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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디, 그 애가 처음 우리 교실에 들어섰을 때 마침 우리 반은 수학 시간이었다.
복잡하고 머리 아픈 계산 문제를 끙끙거리며 풀고 있을 때였다.
˝ 똑똑 ..., 똑똑똑 ... .˝
아이들의 한숨 소리와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를 뚫고 선명하게 노크 소리가 들렸다.
˝ 김선생님, 전입생인데요.˝
전입생 처리를 맡고 계시는 강선생님 목소리에 우리는 일제히 고개를 반짝 들었다.양쪽으로 갈라 꼭꼭 땋은 머리를 날렵하게 묶고 빨간 사과 모양의 방울을 단 아이였다. 아이는 처음 전학 온 아이답지 않게 생글거리며 우리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 햐아, 예쁘게 생겼는데 ...... .˝
앞에 앉은 진민이의 혼잣소리였다. 그 소리를 시작으로 아이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 보통이 아니겠는데 .˝
˝ 야, 공부 잘하게 생겼다. ˝
아이들의 수군거림에도 불구하고 그 애는 조금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 흥, 얼굴 예쁜 아이치고 공부 잘 하는 애 별로 없더라 .˝
나도 모르게 가슴 속에서 심술이 솟아 올랐다.
˝ 그래도 얼굴 예쁜건 민정이가 인정하나 봐 .˝
진민이가 싱글거리며 나를 돌아보았다.
˝ 피, 별일이야. 전학 온 애에게 관심을 가지는 건 잠깐이겠지만 그렇게 드러내놓고 관심 보이는건 유치 해 .˝
나는 별 볼일 없다는듯 풀던 산수 문제로 눈길을 돌렸다.
˝ 자, 조용히 하세요. 새로 전학 온 친구니까 인사하도록 해요.˝
˝ 김잔디라고 해요. 성이 김이라서 한자로 쓰면 금잔디라고도 읽습니다. 아빠가 지어 주신 이름입니다. 그리고 저는 노래 부르기를 좋아합니다.아빠하고 노래를 잘 부릅니다. ˝
잔디는 또박또박하게 자기 소개를 했다.잔디의 인사말을 듣는 순간 나는 웬지 가슴이 덜컥 내려 앉는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우리 반 여왕은 나였다. 공부는 물론 , 매사에 남에게 뒤떨어지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잔디를 보는 순간, 나는 벼랑 끝에 선 느낌이었다.
´ 흥, 제까짓게 노래를 잘 부르면 얼마나 잘 부른다고 자랑이야 .´
나는 괜히 심술이 나서 입술을 비죽거렸다.
쉬는 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잔디의 주변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이것저것 잔디의 학용품을 만져보며 친해지려고 애쓰는 아이들이 못마땅했다.
˝ 얘얘, 민정아. 글쎄 말이야. 잔디 공책을 보니까 너무너무 글씨를 잘 쓰더라 .˝
쉬는 시간에 잔디 옆에 다녀 온 짝, 연희가 한 말이었다.
˝ 연희야. 그렇게 호들갑 떨지 마. 사람은 겪어 봐야 아니까 .˝
나는 태연히 다음 수업 준비를 했다.
˝ 민정이, 너 조금 속상하지 ?˝
연희가 고개를 돌려 나를 들여다 보았다.
˝ 내가 왜 속상하니 ? ˝
나는 일부러 정색을 했다.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더욱 딴청을 피웠다.
˝ 하긴 뭐, 잔디가 얼마나 똑똑한지 몰라도 민정이 너만 하겠니 ?˝
연희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잔디는 공부 시간마다 똑똑한 목소리로 자기의 생각을 발표했다. 선생님께서도 잔디의 발표력에 만족해 하시는 것 같아 나는 내내 우울했다.
이튿날, 내가 등교하여 가방을 마악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 네가 민정이니 ?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
잔디였다. 생긋 웃는 볼에 볼우물이 폭 패이는 것을 보았다.
˝ 으응, 그래 .˝
얼떨결에 나는 잔디가 내민 손을 잡았다
´ 흥, 얘가 왜 이렇게 건방져 ? 어디 두고 보자. 네 코를 납작하게 해 줄테니까.´
속으로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 이것 우리 아빠가 만든 거야. 너 줄게 .˝
바둑 강아지 모양의 작은 목각 인형이었다.
