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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얼룩 고양이

창작동화 허은순............... 조회 수 2092 추천 수 0 2005.02.24 23:51:55
.........
  ˝에이, 이 놈의 들고양이!˝
엄마는 잔뜩 찢겨 있는 쓰레기 봉투를 들고 들어오셨습니다.
˝왜요, 엄마?˝
˝들고양이가 쓰레기 봉투를 죄다 뜯어놔서 청소부 아저씨가 가져 가질 않았어. 아이, 참...˝
엄마는 얼굴을 찌푸리시며 새 봉투에 쓰레기를 다시 담으셨습니다.

우리 아파트는 산밑에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들고양이가 자주 나타납니다. 들고양이가 나타나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돌멩이를 던지고 소릴 질러 쫓아버렸습니다. 꼬리가 뭉뚝하고 눈이 번쩍거리는 들고양이가 싫어서 나도 몇 번 돌멩이를 들어 던진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돌을 들어 던지려 하면 어느새 고양이들은 사라져 버리고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녀석은 달랐습니다. 내가 베란다에서 바깥을 보고 있으면 가끔 작은 고양이 두, 세 마리가 엉키어 장난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 고양이들은 아주 작았습니다. 들고양이는 크고 징그러워서 싫었는데, 그 녀석은 정말 달랐습니다. 하나는 온몸이 아주 까맣고 하나는 얼룩덜룩한 고양이였습니다. 난 그 얼룩무늬 고양이가 너무 귀엽게 보였습니다. 난 그 녀석 이름이 얼룩이 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얼룩이 털은 햇빛을 받으면 금빛이 났습니다. 나는 금빛이 나는 얼룩이가 다른 고양이들과 뒹굴며 장난치는 것을 몇 번 본적이 있습니다. 정말 하나도 징그럽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녀석이 나타날까 하여 비가 오지 않는 날이면 몇 번이고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때로 얼룩이가 밖에 있으면,
˝야옹아, 야아오옹˝
하고 고양이 소리를 내었습니다. 그러면 다른 고양이는 재빨리 사라지지만, 얼룩이는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면, 나는 ˝야옹아.˝ 부르며 손을 흔듭니다. 난 얼룩이가 좋았습니다. 얼룩이랑 친구가 되고 싶어요.

오늘도 얼룩이가 나타났습니다. 난 엄마에게 뛰어 갔습니다.
˝엄마, 고양이 먹을 밥 좀 주세요.˝
˝얘가 난데없이 무슨 고양이야?˝
˝베란다 밖에 아주 귀여운 고양이가 있어요. 배고픈 것 같아. 아무거나 먹을 거를 좀 주세요, 엄마.˝
엄마는 굵은 멸치를 몇 마리 주셨습니다. 난 얼른 뛰어가서 베란다 밖을 쳐다봤습니다. 그 사이 가버렸으면 어쩌나 마음이 급했습니다. 하지만 얼룩이는 까만 고양이랑 다시 장난을 치고 있었습니다. 난 멸치를 바깥으로 던졌습니다. 그러자 고양이들은 튀어 달아났습니다. 나는 그래도 계속 바깥을 보았습니다.
˝야옹아, 밥이야, 먹어. 야아옹.˝
잠시 후 얼룩이는 슬그머니 나타나서 멸치를 물고는 얼른 사라졌습니다. ´배가 고픈 참에 잘 됐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날마다 나는 얼룩이를 기다립니다. 얼룩이를 못 본 날이면 몇 번이고 창문을 열고 닫습니다. 그리고 얼룩이가 있으면 언제나 신호를 보냅니다. 이렇게요.
˝야아옹. 야옹아, 나야. 자, 이거 먹어.˝
하고는 멸치를 던집니다. 그러면 얼룩이는 살그머니 다가와서 멸치를 물고 사라집니다.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난 얼룩이를 잘 볼 수가 없습니다. 장마는 너무 지루합니다. 얼룩이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데 비를 쫄딱 맞고 있으면 어떡하나, 비가 이렇게 쏟아지면 밥은 어떻게 먹을까 걱정이 됩니다.
장마가 끝나고 어느 날, 나는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얼룩이는 햇빛을 쬐면서 앉아 있었습니다. 난 엄마를 졸라 먹다 남은 생선을 들고 밖으로 뛰었습니다. 내가 나타나자 얼룩이는 슬슬 도망갔습니다. 난 먹다 남은 생선을 그냥 바닥에 놓아두고는,
˝야옹아, 나야. 배고프지? 이거 먹어, 응?˝
하고 얼룩이를 안심시키고는 얼른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나는 창 밖에서 얼룩이가 내가 준 생선을 먹는 것을 보면서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난 그렇게 얼룩이가 있을 때마다 신호를 보냈습니다.

