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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오아후 섬의 중심 호놀룰루 해안인 와이키키 해수욕장은 듣던 대로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나는 미국 본토 캘리포니아에서 배로 실어다 폈다는 금빛 모래밭을 맨발로 걸으며 주위를 돌아다보았지요. 초승달 모양으로 긴 해수욕장 뒤로는 도시의 한자락이 맞닿아 있고, 그 뒤 언덕에는 수많은 별장과 호텔이 예쁜 달력 그림에 나오는 집들처럼 늘어서 있었습니다.
해수욕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수영과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또 가까운 바다에서는 수상 스키와 파도를 이용하여 서핀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보트를 타고 신나게 달리는 해상 구조 요원 아저씨들도 보였답니다.
그런데 온 나라가 이렇게 어려운 시대에 왜 눈총 받는 외국 관광지 타령이냐구요?
그렇긴 한데, 이럴 때 제가 외국 여행을 한 것도 다 사연이 있어서랍니다.
저도 한국인이고 애국자라고 자부하는데 말이어요.
네? 그럼, 그 사연이 뭐냐구요?
그렇게 궁금하다면 그 사연을 쬐끔만 들려 줄게요. 제 친척 할아버지 한 분이 하와이에 사신답니다.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께서 옛날에 하와이 섬 사탕수수 목장으로 일을 하러 갔다가 거기서 눌러 사시게 되었대요. 그런데 그 할아버지의 자손들이 한국에 오실 때는 우리 집에 머무르기 때문에 그 보답으로 우리 네 식구를 초청한거예요. 비행기표까지 다 끊어 보내면서 말이어요.
˝오빠, 우리 수영하자. 다혜야, 너도 같이 하자.˝
친척 동생인 수지가 웃옷을 벗어 자기 엄마에게 맡기면서 말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얼른 대답을 못하고 아빠와 엄마를 쳐다보며 눈치를 살폈습니다.
˝다빈이 오빠, 수영 잘 못해? 수영 못하면 내가 가르쳐 줄게.˝
이번에는 수지 동생인 수잔나가 박속 같은 하얀 이를 내놓고 말하면서 윗몸을 가볍게 흔들어댔습니다.
´아니, 사람을 이렇게 무시하다니! 이건 마치 하와이 사람만 수영할 줄
안다는 태도잖아. 그래 나는 수영은 못하지만 멱감는 것은 학교 대표쯤
된다, 왜?´
나는 은근히 무시당한 것 같아 속으로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수영 실력을 보여 주기 위해 웃옷 단추를 풀며 다시 아빠를 쳐다보았습니다. 아빠는 내 수영 실력을 인정하시거든요. 그랬더니 아빠는 내 속마음을 짐작하셨는지 빙그레 웃으면서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셨습니다.
˝내 수영 실력을 보여 주지. 수지, 수잔나, 너희들 수영 실력이 얼마나 되는지 어디 시합해 보자.˝
나는 바닷물 속으로 달려가면서 크게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수지와 수잔나, 그리고 다혜도 옷을 벗고 수영복 차림으로 나를 향해 달려 오며 뭐라고 소리소리 질러댔스비다. 백사장을 힐끗 쳐다보니 나머지 식구들은 우리들의 옷을 든 채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쏴아, 쏴아, 처르르르......˝
꽤 큰 파도가 하얀 블라우스 소매 끝에 달린 레스 같은 화려한 물거품을 일으키며 달려와 장난스럽게 우리 몸뚱이를 적셨습니다.
˝와아!˝
˝어머낫!˝
수지와 다혜는 깜짝깜짝 놀라며 비명을 질러댔습니다. 장난꾸러기 파도는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던지 일정한 시간을 주기로 연거푸 하얀 레스 자락을 휘두르며 달려와 우리 몸을 감싸안곤 하였지요.
˝수지야, 너는 내가 수영을 못하는 줄 알았지? 아마 네가 내 수영 실력을 보면 무척 놀랄 걸. 어디 그럼.........˝
나는 은근히 무시당한 내 수영 실력을 뽐내기 위해 바다 가운데를 향하여 자유형으로 물을 헤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나에게 크고 작은 파도 너울이 정면으로 덮쳐올 때는 힘들었지만 자꾸 바닷물을 헤쳐나갔답니다.
아아, 그런데 이를 어찌하면 좋지요!
생각지도 못한 크고 높은 파도 너울이 나를 덮쳐 한입에 집어삼키고는 좀체로 뱉지를 않는 거예요. 나는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며 어른들이 있는 백사장을 바라봤지만 헛일이었습니다. 어른들은 자기들 얘기에만 열중인 모습이었어요. 그리고 저만치 뒤처진 아이들은 내가 장난을 치는 줄 알고 좋아하며 박수를 보내고 있지 뭐예요,글쎄.
나는 파도의 턱을 꽉 붙잡고 안 잡혀 먹히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이내 지쳐 그 큰 목구멍 너머로 빨려들고 말았답니다.
<2>
˝어서 오십시오. 저희 태평양 용궁을 찾아 주신 것을 환영합니다. 지금부터는 제가 편히 모시겠으니 아무 염려 마시고 제 등에 올라타십시오.˝
어디서 왔는지 아주 큰 거북이 한 마리가 넓은 등을 내 앞에 내밀며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일까? 우리 나라의 고전인 <별주부전>에서는 자라가 토끼를 태우고 용궁을 가더니, 나는 거북이가 태워 가겠다고?´
˝나를 용궁으로 데려가겠다고? 나를 용왕 앞으로 데려가서 내 간을 빼먹겠다고?˝
나는 순간적으로 놀라 몹시 불쾌한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그렇게 놀라고 겁먹을 것 없습니다. 우리는 다른 동물들이나 인간들을
절대로 죽이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다만 인간들이 지어 준 우리의 용궁이자 놀이터를 구경시켜 드리고 싶어서일 뿐입니다.˝
거북이는 몹시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송구스러워했습니다.
˝인간이 너희들의 궁전을 지어 주다니......? 아무리 인간의 건설 기술이 발전하였다기로서니 용궁을 지어 주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구나.˝
나는 거기서부터 별주부전 내용과 다름을 얼른 알아채고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물었습니다. 거북이의 얘기가 전래 동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라 아무리 생각을 짜내 봐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거든요.
˝가서 보시면 압니다. 여기서 길게 설명을 드리는 것보다 직접 눈으로 보고 설명을 들으셔야 이해가 빠르실겁니다. 그러니 아무 걱정 마시고 어서 타시지요.˝
˝그래? 그런데 내가 물 속을 어떻게 갈 수 있단 말이냐?˝
나는 물 속에 살아 있는 게 나 스스로도 신기하게 여겨져 혼자말처럼 중얼거렸습니다.
