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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회 눈높이문학] 미술관 호랑나비

신춘문예 김현화............... 조회 수 1577 추천 수 0 2005.05.25 14:40:12
.........
제8회눈높이아동문학상-단편

봄 햇살이 비단실처럼 덮이는 미술관 잔디밭에 눈에 익은 그림들이 전시됩니다.
벌써 삼년째 사람들과 만나는 그림들입니다.
미술관을 지은 화가의 세 번째 추모식과 함께 열리는 전시회였습니다.
“내가 눈을 감거든 꼭 삼 년간만 내 그림들을 잔디밭 봄 햇살 속에 놓아주시오”
미술관을 지는 화가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화가가 자신의 그림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하여튼 화가의 유언대로 봄이면 미술관 잔디밭에 그림들이 전시되었습니다. 모두가 하나같이 훌륭한 작품들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그림은 ‘호랑나비’라는 작품이었습니다. 붉은 꽃잎이 노을처럼 출렁이는 커다란 화폭에 선명히 들어앉은 호랑나비 한 마리. 화려한 줄무늬 날개를 펼치고 한껏 멋스럽게 나는 호랑나비 그림은 사람들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굉장히 생생해. 저 꽃 넝쿨이랑 호랑나비 좀 봐. 진짜 살아 있는 것들 아닐까?˝
궁금증을 참지 못한 손들이 더러 손자국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아니 그 보다 더한 일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앗,움직였어. 호 호랑나비가 움직였다고!”
˝에이,그림이 너무 생생하다보니까 착각한 거야˝
“아니야.내 눈으로 똑똑히 봤단 말이야.. 저 꽃잎 보이지 아래로 떨어진? 호랑나비 날개짓에 떨어진 꽃잎이라니까. 어휴,정말 내 눈이 잘못된 건가?”
결국 말하는 사람,듣는 사람 모두가 의아해지고 마는 일들이 늘어났습니다.
‘호랑나비’그림에 대한 소문은 꼬리를 물고 숱한 관람객을 불러모았습니다.마지막 전시회가 되는 세 번째 봄에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겨우 그 그림을 관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림 속 호랑나비는 행복했습니다. 조금 소란스럽기는 하지만 사람들의 경탄과 이목이 자신에게 집중되는 일이 기분 좋은 일이었으니까요.

꿀은 언제든지 따먹을 수 있게 지천으로 널렸습니다.
햇살은 풍성해서 잠시 잠깐이라도 우울한 기분에 빠질 틈이라도 없었습니다.
바람도 적당하고 무엇보다 화가의 영혼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필요한건 없니?”
화가의 영혼은 찾아올 때마다 같은 것을 물었습니다.
“아니요 전혀요.”
그림 속 호랑나비는 힘있게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그래... 그런데 나는 왠지 너에게 자꾸 무언가를 해주고 싶구나. 올 봄이 끝나기 전에 말이야. 왜 그럴까.....”
화가의 영혼은 미술관 잔디밭을 거닐며 생각에 빠집니다. 그 얼굴이 무척 슬퍼 보입니다.
그런 어느 날입니다. 미술관 탱자나무 군락 속에서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습니다. 한 탱자나무 가지에 안 보이던 것이 불쑥 나타난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훨씬 그 이전부터 생겨난 건지도 모르지만.
처음엔 무슨 열매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탱자나무에 어울리는 열매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 저게 뭘까? 바삭바삭 나뭇잎 같기도 하고... 무슨 자루 같기도 한데... 저 안에 뭐가 들어 있는 거지?˝
그림 속 호랑나비는 그 초록빛 주머니로 둔 눈을 떼지 않습니다.아주 작은 움직임이 분명히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하루 ,이틀,사흘... 얼마를 더 보냈을까. 그 초록색 자루가 꿈틀꿈틀 눈에 띄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더니 자루가 터지듯 갈라지면서 무언가 모습을 꺼내는데.
˝뭐야!˝
왠지 낯익은 곤충의 머리입니다. 뒤이어 몸통이 드러나고 쪼글쪼글 달라붙은 날개가 나타났습니다.
“저게 뭐지?많이 본건데”
허물 벗듯 벗어 던진 초록빛 주머니가 힘없이 땅으로 떨어집니다.
이윽고 탱자나무에 매달린 곤충이 서서히 날개를 펼칩니다.
햇살을 받으며 마침내 그 곤충의 화려한 날개가 펼쳐졌을 때
“앗,저건 나비잖아!˝
그림 속 호랑나비의 비명이 터졌습니다.탱자나무 호랑나비는 천천히 하늘을 선회하며 몸을 풉니다. 그 얼굴이 매우 흡족한 표정입니다.
