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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일본인이 아니라 네 교장선생님이다

창작동화 신충행............... 조회 수 1734 추천 수 0 2005.08.09 22:41:51
.........
그때 우리 나라 사람들은 일본인이라고 하면 누구나 다 이를 갈았습니다. 독립운동을 하던 우리 아버지도 일본 헌병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내겐 미워할 수 없었던 일본인도 있습니다. 교장선생님이었습니다.

내가 4학년 되던 해 5월의 어느 햇빛이 눈부시던 날이었습니다.
˝내일은 촉석루에 그림 그리러 간다. 모두들 크레용과 도화지를 가지고 와야 한다.˝
그 날 공부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였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사생대회 하는 거예요?˝
병득이가 물었습니다.
˝그래. 교내 사생대회다. 교내 사생대회에서 뽑힌 사람은 시 사생대회 출전하게 된다. 우리 반에서 대표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구예린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교내 사생대회를 왜 촉석루에 가서 하게 될까? 교장선생님이 무엇에 씌인 건 아닐까?
나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진주 사람들은 하나같이 촉석루에 어린 민족혼을 자랑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먼 옛날 임진왜란 때 관민이 힘을 합쳐 왜적과 혈투를 벌렸던 역사의 향기가 서린 진주성의 관문이 바로 촉석루였습니다. 그러니 왜인들이 좋아할 까닭이 없습니다.
˝선생님 어째서 교내 사생대회를 촉석루에서 합니까?˝
나는 궁금증을 드러내 보였습니다.
˝경치가 아름다운 때문이지. 갑갑한 학교에서 그리는 것보다 촉석루 언덕에서 그리면 더 좋은 그림이 나올 테니까.˝
구예린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구예린 선생님이 대답은 태연히 하면서도 약간 당황하고 계시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내가 묻는 의도를 읽으신 때문입니다.
˝선생님, 화판은 안 가지고 와도 돼요?˝
성진이가 물었습니다.
˝화판? 응, 화판이 있는 사람은 가지고 오면 좋지.˝
˝없는 사람은요?˝
˝없는 사람은 받히고 그릴만한 것 아무 것이나 가지고 오면 되겠지.˝
구예린 선생님의 말씀을 들은 나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내겐 화판은 말할 것도 없고 크레용도 없었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몸져 누워 계셨습니다. 세상은 너무도 어수선하고 험악했습니다. 일본사람들은 무엇이나 다 뺏어 가는 판이었습니다.
농부들이 농사짓는 땅을 거의 다 뺏어 갔습니다. 논과 밭을 뺏기지 않은 사람들로부터도 쌀 한 톨 남기지 않고 거두어 갔습니다
일본순사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교회에 모이는 일까지 눈을 부라리며 방해했습니다. 공연한 트집으로 목사님이나 장로님들을 잡아가곤 했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 불령선인이 많다는 트집이었습니다. 청소를 하며 교회에 따른 방에서 살고 있었던 우리 어머니는 그럴 때마다 영락없이 잡혀갔습니다.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돌아가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경찰서에 잡혀간 어머니가 성한 몸으로 돌아오는 날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나는 일본인이라면 이가 갈렸습니다.
그런 중에도 어머니는 나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 무진 애를 쓰셨습니다.
나는 학교에 다니기는 했지만 공책이나 연필 같은 학용품도 제대로 갖출 수 없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때는 보통학교도 수업료를 내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언제 무슨 일을 해서 어떻게 마련했는지 모르게 수업료만은 제때 어김없이 마련해 주셨습니다.
˝선생님, 크레용이 없는 사람은 연필로 그려도 돼요?˝
누군가가 내가 묻고 싶은 말을 대신 물어주었습니다.
˝연필로? 그래. 연필로 그려도 되겠지. 참 크레용 있는 사람들 어디 손 한번 들어 봐요.˝
구예린 선생님이 크레용 조사를 하셨습니다.
마흔 여섯 명 중 크레용 없는 아이는 스물 셋이나 되었습니다.
˝크레용이 없는 사람이 너무 많구나. 얘들아 선생님이 부탁 좀 하자.˝
˝뭔데요?˝
˝응.너희들 친구랑 크레용 좀 나누어 쓰면 안 되겠니?비싼 것이겠지만......˝
˝......˝
크레용 가진 사람은 말이 없었습니다. 나누어 쓰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구나. 크레용 없는 사람은 연필로 그리는 수밖에˝
구에린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다음 날 우리들은 선생님을 따라 촉석루로 그림을 그리러 갔습니다. 선생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림 그리는 모습을 살펴보시더니 내 곁에 와 앉으셨습니다.
˝응,형일이는 그림 솜씨가 대단하구나. 얘 성진아 이리 좀 오너라.˝
구예린 선생님은 내 그림 솜씨를 칭찬하신 후 성진이를 불렀습니다.
˝.......?˝
성진이가 눈을 두리번거리며 다가왔습니다.
˝성진아, 네 크레용 형일이랑 좀 나누어 쓰면 안 되겠니?˝
구예린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싫습니다.˝
성진이는 한마디로 거절해 버렸습니다. 그런 성진이는 열두 색짜리 고급 크레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일본 여행을 다녀오면서 사오신 것이라고 자랑하는 크레용이었습니다. 성진이 아버지는 일본 사람과 아주 친했습니다. 집에는 일본 천황의 사진을 걸어 놓았다고 했습니다.
˝왜? 가난한 친구를 돕는 건 좋은 일 아니니?˝
구예린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불령선인을 도와요. 우리 아버지가 그러시는데 일본과 조선은 한나라가 되었대요. 그러자면 일본을 본받고 따라야 하는데 형일이 아버지가 독립운동하다가 죽었고, 어머니는 아직도 엉뚱한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교회에서 하인 노릇하고 있어요.˝
성진이가 거침없이 말했습니다.
˝그러니? 선생님이 몰랐구나.˝
선생님은 몸을 파르르 떠셨습니다. 얼굴엔 노기가 팽팽히 배어 있었으나,성진이를 나무라지는 못하셨습니다.
성진이 아버지 때문이었습니다. 성진이 아버지는 진주에서도 이름있는 부자였습니다.
또 친일파로 소문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마치 일본 사람처럼 행동한다고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교장선생님이 저쪽에서 걸어오셨습니다.
˝너 지금 무어라고 했습니까? 선생님께 아주 불손하게 구는 것 같았는데....˝
교장선생님이 일본말로 물었습니다.
˝아닙니다. 얘랑 크레용을 좀 나누어 쓰라고 했더니 싫다는군요.˝
구예린 선생님이 대답하셨습니다.
˝왜 싫다고 했니? 어린아이 마음이 그래서야 되겠니?˝
교장선생님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교장선생님, 얘는 불령선인의 아들입니다.˝
성진이가 뚜벅 말했습니다.
˝불령선인의 아들이라고? 누가 네게 그런 말을 했느냐?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니?
교장선생님이 아주 불쾌한 표정을 지으시며 물었습니다.
˝아닙니다.˝
˝그런 누가 네게 그런 말을 했느냐?˝
교장선생님은 다시 성진이에게 물었습니다.
˝.........˝
성진이는 대답을 못했습니다.
˝넌 반도 아이니? 아니면 내지 아이니?˝
교장선생님이 다시 물었습니다.
˝반도 아이입니다.˝
˝넌 누구니?˝
교장선생님이 다시 물으셨습니다.
˝.......˝
˝성진아, 교장선생님께서 물으시지 않니? 네가 일본 아인지 아니면 조선 아인지˝
구 예린 선생님이 대답을 재촉하셨습니다.
˝전 일본 사람입니다.˝
˝네가 일본사람이라고?˝
˝네 반도에서 태어났지만 조선은 이미 없어졌습니다. 우리 가족은 모두 천황폐하의 신민입니다.˝
성진이는 아주 똑똑하게 말했습니다.
구예린 선생님은 성진이의 대답에 얼굴이 핼쓱해졌습니다.
˝조선은 이미 망해서 일본이 되었기 때문에 일본인이라? 맹랑한 녀석이로군. 가난한 친구랑 크레용도 좀 나누어 쓸 줄 모르는 꿀돼지는 결코 천황폐하의 자랑스런 신민이 될 수 없다.˝교장선생님은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어 보이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비겁한 자식, 일본인의 빈정거림까지 받고 있어.´
나는 주먹을 꽉 그러쥐며 성진이를 노려보았습니다.
나는 일본 사람은 똑같은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교장선생님은 어딘지 모르게 좀 다른 데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우러러 뵈었습니다.