˝ 너네 아빠, 혹시 목수 아니니 ?˝
나도 모르게 튀어 나온 말이었다. 모나게 날이 선 내 속마음이 그대로 드러난 것 같아 뜨끔하였다.
˝ 아니, 그냥 취미로 만드셨어. 우리 아빤 손재주가 좋으시거든 .도자기도구우셨어. 언제 우리 집에 오면 하나 줄게 .˝
잔디는 또 한번 생긋 웃으며 볼우물을 만들었다.
˝ 얘, 민정아. 잔디 아빠 굉장히 멋있는 분인가 봐. 취미로 도자기를 구울 정도면 예술을 아는 분 아니니 ?˝
연희가 감동했다는 몸짓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잔디는 툭하면 아빠 이야기를 꺼냈다. 공부 시간에 발표를 할 때도 ´ 우리 아빠가 그러시는 데´라는 토를 꼭 달곤 했다.
그러는 가운데 아이들은 잔디 아빠에 대해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 잔디 아빠, 참 멋있게 생기셨더라.˝
˝ 잔디 아빠는 대학 교수님이래지, 아마.˝
˝ 아니야. 잔디 아빠는 사장님이라던데 .˝
아이들이 잔디 아빠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마다 나는 속이 상했다.
언제나 바쁘신 아빠, 멋있지도 훌륭하지도 않으신 아빠, 그저 회사 일에만 열심히 매달리시는 아빠에 대해서 조금씩 불만이 생기기 시작 했다.
그렇게 몇주일이 지난 금요일, 음악 시간이었다.
선생님의 풍금 반주에 우리는 노래를 불렀다.
˝ 김잔디 !˝
갑자기 선생님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 ...... !˝
˝ 너 뭐하니 ? 왜 노래는 안 부르고 딴짓을 해 ?˝
풍금을 치시다 말고 선생님은 화난 눈초리로 잔디를 바라 보셨다.
우리는 일제히 잔디 쪽을 쳐다 보았다.
잔디는 여늬 때와는 달리 고개를 푹 숙이고 가만히 있었다.
˝ 김잔디, 일어서 봐. 너 노래 잘 부른다고 했지 ?˝
선생님의 말씀에 잔디는 엉거주춤 일어 섰다. 매사에 자신이 있고 명랑하던 평소의 잔디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 흥, 그것 봐. 노래를 못부르는게 틀림없어. 이제 거짓말 한게 탄로날 테니까 저러는거라구 .˝
나는 연희에게 재빠르게 속삭였다.
˝ 잔디야, 이리 와 봐. 너 장난한 벌로 독창 한 번 해 봐. 원래 이 노래는 독창에 어울리는 곡이니까 .˝
어느새 선생님의 목소리는 부드럽게 변해 있었다.
잔디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잠시 가만히 있었다.
˝민정아, 쟤 정말 노래 못하나 봐 .˝
연희가 킥킥거렸다. 나도 정말 고소해서 연희와 마주보며 배시시 웃었다.
˝ 저, 이 노래는 아빠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
´ 흥, 또 아빠 타령 .´
나는 입을 비쭉거렸다.
˝ 선생님, 저는 장난한게 아니예요. 집에서 아빠와 같이 부르던대로 부르겠습니다. ˝
잔디는 예의 또박또박한 말투로 다시 돌아가 있었다.
이윽고 선생님의 풍금 반주가 흘러 나왔다.
˝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 .˝
그런데 잔디는 두 손을 들어 열심히 움직이는게 아닌가 ! 입은 꼭 다문 채.
아, 나는 뒤통수를 세게 얻어 맞은 것처럼 아찔해졌다.
그것은 수화(손짓으로 하는 말 )였다. 듣지 못하고 말 못하는 사람들이 말을 할 때 사용하는 수화 !
잔디는 풍금 소리에 맞춰 열심히 손으로 노래를 불렀다. 음악 소리에 따라 볼우물이 생겼다가 없어지곤 했다.
