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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봉동화] 비단고둥의 슬픔

정채봉동화 정채봉............... 조회 수 1798 추천 수 0 2005.03.13 20:04:48
.........
열 살하고 한 살이었을 때, 나는 밤이고 낮이고 물결이 잠자지 않는 바닷가 마을에 살았습니다.
고만고만한 초가들이 바지락 조개처럼 다소곳이 엎드려 있는 마을, 숯불 같은 빨간 꽃이 피는 동백숲 속에서는 충무공을 모신 사당이 있었고, 늙은 오동나무 부부가 살고 있는 언덕빼기에는 종마루가 높은 예배당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 내가 다니던 학교는 푸른 바다가 한눈에 내다보이는 솔밭 모퉁이에 있었습니다. 원래는 충무공 사당의 별채였었는데 학교 건물이 마련되지 않아서 임시로 빌어 쓴 교사였습니다.
만조 때면 학교 뒤 벼랑을 치던 그 파도소리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입!’하고 선생님이 주의를 준 뒤 조용할 때면 열어 놓은 창문 사이로 ‘어헤야 뒈야’로 시작되는, 고기 잡는 마을 어른들의 노랫소리가 바다로부터 아련히 들려 오기도 하였습니다.
방학이 시작될 때나 끝났을 때는 으레 대청소를 하게 마련이지요. 그럴 때면 우리는 창문을 떼어 들고 바닷가로 나가 바닷물로 유리를 반짝반짝 잘 씻어 오던 일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참, 내가 다니던 학교의 운동장 동편에는 묵은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었습니다.
가을이 오면 우리들은 노오랗게 익은 탱자를 따기 위해 탱자나무 울타리에도 우리들 주먹만한 돌멩이를 무수히 집어 던지곤 하였지요. 그런 뒤부터 나는 밤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을 볼 때면 어린 시절 우리가 던진 돌처럼 많은 별들이라는 생각을 한답니다
오월이 되면 피어나는 탱자꽃을 보았는지요? 꽃잎이 하얗고, 아기의 손톱만큼 작고 엷은 꽃인데 향기가 그만큼 짙은 꽃도 드물 것입니다.
탱자나무 가시에다 그 작은 꽃을 꿰달고 달리는 시골 아이들을 상상하여 보셔요.
종이 대신 탱자꽃을 쓰는 팔랑개비놀이.
우리는 시작종이 울리면 그것들을 창틀 사이에 꽂아 놓고 공부하곤 하였습니다. 아아, 그러면 다도해로부터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쉬엄쉬엄 돌아가던 탱자꽃 송이. 교실 안에 은은히 번지던 그 탱자꽃 향기…….
탱자꽃, 탱자꽃을 생각할 때면 으레 그 해맑은 꽃처럼 아련히 떠오르는 얼굴이 있습니다.
이름은 ‘서문이’라고 했는데, 나하고는 4학년 올라와서 짝이 된 사이로 마른 몸에 눈이 큰 사내아이였습니다.
부모 형제도 없이 그의 할머니가 남의 집에 품을 팔아서 살아가는 형편에 그 애는 몹쓸 병까지 지니고 있었습니다.
잘 놀다가도 게거품을 물고 땅바닥에 넘어지는 병, 그 병이 간질이라는 것을 안 것은 한참 후였습니다.
그런 그의 병을 다들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문이와 놀려고 하는 아이들이 드물었습니다.
서문이 또한 아이들과 어울리려고 하지 않았고, 혼자 응달쪽에 우두커니 서서 남들 노는 것이나 구경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따금씩 나한테는 무엇인가를 건네 주곤 하던 서문이었습니다.
버찌나 오디를 따다가 나 몰래 내 가방 속에 넣어 놓는가 하면 소나기가 갑자기 쏟아지는 날, 우산이 없어서 쩔쩔매고 있을라치면 어디서인지 넓적한 토란 잎사귀를 따라 주고 가던 아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추운 겨울에는 따뜻하게 덮여온 돌을 내 손위에 놓아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내가 동화책 같은 걸 빌려 주면 기뻐 어쩔 줄을 몰라하던 서문이.

