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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강원일보] 감자꽃 -이남영

신춘문예 이남영............... 조회 수 1088 추천 수 0 2006.02.11 22:14:59
.........
[2003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감자꽃

 하늘은 파란 들판이 올라 앉은 듯 온통 푸른빛입니다. 듬성듬성 피어나는 하얀 뭉게구름이 파란 옷감에 자수를 놓은 듯 곱습니다. 담장 너머로 호박넝쿨이 긴 줄기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줄기에는 엄지손가락 만한 호박이 열렸습니다. 담장에 기댄 대추나무에는 눈꽃처럼 하얀 꽃이 피었습니다.

 석이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힙니다. 좁은 자갈길에는 돌멩이들이 많아 종종 석이의 발을 걸곤 합니다. 석이의 무릎에는 파란 멍이 소복이 돋았습니다. 그러나 석이는 재빨리 마을 길을 벗어나고 있습니다.

 “장군이 어디가니?”

 대추나무집 아저씨입니다. 아버지가 군대에서 돌아가신 후, 사람들은 석이를 장군이라고 부릅니다. 아버지가 전쟁터에서 장군처럼 용감하게 싸웠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집에는 아버지가 받은 훈장도 있습니다.

 “엄마한테요”

 “엄마 어디 가셨니?”

 “.......”

 석이는 대답에 자신이 없습니다. 엄마가 어디에 갔는지 잘 모르면서 무작정 집을 나섰기 때문입니다. 아저씨는 금방 석이의 걱정을 눈치챕니다.

 “아마 순이네 콩밭에 가셨을게다. 오늘 동네 사람들 모두 거기서 밭 맨다고 하더라. 너 혼자 가기엔 꽤 먼 길인데......”

 아저씨가 석이의 발을 쳐다봅니다. 고무신의 찢어진 틈으로 엄지발가락이 삐쭉 고개를 내밉니다.

 “업히거라, 마침 볼일도 있구......”

 아저씨가 등을 돌려댑니다. 석이를 등에 업은 아저씨의 그림자가 성큼 성큼 걸어 갑니다. 석이는 말을 탄 장군처럼 신이 납니다. 건넌 마을에 가려면 개울을 건너야 합니다. 어제 내린 비로 물이 불어나, 징검다리가 물 속에 잠겼습니다. 그러나 키가 큰 아저씨는 바지를 걷어올리고 금방 물을 건넙니다. 순이네 콩밭에 도착했을 때는, 석이의 그림자가 난장이처럼 작아졌습니다.

 멀리 밭에서 일하는 아낙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있는 모습이 비슷해서, 석이는 쉽게 엄마를 찾을 수 없습니다. 갑자기 발에 난 상처가 아파 옵니다. 석이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습니다.

 “우리 장군이 왔니?”

 엄마 목소리입니다. 엄마가 호미를 들고 다가옵니다. 석이는 참았던 울음을 터트립니다.

 “사내녀석이 울긴......”

 석이는 엄마한테 매달립니다. 엄마한테는 땀 냄새가 납니다. 석이는 엄마 저고리를 뒤져 젖꼭지를 찾습니다.

 “다 큰 녀석이 창피하게......”

 엄마가 석이를 밀어냅니다. 다른 집 애들은 밥을 먹을 나이지만, 동생이 없는 석이는 다섯살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젖을 먹습니다. 석이는 엄마가 한없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엄마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그늘로 석이를 데리고 갑니다. 그리고 저고리를 풀어 젖을 물려줍니다. 엄마의 얼굴 위로 하얀 구름이 흘러갑니다.

 밭 매는 일은 해가 저물고 나서야 끝났습니다. 석이는 엄마 뒤를 하루종일 따라 다니느라 피곤했는지 집으로 돌아오는 엄마 등에 업혀 금방 잠이 듭니다. 산길엔 일찍 어둠이 내렸습니다. 동네 어귀에 왔을 때는 어두워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검은 하늘에 보석을 흩뿌려 놓은 듯, 작은 별들만 반짝거립니다. 집 앞에 있는 감자밭을 지나고 있을 때, 개 짓는 소리에 놀라 석이는 잠에서 깨고 말았습니다. 정다운 엄마 목소리가 들립니다.