˝이렇게까지 아름답게 우화 할 줄 몰랐어˝
우화? 그림 속 호랑나비의 귀가 솔직해집니다.하지만 미동도 없이 앉아서 탱자나무 호랑나비를 지켜보는 일은 멈추지 않습니다.탱자나무 호랑나비 한참을 이리저리 쏘다닙니다.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오기도 하고 잔디밭에 숨듯 엎드렸다 일어서기도 하고.
그 모습을 뚫어지게 지켜보며 그림 속 호랑나비는 이상한 감정을 느낍니다.뭐랄까.
놀라웁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조금 반가웁기도 하지만 왠지 한편으론 화가 나는 것도 같은.
“아 배고파라.뭣 좀 먹어야겠어”
탱자나무 호랑나비는 붉은 꽃이 물결치는 화가의 그림을 향했습니다.
˝우와아,정말 먹음직스럽다.˝
그러나 아무리 입을 대고 빨아도 꿀을 찾을 수 없습니다.˝참 맛없는 꽃이네. 모양만 화려하고˝
탱자나무 그림 속 호랑나비도 고개가 갸웃거려집니다.
‘바보같은 녀석,맛만 좋구만.’하면서 붉은 꽃속에서 쭈욱 꿀을 빨아올립니다.쩝.
˝저 호랑나비 좀 봐.그림 속의 꽃을 진짜 꽃으로 아나본데.˝
˝하기는 ”
호랑나비 그림 앞에서 팔랑대는 탱자나무 호랑나비를 가리키며 관람객들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모두들 그럴 만하다고 감탄하면서 말입니다. 탱자나무 호랑나비는 아직 그림 속 호랑나비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습니다. 다시 그림 속으로 다가서서 어디 꿀이 나오는 꽃은 없을까 하는 데에만 신경을 쓰고 있으니까요.
오래지 않아 탱자나무 호랑나비의 눈에도 그림 속 호랑나비가 들어옵니다.
˝안녕.난 오늘 우화해서 나온 성충이야. 넌 언제 우화해서 나왔니?˝
그림 속 호랑나비는 살짝 눈 끝에 주름을 모읍니다.
“우화가 뭔데?”
탱자나무 호랑나비가 목소리를 높입니다.
“뭐냐니? 우리가 허물을 벗고 마침내 성충인 나비가 되는 게 우화잖아.”
“무슨 허물?”
“번데기!”
“번데기?”
그림 속 호랑나비는 다시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번데기라니?
˝난 번데기가 뭔지 몰라.˝
그림 속 호랑나비는 솔직하게 시인합니다.
“네가 호랑나비인 건 분명한데....”
탱자나무 호랑나비가 그림 속 호랑나비를 오목조목 훓어봅니다.
“맞아.난 호랑나비야.”
“그런데 넌 왜 번데기였던 기억이 없어?”
그림 속 호랑나비는 말문이 막힙니다. 머릿속이 멍합니다.
탱자나무 호랑나비의 그 말은 충격이었습니다.
‘맞아! 번데기에서 우화한 것이 나비라면 나도 그런 기억이 있어야 하는데....´
그림 속 호랑나비가 심각한 고민에 빠진 사이 탱자나무 호랑나비는 꿀을 찾아 날아가 버립니다.
그림 속 호랑나비는 화가의 영혼을 기다립니다.화가의 영혼은 날마다 미술관 잔디밭으로
달빛이 싸락싸락 쌓일 때 찾아왔습니다. 늘 피우던 파이프도 그대로 입에 물고. 그리곤 미술관의 그림들을 하나하나 돌아봅니다. 어떤 그림 앞에선 고개를 끄덕이고 어떤 그림 앞에선 희미하게 웃습니다.하지만 호랑나비 그림 앞에선 늘 우울한 눈빛을 지었습니다.
아주 작게 한숨을 토하면서.
언젠가 호랑나비가 화가의 영혼에게 물었습니다.
“왜 저를 볼 땐 슬픈 눈을 하세요?”
“너에게 꼭 뭔가를 해줘야겠는데 그게 생각이 잘 안 나는구나.”
“왜 꼭 해 주고 싶으신데요?”
“너에겐 미안하다만 내 그림들 중에서 가장 미흡하게 여겨지는 게 너이기 때문이지.”
“미흡하다고요? 말도 안돼요.사람들은 저를 보기 위해서 한나절씩 줄을 서는 걸요. 그리고 말해주지요. 정말 완벽하다고요.”
그 말을 듣자 화가의 영혼은 다시 슬픈 눈이 되었습니다.
