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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병사들과 무지개

창작동화 이동렬............... 조회 수 1527 추천 수 0 2005.03.09 00:05:27
.........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강을 사이에 두고 동쪽 나라와 서쪽 나라가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두 나라가 서로 영토를 넓히려는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전쟁터에는 복달임질을 하는 듯한 복더위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불볕은 땅 위에 살아 있는 듯한 복더위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불볕은 땅 위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을 태워 버리거나 하려는 듯이 기승을 부렸습니다. 그런 속에서 적군을 향해 총을 쏘아대는 병사들의 온몸은 땀으로 멱을 감은 듯했습니다. 눈으로 들어간 땀방울 때문에 조준을 제대로 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병사들은 산병호 속에 엎드려서 눈만 내놓은 채 총질을 해 댔습니다.
산병호 속은 무척 후텁지근했습니다. 불볕에 달궈진 땅에서 내뿜는 열기는 대단했습니다. 숨이 헉헉 막힐 만큼 더운 감이 올라왔습니다.
콩을 볶는 것처럼 요란하던 총소리가 차차 멎으면서 이따금씩 들려 왔습니다.
“제기랄, 이렇게 찌는 날씨는 내 생전 처음이군!”
동쪽 나라의 한 병사가 소매로 눈가의 땀을 훔쳐 내며 투덜거렸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이렇게 무더운 것을 보니 소나기라도 한바탕 쏟아질 것 같군.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후텁지근할 수가 있나.”
옆에 있던 병사가 산병호 속에 털썩 주저앉으며 지친 목소리로 대꾸했습니다.
“비가 쏟아지려면 빨리 쏟아질 것이지, 이렇게 뜸을 들일 것은 뭐람.”
“그러게 말이야. 전쟁도 전쟁이지만 소나기라도 한 줄기 내리면 시원하겠구먼.”
병사들은, 전쟁보다도 식을 줄 모르는 무더위에 더 지친 모습이었다.
총소리가 멎은 전쟁터는 환한 한낮인데도 밤중 이상으로 고요해서 두려움마저 감돌았습니다.
병사들은, 총소리는 멎었지만 강 건너 적군 진지를 감시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언제 또 느닷없이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먹구름이 끼어 있던 하늘에서 굵은 빗발이 하나 둘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빗발은 갈수록 더 거세어졌습니다. 그러다가 이내 소나기로 변했습니다. 주룩주룩 내리는 소나기는 동쪽 나라 땅에도 내렸고, 서쪽 나라에도 내렸습니다.
두 나라의 병사들은 산병호 속에서 비를 맞으면서도 차가운줄을 몰랐습니다. 오히려 너무나 무덥던 참이라 시원함마저 느꼈습니다.
내린 비로 산병호 속에 물이 괴고 병사들의 못이 흠뻑 젖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병사들은 산병호 속에 엎드린 채 비를 맞으며 꼼짝도 않고 적진을 노려보았습니다.
소나기는 근 한 시간 동안을 내리다가 그쳤습니다.
비가 내리고 난 산들은 더욱 푸르렀습니다. 빗물에 말끔히 씻긴 산들을 보니 마음이 상쾌해졌습니다. 짙푸르고 싱그러운 산들의 모습은 병사들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습니다. 산들을 보고 있노라니 고향 뒷산이 생각났습니다.
병사들은 잠시나마 자기들이 전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잊었습니다. 그런 병사들의 눈에는 차츰 어릴 때 추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또 가슴 속마다 꾹 눌려 있던 평화를 사랑하는 초록빛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야! 무지개가 떴다! 무지개가 떴어!”
어린 아이처럼 흥분한 목소리였습니다.
“뭐! 무지개라고? 무지개가 떴다고?”
“어디? 어디?”
“어디 무지개가 떴어?”
그 소리를 들은 다른 병사들은 환호성을 올리며 벌떡 일어섰습니다. 전쟁터에서 싸우는 병사라는 것은 까맣게 잊어 비린 채 말입니다.
정말로 무지개가 산 너머 하늘에 떠 있었습니다. 무지개는 동쪽 나라와 서쪽 나라를 연결한 다리처럼 보였습니다.

무지개다리!
앙숙인 두 나라를 연결한 무지개다리는 찬란한 빛을 내고 떠 있었습니다.
동쪽 나라 병사들은 가슴마다 고운 무지개를 간직했습니다. 병사들의 마음에 자리한 무지개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서쪽 나라 병사들도 동쪽 나라 병사들과 똑같은 마음이었습니다.
