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유월 어느 날 늦은 오후였습니다. 아직은 한낮이나 다름없이 햇빛이 쨍쨍 내리쬘 무렵인데 번잡한 네거리 한 모퉁이에 새 장수가 한 사람 크고 작은 조롱들을 줄느름히 늘어놓고 앉아 있었습니다.
물론 그 조롱들 속에는 예쁘고 귀여운 새들이 한 쌍씩 짝을 지어 들어 있었습니다. 파란 깃털의 앵무새를 비롯해 황금빛 깃털을 한 카나리아 또 하얀 깃털의 문조, 빨간 부리를 한 금정조, 노랗고 긴 꼬리를 지닌 잉꼬, 그밖에도 방울새, 십자매 같은 새들이 조롱마다 날개를 파드닥거리거나 혹은 뭐라고 끊임없이 지절대며 있는 것이었습니다.
헌 밀짚모자를 비뚜름히 쓴 그 새 장수 아저씨는 좀 시무룩한 얼굴이었습니다. 딴은 그럴 만도 했습니다. 어쩐지 오늘은 도무지 장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이 앵무새 얼마죠? 참말로 말을 할 줄 아나요?˝
˝이 잉꼬는 얼마죠?˝
˝아이, 예뻐! 이 새 이름은 뭐죠?˝
사람들은 오가며 공연히 이렇게 묻기만 할 뿐, 정작 하나라도 사가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어허, 이거 오늘은 재수가 옴붙었네. 이렇게 팔아서야 어떻게 먹고 산담‥‥‥˝
새 장수는 기가 막혀 하염없이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지나가던 한 아저씨가 문득 새 장수 앞에서 걸음을 멈췄습니다. 한 마흔 살쯤 돼 뵈는 아저씨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저씨도 어쩐지 좀 쓸쓸한 얼굴이었습니다.
아마 갑자기 할 일이 없어져서 그런지도 모릅니다. 그 아저씨는 어느 대학교의 교수였습니다. 여름 방학이 되려면 아직 한 달 가량이나 남았으나 그 대학은 이미 문을 닫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학생들의 데모가 날이 갈수록 거세어진 탓이었습니다. 학생들이 한결같이 부르짖는 것이 자유와 민주였습니다. 그러나 아저씨는 날마다 그것을 가르치면서도 정작 그들이 그것을 누리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자 학생들은 그의 곁을 떠났습니다.
말로만 떠들어대는 교수는 믿을 수가 없노라고 그들은 물밀듯이 거리로 뛰쳐나가 ˝자유를 달라 ! 민주 사회를 건설하자 ! ˝ 하고 부르짖었습니다.
오늘도 그 아저씨는 학교로 나가 텅 빈 강의실을 둘러보았습니다. 학생들이라고는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는 강의실은 무덤처럼 쓸쓸했습니다. 아저씨는 가슴이 아팠습니다. 아아, 어찌하여 이렇게 됐을까? 그는 흘로 탄식을 하며 그곳을 나와 하염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데 문득 새 장수 앞을 지나치게 된 것이었습니다.
새 장수는 눈이 번쩍 띄는 듯 벌떡 일어서며 ˝예, 손님. 사가셔요. 마음에 드시는 것을 한번 골라 보셔요.이 파란 앵무새가 어떻습니까? 이 앵무새로 말할 것 같으면 무려 백마흔두 가지 소리를 내지요. 그뿐인 줄 아십니까? 사람의 말도 곧잘 흉내를 낼 줄 압니다. 자꾸 가르치면 사람처럼 말을 하는 새가 바로 이 앵무새가 아닙니까요.˝ 하고 큰소리로 지껄였습니다. 어떻게 하든 손님의 호기심을 끌려는 것이었습니다.
˝아, 그래요? 그렇게도 많은 소리를 냅니까? 백마흔 ‥‥‥몇 가지라고 했죠? ˝
아저씨가 물었습니다.
˝예, 뭐 하여간 못 내는 소리가 없다구요. 사람처럼 말도 한다면 다 알 만하지 않으셔요. 이 앵무새를 드릴깝쇼? ˝
˝아니, 이 조롱 속의 새는 또 뭐죠?˝
˝아, 예. 이건 카나리아라고 하지요. 세상에서 가장 고운 소리를 내는 새지요. 울음 소리를 들으시려면 이 카나리아보다 더 훌륭한 새는 없다고 봐야죠. 이것이 마음에 드십니까? ˝
˝글쎄요‥‥‥ 근데 그렇게 고운 소리를 잘 낸다는 새가 지금은 왜 두 마리가 다 벙어리처럼 가만히 앉아 있을까요?˝
아저씨가 수상하다는 듯이 찬찬히 조롱 속을 들여다보며 물었습니다. 아닌게아니라 온 깃털이 눈부신 황금빛인 그 카나리아 한 쌍은 마치 넋 빠진 듯 조롱 한켠 횃대 위에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아닙니다. 아직 어려서 그렇지, 잘 웁니다. 집에 가져가셔서 한 달만 더 키워 보셔요. 틀림없이 두 마리가 하루 종일 지저귈 겁니다. 이 카나리아를 사가시겠어 요?˝
새 장수는 혹시 모처럼 나타난 손님을 놓칠까 봐 안달이 나서 말했습니다.
˝조롱 속에 가둬 놓아서 벙어리가 된 것이 아닐까요? 노래 잃은 카나리아라‥‥‥˝
아저씨는 혼자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아저씨는 어쩐지 그 조롱 속의 새들이 제 자신처럼 여겨졌을지도 모릅니다.
˝허어, 손님. 원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조롱 속이라뇨? 조롱 속이 어떤데요? 가만히 있어도 먹을 게 있겠다, 마실 물이 있겠다, 무슨 걱정입니까요. 새들한테는 이 조롱 속이 바로 천국인지도 모릅니다. 아, 천국이 따로 있습니까? 아무런 걱정 없이 배부르게 살면 그게 바로 천국이지요. ˝
새 장수가 화가 난 듯 떠들었습니다. 그는 아마 이렇게 외치고 싶은 듯했습니다.
