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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회 아동문예] 대싸리의 꿈 -안선모

신춘문예 안선모............... 조회 수 1619 추천 수 0 2005.02.24 23:54:46
.........
제45회 아동문예 문학상 동화 당선작
대싸리의 꿈
안선모

나는 참 바보스럽게도 내가 누군지 모릅니다.
단지 어머니께서 하시던 말씀만이 아련히 떠오를 뿐입니다.
˝미련없이 엄마 품에서 떨어져라. 그래야지만 의젓하게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잠자다가 몽둥이로 후려치는 소리에 깜짝 놀랐지요. 그리고서 공중으로 튀어올랐습니다. 번갯불이 번쩍하는 것 같은 순간의 일이었습니다.
지나던 가을 바람이 나를 싣고 어디론가 날아갔지요.
바람에 몸을 맡기고 내려다본 세상은 아름다웠습니다.
내가 엄마의 품 속에서 보던 세상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서편 하늘이 붉게 물들 무렵 나는 간신히 내렸습니다.
오래되어 제 색깔도 잃어버리고 아주 늙어버린 기와지붕 위였습니다.
야트막한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는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숲 속에서 나는 솔바람이 아주 시원했습니다.
˝너는 누구니?˝
찰흙 기와가 물었습니다.
˝글쎄, 나는 누굴까?˝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생각에 잠겼지만 도대체 알 수가 없었습니다.나는 자꾸만 졸립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찬바람이 불자 나는 기와의 터진 틈바구니로 들어갔습니다.
작은 몸뚱이는 그곳에 꼭 끼었습니다.
˝아, 나는 졸려. 잠이나 자야겠어.˝
˝그래, 푹 쉬렴.˝
찰흙 기와는 나를 꼭 품어주었습니다.
˝너는……?˝
˝나는 할 일이 많아.˝
찰흙 기와가 뭐라고 더 말을 했지만 나는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꿈나라로 머얼리 길을 떠나고 있었으니까요.
꿈 속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아슴프레 들려왔습니다.
˝얘들아, 이제 이 엄마와 헤어져야 할 시간이 가까웠구나. 너희들은 훌륭하게 자라나 뭔가 세상에 보람된 일을 해야 한단다. 알았지?˝

