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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박과 봉숭아

창작동화 마해송............... 조회 수 1599 추천 수 0 2005.03.25 13:46:30
.........
조그마한 집 울타리 밑에 봉숭아의 싹이 터서 하트 모양으로 된 떡잎 두 잎이 예쁘게 피었다.
˝아이, 예쁘기도 해라! 네가 누구냐?˝
하고 굵은 목소리로 물은 이가 있었다.
봉숭아는 고개를 돌려서 그 소리나는 곳을 찾았다.
넓데데하고 길쭉하고 두툼한 떡잎 두 잎이 모양도 없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아유, 못나기도 하지. 당신은 뭐유?˝
하고 봉숭아는 되물었다.
˝나는 박이지! 그렇게 못나 뵈나? 그런데 너는?˝
˝나는 봉숭아지! 봉숭아도 몰라보는구먼!˝
봉숭아는 샐쭉하게 대답했다.
˝오오, 봉숭아로구나! 참 예쁘기도 하다. 다리가 빨간 게 더 예쁘구나! 꼭 병아리 발 같구나!˝
˝병아리는 왜? 봉숭아면 봉숭아지.˝
햇볕이 따뜻하게 쬐어서 제법 따끈따끈했다.
더위에 지칠 때쯤 되니, 햇볕이 지나가고 그늘이 졌다.
집에서 아이가 나오더니 조그만 바가지로 물을 떠서 조심스럽게 주었다.
˝아이, 시원해! 살 것 같다!˝
봉숭아가 말했다.
˝참, 시원하다. 착한 아기다!˝
박도 말했다.
시원한 물을 받아서 몸이 부쩍 늘었다.
하룻밤을 자고 보니 모두 키가 자랐다.
아침 저녁에 아기는 물을 주고 날마다 햇볕이 따뜻해서 자꾸자꾸 자랐다.
며칠이 지나니 봉숭아는 또 예쁜 뾰족한 잎이 2개 피고, 박은 키가 부쩍 자란 위에 다섯 모 진 넓적한 잎이 피고, 그 위에 또 더 큰 잎이 피었다.
더 큰잎은 더 컸다. 그리고 그 위로 또 뻗어 올라가서 또 잎이 피었다.
그렇게 되니, 아침에는 아무렇지도 않았으나 낮이 되어서 햇볕이 가장 따뜻해질 때에는 박잎의 그림자가 봉숭아에 걸려서 봉숭아는 햇볕을 못 보게 되었다.
˝아이, 이게 웬일야!˝
봉숭아가 소리를 질렀다.
˝응, 왜 그래?˝
박이 물었다.
˝갑자기 시원해져서 웬일인가 했더니 당신의 잎이 그늘지게 해 주는구려! 추워 못 살겠소. 어서 비켜 주소.˝
˝오오, 그렇구나! 이거 안 됐구나. 미안하구나.˝
˝어서 비켜 줘요!˝
봉숭아는 쏘아붙였다.
그러나 미안하다고 말한 박잎이 그렇게 큰 게 다른 곳으로 옮겨 갈 수는 없었다.
봉숭아는 화를 발칵 내며 또 종알거렸다.
˝세상에두! 저렇게 못생긴 박이 무엇 하러 세상에 나서 날 못살게 굴어! 아이, 덩치만 큰 게 보기도 싫다.˝
그러니까 박이 대답했다.
˝미안하다. 너는 예쁘기 때문에 아기나 색시들의 귀여움을 받지만, 나는 또 이 모양대로 귀여움도 받고 쓸모도 있단다.˝
˝아유, 당신 같은 걸 누가 귀여워 해!˝
하고 깔깔거리니 박은 점잖게 이렇게 말했다.
