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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도자기와 곰인형

창작동화 이정혜............... 조회 수 1625 추천 수 0 2005.02.28 23:48:28
.........
우윳빛 도자기가 있었습니다.
도자기는 분홍빛 매화꽃을 온몸 가득 품고 있었습니다. 귀를 기울이면 토옥톡 꽃잎 터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은은한 향기가 풍겨오는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보아도 보아도 싫증나지 않는 그런 도자기입니다. 그런데도 도자기는 달랐습니다. 언제나 외롭고 답답했습니다.
´나는 왜 이런 장식장 안에서 갇혀 살아야 할까?´
도자기는 슬펐습니다. 둘이 아닌 혼자 살기 때문에 더욱 외로웠습니다. 그 외로움보다 견딜 수 없는 건 텅 빈 가슴이었습니다. 그 큰 가슴을 활짝 열고 있었지만, 들어오는 것이라곤 먼지뿐이었습니다. 이런 도자기는 꽃병이 더없이 부러웠습니다.
˝세상은 불공평하단 말이야.˝
도자기는 꽃병을 내려다보며 투덜거렸습니다.
꽃병은 오늘도 싱그런 꽃들을 품은 채 웃고 있었습니다. 주인 아주머니는 꽃이 시들기 전에 새 꽃으로 바꿨습니다. 그러면서도 도자기에겐 한번도 꽃을 안겨주지 않았습니다. 도자기도 그 넓은 가슴 가득히 꽃을 안고 싶었습니다. 꽃이 아니라 무엇으로든지 빈 가슴을 채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바람일 뿐입니다. 주인 아주머니는 가끔씩 도자기가 품고 있는 매화꽃만 힐끔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오늘도 아주머니는 꽃병의 꽃을 새 것으로 바꾸었습니다. 활짝 펴진 꽃잎마다 밝은 웃음이 실려 있습니다. 그런 꽃을 바라보는 아주머니의 눈도 웃고 있습니다.
˝어쩌면 더 싱싱하게 보일까?˝
아주머니는 꽃잎마다 물을 뿜어 주었습니다. 물방울이 꽃잎 끝에서 대롱대롱 이슬로 매달렸습니다. 이슬방울은 하이얀 햇살을 받아 반짝거렸습니다. 그 반짝거림이 꽃을 더욱 풋풋하게 보이도록 했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싱그런 모습을 잃지 않게 했습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식구들이 모두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커튼 사이로 새어 든 달빛이 응접실을 은은히 비춰 주었습니다. 달빛을 받은 곰인형이 부시시 눈을 떴습니다. 곰은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꽃병은 향기에 취해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도자기만이 어두운 얼굴로 꽃병을 물끄러미 지켜 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언제 저런 화려한 꽃들을 품어 본담.˝
도자기는 긴 한숨을 몰아쉬었습니다.
˝그렇게 꽃을 품고 싶니?˝
곰이 두 팔을 들고 하품을 하며 말했습니다.
˝그래, 언제나 내 가슴은 텅 비어 있거든.˝
˝너에겐 매화가 있잖니?˝
˝이건 꽃도 아니야. 향기도 없는 그림일 뿐이야.˝
˝아니야, 넌 몇 백 년이 지나도 시들지 않는 그런 아름다운 꽃을 가 졌어.˝
˝아름다우면 뭘 해.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그럼 넌 사람들을 위해 사는 거니?˝
˝그렇지는 않지만 따스한 눈길을 받으며 살고 싶다고.˝
곰이 머리를 저으며 빙그레 웃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눈을 크게 떠 꽃병을 지켜 보았습니다. 여전히 꽃병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꽃병이 깰세라 곰은 나직나직한 소리로 속삭였습니다.
˝도자기야, 화려하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란다.˝
˝화려하면 좋지 뭘.˝
˝화려한 건 오래 못 간단다.˝
˝그게 무슨 뜻이니?˝
˝화려한 꽃은 며칠 못 가 추한 모습으로 바뀐단다. 그러면 저 유리 꽃병도 아주 볼품이 없지.˝
˝그래도 비어 있는 나보단 낫잖아. 시든 꽃이라도 한번 품고 싶어.˝
˝그렇다면 기다려 보렴. 아주머니가 네 생각을 헤아려 줄지도 모르니 까.˝
˝그럴까?˝
도자기는 씽긋 웃었습니다.
다시 아침이 되었습니다. 깊은 잠에 빠져 있던 꽃병이 사르르 눈을떴습니다. 꽃이 바뀔 때마다 꽃병은 새로운 얼굴로 태어났습니다.
´저 꽃병에 꽃이 없다면?´
도자기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햇살처럼 투명한 유리 꽃병! 비어 있어도 나보단 아름답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도자기는 자기의 몸을 살폈습니다. 언제나 한 가지 꽃만 피우는 게 싫증났습니다. 그것도 향기 없는 그림의 꽃을.
