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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산골 아이

창작동화 황순원............... 조회 수 1929 추천 수 0 2005.05.07 23: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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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곰이란 놈은 가으내 도토리를 잔뜩 주워 먹고 나무에 올라가 보아서 아프지 않아야 제 굴을 찾아 들어가 발바닥을 핥으며 한겨울을 난다고 하지만, 가난한 산골 사람들도 도토리밥으로 연명을 해 살면서 일간 가득히 볏짚을 흐트려뜨려 놓고는 새끼를 꼰다, 짚세기를 삼는다, 섬피를 엮는다 하며 한겨울을 난다.
산골 사람들이 어쩌다 기껏 즐긴대야 정말 곰만이 다니는 산골길을 넘어서 주막을 찾아가는 일이다. 안주는 도토리묵이면 그만이다. 그러다 눈 같은 것이라도 만나면 거기서 며칠이고 묵는 수밖에 없다. 옷을 입은 채 뒹굴면서. 그러노라면 안주로 주머니 속에 넣고 온 마늘이 체온에 파랗게 움이 트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아직 숫눈길이어서 곰의 발자국 같은 발자국을 내면서 돌아온다.
진정 이런 가난한 산골에서는 눈이 내린 날 밤 도토리를 실에다 꿰어 눈 속에 묻었다 먹는 게 애의 큰 군음식이었다. 그리고 실 꿰미에서 한 알 두 알 빼 먹으며 할머니한테서 듣고도 남은 옛 이야기를 다시 되풀이 듣는 게 상재미다.
˝할만, 녯말 한 마디 하려마.˝
하고 조를라치면 할머니는 으레,
˝얘, 이젠 그만 자라, 너무 오래 앉아 있다가 포대기에 오줌 쌀라.˝
한다.
˝싫어. 녯말 한 마디 해 주야디 머.˝
˝녯말 너무 질레하믄 궁하단다.˝
˝싫어. 그 여우 녯말 한 마디 해 주야디 머.˝
그러면 할머니는 그 몇 번이고 한 옛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게 싫지 않은 듯이 겯고 있는 실꾸리를 들여다보면서,
˝왜 여우고개라고 있디 않니?˝
하고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면 또 애는 언제나같이,
˝응, 있어.˝
하고 턱을 치켜들고 다가앉는다.
˝거긴 말이야. 녯날부터 여우가 많아서 여우고개라고 한단다. 바루 이 여우고개 넘은 마을에 한 총각애가 살았구나. 이 총각애가 이 여우고개 너머 서당엘 다넸는데 아주 총명해서 글두 썩 잘 하는 애구나. 그른데 하루는 이 총각애가 전터럼 여우고갤 넘는데, 데 쪽에서 꽃 같은 색시가 하나 나오드니 총각애의 귀를 잡고 입을 맞촸구나.
그러드니, 꽃 같은 색시가 제 입에 물었던 알록달록한 고운 구슬알을 총각애 입에다 넣어 주었닥 총각애 입에서 도루 제 입으로 옮게 물었닥 했구나. 총각애는 색시가 너무나 고운데 그만 홀레서 색시가 하는 대루만 했구나. 이르케 구슬알 옮게 물리길 열두 번이나 하드니야 꽃 같은 색시가 아무 말 없이 아까 온 데루 가버렜구나. 저녁때 서당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두 꽃 같은 색시는 아츰터럼 나와 총각애 입을 맞추구 구슬알 옮게 물리길 열두 번 하드니야 아츰터럼 온 데루 가 버렜구나. 이르케 날마다 총각애가 서당에 가구 올 적마다 꽃 같은 색시가 나와 입 맞촸구나. 그른데 날이 갈수록 총각앤 몸이 축해 가구, 글 공부도 못해만 갔구나. 그래 하루는 훈당이 총각애보구 왜 요샌 글두 잘 못 외구 얼굴이 상해만 가느냐구 물었구나. 그랬드니 총각앤 그저 요새 집에서 농사일루 분주해서 저녁에 소 멕이구 꼴 베구 하느라구 그렇디, 몸만은 아무 데두 아픈 데가 없다구 그랬구나. 그래두 총각앤 나날이 더 얼굴이 못돼만 갔구나. 그래 어느 날 훈당이 몰래 총각애의 뒤를 쫓아가 봤구나…….˝

여기서 할머니는 엉킨 실을 입으로 뜯고 손끝으로 고르느라고 이야기를 끊는다.
애는 이내,
˝그래서? 응?˝
하고 재촉이다.