´여보쇼, 손님 ! 나는 차라리 이 조롱 속의 새 팔자가 부럽소. 하루 종일 이 많은 조롱들을 들고 지고 이 거리 저 거리를 떠돌아다니며 목이 아프도록 지껄여 봐도 입에 풀칠하기에도 빠듯한 신세라오. 근데 뭐 조롱 속이라 울지 않는다구요? 제발 나를 이 조롱 속의 새처럼만 살게 해주시오. 그러면 하루 종일 울기만 하겠소. 세상에 무슨 설움 무슨 설움 해도 배고픈 설움보다 더 무서운 것이 없다구요. 아시겠소?´
그러나 아저씨는 아저씨대로 할말이 가득 찬 표정으로 새 장수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아마 이런 말을 하고 싶은지도 모릅니다.
´여보, 새 장수. 물론 당신의 말도 일리는 있소. 사람이란 모름지기 먹어야 살게 마련이니 그 아니 옳은 말이겠소. 하지만 과연 당신의 말대로 맛난 음식, 좋은 집,비싼 옷만 갖춰진다고 해서 누구나 행복하다고 할 수가 있을까요? 사람은 반드시 정신과 육체가 하나로 조화되어야 완전한 생명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오. 그런데 빵만 가지고 살아갈 수가 있을까요? 빵은 육체의 양식은 되나 정신의 양식은 될 수가 없소. 그러면 정신의 양식은 뭘까요? 그것은 자유요! 빵이 없이는 육체가 살 수 없듯이 또한 자유가 없이는 정신이 살아갈 수가 없소! 자유란 그만큼 고귀한 것이오. ´
그러나 새 장수는 그 말이 무슨 잠꼬대처럼 들립니다. 그는 비웃는 듯 코웃음을 치며 말합니다.
´모르는 소리 좀 그만하시오. 당신의 직업이 뭔지는 모르겠소만 되게 유식한 척하시는데, 이 조롱 속의 새들을 좀 보시라고. 요렇게 비좁은 조롱 속에 갇혀서도 제때제때 물과 좁쌀만 넣어 주면 알을 낳고 새끼를 까며 잘만 살지 않소. 근데 괜시리 자유니 뭐니 해서 들뜨게 하지 마시라고. 남 장사하는 데 방해만 되니까.´
이번에는 또 아저씨가 재빨리 말합니다.
´좋습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이니 우리 한번 차근차근 따져 봅시다 그려. 마침 나도 한가한 몸이니 말이오. 당신이 보기에는 이 조롱 속의 새들도 저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과 다름없는 것 같겠지만 천만에, 결로 그렇지가 않소. 조롱 속의 새는 이미 새가 아니오. 새라면 마땅히 자연의 품안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라나고 살아
가야 하는 것이오. 푸른 하늘과 깊은 숲, 넓은 벌판과 긴 강물 사이를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새들을 보시오. 즐거이 지저귀는 그들의 노래, 가비야운 혹은 세찬 그 날개 짓. 그러나 조롱 속의 새는 사람들에 의해 길들여진 한갓 장난감에 지나지 않을 뿐이오. 비록 여느 새들처럼 살아서 움직이고 또 지저귀곤 한다지만, 결코 조롱 속을 벗어날 수가 없으니 장난감과 다를 게 뭐가 있소? 조롱 속의 새들에게는 그들의 삶이 없소. 오로지 사람들에 의해 목숨만 이어가고 있을 뿐.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사람도 저 새들처럼 살아갈 수도 있소. 사람에게는 감옥이란 조롱이 있지 않소. 그러나 사람은 그 속에 갇혀서 늘 자유를 꿈꾸게 마련이오. 그것은 아마 새들도 마찬가지일 것이오. 무릇 생명이란 어느 것이나 한결같이 자유를 꿈꾸지 않을 수가 없고. 그 꿈마저 잃어버렸다면 참으로 그것은 생명체가 아니니까 말이오. 자, 내 이야기가 좀 길어진 것 같소만 요컨대 사람은 사람답게, 새는 새답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이 아니겠소.´
새 장수는 비로소 조금 감동이 된 듯 ´듣고 보니 그 말도 그럴듯하기는 하네요.´
하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는 아무래도 자유니 뭐니 보다는 당장에 먹고 살 일이 더 급하니 어쩌겠소.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한다고요.´ 하고 끝끝내 한마디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별안간 새 장수가 ˝엣취!˝ 하고 재채기를 하며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어, 이게 웬일일까? 갑자기 코가 맵고 눈이 따가워 오는데 ‥‥‥ ? ˝
새 장수가 어리둥절해져 주위를 살펴보며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저씨도 또 느닷없이 ˝엣취 ! ‥‥‥˝ 하고 재채기를 하며 두 손으로 코와 눈을 감쌌습니다. 새 장수와 마찬가지로 코가 몹시 매워 오고 눈이 따가워 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물론 상점 안에 있는 사람들도 한결같이 재채기를 하거나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기에 바빴습니다. 그 리고 조롱 속의 새들도 무엇에 놀란 듯 갑자기 화닥닥거리며 왁자지껄 소란을 피웠습니다. 어떤 조롱 속의 새들은 마치 금방 조롱을 박차고 나와 하늘 저편으로 날아 오를 듯이 마구 두 날개를 파드닥거리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구, 또 어디서 데모를 하는 모양이군. 또 최루탄을 쐈나 봐. 아유 지긋지긋해‥‥‥˝
˝쯧쯧쯧, 밤낮 이래서야 사람이 어디 살 수가 있나‥‥‥˝
눈물 콧물을 닦아 내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뇌까리는 소리였습니다.
아닌게아니라 오늘도 또 도시의 여기저기서 데모가 벌어진 듯했습니다. 그럴싸해서 그런지 저편 어디선가에서 무슨 ˝우-우-˝ 하는 함성이 들리는 것도 같았습니다.