얼마나 잔 것일까?
눈을 떠보니 따스한 햇빛이 정다웠습니다. 눈이 부시게 밝은 날이었습니다.
˝어 내 몸이 이상해.˝
˝후후후, 얼마나 오래 잤는지 몸이 퉁퉁 부었어. 그래 잘 잤어?˝
˝응, 달콤했어. 너는 얼굴이 더 까칠해진 것 같아.˝
˝나이를 많이 먹어 그렇지 뭐. 지난 겨울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어.˝
˝눈 때문에 힘들었겠구나!˝
˝옛날엔 끄떡없이 버텄었는데…….˝
찰흙 기와는 슬프게 말했습니다.
˝다른 집 같았으면 나는 벌써 마당 귀퉁이에 버려졌을거야. 아무 쓸모 없는 돌덩이에 지나지 않지.˝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정말 가난한 집이었나 봅니다.
다 쓰러져가는 기와집. 금방 넘어갈 듯한 담벼락. 오랫동안 사람의 손이 안간 다 쓰러져가는 기와집이었습니다.
˝내가 쓰러지면 눈, 비를 누가 막아 주겠니?˝
나는 이렇게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찰흙 기와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기와집엔 어린 남매와 할머니 한 분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르르르 글그르르르…….˝
할머니는 늘 밭은 기침을 해대고 목 속에선 가래가 끓었습니다.
사내 아이는 학교에 다니고 누나는 공장에 나갔습니다.
남매가 나간 집은 조용했습니다.
할머니는 호미를 들고 마당에 나와서 꽃밭을 일구었습니다.
호박씨도 심고 봉숭아도 심었습니다.
온 집안이 환해진 듯했습니다.
˝할머니, 몸도 아프신데…… 꽃밭은 우리가 가꾸어도 되는데.˝
저녁에 돌아온 누나가 미안스레 말했습니다.
˝겨우내내 방안에만 있었더니 갑갑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저 꽃밭을 보니 마음까지 개운해서 병이 다 나은 것 같구나.˝
˝할머니, 올해에도 봉숭아물 들여주실거죠?˝
사내아이가 물었습니다.
˝아암, 들여주고말고. 호박 따서 부침개도 해먹고, 봉숭아 물도 들여줘야지. 그 때까지 살 수 있을지…….˝
할머니의 주름진 눈가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할머니 걱정 말아요. 누나도 돈을 벌고 나도 돈을 많이 벌어서 할머니 병 고쳐드릴게요.˝
사내아이도 누나도 눈물이 그렁거렸습니다.
아, 정말 애처로운 광경이었어요.
나는 참 안타까웠어요. 뭔가 그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이름없는 한낱 작은 풀씨로 죽는다해도 누군가에게 득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아, 그러나 처량한 내 신세여. 찰흙 기와에 얹혀 사는 지금의 내 모습을 생각하면 한심한 지경이었습니다.
˝아이 간지러워.˝
찰흙 기와가 몸을 움츠리며 말했습니다.
˝어머, 어쩜 좋아. 내 몸이 이상해졌어.˝
나는 까무라칠 듯이 놀랐습니다.
퉁퉁 부은 내 몸에서 하얀 뿌리가 나오고 몸뚱이는 반으로 갈라졌습니다.
˝싹이 났어, 싹이.˝
신기한 듯 찰흙 기와가 소리쳤습니다.
나는 나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뿌리를 기와 틈새에 꼭 박고 얼굴을 들었습니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날은 뜨거웠습니다. 잠시동안 비가 내리긴 했지만 목을 잠깐 축여줄 정도였습니다.
˝아,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어.˝
나는 고개를 푹 꺾고 기운없이 중얼거렸습니다.
˝나는 쇠를 녹이는 정도의 뜨거움 속에서 태어났어, 나라고 그 뜨거움을 견딜 재간이 있었나. 그러나 결국 참아냈기 때문에 이렇게 단단한 기와가 될 수 있었던 거야.˝
나에게 조금 참으라는 이야기인가 봅니다. 기와는 자신이 품고 있던 습기는 나에게 모조리 주었습니다. 더 이상 줄 것이 없자 찰흙 기와는 나에게 이야기를 주는 건가 봅니다.
그러나 나는 위로가 되지 않고 짜증이 났습니다.
˝그래서 지금 그꼴이야?˝
아차! 나는 왜 이 모양일가요? 내 생명의 은인인 기와에게 되레 역정을 내다니…….
˝그래 나는 참으로 보잘 것 없었지.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귀하게 태어나지 않은 흙이였으니까. 그러나 불 속에서 다시 새롭게 태어났단다.˝
˝미안해. 내 주제도 모르고.˝
˝자, 힘을 내. 네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너는 대단한 풀이 될거야.˝
˝…….˝
˝고마워…….˝
나는 기운이 점점 빠졌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나의 생명력은 강한가 봅니다.
흙속에서도 아닌 기와 속에서 이만큼이나 견뎌냈으니까요.
˝정신을 잃지 말고 내 이야길 들어봐. 나는 틀림없이 쓸모있는 풀일 거야. 네가 날아왔을 때 난 척 보고 알았어…….˝
찰흙 기와가 계속 말을 시켰지만 나는 푹 고꾸라졌습니다.
˝아 인젠 정말 죽을 것만 같아.˝
찰흙 기와의 가슴도 까맣게 타들어가는 듯했습니다. 안타가웠습니다.
해가 지자 더위는 조금 수그러들었습니다.
공장에서 돌아온 누나는 지는 해를 바라보았습니다.
˝어쩜 날이 이렇게 가물지? 봄가뭄이 참 오래도 가는구나!˝
˝글쎄말에요 할머니. 공장에서도 난리에요. 물이 없어서.˝
˝누나, 꽃밭에 싹이 많이 났어?˝
˝그래? 할머니 정성이지 뭐. 날마다 물 주시고 김도 매주시니까.˝
하늘에 붉게 번지고 있는 노을이 아름다워 남매는 오래도록 서 있었습니다.
그러다 누나는 깨진 기와 틈새에서 시들어버린 풀 한포기를 보았습니다.
˝찬수야! 저길 봐.˝
˝누나 참 신기하네. 어떻게 저기서 풀이 자라고 있지? 흙도 없는데…….˝
˝그러게 말이야, 근데 시들어버렸다.˝
˝누나, 우리 꽃밭에 심어 볼까?˝
˝그래, 그런데 물부터 주어야겠어.˝
˝살아날까?˝
˝글쎄, 하여튼 정성스레 심어보기나 하자.˝

