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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왕따는 싫어요

창작동화 이정혜............... 조회 수 1836 추천 수 0 2005.02.28 23:47:04
.........
영우네 교실은 학예회 준비로 떠들썩했다. 이번 학예회에서 학급마다 한 가지씩 연극을 선보여야 했다. 아이들이 연극 제목을 정하느라 걱정을 하고 있을 때 선생님이 불쑥 물었다.
˝얘들아, 너희들 중에 왕따가 되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 손 들어 봐.˝
선생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이들은 힐끔힐끔 인식이를 쳐다보았다. 그 눈길들은 인식이더러 손을 들어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특히 인식이와 한 모둠인 영우는 인식이의 엉덩이를 쿡쿡 찔렀다. 갑자기 인식이의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다. 인식이는 잘못도 없어면서 고개를 숙였다.

부시맨! 아이들은 인식이를 이렇게 불렀다. 얼굴이 아프리카 원주민처럼 새까맣기 때문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얼굴은 물론 팔, 다리도 검었다. 인식이는 읍내 학교 특수반에서 전학왔다. 글자를 잘 못 읽었으며 집안 형편도 어려워 늘 색이 바랜 낡은 옷을 걸치고 다녔다. 목욕을 잘 안 해 가까이 가면 시큼한 냄새가 났다. 어머니와 새아버지가 고물 장사를 해 아이들이 더러 인식이를 ´고물´이라고 부르며 놀려댔다. 인식이는 학교에서 왕따가 되기에 충분했다.

˝아무도 없니?˝
선생님은 아이들을 한 바퀴 빙 둘러보더니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다행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인식이가 전학오던 날부터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선생님은 인식이가 안스러웠다. 늘 아이들에게 늘 ´사이좋게 지내라´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눈길을 피해가며 인식이를 슬쩍 따돌렸다. 그 중에서도 앞장서서 인식이를 왕따 시키는 사람이 바로 영우였다. 영우는 공부도 잘 하고 힘도 셌기 때문에 아이들이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선생님은 영우에게 왕따의 아픔을 맛보게 해 주고 싶었다. 인식이의 아픔을 영우가 직접 느껴보아야만 더 이상 따돌리지 않을 것으로 여겼다. 그렇게 되면 영우가 앞장서서 왕따 없는 좋은 학급을 만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선생님은 문득 줗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학예회 때 선보일 연극 제목을 선생님이 정해 주어도 되겠니?˝
˝좋아요!˝
아이들은 고민하던 차에 좋아라고 소리쳤다.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은 너무 잘 아니까 재미가 덜 할 거야.˝
선생님은 이렇게 말하며 칠판에 큼직하게 썼다.
´왕따는 싫어요!´
아이들이 좋다고 박수를 쳤다. 이제 남은 건 배역을 정하는 일이다.
˝제목 좋지?˝
˝네 -.˝
˝그럼 주인공인 왕따 역은 누가 맡을까? 모두가 잘 해야 되지만 주인공이 특별히 실감나게 해야 연극이 살거든.˝
선생님은 이렇게 말하며 아이들을 빙 둘러보았다. 그러면서 영우와 짧은 눈맞춤을 했다. 속으로는 영우가 은근히 손을 들기를 바랐다. 그 때 영우와 친한 재욱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님, 영우를 추천합니다. 영우는 평소에도 흉내를 잘 내어 아이들을 웃기거든요.˝
˝맞아요 맞아요.˝
아이들의 결정에 따라 영우는 이번 학예회의 주인공이 되었다.
˝영우야, 잘 할 수 있겠니?˝
선생님이 묻자 영우는 큰 소리로 대답했다. 어떤 일에도 자신이 있는 영우였다.
´연극에 성공하려면 내가 멋지게 왕따가 되어주면 돼. 어려울 건 하나도 없어. 연극 속에서 왕따 인식이가 되면 되니까.´
´연극 속에서 왕따가 되어 보는 것도 어쩜 재미있는 일일지 몰라.´
영우는 이렇게 생각하며 빙그레 웃었다.