 “네 아빠가 집을 떠나던 때도 이 맘 때였다...... 그 때도 감자 꽃이 환하게 피었었지......”

 그 때 구름이 걷히면서 환한 달이 얼굴을 내밉니다. 달빛에 비친 감자 꽃이 작은 등불처럼 빛납니다. 감자 줄기는 수많은 등불을 매달고 있습니다. 감자밭은 하늘의 별들이 내려온 듯 온통 하얀빛 등불로 소란스럽습니다. 석이는 엄마의 따뜻한 품에 안겨 먼 별나라로 여행을 떠납니다.

 

 여름 장마가 시작될 무렵 외할머니가 오셨습니다. 외할머니는 석이를 주려고 사탕을 사오셨지만, 석이는 외할머니가 무섭기만 합니다. 어제 저녁만 해도 엄마에게 젖을 달라고 조르다가 외할머니께 혼쭐이 났습니다. 석이는 외할머니가 천사같은 엄마를 하나도 닮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온 종일 동네를 쏘다니느라 피곤했는지 석이는 초저녁에 잠이 들었습니다. 외할머니와 엄마는 석이의 머리맡에서 나물을 다듬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래?”

 외할머니가 근심스럽게 엄마를 쳐다 봅니다.

 “......”

 “다큰 자식 젖이나 물리고......”

 “어린 게 아비도 없이 불쌍해서......”

 엄마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입니다.

 “내일은 소태나무 껍질이라도 벗겨 오마. 너희도 다 그렇게 젖 떼었어. 젖 떨어지면 정도 떨어지겠지......”

 외할머니와 엄마는 아무말도 하지 않습니다. `똑똑´ 나물 다듬는 소리만 조용히 들려옵니다. 오랜 만에 얼굴을 내민 달님이 그윽한 미소로 초가집 창을 비추고 있습니다.

 

 석이는 창문 틈으로 기어들어온 햇살이 얼굴을 간지럽히는 바람에 눈을 떴습니다. 엄마가 분홍저고리를 입고 거울 앞에 앉아 있습니다. 곱게 화장한 엄마 얼굴이 유난히 예쁘게 보입니다. 석이는 언제나처럼 엄마 가슴에 파고듭니다. 사르락거리는 저고리의 감촉이 좋습니다.

 그러나 엄마 젖을 물었을 때, 석이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습니다. 뭔가 쓴 것이 입안을 가득 채웠기 때문입니다. 석이는 엄마한테서 떨어져 나와 문 밖으로 뛰어 나갔습니다. 마당에 침을 뱉고 물로 입을 행구는데도 한참이나 입안이 얼얼합니다. 석이는 한나절이 되도록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에서 서성거립니다. 입안이 씁쓸합니다. 석이는 아침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납니다.

 다음 날, 석이는 외할머니를 따라 집을 나섰습니다. 엄마하고 떨어지는 게 싫었지만, 어제 마셨던 쓴 젖 맛을 생각하면 엄마가 밉게만 보입니다. 엄마는 석이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할머니 말씀 잘 듣고...... 밥 잘 먹어야 한다......”

 엄마는 말을 다 잇지 못합니다. 석이는 엄마가 왜 우는지 알 수 없습니다. 입술에서 어제 마신 쓴 맛이 되살아나, 성큼 외할머니를 따라 집을 나섰습니다.

 

 며칠 째 비가 내렸습니다. 산에 있는 나무와 풀들도 모두 숨을 죽인 채 웅크리고 있습니다. 석이는 아침 나절부터 동네 어귀에 있는 오두막에서 아랫마을로 통하는 고갯길을 지키고 서 있습니다.