“아니야.정말 너에게 미안하다만 너에겐 무언가 빠진게 있어. 난 그것을 채워주고 싶단다 그래야 내가 화가로 살아온 삶이 헛되지 않을 것 같아. 삼년간 그림을 전시해 달란 유언도 그래서 남긴 거란다.”
“네에?”
사람들은 화가가 자신의 그림을 너무 사랑해서라고 말했습니다.하지만 그 유언에는 좀 더 깊은 뜻이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호랑나비야.오늘 하루도 잘 보냈느냐?”
어느새 화가의 영혼이 찾아와 호랑나비를 부릅니다. 호랑나비는 대뜸 물었습니다.
˝전 호랑나비잖아요.그런데 왜 번데기에서 우화한 기억이 없죠?정말 기억이 없어요. 왜 그런 건가요?˝
화가의 영혼이 조용히 일렀습니다.
“호랑나비야,넌 내 붓 끝에서 태어났단다. 너는 내 붓 속에서 우화한 거야.”
아아 그래서 번데기에 대한 기억이 없었군요. 쉽게 수긍하면서도 왜 그런지....
왜 그런지 호랑나비의 가슴은 씁쓸합니다.
“호랑나비야, 전시회가 끝나면 난 영원히 하늘나라로 간단다.그 전에 네게 뭔가를 꼭 해줘야겠는데.뭐 필요한건 없니?”
전 같으면 아니, 전혀요 하고 대답했겠지만 지금은 선뜻 입을 열지 못합니다.
가슴 속에서 무언가 필요한 게 꼭 있다고 메아리쳐 오고 있었습니다. 화가의 영혼처럼 아직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를 뿐.
“생각 좀 해보고요.”
탱자나무 호랑나비는 매일 그림 속 호랑나비를 찾아왔습니다.
“네 꽃들은 너무 철이 없어. 모양만 화려하게 가꾸지 꿀은 한 모금도 없잖아.어쩜 먹어보는 것마다 맹물 맛뿐이니?”
수다도 심하고 떼도 잘 부렸습니다.
˝넌 왜 그 꽃밭에서 꼼짝도 않니? 나는 너처럼 꽃으로 넘치는 화원을 가지고 살지는 못하지만 그렇게 으스대지는 않아.적어도 친구라면 매일 내 다리 품만 팔게 하지는 않는다고.너도 한번쯤은 내 탱자나무로 놀러왔어야 하잖아?˝
속사포처럼 쏘아놓고 훌쩍 사라졌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으며 나타납니다.
“그래도 미술관 잔디밭에 있는 호랑나비는 너랑 나뿐이잖아. 화해해.”
어느 날은 참새에게 쫓겨오고 어느 날은 장난 심한 아이들 등쌀에 쫓겨와서 숨겨달라고 울상을 지었습니다.그 때마다 그림 속 호랑나비는 짜증이 납니다.
“날보고 어쩌란거니? 아이 참. 빨리 그늘진 저 꽃잎 사이로 앉아. 그리고 죽은 듯이 가만 있어.”
그림 속 호랑나비는 구석진 자리를 가리킵니다. 여느 꽃잎보다 어두운 빛으로 그려진 꽃잎 자리였습니다. 탱자나무 호랑나비는 재빨리 날개를 접고 그리로 숨습니다.
“휴 살았다.”
줄을 선 관람객들은 그런 탱자나무 호랑나비의 행동을 매번 무심히 보아 넘깁니다.호랑나비가 그림 속의 꽃을 진짜로 여길 만도 하다고 생각했으니깐요. 탱자나무 호랑나비는 꽃잎 속에 숨어서 중얼거립니다.
“어떻게 해야 너처럼 맘놓고 살 수 있겟니?”
“사람들에게 붙잡혀서 박제라도 해달라고 하렴.”
“박제? 그럼 너도 박제된 거니?˝
“무슨 소리.난 붓끝에서 우화한 거야. 이 모습 그대로. 박제라니.”
그림 속 호랑나비는 탱자나무 호랑나비를 향해 눈을 길게 흘겼습니다.눈치없는 탱자나무 호랑나비가 다시 속을 긁습니다.
“그런데 번데기 꿈을 꾸어보고 싶진 않니?”
“뭣 하러? 난 이대로 완벽해.사람들이 나를 향해 줄서는 거 안보여? 이 좋은 꽃밭 놔두고 왜 괴로운 세상으로 나가겠다니. 휴, 네가 사는 모양을 보니까 꿈이라도 난 그건 싫다.”
그림 속 호랑나비는 훼훼 손을 흔들며 두 번 다시 그런 소리 말라고 말을 막습니다.