˝그래 숨어서 꽃 같은 색시가 총각애 입에다 입 맞추구 구슬알을 열두 번씩이나 물레 주는 걸 봤구나. 그래 다음 날 훈당은 총각앨 불러서 꽃 같은 색시가 구슬알을 물레 주거들랑 그저 꿀꺽 생케 버리라구 닐렀구나. 그리구 만일 구슬알을 생키디 않구 꽃 같은 색시가 하라는 대루만 하다간 이제 죽구 만다구 그랬구나. 이 말을 듣구 총각앤 훈당이 하라는 대루 하갔다구 했구나. 그른데 그 날두 훈당이 몰래 뒤따라가 봤드니 총각앤 구슬알을 못 생켔구나.˝
여기서 이야기 듣던 애는 또,
˝생켔으믄 돟을걸, 잉?˝
한다.
˝그럼. 그래 총각앤 자꾸만 말 못 하게 축해 갔구나. 그래 훈당이 보다못해 오늘 구슬알을 생키디 않으믄 정 죽구 만다구 했구나. 그리구 꽃 같은 색시가 구슬알을 물레 주거들랑 그저 눈을 딱 감구 생케 버리라구까지 닐러 주었구나. 그 날두 총각애가 여우고개 마루턱에 니르니낀, 이건 또 나날이 고와만 가는 꽃 같은 색시가 언제나터럼 나오드니, 총각애의 귀를 잡구 입을 맞추구 구슬알을 물레 주었구나. 총각앤 정말 눈을 딱 감으믄서 구슬알을 생케 버렜구나. 그랬드니 지금껏 꽃같이 곱던 색시가 베란간 큰 여우루 벤해 개지구 그 자리에 죽어 넘어뎄구나. 총각애가 눈을 떠 보니낀 눈앞의 꽃 같은 색시는 간데없구 큰 여우 한 마리가 꼬리를 내벋티구 죽어 넘어데 있디 않갔니? 그만 너무 무서워서 그 자리에 까무러티구 말았구나. 그 날두 훈당이 몰래 뒤따라갔다가 총각앨 업구 왔구나.˝
예서 애는 또 언제나처럼,
˝그럼 그 총각앤 어떻게 됐나?˝
한다.
할머니는 정한 말로,
˝사흘만 더 있었으믄 죽구 말 걸 훈당 때문에 살았디. 그래 그 뒤부턴 훈당 말 잘 듣구 공부 잘해 개지구 과거 급데했대더라.˝
˝그리구 여우 새낀?˝
˝거야 가죽을 벳게서 돈 많이 받구 팔았디.˝
˝지금두 여우가 고운 색시 되나?˝
˝다 녯말이라서 그렇단다.˝
여기서 애는 나무하러 가는 아버지를 따라가 내려다본 아슬아슬한 여우고개의 가파른 낭떠러지를 눈앞에 떠올리며, 사실 그런 곳에서는 지금도 여우한테 홀릴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할머니가 그냥 실꾸리를 결으며,
˝이젠 자라, 얘.˝
한다.
그제야 이 가난한 산골 애는 도토리 꿰미를 들고 이불 속 깊이 들어간다. 곰 새끼처럼. 거기서 애는 이불을 쓰고, 자기만은 그런 옛말을 다 알고 있으니까 어떤 꽃 같은 색시가 나와도 홀리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하며, 도토리를 먹으며 하다가, 그만 잠이 든다.
그런데 꿈 속에서 애는 꽃 같은 색시가 물려주는 구슬을 삼키지 못한다. 살펴보니 아슬아슬한 여우고개 낭떠러지 위이다. 그러니까 꽃 같은 색시는 여우가 분명하다. 할머니가 그건 다 옛 이야기가 돼서 그렇다고 했지만 이게 분명히 여우에 틀림없다. 그래 구슬알을 아무리 삼켜 버리려 해도 안 넘어간다. 이러다가는 여우한테 홀리겠다. 그러면서도 색시가 너무 고운 데 그만 홀려 하라는 대로만 하지 구슬은 못 삼킨다. 이러다가는 정말 큰일나겠다. 어떻게 하면 좋은가. 옳지, 눈을 딱 감고 삼켜 보자. 눈을 딱 감는데 발 밑이 무너져 낭떠러지 위에서 떨어지면서 깜짝 잠이 깬다. 입에 도토리알을 물고 있었다. 애는 무서운 꿈이나 뱉어 버리듯이 도토리알을 뱉어 버린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이면 이 가난한 산골 애는 다시 도토리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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