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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 할머니의 밭 날짜

창작동화 김문기............... 조회 수 1316 추천 수 0 2005.04.19 14:5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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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는 날마다 이른 새벽이면 밭에 나가셨다. 밭이라고 해야 아파트 옆의 작은 땅이었지만, 할머니는 이른 봄부터 내내 거기서 떠날 줄을 모르셨다.

“종세야, 이렇게 다시 호미자루를 잡으니 살 맛이 나는구나!”할머니는 움쑥움쑥 돋아난 밭고랑의 풀을 뽑으며 기뼈하셨다. 그야말로 맨 처음 서울에 오셨을 때와는 딴판이었다.

“아범아, 날 다시 시골로 보내다오. 여기서는 답답해서 못산다. 시골에서 혼자 농사 지으며 산다니까 왜 날 데려다가 이리 가둬 놓을꼬!”할머니는 아파트 안을 둘러보시며 혀를 끌끌 차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 아빠가 끄다시피 모셔오자 단단히 역정이 나신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온 식구가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을 때였다. 할머니는 모처럼 입가에 웃음꼬리를 매단 채 이야기를 꺼내셨다.

“아범아, 드디어 밭을 찾았단다, 밭을 찾았어!”“네에? 그게 어딘데요?”아빠는 밥숟가락을 들다말고 깜짝놀라 물었다.

“어디긴, 바로 아파트 옆에 있는 빈 땅이지? 세상에, 땅을 그렇게 놀려두다니……. 쯧쯧! 내 거기에다 농사를 지어야겠다!”“아니, 어머니! 도대체 그 돌투성이 땅에다 어떻게 농사를 짓는다고 그러세요? 제발 편안히 좀 계세요!”

“집에 우두커니 앉아 있으면 뭘하노!”할머니는 막무가내로 호통을 치셨다. 그리곤 이른 봄 내내 자갈밭에 매달려 돌을 골라내더니만 마침내 밭을 만들고 씨를 뿌리셨다. 얼마 후 할머니의 밭에서는 누군가 요술을 부린 것처럼 배추, 무우, 상치, 아욱, 파, 고추……. 온갖 야채들이 푸릇푸릇 자리기 시작하였다.

“호호호, 어머니! 그러니까 이게 무공해 채소네요?”처음에 반대를 하던 엄마도 무럭무럭 자라나는 푸성귀를 보며 좋아하셨다. 물론 할머니가 솎아온 온갖 야채들을 자랑삼아 이웃집에게 나눠주고 말이다.

여름이 지나자 할머니는 그 곳에 다시 김장배추와 무우 씨앗을 뿌리셨다. 종세도 가끔 할머니를 따라 밭에 나가서 풀도 뽑고 호미로 밭고랑을 매주기도 하였다.

“종세야, 사람은 그저 땅 고마운 줄을 알아야 하는 거다. 알았느냐?”할머니는 늘 그렇게 말씀 하시곤 하였다. 할머니의 정성과 뜨거운 햇빛, 달콤한 바람, 적당한 비 때문인지 밭은 제법 푸르러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던 종세는 그만 눈이 휘둥그레졌다. 할머니의 밭을 누군가가 커다란 포크레인으로 마구 갈아엎고 있는 게 아닌가? 그 바람에 할머니가 정성들여 가꾼 배추와 무우는 흙속에 파 묻히고 밭은 엉망이 되고 말았다.

“할머니이! 할머니이!”종세는 헐레벌떡 집으로 달려갔다.

“아이구 이 녀석아, 숨 넘어 가겠다! 어디서 오랑캐라도 넘어 온 게야?”할머니는 종세를 보며 호물호물 웃으셨다.

“할머니, 어, 어떤 아저씨가 할머니 밭을 마구 파헤치고 있어요!”“뭐라구? 밭을…… 파헤치다니!?”할머니는 그 말을 듣자마자 미처 붙잡을 틈도 없이 종종걸음으로 내달리셨다. 종세와 엄마도 허둥지둥 그 뒤를 따라갔다.