˝들어 보아라! 첫째 너에게 아침저녁으로 물을 줄 때에 아기가 무엇에다 시원한 물을 담아 오던? 그게 박이 아니냐? 바가지지! 물을 줄 때에는 내가 아주 긴하거든. 그리고 또 들어 보아라! 세상에서 제일 고상한 꽃이 무엇이냐? 연못에 피는 연꽃을 제일로 치지 않니? 연꽃이야 어디 비길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와 비슷한 꽃이 이른 봄에 피는 목련이구나! 목련도 참 고상한 꽃이지. 고목나무 같은 마른 가지에 잎 하나 없이 큼직한 목련꽃이 활짝 핀 것을 보면 세상에 이런 꽃도 있었나 싶어 모두 쳐다보는구나! 그런데 박꽃은 연꽃에는 물론 비길 수도 없는 일이고 목련에 견줄 수도 없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모두 풀이 죽도록 더위에 시달린 다음 시원한 저녁이 되면 박덩굴에 여기저기 하얀 꽃이 덤덤히 피어서 마치 이른 봄에 피는 목련꽃을 보는 듯이 마음이 맑아지고 시원해지지 않겠니? 더욱이 달이나 있어 보아라. 달밤에 보는 박꽃이란 세상에 이런 꽃이 있었나 싶어 모두들 쳐다보는구나!˝
가만히 듣고 있던 봉숭아는 뾰로통해서 이렇게 말했다.
˝능청스럽게도! 대기는 높이만 대는구나. 아기나 색시들은 봉숭아가 제일이지. 박꽃 쳐다보는 색시란 들어본 일도 없수. 여름이면 색시들은 봉숭아 따다가 백반 가루 섞어서 돌로 꽁꽁 찧어 가지고 손톱 발톱에 동여매고 하룻밤을 같이 자면, 이튿날 아침이면 손톱 발톱이 빨갛게 물들어 예뻐지지 않겠수. 그러면 사랑하는 사람이 그 아름다운 손을 만지작거리고, 또 입을 맞추어 주지 않겠수! 나같이 귀여움 받고 나같이 행복한 꽃이 또 어디 있단 말유. 모르면 국으로 잠자코나 있지 않구! 그렇지만 난 추워서 못견디겠으니 좀 비켜 줘요. 앵! 앵!˝
박은 아무 말이 없었다. 비켜 주지도 않았다. 비켜 줄 수가 없는지도 몰랐다. 봉숭아는 햇볕이 그리워서 못 견디었다. 박잎의 그늘에서 나오려고 애를 썼다. 빨간 다리를 구부려서 그늘 밖으로 갸웃이 나왔다. 저녁때 물 주러 온 아기가 갸우뚱한 봉숭아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아이, 가엾어라. 봉숭아가 박잎에 덮여 밖으로 나오려고 꼬부랑 봉숭아가 됐네! 비가 오면 다른 데로 모종을 해야겠다.˝
비가 왔다.
밤중에 내리기 시작한 비는 아침에도 쉬지 않고 철철 내렸다.
아기는 우산을 받고 울타리 앞으로 나왔다.
˝아이, 가엾어라. 꼬부랑 봉숭아야.˝
하고 꼬부랑 봉숭아를 뽑아서 다른 곳에다 심어 주었다.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많이 괴었기 때문에 옮겨 심은 봉숭아는 마음대로 뿌리를 이리저리 뻗칠 수 있었다.
뿌리가 자리를 잡고 나니 옮겨 싶은 것 같지도 않게 빳빳이 설 수 있었다.
봉숭아는 정신을 차리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띄엄띄엄 봉숭아가 많이 있었다. 박은 보이지 않았다.
시원하기도 하고 섭섭한 생각도 났다.
˝여보, 박은 어디 있소?˝
봉숭아는 이렇게 불러 보았다.
˝오오, 예쁜 봉숭아로구나! 나는 여기 그대로 있다. 너는 옮겨가서 인제 해님이 나면 내가 가리지 않게 되었으니 좋겠다.˝
˝좋구말구요. 어서 해님이 나왔으면 좋겠어!˝
˝예쁜 봉숭아가 멀리 가서 나는 좀 섭섭하구나. 그런데 큰일났다.˝
˝무엇이 큰일야?˝
˝비가 너무 쏟아져서 자꾸 발이 빠지는데 뿌리가 똥더미에 닿은 모양야. 자꾸 저려 오는 게 이상해. 썩은 모양이지?˝
˝호호호호…….˝
봉숭아는 깔깔거리고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웃는 게 아니야. 똥이야 좋은 거지. 우리의 양분이 되니까 좋은 건데, 좀더 썩어야 좋고, 좀더 멀찌감치 있어야 좋은데 이거 큰일이다.˝
˝호호호호…….˝
봉숭아는 깔깔거리고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박은 또 말하는 것이었다.
