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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 아빠가 너보고 우리 식구들이랑 바캉스를 같이 보내재. 왜냐 하면 두 분이 곧 이혼하시거든.˝하고 막심이 내게 중얼거렸다. ˝멋지지 않니?˝
솔직히 나는 어떤 것이 멋지다는 건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이혼이? 방학이? 아니면 초대받는다는 사실이? 하지만 그 ´이혼´이란 말 때문에 갑자기 겁이 난 나는 물어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머리를 차창 쪽으로 돌렸다.
풍경은 빨리 바뀌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건 진짜 풍경도 아니었다. 그저 건물들, 종려나무 한 그루, 또 나무들, 또 종려나무 한 그루... 그런 것이었다.
앞자리에 탄 막스의 부모님은 차가 달린 지 몇 킬로째 되었는데도 서로 말 한 마디 나누지 않았다. 사실 우리가 국경을 넘은 이후로 쭉 그랬다. 국경을 넘은 지 내 시계로 정확히 5시간하고도 24분이 되었는데. 라디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지도 않았다. 거대한 침묵이었다. ´남자게? 여자게?´ 놀이라도 하면 좋겠는데. 자동차는 계속 달렸다. 저마다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채, 우리는 더워 죽을 지경이었다. 마치 모르는 사람들끼리 전철을 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이혼´이라는 말이 주는 공포가 갑자기 훨씬 더 의미심장한 공포로 바뀌어 가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나와도 상관 있는 공포니까. 공포심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앙통, 넌 지금 뭐 하고 있는 거니? 이 여행이 악몽 같으리라는 걸 모르겠니? 하나도 재미없을 거란 말이야. 네가 혼자라는 걸 정말 모르겠어? 아빠도 멀리 있고, 집도 멀리 있어. 그리고 넌 어쩌면 너를 돌봐 주지 않기로 결심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거야. 이 사람들, 일이 잘 안 풀리면 너를 길가에 내버리지 않을까...
이런 것들이 내 두려움이 내게 속삭인 말이었다. 그리고 두려움의 말이 옳았다. 이들은 곧 나를 내버릴 테니까. 뻔하다. 여기서 나는 성가신 존재이다. 이 자동차 안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 나는 이 사람들의 자식도 아니고 막스도 나와 가장 친한 친구는 아니다. 내가 왜 이 사람들과 휴가를 떠나기로 했을까? 더군다나 여기 스페인으로 말이야. 난 스페인 어를 한 마디도 할 줄 모르는데. 내가 스페인 어로 할 수 있는 말이 뭐더라? 그라시아스? 아디오스... 이걸론 충분하지 않아. 내가 ´아빠에게 전화하고 싶어요. 저를 데리러 오시도록 하려고요´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될까? 아냐, 아냐. 난 결코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거야.
배가 아프다.
밤이 된다.
덥다.
마주 오는 자동차들의 불빛을 계속 쳐다본 탓에 눈이 아프다.
˝막스, 너희 엄마 아빠는 왜 이혼하시니?˝
내 목소리는 너무나 작아서 나조차도 내가 과연 말을 하는지 확실히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왜냐 하면 우리 아빠는 우익인데 엄마는 좌익이기 때문이야.˝
나는 오랫동안 막스의 얼굴을 뜯어보기 시작했다. 밤이라서 쉽지 않은 일이다. 반대쪽 자동차와 마주칠 때나 이따금씩 막스의 얼굴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막스의 얼굴은 자동차 불빛 때문에 노랗게 보인다. 그 애의 푸른 눈은 초록빛으로, 밤색 머리는 거의 붉은색으로 보인다. 막스는 나와 쌍둥이라 해도 될 정도로 비슷하다. 지난번 병원에 진찰 받으러 갔을 때 흰 가운을 입은 여자는 이렇게 말했다. ´키도 같고 몸무게도 같네.´ 그 여자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나는 막스와 닮았다는 따위의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막스 얼굴을 쳐다보면 볼수록 점점 더 우익에 표 던지고 말고 하는 그 애의 이야기가 농담인지 아닌지 알 수 없어진다. 막스를 관찰하는 중에도 그 애 얼굴을 비추는 자동차 불빛 수는 줄어든다. 이제 완전히 밤이다. 더 이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나는 그 애의 귀에 대고 아주 가만히 묻는다.
˝나를 놀리는 거니, 막스?˝
˝아니라니까! 내 말이 안 믿어지니?˝
막스는 엄청나게 큰 소리로 대답했다.
˝응...˝
˝그래 좋아. 너도 두고 보면 알게 될 거야.˝
막스는 두 개의 앞좌석 사이로 몸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한 손을 자기 아버지의 어깨에 얹으며 말했다.
˝아빠, 이 다음에 어른이 되면 전 우익에 투표할 거예요.˝
그러자 막스의 어머니가 우리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거의 고함치다시피 말했다.
˝너 무슨 얘길 하는 거니?˝
막스의 어머니에게 대답을 한 사람은 그 애의 아버지였다. 그는 속력을 늦추더니 백미러를 통해 우리에게 윙크를 보내며 대답했다.
˝당신 아들은 우파에 표를 던지겠다고 말하고 있는 중이었소. 그렇지 얘야?˝
˝네, 네.˝ 하고 막스가 말했다.
그러자 막스의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말을 걸었다.
˝그것 참 잘하는 짓이군요... 잘하는 짓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죠? 여덟 살 먹은 어린애한테 그런 바보 같은 말이나 따라 하게 하곤 자기가 꽤나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죠. 안 그래요?˝
˝이거 왜 이래, 내가 그렇게 말하라고 시킨 게 아니라 그 애 스스로 그렇게 말한 거요... 그렇지 얘야, 너 스스로 생각한 말이지?˝
막스는 또다시 ˝네, 네.˝라고 했다.
막스의 어머니는 자리에 꼿꼿이 앉은 채 앞 유리창을 응시했다. 그러면서 선언했다.