˝당신의 영혼은 저를 만나는 순간에 이미 인간의 거추장스런 껍질인 몸뚱이를 빠져나왔기 때문에 우리 물고기들과 똑같은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거북이인 저와 말도 주고 받는거지요.˝
˝그런가? 그건 그렇다치고 자네네 나라 용왕님은 어떻게 생겼는가?˝
나는 별주부전에 나오는 용왕을 연상하면서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거북이의 대답은 아주 뜻밖이었습니다.
˝실은 제가 요번 주에는 용왕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가 제 당번 차례이거든요.˝
˝아니, 뭐라고......요! 용왕도 청소 당번하듯 돌아가면서 한단 말인
가....요?˝
나는 거북이가 나를 놀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뒤틀릴 대로 뒤틀렸습니다. 그래서 화난 목소리로 크게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정말로 거북이의 말대로 거북이가 진짜 용왕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 끝을 어정쩡한 존대말로 바꾸었습니다.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다음주부터는 바다가제가 용왕을 할 당번 차례인데요.˝
˝바다가제 차례라....... 하긴 당신 말이 참말이라면 바다가제라고 용왕의 권력을 못 누릴 이유가 없지요.˝
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거북이 얘기에 빠져들면서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우리가 용왕을 당번처럼 돌아가면서 맡는 것은 용왕에게 주어지는 권력을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랍니다. 우리......˝
˝그러면요?˝
나는 거북이의 얘기 중간에 끼어들어 우선 궁금한 것부터 물었습니다.
˝우리는 권력을 누리려고 용왕 노릇을 하는 게 아니라 왕 자리에 앉아 일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가를 몸소 경험하기 위해서지요. 그래야 공연한 불평을 하지않고 용왕에 뽑힌 물고기에게 내일처럼 협조를 잘하지요. 그게 우리 용궁을 더 빛내고 발전시키는 일이거든요.˝
나는 거북이의 말뜻을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묻는 말마다 내 예상과 전혀 다른 대답이 나왔기 때문에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고 거북이의 등에 어물쩍 올라타고 말았습니다. 그랬더니 거북이는 생기다 만 작은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용궁을 향해 헤엄쳐가기 시작했습니다.
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마치 설악산 단풍처럼 울긋불긋한 산호초 숲을 지났습니다. 산호초 사이에는 물미역이며 다시마 같은 바닷풀들이 적당하게 어우러져 내가 상상하지 못하던 풍경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그 아름다운 바다 초원에는 생전 구경도 못하던 묘한 모양을 하고 여러 가지 색깔을 한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헤엄을 치고 있었습니다. 헤엄을 치던 물고기들은 나를 태우고 가는 자라를 보자 모두 약속이나 한 것처럼 길을 비켜 주었습니다.
자라가 용왕인 게 사실인 모양이었습니다.
한참 가니 낯익은 모양의 큰 물건이 깊은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습니다.
˝아니! 저것들은 무언가요?˝
나는 깜짝 놀라면서 자라에게 물었습니다.
˝보면 모릅니까? 사람들이 우리에게 선물한 멋진 용궁과 놀이터를요?˝
자라는 놀라는 내가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이 되물었습니다.
˝사람들이 저런 모양의 용궁과 놀이터를 선물해요!˝
나는 아무리 생각을 펼쳐봐도 거북이의 말을 잘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개만 갸우뚱거리며 주위를 휘둘러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거북이는 내 궁금증을 더하려는지 이렇다저렇다 대꾸가 없었습니다. 그래 나는 답답한 나머지 내가 또 물었습니다.
˝아니, 어떤 사람들이 군함 모양의 용궁과 비행기 모양의 물고기 놀이터를 지어 주었나요? 인간들이 체면 때문에 자선 사업을 하긴 한다고 하지만 아직 물고기들에게 이런 것을 지어 주었다는 얘기는 어느 뉴스에서도 못 들었는데요?˝
˝용궁은 미국 사람들이 지어 주었고, 놀이터는 일본 사람들이 선물했지
요.˝
거북이는 나를 군함 용궁 문앞에 내려놓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용궁으로 들어가자 용궁 안에서 일을 하던 당번 물고기들이 모두 달려와 거북이한테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해수욕객을 많이 보아와서 그런지 나에게는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고 자기 일자리로 흩어져 맡은 일에 다시 열중하기 시작했습니다.
<3>
˝일본과 미국 사람들이 이 궁전과 저 놀이터를 지어서 선물했다고 했지
요?˝
나는 아까 얘기하던 것이 궁금해서 이야기를 다시 이으려고 했습니다.
˝아참 그 얘기 하다 말았지요. 그런데 그리 놀라실 것 없습니다. 믿기지 않으시면 우리가 기록으로 남겨 놓은 테이프를 한번 보시지요.˝
용왕인 거북이는 나를 데리고 긴 복도를 지나 어떤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텔레비전 화면이 켜지게 스위치를 눌렀습니다.
그러자 편대를 지어 날아오는 비행기들의 흑백 그림이 나타났습니다.
˝우리 용궁에서는 영어로 말한 것도 방문한 사람 나라말로 다 번역하여 들려드리지요. 우리 물고기들이 사람들보다도 더 먼저 자동 시스템을 갖추었지요.˝
나는 용왕의 말을 들으면서 고개만 가볍게 끄덕였습니다. 너무 감탄을 하면 물고기들이 나를 업신여길 것 같았기 때문에서였지요.
˝비상! 비상! 일본 비행기 편대들이 진주만의 우리 군함들을 기습해 오고 있습니다. 비상! 비상! 비..........!˝
˝에이 그럴 리가 없다. 뭔가 잘 못 본 것이겠지. 일본서 여기는 굉장히 먼 거리인데....... 지금 농담하고 있는거겠지?˝
˝정말입니다! 기습해오는 일본 전투기들의 숫자는 수백 대가 될 것 같습니다. 이건 정말로 비상 사태입니다!˝
˝귀관!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는가? 오늘은 1941년 12월 7일, 즐거운 휴일이다.그것도 지금은 아침 교대 시간인 8시 몇 분 전이라 장병들은 이미 교대 준비를 다 마친 상태란 말이다. 알겠나?˝
˝그렇지만 지금 일본 비행기가.....! 비상! 비상! 비.........˝
˝꽈광! 꽝꽝 꽈르르르.......꽈광! 쾅쾅!˝
미국 경계병의 다급함과 포탄을 맞은 배가 파괴되는 소리가 울린 것은 거의 동시였습니다. 계속하여 예서제서 일본 비행기들의 폭격 소리와 미국 군함이 폭발하는 소리는 평화롭던 아침 바다를 송두리채 훌렁 뒤집어 놓았습니다. 그러고 조금 있자니가 고사포를 맞은 일본 비행기 몇 대도 검은 연기를 내뿜으면서 진주만 바다로 곤두박질치고 있었습니다. 진주만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지옥이 따로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더 이상 처참한 장면을 더 볼 수가 없어 고개를 숙이고 눈을 잠시 감았다가 떴습니다.
