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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작은 꽃나무 이야기

창작동화 무명............... 조회 수 1737 추천 수 0 2005.05.25 14:42:37
.........
늙고 큰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메마른 언덕이 있었습니다. 늦가을 찬바람에 까치 한 마리가 꽁지를 깝죽대며 밀려가고 있었습니다. 까치는 똥 한 덩이를 풀밭에 떨어뜨리고 갔습니다.
이듬해 봄이었습니다. 까치가 떨어뜨리고 간 똥덩이 속에서 새싹 하나가 돋아났습니다.
새싹은 자라서 작은나무가 되었습니다. 작은나무는 외롭고 쓸쓸했습니다.
주위에는 크고 작은 다른 나무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나무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알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겨울이 왔습니다.
작은나무들에게 겨울은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계절입니다. 살을 에는 듯한 눈보라가 사정없이 몰아와 눈도 뜰 수 없었으니까요..
´이게 무슨 짓이람. 나는 왜 이 메마르고 추운 언덕에 서서 바람을 맞으며 떨어야 만하지?´
작은나무는 볼이 퉁퉁 부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작은나무는 아무 것도 하는 일 없이 몇 년을 보냈습니다.

작은나무가 네 번째 맞이하는 봄이 왔습니다.
훈훈한 바람이 불어 왔습니다.
´이제야 좀 살 것 같군. 아아 졸려.´
작은나무는 입이 귀밑까지 찢어지게 하품을 했습니다.
둥치는 제법 굵어지고 가지도 꽤 벌었습니다.
˝이상한 나무야. 꽃을 피울 나인데도 아직 잠만 자고 있으니.˝
˝게으름뱅이 나무야. 가슴에 불만만 가득 차서 투덜거리는 불쌍한 나무야.˝
명주실처럼 부드러운 녹색의 바람이 목에 감기던 오월이었습니다. 나비들이 떼지어 날아가며 수군거렸습니다.
작은나무는 그때 처음으로 자신이 꽃을 피워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꽃나무라고?˝
작은나무는 깜짝 놀라며 나비에게 물었습니다.
˝그래. 넌 꽃나무야. 꽃을 피우고 그 꽃이 진 자리에 열매를 맺어야 할 나무야. 네가 피운 꽃이 진 자리에 열매를 맺어 익힐 때 너는 비로소 사랑 받는 나무가 되는 거야.˝
나비가 말했습니다.
작은나무는 꽃진 자리에 열매도 맺어야 하는 것이 제가 할 일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꽃을 피울 수 있는 지는 아직 알 수가 없었습니다. 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나비가 지나간 뒤였습니다.
˝꽃을 피우려면 무슨 일을 해야 하는 거예요?˝
작은나무는 나비들을 날려보낸 꽃바람에게 물었습니다.
˝글쎄다. 나는 그것을 알 수도 없거니와 안다고 하더라도 가르쳐 줄 수가 없구나. 네가 나무라면 그런 것쯤은 스스로 알아내어서 해 나갈 줄 알아야지.˝
바람이 말했습니다.
작은나무는 짐승과 새들에게도 같은 걸 물어 보았습니다. 모두들 고개를 저었습니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작은나무는 다시 아침에 뜨는 해님에게 물었습니다.
˝글쎄다. 다른 나무들은 그런 걸 물어 보지 않더구나. 아마 모두들 제 스스로 찾아낼 수 있었던 모양이지.˝
같은 대답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피울 수 있는 지도 모르는 꽃을 나더러 피우래. 대체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작은나무는 혼자서 얼마나 투덜거렸는지 몰랐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다시 몇 번의 봄이 가고 여름이 지났습니다. 똑 같은 회 수의 가을과 겨울이 지나갔습니다.
나무는 이제
어느 깊은 밤이었습니다.
하늘의 청소부 바람이 맑게 쓸어 놓은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고양이 눈처럼 반짝거리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불평이나 하고 섰냐? 그런다고 네게 꽃이 오는 건 아냐. 꽃을 다스리는 별나라의 신에게 한 번 물어 봐.˝
작은나무가 볼멘소리를 쥐어짜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디선가 들려 오는 귀띔의 말이 있었습니다.
˝꽃을 다스리는 별 나라의 신이여, 어떻게 해야만 꽃을 피울 수 있는지 제발 좀 가르쳐 주십시오.˝
작은나무는 누군가가 귀띔해 준대로 보이지 않는 신에게 빌었습니다.
˝글쎄다. 모든 나무나 풀이 저마다 각각 다른 방법으로 제게 알맞은 꽃들을 피우고 있으니 내가 꼭 찍어서 뭐라고 말할 수는 없구나. 하지만 꽃을 피우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냐. 네발 밑의 가시나무나, 온갖 풀들, 큰 나무들과 어깨를 재겠다고 무성히 자라다가는 한해를 못 넘기고 말라 버리고 마는 억새들도 꽃을 피우고 있지 않니?˝
꽃을 다스리는 신의 대답은 엉뚱했습니다.
작은나무는 아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넌 지금 뭐하니?˝
가시나무에게 물었습니다.
˝봄이 멀지 않았어. 잎과 꽃을 마련하기 위해 가지 끝으로 보낼 물을 길러 올리고 있는 중이야.˝
가시나무가 대답했습니다.
˝세상에 이 추운 한겨울에 그런 일을 하고 있단 말이니?˝
작은나무는 한겨울에 다가오는 봄에 피울 잎과 꽃을 위해 뿌리로 물을 긷고 있다는 가시나무의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너는 겨울 따지고 봄 생각하느라 꽃이 늦어지고 있는 거야. 그래가지고는 영영 꽃을 못 피우고 말게 될지도 몰라.˝
가시나무가 말했습니다.