대학생들은 떼를 지어 어깨를 짜고 거리로 몰려나와 한사코 도시 한가운데를 향해 나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방독 마스크를 쓰고 방패를 든 전경들이 기를 쓰고 그 앞을 가로막으며 버티려고 합니다. 밀고 밀리고 하는 사이 힘이 부친 전경들이 끝내 최루탄을 쏘아 버린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 최루탄 가스가 바람을 타고 온 도시로
솔솔 번져 나와, 새 장수가 있는 곳까지 스며든 것이었습니다. 요즘은 거의 날마다 그런 일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어허, 안 그래도 장사가 안 돼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왜 자꾸 데모를 하고 또 최루탄을 쏘아대는고? 우리 같은 가난뱅이들만 못살게 하려고‥‥‥˝ 새 장수가 맨손으로 눈물을 훔쳐내며 중얼거렸습니다. 마치 살기가 힘들어 참말로 울고 있는 사람 같았습니다.
˝역사를 위해서지요. ˝
아저씨도 하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 내며 말했습니다.
˝역사라뇨? 역사라는 것은 이렇게 서로 싸우기만 하는 거요 ? ˝
˝더 자유롭고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려면 서로 다툴 때도 있는 법이지요. 그것도 다 우리를 위해서라고 생각하셔요. 진통이 없이는 새 역사를 창조할 수가 없답니 다.˝
˝아이구, 나는 그런 역사는 모르오. 먹고 살기에도 바쁜데 역사는 알아서 뭘 하겠소. 내 역사는 제발 장사나 잘 돼 달라는 것뿐이라구요.˝
˝알겠소. 저 카나리아 한 쌍 얼마라고 했소?˝
아저씨가 문득 말했습니다.
˝예, 이만 원만 주셔요. ˝
새 장수가 얼른 말했습니다.
아저씨´는 두말 없이 지갑을 꺼내 만원짜리 두 장을 새 장수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조롱을 들고 갑자기 문을 활짝 열어 놓았습니다.
˝자, 어서 마음대로 날아가거라. 최루탄이 날아오지 않는 저 푸른 하늘로‥‥‥˝
아저씨는 한 손으로 조롱을 두들기며 말했습니다. 순간, 카나리아 한 마리가 번개처럼 조롱 속을 빠져 나와 소스라치듯 하늘 높이 날아올랐습니다. 그러자 뒤를 이어 또 한 마리가 하늘 저편으로 포르르 날아갔습니다.
아저씨는 멍하니 그 새들이 날아간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어? ! ‥‥‥‥
새 장수는 어이가 없어 처음에는 아저씨를 빤히 바라보았으나 어느새 그를 닮아 푸른 하늘로 눈길을 돌렸습니다.
그때 또 아저씨가 ˝엣취! ˝ 하고 재채기를 하며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그러나 아저씨는 온 얼굴에 눈물 범벅이 된 채 빙그레 웃고 있었습니다. 새 장수도 잇따라 ˝
엣취!˝ 하고 재채기를 하며 두 눈에 눈물을 주르르 홀렸습니다. 그러나 그도 아저씨를 바라보며 무슨 까닭에서인지 슬그머니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 카나리아 한 쌍은 이미 어디로 날아가 버렸는지 자취도 없었습니다. 텅 빈 푸른 하늘뿐. (*)
물론 그 조롱들 속에는 예쁘고 귀여운 새들이 한 쌍씩 짝을 지어 들어 있었습니다. 파란 깃털의 앵무새를 비롯해 황금빛 깃털을 한 카나리아 또 하얀 깃털의 문조, 빨간 부리를 한 금정조, 노랗고 긴 꼬리를 지닌 잉꼬, 그밖에도 방울새, 십자매 같은 새들이 조롱마다 날개를 파드닥거리거나 혹은 뭐라고 끊임없이 지절대며 있는 것이었습니다.
헌 밀짚모자를 비뚜름히 쓴 그 새 장수 아저씨는 좀 시무룩한 얼굴이었습니다. 딴은 그럴 만도 했습니다. 어쩐지 오늘은 도무지 장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이 앵무새 얼마죠? 참말로 말을 할 줄 아나요?˝
˝이 잉꼬는 얼마죠?˝
˝아이, 예뻐! 이 새 이름은 뭐죠?˝
사람들은 오가며 공연히 이렇게 묻기만 할 뿐, 정작 하나라도 사가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어허, 이거 오늘은 재수가 옴붙었네. 이렇게 팔아서야 어떻게 먹고 산담‥‥‥˝
새 장수는 기가 막혀 하염없이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지나가던 한 아저씨가 문득 새 장수 앞에서 걸음을 멈췄습니다. 한 마흔 살쯤 돼 뵈는 아저씨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저씨도 어쩐지 좀 쓸쓸한 얼굴이었습니다.
아마 갑자기 할 일이 없어져서 그런지도 모릅니다. 그 아저씨는 어느 대학교의 교수였습니다. 여름 방학이 되려면 아직 한 달 가량이나 남았으나 그 대학은 이미 문을 닫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학생들의 데모가 날이 갈수록 거세어진 탓이었습니다. 학생들이 한결같이 부르짖는 것이 자유와 민주였습니다. 그러나 아저씨는 날마다 그것을 가르치면서도 정작 그들이 그것을 누리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자 학생들은 그의 곁을 떠났습니다.
말로만 떠들어대는 교수는 믿을 수가 없노라고 그들은 물밀듯이 거리로 뛰쳐나가 ˝자유를 달라 ! 민주 사회를 건설하자 ! ˝ 하고 부르짖었습니다.
오늘도 그 아저씨는 학교로 나가 텅 빈 강의실을 둘러보았습니다. 학생들이라고는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는 강의실은 무덤처럼 쓸쓸했습니다. 아저씨는 가슴이 아팠습니다. 아아, 어찌하여 이렇게 됐을까? 그는 흘로 탄식을 하며 그곳을 나와 하염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데 문득 새 장수 앞을 지나치게 된 것이었습니다.
새 장수는 눈이 번쩍 띄는 듯 벌떡 일어서며 ˝예, 손님. 사가셔요. 마음에 드시는 것을 한번 골라 보셔요.이 파란 앵무새가 어떻습니까? 이 앵무새로 말할 것 같으면 무려 백마흔두 가지 소리를 내지요. 그뿐인 줄 아십니까? 사람의 말도 곧잘 흉내를 낼 줄 압니다. 자꾸 가르치면 사람처럼 말을 하는 새가 바로 이 앵무새가 아닙니까요.˝ 하고 큰소리로 지껄였습니다. 어떻게 하든 손님의 호기심을 끌려는 것이었습니다.