촉석루에 그림 그리러 나갔습니다.주변의 나무와 강과 모래밭을 열심히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형일이 정말 그림 잘 그리는구나. 촉석루와 절벽, 그 아래 구비치는 강물이며, 오 강 건너 백사장과 모래밭까지.˝
구예린 선생님이 저쪽을 한바퀴 돌고 와서 다시 내 그림을 칭찬하실 때였습니다.
˝선생님, 아이 칭찬에 입에 침이 마르시군요? 어디 얼마나 잘 그렸는지 나도 좀 봅시다.˝
그때 교장 선생님이 다가오며 말씀하셨습니다.
˝어디 좀 보자.응,너는 정말 선생님의 칭찬을 받아도 좋을 만한 그림을 그렸구나.아주 멋진 스케치야.˝
교장선생님이 내 그림을 받아들고 눈앞으로 끌어당겼다 멀리 밀어냈다 하며 말씀하셨습니다.
˝잘 그렸죠? 교장선생님.˝
구예린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 아주 잘 그렸어요. 그런데 얘 이름은 ?˝
교장선생님이 내 이름을 궁금해 하셨습니다.
˝네.김형일이에요.˝
내가 대답했습니다.
˝굉장한 분의 아드님이에요. 그 분 성함을 들으시면 교장선생님께서도 아마 깜짝 놀라실거예요.˝
구예린 선생님이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
나는 구예린 선생님의 말씀에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그 분이 누구신데요?˝
교장선생님이 물으셨습니다..
˝아,아니예요.얘 아버진 돌아가신 지 3년이나 되셨어요.˝
구예린 선생님은 약간 당황하며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도 참. 얘야, 그런데 왜 색칠은 안하고 연필로만 그렸니?˝
교장선생님이 물으셨습니다.
˝......˝
나는 대답을 못했습니다.
얼굴에 불이 화끈 끼얹히는 느낌이었습니다. 고개를 떨어뜨린 채 사만히 서 있었습니다.
자꾸만 눈물이 쏟아지려고 했습니다.
˝요 아래 세무서 앞에 문방구점이 있더라. 거기 가서 크레용 사 와서 그려라.˝
교장선생님이 주머니에서 돈을 내주셨습니다.
˝......˝
형일이는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눈을 내려뜨리고 서 있었습니다.
˝형일아, 어서 안 받고 뭐하니?˝
˝고맙습니다. 교장선생님.˝
나는 구예린 선생님이 재촉하셨을 때야 간신히 손을 내밀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자꾸만 걱정이 되었습니다. 일본인의 도움을 받았다고 어머니께서 꾸중하실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께 숨길 수는 없는 일이어서 솔직히 말씀드렸습니다.
˝그분은 일본인이 아니라 네 교장선생님이시다.˝
내 말을 들으신 어머니께서는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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