그새 화면이 바뀌어 바다에 가라앉은 미국 군함과 일본 비행기가 등장해 입씨름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흥, 하늘을 날아 다니는 비행기가 어울리지 않게 바다 속에는 왜 와 있니?˝
˝우리는 위대한 대일본의 비행기이기 때문에 하늘은 물론 바다 속까지도 날아다닐 수 있어 와서 쉬고 있지만 너는 왜 여기에 몇 십 년 동안씩이나 틀어박혀 있니?˝
한쪽 날개가 부서진 폭격기는 군함의 말에 지지 않고 대꾸를 했습니다.
˝아이구, 아이구! 뭐, 바다 속도 날 수가 있다구?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말리지 않을 테니까 한번 시원스레 날아 보시지.˝
˝우리는 누가 날아 보란다고 훌쩍 날고 그만 두란다고 금방 그만 두는 지조 없는 비행기가 아니라구. 군함들은 그렇게 지조가 없는가 보지. 흥!˝
비행기는 군함의 비아냥거림을 묘하게 되받아쳤습니다.
˝너희는 하늘을 맘대로 날아다닌다고 우쭐대지만 우리들의 밥이라고. 우리 눈에 띄었다하면 포 한 방에 너처럼 바다에 떨어지고 만다고. 그래서 물고기들의 놀이터 신세나 되고 만다구. 알았어, 이 멍청아?˝
˝너희는 어떻구. 바다의 주인이니 뭐니 하면서 으스대지만 우리들의 폭격에 꼼짝 못하고 물 속에 가라앉고 말았잖아?˝
˝바닷물 위에 뜨던 배가 물 속에 와서 좀 쉬는 게 어때서? 너는 잠수함
소리도 못들었니? 나는 그 잠수함배라고.˝
˝뭐! 잠수함배? 너같이 생긴 잠수함은 세상 천지 어디에도 없다. 뚫린 입이라고 펑펑 헛방을 쏘아대던 너희들의 대공포처럼 헛소리는 잘하는구나. 나도 하늘에 떠 있기가 너무 지겨워 시원한 파도에 샤워를 하면서 산호초들의 춤과 물고기들의 재롱을 즐기려고 했기 때문에 이리로 왔지. 왜 뭐가 잘못 됐니?˝
비행기도 군함한테 지지 않았습니다.
일본 비행기와 미국 군함이 다투는 것을 보고 용왕은 나에게 피식 웃었습니다. 나도 군함과 비행기의 말이 언뜻 듣기에도 엉터리 같아 소리없이 웃었습니다.
˝그렇게 물 속에서 쉬고 싶으면 너희 섬나라 근처 바다에서 쉬지 않고 뭣하러 여기까지 멀리 와서 쉬니?˝
˝이 바다도 우리 일본 바다에 닿아 있으니까 우리 바다나 마찬가지기 때문이지.˝
˝세상에 그런 엉터리 같은 말이 어디 있니? 이 바다는 엄연히 미국 영토인데........˝
비행기와 군함의 말싸움은 끝이 없었습니다.
<4>
그때 바다뱀장어와 문어가 다가와서 말 새에 끼어들었습니다.
˝이제 그만들 하세요. 만날 자고나면 말다툼하는 똑같은 소리에 신물이
나요.아무리 두 분이 떠들어도 다 지나간 일일뿐이어요. 이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고철 덩어리가 되어 바다 속에 가라앉은 신세잖아요.˝
˝지금부터는 다투지 말고 서로 사이좋게 지내세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들이 혼내 줄 거예요.˝
˝뭐! 뭐라고!˝
˝이제는 우리를 너희들까지 깔보다니! 너희들은 내가 쏘는 포탄 한 발이면 수만 마리도 더 죽어. 알았냐?˝
비행기와 군함은 분한지 온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아저씨를 깔보는 게 아니고 포탄 터트리는 공이치기에다 제가 어제 알을 낳았어요. 만약 아저씨가 포탄을 터트리면 제가 낳은 알은 깨어나 보지도 못하고 다 죽어요.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다시 포탄을 쏘면 안 돼요. 아셨어요?˝
˝그까짓 물고기 알이 대수냐. 이 세상에서 제일 귀하다는 사람 목숨도 한 방에 수없이 빼앗았는데 말이야.˝
˝그으래요오. 그렇다면 어디 한번 쏴 보시지요. 이제는 뜻대로 안 될 걸요. 우리가 아저씨들의 포를 못 쓰게 만들어 버렸으니가요. 호호호.˝
˝뭐! 네까짓것들이 우리들의 포를 못 쓰게 만들어 버렸다구. 어떻게?˝
˝포탄 쏘는 포신 속에다 따개비랑 굴들이 잔뜩 들어가 단단하게 집을 지었지요.그래서 미안하지만 이제는 포탄이 포신에 안 들어갈 거예요.˝
˝뭐얏! 뭘 어쨌다구! 너희들 노는 모습이 하도 귀엽길래 잠시 놀이터가
돼 주었더니 아예 포탄을 못 쏘게 만들어 버렸다구? 이거 호랑이가 잇몸
에 박힌 가시를 뽑아달랬더니 송곳니를 빼낸 꼴이구먼˝
˝아저씨, 비행기 아저씨, 사람과 물고기 죽이는 포탄 대신 저희들이 다른 멋진 포탄을 쏘 게 해드릴게요.˝
문어는 몸통과 여러 개의 다리를 애교스럽게 비비꼬면서 살살거렸습니다.
˝그게 무슨 포탄인데?˝
비행기가 화난 표정을 약간 풀면서 은근하게 물었습니다.