˝아, 그래요? 그렇게도 많은 소리를 냅니까? 백마흔 ‥‥‥몇 가지라고 했죠? ˝
아저씨가 물었습니다.
˝예, 뭐 하여간 못 내는 소리가 없다구요. 사람처럼 말도 한다면 다 알 만하지 않으셔요. 이 앵무새를 드릴깝쇼? ˝
˝아니, 이 조롱 속의 새는 또 뭐죠?˝
˝아, 예. 이건 카나리아라고 하지요. 세상에서 가장 고운 소리를 내는 새지요. 울음 소리를 들으시려면 이 카나리아보다 더 훌륭한 새는 없다고 봐야죠. 이것이 마음에 드십니까? ˝
˝글쎄요‥‥‥ 근데 그렇게 고운 소리를 잘 낸다는 새가 지금은 왜 두 마리가 다 벙어리처럼 가만히 앉아 있을까요?˝
아저씨가 수상하다는 듯이 찬찬히 조롱 속을 들여다보며 물었습니다. 아닌게아니라 온 깃털이 눈부신 황금빛인 그 카나리아 한 쌍은 마치 넋 빠진 듯 조롱 한켠 횃대 위에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아닙니다. 아직 어려서 그렇지, 잘 웁니다. 집에 가져가셔서 한 달만 더 키워 보셔요. 틀림없이 두 마리가 하루 종일 지저귈 겁니다. 이 카나리아를 사가시겠어 요?˝
새 장수는 혹시 모처럼 나타난 손님을 놓칠까 봐 안달이 나서 말했습니다.
˝조롱 속에 가둬 놓아서 벙어리가 된 것이 아닐까요? 노래 잃은 카나리아라‥‥‥˝
아저씨는 혼자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아저씨는 어쩐지 그 조롱 속의 새들이 제 자신처럼 여겨졌을지도 모릅니다.
˝허어, 손님. 원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조롱 속이라뇨? 조롱 속이 어떤데요? 가만히 있어도 먹을 게 있겠다, 마실 물이 있겠다, 무슨 걱정입니까요. 새들한테는 이 조롱 속이 바로 천국인지도 모릅니다. 아, 천국이 따로 있습니까? 아무런 걱정 없이 배부르게 살면 그게 바로 천국이지요. ˝
새 장수가 화가 난 듯 떠들었습니다. 그는 아마 이렇게 외치고 싶은 듯했습니다.
´여보쇼, 손님 ! 나는 차라리 이 조롱 속의 새 팔자가 부럽소. 하루 종일 이 많은 조롱들을 들고 지고 이 거리 저 거리를 떠돌아다니며 목이 아프도록 지껄여 봐도 입에 풀칠하기에도 빠듯한 신세라오. 근데 뭐 조롱 속이라 울지 않는다구요? 제발 나를 이 조롱 속의 새처럼만 살게 해주시오. 그러면 하루 종일 울기만 하겠소. 세상에 무슨 설움 무슨 설움 해도 배고픈 설움보다 더 무서운 것이 없다구요. 아시겠소?´
그러나 아저씨는 아저씨대로 할말이 가득 찬 표정으로 새 장수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아마 이런 말을 하고 싶은지도 모릅니다.
´여보, 새 장수. 물론 당신의 말도 일리는 있소. 사람이란 모름지기 먹어야 살게 마련이니 그 아니 옳은 말이겠소. 하지만 과연 당신의 말대로 맛난 음식, 좋은 집,비싼 옷만 갖춰진다고 해서 누구나 행복하다고 할 수가 있을까요? 사람은 반드시 정신과 육체가 하나로 조화되어야 완전한 생명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오. 그런데 빵만 가지고 살아갈 수가 있을까요? 빵은 육체의 양식은 되나 정신의 양식은 될 수가 없소. 그러면 정신의 양식은 뭘까요? 그것은 자유요! 빵이 없이는 육체가 살 수 없듯이 또한 자유가 없이는 정신이 살아갈 수가 없소! 자유란 그만큼 고귀한 것이오. ´
그러나 새 장수는 그 말이 무슨 잠꼬대처럼 들립니다. 그는 비웃는 듯 코웃음을 치며 말합니다.
´모르는 소리 좀 그만하시오. 당신의 직업이 뭔지는 모르겠소만 되게 유식한 척하시는데, 이 조롱 속의 새들을 좀 보시라고. 요렇게 비좁은 조롱 속에 갇혀서도 제때제때 물과 좁쌀만 넣어 주면 알을 낳고 새끼를 까며 잘만 살지 않소. 근데 괜시리 자유니 뭐니 해서 들뜨게 하지 마시라고. 남 장사하는 데 방해만 되니까.´
이번에는 또 아저씨가 재빨리 말합니다.