나는 그 이후로도 얼룩이를 많이 만났습니다. 내가 얼룩이를 좋아하는 것처럼 얼룩이도 나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얼룩이는 이제 내가 가까이 가도 도망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멀리서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습니다. 내가 먹을 것을 놓아주면 다가와서 먹고, 내가 쓰다듬어 주면 가르릉 소리를 내며 내 손에 머리를 비빕니다. 고양이 몸은 물렁물렁하고 털이 아주 부드럽습니다. 난 얼룩이랑 같이 있고 싶어서 엄마를 졸랐습니다.
˝저 고양이 우리 집에서 키우자. 엄마.˝
˝들고양이는 사람들을 안 따라. 집에선 못 키워.˝
˝아니야. 얼룩인 달라. 얼룩인 나를 좋아해. 내가 만져도 도망가지 않아. 날 알아본다구. 정말야.˝
˝네가 멸치 통에서 멸치 죄다 꺼내 고양이 갖다 줬구나?˝
내가 멸치를 죄다 꺼내 간 것을 엄마가 알아 버리셨지만, 난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고양이를 우리 집에서 왜 못 키워? 나랑 있는 걸 좋아하는데.˝
내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엄마는 안 된다고만 하십니다. 난 얼룩이가 왜 우리 집에서는 못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난 얼룩이도 나랑 사는 것을 좋아할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는 중에 얼룩이는 많이 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랑 시장에 갔다오는데, 아이들이 우리 아파트 쪽으로 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얼룩이!´
난 얼른 아이들이 가는 쪽으로 뛰었습니다.
˝돌아!˝ 엄마가 내 뒤에서 날 부르셨지만, 나는 그냥 냅다 뛰었습니다. 아이들은 돌멩이를 집어던지며,
˝도둑고양이다!˝
˝저 놈 잡아라.˝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난 누런 고양이가 순식간에 산 쪽으로 달아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난 그 고양이가 얼룩이인 것을 압니다. 난 멀리서 봐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난 아이들을 노려보았습니다.
˝너희들, 왜 내 고양일 쫓는 거야? 돌멩일 왜 던져?˝
˝저게 니 고양이야? 도둑고양이지.˝
아이들 중 한 놈이 덤볐습니다.
˝저 고양이는 도둑고양이 아냐. 내 친구라구.˝
˝이 자식이 웃기고 있네. 저 도둑고양이랑 친구면 네 놈도 도둑놈이겠구나?˝
˝으하하하.˝
아이들이 한꺼번에 웃었습니다.
˝뭐라구?˝
˝저 더러운 도둑고양이가 네 친구라며? 그러니 너도 도둑놈이 맞지, 안 그래, 얘들아?˝
아이들이 또 다시 웃었습니다.
˝뭐가 어째? 가만있는 고양이한테 돌을 던져 놓고 뭘 잘했다구? 내가 도둑놈이라구?˝
난 약이 올라서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습니다.
˝이 자식이! 저 까짓게 뭐라고 난리야?˝
˝너희들이 우리 얼룩이한테 돌멩이 던졌잖아. 돌멩일 왜 던져? 왜 던지냔 말야?˝
난 악을 썼습니다.
˝도둑고양이한테 돌멩이 던진 게 뭐 어때서? 다음에 또 오기만 해봐. 이걸루 머리통을 그냥 확...˝
난 그 자식에게 달려들었습니다. 그 자식 손에 쥔 돌멩이를 뺏으려 했지만, 그 녀석은 얼른 피하고 난 땅 바닥에 엎어졌습니다.
˝바보 같은 놈, 더러운 도둑고양이하고 친구하는 멍청이 자식.˝
난 일어서서 다시 덤비려 했지만, 그 때 엄마가 오는 것을 보고 아이들은 마구 도망갔습니다. 난 화가 나서 씩씩거렸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얼룩인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난 베란다 밖을 내다보며 ´야아옹. 야옹아, 야아옹´ 신호를 보냈지만, 얼룩인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얼룩이가 이 근처에 있다면 내 목소리를 듣고 나타날게 분명합니다. 그러나 얼룩이가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면 얼룩이는 이 근처에 없는게 분명합니다. 난 산쪽을 물끄러미 쳐다봤습니다. 그리고는 창문을 닫았습니다.