˝웃음 폭탄, 평화 폭탄, 행복 폭탄, 희망 폭탄이요.˝
˝대체 그게 무슨 뜻이냐?˝
군함도 전혀 말뜻을 알아채지 못했는지 작은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아저씨들은 우리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요. 전혀 손해 보지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힘도 안 들구요. 그리고 포를 쏘고도 사람이나 물고기를 다치게 했거나 죽였다는 자책감을 안 느껴도 돼요.˝
˝그래?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건지 어서 쏴 보자, 어서.˝
˝나도 몹시 궁금하구나.˝
비행기와 군함은 궁금하기 이를데 없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저씨들이 진짜 포탄 대신 물고기 포탄을 쓰는 거예요. 어느 물고기가 제일 멀리 나가나 우리들을 포탄으로 쓰라고요.˝
˝뭐라고! 그럼 장난감 포가 되고 말잖아?˝
˝왜 장난감이어요? 진짜 포탄을 써서는 어느쪽도 완전한 승리를 못했지만 물고기 포탄을 쓰면 두 편이 다 승리할 수 있어요. 둘 다 진정한 승리자가 될 수 있다고요.˝
˝그게 무슨 말이냐?˝
˝글쎄, 우리와 같이 놀다 보면 다 알게 된다니까요.˝
˝.......?˝
비행기와 군함은 말뜻을 잘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물고기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자, 그럼 물고기 대포 놀이를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평화탄 일발 장진!˝
먼저 바다뱀장어가 자기 특기대로 재빨리 포신 속으로 들어가며 소리쳤습니다. 다른 물고기들은 그것을 보고 하하하 웃었습니다.
˝발사!˝
이번에는 옆에 서 있던 문어가 큰소리로 명령하듯 말했습니다.
비행기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쩔쩔매기만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바다뱀장어가 포신 속에서 꿈틀거려 간지러워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구 간지러워 더는 못 참겠다. 땅아!˝
비행기는 진짜 포탄 쏠 때처럼 공이치기를 당겼다 놓으면 바다뱀장어가
콩가루가 될 것만 같아 참았던 웃음을 터뜨리며 입으로 ´땅아!´ 소리를 아이들이 장난칠 때처럼 크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소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바다뱀장어는 온몸을 곧게 뻗고는 진짜 포탄처럼 저멀리 날아갔습니다.
˝와아! 뱀장어 포탄이 멀리 날아갔다.˝
˝야, 놀랍다!˝
물고기들은 야구 방망이처럼 날아가는 바다뱀장어를 보고 일제히 탄성을 질렀습니다.
˝이번에는 군함 아저씨가 새우탄을 한번 쏴 보세요. 우리 친구 곱사등이 좀 펴지게요.˝
쥐치가 왕새우를 군함의 포신에 밀어 넣으며 일부러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새우탄 일발 장진!˝
쥐치의 말에 군함은 장난인 줄 알면서도 진짜 포탄을 쏠 때처럼 긴장했습니다.´일 발 장진´이라는 말을 몇 십 년만에 들어 봤거든요.
˝발사!˝
˝땅! 땅!˝
이번에는 비행기까지 힘을 합쳐 소리를 내질렀습니다. 그 소리와 동시에 왕새우도 있는 힘을 다해 될 수 있는 대로 온 몸을 쪽뻗고 포신을 벗어나 날아갔습니다.
˝야아! 바다뱀장어탄보다 더 많이 날아갔다!˝
˝이번에는 웃음탄 일 발 장진!˝
상어가 멍게를 비행기에 달린 포신 속에 살짝 물어다가 넣으면서 외쳤습니다.
˝발사!˝
˝땅아!˝
비행기와 군함, 그리고 수많은 물고기들이 있는 힘을 다해 ´땅아´ 소리를 외쳤지만 멍게는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포신을 간신히 빠져나와 바로 앞에 데구르르 굴러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우하하핫!˝
˝푸하하하.....˝
멍게 포탄을 보고 비행기와 군함, 그리고 물고기들은 허리를 잡고 굴러가며 웃어댔습니다. 그 바람에 하와이섬 진주만 일대에 예상 못한 큰 파도가 일고 말았습니다.
˝내가 행복탄을 최고로 멀리 쏴 볼게.˝
˝내가 쏴야 더 멀리 날려 보낼 수 있다고. 이번에는 누가 포탄이 될래?˝
˝저요, 저요!˝
˝아이 제가 먼저 할게요. 제가 행복탄이 돼야 멀리 날아갈 수 있다고요.˝
비행기와 군함은 서로 자기가 물고기 포탄을 멀리 쏠 수 있다고 나섰습니다. 그런가하면 물고기들은 서로 먼저 포탄이 되겠다고 아우성이었습니다.
지금 이시각에도 진주만 근처에 가면 자기 포탄 차례를 기다리는 물고기들이 들끓고 있답니다.
나는 장난삼아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이내 나도 모르게 쏙 빨려들고 말았습니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던지 용왕은 내 눈치를 보며 화면 스위치를 켠 다음 천천히 말했습니다.
˝당신이 다시 인간 세상에 나가면 다른 사람들한테 꼭 전해 주십시오. 요즘 용궁에 가도 간을 빼먹지 않는다고 말이어요. 그리고 일본 비행기와
미국 군함은 바닷속 물고기들과 아주 재미있는 별난 놀이를 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아, 예 알겠습니다.˝
나는 얼결에 대답을 하고는 둘러댄 용왕의 등에 익숙한 몸짓으로 올라탔습니다. 내가 자기 등에 타자 용왕은 천천히 군함 용궁을 빠져나와 비행기 놀이터를 한 바퀴 돈 다음 와이키키 해변쪽을 향해 물살을 가르기 시작했습니다.
<5>
나는 멀리서 들려오는 것만 같은 아련한 파도 소리에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습니다.
˝다빈이가 살아났어요! 파도에 떠밀려 온 것을 인공 호흡시켰더니 이제
숨을 쉬기 시작했어요!˝
˝이제서야 정신이 드는가 보구나! 다빈아, 엄마다, 엄마!˝
˝그만하기가 천만 다행이어요. 우리 다빈이는 하늘이 낸 사람 같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물 속에 그렇게 오래 빠졌다가 다시 살아날 수가 없지.˝
˝나는 괜히 초대를 했다 싶은 게 어찌나 속이 타던지......˝
˝오빠! 우리들한테 수영 실력 자랑하려다가 그랬지?˝
식구들은 해상 구조대원 아저씨와 나를 가운데 놔두고 들여다보면서 반가움에 한마디씩 했습니다. 모두 울다 웃다 해서 눈물로 뒤범벅이 된 얼굴들이었습니다.