´좋습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이니 우리 한번 차근차근 따져 봅시다 그려. 마침 나도 한가한 몸이니 말이오. 당신이 보기에는 이 조롱 속의 새들도 저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과 다름없는 것 같겠지만 천만에, 결로 그렇지가 않소. 조롱 속의 새는 이미 새가 아니오. 새라면 마땅히 자연의 품안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라나고 살아
가야 하는 것이오. 푸른 하늘과 깊은 숲, 넓은 벌판과 긴 강물 사이를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새들을 보시오. 즐거이 지저귀는 그들의 노래, 가비야운 혹은 세찬 그 날개 짓. 그러나 조롱 속의 새는 사람들에 의해 길들여진 한갓 장난감에 지나지 않을 뿐이오. 비록 여느 새들처럼 살아서 움직이고 또 지저귀곤 한다지만, 결코 조롱 속을 벗어날 수가 없으니 장난감과 다를 게 뭐가 있소? 조롱 속의 새들에게는 그들의 삶이 없소. 오로지 사람들에 의해 목숨만 이어가고 있을 뿐.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사람도 저 새들처럼 살아갈 수도 있소. 사람에게는 감옥이란 조롱이 있지 않소. 그러나 사람은 그 속에 갇혀서 늘 자유를 꿈꾸게 마련이오. 그것은 아마 새들도 마찬가지일 것이오. 무릇 생명이란 어느 것이나 한결같이 자유를 꿈꾸지 않을 수가 없고. 그 꿈마저 잃어버렸다면 참으로 그것은 생명체가 아니니까 말이오. 자, 내 이야기가 좀 길어진 것 같소만 요컨대 사람은 사람답게, 새는 새답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이 아니겠소.´
새 장수는 비로소 조금 감동이 된 듯 ´듣고 보니 그 말도 그럴듯하기는 하네요.´
하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는 아무래도 자유니 뭐니 보다는 당장에 먹고 살 일이 더 급하니 어쩌겠소.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한다고요.´ 하고 끝끝내 한마디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별안간 새 장수가 ˝엣취!˝ 하고 재채기를 하며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어, 이게 웬일일까? 갑자기 코가 맵고 눈이 따가워 오는데 ‥‥‥ ? ˝
새 장수가 어리둥절해져 주위를 살펴보며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저씨도 또 느닷없이 ˝엣취 ! ‥‥‥˝ 하고 재채기를 하며 두 손으로 코와 눈을 감쌌습니다. 새 장수와 마찬가지로 코가 몹시 매워 오고 눈이 따가워 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물론 상점 안에 있는 사람들도 한결같이 재채기를 하거나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기에 바빴습니다. 그 리고 조롱 속의 새들도 무엇에 놀란 듯 갑자기 화닥닥거리며 왁자지껄 소란을 피웠습니다. 어떤 조롱 속의 새들은 마치 금방 조롱을 박차고 나와 하늘 저편으로 날아 오를 듯이 마구 두 날개를 파드닥거리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구, 또 어디서 데모를 하는 모양이군. 또 최루탄을 쐈나 봐. 아유 지긋지긋해‥‥‥˝
˝쯧쯧쯧, 밤낮 이래서야 사람이 어디 살 수가 있나‥‥‥˝
눈물 콧물을 닦아 내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뇌까리는 소리였습니다.
아닌게아니라 오늘도 또 도시의 여기저기서 데모가 벌어진 듯했습니다. 그럴싸해서 그런지 저편 어디선가에서 무슨 ˝우-우-˝ 하는 함성이 들리는 것도 같았습니다.
대학생들은 떼를 지어 어깨를 짜고 거리로 몰려나와 한사코 도시 한가운데를 향해 나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방독 마스크를 쓰고 방패를 든 전경들이 기를 쓰고 그 앞을 가로막으며 버티려고 합니다. 밀고 밀리고 하는 사이 힘이 부친 전경들이 끝내 최루탄을 쏘아 버린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 최루탄 가스가 바람을 타고 온 도시로
솔솔 번져 나와, 새 장수가 있는 곳까지 스며든 것이었습니다. 요즘은 거의 날마다 그런 일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어허, 안 그래도 장사가 안 돼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왜 자꾸 데모를 하고 또 최루탄을 쏘아대는고? 우리 같은 가난뱅이들만 못살게 하려고‥‥‥˝ 새 장수가 맨손으로 눈물을 훔쳐내며 중얼거렸습니다. 마치 살기가 힘들어 참말로 울고 있는 사람 같았습니다.
˝역사를 위해서지요. ˝
아저씨도 하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 내며 말했습니다.
˝역사라뇨? 역사라는 것은 이렇게 서로 싸우기만 하는 거요 ? ˝
˝더 자유롭고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려면 서로 다툴 때도 있는 법이지요. 그것도 다 우리를 위해서라고 생각하셔요. 진통이 없이는 새 역사를 창조할 수가 없답니 다.˝
˝아이구, 나는 그런 역사는 모르오. 먹고 살기에도 바쁜데 역사는 알아서 뭘 하겠소. 내 역사는 제발 장사나 잘 돼 달라는 것뿐이라구요.˝
˝알겠소. 저 카나리아 한 쌍 얼마라고 했소?˝
아저씨가 문득 말했습니다.
˝예, 이만 원만 주셔요. ˝
새 장수가 얼른 말했습니다.
아저씨´는 두말 없이 지갑을 꺼내 만원짜리 두 장을 새 장수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조롱을 들고 갑자기 문을 활짝 열어 놓았습니다.
˝자, 어서 마음대로 날아가거라. 최루탄이 날아오지 않는 저 푸른 하늘로‥‥‥˝
아저씨는 한 손으로 조롱을 두들기며 말했습니다. 순간, 카나리아 한 마리가 번개처럼 조롱 속을 빠져 나와 소스라치듯 하늘 높이 날아올랐습니다. 그러자 뒤를 이어 또 한 마리가 하늘 저편으로 포르르 날아갔습니다.
아저씨는 멍하니 그 새들이 날아간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어? ! ‥‥‥‥
새 장수는 어이가 없어 처음에는 아저씨를 빤히 바라보았으나 어느새 그를 닮아 푸른 하늘로 눈길을 돌렸습니다.
그때 또 아저씨가 ˝엣취! ˝ 하고 재채기를 하며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그러나 아저씨는 온 얼굴에 눈물 범벅이 된 채 빙그레 웃고 있었습니다. 새 장수도 잇따라 ˝
엣취!˝ 하고 재채기를 하며 두 눈에 눈물을 주르르 홀렸습니다. 그러나 그도 아저씨를 바라보며 무슨 까닭에서인지 슬그머니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 카나리아 한 쌍은 이미 어디로 날아가 버렸는지 자취도 없었습니다. 텅 빈 푸른 하늘뿐. (*)
댓글 '1'
민들레와 금단추
내가 눈을 떠보니 커다란 병원 앞뜰 잔디밭이었습니다. 빛나고 따스한 햇살이 내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어요.
내가 자리 잡은 곳은 영산홍 꽃그늘이었습니다. 나는 마치 커다란 등불처럼 곱고 화려한 영산홍 꽃그늘 아래 피어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넌 정말로 노랗구나. 지난해엔 안 보이던데 어디서 온 누구니?”
영산홍이 점잖게 물었습니다.
“전 민들레라고 합니다. 멀고 먼 시골에서 왔지요.”