˝내 아들의 일생에 우익에 표 던지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걸요.˝
˝당신 아들은 우익에 투표할 거요. 그러고 싶다면 말이야. 그리고 저 애가 그런 생각이 들 때 당신을 찾아가서 당신 소감을 묻게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오.˝
막스의 부모들은 싸우기 시작했다. 똑똑하다느니 어리석다느니, ´꼴사나운 멍청이´라느니 ´정말 천치´라느니, 과연 그 애의 아버지가 잠잘 곳을 찾아볼 생각이나 있는지 모르겠다느니 하면서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막스는 다시 뒷자리 깊숙이 자리잡았다. 그리고 내 쪽으로 몸을 숙였다.
˝이제 알겠지.˝라고 막스가 내게 말했다.
˝이 휴가가 대단할 거 같다는 건 알겠어.˝하고 나는 대답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 애는 그렇게 대답하고 미소지었다.
대단할 것 같다는 내 말뜻을 막스가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2.
밤 열두 시가 다 된 것 같다. 막스의 부모님들은 마침내 호텔을 하나 잡았다.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한 작은 도시에. 아니, 심지어 바다에서 몇백 킬로 떨어진 곳 같기까지 하다.
막스의 부모님은 말다툼을 그쳤다. 이제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막스의 어머니가 한 유일한 말이라곤 ˝잘 자거라 얘들아. 그리고 오늘 밤 튜브에 바람을 넣을 필요는 없다. 아빠가 이번 방학에는 우리 모두에게서 바닷가를 뺏어 버리기로 결정한 모양이니까.˝였다. 그런 후 어머니는 우리 침실 문을 닫았다. 이 닦으라는 말조차 하지 않은 채 막스와 나만 남겨 두고서.
그래도 어쨌든 우리는 이를 닦았다. 그 다음, 별로 피곤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침실의 발코니에 나와 앉았다. 발코니는 도시의 지붕들을 향해 나 있다. 우리는 흰 벽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철책 사이로 밀어넣었다. 발이 허공에서 달랑거린다. 그러고서 우리는 별들은 쳐다본다. 그리고 나는 아빠를 생각한다.
나는 밤이면 아빠가 가끔 침실 창문으로 몸을 내밀고 별을 쳐다보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생각해 본다. 아마 오늘 저녁에도 아빠는 그러고 계실 테지. 그러면 나는 여기 스페인에서, 아빠는 파리에서 똑같은 작은 별을 보고 있는 거야. 저 많은 별들 중에서 우리는 똑같은 작은 별을 고른 거지.
˝무슨 생각해, 앙통?˝
˝너한테 말해야 해?˝
˝네 맘이지만...˝
˝그래. 그렇다면 말 안 할래. 넌 무슨 생각해?˝
˝난 네가 나의 제일 좋은 친구라는 생각을 해.˝
막스는 이따금 내가 자기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말하곤 했다. 나는 그 때마다 부끄러워서 가슴이 죄어든다. 그리고 나는 나도 그 애에게 ˝너도 나의 제일 친한 친구야.˝라고 대답해야 한다고 나 자신에게 말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막스에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다. 왜냐 하면 그건 거짓말이니까. 나는 니코나 파브리스, 베르나르, 아니면 알렉스나 피에르가 훨씬 더 좋다... 사실, 등수를 매겨 본다면 막스는 아마 아홉 번째쯤 될 것이다.
그리고 아홉 번째 순위란 결코 제일 좋은 친구가 차지할 자리가 아닌 것이다.
˝너, 때때로 우리가 어떤 사람들을 좋아하는데, 정작 그 사람들은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우리들을 훨씬 덜 사랑한다는 것 생각해 봤니?˝
막스는 내 질문에 놀란 것 같았다. 그 애는 내게 물었다.
˝우리 엄마 아빠 때문에 내게 그런 얘길 하는 거니?˝
천만에. 나는 그 애 부모님 생각을 한 게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내 대답은 이랬다.
˝물론이지.˝
˝그럼 넌 누가 누굴 더 사랑한다고 생각하니? 우리 아빨까, 아님 우리 엄말까?˝
˝난 알 수 없지. 난 너희 부모님을 잘 모르잖니.˝
막스는 내 말을 듣고 있지 않다. 그 애는 딴 생각을 하고 있다. 혼잣말을 하며 생각하는 중이다.
˝우리 아빠가 엄마를 더 사랑해. 확실히 아빠는 이혼하고 싶은 마음이 없으실 거야. 우리 셋이 이렇게 계속 같이 살기를 원하실 거야. 아무 걱정 없이. 늘 그랬던 것처럼 계속 학교 가고, 저녁 먹고, 주말 보내고, 방학이랑 생일을 맞고, 수영장에 가고, 수요일 저녁마다 피자집에 가고, 화살 던지기 놀이도 하고. 그러면 이기는 건 항상 엄마지만. 그리고 축구 시합 보러 가고, 그 동안 엄마는 혼자서 영화 보러 가고, 또 모래 언덕의 납작한 바위 위로 피크닉도 가고, 거기서 굴이랑 가재를 잡다 보면 밤이 되고, 굴 껍질에 레몬즙을 제대로 부으려면 아빠가 자동차 등을 켤 수밖에 없겠지...˝
막스는 제 팔을 발코니의 철책 사이로 뻗었다. 머리도 함께. 그 애의 몸이 앞으로 수그러져 있다. 나는 그 애가 슬프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나는 그냥 그 애의 어깨 위에 손을 얹는다.
만약 막스가 나의 제일 좋은 친구라면 지금 같은 순간 내 입에서 무언가 적절한 말이 나올 수 있을까? 그 애가 덜 슬프도록.
˝꼬마야, 몸 내밀지 마, 떨어져!˝
우리 아래, 정원에서 한 여자가 공중에 대고 팔을 휘젓고 있었다. 방금 소리친 건 그 여자였다.
˝체! 호텔 주인이야!˝
우리는 전속력으로 발코니에서 다리를 빼내고 후닥닥 일어나 흰 벽 뒤로 몸을 바짝 숨긴다. 내 심장이 너무나 빨린 뛴다.