잔디의 큰 눈은 웃고 있었지만 , 어느새 내 가슴 속에는 뜨거운 눈물이 냇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
복잡하고 머리 아픈 계산 문제를 끙끙거리며 풀고 있을 때였다.
˝ 똑똑 ..., 똑똑똑 ... .˝
아이들의 한숨 소리와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를 뚫고 선명하게 노크 소리가 들렸다.
˝ 김선생님, 전입생인데요.˝
전입생 처리를 맡고 계시는 강선생님 목소리에 우리는 일제히 고개를 반짝 들었다.양쪽으로 갈라 꼭꼭 땋은 머리를 날렵하게 묶고 빨간 사과 모양의 방울을 단 아이였다. 아이는 처음 전학 온 아이답지 않게 생글거리며 우리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 햐아, 예쁘게 생겼는데 ...... .˝
앞에 앉은 진민이의 혼잣소리였다. 그 소리를 시작으로 아이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 보통이 아니겠는데 .˝
˝ 야, 공부 잘하게 생겼다. ˝
아이들의 수군거림에도 불구하고 그 애는 조금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 흥, 얼굴 예쁜 아이치고 공부 잘 하는 애 별로 없더라 .˝
나도 모르게 가슴 속에서 심술이 솟아 올랐다.
˝ 그래도 얼굴 예쁜건 민정이가 인정하나 봐 .˝
진민이가 싱글거리며 나를 돌아보았다.
˝ 피, 별일이야. 전학 온 애에게 관심을 가지는 건 잠깐이겠지만 그렇게 드러내놓고 관심 보이는건 유치 해 .˝
나는 별 볼일 없다는듯 풀던 산수 문제로 눈길을 돌렸다.
˝ 자, 조용히 하세요. 새로 전학 온 친구니까 인사하도록 해요.˝
˝ 김잔디라고 해요. 성이 김이라서 한자로 쓰면 금잔디라고도 읽습니다. 아빠가 지어 주신 이름입니다. 그리고 저는 노래 부르기를 좋아합니다.아빠하고 노래를 잘 부릅니다. ˝
잔디는 또박또박하게 자기 소개를 했다.잔디의 인사말을 듣는 순간 나는 웬지 가슴이 덜컥 내려 앉는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우리 반 여왕은 나였다. 공부는 물론 , 매사에 남에게 뒤떨어지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잔디를 보는 순간, 나는 벼랑 끝에 선 느낌이었다.
´ 흥, 제까짓게 노래를 잘 부르면 얼마나 잘 부른다고 자랑이야 .´
나는 괜히 심술이 나서 입술을 비죽거렸다.
쉬는 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잔디의 주변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이것저것 잔디의 학용품을 만져보며 친해지려고 애쓰는 아이들이 못마땅했다.
˝ 얘얘, 민정아. 글쎄 말이야. 잔디 공책을 보니까 너무너무 글씨를 잘 쓰더라 .˝
쉬는 시간에 잔디 옆에 다녀 온 짝, 연희가 한 말이었다.
˝ 연희야. 그렇게 호들갑 떨지 마. 사람은 겪어 봐야 아니까 .˝
나는 태연히 다음 수업 준비를 했다.
˝ 민정이, 너 조금 속상하지 ?˝
연희가 고개를 돌려 나를 들여다 보았다.
˝ 내가 왜 속상하니 ? ˝
나는 일부러 정색을 했다.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더욱 딴청을 피웠다.
˝ 하긴 뭐, 잔디가 얼마나 똑똑한지 몰라도 민정이 너만 하겠니 ?˝
연희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잔디는 공부 시간마다 똑똑한 목소리로 자기의 생각을 발표했다. 선생님께서도 잔디의 발표력에 만족해 하시는 것 같아 나는 내내 우울했다.
이튿날, 내가 등교하여 가방을 마악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 네가 민정이니 ?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
잔디였다. 생긋 웃는 볼에 볼우물이 폭 패이는 것을 보았다.
˝ 으응, 그래 .˝
얼떨결에 나는 잔디가 내민 손을 잡았다
´ 흥, 얘가 왜 이렇게 건방져 ? 어디 두고 보자. 네 코를 납작하게 해 줄테니까.´
속으로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 이것 우리 아빠가 만든 거야. 너 줄게 .˝
바둑 강아지 모양의 작은 목각 인형이었다.