나는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를 몰라 얼떨떨한 기분으로 이 사람 저 사람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다가는 나를 바닷가까지 태우고 온 용왕인 거북이를 혹시 볼 수 있을까하여 파도가 장난치는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바닷물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높지 않은 파도 위로 갈매기만 몇 마리 날 뿐이었습니다. *
나는 미국 본토 캘리포니아에서 배로 실어다 폈다는 금빛 모래밭을 맨발로 걸으며 주위를 돌아다보았지요. 초승달 모양으로 긴 해수욕장 뒤로는 도시의 한자락이 맞닿아 있고, 그 뒤 언덕에는 수많은 별장과 호텔이 예쁜 달력 그림에 나오는 집들처럼 늘어서 있었습니다.
해수욕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수영과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또 가까운 바다에서는 수상 스키와 파도를 이용하여 서핀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보트를 타고 신나게 달리는 해상 구조 요원 아저씨들도 보였답니다.
그런데 온 나라가 이렇게 어려운 시대에 왜 눈총 받는 외국 관광지 타령이냐구요?
그렇긴 한데, 이럴 때 제가 외국 여행을 한 것도 다 사연이 있어서랍니다.
저도 한국인이고 애국자라고 자부하는데 말이어요.
네? 그럼, 그 사연이 뭐냐구요?
그렇게 궁금하다면 그 사연을 쬐끔만 들려 줄게요. 제 친척 할아버지 한 분이 하와이에 사신답니다.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께서 옛날에 하와이 섬 사탕수수 목장으로 일을 하러 갔다가 거기서 눌러 사시게 되었대요. 그런데 그 할아버지의 자손들이 한국에 오실 때는 우리 집에 머무르기 때문에 그 보답으로 우리 네 식구를 초청한거예요. 비행기표까지 다 끊어 보내면서 말이어요.
˝오빠, 우리 수영하자. 다혜야, 너도 같이 하자.˝
친척 동생인 수지가 웃옷을 벗어 자기 엄마에게 맡기면서 말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얼른 대답을 못하고 아빠와 엄마를 쳐다보며 눈치를 살폈습니다.
˝다빈이 오빠, 수영 잘 못해? 수영 못하면 내가 가르쳐 줄게.˝
이번에는 수지 동생인 수잔나가 박속 같은 하얀 이를 내놓고 말하면서 윗몸을 가볍게 흔들어댔습니다.
´아니, 사람을 이렇게 무시하다니! 이건 마치 하와이 사람만 수영할 줄
안다는 태도잖아. 그래 나는 수영은 못하지만 멱감는 것은 학교 대표쯤
된다, 왜?´
나는 은근히 무시당한 것 같아 속으로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수영 실력을 보여 주기 위해 웃옷 단추를 풀며 다시 아빠를 쳐다보았습니다. 아빠는 내 수영 실력을 인정하시거든요. 그랬더니 아빠는 내 속마음을 짐작하셨는지 빙그레 웃으면서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셨습니다.
˝내 수영 실력을 보여 주지. 수지, 수잔나, 너희들 수영 실력이 얼마나 되는지 어디 시합해 보자.˝
나는 바닷물 속으로 달려가면서 크게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수지와 수잔나, 그리고 다혜도 옷을 벗고 수영복 차림으로 나를 향해 달려 오며 뭐라고 소리소리 질러댔스비다. 백사장을 힐끗 쳐다보니 나머지 식구들은 우리들의 옷을 든 채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쏴아, 쏴아, 처르르르......˝
꽤 큰 파도가 하얀 블라우스 소매 끝에 달린 레스 같은 화려한 물거품을 일으키며 달려와 장난스럽게 우리 몸뚱이를 적셨습니다.
˝와아!˝
˝어머낫!˝
수지와 다혜는 깜짝깜짝 놀라며 비명을 질러댔습니다. 장난꾸러기 파도는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던지 일정한 시간을 주기로 연거푸 하얀 레스 자락을 휘두르며 달려와 우리 몸을 감싸안곤 하였지요.
˝수지야, 너는 내가 수영을 못하는 줄 알았지? 아마 네가 내 수영 실력을 보면 무척 놀랄 걸. 어디 그럼.........˝
나는 은근히 무시당한 내 수영 실력을 뽐내기 위해 바다 가운데를 향하여 자유형으로 물을 헤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나에게 크고 작은 파도 너울이 정면으로 덮쳐올 때는 힘들었지만 자꾸 바닷물을 헤쳐나갔답니다.
아아, 그런데 이를 어찌하면 좋지요!
생각지도 못한 크고 높은 파도 너울이 나를 덮쳐 한입에 집어삼키고는 좀체로 뱉지를 않는 거예요. 나는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며 어른들이 있는 백사장을 바라봤지만 헛일이었습니다. 어른들은 자기들 얘기에만 열중인 모습이었어요. 그리고 저만치 뒤처진 아이들은 내가 장난을 치는 줄 알고 좋아하며 박수를 보내고 있지 뭐예요,글쎄.
나는 파도의 턱을 꽉 붙잡고 안 잡혀 먹히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이내 지쳐 그 큰 목구멍 너머로 빨려들고 말았답니다.
<2>
˝어서 오십시오. 저희 태평양 용궁을 찾아 주신 것을 환영합니다. 지금부터는 제가 편히 모시겠으니 아무 염려 마시고 제 등에 올라타십시오.˝
어디서 왔는지 아주 큰 거북이 한 마리가 넓은 등을 내 앞에 내밀며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일까? 우리 나라의 고전인 <별주부전>에서는 자라가 토끼를 태우고 용궁을 가더니, 나는 거북이가 태워 가겠다고?´
˝나를 용궁으로 데려가겠다고? 나를 용왕 앞으로 데려가서 내 간을 빼먹겠다고?˝
나는 순간적으로 놀라 몹시 불쾌한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그렇게 놀라고 겁먹을 것 없습니다. 우리는 다른 동물들이나 인간들을
절대로 죽이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다만 인간들이 지어 준 우리의 용궁이자 놀이터를 구경시켜 드리고 싶어서일 뿐입니다.˝
거북이는 몹시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송구스러워했습니다.
˝인간이 너희들의 궁전을 지어 주다니......? 아무리 인간의 건설 기술이 발전하였다기로서니 용궁을 지어 주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구나.˝
나는 거기서부터 별주부전 내용과 다름을 얼른 알아채고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물었습니다. 거북이의 얘기가 전래 동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라 아무리 생각을 짜내 봐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거든요.
˝가서 보시면 압니다. 여기서 길게 설명을 드리는 것보다 직접 눈으로 보고 설명을 들으셔야 이해가 빠르실겁니다. 그러니 아무 걱정 마시고 어서 타시지요.˝
˝그래? 그런데 내가 물 속을 어떻게 갈 수 있단 말이냐?˝
나는 물 속에 살아 있는 게 나 스스로도 신기하게 여겨져 혼자말처럼 중얼거렸습니다.
