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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푸른 바다와 소년

창작동화 이케다............... 조회 수 1721 추천 수 0 2005.03.13 19:5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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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다 다이사쿠

아키코와 히로시는 파도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낯선 땅에 와서 처음 맞는 아침입니다. 아버지의 일자리를 따라 가족이 모두 이 섬에 와서 살게 된 것입니다.
푸른 나무의 그림자가 금빛 모래 위에 무늬를 그리고, 바다 냄새를 실은 바람이 불어옵니다. 그리고 꽃들은 춤추는 나비보다도 더 아름답게 피어 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지?˝
아키코가 바다를 바라보면서 말했습니다.
그러자 오빠 히로시가 말했습니다.
˝친구들이 있으면 좋을 텐데.˝
친구를 사귀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섬사람들의 말은 알아 듣기 어려웠고, 수줍어하는 섬 아이들은 남매와 사귀기를 망설였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키코와 히로시는 매우 외로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파블로라는 소년이 놀러 왔습니다. 파블로는 언제나 쾌활하고, 즐겁게 노는 아이였습니다. 자기가 사는 이 섬 마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그 아이는 남매에게 섬 이곳저곳을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파블로는 아키코와 히로시에게 해적들이 배를 타고 와서 보물을 감추고, 코코넛과 과일을 따먹었다는 곳을 보여 주었습니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이 바위에 가느다란 청록빛 틈새를 만들며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광경도 보여 주었고 카누를 젓는 방법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어느 날 파블로는 아키코와 히로시에게 바닷물 위로 불쑥 뒤틀린 머리를 내민 채 붉게 녹슨 엄청나게 큰 쇠붙이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것은 파도에 시달리며 신음 소리를 내고 있는 난파선이었습니다. 그 위로는 바닷새가 울며 날고 있었습니다.
˝저건 무슨 배일까?˝
아키코가 말했습니다.
˝기분이 나쁜데...˝
˝글세, 뭘까?˝
파블로도 몰랐습니다.
˝할머니께 여쭤 봐야겠어. 우리 할머니는 옛날 일은 무엇이든지 잘 알고 계시니까.˝
파블로는 아키코와 히로시에게 바닷가의 꽃들보다 더 아름다운 빛깔의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는 얕은 바다를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바다는 언제나 푸른 줄로만 알았어.˝
히로시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기 좀 봐! 보라색도, 초록색도 보이네! 저기 저 짙은 푸른색 줄무늬가 보여?˝
˝저건 해류라는 건데, 바다 속의 강이래. 하지만 조심해야 해.˝
파블로가 말했습니다.
히로시는 바다에도 육지에서처럼 강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었습니다.
그 강들은 온 세계의 바다에서 힘차게 흐르고 있습니다.