봄볕이 훈훈하게 잘도 타는 오후, 그림 속 호랑나비는 갸뭇 졸고 있었습니다.
“여기가 정말 네 화원이니?”
“그럼!”
“들어가 봐도 돼?”
“맘껏!”
왁자지껄한 소리에 눈을 번쩍 뜬 호랑나비는 입이 벌어집니다. 어디서 몰려왔는지 새까만 나비 떼가 화단을 덮친 것입니다.
“너희들 뭐 뭐야? 여긴 내 화단이야.”
그림 속 호랑나비가 고함을 질렀습니다. 그러자 탱자나무 호랑나비가 씨익 웃으며 넉살을 뗍니다.
“우린 친구니까 내 화단도 되겠지? 얘네는 제비나비들이야.생긴건 이렇게 까맣고 못생겼어도 우리랑 나비인건 분명해. 오늘 우리 화단에 놀러온 거야.얘들아,맘껏 놀아˝
탱자나무 호랑나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제비나비들은 꽃물결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타고 오르고 구르고 닥닥 긁어대고... 그림 속 호랑나비는 참을 수 없었습니다.
˝비켜비켜.모두 떨어져. 이 바보 녀석들아!˝
제비나비들은 기분이 상했습니다.
“쳇 , 별맛도 없는 꽃이나 키우고 살면서.”
“가자 가. 인정머리 없는 호랑나비 녀석 같으니.”
제비나비들은 올 때처럼 왁자지껄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주눅든 탱자나무 호랑나비가 어정쩡하게 서 있습니다.
“너도 꼴도 보기 싫어. 난 처음부터 네가 싫었어. 번데기니 우화니 하면서 잘난 척 할 때부터.한번 더 말해두겠는데 여긴 내 화단이야. 네 집은 저기 가시가 콕콕 박힌 썰렁한 탱자나무 속이라고. 알았어?”
그림 속 호랑나비는 틈을 주지 않고 탱자나무 호랑나비를 공격합니다.
“다신 여기로 찾아오지도 말고 아는 척도 하지마.”
냉정하게 잘라 말하고 그대로 꽃무더기 속으로 들어 앉았습니다. 머뭇머뭇.탱자나무 호랑나비가 입을 엽니다.
“화가 났다면 사과할게. 미안해.....저기 나는 너를 자랑하고 싶었어.네가 내 친구란 걸 말이야..... 갈게.”
“........”
꽃잎 속에선 대답이 없습니다.탱자나무 호랑나비는 잠시 머뭇거리다 돌아섭니다.봄비는 연이어 추적추적 쏟아집니다.미술관 잔디밭의 그림들은 모두 전시실로 옮겨졌습니다. 호랑나비
그림은 잔디밭이 마주 보이는 곳에 전시되었습니다. 그림 속 호랑나비 눈길이 자주 창 밖 탱자나무로 향합니다. 탱자나무 호랑나비가 궁금합니다. 벌써 며칠 째 보이지 않는 탱자나무 호랑나비입니다.
“왜 안보이지? 어딜갔나?”
다시는 안볼 것처럼 화를 냈지만, 막상 탱자나무 호랑나비가 보이지 않자 걱정이 되었엇습니다. 그림 바깥으로 날아서 가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듭니다. 하지만 곧 그 생각을 접습니다. 궁금해하던 주인공이 나타났으니까요.
˝헤!˝
창문 밖에서 탱자나무 호랑나비가 헤벌쭉 웃고 있습니다.. 비에 흠뻑 젖어서 더듬이가 축 처진 꼴이 매우 우스웠습니다.
“칫”
그림 속 호랑나비는 어색해서 일부러 고개를 돌립니다. 탱자나무 호랑나비 몰래 씨익 웃음을 베어 물면서 말이지요.봄비는 사흘이나 더 이어졌습니다.
˝이러다 잔디밭 전시회 끝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무슨 비가 이렇게 끈질기누?˝
미술관에서 일하는 아저씨가 창 밖을 내다보며 혀를 찹니다.
탱자나무 호랑나비는 아예 창문 밖 난간에서 살다시피 합니다.
˝저리 내려가 바보야.거기서 졸다간 사람들에게 잡혀. 그래서 빳빳하게 박제되고 싶어?˝
그림 속 호랑나비가 겁을 주는 데도 탱자나무 호랑나비는 엉뚱한 대답입니다.