˝당신의 영혼은 저를 만나는 순간에 이미 인간의 거추장스런 껍질인 몸뚱이를 빠져나왔기 때문에 우리 물고기들과 똑같은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거북이인 저와 말도 주고 받는거지요.˝
˝그런가? 그건 그렇다치고 자네네 나라 용왕님은 어떻게 생겼는가?˝
나는 별주부전에 나오는 용왕을 연상하면서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거북이의 대답은 아주 뜻밖이었습니다.
˝실은 제가 요번 주에는 용왕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가 제 당번 차례이거든요.˝
˝아니, 뭐라고......요! 용왕도 청소 당번하듯 돌아가면서 한단 말인
가....요?˝
나는 거북이가 나를 놀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뒤틀릴 대로 뒤틀렸습니다. 그래서 화난 목소리로 크게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정말로 거북이의 말대로 거북이가 진짜 용왕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 끝을 어정쩡한 존대말로 바꾸었습니다.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다음주부터는 바다가제가 용왕을 할 당번 차례인데요.˝
˝바다가제 차례라....... 하긴 당신 말이 참말이라면 바다가제라고 용왕의 권력을 못 누릴 이유가 없지요.˝
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거북이 얘기에 빠져들면서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우리가 용왕을 당번처럼 돌아가면서 맡는 것은 용왕에게 주어지는 권력을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랍니다. 우리......˝
˝그러면요?˝
나는 거북이의 얘기 중간에 끼어들어 우선 궁금한 것부터 물었습니다.
˝우리는 권력을 누리려고 용왕 노릇을 하는 게 아니라 왕 자리에 앉아 일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가를 몸소 경험하기 위해서지요. 그래야 공연한 불평을 하지않고 용왕에 뽑힌 물고기에게 내일처럼 협조를 잘하지요. 그게 우리 용궁을 더 빛내고 발전시키는 일이거든요.˝
나는 거북이의 말뜻을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묻는 말마다 내 예상과 전혀 다른 대답이 나왔기 때문에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고 거북이의 등에 어물쩍 올라타고 말았습니다. 그랬더니 거북이는 생기다 만 작은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용궁을 향해 헤엄쳐가기 시작했습니다.
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마치 설악산 단풍처럼 울긋불긋한 산호초 숲을 지났습니다. 산호초 사이에는 물미역이며 다시마 같은 바닷풀들이 적당하게 어우러져 내가 상상하지 못하던 풍경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그 아름다운 바다 초원에는 생전 구경도 못하던 묘한 모양을 하고 여러 가지 색깔을 한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헤엄을 치고 있었습니다. 헤엄을 치던 물고기들은 나를 태우고 가는 자라를 보자 모두 약속이나 한 것처럼 길을 비켜 주었습니다.
자라가 용왕인 게 사실인 모양이었습니다.
한참 가니 낯익은 모양의 큰 물건이 깊은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습니다.
˝아니! 저것들은 무언가요?˝
나는 깜짝 놀라면서 자라에게 물었습니다.
˝보면 모릅니까? 사람들이 우리에게 선물한 멋진 용궁과 놀이터를요?˝
자라는 놀라는 내가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이 되물었습니다.
˝사람들이 저런 모양의 용궁과 놀이터를 선물해요!˝
나는 아무리 생각을 펼쳐봐도 거북이의 말을 잘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개만 갸우뚱거리며 주위를 휘둘러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거북이는 내 궁금증을 더하려는지 이렇다저렇다 대꾸가 없었습니다. 그래 나는 답답한 나머지 내가 또 물었습니다.
˝아니, 어떤 사람들이 군함 모양의 용궁과 비행기 모양의 물고기 놀이터를 지어 주었나요? 인간들이 체면 때문에 자선 사업을 하긴 한다고 하지만 아직 물고기들에게 이런 것을 지어 주었다는 얘기는 어느 뉴스에서도 못 들었는데요?˝
˝용궁은 미국 사람들이 지어 주었고, 놀이터는 일본 사람들이 선물했지
요.˝
거북이는 나를 군함 용궁 문앞에 내려놓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용궁으로 들어가자 용궁 안에서 일을 하던 당번 물고기들이 모두 달려와 거북이한테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해수욕객을 많이 보아와서 그런지 나에게는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고 자기 일자리로 흩어져 맡은 일에 다시 열중하기 시작했습니다.
<3>
˝일본과 미국 사람들이 이 궁전과 저 놀이터를 지어서 선물했다고 했지
요?˝
나는 아까 얘기하던 것이 궁금해서 이야기를 다시 이으려고 했습니다.
˝아참 그 얘기 하다 말았지요. 그런데 그리 놀라실 것 없습니다. 믿기지 않으시면 우리가 기록으로 남겨 놓은 테이프를 한번 보시지요.˝
용왕인 거북이는 나를 데리고 긴 복도를 지나 어떤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텔레비전 화면이 켜지게 스위치를 눌렀습니다.
그러자 편대를 지어 날아오는 비행기들의 흑백 그림이 나타났습니다.
˝우리 용궁에서는 영어로 말한 것도 방문한 사람 나라말로 다 번역하여 들려드리지요. 우리 물고기들이 사람들보다도 더 먼저 자동 시스템을 갖추었지요.˝
나는 용왕의 말을 들으면서 고개만 가볍게 끄덕였습니다. 너무 감탄을 하면 물고기들이 나를 업신여길 것 같았기 때문에서였지요.
˝비상! 비상! 일본 비행기 편대들이 진주만의 우리 군함들을 기습해 오고 있습니다. 비상! 비상! 비..........!˝
˝에이 그럴 리가 없다. 뭔가 잘 못 본 것이겠지. 일본서 여기는 굉장히 먼 거리인데....... 지금 농담하고 있는거겠지?˝
˝정말입니다! 기습해오는 일본 전투기들의 숫자는 수백 대가 될 것 같습니다. 이건 정말로 비상 사태입니다!˝
˝귀관!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는가? 오늘은 1941년 12월 7일, 즐거운 휴일이다.그것도 지금은 아침 교대 시간인 8시 몇 분 전이라 장병들은 이미 교대 준비를 다 마친 상태란 말이다. 알겠나?˝
˝그렇지만 지금 일본 비행기가.....! 비상! 비상! 비.........˝
˝꽈광! 꽝꽝 꽈르르르.......꽈광! 쾅쾅!˝
미국 경계병의 다급함과 포탄을 맞은 배가 파괴되는 소리가 울린 것은 거의 동시였습니다. 계속하여 예서제서 일본 비행기들의 폭격 소리와 미국 군함이 폭발하는 소리는 평화롭던 아침 바다를 송두리채 훌렁 뒤집어 놓았습니다. 그러고 조금 있자니가 고사포를 맞은 일본 비행기 몇 대도 검은 연기를 내뿜으면서 진주만 바다로 곤두박질치고 있었습니다. 진주만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지옥이 따로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더 이상 처참한 장면을 더 볼 수가 없어 고개를 숙이고 눈을 잠시 감았다가 떴습니다.
