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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태극기가 지나가면

창작동화 이영호............... 조회 수 1489 추천 수 0 2005.04.07 13:37:10
.........
시험 시간 시작을 알리는 벨 소리가 두 번 길게 울렸습니다.
슬리퍼 끄는 소리가 나고, 이내 1반의 담임인 강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
오셨습니다. 금년에 교대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부임한 예쁘장한 여선생님
입니다. 잘 말아서 포장을 한 시험지를 겨드랑이에 낀 강 선생님을 보자
창배는 금방 아랫배가 무지근하게 아파오면서 오줌이 마려워졌습니다. 조금 전에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금방 또 오줌이 마려운 것입니다.
누구나 조금은 그렇지만, 긴장을 하면 오줌이 마려운 것이 창배의 병이
었습니다.
˝이번에는 2반을 보기좋게 꺾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지난 번 월말
고사처럼 또 1반에게 지면 그 때는........그래, 너희들을 믿는다.˝
출석을 부르고 교실을 나가려다 말고 담임 선생님이 하신 말씀 때문에
더욱 긴장이 되는 셈입니다.
10년 넘게 어린이들을 가르쳐 온 선생님이 올챙이 여선생님이 맡은 반보다도 성적이 떨어진 것이 여간 속이 상하지 않으신 모양이라 아이들은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시험지를 받으면 고개를 옆으로 돌려도 안 되고, 옆 사람과 이야기를
해도 안 돼요. 시험지를 들어서도 안 되고, 소리 내어 읽어도 안 돼요. 알았지요?˝
˝예.˝
강 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이 대답했습니다. 잔뜩 주눅이 든 목소리였습
니다.
˝안 돼요, 안 돼요, 돼요, 돼요.......˝
누군가가 중얼거려서 큭큭 웃음 소리가 터졌습니다.
˝웃지 말아요! 준비가 되었으면 머리에 손을 얹고 모두 눈을 감아요.
그리고 분단장은 앞으로 나와서 시험지를 받아 가요. ˝
강 선생님이 포장한 시험지를 풀면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예쁜 여선
생님도 오늘만은 호랑이 선생님 못지 않게 딱딱해 보였습니다. 같은 학년 끼리 시험 성적을 비교하게 되기 때문에 옆으로 눈길 한 번 돌리지 못하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분단장이 시험지를 받아와 책상 위에 엎어 놓았습니다.
˝자, 그럼 모두 눈을 뜨고 시작해요. 맨 먼저 자기 번호와 이름부터 똑
똑히 쓰도록 해요. ˝
눈을 뜨고 손을 내린 아이들은 낮은 한숨 소리를 토해냈습니다. 엎어놓
은 시험지를 바로 놓고 번호와 이름을 썼습니다.
˝삭삭삭삭.........˝
교실은 글씨를 쓰는 소리가 들려올 정도로 조용했습니다. 강 선생님은
교단 위에 꼼짝도 않고 서서 아이들을 내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창배는 번호와 이름을 쓰고는 먼저 시험 문제를 주욱 읽어 내려가기 시
작하였습니다. 모두 읽어본 후에 한 문제 한 문제 답을 쓰는 것이 시험
시간마다 늘 하는 창배의 버릇이었습니다.
9번 문제를 읽고있던 창배의 눈이 번쩍 하고 크게 떠졌습니다. 그러고
는 비시시 입가에 웃음이 삐져 나왔습니다.
˝선생님, 질문 있어요!˝
창배는 번쩍 손을 들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왜 그래요?˝
˝9번 문제가 이상해요. ˝
˝보이지 않아서 그러니?˝
˝아니예요. 잘 보이기는 하는데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잘 보인다면 어디 한 번 큰 소리로 읽어봐요.˝
창배는 시험지를 들고 웃으며 일어섰습니다.
˝태극기가 자지 앞을 지나갈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창배는 큰소리로 문제를 읽었습니다. 교실이 너무 조용하니까 창배의
목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습니다. 아이들이 와그르르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여자 아이들의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습니다.
˝뭐, 뭐라고?˝
놀란 강 선생님이 남은 시험지를 들춰보는 것을 보고 창배는 다시
˝태극기가 자지 앞을 지나갈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고 큰소리로 9번 문제를 읽었습니다.
˝태극기가 여자 아이들 앞으로는 지나가지 않는 모양이야.˝
˝이 문제는 여자 아이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문제구먼.˝
개구장이로 이름 난 석구와 용일이가 불쑥 말해서 또 한바탕 웃음이 터
져 나왔습니다. 긴장된 무거운 분위기로 잔뜩 움츠러 들어있던 교실이 창
배와 석구와 용일이 때문에 완전히 웃음 바다로 변했습니다.
˝조용해요! ˝
강 선생님이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이건 인쇄가 잘못된 거예요. 그러니까 모두 ´지읏´을 ´기역´으로 고치도
록 해요.˝
˝지읏을 모두 기역으로 고치면 ´가기 앞´이 돼요, 선생님. ´가게 앞´이면
몰라도 그렇게 고치면 ´자지 앞´보다도 더 말이 안돼요.˝
˝석구 말이 맞아요. 그냥 자지 앞으로 그냥 두는 것이 나아요.˝
석구의 말에 용일이가 또 덤을 달고 나서는 바람에 잦아 들었던 웃음이
와그르르 또 다시 터져 나왔습니다.
˝조용해요! 앞의 지읏은 그냥 두고 뒤의 지읏만 기역으로 고쳐서 ´자기
앞´이 되도록 해요. ´지´를 ´기´로 고치는 거예요, 알았어요?˝
강 선생님도 엄한 표정을 무너뜨리고 웃음 띤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9번 문제 때문에 아이들은 긴장을 풀고 시험을 칠 수가 있었습니다.

드디어 시간이 끝나는 벨이 울리고, 시험지를 거둔 강 선생님이 교실을
나갔습니다.
˝너희들 9번 문제의 답이 어느 것이 맞는지 알아?˝
창배가 웃으며 입을 열었습니다.
˝그야 ´차렷 자세로 서 있다´지 뭐.˝
점식이가 아는척 자신있게 대꾸했습니다.
˝똑똑하구나. 자지를 내놓고 차렷 자세로 서 있으면 볼만 하겠다. 그건
신성한 태극기에 대한 모독이야 임마. 그러니까 맞는 답은 4번이야.˝
창배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태극기가 지나가는데 왜 엎드리고 있어야 해?˝
˝그걸 몰라서 물어? 벌거벗고 어떻게 차렷 자세로 서 있니? 재빨리 엎
드려서 부끄러운 것을 감춰야지. 안그래?˝
창배의 말에 아이들이 배꼽을 잡고 개글개을 웃어댔습니다.
˝이 녀석들, 시험을 아주 잘 친 모양이구나. 웃고 야단인 걸 보니.˝

그 때 담임 선생님이 웃으며 들어오셨습니다.
˝선생님, 점식이는 태극기가 지나가면 자지를 내놓고 차렷 자세로 서
있겠대요. 그래서 웃었어요.˝
용일이가 능청스럽게 소리쳐서 또 한바탕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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