어느 날 해질 무렵, 파블로는 두 남매를 바닷가로 데려가서 참으로 굉장한 광경을 보여 주었습니다. 붉게 타오르는 저녁 햇살을 받으며 등이 둥근 이상한 동물들이 떼를 지어 모래 위를 엉금엉금 기어다녔습니다.
˝바다 거북이야.˝
파블로가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야, 이상한 동물이다! 어째서 여기 있는 거지?˝
아키코가 숨을 죽이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어디서 온 걸까?˝
˝멀고 먼 바다에서 오는 거야. 알을 낳을 때가 되면 이렇게 여기까지 찾아 오는데, 몇 백만 년 동안 언제나 그랬대. 할머니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어.˝
이튿날, 언제나 먼저 바닷가에 나와 남매를 기다리곤 하던 파블로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남매는 계속 기다렸으나 끝내 파블로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매는 혼자서 낚시하고 있는 파블로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는 반가워하는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이젠 너희와는 안 놀 거야. 할머니한테서 난파선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전쟁 때 너희 나라 사람들이 여기 와서 무슨 짓을 했는지 가르쳐 주셨어.˝
˝우리 나라 사람?˝
˝그래, 너희 나라 사람이 우리 섬을 어떻게 공격했는지 아니? 너희들은 ´적´이야! 난파선은 너희들 나라의 것이래. 가라앉아서 고소해!˝
˝파블로 같은 친구는 필요 없어. 우리가 그의 적이라면, 그는 우리 적인 거야!˝
˝하지만 난 파블로와 친구가 되고 싶어.˝
아키코는 흐느껴 울었습니다.
˝오빠, 어디 가는 거야?˝
˝카누를 타고 바다로 나갈 거야.˝
˝혼자서?˝
˝어때서? 느림보 바다거북도 몇 백만 년 동안이나 먼 바다를 돌아다녔어.˝
아키코는 줄무늬진 바다를 향해 카누를 저어 가는 오빠를 불안스레 바라보았습니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니 먹구름이 몰려오고, 곧이어 비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얕은 바다의 초록빛 물이 짙은 푸른색으로 변했습니다. 하늘이 컴컴해졌기 때문입니다. 히로시는 바닷가로 되돌아가려고 힘껏 노를 저었습니다. 그러나 바다 속에서 무엇인가 카누를 끌어당기는 듯 자꾸 바다 한가운데로 끌려갑니다. 사방에서 산처럼 큰 파도가 출렁거리고 부서진 파도가 히로시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습니다. 갑자기 카누가 삐걱거리더니 마침내 부서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히로시! 여기야! 이리로 헤엄쳐 와!˝
언제 나타났는지 파블로가 소리쳐 히로시를 불렀습니다.
히로시는 간신히 파블로의 카누로 헤엄쳐 갔습니다.
두 소년은 있는 힘을 다해서 노를 저었지만 육지에서 자꾸만 멀어져 갔습니다. 두 소년은 곧 지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물보라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고, 추위 때문에 몸이 으스스 떨렸습니다. 이제 육지는 아무 데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때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다가 파도 사이로 사라져 버리는 커다란 물체가 있었습니다. 혹시 잘못 본 것은 아닐까? 아, 역시 배였습니다!
˝저 배는 우리를 못 보았을 거야!˝
히로시는 울면서 말했습니다.
바로 그때 솟구치는 파도가 두 소년을 그 뱃전 가까이로 밀어올렸습니다.
그러자 햇볕에 그은 늠름하고 힘찬 커다란 손이 흠뻑 젖은 두 소년의 머리를 붙들었습니다!
두 소년을 먼 바다로 밀어낸 것은 해류였다고 소년들을 무사히 집에까지
데려다 준 선장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해류 덕택에 우리 조상들의 작은 배들이 온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었던 거지. 그래서 사람들은 세계 여기저기에 흩어져 살게 된 거란다.˝
˝그럼 파블로의 조상과 우리 조상이 옛날에는 같은 곳에서 살았을지도 모르겠군요?˝
아키코가 물었습니다.
˝형제간인지도 모르겠는걸!˝
˝그래서 히로시가 위험할 때 도와주려고 내가 카누를 저어 갔는지도 몰라.˝
파블로가 말했습니다.
˝형제끼리 어떻게 적이 될 수 있겠어?˝
˝옳은 말이야. 아무도 적이 될 수 없어!˝
히로시가 말했습니다.
˝우리 사람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오직 바다 뿐이야.˝
˝사람들은 때때로 그걸 잊는단 말이야.˝
선장은 슬픈 듯 말했습니다.
선장도 파블로의 할머니처럼 전쟁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걸 잊지 말아야 하는데...˝
그러나 아키코도, 파블로도, 히로시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세 아이는 바다와 선장이 가르쳐 준 것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선장이 다시 배를 타고 떠나는 날, 세 아이는 바닷가로 나가 손을 흔들어 전송했습니다. 파블로와 두 남매는 서로 미워하는 사이가 아니라 이제는 사이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같은 푸른 바다를 건너는 항해자니까요.

그날 밤 바닷가에는 알을 깨고 나온 수많은 아기 바다거북들이 달빛을 받으며 아기작아기작 바다를 향해 기어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시 해류를 타고 항해해야 하는 바다거북의 일생의 시작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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