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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대장의 눈물

창작동화 원유순............... 조회 수 1204 추천 수 0 2005.09.20 19:34:44
.........
나는 우리 반 대장입니다. 친구들은 내 말 한 마디면 꿈쩍도 못하고 잘 듣습니다.

심심할 때면 신발 한 짝을 멀리 던져 놓고,

˝누가 내 신발 주워 올래?˝

하면 우르르 몰려가서 서로 내 신발을 주워 오려고 야단입니다.

또 맛있는 것이 있으면 꼬박꼬박 나에게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청소 시간이면 얼른 자기들이 할 청소 구역을 깨끗이 청소해 놓고 내 청소 구역까지 맡아 놓고 해 주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뭐 내가 아이들을 무조건 부려 먹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반 아이들이 다른 반 아이들과 싸움에서 지거나 억울한 일을 당할 때면 내가 나서서 해결해 줍니다.

그래서 대장인 나는 언제나 용감해야 합니다. 싸움에서 져서도 안 되고 또한 비겁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 반 아이들을 아주 철저하게 보호해야 합니다.

지난 번 일만 해도 그렇습니다.

우리 반 꼬마 영석이가 복도를 지난가는데 7반 아이가 다리를 슬쩍 걸어 넘어뜨렸답니다. 몸집이 작은 영석이는 그만 복도에 나동그라졌지요. 코방아를 세게 찧은 영석이는 울상이 되어 나에게 왔답니다.

˝대장, 7반 아이에게 당했어.˝

그 즉시 나는 7반 아이를 찾아내어 한 방 먹이려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그 녀석은 겁먹은 얼굴로 나에게 사정을 했습니다.

˝6반 대장, 미안해. 잘못했어. 다신 안 그럴게.˝

그 녀석은 내 얼굴만 봐도 떨린다는 얼굴이었습니다.

˝짜식, 다음부터 우리 반 아이들 건드리지 마.˝

나는 점잖게 그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끝냈지요. 7반 녀석에게 한 방 먹이기를 바랬던 영석이는 불만스런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걱정 마. 강한 자에게는 강하게, 약한 자에게는 관용을 베풀어야 하는 거야.˝

제법 어른답게 말했더니 아이들이 나를 감탄스런 눈길로 바라보았답니다.

˝관용이란게 뭔데?˝

영석이가 여전히 불만스런 눈길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음, 관용이란 말이야.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서해 주는 거야.˝

그러자, 아이들이 ´우와!´하며 감탄의 소리를 냈습니다. ´역시 우리반 대장이야.´하는 얼굴로.

그런데 우리 반에 아주 기분 나쁜 녀석이 하나 있습니다. 얼마 전에 새로 들어 온 훈이라는 아이입니다.

훈이는 한 쪽 입술이 쭉 찢어진 째보였습니다. 그 모습은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옷과 아주 잘 어울려 보였습니다.

우리들은 훈이를 좀 골려주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어수룩하게 보이는 모습이 골려주면 아주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야, 째보야. 여길 봐라.˝

째보 훈이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볼라치면 물풍선을 얼굴에 던져 터뜨려 주기도 하고, 훈이의 교과서를 슬쩍 감춰 놓고 훈이가 선생님께 꾸중 듣는 모습을 고소하게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 같으면 그런 일을 당하면 내 옆에 빌붙어 아양을 떨며 내 부하로 들어오고 싶어할 텐데 훈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저 말없이 묵묵히 받아 내었습니다. 나는 그런 훈이가 은근히 얄미웠습니다.

훈이의 말없는 눈빛, 어떻게 보면 슬프게 보이는 눈빛을 보면 이상하게도 더 골려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내 편이 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에게 아주 반항하는 것도 아닌, 훈이의 그런 어정쩡한 태도가 더 나를 화나게 한다는 사실을 훈이는 모르는 모양이었습니다.

˝대장, 훈이 엄마도 째보라는 사실 알아?˝

어느 날, 윤규가 커다란 뉴스라도 되는 양 훈이의 엄마가 째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왔습니다.

˝그래?˝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이 히히힛 웃었습니다.

˝째보 엄마, 째보! 째보 아빠, 째보! 멋진 째보 가족!˝

아이들은 훈이 옆에 가서 째보 가족을 놀려 대었습니다. 그런데도 훈이는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공책에다 무어라고 알 수 없는 낙서만 가득 해놓고.

아무튼 우리는 훈이를 심심풀이 땅콩으로 놀려 먹고 골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오늘 체육 시간이었습니다.