우리는 그 자세로 꼼짝도 않는다. 그렇게 최악의 사태를 상상하며 세는 숫자가 백을 넘어간다. 그러나 나는 마음을 다잡고 막스 쪽으로 약간 몸을 돌린다. 같은 순간 막스도 내 쪽을 돌아본다.
우리는 서로 마주 보며 웃음을 터뜨린다.
땅! 땅! 땅!
우리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방금 누군가 우리 방문을 두드렸다.
3.
˝문 열까?˝
˝미쳤어? 우리를 죽일 텐데!˝
˝넌 왜 그 아줌마가 우릴 죽일 거라고 생각하니?˝
˝나도 몰라. 하지만 너도 봤잖아. 그 아줌마가 어떻게 소리치는지...˝
땅! 땅! 땅!
˝문 열래.˝
˝그러지 마, 막스! 부탁이야! 넌 나랑 제일 친한 친구야. 제일 친한 친구라니까...˝
막스는 내 말을 듣지 않는다. 문으로 다가가 열쇠를 돌리고 손잡이를 아래로 내린다. 오, 안 돼... 문을 열다니.
여주인이 들어온다. 그러더니 곧장 막스의 겨드랑이에 두 손을 끼워 넣고 땅바닥에서 1미터 위까지 들었다 놨다 한다. 그러면서 다시 고함치기 시작한다.
˝몸을 내밀면 안 돼. 꼬마야!˝
˝저 사람한테 ´그라시아스´라고 외쳐! 고맙다고 외치라니까!˝
나는 막스한테 말한다. 하지만 막스는 내 말대로 하지 않는다.
그 애는 ˝오케이˝라고 여주인에게 말한다. 심지어 목소리도 떨지 않는다. 마치 모든 걸 다 이해한 아저씨 같은 목소리로, ˝오케이, 오케이...˝
여주인은 막스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그러더니 손을 막스의 얼굴 쪽으로 가져가 그 애의 머리카락을 만진다.
˝넌 착한 애로구나... 왜 너희들은 자지 않는 거냐?˝
이제 여주인은 미소짓고 있다. 막스도 아줌마에게 웃어 보인다. 나만 빠진 것 같아 나도 그처럼 웃어 보려 한다. 하지만 억지로. 왜냐 하면 사실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유일한 일은 ˝살려 주세요!˝라고 소리치는 것이니까.
˝여긴 너무 더우니 나와 함께 광장으로 가자.˝
이 아줌마가 뭐라고 그런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네.
그저 내 눈에 보이는 건 여주인이 막스의 손을 잡고 이어 내 손도 잡는 모습이다. 그 다음 나는 내 손이 문을 향해, 바깥을 향해 이끌리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나는 반항하지 않는다.
우리 셋은 복도로 나온다.
그리고 층계를 내려간다.
작은 안뜰을 건넌다.
여주인의 손은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다. 꼭 수갑 같다. 이 여자가 우리를 납치하는 중인데 아무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구나.
˝막스? 우리 어디로 가는 거니, 막스?˝
˝나도 몰라, 앙통. 그냥 아줌마를 따라가자. 멋지지 않니?˝
그만둬, 막스! 항상 아무거나 멋지다고 생각하지 좀 말란 말야. 스페인 호텔 여주인의 손아귀에 목숨을 내맡기는 건 멋진 게 아냐. 하나도 멋지지 않다고. 너의 엄마 아빤 어디 있는 거지? 응? 어디 있어? 우익이든 좌익이든 간에 얘들은 보호할 수 있어야 되는 거 아냐? 최소한 그 정돈 해야 할 것 같은데! 난 여기서 떠나고 싶어. 이 바캉스가 지긋지긋하다고. 이봐 막스, 넌 내게 바닷가에서 지내게 될 거라고 했지... 근데 바다가 어디 있어? 어디 있냐고?
어어! 방금 내 손이 풀려났네.
우리는 호텔 앞 거리에 와 있었다. 그 도시의 광장 언저리에 온 것이다. 광장가엔 나무가 심어져 있고, 전깃줄 장식들이 빛을 비추고 있다. 이곳엔 사람이 많다. 정말 만원이다. 낮은 담벼락 위나 카페의 테라스에는 사람들이 잔뜩 모여 앉아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소리소리 지르며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광장 한복판에는 꼬맹이들이, 나보다 훨씬 어린애들이 있다. 그 애들은 서로의 뒤꽁무니를 쫓아 뛰어다니거나 숨바꼭질을 하거나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아기가 타고 있는 유모차도 하나 보인다. 그리고 그 아기도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눈이 말똥말똥하다. 전혀 잘 생각이 없는 눈 표정이다.
˝지금 몇 시니, 막스?˝
˝새벽 1시 20분이야.˝
˝내가 보고 있는 게 너한테도 보이지?˝
˝응.˝
˝우리가 아무도 자지 않는 사람들의 나라에 왔나 봐. 그렇지?˝
˝그런 거 같아.˝
˝막스, 스페인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나라야.˝
그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내 눈은 여주인과 마주친다. 아줌마는 내게서 2미터쯤 떨어진 곳에 앉아 다른 여자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여자들은 모두 손에 헝겊 조각을 하나씩 들고 바느질을 하거나 수를 놓고 있다. 근데, 저럴 수가... 호텔 주인 아줌마가 헝겊 조각에서 바늘을 빼서 자기 가슴에 꽂네. 진짜로, 바늘을 하나하나 꽂잖아. 바늘로 저렇게 자기 가슴을 찌르다니. 그러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말야. 저런 저런 저런! 바늘을 다시 빼면 피가 날 거야. 심장이 있는 자리에 바늘을 꽂았는데 피가 안 날 리 없어. 내 몸 여기저기가 너무너무 아프다. 안 돼. 저 바늘을 빼면 안 돼. 안 된다고!
4.
나는 한쪽 눈을 떠본다.
