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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빛살이 들려 준 이야기

창작동화 이동렬............... 조회 수 1610 추천 수 0 2005.03.09 00:04:27
.........
온 들판이 푸르른 어느 날이었습니다.
나는 동화가 제대로 써지지 않아서 버릇대로 산책을 나섰습니다.
이럴 때마다 내가 늘 찾는 곳은 오리나무숲 입구에 있는 작은 연못가였습니다. 오리나무 숲은 조용했습니다.
나무들이 병정들처럼 차렷 자세로 줄을 맞춰 서 있었습니다. 마치 내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섰는 졸병들같이 말예요.
못 들도 얼어붙은 듯이 조용했습니다. 나는 못가에 쏟아지는 햇빛을 받으며 연못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나뭇잎을 따서 못 물에 던졌습니다. 나뭇잎은 가랑잎 배가 되어 동동 떠다녔습니다.
나는 얼마 뒤 싱그런 풀밭에 가서 아무렇게나 벌렁 누웠습니다. 그리고는 눈을 지그시 감고 풀냄새를 맡았습니다. 상큼한 풀내음이 코를 통해 가슴까지 번졌습니다. 그렇게 있자니까 내 가슴은 온통 초록빛 풀밭이 되는 기분이었습니다.
나는 다시 누운 채 풀냄새를 맡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이제껏 한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죠.
그 소리는 벌레들의 울음 소리도 아니고 바람에 울어 대는 풀잎들의 소리도 아니었습니다. 참 신기한 목소리였죠.
빛살. 알고 보니 그 소리는 빛살들의 소리였습니다.
동화작가인 나만이 알아 들을 수 있는 해나라에서 온 빛살들의 목소리였습니다. 빛살들은 내가 동화 작가라는 것을 용케 알아보고 말을 걸었습니다.
지금부터 빛살들에게 들은 얘기를 옮겨 볼 테니까 잘들어 보셔요.

빛살들은 해나라를 떠났습니다. 해나라 주위를 맴돌고 있는 작은 초록별을 빛내기 위해서였죠.
떠날 때 어디라고 정하고 떠난 것은 아니지만 직선으로 날아오다 보니 어느 작은 연못 속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아, 시원하다! 이렇게 시원한 곳도 있었나?”
“그러게 말예요. 이렇도록 시원한 곳은 처음이군요. 이렇게 좋은 곳을 놔두고 다른 곳으로 간 친구들 생각을 하니 안 됐어요.”
뒤따라온 작은 빛살이 대꾸했습니다.
“아하, 시원하다!”
“이렇게 시원한 곳이 왜 해나라에는 없을까?”
빛살들은 못 속에서 텀벙거리면서 왁자지껄하게 떠들었습니다.
빛살들의 몸에서 나는 빛으로 못 속은 환했습니다. 밑바닥까지 들여다보일 정도였습니다.
빛살들은 목욕이 끝나자 못 속의 이구석 저구석을 살펴 보았습니다.
“야, 못 속도 아름답구나 바위도 있고 물풀도 있고 물고기도 많이 사는 것을 보니까.”
“정말이네. 너무너무 아름다운 모습이구나.”
빛살들은 모두가 신기했습니다. 처음 와 본 못 속이었으니 그럴 수 밖에요.
“저기 저것은 무엇일까? 아주 작은 것이 날아다니고 있네.”
한 빛살이 물에 비친 하루살이의 그림자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어디? 저것은 물고기라고. 날아다니는 게 아니고 헤엄을 쳐 다니는 거라구.”
다른 빛살이 아는 체를 하였습니다.
“그 물고기 말고 저 작은 날벌레 말이야. 분명히 날개로 날고 있잖아.”
“어, 정말 그렇구나. 난 저 물고기를 말하는 줄 알았지.”
빛살들은 눈길이 모두 하루살이에게로 쏠렸습니다. 하루살이는 빛살들이 주의 깊게 바라보는 것도 모르고 열심히 날아다니고만 있었습니다.
빛살들은 모든 것을 다 듣고 볼 수 있었지만 사람들이나 동·식물들은 그렇지가 못했습니다. 그러니 하루살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제멋대로 날아다닐 수밖에 없었지요.
하루살이는 많은 떼를 지어 날아다녔습니다. 연못 위 하늘을 날기도 하고 연못가의 숲 속을 날기도 했습니다. 빛살들은 아까 본 그 하루살이를 눈길로 따라가며 관찰하였습니다.
연못 위를 날던 그 하루살이는 못가에 있는 찔레덤불로 날아갔습니다.
빛살들의 눈길도 따라갔습니다.