“민들레? 꽃 중에도 민들레가 있었나? 나는 민들레라기에 그 앤 줄 알았는데······. 그 애가 널 보면 좋아하겠구나.”
영산홍 꽃이 말했어요.
“그 애라니요?”
나랑 같은 이름을 가진 아이가 있다는 영산홍의 말에 나는 호기심이 잔뜩 일어났어요.
“응 여러 달 전에 이 병원에 입원한 소녀야. 입원하기 전에도 오래 동안 이 병원에 다녔다지, 아마.”
“소녀라면 사람이란 말예요?”
나는 더욱 놀랐어요.
“그래. 착하고 예쁜 애지.”
영산홍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상하군요. 나는 작은 풀꽃이에요. 그런데 나랑 같은 이름을 가진 소녀가 있다니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런데 넌 멀고 먼 시골에서 왔다고? 쯧쯧 거기서 그냥 살지 서울엔 뭐 하러 왔니? 저 시끄러운 차 소리와 목이 따가운 그을음, 먼지투성이의 도시에서 사는 게 뭐가 좋다고 서울엔 오니. 너 같은 풀꽃의 씨앗들은 제 날개를 타고 날아가자는 바람의 꾐에 곧잘 귀가 솔깃해져서 따라 나선다며?”
영산홍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아니에요. 전 시골 길섶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봄바람에게 아주 먼, 먼 곳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어요. 시골의 길섶은 정말 지긋지긋하다고 엄마가 말씀하셨거든요.”
내가 말했습니다.
“시골이 지긋지긋하다는 엄마 말씀을 듣고 먼, 먼 곳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고? 그랬더니 여기다 떨어뜨려 놓고 갔니?”
영산홍이 물었습니다.
“여기 좋지 않아요?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는 넓은 잔디밭도 있고, 토끼나 소도 없잖아요? 우리 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나는 신바람이 났습니다.
“이 세상엔 나비와 벌보다도 더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지. 하지만 사람들은 무슨 이상한 이름을 가진 장미나 난초 같은 걸 좋아하지 시골 길가에 잠깐 피었다 지는 너희들처럼 이름 없는 풀꽃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단다. 사람이 꽃을 좋아한다는 건 괴롭힌다는 말과도 같기는 하지만 말이다.”
영산홍이 말했습니다.
“사람이 꽃을 좋아한다는 건 괴롭힌다는 말과 같다고요?”
나는 처음 듣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려졌습니다. 영산홍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시골에 길가에 피면 커다란 소가 나 같은 풀꽃을 밟고 지나간다고 엄마가 말씀하셨어요. 염소나 토끼는 나 같은 풀을 뜯어먹고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않으면 좀이 쑤셔서 못 배기고, 개는 우릴 깔고 앉아 혀를 내밀고 헐떡거린다고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우리더러 도시에 가서 사는 게 좋다고 하신 것입니다.
“아무튼 조심해라. 여긴 그런 짐승은 없지만 너 같은 풀꽃이나 나무에 핀다고는 하나 나 같이 키 작은 꽃들이 살아가기엔 별로 좋은 곳이 못 되니까. 저기 저 큰 나무들이 잎을 다 피우면 우린 햇볕조차 마음대로 쪼일 수 없단다. 거기다 저 담 밖이 바로 큰길 아니냐. 밤낮 없이 앵앵거리며 달리는 차 소리는 귀가 따갑고 날씨가 가물면 검은 먼지가 풀풀 날아와 숨통을 막히게 만든단다. 연기는 또 얼마나 매운지 모른단다.”
영산홍이 자꾸 겁을 주었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은근히 걱정이 됐습니다. 그래도 나는 시골길 길섶보다는 여기가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도 밟고 지나가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떠나온 고향이 생각났습니다. 내가 엄마 곁을 떠나온 것은 꽃씨 때였습니다. 엄마는 생명 가진 것은 누구에게든지 무엇이 되어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해마다 작은 시골 마을 길가에 돋아나서는 어떻게 하면 짐승에게 짓밟히지 않고 무사히 꽃 피워 씨를 맺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나 하면서 살아가는 게 안타깝기 짝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나는 여기라면 누군가를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여기가 좋아요. 영산홍님처럼 화려한 꽃을 보러 오는 사람들도 구경하고요.”
“하하하, 네가 사람들을 구경한다고? 사람들이 널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사람들을 구경해?”
영산홍이 크게 웃었습니다.
“왜 웃으세요? 사람들은 우리 꽃을 구경하는데 꽃인 제가 사람 구경 좀 하면 안 될 거 뭐 있어요?”
“사람 구경 좋지. 그러나 사람도 사람 나름 아니겠니? 너 여기 어떤 사람들이 오는지 아니?”
영산홍은 모르는 소리는 하지도 말라는 듯 내게 되물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오는데요?”
“고통에 차서 얼굴이 일그러지고 한숨이나 푹푹 내쉬는 사람들 아니면 얼른거리지도 않는단다.”
“그건 왜 그래요?”
“병원이니까. 병원은 아픈 사람 아니면, 아픈 사람 위문이나 시중들러 오는 가족들뿐이니까. 그런 사람들의 눈에 꽃이 들어오겠니? 꽃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사람들을 우리가 구경하다니, 끔찍하지 않니?”
영산홍이 말했습니다.
‘그렇지만은 않을 텐데······.’
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작은 소녀 하나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소녀의 걸음걸이는 마치 나풀나풀 춤추며 날아오는 나비 같았습니다. 소녀는 얼굴이 배꽃처럼 하얗군요.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해쓱해 보였습니다. 앓다가 일어난 아이 같습니다. 얼굴은 해쓱하지만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습니다.
“들레야. 조심해. 아직 그렇게 뛰어선 안 돼. 숨 가쁘지 않니?”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소녀를 따라오던 엄마가 걱정했습니다.
“엄마, 나 괜찮아요. 하나도 숨 안 가빠요. 이렇게 뛸 수 있어요.”
소녀는 팔짝팔짝 뛰어 보였습니다.
“그래? 우리 들레 인제 다 나았구나.”
엄마가 소녀를 꼭 껴안았습니다.
“엄마, 조심하세요. 발밑에 꽃이에요. 꽃 밟겠어요.”