내 몸은 마치 물렁물렁한 반죽 덩어리 같다. 온몸이 덜덜 떨린다. 꼭 텅 빈 자리에 더운물을 채워 넣은 듯하다. 나를 쳐다보는 눈들과 나를 만지는 손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이 내게 괜찮냐고 묻는다. 막스도 내게 그렇게 묻는다. 나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이제 괜찮다는 걸 안 이상 대답할 필요가 없다. 다시 일어나야 한다. 사람들이 나를 부축한다. 그리고 나를 업는다. 스페인. 밤. 그리고 이혼. 이제 머릿속에 모든 것이 다시 떠오른다. 발코니 호텔 여주인, 그리고 광장, 일어났던 일들이 순서대로 하나하나 정리된다. 바늘, 가슴, 구멍난 피부. 그래, 내가 기절했었구나.
˝너 기절했었어.˝ 막스가 내게 말한다.
˝아, 그래.˝ 나는 대답한다.
˝나도 그랬다고 생각해.˝
나는 천천히 대답한다.
˝내 생각엔 네가 겁이 나서 그랬던 거 같아.˝
˝응?˝
˝하지만 겁낼 필요 없었는데, 앙통. 왜냐 하면 그 아줌마 가슴은...˝
막스는 웃음을 참는다.
˝... 그 아줌마 가슴은, 나한테도 보여 줬는데, 진짜가 아니래!˝
막스는 더 이상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배꼽을 쥐고 웃기 시작한다. 어찌나 우스운지 그 애는 눈물까지 흘린다.
˝정말이라니까. 아줌마가 나한테 보여 줬어. 손으로 만져 보라고까지 했는걸. 그건 그냥 헝겊 뭉치야. 말하자면 인공 가슴이지 뭐. 아줌마는 진짜 가슴은 하나밖에 없어. 나머지 하나는 잃어버렸대. 사람들이 잘라 냈어. 내가 웃으면서 말하고 있지만 맹세코 이건 정말이야.˝
˝난 내가 더워서 기절했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막스의 기분을 언짢게 만들 수 있는 사나운 말투로 말했다.
˝아 그랬어... 어쨌든 너 때문에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어. 갑자기 죽은 것처럼 쓰러졌잖아.˝
˝별거 아냐. 난 가끔 그러거든.˝
문득 우리 주변에 모여든 온 마을 사람들이 우리를 관찰하고 있는 게 느껴진다. 그들은 부드러운 눈매에 미소를 띠고 있다. 안심한 엄마 아빠의 표정 같다. 여주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의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아줌마는 내게 다가와 몸을 굽히더니 뽀뽀를 한다.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내 눈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더니... 앗, 그러지 좀 말지! 글쎄 바늘이 꽂혀 있는 가슴을 자기 주먹으로 때리는 것이다.
˝멋지지! 멋지지!˝
˝그래요.˝ 나는 대답한다. 됐다니까요. 하지만 아줌마는 계속 자기 가슴을 때린다. 정말 난처하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 모두가 아줌마가 가슴 두드리는 소리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 한다. ´멋지지! 멋지지!´ ... 악몽처럼 끔찍한 노래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한다. 우선 내 두 주먹을 공중으로 올린다. 그리고 으르렁거리면서 주먹으로 가슴을 내리친다. 나는 내 가슴을 북처럼 두드린다. 나는 타잔이다. 나는 타잔의 고함 소리를 낸다.
˝오오오오오오오..... 웨오! 웨오! 웨오오오!˝
내 고함 소리가 광장에 올려 퍼진다. 주변에선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다. 이런, 난 소리지르는 것을 중단한다. 얼굴이 새빨개진다. 그러자 웃음소리가 터지지 시작하는 게 들린다. 내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 다시 생기가 돈다. 마을 사람들은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웃는다. 사람들은 상냥하게 웃더니 각자의 자리로 흩어져 되돌아간다. 노인들은 벤치로, 아이들은 롤러스케이트를 타러.
나는 기운이 하나도 없다. 나는 막스가 웃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 애는 마치 내가 방금 모든 사람들 앞에서 팬티를 내리기라도 한 듯 나를 쳐다보고 있다.
호텔 여주인이 내 어깨를 친다.
그리고 내 손을 쥐더니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도록 돌린다. 그 다음 그 위에 노란 동전 다섯 개를 올려놓는다. 동전들은 꼭 금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
˝오백 페세타네. 꽤 많은 액수인걸.˝하고 막스가 말한다.
여주인이 다시 내 어깨를 두드린다.
아줌마는 손가락으로 어느 방향을 가리킨다. 조그만 내리막 골목 쪽이다. 이제 아줌마는 내가 자기 이야기를 하나도 알아듣지 못한다는 걸 깨닫고, 내게 말을 하느라 공연히 힘을 빼지 않는다. 아줌마의 손가락이 내 손바닥의 동전들을 건드린다. 꼭 새 부리처럼. 부리는 다시 공중을 향하더니 그 작은 길을 가리킨다. 무슨 관계가 있는 게 틀림없는데.
˝아줌마는 우리가 저 길로 갔으면 하나 봐, 앙통. 저기 가면 뭔가 살 수 있는 게 틀림없어.˝
고마워, 막스. 나도 이해했어. 하지만 아줌마가 돈을 준 사람은 어디까지나 나라는 걸 좀 기억해 줬으면 고맙겠는데. 가끔씩 느끼는 건데, 너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나를 짜증나게 만들 수 있는 거니?
나는 여주인 쪽으로 몸을 돌려 또렷또렷하게 발음한다.
˝그라시아스, 그라시아스 에 아디오스.˝
내가 스페인 어로 점점 더 똘똘하게 요령을 부릴 수 있게 되어 간다는 생각이 든다.
5.
뻥!
나는 막스와 함께 또 다른 광장에 다다랐다. 거기엔 또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뻥!
주로 우리 또래, 아니면 한 열다섯 살까지도 되어 보이는 약간 더 큰 아이들의 무리다.
뻥!
음악이 있고 조명이 있다. 그리고 음료수 마시는 곳도.
뻥!