˝꽃을 피우려면 이 추운 겨울에도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이니?˝
˝그럼. 꽃은 봄이나 여름 아니면 가을에 피우지만 꽃을 피우려는 노력엔 철이 없는 거야. 겨울에도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단다.˝
가시나무가 말했습니다.
˝지금부터 준비하면 나도 오는 봄에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작은나무가 물었습니다.
˝글쎄다. 준비를 해도 해님의 사랑 없이는 어려울걸. ˝
가시나무가 말했습니다.
˝해님의 사랑 없이는 어렵다고? 해님의 사랑은 어떻게 해야 받을 수가 있지?˝
작은나무는 안달이 났습니다.
˝네가 먼저 사랑을 키워야지. 나는 불만과 불평을 버리는 일로부터 사랑을 키우기 시작했어.˝
가시나무가 말했습니다.
˝......˝
작은나무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하찮은 가시나무까지 알고 있는 것을 저만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해하는 일, 불평과 불만을 버리는 일이 앞서야 하는 게 사랑을 키우는 일이라.....´
하찮은 가시나무의 충고를 들은 작은나무는 우선 불평을 버리기로 했습니다. 먼저 추위를 참기로 했습니다. 오들오들 떨면서도 입을 다물고 서서 잔뿌리를 맑은 물이 흐르는 곳으로 뻗어 보냈습니다. 심술궂은 바람이나, 그 기세가 한껏 오므라든 해님을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한 여름 쨍쨍 내리퍼붓는 뜨거운 햇볕과 가뭄의 목마름도 원망하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렇게 참고 견디는 세월이 또 얼마나 흘렀는지 모릅니다.
작은나무도 이젠 어른의 키 몇 길이나 되었습니다. 키뿐만 아니라 둥치도 굵어졌습니다.
그러던 어는 날이었습니다.
˝너도 이젠 너의 꽃과 열매를 가질 날이 왔구나. 무슨 꽃 어떤 열매를 갖고 싶으냐?˝
어디선가 우렁우렁 울려오는 신비한 소리에 작은나무는 귀가 활짝 열렸습니다.
˝글쎄요 그 누구에겐가 기쁨과 도움을 줄 수 있는 꽃과 열매라면.....˝
작은나무가 말했습니다.
˝알았느니라.´
다시 조금 전의 신비한 목소리가 울려왔습니다.
˝생각해 보아라. 네가 이 언덕에 온 지도 벌써 열두 해다. 까치란 놈이 저 산 너머 마을 농부의 과수원에 들어가 잘 익은 사과를 쪼아먹고는 주인에게 혼이 나 쫓겨가면서 떨어뜨린 똥덩이에서 너는 태어났지. 태어나는 거야 아무려면 어떠냐? 자라서 좋은 일하면 그만이지.˝
˝고맙습니다.˝
작은나무는 감사의 인사를 올렸습니다.
˝과수원의 네 친구들은 사람이 접을 붙여 묘목을 만들고 좋은 땅에 심어 물과 거름을 주며 가꾼단다. 그래서 꽃과 열매를 일찍 달지. 넌 까치 똥덩이에서 태어나 아무도 돌봐 주는 이 없었는데 용케도 혼자 자라서 오늘에 이르렀구나. 큰 어려움을 견뎌 온 네게 걸맞은 꽃과 열매를 내가 주마.˝
신비한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 ˝
작은나무는 갑자기 목소리의 주인공이 궁금해졌습니다.
˝은혜로운 이의 목소리야. 네게 꽃을 마련해 주시려는..... 그러니 너는 네게 적당한 꽃과 열매를 가지면 되는 거야.˝
가시나무가 귀띔해 주었습니다.
´모진 세월 견뎌 온 보람에 걸맞은 꽃과 열매..... 그것은 어느 정도여야 하는 것일까?´
작은나무는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궁금해할 것 없어 너 사과나무야. 사과 꽃 피우고, 사과가 열리겠지, 설마 솔방울 열리겠니?˝
가시나무가 지나가는 말처럼 가볍게 속삭였습니다.
˝...... ˝
가시나무의 말은 너무나 옳았습니다.
작은나무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서서 가시나무의 말을 곰곰이 되새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나무의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바로 그거야. 그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거야. ˝
나무는 마침내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아주 작은 깨달음이었습니다. 작기는 했어도 더없이 소중한 깨달음이었습니다.
˝바로 그거라니? 그게 뭐냐?˝
가시나무가 물었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순한 것만 가리고 뽑아서 꼭 알맞은 숫자의 꽃을 피우고 그 꽃진 자리에 내가 감당할 만한 크기의 열매를 맺겠어. ˝
작은나무가 말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귀하고 순한 것만 가려 뽑아서 그것으로 피우는 꽃과 그 꽃진 자리에다는 열매......
그것은 대체 어떤 것일까?
그것은 결코 화려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크거나 찬란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조금도 아쉬울 건 없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귀하고 순한 것만 가려 뽑아서 그것으로 빚는 꽃과 열매.....
작은나무는 아무도 보지 않는 언덕에 서서 그런 꽃과 열매를 마련하느라 한눈 팔 겨를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듬해 봄, 작은나무는 눈보다 더 하얀 꽃을 피웠습니다. 꽃향기가 언덕을 덮었습니다. 물론 꽃이 진 자리엔 탐스러운 열매가 열렸습니다. 그 열매는 가을이 되자 빨갛게 익었습니다. 결코 크지는 않았지만 새콤달콤한 사과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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