소녀가 깜짝 놀랐습니다.
“꽃, 무슨 꽃?”
“노랑꽃. 작고 예쁜 노랑꽃.”
소녀는 엄마 발 앞 내 곁에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정말 민들레가······.”
엄마는 딸과 함께 쪼그리고 앉아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어요.
“엄마, 이 예쁜 꽃이 민들레예요? 나랑 같은 이름이네.”
소녀가 말했습니다.
“그래. 이 꽃이 민들레야. 엄마 아빠 어려서 살던 시골엔 봄이면 길가나 강둑, 산자락의 풀밭 할 것 없이 노란 민들레들이 아주, 아주 많이 피어났었지. 엄마 아빠는 민들레를 너무 좋아했단다. 오죽하면 성이 민씨인 아빠가 네 이름을 들레라고 지었겠니. 민들레가 민들레를 만났구나. 호 호호.”
엄마가 꼭 껴안은 소녀의 어깨를 다독거렸습니다.
“엄마, 우리 집에도 민들레 심어요. 내가 가꿀게요.”
소녀가 말했습니다.
“그래. 의사 선생님이 우리 들레 얼마 안 있어 퇴원할 수 있다고 하셨어. 그 때쯤 아마 이 민들레는 꽃이 지고 하얀 날개를 단 씨가 까맣게 여물 거야. 퇴원할 때 받아다가 우리 집 뜰에 심자. 잔디밭에 핀 민들레 정말 곱구나. 이 노란 꽃 좀 봐라. 꼭 첫돌 마지 아기 노랑 저고리 같구나.”
들레 엄마가 나를 들여다보며 말했습니다.
“아니에요. 할아버지 금단추 빛이에요.”
들레가 다시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금단추?”
엄마의 얼굴이 어두워졌습니다.
“할아버지 환갑 때 제가가 만들어 드렸잖아요? 돼지저금통 깨서.”
“아, 우리 들레가 할아버지 비단 조끼에 달아드린 금단추·····.”
엄마는 눈을 감으셨습니다.
“엄마, 할아버지 금단추 달린 그 조끼 지금도 입고 계실까요?”
들레가 물었습니다.
“아니다. 할아버지 저고리엔 금단추 없단다.”
“왜요? 우리 할아버지도 나라 위해 금단추 뜯어냈어요? 지난 번 나라 빚 갚으려 금 모으기 할 때·····.”
들레가 엄마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
엄마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데 왜 없어졌어요?”
“우리 들레 아파서 병원에 들어올 때······. 그래. 지난가을 우리 들레 병원에 들어올 때 할아버지께서 금단추 우리 들레 치료비에 보태라고 떼어 팔아주셨어.”
엄마는 눈물을 닦으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엄마 말씀에 소녀는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뽀얀 햇빛이 내 얼굴 가득히 쏟아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눈을 떠보니 커다란 병원 앞뜰 잔디밭이었습니다. 빛나고 따스한 햇살이 내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어요.
내가 자리 잡은 곳은 영산홍 꽃그늘이었습니다. 나는 마치 커다란 등불처럼 곱고 화려한 영산홍 꽃그늘 아래 피어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넌 정말로 노랗구나. 지난해엔 안 보이던데 어디서 온 누구니?”
영산홍이 점잖게 물었습니다.
“전 민들레라고 합니다. 멀고 먼 시골에서 왔지요.”
“민들레? 꽃 중에도 민들레가 있었나? 나는 민들레라기에 그 앤 줄 알았는데······. 그 애가 널 보면 좋아하겠구나.”
영산홍 꽃이 말했어요.
“그 애라니요?”
나랑 같은 이름을 가진 아이가 있다는 영산홍의 말에 나는 호기심이 잔뜩 일어났어요.
“응 여러 달 전에 이 병원에 입원한 소녀야. 입원하기 전에도 오래 동안 이 병원에 다녔다지, 아마.”
“소녀라면 사람이란 말예요?”
나는 더욱 놀랐어요.
“그래. 착하고 예쁜 애지.”
영산홍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상하군요. 나는 작은 풀꽃이에요. 그런데 나랑 같은 이름을 가진 소녀가 있다니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런데 넌 멀고 먼 시골에서 왔다고? 쯧쯧 거기서 그냥 살지 서울엔 뭐 하러 왔니? 저 시끄러운 차 소리와 목이 따가운 그을음, 먼지투성이의 도시에서 사는 게 뭐가 좋다고 서울엔 오니. 너 같은 풀꽃의 씨앗들은 제 날개를 타고 날아가자는 바람의 꾐에 곧잘 귀가 솔깃해져서 따라 나선다며?”
영산홍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아니에요. 전 시골 길섶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봄바람에게 아주 먼, 먼 곳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어요. 시골의 길섶은 정말 지긋지긋하다고 엄마가 말씀하셨거든요.”
내가 말했습니다.
“시골이 지긋지긋하다는 엄마 말씀을 듣고 먼, 먼 곳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고? 그랬더니 여기다 떨어뜨려 놓고 갔니?”
영산홍이 물었습니다.
“여기 좋지 않아요?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는 넓은 잔디밭도 있고, 토끼나 소도 없잖아요? 우리 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나는 신바람이 났습니다.
“이 세상엔 나비와 벌보다도 더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지. 하지만 사람들은 무슨 이상한 이름을 가진 장미나 난초 같은 걸 좋아하지 시골 길가에 잠깐 피었다 지는 너희들처럼 이름 없는 풀꽃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단다. 사람이 꽃을 좋아한다는 건 괴롭힌다는 말과도 같기는 하지만 말이다.”
영산홍이 말했습니다.
“사람이 꽃을 좋아한다는 건 괴롭힌다는 말과 같다고요?”
나는 처음 듣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려졌습니다. 영산홍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시골에 길가에 피면 커다란 소가 나 같은 풀꽃을 밟고 지나간다고 엄마가 말씀하셨어요. 염소나 토끼는 나 같은 풀을 뜯어먹고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않으면 좀이 쑤셔서 못 배기고, 개는 우릴 깔고 앉아 혀를 내밀고 헐떡거린다고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우리더러 도시에 가서 사는 게 좋다고 하신 것입니다.