˝오늘은 씨름 시합을 하겠다. 우리 반에서 씨름을 제일 잘 하는 사람은 다음 번 학년 대항 씨름 시합에 나가겠다.˝

선생님의 말씀에 아이들은 ´와아!´하고 함성을 질렀습니다. 그리고 모두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해보나마나 우리 반 씨름 선수는 대장일 거야.˝

아이들의 말이 아니더라도 나는 당연히 내가 씨름 대표로 뽑힐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반 아이들을 모두 여섯 조로 나누어서 대표를 뽑게 하신 다음 대표끼리 시합을 하게 하셨습니다.

나와 씨름에 맞붙은 아이들은 바람 앞에 등불처럼, 고목나무에 달린 마른 낙엽처럼 힘없이 나동그라졌습니다. 내가 슬쩍 배지기를 할라치면 어느새 벌러덩 뒤로 나자빠지고, 안다리 걸기를 할 양이면 어느새 ´어이쿠´ 소리를 내며 코방아를 찧었습니다.

나는 천하무적을 외치며 결승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천만 뜻밖에도 나와 결승에 맞붙을 상대가 바로 째보 훈이었습니다.

나는 훈이를 보자 어이가 없어 픽 코웃음이 나왔습니다.

˝선생님, 이 시합은 해보나마나예요.˝

영석이가 쥐방울처럼 앞으로 톡 나서며 선생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런게 어딨어?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안다.˝

선생님께서는 은근히 째보 훈이가 이기기를 바라시는 눈치셨습니다. 나는 그런 선생님께 나의 힘을 보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좋아, 아주 멋지게 본때를 보여 줘야지.´

나는 속으로 싱그레 웃었습니다. 째보 훈이를 이참에 납작하게 만들어 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는 나에게 말없는 반항을 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훈이와 나는 모래판에 섰습니다. 훈이는 나를 똑바로 노려 보았습니다. 훈이의 눈에는 전에는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아쭈! 제법인데...... .´

나는 제법 째려보는 훈이가 가소롭게 여겨졌습니다.

훈이와 나는 서로의 샅바를 잡고 허리를 굽혔습니다. 훈이의 비쩍 마른 종아리가 보였습니다.

´쳇, 바보 같은 자식!´

모래팜에 개구리처럼 납작해질 훈이의 모습을 그리며 흐흐흐 웃었습니다.

˝자, 시작!˝

드디어 선생님께서 나와 훈이의 등을 탁 때렸습니다.

나는 훈이의 샅바를 잡고 힘차게 들어 올렸습니다.

´어?´

그러나 순간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맥없이 번쩍 들어 올려지리라고 생각했던 훈이는 뜻밖에도 단단했습니다. 꿈쩍도 않았습니다.

´어쭈? 이게?´

나는 불끈 화가 솟구쳤습니다.

´다시 한 번!´

샅바를 바짝 낚아채며 들배지기로 들어갔습니다. 훈이의 몸이 들썩 들어 올려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훈이는 다시 버티고 있었습니다. 훈이의 거친 숨소리가 기분 나쁘게 들렸습니다.

˝대장, 이겨라! 대장, 이겨라!˝

아이들이 힘차게 응원을 했습니다. 내 등골에서는 천천히 식은 땀이 배어 나왔습니다. 손바닥이 끈끈하게 젖었습니다.

˝대장, 한 번에 해치워.˝

아이들의 응원 소리가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흘깃 보니 훈이는 얼굴이 빨개지도록 힘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먼저 공격도 하지 않고 그저 버티고만 있었습니다. 몸집도 작은 녀석이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훈이와 나는 서로 샅바만 붙잡고 실랑이만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어떤 기술이 훈이에게 먹힐까 잠시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흘깃 모래판 옆 담장 밑으로 눈길이 간 순간, 그만 가슴이 덜컥 소리를 내며 무너졌습니다.

내가 본 것은 담장 옆에 말없이 서 있는 한 아주머니였습니다. 한 눈에도 허름한 옷차림과 부수수한 머리 모양새, 그리고 보기싫게 찢어진 입술 모양이 내 눈에 확 들어 왔습니다.

´아! 훈이 엄마!´

훈이 엄마는 두 손을 꼭 모으고 입술을 꼭 사려물고 말없이 훈이를 응원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훈이 엄마의 모습을 본 순간, 정말 이상하게도 내 몸에서는 힘이 쭈욱 빠져 나갔습니다. 바람 빠진 풍선마냥 나는 그대로 나동그라졌습니다.

˝와아!˝

놀라는 아이들의 웅성거림과 떠들썩함이 아득하게 멀어졌습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주 순간에 일이었습니다.

나는 훈이 엄마가 두 손을 가리고 계신 모습을 보았습니다. 울고 계신 게 분명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루룩 흘러 내렸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왜 눈물이 나오는지 나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째보 훈이에게 진 것이 분하지 않았습니다. 억울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자꾸 눈물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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