두 나라 병사들의 가슴마다 걸쳐진 무지개는 국경선인 강을 건너는 마음의 다리가 되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마음의 다리였습니다.
“야, 나는 말이야. 어릴 때 무지개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구. 한 번은 무지개를 잡으러 간다고 친구들과 산 너머로 쫓아갔다가 길을 잃는 바람에 혼이 난 적이 있었지.”
“하하……. 나만 그런 추억이 있는 줄 알았더니 나 같은 바보가 또 있었군 그래, 하하핫!”
“나는 꽤 클 때까지 저 무지개가 하늘나라로 오르는 다린줄 알았다구. 우리 어머니께서 항상 그렇게 일러 주셨거든. 하늘나라로 오르는 착한 영혼을 위해 천사들이 다리를 놓은 거라고 말이야.”
병사들은 무지개에 대한 자기의 추억을 신바람이 나서 얘기 했습니다. 전쟁을 까맣게 잊어버린 병사들은 모두가 착한 모습이었습니다. 얘기를 하는 병사도 그렇고, 듣는 병사도 그랬습니다. 모두가 어릴 대의 꾸밈없는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하늘에 오랫동안 떠 있던 무지개가 천천히 사라졌습니다. 다시 퇴약볕이 쏟아지자 골짜기마다 물안개가 구름처럼 피어 올랐습니다. 흡사 병사들은 한 폭의 그림 속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두 나라 병사들의 마음을 사로잡던 무지개는 사라졌지만 병사들의 가슴에 한끝씩 걸쳐진 무지개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무지개가 사라지고 다시 제정신이 들었어도 병사들은 다시 총 잡을 생각을 안 했습니다. 무지개로 인해서 되살아난 어릴 때의 고향 생각과 어머님 생각을 완전히 지워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깨어나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병사들은 총을 버려 둔 채 산병호를 기어 나와 팔베개를 하고 나무 그늘에 누웠습니다. 그리고는 두 눈을 지그시 감았습니다.
잠이 들기도 전인데, 감은 눈 속에는 꿈을 꾸는 것 같은 아름다운 환상이 나타났습니다. 병사들은 환상 속으로 빨려들며 나른해진 몸을 모처럼 편안하게 쉬고 있었습니다.
어느 새 병사들은 개구쟁이 아이들 시절로 되돌아갔습니다. 개구쟁이들은 무지개다리를 건너기 위해서 흙 묻은 신발을 벗어 들었습니다. 무지개다리가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에 흙 묻은 신을 신고 건널 수 없었습니다.
개구쟁이들은 다리 저 쪽 나라에 어떤 아이들이 살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도둑 고양이 걸음으로 살살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조심스럽게 건너려고 해도 발을 옮겨 디딜 적마다 음악이 울려퍼졌기 때문에 몰래 건널 수가 없었습니다. 음악 소리는 저 쪽 끝에서도 들려 왔습니다.
이 쪽편 아이들이 다리를 반쯤 건너가고 고개를 빼고 저 족을 넘겨보았습니다. 그러자 저 쪽에서도 고개를 뺀 아이가 나타났습니다. 아이와 아이는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한참 만에 한 아이가 입을 열었습니다.
“아니, 너희들도 무지개다리를 건너오는 중이니?”
“응, 우리는 동쪽 나라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나 보고 싶었던 거야.”
“그러니. 실은 우리도 서쪽 나라 아이들 모습이 궁금했던 참이란다. 그래서 이렇게 다리를…….”
“그랬었니? 우리 나라 아이들 모습도 너희 나라 아이들 모습과 똑같겠지 뭐.”
“이제 보니 정말 그렇구나.”
“그러고 보니 우리는 같은 사람들이네! 얼굴 모습도 같고, 살고 있는 땅 모양도 같고…….”
“맞았어. 다만 저 강이 우리 사이를 떼어 놓은 거야.”
“자, 우리 마음의 문을 열고 서로 악수하자.”
동쪽 나라와 서쪽 나라 아이들은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무지개다리 위에서 악수를 하느라고 바빴습니다.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에 놀라 병사들은 눈을 번쩍 떴습니다. 눈을 떠 보니 무지개다리는 사라졌고 강 건너로 적 진지만이 보일 뿐이었습니다.
병사들은 환상에서 깨어난 게 못내 아쉬운지 누구 하나 총을 잡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총을 잡기는커녕 벌써 병사들의 마음은 상상의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늘 원망스럽게 보이던, 구경을 이루고 흐르던 강물이 오늘은 무척 정답고 평화롭게만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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