내가 눈을 뜬 것은 느지막한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제법 선선한 저녁 공기를 마시고 나서 정신이 났습니다.
고개를 번쩍 들었습니다.
˝대싸리구나! 옛날엔 울 밖에 촘촘히 심었었는데…….˝
˝어디서 왔을까요?˝
˝밭가에 절로 나서 자라는 거란다. 잘 키워서 빗자루 만들어야겠다.˝
나는 있는 힘껏 땅 속의 물과 양분을 빨아 올렸지요. 나는 꽃밭의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게 쑥쑥 자랐습니다. 옆 친구들에게 미안할 정도였답니다.

여름이 되자 무성해진 나의 겨드랑이에서 무엇인가 용을 쓰며 기지개를 폈습니다.
하,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내 원래의 몸 크기만한 작은 꽃이 쏫아 올랐습니다. 내 겨드랑이마다 옅은 초록빛 꽃이 방긋 웃는 게 아니겠어요. 나는 눈믈이 나올 지경이었습니다.
나는 한껏 꽃을 피워 올렸습니다.
기와가 말하더군요.
˝그것 봐, 넌 뭔가 될 줄 알았어.˝
나는 자랑스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고마워요. 다 당신 덕분이예요.˝
끈질기게 달라붙는 온갖 벌레들도 다 물리치고 장대비에도 끄덕없이 버텨내고 나니 가을이 되었습니다.
연둣빛 작은 꽃들은 열매가 되었습니다. 아주 작은 갈색의 씨였습니다.
나의 어릴 적 본래 모습을 보는 듯했습니다.
옛날에 어머니가 그러셨듯이 나는 말했습니다.
˝미련없이 떨어져 나가라. 그래야 의젓한 대싸리로 태어날 수 있단다.˝
가을이 깊어졌습니다.
˝아 참, 이렇게 실한 대싸리는 처음 보았구나. 땅이 좋은가, 씨가 좋은가.˝
할머니는 감탄하셨습니다.
그 여름에 호박이 탐스럽게 열렸고 봉숭아꽃도 붉게 피었습니다.
모든 꽃밭의 것들이 씩씩하게 잘 컸습니다.
˝할머니, 이 손톱 좀 보세요. 아주 물이 잘 들었어요.˝
남매는 새끼 손가락을 내보였습니다.
노을빛처럼 붉었습니다.
˝내일은 대싸리를 베어야겠다. 훌륭한 빗자루가 되겠어.˝
밑둥에서부터 베어진 나는 마당에 얌전히 누워 있었지요.
탁! 타닥!
몽둥이로 두들기는 소리에 작은 씨들이 이리저리 튕겨나갔습니다.
나는 얌전하게 묶여져 지붕 위에 놓여졌습니다. 잘 말리기 위해서랍니다.
˝안녕, 대싸리.˝
찰흙 기와가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안녕! 내 이름은 대싸리.˝
나도 너무나 반가워 얼굴을 비벼댔습니다.
˝꼭 일년 전 일이었어. 네가 아에게로 날아왔을 땐 조그맣고 볼품 없었는데……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는 얼간이 풀씨에 불과했었는데…….˝
˝…….˝
나는 빙그레 웃기만 할 뿐입니다.
내가 지붕 위에서 내려다보니 내 열매들은 멍석 위에 깔려 햇빛을 쬐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이 씨를 심으면 저런 대싸리가 되는 거예요?˝
˝그래, 그렇단다.˝
˝와, 그럼 우리 부자 되겠네. 빗자루 될 게 이렇게 많으니.˝
남자아이는 즐거운 듯 소리치더군요.
˝할머니, 내년에 저 담 없애고 대싸리를 많이 심어요.˝
누나도 신이 나서 말했습니다.
나는 키가 늘씬하고 풍성한 빗자루가 되었답니다.
가난한 집의 마당비가 되어서 오늘도 열심히 쓸고 있지요. 내가 지나가는 곳은 말끔히 청소해 놓는답니다.
˝안녕, 대싸리. 수고가 많구나!˝
지나던 바람과 새들과 별들이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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