호기심이 이는지 얼굴을 붉히면서 물봉선화처럼 가볍게 웃었습니다.
˝그런데, 오빠! 이 산 속에서 연지를 뭘로 만들어? 공장도 없는데.....?˝
˝이 곳에 연지 공장은 없지만 내가 환상적인 연지를 만들어 줄게.˝
˝환상적인 연지? 그게 어떤 것인데?˝
소녀역을 맡은 병사는 눈을 깜빡거리면서 흥분한 목소리로 물으며 오빠를 쳐다보았습니다.
˝그걸 뭘로 만드느냐 하면, 이 산골짜기에 피어 있는 물봉선화 꽃잎을 찧어 저 하늘의 아기별이 흘린 눈물인 이슬로 반죽을 하고 산도라지꽃 향기와 참나리꽃 향기, 그리고 파란 솔잎 사이를 지난 맑은 바람을 섞어 이 엠원 총알 탄피에다가 넣는 거야. 그러면 백화점에서 파는 것보다 몇 배나 좋은 연지가 되지. 하하하......˝
오빠역을 맡은 병사는 박격포탄과 엠원 총알 탄피를 매만지면서 속삭이듯한 목소로 말했습니다. 그러자 소녀역을 맡은 병사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주 기뻐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두 병사는 밤이슬이 내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릴 때로 돌아가 달이 서산에 얹힐 때까지 소꿉놀이를 계속하였습니다. 코끝을 스치는 공기가 더 차가워졌고, 별빛도 더 선명해졌습니다.
˝꼬끼오! 꼬끼오!˝
그때 아랫마을에서 수탉이 새날을 알렸습니다.
˝벌써 닭이 우나! 아쉽지만 오늘 소꿉놀이는 여기서 끝내야겠군 그래.˝
˝그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오늘 하다가 못다 한 것은 내일 해야겠군 그래.˝
첫닭 우는 소리가 들리자 두 병사는 미리 약속이나 했던 것처럼 하던 동작을 중단하고 땅 속 집으로 돌아가 쥐죽은 듯이 입을 다문 채 나란히 누웠습니다.

약초를 캐는 산 노인은 아침 일찍 산을 오르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무슨 꿈이 이리 생생할까? 참 이상하다. 두 사람이 소꿉장난을 하던 왕소나무가 서 있는 데는 내가 우리 집 안마당같이 매대기를 치고 다닌 곳인데...... 산신령님이 내게 산삼이라도 점지해 주시려는 것인가?˝
산노인은 잠을 털고 일어나 앉아서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왕소나무가 서 있는 산등성이를 떠올리며 고개를 가볍게 흔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벽에 걸어 두었던 주루목을 걸머메고 아직 이슬이 종아리에 훑히는 산길을 부리나케 올랐습니다. 꿈에 생생히 나타났던 왕소나무가 서 있는 곳에 가서 산삼을 찾으며 나무와 풀포기 사이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산삼은 눈에 띄지 않고 별 모양의 보라색 족두리인 양 줄기 끝에 꽃을 쓴 산도라지만이 살랑바람에 회똑회똑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산삼이 도라지로 변하지는 않았겠지.˝
산노인은 실망한 표정으로 산삼 캐는 뾰족한 괭이를 주루목에서 꺼내 산도라지를 캐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동안 흙을 파헤치니 괭이 끝에 쇠붙이가 부딪는 느낌이 전해졌습니다.
´.......?´
노인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쇠붙이 부딪는 소리가 난 곳을 더 파들어 갔습니다.
˝아니, 이건 뭐야? 바라는 산삼 뿌리는 어디 가고 다 썩어 녹슨 따발총 아냐! 어어, 이건 엠원 총 개머리판이고! 그거 참, 이상하다? 한 구덩이서 국방군과 인민군의 유물이 나오다니..... 둘이 백병전이라도 벌이다가 함께 죽었나?˝
산노인은 녹이 슬을 대로 슬은 쇠붙이 두 개를 들고 견주어 보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아침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새털구름 사이로 언뜻 큰아들 얼굴이 얼비쳤다가는 이내 사라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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