˝ 너네 아빠, 혹시 목수 아니니 ?˝
나도 모르게 튀어 나온 말이었다. 모나게 날이 선 내 속마음이 그대로 드러난 것 같아 뜨끔하였다.
˝ 아니, 그냥 취미로 만드셨어. 우리 아빤 손재주가 좋으시거든 .도자기도구우셨어. 언제 우리 집에 오면 하나 줄게 .˝
잔디는 또 한번 생긋 웃으며 볼우물을 만들었다.
˝ 얘, 민정아. 잔디 아빠 굉장히 멋있는 분인가 봐. 취미로 도자기를 구울 정도면 예술을 아는 분 아니니 ?˝
연희가 감동했다는 몸짓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잔디는 툭하면 아빠 이야기를 꺼냈다. 공부 시간에 발표를 할 때도 ´ 우리 아빠가 그러시는 데´라는 토를 꼭 달곤 했다.
그러는 가운데 아이들은 잔디 아빠에 대해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 잔디 아빠, 참 멋있게 생기셨더라.˝
˝ 잔디 아빠는 대학 교수님이래지, 아마.˝
˝ 아니야. 잔디 아빠는 사장님이라던데 .˝
아이들이 잔디 아빠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마다 나는 속이 상했다.
언제나 바쁘신 아빠, 멋있지도 훌륭하지도 않으신 아빠, 그저 회사 일에만 열심히 매달리시는 아빠에 대해서 조금씩 불만이 생기기 시작 했다.
그렇게 몇주일이 지난 금요일, 음악 시간이었다.
선생님의 풍금 반주에 우리는 노래를 불렀다.
˝ 김잔디 !˝
갑자기 선생님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 ...... !˝
˝ 너 뭐하니 ? 왜 노래는 안 부르고 딴짓을 해 ?˝
풍금을 치시다 말고 선생님은 화난 눈초리로 잔디를 바라 보셨다.
우리는 일제히 잔디 쪽을 쳐다 보았다.
잔디는 여늬 때와는 달리 고개를 푹 숙이고 가만히 있었다.
˝ 김잔디, 일어서 봐. 너 노래 잘 부른다고 했지 ?˝
선생님의 말씀에 잔디는 엉거주춤 일어 섰다. 매사에 자신이 있고 명랑하던 평소의 잔디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 흥, 그것 봐. 노래를 못부르는게 틀림없어. 이제 거짓말 한게 탄로날 테니까 저러는거라구 .˝
나는 연희에게 재빠르게 속삭였다.
˝ 잔디야, 이리 와 봐. 너 장난한 벌로 독창 한 번 해 봐. 원래 이 노래는 독창에 어울리는 곡이니까 .˝
어느새 선생님의 목소리는 부드럽게 변해 있었다.
잔디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잠시 가만히 있었다.
˝민정아, 쟤 정말 노래 못하나 봐 .˝
연희가 킥킥거렸다. 나도 정말 고소해서 연희와 마주보며 배시시 웃었다.
˝ 저, 이 노래는 아빠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
´ 흥, 또 아빠 타령 .´
나는 입을 비쭉거렸다.
˝ 선생님, 저는 장난한게 아니예요. 집에서 아빠와 같이 부르던대로 부르겠습니다. ˝
잔디는 예의 또박또박한 말투로 다시 돌아가 있었다.
이윽고 선생님의 풍금 반주가 흘러 나왔다.
˝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 .˝
그런데 잔디는 두 손을 들어 열심히 움직이는게 아닌가 ! 입은 꼭 다문 채.
아, 나는 뒤통수를 세게 얻어 맞은 것처럼 아찔해졌다.
그것은 수화(손짓으로 하는 말 )였다. 듣지 못하고 말 못하는 사람들이 말을 할 때 사용하는 수화 !
잔디는 풍금 소리에 맞춰 열심히 손으로 노래를 불렀다. 음악 소리에 따라 볼우물이 생겼다가 없어지곤 했다.
잔디의 큰 눈은 웃고 있었지만 , 어느새 내 가슴 속에는 뜨거운 눈물이 냇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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