그리고 광장 한가운데에는 범퍼 카 시합장이 하나 마련되어 있었다.
뻥!
우리가 갖고 있는 마지막 동전이 사라지는 중이다. 운전은 막스가 한다. 뻥! 토할 것 같은걸!
˝조심해, 막스. 난간이야! 주의하라니까! 차를 돌려!˝
막스는 어떻게 해야 차가 도는지 모른다. 그 애가 운전대를 돌리자 우리는 계속 뒤쪽으로만 움직인다.
˝근데, 앙통. 사람이 가슴을 하나만 가지고 살 수 있을까?˝
˝그런 바보 같은 얘기를 지껄이느니 차라리 네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나 좀 쳐다보지 그래.˝
˝싫어. 이건 심각한 질문인걸!˝
˝알았어. 내가 보기에 그 아줌마는 쌩쌩한 것 같은데. 안 그래?˝
˝으응... 그러면 부모가 한 사람뿐이어도 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활할 수 있을까?˝
˝그런 거라면, 난 하나도 모르겠어, 막스...˝
˝예를 들어서 넌 어때? 아빠랑만 사는 게?˝
˝내 경우엔, 난 항상 아빠랑 둘이서만 살았잖니. 한 번도 부모님이 둘이었던 적이 없으니까. 난 비교할 수 없어.˝
˝넌 지금 우리 엄마 아빠가 주무실 것 같지?˝
˝잠깐! 막스! 노란 차야... 노란 차가 온다니까!˝
뻥!
˝내 생각엔 엄마 아빠는 주무시지 않아. 두 분은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것 같아. 나에 관해서 말야.˝
˝내가 운전대를 잡을까, 막스?˝
˝나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서로 묻겠지. 내가 둘 중 누구랑 살고 싶어할지.˝
˝그럼 넌 누구랑 살았으면 좋겠어?˝
˝아빠랑... 아니면 엄마랑. 아니면 할아버지네서. 아니면 너네 집도 좋아. 난 너네 아빠하고 너랑 같이 살면 정말 좋겠어.˝
˝너 알지. 우리 집엔 침실이 두 개밖에 없다는 거. 응? 그리고 이 점을 알아야 하는데, 우리 아빠는 그럴 정도로 멋진 분이 아니라고...˝
˝아무튼, 우리 엄마 아빠가 내가 너네 집에 가서 사는 걸 절대 원하지 않으리란 건 확실해.˝
˝어서 막스! 저 노란 차에 복수할 수 있어. 정면으로 달려들어... 아니, 파랑 말고 노...˝
뻥!
˝펑크났어, 앙통...˝
˝어차피 거의 끝날 시간이야. 끝나면 호텔로 돌아가자.˝
˝싫어. 거긴 지긋지긋해.˝
˝앗, 조심해. 지금 자동차에서 나가면 안 된단 말야!˝
막스가 자리에서 일어서 있었다. 그 애는 범퍼 카 주행로 한가운데서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모든 차들이 막스를 피하기 위해 그 애 주위를 맴돈다. 계산대 쪽에서 한 남자가 막스한테 뭐라고 소리치고 있다. 하지만 막스는 아무 말도 못 들은 것 같다. 그 애는 가장자리로 나가려고 한다. 막스는 침착하게 걸어서 주행로 한복판을 가로지른다. 저러다간 차에 치일 것이다.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리고 갑자기 모든 자동차들이 단숨에 덜컥 서 버린다. 나는 최대한 빨리 몸을 빼내어 시합장 바깥으로 빠져 나온다. 나는 사람들 속에서 막스를 찾아내기 위해 약간의 뜸을 들인다. 그리고 그 애를 좇아 달려간다. 막스는 꼭 유령처럼, 아니 줄타는 곡예사처럼 걸어가고 있다. 마치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물들과 부딪치는 것이 무섭지 않은 사람처럼.
˝이봐 막스, 나 좀 기다려! 나 좀 기다리라니까!˝
˝가서 자자, 앙통. 엄마가 사람은 자야 하는 거라고 말씀하셨어. 밤에 자지 않는 건 비정상적인 거야... 너도 그게 비정상적이라는 건 잘 알고 있지... 왜냐 하면, 만약 사람이 밤에 활동하기 시작한다면 낮엔 뭘 하겠어. 그렇지? 낮엔 뭘 하겠어?˝
나는 막스에게 달리 대답할 말이 없다. 그저 그 애를 따라갈 뿐.
6.
˝일어나라 얘들아. 그만 자라니까! 낮 열두 시가 다 됐다.˝
나는 한쪽 눈을 떴다.
막스의 아버지는 면도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우리에게 이야기하면서 우리의 세면도구를 주머니 안에 정리해 넣고 있다. 시간을 허비할 틈이 없으니 이제 그만 일어나서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씻지도 않고. 그는 우리가 파리로 되돌아갈 거라고 말했다.
˝엄만 어딨어요?˝하고 막스가 묻는다.
막스의 아버지가 침대 위에 앉는다.
˝엄만 툴루즈의 삼촌네로 갔단다. 오늘 아침 내가 공항까지 바래다주고 왔다. 네 엄만 비행기를 타고 돌아갔단다. 우린 싸웠거든.˝
그 다음, 막스의 아버지는 대화를 바꾸고 싶었는지 내게 말을 걸었다.
˝내가 너희 아버지께 연락드렸다. 앙통. 우리가 되돌아간다는 걸 알고 기다리고 계신다.˝
그는 우리의 가방 두 개를 어깨에 걸친 후, 문을 열고 나간다.
˝난 자동차 있는 데로 가니 꾸물거리지 말아라, 응?˝
막스의 아버지는 사라진다. 나는 옷을 다 입은 채로 잤다. 신발까지 신고서. 막스는 아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 이유는 우선 나는 아직 완전히 잠이 깬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고 다음엔,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정말로 모르기 때문이다.
˝괜찮니, 막스?˝
˝난 섭섭해, 앙통.˝
막스는 단번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옷을 걸쳐 입고 방에서 나간다. 나는 침대 밑에 놔 둔 물건이 없는지 확인해 보지도 않은 채 막스를 뒤따른다.