˝그럼 너랑 같이 전시해줄까 ?˝
˝뭐?˝
˝내기 박제되면 너랑 함께 전시될 수도 있잖아.그럼 좋을 텐데˝
˝여기가 무슨 곤충 박물관인 줄 아니?˝
그리고 난 너랑 전시되고 싶은 생각 전혀 없어.아이 기분 나뻐.어디 그 뻣뻣한 몸을!˝
그림 속 호랑나비가 불쾌한 표정으로 화를 냈습니다.탱자나무 호랑나비는 금새 풀이 죽어 시무룩합니다. 그러나 곧 기분을 추스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잔디밭에 없으니까 굉장히 심심하더라. 음, 내가 한 3일간은 꾹 참고 돌아다녔는데 어휴 진짜 심심하더라.그래도 이 미술관 잔디밭에 호랑나비는 너랑 나랑 둘뿐이잖아.˝
그림 속 호랑나비는 갑자기 미안해집니다. 탱자나무 호랑나비는 이 말을 하려고 박제니 뭐니 하는 말을 꺼냈던 것입니다.
그림 속 호랑나비의 가슴이 따뜻하게 젖어옵니다. 봄은 빠르게 저물어 갑니다.
미술관 잔디밭의 전시회도 이제 이틀 후면 마무리됩니다.
˝그럼 넌 어떻게 되는 거야?˝
탱자나무 호랑나비가 침울한 목소리로 묻습니다.
˝나를 그려주신 화가님 댁 거실로 갈 거래. 어제 그 댁에서 사람들이 와서 그러더라..˝
˝그래... 이젠 널 못보겠구나.그래도 이 잔디밭에서 호랑나비는 너랑 나랑 둘이라서 좋았는데...˝
탱자나무 호랑나비는 더듬이를 늘어뜨리고 앉아서 그림 속 호랑나비의 눈치를 살핍니다.
˝다른 호랑나비를 찾아봐.˝
˝여긴 맨 제비나비 뿐인걸˝
그림 속 호랑나비도 마음이 착잡해서 별다른 말을 찾지 못합니다.
˝그럼 좀 더 멀리 날아가 봐˝
아무렇지도 않게 꺼낸 말이 탱자나무 호랑나비의 마음을 서운하게 했습니다.
˝난 이미 이 잔디밭에 너무 익숙해져서 어디로 간다는 건 불가능해.네가 그 그림 속에 익숙해져서 꼭 맞춰 살 듯 말이야.네가 할 수 없는 일은 남에게도 시키는 게 아니야.알겠니?˝
잔뜩 언짢아진 마음으로 탱자나무 호랑나비는 몸을 일으켰습니다.그리고는 탱자나무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탱자나무 호랑나비는 저녁이 되어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습니다.그 다음 날 아침에도,저녁에도.
´호랑나비야!호랑나비야!˝
그림 속 호랑나비가 탱자나무쪽을 향해 연신 불러보지만 대답이 없습니다. 그림 속 호랑나비는 알고 있습니다. 대답하지 않지만 탱자나무 속에서 계속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숨소리를 .
전시회 마지막날도 저물어 갑니다. 하나하나 잔디밭의 그림들이 치워지고 잇습니다. 그림 속 호랑나비는 탱자나무를 바라봅니다.웬지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는 탱자나무 호랑나비입니다.
마침내 사람들이 호랑나비 그림을 번쩍 들어올립니다.그리고 잔디밭을 지나 마술관으로 향합니다.
그때 탱자나무 호랑나비가 달려나와서 소리쳤습니다.
˝사실은 말이야.난 번데기일 때부터 널보고 있었어.널 보면서 꿈을 꿨단다. 꼭 너처럼 아름다운 나비가 되기를. 넌 내 꿈이었어 호랑나비야. 잘가 안녕!˝
미술관 유리문이 닫히고 탱자나무호랑나비가 점점 멀어집니다.그림 속 호랑나비는 와락 더운 물방울을 쏱습니다.
그 날 밤,그림 속 호랑나비는 호가의 영혼에게 말했습니다.
˝저에게 꼭 필요한 것이 생각났어요. 제가 번데기가 되어서 꿈을 꿀 수 있도록 해주세요. 제 친구를 바라보면서 말예요. 저기 저 탱자나무에서요!˝
화가의 영혼은 미소를 지으며 붓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미련을 두지 않고 그림 속의 호랑나비를 지웠습니다.이윽고 화가의 붓은 탱자나무 번데기 하나를 그려놓습니다.
˝껄껄걸, 비로소 속이 후련하구나.이제야 내 그림이 진짜 살아난 거야 하하하.˝
화가의 영혼은 유쾌한 웃음 소리를 울리며 하늘로 걸어갑니다 부드러운 밤바람에 번데기 하나를 맡겨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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