 외할머니 집에 온 지도 열흘이 다 되어 갑니다. 석이는 엄마의 달콤한 젖 냄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엄마와 헤어지던 날의 씁쓸한 젖 맛이 자꾸만 눈물을 밀어 올리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집에 들어가면 외할머니에게 야단을 맞아야 합니다.

 “이 놈의 자식 밥 먹는 게 이게 뭐야? 다 큰 녀석이 어미 젖꼭지만 물고 있더니......어찌 애 버릇을 이렇게 들였을까!”

 석이는 까칠한 밥알을 도저히 삼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밥을 입안 가득 물고 있다가 또 뱄고 말았습니다. 외할머니의 거친 손바닥이 석이의 엉덩이를 때렸지만, 오늘은 눈물도 흐르지 않았습니다. 엄마의 젖 냄새가 그리울 뿐입니다.

 

 어른들이 들로 나가고 석이는 집을 나섰습니다. 해가 머리 꼭대기에 걸려 있습니다. 엄마가 기워준 고무신은 돌 뿌리에 걸릴 때마다 발에서 벗겨져 달아납니다. 집까지는 반나절이나 걸리는 먼 길입니다. 석이를 업어 줄 엄마도, 대추나무집 아저씨도 없습니다. 그러나 석이는 엄마를 생각하면 힘이 납니다. 길가에는 강아지풀도, 명아주 이파리도 잔뜩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들을 가지고 놀 시간이 없습니다.

 석이가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이 다 되었습니다. 저만치 집이 보입니다. 석이는 집을 향해 달립니다. 감자밭을 지나 마당에 들어섰습니다. 집안은 조용하기만 합니다.

 “엄마!”

 아무런 대답이 없습니다. 방문을 열어 봅니다. 방안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옷을 넣었던 장롱도, 장롱 위의 이불도 보이지 않습니다. 석이는 부엌으로 뛰어갑니다. 부엌에도 엄마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궁이에는 불도 지펴져 있지 않습니다. 밥솥도 없어지고, 그 자리엔 검고 동그란 구멍만 남았습니다.

 석이는 방에 들어가 누웠습니다. 피곤이 밀려옵니다. 그러나 석이는 잠을 참습니다. 금방이라도 엄마가 `장군아!´ 하고 방문을 열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석이는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었습니다. 환한 달빛이 석이의 가슴을 덮고 있습니다. 달빛이 창호지 문을 두드리며 석이를 부르는 것 같습니다. 석이는 바깥으로 나갑니다. 헐거운 신발이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석이는 달빛을 맞으며 마당가에 섰습니다. 감자밭에 켜진 수많은 꽃등이 곱습니다.

 “이까짓 거!”

 석이는 갑자기 감자밭으로 뛰어듭니다. 깜짝 놀란 감자 꽃이 `와르르´ 무너져 내립니다. 석이가 감자 줄기를 짓밟습니다. 감자 줄기에 붙은 수많은 등불이 땅바닥에 곤두박질 칩니다. 신발이 발에서 벗겨져 달아납니다. 발이 아파 옵니다.

 석이는 감자 줄기에 걸려 넘어집니다. 이제 감자 줄기를 손으로 잡아당깁니다. 뽑힌 감자 줄기가 등불을 매단 채 여기저기 흩어집니다. 더러 감자 줄기에는 애기 주먹만한 감자가 매달려 있습니다. 곧 석이도 지쳐 쓰러집니다. 여기저기 감자 줄기에 매달린 하얀 등불이 어지럽습니다.

 석이는 갑자기 배가 고픕니다. 감자 줄기에 붙은 감자를 집어듭니다. 딱딱한 감자가 손안에 꽉 찹니다. 감자를 한 입 베어 뭅니다. 찬 감자에서 비릿한 엄마 젖 냄새가 올라옵니다. 뜨거운 것이 자꾸 볼을 타고 흐릅니다. 꽃등을 잔뜩 매단 감자 줄기 때문인지, 하얀 달빛 때문인지 감자밭이 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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