하루살이를 따라가던 빛살들의 눈가에 방울새 떼가 보였습니다.
방울새 떼는 찔레덤불 옆 팥배나무 가지에 열매가 열린 것처럼 모여 앉아서 지절대고 있었습니다.
또륵 또륵 또르르륵, 똘똘 또로로륵…방울 소리를 내는 방울새 소리는 무척 고왔습니다. 방울새들이 지절대는 소리가 빛살들의 귀에 속속 들어와 박혔습니다.
빛살들의 귀는 레이다보다도 더 밝았습니다.
“또륵 또륵 또또르륵 똘똘 또르르(야, 우리 오늘은 여기서 좀 쉴까? 더 날아가 봐야 별 볼일 없다구).”
“쪼록 쪼로록 쪼로로 쫄쪼록…(그것도 괜찮지. 이렇게 덥부살이도 많고 앞에 연못도 있으니 얼마나 좋으니. 연못 위를 날아다니며 우리의 멋진 폼도 비춰 보자구.)”
“또또르 또륵 또…(그것 멋있는 생각이야. 하지만 굶으면서 쉴 수는 없잖아?)”
“쫑쫑 쪼르르 쪼르…(굷기는 왜 굶어? 저 연못 위에 날아 다니는 날벌레들이 안 보여?).”
“또또르르르 또륵 또…(아, 저 벌레들이 안 보인단 말야? 네 눈도 이제는 다 됐구나)”
“쪼롱쪼롱…(저 하루살이들 말야?)”
˝또쪼르롱…(그렇지 않구. 아 배고픈데 하루살이면 어떻게 한 달살이면 어떤가? 배만 부르면 그만이지?˝
˝쪼쪼쪼르르 또르륵 또…(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큰 방울새 체면에 어떻게 저 하루살이를 먹는단 말인가? 더 크고 더 오래 사는 벌레라면 또 몰라도).˝
˝쪼쪼르르 또록또쪼르…(하 참 딱하군 그래. 저 하루살이들은 어차피 하루만 살고 죽을 몸 아닌가? 그러니 잡혀서 우리의 먹이가 되면 그만큼 영광이지 뭘 그래. 그까짓 하루 일생 있으나마나인데…)˝
˝똑또르르 똘또르…(나는 굶어 죽으면 죽었지. 저 시시한 하루살이는 안 먹겠어. 아무래도 수년씩 사는 이 방울새가 하루를 살기 위해 바등거리는 것을 잡아먹는 것은 어울리지가 않아).˝
˝쪼르쪼르륵…(뭐? 어울리지 않는다구?)˝
˝또르쪼르쪼록 쪼…(그럼 어울리지 않구 말구. 저 하루살이의 일생에 비하면 우리는 무척 오랜 세월을 산단말이야. 우리의 일생과 하루살이의 일생은 하늘과 땅 차이지. 그런 하루살이를 잡아먹는 것을 다른 새들이 아는 날에는 우리 방울새 전체가 창피를 당한다구).˝
방울새들은 티격태격 하다가 오리나무 숲으로 옮겨 앉았습니다.
빛살들은 방울새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고는 속으로 웃었습니다.
저녁때가 되자 벌써 일생을 마친 하루살이들이 못 물위에 떨어져내렸습니다. 나래를 꺾고 못 물이 무서운줄도 모르고 떨어지는 하루살이들, 그 짧은 일생을 살기 위해 애썼던 하루살이들.
빛살들은 떨어지는 하루살이들의 주검을 보면서 가엾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빛살들의 생각이었습니다. 하루살이들의 잠든 얼굴은 아주 행복해 보였습니다. 자기들의 아주 짧은 인생을 짧은 줄 모르고 열심히 살다가 고히 잠든 행복한 모습들이었습니다.
하루살이들은 그 순간에도 죽어가고 또 태어나고 했습니다.
빛살들은 다시 방울새 떼를 찾아보았습니다. 방울새떼는 언제 왔는지 연못가 찔레덤불 위에 와 앉아 있었습니다.
˝쪼롱쪼롱 또로로…(이제 저녁때가 되었나 보군. 배가 슬슬 고파 오는 것을 보니까).˝
˝또록또록 쪼롱로록…(그러고 보니까 하루살이 때문에 다투느라고 오늘 하루를 다 보냈군. 어디 가서 벌레라도 몇 마리 잡아먹어야 힘이 나겠는 걸. 자 가자).˝
방울새 떼는 서산으로 기우는 해님을 등지고 날아갔습니다.
못 위를 지나는 방울새들의 그림자가 못 속에 어렸습니다. 아주 작은 몸집이었습니다.