“아니, 이런!”할머니는 흙 속에 뒤집혀져 있는 배추, 무우를 넋이 나간 듯 바라보셨다. 그러다가는 다짜고짜 포크레인을 향하여 달려가셨다.

“네 이노옴! 누가, 누가 이렇게 하라더냐, 응? 누가 내 밭을 갈아 엎으라고 했어, 엉!”“아니, 저 할머니가……?”포크레인이 멈추고 그 옆에 있던 뚱뚱한 아저씨가 달려왔다.

“할머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여긴 집 지을 땅이란 말이예요! 벌써 한달 전부터 여기다 집을 지을 꺼라는 팻말을 써붙였잖아요! 저기 보세요!”뚱뚱한 아저씨는 다짜고짜 한 귀퉁이에 손바닥만하게 세워놓은 팻말을 가리켰다. 할머니가 까막눈이라는 것도 모르면서 말이다.

“뭐, 집을 짓는다구? 누구 맘대로?”“허, 참! 할머니, 누구 맘대로라니요? 이게 할머니 땅이예요? 할머니 땅도 아니면서 이 때까지 공짜로 채소를 심어 드셨으면 됐지, 도대체 왜 그러세요?”“이 놈들아, 그래, 너희 눈에는 이 배추랑 무우가 안보이던? 응? 어떻게 이걸 파 엎어버릴 수가 있는 게냐! 안된다, 안돼!”

할머니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나시는지 펄펄 뛰셨다.

“아저씨, 나뻐요! 배추가 다 자랄 때까지 기다리면 되잖아요! 우리 할머니가 얼마나 정성껏 가꾼 건데…….”종세도 울먹이며 말했다.

“허허, 꼬마야, 너까지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거냐? 그래, 그까짓 푸성귀 나부렁이 때문에 내 땅에다 내 집도 맘대로 못짓는단 말이냐? 우리도 지금 급하단다! 겨울이 오기 전에 어서 집을 지어야 하거든.”“그럼, 우리 할머니는 어떡해요?”“아, 이 녀석아 그거야 너희 집 사정이지! 바빠 죽겠는데 참 별 일이 다 많구먼! 어이, 김기사, 빨리 땅 안파고 뭐해, 어서! 흠!”뚱뚱한 아저씨는 헛기침을 하며 기사 아저씨를 다구쳤다.

“저런, 저런! 내, 배, 배추!”할머니는 그만 그 자리에 폭삭 주저 앉으셨다.

“할머니이, 할머니이!”“어머니, 정신 차리세요!”종세와 엄마는 간신히 할머니를 부축하여 집으로 돌왔다.

할머니는 그 날부터 앓아 누우셨다. 종세는 어쩌면 할머니가 어딘가에 다시 할머니의 밭을 만드실 때까지 그렇게 누워 계실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세는 할머니의 밭이 있던 자리에 철근이 세워지고, 콘크리트 벽이 생기는 걸 보며, 문득 그 밭에서 노오란 장다리꽃처럼 웃던 할머니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러다간 무심코 길에 버려진 나무상자를 보곤 눈을 반짝였다.

‘그래, 저거야! 할머니한테 갖다 드리자!’종세는 부지런히 그 나무상자에 할머니가 일년 내내 주무르고 만지던 향긋한 흙을 가득 퍼담았다. 그리곤 낑낑대며 그걸 집으로 가져갔다.

“할머니, 이것보세요! 제가 할머니의 밭을 가져왔어요! 자, 보세요! 진짜 흙이라니까요! 여기다 다시 씨를 심으면 싹이 날꺼예요! 할머니는 이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농부니까요!”

종세는 힘없이 의자에 앉아있는 할머니 코 앞에 흙이 담긴 나무상자를 내밀었다. 할머니는 그걸 바라보다간 입을 열었다.

“저기, 베란다에 놓으면 되겠구먼, 거긴 햇빛이 잘드니까…….”“그렇지요, 할머니?”종세는 할머니의 얼굴에서 조금씩 조금씩 웃음이 피어나는 것을 보며, 할머니 손을 꼬옥 잡았다. 언젠가 또다시 요술처럼 나무상자에서 푸릇푸릇 채소가 자라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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