어느 날이었습니다.
서문이가 우리 집으로 날 찾아와서 빌려갔던 동화책을 돌려주고 간 뒤…….
나는 아버지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왜요, 아빠?”
“거기 좀 앉아라.”
아버지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엄숙하였습니다.
“너 아까 왔다 간 서문이라는 아이하고 친한 모양이지?”
“네, 그래요, 아빠. 서문이는 나쁜 병을 앓고 있어요. 그러나 마음은 참 착한 애예요.”
“나도 안다. 그러나 다음부턴 그 아이하고는 놀라 말아라. 이건 아빠의 부탁이다.”
“왜요, 아빠? 서문이한테서 병 옮을까 봐 그런가요? 서문이 병은 전염되지 않는 병이랬는데요?”
“그것보다는…….”
“그것이 아니면 뭐예요, 아빠?”
아버지는 담배를 피우셨습니다. 안개 같은 연기가 금방 방안에 가득찼습니다.
“그 애 아빠 엄마가 6·25 사변 때 공산군 편을 들다가 죽었거든.”
“그래서요?”
“그래서라니, 이유는 그거야. 이 녀석이 언제부터 이렇게 따지는 버릇이 들었지!”
아버지는 화를 버럭 내셨습니다. 그렇게 화를 낼 일이 아닌 것 같은데도 소리를 질렀고, 마침내는 매를 들고 나의 종아리를 때리셨습니다.
서문이하고 놀지 않겠다고 말할 때까지 나는 아버지의 무정한 매를 맞았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날부터 나는 서문이를 피해 다녔습니다. 무슨 말을 걸어와도 대답조차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나는 늘 비바람 속에서 우는 작은 새의 울음을 듣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먼 산을 자주 보게 되는 슬픔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더니 그 해 늦가을에 아버지의 일자리가 도회지로 옮겨지게 되어서 그 아픔은 뜻하지 않게 덧이 나고 말았습니다.

토요일, 넷째 시간이 끝나고 나는 반 친구들에게 전학을 가게 되었다는 작별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때 나는 맨 뒷자리에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던 서문이의 눈과 마주쳤습니다.
그 눈 속에는 산그리메가 멍석처럼 돌돌 말려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담임 선생님 댁에 들렀다가 반장 친구 집에서 놀다가 해질녘이 되어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길가에 있는 팽나무 뒤에서 불쑥 나타나는 얼굴이 있었습니다. 키가 크고 마른 서문이었습니다.
그는 호주머니 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냈습니다. 그것은 비단고둥 껍질을 꿰어서 만든 목걸이였습니다.
“몇개만 더 끼우면 다 되는데……. 덜 되었지만 그냥 가지고 가.”
“왜?”
“선물이야.”
서문이는 고개를 돌렸습니다.
“고맙다.”
우리는 저녁놀 속으로 어둠이 내리는 길을 나란히 걸었습니다. 하늘 높이서 기러기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도 도시로 가고 싶다…….”
“무엇 하러?”
“공장에 들어가 돈 벌어서 할머니한테 보내드리게.”
“그럼 학교 졸업하고 오지.”
“그러나 나는 안 된대. 병도 있고…….”
서문이는 돌을 찼습니다. 어둠 속으로 돌이 사라졌습니다. 그때 나는 서쪽 하늘에 별이 하나 뜨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집이 보이는 돌담 모퉁이에 이르자 서문이는 발길을 멈추었습니다.
물기 젖은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왔습니다.
“자전거 가게 같은 데 가서 일했으면 좋겠어……. 자전거 수리도 하고… 그렇게 해서 돈 벌어 자전거를 산다면… 자전거 뒤에 너를 태워주고 싶어.”
우리가 이사하던 날이었습니다.
신작로에서 이삿짐을 차에 싣고 있는데 선창쪽이 떠들썩하였습니다.
어른들도 달려가고 아이들도 달려갔습니다. 무슨 일일까. 나도 쫓아가 보았습니다.
어른들 틈으로 바다에서 막 건져 올린 시체를 볼 수 있었습니다.
아, 나는 내 눈을 비비고 보고, 또 보았습니다. 서문이, 그는 틀림없는 서문이었습니다.
어른들의 말로는 바다에 조개를 주우러 갔다가 그렇게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갑자기 발작을 일으켜서 쓰러진 모양인데 그가 채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밀물이 덮쳐 들었나 보다고…….
“아가, 저 세상에 가서는 괄시받지 말고 살아라…….”
서문이의 할머니가 통곡하면서 꼭 쥔 그의 주먹을 펴주었습니다.
아아, 그때 나는 비밀의 문처럼 열리는, 서문이의 손바닥 안에서 보았습니다. 그것은 슬픔의 빛깔이라 할까요.
서문이가 그렇게 힘주어 쥐고 있었던 것은 작은 비단고둥이었습니다.
‘저 비단고둥은… 저 비단고둥은…….’
내 목걸이를 채워 주기 위하여 잡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나의 눈에는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습니다.
그날 밤 도시에는 천둥과 함께 큰 비가 내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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