호텔 여주인 앞을 지나칠 때 아줌마는 우리에게 각각 두 번씩 뽀뽀를 해 준다.
˝아디오스.˝
˝아디오스.˝
그리고 나서 아줌마는 다시 막스를 꼭 안아 준다. 마치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우리는 차를 타고 달린다. 국경을 넘어 계속 달린다. 고속 도로 변에 있는 셀프 서비스 식당에서 밥을 먹고 다시 달린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자정이 거의 다 되었다. 파리까지는 몇 킬로나 남은 걸까? 나는 침묵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남자게? 여자게? 놀이 할까요?˝
막스도 막스의 아버지도 내게 대답하지 않는다.
다시 차창 밖을 본다. 내 뺨을 거기 대 본다. 차갑다.
˝됐다.˝하고 갑자기 막스가 말한다. ˝나 하나 찾았어. 이제 물어 봐.˝
˝좋아.˝하고 나는 대답한다. ˝남자야, 여자야?˝
˝여자야.˝
˝살아 있어, 죽었어?˝
˝살아 있어.˝
˝으음, 유명해?˝
˝아니.˝
˝내가 아는 여자야?˝
˝우리 셋 다 아는 여자야.˝
˝3학년 맡은 드노와이예 선생님.˝
˝틀렸어.˝
˝화살 던지기 놀이를 잘 하는 여자니?˝하고 갑자기 막스의 아버지가 묻는다.
˝네, 굉장히 잘 해요.˝라고 막스가 대답한다.
˝누군지 알겠다.˝
막스의 아버지가 말한다. 그러면서 날 보더니 힌트를 하나 주겠다고 한다. 그 여자는 좌익에 투표한단다.
이제 나는 답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걸 말할 수 없다. 어떻게 막스한테 ´너네 엄마야.´라고 대답한단 말인가. 어떻게 여기, 한밤을 달리고 있는 이 차 안에서 그 ´엄마´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엄마´라는 말이 갑자기 내게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사실 내겐 ´이혼´이라는 말보다 훨씬 겁나는 말이 그거다. 그래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우리 엄마야, 앙통. 난 우리 엄마를 생각했어... 너 졌네.˝
˝에이, 난 바보야...˝
그리고 또다시 무거운 침묵이다.
나는 막스의 아버지에게 물어 본다.
˝저, 음악 좀 틀어 주시겠어요?˝
막스의 아버지가 카세트를 하나 집어넣는다. 이런, 클래식 음악이다.
나는 차창에 기댄다. 멀리 수많은 불빛이 보인다. 파리일 것이다. 다시 아빠를 만나게 되겠지. 아마 내가 먹을 걸 준비해 놓으셨을 거야. 그럼 난 응접실 탁자에서 혼자 음식을 먹겠지. 아빠는 내 맞은편 바닥에 앉으실 거야. 초가 있고 음악이 있고 노래가 있고. 창문들은 열려 있겠지. 아버지가 이 이혼 얘기 때문에 약간 거북해하실 거라는 생각이 든다. 바캉스치곤 그렇게 나쁘지 않았으니 괜찮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선 내가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할 거야. 엄청나게 짧은 여행이었지만 나쁘진 않았어. 그런데 아빠에게 도대체 무슨 얘길 해야 하지?
아, 알겠어. 아빠한테 우익인지 좌익인지 물어 봐야겠어. 게다가, 그건 틀림없이 아빠가 아주 좋아하게 될 종류의 문제인걸... 그렇더라도, 문제치고 그다지 멋진 건 아닌데...
아빠, 말해 보세요. 단둘이서만 사는 걸론 충분하지 않아요?
아빠, 말해 보세요. 아빠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과 같이 살 건가요? 그 사람이 언젠가는 더 이상 우리랑 같이 살기를 원하지 않게 되더라도요?
아빠, 말해 보세요. 가짜 가슴에 대해 잘 알고 있어요?
파리의 불빛들이다. 길들과 몽파르타스 역을 알아볼 수 있다. 곧 아빠를 보게 되겠구나. 이제 아주 가까이 계셔. 아빠가 벌써 팔을 벌리고 계신다.
자동차가 우리 집 골목으로 들어간다.
막스의 아버지는 주차할 자리를 찾지 못하고 골목을 돌아 나온다. 아무 말이 없어도 그 애의 아버지가 짜증이 나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저 혼자 내릴 수 있어요. 건물 현관이 바로 저기인걸요.˝
˝응? 그럴 수 있겠니?˝
뻥!
막스의 아버지가 방금 레위니옹 섬 식 레스토랑 앞에 세워 놓은 트럭의 문을 범퍼로 들이받은 것이다. 이제 내가 이 자동차와 헤어질 시간이다.
˝저 여기서 내릴게요. 괜찮죠?˝
˝그래라, 앙통. 내일 내가 아버지께 전화드린다고 말씀드리거라. 그리고 미안하다고... 네 짐이 트렁크에 있던가?˝
˝아뇨 아뇨. 제 배낭 여기 있어요.˝
나는 두 개의 앞좌석 사이로 몸을 굽혀 뺨에 막스 아버지의 뽀뽀를 받은 후 차문을 연다. 그리고 막스에게 손을 내민다. 하지만 막스는 우리가 악수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 애는 내게 제 뺨을 내민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나는 그 애에게 뽀뽀를 해 준다.
´잘 자´라고 말한 후 나는 차문을 탁 닫는다.
7.
나는 침대 이불 위에 그냥 누워 버렸다. 하지만 자지는 않는다.