드디어 학예회날이 되었다.
영우는 평소의 깔끔한 옷차림과는 달리 인식이처럼 초라하게 입었다. 색이 바랜 파란 바지에 구멍이 송송 뚫린 낡은 점퍼를 입고 있었다. 영우는 분장한 자기의 모습을 쭉 훑어보고는 씨익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도 잠시였다. 평소의 노오란 은행잎처럼 밝은 인상과는 달리빛 바랜 가을 낙엽처럼 자꾸만 어두워 갔다. 이윽고 영우네 반에서 준비한 연극이 막을 올렸다.
˝다음 순서로는 4학년 1반의 연극입니다. 제목은 ´왕따는 싫어요!´입니다.˝
사회를 맡은 6학년 여학생이 이렇게 말하자 나란히 서 있던 남학생이 덧붙였다.
˝요즘 왕따가 학교의 큰 문제거리입니다. 우리 모두가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면 왕따 는 없어질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연극 속에서 왕따가 한번 되어보십시오.˝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 조금 전까지 약간 수런거리던 강당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내 역할을 충실히 해내 큰 박수를 받아야지.´
영우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연극 배경은 4학년 1반 교실이었다. 영우는 등교하여 자습을 하려고 공책을 폈다. 그러자 옆에 앉은 재욱이가 빨간 색연필로 낙서를 했다. 그러면서 ´너 바보´라고 썼다. 그러면서 영우보고 큰 소리로 읽어라고 했다. 영우가 주춤거리자 재욱이가 다그쳤다.
˝너 귀먹었니? 크게 읽어!˝
재욱이가 명령하자 영우는 힘없이 눈을 끔뻐이며 읽었다.
˝너, 바보.˝
영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재욱이는 주먹으로 영우의 등을 치며 외쳤다. 그런 재욱이의 눈은 성난 사자처럼 무서움으로 이글거렸다.
˝뭐라고? 내가 바보라고? 너 맞아죽고 싶어?˝
˝네가 읽어라고 했잖아.˝
영우는 눈물을 글썽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영우의 눈물은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뜨거운 눈물임을 아이들은 잘 알았다. 연극이 아니었다. 구경하는 아이들도 코끝이 찡한지 고개를 숙이곤 했다.
´왕따는 정말 괴로운 것이구나. 하지만 이것은 연극이야.´
영우는 연극이라 생각하면서도 자꾸만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또다시 장면이 바뀌었다. 영우는 아침 청소를 하기 위해 신발장으로 갔다. 그런데 신발 한 짝이 없었다. 다른 반의 신발장과 꽃밭 속을 다 뒤져도 운동화는 없었다. 신발 한 짝으로는 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 정말 괴로웠다. 신을 잃어 괴로운 것보다 더 슬픈 게 무엇인지 알았다. 함께 걱정을 하거나 나서서 찾아주는 친구들이 아무도 없다는 거였다. 영우는 마침 자기 옆에 나타난 인식이에게 물었다. 인식이는 연극에서 왕따가 아닌 공부 잘 하고 잘 사는 집 아이였다. 선생님이 인식이에게 그런 역할을 하게 했다. 연극 속에서나마 왕따의 외로움에서 훌쩍 벗어나게 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인식아, 너 혹시 내 운동화 못 봤니?˝
영우가 묻자 인식이의 눈꼬리가 갑자기 올라갔다.
˝이 바보야, 내가 도둑으로 보이니?˝
인식이는 두 주먹을 쥐었지만 때리지는 않았다. 지금은 연극이지만 나중 일을 생각하니 겁이 났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
영우는 더듬거렸다. 비록 연극이지만 왕따인 인식이한테 이렇게 당하기는 처음이었다. 영우의 눈 주위가 발그레해졌다. 조금 전 재욱이한테 놀림을 당할 때도 괴로웠다. 하지만 참을 수 있었다. 그런데 못난이 인식이한테 바보 취급을 받으니 너무 억울했다. 영우는 다음 대사를 이으려고 했지만 도저히 기억나지 않았다. 대본에도 없는 눈물이 자꾸만 앞을 가렸다.
연극은 계속되었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은 짝을 지어 교문을 나서고 있었다. 다만 영우만이 혼자였다.
´혼자는 외로워. 나도 함께 갈 친구가 있었으면.´
영우는 앞서가는 아이들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터벅터벅 걸어갔다. 아이들은 많았지만 아무도 영우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갈수록 영우의 외로움은 깊어갔다. 영우는 걸어가며 오늘 일을 떠올렸다.
´공부 못 한다고 무시 당하던 일, 물건을 뺏기던 일, 억울하게 누명을 쓴 일, 맞고도 겁이나 선생님한테 말 한 마디 못한 일......´
생각할수록 억울했다. 영우는 교문을 나서다 플라타너스 나무 밑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 잎, 두 잎 갈색으로 물든 잎들이 영우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영우는 그 중의 하나를 잡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나뭇잎들은 바람에 쓸려 멀리 날아가버렸다. 영우가 떠나가는 나뭇잎을 멍히 바라보고 있을 때 아이들의 큰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연극이 끝난 것이다.
˝영우, 잘 했어.˝
선생님이 무대에서 내려오는 영우의 등을 툭 치며 말했다. 선생님은 환하게 웃었지만 영우의 얼굴은 어쩐지 쓸쓸해 보였다.
한편 인식이는 걱정이 되었다. 비록 연극이지만 영우를 놀렸기 때문이다. 인식이는 영우가 부르지 않았는데도 다가갔다. 그리곤 여느 때처럼 영우의 책가방을 들었다.
˝마을 어귀까지 들어다 줄게.˝
˝괜찮아. 내 가방은 내가 들어야지.˝
영우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정말이니?˝
˝응. 인식아, 미안해.˝
˝뭘 미안하다는 거니? 내가 오히려 미안한대.˝
˝나중에 말해 줄게.˝
영우는 씽긋 웃으며 가방을 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시던 선생님도 빙그레 웃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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