빛살들은 방울새를 쳐다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방울새의 열 배도 더 커 보이는 큰 새 두 마리가 쫓아가면서 지껄이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죠.
˝여보! 저기 날아가는 저 방울새라도 잡아먹읍시다. 배가 고파 죽겠어요˝
˝방울새? 우리 체면에 어떻게 저렇게 작은 새들을 사냥하겠어! 괜히 체면만 깎이고 망신만 당하게 말야.˝
˝지금은 보는 새가 없으니 체면이 깍일 것도 없어요. 더욱이 지금은 낮이라서 부엉이나 올빼미는 우리를 볼 수 없단 말예요.˝
˝그래도 그렇지. 수리하면 사냥에는 알아 주는 샌데…˝
˝그렇긴 하지만 굶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한 입밖에 안 되겠지만 안 먹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 같아요.˝
˝안 돼!˝
˝또 쓸데없는 고집을 피우는구려. 저 방울새들은 우리에 비하면 몸도 비교할 수 없으리 만큼 작고 짧게 사니까 있으나마나 한 새라고요. 저렇게 작은 새는 차라리 모두 없애야 우리의 먹이가 될 꿩, 까치, 비둘기 등 큰 새가 많이 클 수 있다고요. 있어 봐야 괜히 먹이만 축 내거든요.˝
˝모르는 소리. 저런 새들이 많아야 우리가 위대해진다구. 우리가 공중에 날아 올라 날개를 쫙 펴고 한 바퀴 돌면 우리를 보고 숨느라고 아우성 칠 것 아냐? 저런 새가 다 없어지고 올빼미나 부엉이만 있다고 생각해 봐. 우리 수리들이 어떻게 되겠어?˝
˝나는 그렇게 어려운 소리는 잘 몰라요. 나는 지금 당장 배가 고프단 말예요. 그러니 어서 꿩을 잡아 주셔요!˝
암놈수리가 화가 나서 쏘아붙였습니다.
˝꿩?˝
˝그래요! 꿩예요!˝
˝꿩 좋지. 누가 꿩 좋은 줄 몰라서 안 잡나? 눈에 뜨이지 않아서 못 잡지.˝
수놈수리가 빈정거렸습니다.
암놈수리는 약이 바싹 올랐습니다.
˝흥! 꿩도 못 잡는 주제에 방울새는 어떻고 어때서 못 먹어!˝
˝뭐! 꿩도 못 잡는 주제라고?˝
˝그래요. 꿩도 못 잡는 바보 같은 남편님! 쫄쫄 굶다가 돌아가셔요!˝
암놈수리가 눈을 하얗게 흘기면서 쏘아 붙이고는 휙 날아갔습니다.
“뭐얏! 지금 뭐라고 했지?”
수놈수리도지지 않았습니다. 목덜미의 털을 곧추 세우면서 발톱을 쳐들고 암놈수리를 쫓아 나갔습니다.
수리 부부는 연못 위 하늘에서 퍼드덕거리면서 심하게 다퉜습니다. 서로 쪼고 할퀴고 하였습니다. 양쪽이 화가 몹시 났기 때문에 싸움은 좀체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 바람에 못가에 숨어 있던 산새들이 슬금슬금 모두 달아났습니다. 먼먼 산 너머로 날아가 숨었습니다.
한참동안 싸우던 수리 부부도 기운이 빠졌는지 서로 떨어져 날아갔습니다.
숫놈수리는 앞산으로, 암놈수리는 뒷산으로 날아갔습니다.
못가에는 다시 고요함이 깃들었습니다. 방울새의 먹이도 되지 못한 보잘 것 없는 하루살이 떼만이 먼지처럼 떠 있을 뿐이었습니다.
뉘엿뉘엿 해님이 지려고 하자 못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산들은 아무렇게나 웅크리고 앉아서 잠자리를 보았습니다. 산비탈에 솜털처럼 나 있는 나무들도 선 채로 잠자리를 보았습니다.
못 속에 잠겼던 빛살들도 아름다운 노을로 변해 못 바닥에 가라앉았습니다.
노을이 되어 가라앉으면서 빛살이 한 마디 했습니다.
“참 우스운 일이군요. 영원히 사는 우리가 볼 때는 하루살이나 방울새나 수리나 다 같이 바늘끝만한 일생을 살고 가는 건 마찬가진데 자기들은 그렇지 않다니 말예요. 하기야 그게 새들 뿐인가요. 사ㄹ….”
그 빛살은 더 말을 하려다가 이내 입을 다물고는 노을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나는 빛살들이 황금빛을 거둔 검은 연못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내려왔습니다.
집에 올 때까지 빛살이 들려 준 얘기가 귀를 쟁쟁 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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