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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파란 우산

창작동화 이은경............... 조회 수 1439 추천 수 0 2005.03.25 13:47:29
.........
개미집처럼 옹기종기 모여 사는 마을.
그 뒷골목에는 그림 속에 나오는 자그마한 우산 집 하나가 있습니다. 그 집에는 ´비오는 날의 수채화- 우산 수선´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어요. 아빠는 오늘도 미소를 머금은 채, 꾸벅꾸벅 졸고 있습니다. 아빠의 조는 모습은 늘 어린아이처럼 해맑습니다. 아빠는 돈 버는 일에는 관심이 없어요. 더구나 요즘은 우산을 고쳐달라고 오는 사람도 거의 없었습니다.
˝빈 가게 지키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어휴, 내가 식당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우리 세 식구는 쫄쫄 굶고 있을 거예요. 돈 들어갈 데는 많은데……. 돈도 못 버는 일을 왜 그렇게 고집할까?˝
오늘도 엄마는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잔소리를 했습니다.
˝허허, 이상하다? 올 듯 올 듯 하면서도 안 오네. 비가 와야 당신 잔소리가 줄어들텐데 말야.˝
아빠는 언제나 그렇듯 멋쩍은 웃음을 짓곤 했어요.
˝요즘 우산 고쳐 쓰는 사람이 몇이나 돼요?˝
엄마는 톡 쏘아대고 삐그덕 유리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빠는 그런 엄마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어요. 그리고 쌉싸름한 웃음 한 조각을 허공에 날렸습니다.
˝시원하게 비라도 내리면 얼마나 좋을까?˝
아빠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어요.
바로 그때, 따르릉 전화벨 소리가 들렸습니다.
˝여보세요? 거기가 이슬이네 집인가요?˝
˝네. 제 딸아이입니다.˝
˝빨리 사거리에 있는 인형 가게로 와 주셔야겠어요. 당신 딸이 우리 집 인형을 훔치려고 했단 말예요.˝
바늘처럼 뾰족하고 날카로운 목소리였습니다. 아빠의 얼굴빛이 진흙빛으로 변했습니다. 아빠는 가게문도 닫지 않고 부리나케 인형 가게로 뛰어갔어요.
˝슬비야, 못난 애비 때문에…….˝
아빠의 목소리는 가을바람에 힘없이 떨어지는 낙엽 소리 같았어요.
사거리 번화가에 있는 인형 가게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인형 가게로 뛰어가는 아빠의 머리 속은 뒤로 돌아가는 한 편의 영화 같았습니다. 아빠가 슬비만 했을 때, 어린 시절 그 때로 자꾸만 자꾸만 뒷걸음질치고 있었으니까요.

그 해는 비가 유난히도 많이 내렸습니다. 어릴 때 아빠는 지금처럼 비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변변한 우산 하나 없이 언제나 찢어진 우산만 쓰고 다녔으니까요.
어린 아빠의 소원은 바다처럼 파란 우산을 갖는 것이었어요.
˝파란 우산을 쓰고 한 번만이라도 빗속을 걸어 보았으면…….˝
아빠의 발길은 요술에 걸린 것처럼 무지개 빛깔의 우산들이 가득 있는 우산 가게로 옮겨졌습니다.
˝어머머, 쬐그만 게 간도 크지! 이렇게 비싼 인형을 훔치려고 하다니…….˝
커다란 유리문이 열리면서 인형 가게 주인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앗차!˝
아빠는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저어, 제가 이슬비 아버지입니다만, 정말 죄송합니다.˝
아빠는 고개를 떨구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빠의 얼굴이 봉숭아꽃처럼 붉어졌어요. 이마와 콧등에는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처럼 송알송알 땀방울이 맺혔고요.
˝애를 어떻게 가르쳤길래…… 이런 일이!˝
아주머니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호통쳤습니다. 아빠는 선생님께 혼나는 어린아이처럼 어깨를 움츠렸어요. 아빠의 어깨는 추위에 떨고 있는 아기새의 날개처럼 가늘게 떨리고 있었어요. 아빠의 두 눈이 한 쪽 구석에 머물렀습니다. 슬비는 두 팔을 들고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훌쩍거렸어요.
˝슬비야! 어서 일어나서 주인 아주머니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려라.˝
아빠는 덜덜 떨고 있는 슬비의 작은 어깨를 꼬옥 감싸주었습니다. 아빠의 손길이 닿는 순간, 슬비의 울음보가 왈칵 쏟아졌어요.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갑 속에 꼭꼭 숨겨두었던 지폐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훔치려 했던 인형을 슬비의 품에 안겨 주었습니다. 슬비는 울음을 뚝 그치고 멍하니 아빠만 바라보았어요.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겁니다.˝
아빠는 주인 아주머니께 죄송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고 인형 가게를 빠져 나왔습니다.
아빠는 슬비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우산 집까지 왔어요.
˝저- 아빠! 다시는- .˝
슬비는 다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어요.
˝녀석, 팔 많이 아팠지? 참, 아빠가 네게 보여줄 게 있단다.˝
아빠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책상 밑에 숨겨 두었던 먼지 묻은 작은 상자 하나를 꺼냈습니다. 아빠는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 작은 상자를 어루만졌습니다. 상자 안에는 빛 바랜 파란 우산 하나가 누워 있었어요.
아빠는 슬비의 손을 잡고 동화 같은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어린 시절, 파란 우산을 훔치려 했던 가슴속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기 시작했지요.
˝슬비야! 아빠도 너만한 때 꼭꼭 숨겨 두고 싶은 창피한 일이 있었단다. 사실 아빠도 너처럼 갖고 싶었던 물건이 있었지. 바로 이 파란 우산이었지. 호랑이처럼 무서웠던 할아버지는 그 때 아무 말씀 없이 우산 값을 내주셨단다. 그 때 뒤돌아서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어찌나 슬퍼 보였던지……. 그 때부터 난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지. 그리고 그 파란 우산을 보면 그 때의 아버지의 얼굴이 생각나곤 했어. 글쎄, 언제부턴가 파란 우산이 아빠의 마음속에 들어왔단다. 그 때부터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고 부자가 된 것 같았단다. 아빠가 돈은 많이 못 벌지만 마음만큼은 하늘만큼 땅만큼 부자거든. 언젠가 너도 아빠의 마음을 이해하게 될 거야. 슬비야! 언젠가는 네게 이 파란 우산을 꼭 선물로 주려고 했단다.˝
아빠는 슬비의 손에 낡고 빛 바랜 파란 우산을 쥐어 주었어요.
아빠의 눈망울에 촉촉이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새 인형과 빛 바랜 파란 우산을 번갈아 바라보는 슬비의 눈망울에도 소리 없이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아빠는 슬비의 등을 가만히 쓸어주면서 소리 없이 웃었습니다.
그 때였어요. 창밖에는 아빠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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