그새 화면이 바뀌어 바다에 가라앉은 미국 군함과 일본 비행기가 등장해 입씨름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흥, 하늘을 날아 다니는 비행기가 어울리지 않게 바다 속에는 왜 와 있니?˝
˝우리는 위대한 대일본의 비행기이기 때문에 하늘은 물론 바다 속까지도 날아다닐 수 있어 와서 쉬고 있지만 너는 왜 여기에 몇 십 년 동안씩이나 틀어박혀 있니?˝
한쪽 날개가 부서진 폭격기는 군함의 말에 지지 않고 대꾸를 했습니다.
˝아이구, 아이구! 뭐, 바다 속도 날 수가 있다구?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말리지 않을 테니까 한번 시원스레 날아 보시지.˝
˝우리는 누가 날아 보란다고 훌쩍 날고 그만 두란다고 금방 그만 두는 지조 없는 비행기가 아니라구. 군함들은 그렇게 지조가 없는가 보지. 흥!˝
비행기는 군함의 비아냥거림을 묘하게 되받아쳤습니다.
˝너희는 하늘을 맘대로 날아다닌다고 우쭐대지만 우리들의 밥이라고. 우리 눈에 띄었다하면 포 한 방에 너처럼 바다에 떨어지고 만다고. 그래서 물고기들의 놀이터 신세나 되고 만다구. 알았어, 이 멍청아?˝
˝너희는 어떻구. 바다의 주인이니 뭐니 하면서 으스대지만 우리들의 폭격에 꼼짝 못하고 물 속에 가라앉고 말았잖아?˝
˝바닷물 위에 뜨던 배가 물 속에 와서 좀 쉬는 게 어때서? 너는 잠수함
소리도 못들었니? 나는 그 잠수함배라고.˝
˝뭐! 잠수함배? 너같이 생긴 잠수함은 세상 천지 어디에도 없다. 뚫린 입이라고 펑펑 헛방을 쏘아대던 너희들의 대공포처럼 헛소리는 잘하는구나. 나도 하늘에 떠 있기가 너무 지겨워 시원한 파도에 샤워를 하면서 산호초들의 춤과 물고기들의 재롱을 즐기려고 했기 때문에 이리로 왔지. 왜 뭐가 잘못 됐니?˝
비행기도 군함한테 지지 않았습니다.
일본 비행기와 미국 군함이 다투는 것을 보고 용왕은 나에게 피식 웃었습니다. 나도 군함과 비행기의 말이 언뜻 듣기에도 엉터리 같아 소리없이 웃었습니다.
˝그렇게 물 속에서 쉬고 싶으면 너희 섬나라 근처 바다에서 쉬지 않고 뭣하러 여기까지 멀리 와서 쉬니?˝
˝이 바다도 우리 일본 바다에 닿아 있으니까 우리 바다나 마찬가지기 때문이지.˝
˝세상에 그런 엉터리 같은 말이 어디 있니? 이 바다는 엄연히 미국 영토인데........˝
비행기와 군함의 말싸움은 끝이 없었습니다.
<4>
그때 바다뱀장어와 문어가 다가와서 말 새에 끼어들었습니다.
˝이제 그만들 하세요. 만날 자고나면 말다툼하는 똑같은 소리에 신물이
나요.아무리 두 분이 떠들어도 다 지나간 일일뿐이어요. 이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고철 덩어리가 되어 바다 속에 가라앉은 신세잖아요.˝
˝지금부터는 다투지 말고 서로 사이좋게 지내세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들이 혼내 줄 거예요.˝
˝뭐! 뭐라고!˝
˝이제는 우리를 너희들까지 깔보다니! 너희들은 내가 쏘는 포탄 한 발이면 수만 마리도 더 죽어. 알았냐?˝
비행기와 군함은 분한지 온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아저씨를 깔보는 게 아니고 포탄 터트리는 공이치기에다 제가 어제 알을 낳았어요. 만약 아저씨가 포탄을 터트리면 제가 낳은 알은 깨어나 보지도 못하고 다 죽어요.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다시 포탄을 쏘면 안 돼요. 아셨어요?˝
˝그까짓 물고기 알이 대수냐. 이 세상에서 제일 귀하다는 사람 목숨도 한 방에 수없이 빼앗았는데 말이야.˝
˝그으래요오. 그렇다면 어디 한번 쏴 보시지요. 이제는 뜻대로 안 될 걸요. 우리가 아저씨들의 포를 못 쓰게 만들어 버렸으니가요. 호호호.˝
˝뭐! 네까짓것들이 우리들의 포를 못 쓰게 만들어 버렸다구. 어떻게?˝
˝포탄 쏘는 포신 속에다 따개비랑 굴들이 잔뜩 들어가 단단하게 집을 지었지요.그래서 미안하지만 이제는 포탄이 포신에 안 들어갈 거예요.˝
˝뭐얏! 뭘 어쨌다구! 너희들 노는 모습이 하도 귀엽길래 잠시 놀이터가
돼 주었더니 아예 포탄을 못 쏘게 만들어 버렸다구? 이거 호랑이가 잇몸
에 박힌 가시를 뽑아달랬더니 송곳니를 빼낸 꼴이구먼˝
˝아저씨, 비행기 아저씨, 사람과 물고기 죽이는 포탄 대신 저희들이 다른 멋진 포탄을 쏘 게 해드릴게요.˝
문어는 몸통과 여러 개의 다리를 애교스럽게 비비꼬면서 살살거렸습니다.
˝그게 무슨 포탄인데?˝
비행기가 화난 표정을 약간 풀면서 은근하게 물었습니다.