“아무튼 조심해라. 여긴 그런 짐승은 없지만 너 같은 풀꽃이나 나무에 핀다고는 하나 나 같이 키 작은 꽃들이 살아가기엔 별로 좋은 곳이 못 되니까. 저기 저 큰 나무들이 잎을 다 피우면 우린 햇볕조차 마음대로 쪼일 수 없단다. 거기다 저 담 밖이 바로 큰길 아니냐. 밤낮 없이 앵앵거리며 달리는 차 소리는 귀가 따갑고 날씨가 가물면 검은 먼지가 풀풀 날아와 숨통을 막히게 만든단다. 연기는 또 얼마나 매운지 모른단다.”
영산홍이 자꾸 겁을 주었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은근히 걱정이 됐습니다. 그래도 나는 시골길 길섶보다는 여기가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도 밟고 지나가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떠나온 고향이 생각났습니다. 내가 엄마 곁을 떠나온 것은 꽃씨 때였습니다. 엄마는 생명 가진 것은 누구에게든지 무엇이 되어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해마다 작은 시골 마을 길가에 돋아나서는 어떻게 하면 짐승에게 짓밟히지 않고 무사히 꽃 피워 씨를 맺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나 하면서 살아가는 게 안타깝기 짝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나는 여기라면 누군가를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여기가 좋아요. 영산홍님처럼 화려한 꽃을 보러 오는 사람들도 구경하고요.”
“하하하, 네가 사람들을 구경한다고? 사람들이 널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사람들을 구경해?”
영산홍이 크게 웃었습니다.
“왜 웃으세요? 사람들은 우리 꽃을 구경하는데 꽃인 제가 사람 구경 좀 하면 안 될 거 뭐 있어요?”
“사람 구경 좋지. 그러나 사람도 사람 나름 아니겠니? 너 여기 어떤 사람들이 오는지 아니?”
영산홍은 모르는 소리는 하지도 말라는 듯 내게 되물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오는데요?”
“고통에 차서 얼굴이 일그러지고 한숨이나 푹푹 내쉬는 사람들 아니면 얼른거리지도 않는단다.”
“그건 왜 그래요?”
“병원이니까. 병원은 아픈 사람 아니면, 아픈 사람 위문이나 시중들러 오는 가족들뿐이니까. 그런 사람들의 눈에 꽃이 들어오겠니? 꽃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사람들을 우리가 구경하다니, 끔찍하지 않니?”
영산홍이 말했습니다.
‘그렇지만은 않을 텐데······.’
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작은 소녀 하나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소녀의 걸음걸이는 마치 나풀나풀 춤추며 날아오는 나비 같았습니다. 소녀는 얼굴이 배꽃처럼 하얗군요.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해쓱해 보였습니다. 앓다가 일어난 아이 같습니다. 얼굴은 해쓱하지만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습니다.
“들레야. 조심해. 아직 그렇게 뛰어선 안 돼. 숨 가쁘지 않니?”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소녀를 따라오던 엄마가 걱정했습니다.
“엄마, 나 괜찮아요. 하나도 숨 안 가빠요. 이렇게 뛸 수 있어요.”
소녀는 팔짝팔짝 뛰어 보였습니다.
“그래? 우리 들레 인제 다 나았구나.”
엄마가 소녀를 꼭 껴안았습니다.
“엄마, 조심하세요. 발밑에 꽃이에요. 꽃 밟겠어요.”
소녀가 깜짝 놀랐습니다.
“꽃, 무슨 꽃?”
“노랑꽃. 작고 예쁜 노랑꽃.”
소녀는 엄마 발 앞 내 곁에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정말 민들레가······.”
엄마는 딸과 함께 쪼그리고 앉아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어요.
“엄마, 이 예쁜 꽃이 민들레예요? 나랑 같은 이름이네.”
소녀가 말했습니다.
“그래. 이 꽃이 민들레야. 엄마 아빠 어려서 살던 시골엔 봄이면 길가나 강둑, 산자락의 풀밭 할 것 없이 노란 민들레들이 아주, 아주 많이 피어났었지. 엄마 아빠는 민들레를 너무 좋아했단다. 오죽하면 성이 민씨인 아빠가 네 이름을 들레라고 지었겠니. 민들레가 민들레를 만났구나. 호 호호.”
엄마가 꼭 껴안은 소녀의 어깨를 다독거렸습니다.
“엄마, 우리 집에도 민들레 심어요. 내가 가꿀게요.”
소녀가 말했습니다.
“그래. 의사 선생님이 우리 들레 얼마 안 있어 퇴원할 수 있다고 하셨어. 그 때쯤 아마 이 민들레는 꽃이 지고 하얀 날개를 단 씨가 까맣게 여물 거야. 퇴원할 때 받아다가 우리 집 뜰에 심자. 잔디밭에 핀 민들레 정말 곱구나. 이 노란 꽃 좀 봐라. 꼭 첫돌 마지 아기 노랑 저고리 같구나.”
들레 엄마가 나를 들여다보며 말했습니다.
“아니에요. 할아버지 금단추 빛이에요.”
들레가 다시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금단추?”
엄마의 얼굴이 어두워졌습니다.
“할아버지 환갑 때 제가가 만들어 드렸잖아요? 돼지저금통 깨서.”
“아, 우리 들레가 할아버지 비단 조끼에 달아드린 금단추·····.”
엄마는 눈을 감으셨습니다.
“엄마, 할아버지 금단추 달린 그 조끼 지금도 입고 계실까요?”
들레가 물었습니다.
“아니다. 할아버지 저고리엔 금단추 없단다.”
“왜요? 우리 할아버지도 나라 위해 금단추 뜯어냈어요? 지난 번 나라 빚 갚으려 금 모으기 할 때·····.”
들레가 엄마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
엄마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데 왜 없어졌어요?”
“우리 들레 아파서 병원에 들어올 때······. 그래. 지난가을 우리 들레 병원에 들어올 때 할아버지께서 금단추 우리 들레 치료비에 보태라고 떼어 팔아주셨어.”
엄마는 눈물을 닦으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엄마 말씀에 소녀는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뽀얀 햇빛이 내 얼굴 가득히 쏟아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