˝웃을 게 아니야! 사람들도 맛이 있다고 해서 단 것을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이에 벌레가 생겨서 못 쓰게 되지 않나? 얼굴에 분칠하고 연지 찍으면 예뻐지지만 너무 지나치게 하면 그것도 벌레가 생기거든. 우리 예쁜 봉숭아도 너무 치장만 하지 마라. 너무 하면 벌레가 생겨서 병들게 되거든.˝
˝아유, 망측해라! 별소리를 다 하네.˝
봉숭아는 뾰로통했다.
˝그러나저러나 어서 비가 개었으면 좋겠다. 발이 쑤셔서 못 살겠다.˝
박은 한숨을 쉬고 탄식했다.
밤 사이 비가 개고 이튿날 아침에는 해가 번쩍 눈이 부시게 떴다.
봉숭아는 부쩍부쩍 자랐다. 박은 울타리를 타고 자꾸 위로 올라가서 지붕위까지 올라갔다.
봉숭아는 새빨간 꽃이 다닥다닥 피었다. 아기들은 봉숭아를 아름답다고 하고, 곱다 하고, 만지작거리며 예뻐했다.
그럴 때마다 봉숭아는 여봐란 듯이 박을 쳐다보고 생글생글 웃었다.
그러면 박은 언제나
˝참, 봉숭아는 예뻐!˝
˝참, 봉숭아는 아름다워!˝
하고 칭찬해 주었다.

어느 날 밤이었다.
달이 밝았다.
온 울타리와 지붕 위에도 박꽃이 활짝 피었는데 박꽃은 봉숭아를 불렀다. 봉숭아는 잠이 담뿍 들어서 박이 아무리 불러도 깨지 않았다. 바람이 휘익 불었다.
봉숭아를 부르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봉숭아에게 들렸다.
˝으응, 누구야, 날 부르는 게?˝
봉숭아는 겨우 잠이 깨서 잠꼬대같이 말했다.
˝나야, 박이야! 여기를 좀 봐. 박꽃이 많이 피었으니 좀 봐.˝
봉숭아는 어리둥절해서 휘휘 둘러보았다.
이슬을 받아서 싱싱하게 빛나는 푸른 잎 천지에 새하얀 꽃이 동실동실 피어 있는 것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아, 저게 박꽃이야. 어쩌면 저렇게도 아름다울까!˝
봉숭아는 맑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박꽃이 거룩하게까지 보여서 그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만 다시 잠이 들었다.
새벽에 깬 봉숭아는 박꽃을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내가 꿈을 꾸었나 봐! 박꽃이 그렇게 고울 줄은 몰랐어!˝
그러니까 지붕 위에서 박은,
˝하하하하!˝
하고 웃었다.
그날 저녁때 아기는 봉숭아를 따다가 돌로 꽁꽁 찧어서 손톱에 바르고 헝겊으로 동여매고 잤다.

이튿날 아침 일찍이 아기가 일어나서 헝겊을 끄르니 손톱이 모두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아기는 빨간 손톱에 입을 맞추고 좋아하였다.
어머니께 보이고 좋아하였다.
동무들에게 보이고 좋아하였다.
박꽃은 떨어지고 박이 열매를 맺었다.
달걀만해지고, 또 자라 밥바리만해지고, 또 자라서 달님만해졌다.
박은 문득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봉숭아는 모두 시들어 버리고, 마른 가지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날씨가 선선해지고, 밤에는 제법 쌀쌀해졌다.
서리가 내리니 박잎도 모두 누렇게 마르고 달님만한 박만 동그마니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박은 또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울타리 앞 조그만 밭에는 인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기가 봉숭아 씨도 모두 거두어들여 간 모양이었다.
박은 하늘을 쳐다보고 달님을 바라보고 생각했다.
´아아, 봉숭아는 예쁜 꽃이 피었지. 참, 곱고 아름다운 꽃이었어.´
박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집 착한 아기의 손과 발을 아름답게 물들여 주고, 봉숭아는 기뻐했겠지…….˝
박은 또 이렇게 말했다.
˝나도 인제 예쁘고도 단단한 바가지가 되어서 우리 집 착한 아기와 어머니의 손에 쥐어져서 물도 뜨고 쌀도 일어 주고, 봉숭아 못지 않게 귀여움을 받아야겠다.˝
그리고 박은 하루하루 여물어 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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