사실 아빠는, 내가 먹을 것을 전혀 준비해 두지 않았다. 내가 도착을 때 아빠는 전화를 하고 있었다. 아빠는 내게 뽀뽀하기 위해 전화를 끊지도 않으셨다.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 때 아빠가 나를 보러 왔다. 나는 말을 꺼낼 수 없어서 그냥 아빠 말을 듣기만 했다. 아빠는 시간이 늦었고 내가 몹시 피곤해 보이니 얼른 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자, 어서! 더 빨리 움직여라. 네 가방은 내일 풀도록 하자. 이제 정말 잘 시간이야. 내가 불을 끄마..´ 그래. 아빠는 불을 끄셨다. 아빠는 막스가 좀 어떠냐고 묻지 않으셨다. 내가 배고프지 않은지도.
사실 내 느낌으론, 아빠가 나를 보게 된 것이 하나도 기쁘지 않았던 듯싶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는다. 내 앞엔 창문이 활짝 열려 있다. 그리고 그 창 안에는, 별들로 가득한 밤이 보인다. 나는 어제 저녁 내가 골랐던 별을 다시 찾아본다. 하지만 찾을 수 없다. 만약 막스가 자기 집에서 잠드는 데 성공했다면 그건 정말 놀랄 일일 것이다. 나는 자기 창 발코니에 팔꿈치를 괴고 있을 그 애 모습을 아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건 정말로 아주 분명한 영상이다. 바로 이 순간 막스가 자기 방 창가에서 밤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리란 사실에 나는 백만금을 걸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애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안다. 맹세할 수 있다. 그건 마치 텔레파시 같은 것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는 그 애 목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우리 엄마 아빠가 더 이상 서로 사랑하지 않는 건 내 탓이 아니야. 내 탓이 아니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간다. 나는 막스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 오직 생각의 힘만으로. 나는 두 손으로 발코니의 난간을 꽉 쥔다. 내 눈을 달 아주 가까이 있는 어느 외딴별 하나에 모은다. ´막스? 내 말 들리니, 막스? 틀림없이 넌 내 말을 듣고 있을 거야... 그래. 난 내가 너한테 아주 잘 해 주지는 못했다고 생각해. 나는 내가 해야 할 행동을 하지 못했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의 부모님 일 때문에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다는 건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을 거야. 하긴 그래도 불쌍히 여기는 게 때로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나은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막스가 내 말을 좀더 잘 들을 수 있도록 눈을 감는다...
´네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가 아니라고 해서 내가 너의 제일 좋은 친구가 될 수 없는 건 아니야.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네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좀 복잡한 얘기니까. 게다가 이렇게 텔레파시로 말하려니까... 알겠니. 난 네가 좋아하는 친구들 중 첫 번째 자리에 있고 싶어. 비록 네가 내게는 아홉 번째밖에 안 되더라도... 하지만, 어쨌든 어저께 저녁 이후로 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다섯 명 안에 든다고 생각돼... 자, 이게 내가 말하려던 전부야... 일년 후에 우리 둘이 서로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지 어떨지. 그건 미리 알 수 없는 거야. 모든 건 자꾸 변하니까...´
˝앙통이냐? 앙통이구나!˝
이건 아빠의 목소리다. 나는 눈을 뜬다. 아빠가 아빠 방 창문에서 몸을 내밀고 있다. 우리 아파트는 사람들이 이웃 창에 대고 서로를 부를 수 있게 지어졌다.
˝너 안 자니? 어디 안 좋은 거냐?˝
아빠는 이웃 사람들을 깨우지 않기 위해 조그만 소리로 속삭인다.
˝아빤?˝ 나는 묻는다. ˝아빤 잠이 안 오세요?˝
˝안 오는구나... 저기, 앙통. 내 너한테 물어 볼 말이 있는데. 그러기 전에 우선 나한테 진실만을 말한다고 약속해 다오.˝
˝좋아요, 아빠... 아빠도 알다시피 전 항상 진실만을 말하는걸요... 그것 때문에 주무시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 말하자면 그렇다...˝
˝그럼 말해 보세요...˝
˝만약 우리 집에 누군가 다른 사람이 와서 살게 되면 넌 싫으니?˝
생각해 볼 필요도 없다. 나는 창에서 몸을 뗀다. 그리고 내 방에서 나온다. 나는 아파트를 가로질러 아빠 방을 향해 뛰어간다. 거기 다다르자 나는 아빠 침대로 뛰어든다. 그리고 공중으로 펄쩍펄쩍 뛴다. 그 다음,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은 채 가만히 있는다.
퍼뜩, 별들이 소원을 들어 준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비록 그 별들이 별똥별이 아니더라도. 그리고 비록 소원이 굳이 말로 표현되지 않더라도.
나는 머리를 들어 아빠를 바라본다. 아빠는 아무 말씀도 하려 하지 않으신다. 그럼 내가 묻는 수밖에 없다.
˝그게 누군데요? 누구예요? 누구?˝ (*)
솔직히 나는 어떤 것이 멋지다는 건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이혼이? 방학이? 아니면 초대받는다는 사실이? 하지만 그 ´이혼´이란 말 때문에 갑자기 겁이 난 나는 물어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머리를 차창 쪽으로 돌렸다.
풍경은 빨리 바뀌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건 진짜 풍경도 아니었다. 그저 건물들, 종려나무 한 그루, 또 나무들, 또 종려나무 한 그루... 그런 것이었다.
앞자리에 탄 막스의 부모님은 차가 달린 지 몇 킬로째 되었는데도 서로 말 한 마디 나누지 않았다. 사실 우리가 국경을 넘은 이후로 쭉 그랬다. 국경을 넘은 지 내 시계로 정확히 5시간하고도 24분이 되었는데. 라디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지도 않았다. 거대한 침묵이었다. ´남자게? 여자게?´ 놀이라도 하면 좋겠는데. 자동차는 계속 달렸다. 저마다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채, 우리는 더워 죽을 지경이었다. 마치 모르는 사람들끼리 전철을 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이혼´이라는 말이 주는 공포가 갑자기 훨씬 더 의미심장한 공포로 바뀌어 가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나와도 상관 있는 공포니까. 공포심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앙통, 넌 지금 뭐 하고 있는 거니? 이 여행이 악몽 같으리라는 걸 모르겠니? 하나도 재미없을 거란 말이야. 네가 혼자라는 걸 정말 모르겠어? 아빠도 멀리 있고, 집도 멀리 있어. 그리고 넌 어쩌면 너를 돌봐 주지 않기로 결심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거야. 이 사람들, 일이 잘 안 풀리면 너를 길가에 내버리지 않을까...