˝아주머니, 시든 꽃이라도 좋으니 저에게도 꽃을 주세요.˝
도자기는 애원했습니다. 그 소리를 어떻게 들었을까? 아주머니는 도자기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도자기의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습니다.
˝먼지가 많이도 묻었구나.˝
아주머니는 먼지를 말끔히 닦아냈습니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갔습니다. 응접실엔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습니다.
˝아주머니는 왜 나를 미워할까?˝
도자기는 곰을 보며 중얼거렸습니다.
˝도자기야, 아주머니는 너를 미워하지 않아.˝
곰인형이 달래듯 말했습니다.
˝그럼, 왜 꽃 한 송이도 안 주지?˝
˝그건 몰라. 그렇지만 너를 보는 아주머니의 눈길은 언제나 따스했 어.˝
˝아니야, 아주머니는 너처럼 안아 준 일도 없어. 쓰다듬어 준 일도 없고. 다만, 걸레로 닦아 줄 뿐이야. 그러니 손도 대기 싫을 만큼 미 워해.˝
˝아니야, 그건 네 생각이 짧은 탓이야.˝
˝그게 무슨 뜻이지?˝
˝글쎄.˝
곰인형은 빙그레 웃었습니다. 그 때 훈이가 학교에서 돌아왔습니다. 훈이의 손에는 예쁜 색종이 꽃이 들려 있었습니다. 훈이는 꽃을 들고 주위를 빙 둘러봤습니다. 꽂을 곳이 없었습니다. 두리번거리던 훈이는 씨익 웃었습니다. 도자기를 본 것입니다.
˝옳지, 저기에 꽂으면 되겠구나.˝
훈이는 종이꽃을 도자기에 꽂았습니다.
´아, 내가 꽃을 품다니......´
도자기는 화들짝 놀랐습니다. 텅 빈 가슴이 채워지자 외로움도 주춤 물러갔습니다. 향기는 없었지만 그림 속의 꽃보단 훨씬 좋았습니다. 훈이는 종이꽃을 보며 싱글벙글 웃었습니다.
˝엄마, 내가 만든 꽃 예쁘지요?˝
훈이는 도자기를 가리켰습니다.
˝훈아, 도자기에는 꽃을 꽂는 게 아니란다.˝
˝왜요?˝
˝이 도자기는 그대로가 훌륭한 예술품이거든.˝
˝꽃을 꽂으면 아무 것도 없는 것보다는 좋잖아요.˝
˝아니란다. 꽃을 꽂으면 우리의 마음이 화려한 꽃잎에 홀려 은은한 도 자기의 맛을 느낄 수 없단다.˝
˝왜요?˝
˝화려한 것들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 수 있지만 오래 가지는 못 해.˝
˝엄마, 그게 무슨 뜻인데요?˝
˝저 꽃들 좀 봐. 저렇게 화려해도 십 일을 못 가. 하지만 이 도자기 가 피워내는 꽃은 몇 백 년 , 아니 몇 만 년을 가지.˝
엄마는 도자기에서 종이꽃을 빼내며 말했습니다.
˝오래 가면 뭘 해요. 향기도 없는 그림인데.˝
˝아니란다. 저 그림 속에는 향기가 스며 있단다.˝
˝그림 속에서 무슨 향기가 나요?˝
˝저 도자기에 한 송이의 꽃을 새기기 위해 몇 날 밤을 지새운 화가의 숨결이 들어 있지. 그래서 꽃을 보면 마음 속에서 향기가 우러나온단 다.˝
˝정성 들인 땀이 있으면 향기가 나는가요?˝
˝그래, 훌륭한 사람들은 죽어서도 이름을 남긴단다. 그건 바로 그 분 들이 정성 들인 땀이 향기로 남아 우리들에게 가르침을 주기 때문이란다.˝
˝그렇군요.˝
˝이 매화꽃 한 송이를 그리기 위해 몇 날을 뜬눈으로 보낸 사람도 있단다. 그 사람은 죽었어도 넋은 향기 속에 살아 있지. 그래서 향기는 영원한 거란다.˝
듣고 있던 훈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빙그레 웃었습니다. 그러자 곰인형도 덩달아 빙그레 웃었습니다. 도자기도 밝은 모습으로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 그래! 여태껏 나는 나를 바로 알지 못하고 있었구나.´
도자기는 부끄러웠습니다. 텅 빈 게 더 큰 기쁨을 담을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엄마, 나도 도자기처럼 은은한 향기를 담기 위해 노력할 거야.˝
훈이가 책을 꺼내며 중얼거렸습니다. (*)

창작 동화 감상

손바닥만한 작은 책 속의 가르침이 평생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좌우명이 되기도 합니다. 좋은 창작 동화는 단순히 읽는 재미만을 제공하지 않고,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새로운 생각을 갖게 해 줍니다. 소박한 바람이 있다면, 이 이야기들 중의 작은 부분이라도 읽는 이의 가슴에 오래도록 살아남아 깊은 산 속의 샘물 같은 감동을 자아냈으면 합니다.

- 대구광역시 박곡초등학교 교사 이정혜 -

♠ 창작 동화 ´도자기와 곰인형´ - 동화책 ´달님을 닮은 꽃´ 중에서 -
♠ 달님을 닮은 꽃
지은이 : 이정혜
대상 학년 : 1 - 3 학년
관련 교과 : 국어과 창작 동화 단원
출판사 : 한국독서지도회 - 창작동화문고 전 8권 -
♠ 한국독서지도회 인터넷 홈페이지 : www.home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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