눈이 왔습니다. 난 그 동안도 몇 번이나 베란다에 앉아 밖을 보았지만, 얼룩인 오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왔을까 창문을 또 열었습니다. 차가운 바람이 휙 베란다 안으로 들어옵니다.
˝엄마, 얼룩이가 안 와요. 죽었나 봐요.˝
˝죽지 않았을 거야.˝
˝그런데, 왜 안 오지?˝
˝이사갔나 부지. 돌멩이 던지는 애들 없는 데로 말야.˝
˝그럴까, 엄마?˝
˝그럼, 죽지 않았을 거야.˝
˝안 죽었으면 좋겠다.˝
난 바깥바람이 너무 차가와서 창문을 닫았습니다.
겨울을 지내면서 얼룩이 생각을 전혀 안 한 것은 아니었지만, 얼룩이를 본지가 하도 오래돼서 얼룩이는 날 잊어버렸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손대지 않은 이후로 부엌에는 멸치 통이 심심하게 앉아있습니다. 뚜껑을 열어보니 굵은 멸치가 가득 차있습니다. 난 멸치를 한 웅큼 쥐었다가 놓고는 도로 뚜껑을 덮었습니다.

다시 봄이 되었습니다. 햇볕이 따뜻해지자 난 작년에 그랬던 것처럼 베란다에 앉아서 놀았습니다. 햇볕이 창문으로 들어 올 때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주 작은 먼지들이 둥둥 떠다니는 게 보입니다. 그 먼지들이 반짝거리는 것을 보고 나는 그것이 얼룩이 털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먼지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야아옹.˝
´얼룩이!´
난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거기엔 덩치가 큰 누런 얼룩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얼룩이가 틀림없습니다. 난 신호를 보냈습니다.
˝야옹아, 야아옹. 나야.˝
난 나를 알아보라고 자꾸 야옹, 야옹 했습니다. 얼룩이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습니다.
´날 알아볼까?´
난 얼룩이를 가만히 쳐다보았습니다. 얼룩이는 나를 보더니,
˝야아옹˝
했습니다. 이건 거짓말이 아니에요. 날 알아본 거라구요. 정말이라니까요. 난 멸치통을 뒤져 멸치를 한 주먹 꺼내고, 냉장고를 막 뒤졌습니다. 고등어 반 토막이 눈에 띕니다. 난 그걸 들고 뛰어내려갔습니다. 얼룩이는 약간 물러섭니다. 날 너무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봐요. 난 멸치랑 고등어를 내려놓고 뒤로 물러섰습니다.
˝먹어. 배고프지? 어디 갔었니? 난 네가 죽은 줄 알았어. 너 어른이 다 됐구나. 어서 먹으라니까. 어서˝
얼룩이는 날 보면서 고등어 놓인 곳으로 왔습니다. 얼룩이의 눈빛은 나를 약간 두려워 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뒤로 더 물러서서 앉으며 씽긋 웃었습니다. 그러자 얼룩이는 고등어를 물어 가지고 풀숲이 있는 쪽으로 가지고 가서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야아옹. 야아옹˝ 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세상에!´
풀 속에서 아주 작은 고양이들이 살그머니 기어 나왔습니다. 하나, 둘, 셋, 넷. 모두 네 마리였습니다. 내가 처음 얼룩이를 봤을 때 만한 아주 작고 귀여운 고양이들이었습니다. 그 중에는 얼룩이하고 똑 같이 생긴 것도 있었습니다. 얼룩이는 새끼고양이들이 고등어를 뜯어먹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나는 쭈그리고 앉아서 얼룩이와 귀여운 새끼 고양이들을 쳐다보았습니다. 작은 고양이는 정말 귀엽습니다. 물론 나도 처음엔 들고양이들은 다 무서운 줄만 알았어요.
하지만 이 녀석들은 정말 다릅니다. 난 작은 고양이들을 계속 쳐다보았습니다. 얼룩이는 새끼 고양이들을 핥기도 했습니다. 햇빛에 작은 고양이들의 털이 반짝 빛이 납니다. 만져 보진 않았지만, 아주 부드러울 거에요. 얼룩이도 그랬거든요? 난 얼룩이가 왜 나랑 우리 집에서 못 사는지 이젠 알겠어요. 엄마가 우리 집에서 날 돌봐 주시는 것처럼 얼룩이는 자기 새끼들을 돌봐줘야죠. 그리고우리 아파트 같이 좁은 곳보다는 저 귀여운 고양이들이 실컷 놀 수 있는 넓은 바깥이 더 좋다고 할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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