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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꼬마 해결사

창작동화 김양수............... 조회 수 1146 추천 수 0 2005.03.09 00:01:16
.........
낮에는 언제나 나 혼자 집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빠는 직장에 나가시고 엄마는 양품점 일을 보시기 때문에 나는 동화책을 읽거나 만화영화를 보면서 엄마 아빠를 기다려야만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상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엄마지?˝
˝......˝
˝왜 대답이 없는 거야? 나 심심해 어서 와?˝
나는 그 때까지만 해도 엄마가 걸어준 전화인 줄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랑 얘기좀 할 수 있겠니?˝
하는 할아버지 목소리가 들려오는 거였습니다.
처음 듣는 음성이었으므로 잘못 걸린 전화라 생각한 나는
˝누구를 찾으시는 거죠?˝
하고 찬찬히 여쭈어 보았습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다.그냥 말벗이 필요해서 그러니 나랑 아주 잠깐만 얘기좀 해줄래?˝
할아버지는 마치 유치원 아이처럼 졸라대는 거였습니다.
˝할아버지,말씀해 보세요˝
나도 많이 심심하던 터였으므로 마침 잘되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씀드렸더니 그 즉시 할아버지는 아주 기쁜 목소리로
˝내가 옛날 얘기 해줄 테니 잘 들어봐.˝
하시고는 내가 듣던지 말던지 효녀 심청 얘기를 들려주시는 거였습니다.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할아버지의 구수한 말솜씨 때문에 나는 끝까지 귀담아 들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부터 할아버지는 매일 같이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전화를 걸어 주셨습니다.나는 할아버지 전화를 버릇처럼 기다리고 있다가 얼른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면 할아버지는
˝상용아, 잘 있었니? 오늘도 일찍 집에 왔구나.오늘은 무슨 얘기를 해줄까?˝
하고 번번이 물으시지만 내가 청한 얘기는 한 번도 들려주신 적이 없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얘기는 모두 효도에 관한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싫은 기색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나도 모르게 엄마,아빠를 더 사랑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싹 트기만 했습니다.
˝할아버지 만나보고 싶어요?˝
어느 날 내가 할아버지 얼굴을 보고 싶다고 했더니
˝우리 아들이 알면 곤란해.˝
풀기 없는 목소리로 내 부탁을 들어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할아버지를 만나봐야겠다는 결심을 바꿀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경찰 아저씨에게 모든 사실을 숨김없이 털어놓고 도움을 청한 후, 전화도청으로 발신음을 추적하여 할아버지 댁을 알아냈습니다.

일요일을 기다렸다가 나는 할아버지 댁을 찾아 나섰습니다. 할아버지 댁은 시골이었으므로 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아주 볼품없는 조그만 집 앞에 가서 나는 할아버지를 불렀습니다.
˝할아버지 계세요? 상용이가 왔어요.˝
내가 외치자 할아버지는 마루 끝까지 나오셔서 나를 아주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상용아,네가 여길 어떻게 찾아왔니?˝
˝저는 꼬마 해결사라서요 한다면 하거든요.˝
나는 뻐기며 할아버지에게 꾸벅 절을 했습니다.
˝여길 찾은 거 보니 믿을만한 해결사구나.˝
할아버지는 내 실력을 진짜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할아버지,그런데 왜 혼자 사세요? 아드님이 계시다고 했잖아요?˝
나는 궁금해서 그 것부터 물어 보았습니다.
˝아들이 시내에 하나 있긴 있지만 나를 싫어해. 그래서......˝
할아버지 목소리는 아주 힘이 없었습니다.
˝미우나 고우나 가족인데 좋고 싫고가 어디 있어요.˝
나는 언젠가 선생님에게 들은 이야기를 금방 생각해 냈습니다.
˝그러게 말이다.내가 절 어떻게 길렀는데......˝
할아버지는 내 손을 꼬옥 잡으시고 울먹이고 계셨습니다.
˝할아버지 자주 찾아뵈어도 될까요?˝
할아버지가 무척 외로우신 것 같아서 그렇게 말씀 드렸더니
˝우리 아들이 알면 안 돼. 나를 강제로 데려갈 지도 몰라. 난 골방에 갇혀 사는 게 싫단 말이야. 난 혼자 살 거야. 내가 전화할 테니 다신 찾아오지 마.˝
할아버지는 눈물을 글썽이시며 내 등을 떠밀었으므로 할아버지와 아주 짧은 만남 뒤에 곧 헤어져야 했습니다.
할아버지를 만나고 돌아오는 내 발걸음은 어깨에 배낭을 걸머진 듯 무거웠습니다.
´차라리 만나지 말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습니다. 무슨 딱한 사정이 있는지 잘은 모르지만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가 나는 무척 가엾게 느껴져서 공부도 잘되질 않았습니다.
내 가슴 속에는 할아버지가 크게 자리잡고 있었으므로 나는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어떡하던지 할아버지를 아들이 모셔가도록 해야겠어.´
해결사의 자존심을 걸고 그렇게 결심을 굳힌 나는 할아버지가 다시 전화를 걸어 오셨을 때, 유도질문을 하여 할아버지 아들이 시내에서 경영하는 완구점을 알아내는데 성공했습니다.
그 즉시 나는 <호돌이 완구점>을 찾아갔습니다. 장난감을 고르는 척하면서
˝아저씨는 아버지가 살아 계신 가요?˝
하고 슬쩍 아저씨의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했습니다.
˝돌아 가셨단다.˝
했을 때 나는 가슴 속에서 불끈 솟아오르는 불기둥을 꼭꼭 누르며 또
˝아저씬 젊으신데 그럴 리가 없어요.˝
하고 다시 마음을 열어주길 바랬지만
˝쪼그만 녀석이 별걸 다 따지는구나.물건 사러 왔으면 물건이나 사.˝
하고 화를 벌컥 내는 바람에 쫓기듯이 완구점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 후로 나는 다시 깊은 고민에 젖어 들었습니다.