˝웃음 폭탄, 평화 폭탄, 행복 폭탄, 희망 폭탄이요.˝
˝대체 그게 무슨 뜻이냐?˝
군함도 전혀 말뜻을 알아채지 못했는지 작은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아저씨들은 우리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요. 전혀 손해 보지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힘도 안 들구요. 그리고 포를 쏘고도 사람이나 물고기를 다치게 했거나 죽였다는 자책감을 안 느껴도 돼요.˝
˝그래?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건지 어서 쏴 보자, 어서.˝
˝나도 몹시 궁금하구나.˝
비행기와 군함은 궁금하기 이를데 없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저씨들이 진짜 포탄 대신 물고기 포탄을 쓰는 거예요. 어느 물고기가 제일 멀리 나가나 우리들을 포탄으로 쓰라고요.˝
˝뭐라고! 그럼 장난감 포가 되고 말잖아?˝
˝왜 장난감이어요? 진짜 포탄을 써서는 어느쪽도 완전한 승리를 못했지만 물고기 포탄을 쓰면 두 편이 다 승리할 수 있어요. 둘 다 진정한 승리자가 될 수 있다고요.˝
˝그게 무슨 말이냐?˝
˝글쎄, 우리와 같이 놀다 보면 다 알게 된다니까요.˝
˝.......?˝
비행기와 군함은 말뜻을 잘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물고기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자, 그럼 물고기 대포 놀이를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평화탄 일발 장진!˝
먼저 바다뱀장어가 자기 특기대로 재빨리 포신 속으로 들어가며 소리쳤습니다. 다른 물고기들은 그것을 보고 하하하 웃었습니다.
˝발사!˝
이번에는 옆에 서 있던 문어가 큰소리로 명령하듯 말했습니다.
비행기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쩔쩔매기만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바다뱀장어가 포신 속에서 꿈틀거려 간지러워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구 간지러워 더는 못 참겠다. 땅아!˝
비행기는 진짜 포탄 쏠 때처럼 공이치기를 당겼다 놓으면 바다뱀장어가
콩가루가 될 것만 같아 참았던 웃음을 터뜨리며 입으로 ´땅아!´ 소리를 아이들이 장난칠 때처럼 크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소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바다뱀장어는 온몸을 곧게 뻗고는 진짜 포탄처럼 저멀리 날아갔습니다.
˝와아! 뱀장어 포탄이 멀리 날아갔다.˝
˝야, 놀랍다!˝
물고기들은 야구 방망이처럼 날아가는 바다뱀장어를 보고 일제히 탄성을 질렀습니다.
˝이번에는 군함 아저씨가 새우탄을 한번 쏴 보세요. 우리 친구 곱사등이 좀 펴지게요.˝
쥐치가 왕새우를 군함의 포신에 밀어 넣으며 일부러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새우탄 일발 장진!˝
쥐치의 말에 군함은 장난인 줄 알면서도 진짜 포탄을 쏠 때처럼 긴장했습니다.´일 발 장진´이라는 말을 몇 십 년만에 들어 봤거든요.
˝발사!˝
˝땅! 땅!˝
이번에는 비행기까지 힘을 합쳐 소리를 내질렀습니다. 그 소리와 동시에 왕새우도 있는 힘을 다해 될 수 있는 대로 온 몸을 쪽뻗고 포신을 벗어나 날아갔습니다.
˝야아! 바다뱀장어탄보다 더 많이 날아갔다!˝
˝이번에는 웃음탄 일 발 장진!˝
상어가 멍게를 비행기에 달린 포신 속에 살짝 물어다가 넣으면서 외쳤습니다.
˝발사!˝
˝땅아!˝
비행기와 군함, 그리고 수많은 물고기들이 있는 힘을 다해 ´땅아´ 소리를 외쳤지만 멍게는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포신을 간신히 빠져나와 바로 앞에 데구르르 굴러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우하하핫!˝
˝푸하하하.....˝
멍게 포탄을 보고 비행기와 군함, 그리고 물고기들은 허리를 잡고 굴러가며 웃어댔습니다. 그 바람에 하와이섬 진주만 일대에 예상 못한 큰 파도가 일고 말았습니다.
˝내가 행복탄을 최고로 멀리 쏴 볼게.˝
˝내가 쏴야 더 멀리 날려 보낼 수 있다고. 이번에는 누가 포탄이 될래?˝
˝저요, 저요!˝
˝아이 제가 먼저 할게요. 제가 행복탄이 돼야 멀리 날아갈 수 있다고요.˝
비행기와 군함은 서로 자기가 물고기 포탄을 멀리 쏠 수 있다고 나섰습니다. 그런가하면 물고기들은 서로 먼저 포탄이 되겠다고 아우성이었습니다.
지금 이시각에도 진주만 근처에 가면 자기 포탄 차례를 기다리는 물고기들이 들끓고 있답니다.
나는 장난삼아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이내 나도 모르게 쏙 빨려들고 말았습니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던지 용왕은 내 눈치를 보며 화면 스위치를 켠 다음 천천히 말했습니다.
˝당신이 다시 인간 세상에 나가면 다른 사람들한테 꼭 전해 주십시오. 요즘 용궁에 가도 간을 빼먹지 않는다고 말이어요. 그리고 일본 비행기와
미국 군함은 바닷속 물고기들과 아주 재미있는 별난 놀이를 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아, 예 알겠습니다.˝
나는 얼결에 대답을 하고는 둘러댄 용왕의 등에 익숙한 몸짓으로 올라탔습니다. 내가 자기 등에 타자 용왕은 천천히 군함 용궁을 빠져나와 비행기 놀이터를 한 바퀴 돈 다음 와이키키 해변쪽을 향해 물살을 가르기 시작했습니다.
<5>
나는 멀리서 들려오는 것만 같은 아련한 파도 소리에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습니다.
˝다빈이가 살아났어요! 파도에 떠밀려 온 것을 인공 호흡시켰더니 이제
숨을 쉬기 시작했어요!˝
˝이제서야 정신이 드는가 보구나! 다빈아, 엄마다, 엄마!˝
˝그만하기가 천만 다행이어요. 우리 다빈이는 하늘이 낸 사람 같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물 속에 그렇게 오래 빠졌다가 다시 살아날 수가 없지.˝
˝나는 괜히 초대를 했다 싶은 게 어찌나 속이 타던지......˝
˝오빠! 우리들한테 수영 실력 자랑하려다가 그랬지?˝
식구들은 해상 구조대원 아저씨와 나를 가운데 놔두고 들여다보면서 반가움에 한마디씩 했습니다. 모두 울다 웃다 해서 눈물로 뒤범벅이 된 얼굴들이었습니다.
나는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를 몰라 얼떨떨한 기분으로 이 사람 저 사람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다가는 나를 바닷가까지 태우고 온 용왕인 거북이를 혹시 볼 수 있을까하여 파도가 장난치는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바닷물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높지 않은 파도 위로 갈매기만 몇 마리 날 뿐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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