꼬마 해결사라고 불리는 내 별명에 걸맞지 않게 이번 일은 쉽게 실마리가 풀리질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뾰족한 수를 아무리 찾아보려고 궁리를 해보아도 헛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기막힌 작전이 떠오른 것은 국어시간이었습니
다.
그 날은 연극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연극이란 거짓을 사실처럼 만들거나 수단을 부려 그럴싸하게 둘러대어 사건을 꾸미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바로 그거야.연극을 하는 거야.멋있는 각본을 짜야 되겠어.´
하고 생각하며 입술을 잘근 물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나의 발걸음은 먼지처럼 가벼웠습니다.
언제나처럼 할아버지는 정확한 시간에 전화를 걸어 오셨습니다. 나는 녹음기를 작동시킨 다음에 수화기를 집어들었습니다.
˝할아버지,제 부탁하나만 들어주세요?˝
머리도 꼬리도 없이 대뜸 그 말부터 꺼냈습니다.
˝숨 넘어가겠다.내가 들어줄 부탁도 있니?˝
할아버지는 할 일이 주어졌다는데 큰 만족을 얻는 듯 환한 목소리였습니다.
˝우리 학교에서 연극을 하는데요. 제가 할아버지 역을 맡았어요. 그런데 어떻게 말해야 되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 제가 하는 말을 할아버지가 고대로 따라해 주세요? 그러면 제가 듣고 연습할게요.˝
나는 숨쉴 틈도 없이 줄줄이 사탕처럼 연거푸 말했습니다.
˝나도 소싯적엔 연극좀 했다. 그럼 어디 대사를 읽어보거라. 에헴.˝
할아버지는 목청을 가다듬으시는지 헛기침까지 두어 번 하셨습니다.
˝나는 아들이 좋다. 내 아들이 최고다. 우선 이것부터 해보세요.˝
˝대사가 내 맘에 안 들어.˝
할아버지는 썩 내키지 않는지 다시 우울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이건 연극이잖아요. 할아버지.˝
하고 내가 졸라대자
˝아참, 그렇지.˝
하시더니 내 말을 기꺼이 따라해 주셨습니다.
˝내 아들이 나를 구박해도 나는 원망하지 않는다. 아들을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할아버지의 말씀을 모두 녹음기에 담은 나는 내 목소리를 모두 빼고 할아버지 목소리만 골라서 새 녹음테프에 편집했습니다. 그리고 곧 <호돌이 완구점>으로 전화를 넣었습니다.
˝여보세요.호돌이 완구점입니다.˝
마침 할아버지의 아들이 전화를 받았습니다. 나는 즉시 녹음테프를 틀었습니다.
˝나는 아들이 좋다......˝
그러나 아들은 할아버지의 얘기가 다 끝나기도 전에 찰칵! 하고 수화기를 내려 놓았습니다.
나는 매일 같이 같은 시간에 같은 방법으로 사랑의 전화를 걸었습니다. <10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교훈을 실천하기 위해서 였습니
다. 역시 나의 짐작은 보기 좋게 맞아 떨어졌습니다.
10일 째 되던 날 할아버지 얘기를 끝까지 다 들은 아들이 수화기에 입을 바짝 대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아버지,제가 잘못했습니다. 불효자식을 용서해 주십시오.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제가 모시러 가겠습니다.˝
아들의 마음이 돌아온 것을 확인했을 때 나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물론 그 내용은 내 녹음기 속에 모두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각본에 따라 아들의 목소리를 할아버지에게 들려주었습니다.할아버지는 아들을 만나보고 싶다고 내게 말해 주었습니다.
˝할아버지, 기다리고 계시면 아들이 모시러 갈 겁니다.˝
하고 꼬마 해결사답게 분명히 말한 뒤 나는 <호돌이 완구점>을 찾아갔습니다.
˝아저씨는 아버지가 살아계신가요?˝
하고 물었더니
˝지난 번에 왔던 그 꼬마로구나. 그래 살아 계신다.˝
이번에는 아들이 상냥하게 웃으며 그렇게 대답하는 거였습니다.
˝어디 계세요?˝
˝글쎄 나도 모르겠다. 전화만 하시고 가르쳐주질 않는구나. 돌아오시기만 하면 효도를 해야겠구나.˝
아들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아들의 공손한 말씨만 듣고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제가 가르쳐 드릴까요?˝
˝네가 어떻게?˝
아들은 왕구슬처럼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습니다.
˝제 별명이 꼬마 해결사거든요.˝
나는 엄지 손가락을 아저씨 앞에 펴 보이며 있는 폼 없는 폼을 다 잡았습니다.
˝꼬마 해결사 님이라고? 이거 반갑구나.˝
아들은 나에게 악수까지 청하며 깍듯한 예의를 보여 주었습니다. 나는 허리를 장작처럼 뻣뻣하게 펴고 아들의 차에 올랐습니다.
곧 우리는 할아버지 집에 도착했습니다.
˝아버지,이 못난 자식을 용서해 주시는 거죠?˝
˝동근아,이 아비가 심술통이라 네가 속상했었지.˝
아버지와 아들의 뜨거운 만남 앞에서 나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뒤로 돌아 앉으며 멀리 앞산을 바라보았습니다.
산꼭대기에 남아있던 하얀 눈이 따신 햇살에 마저 녹아 내리고 있었습니다.
들판에서 꼼지락꼼지락 솟아나온 봄빛이 산을 향해 파르라니 번져가고 있었습니다. ⓒ김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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