이런 것들이 내 두려움이 내게 속삭인 말이었다. 그리고 두려움의 말이 옳았다. 이들은 곧 나를 내버릴 테니까. 뻔하다. 여기서 나는 성가신 존재이다. 이 자동차 안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 나는 이 사람들의 자식도 아니고 막스도 나와 가장 친한 친구는 아니다. 내가 왜 이 사람들과 휴가를 떠나기로 했을까? 더군다나 여기 스페인으로 말이야. 난 스페인 어를 한 마디도 할 줄 모르는데. 내가 스페인 어로 할 수 있는 말이 뭐더라? 그라시아스? 아디오스... 이걸론 충분하지 않아. 내가 ´아빠에게 전화하고 싶어요. 저를 데리러 오시도록 하려고요´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될까? 아냐, 아냐. 난 결코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거야.
배가 아프다.
밤이 된다.
덥다.
마주 오는 자동차들의 불빛을 계속 쳐다본 탓에 눈이 아프다.
˝막스, 너희 엄마 아빠는 왜 이혼하시니?˝
내 목소리는 너무나 작아서 나조차도 내가 과연 말을 하는지 확실히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왜냐 하면 우리 아빠는 우익인데 엄마는 좌익이기 때문이야.˝
나는 오랫동안 막스의 얼굴을 뜯어보기 시작했다. 밤이라서 쉽지 않은 일이다. 반대쪽 자동차와 마주칠 때나 이따금씩 막스의 얼굴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막스의 얼굴은 자동차 불빛 때문에 노랗게 보인다. 그 애의 푸른 눈은 초록빛으로, 밤색 머리는 거의 붉은색으로 보인다. 막스는 나와 쌍둥이라 해도 될 정도로 비슷하다. 지난번 병원에 진찰 받으러 갔을 때 흰 가운을 입은 여자는 이렇게 말했다. ´키도 같고 몸무게도 같네.´ 그 여자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나는 막스와 닮았다는 따위의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막스 얼굴을 쳐다보면 볼수록 점점 더 우익에 표 던지고 말고 하는 그 애의 이야기가 농담인지 아닌지 알 수 없어진다. 막스를 관찰하는 중에도 그 애 얼굴을 비추는 자동차 불빛 수는 줄어든다. 이제 완전히 밤이다. 더 이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나는 그 애의 귀에 대고 아주 가만히 묻는다.
˝나를 놀리는 거니, 막스?˝
˝아니라니까! 내 말이 안 믿어지니?˝
막스는 엄청나게 큰 소리로 대답했다.
˝응...˝
˝그래 좋아. 너도 두고 보면 알게 될 거야.˝
막스는 두 개의 앞좌석 사이로 몸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한 손을 자기 아버지의 어깨에 얹으며 말했다.
˝아빠, 이 다음에 어른이 되면 전 우익에 투표할 거예요.˝
그러자 막스의 어머니가 우리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거의 고함치다시피 말했다.
˝너 무슨 얘길 하는 거니?˝
막스의 어머니에게 대답을 한 사람은 그 애의 아버지였다. 그는 속력을 늦추더니 백미러를 통해 우리에게 윙크를 보내며 대답했다.
˝당신 아들은 우파에 표를 던지겠다고 말하고 있는 중이었소. 그렇지 얘야?˝
˝네, 네.˝ 하고 막스가 말했다.
그러자 막스의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말을 걸었다.
˝그것 참 잘하는 짓이군요... 잘하는 짓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죠? 여덟 살 먹은 어린애한테 그런 바보 같은 말이나 따라 하게 하곤 자기가 꽤나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죠. 안 그래요?˝
˝이거 왜 이래, 내가 그렇게 말하라고 시킨 게 아니라 그 애 스스로 그렇게 말한 거요... 그렇지 얘야, 너 스스로 생각한 말이지?˝
막스는 또다시 ˝네, 네.˝라고 했다.
막스의 어머니는 자리에 꼿꼿이 앉은 채 앞 유리창을 응시했다. 그러면서 선언했다.
˝내 아들의 일생에 우익에 표 던지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걸요.˝
˝당신 아들은 우익에 투표할 거요. 그러고 싶다면 말이야. 그리고 저 애가 그런 생각이 들 때 당신을 찾아가서 당신 소감을 묻게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오.˝
막스의 부모들은 싸우기 시작했다. 똑똑하다느니 어리석다느니, ´꼴사나운 멍청이´라느니 ´정말 천치´라느니, 과연 그 애의 아버지가 잠잘 곳을 찾아볼 생각이나 있는지 모르겠다느니 하면서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막스는 다시 뒷자리 깊숙이 자리잡았다. 그리고 내 쪽으로 몸을 숙였다.
˝이제 알겠지.˝라고 막스가 내게 말했다.
˝이 휴가가 대단할 거 같다는 건 알겠어.˝하고 나는 대답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 애는 그렇게 대답하고 미소지었다.
대단할 것 같다는 내 말뜻을 막스가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2.
밤 열두 시가 다 된 것 같다. 막스의 부모님들은 마침내 호텔을 하나 잡았다.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한 작은 도시에. 아니, 심지어 바다에서 몇백 킬로 떨어진 곳 같기까지 하다.
막스의 부모님은 말다툼을 그쳤다. 이제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막스의 어머니가 한 유일한 말이라곤 ˝잘 자거라 얘들아. 그리고 오늘 밤 튜브에 바람을 넣을 필요는 없다. 아빠가 이번 방학에는 우리 모두에게서 바닷가를 뺏어 버리기로 결정한 모양이니까.˝였다. 그런 후 어머니는 우리 침실 문을 닫았다. 이 닦으라는 말조차 하지 않은 채 막스와 나만 남겨 두고서.
그래도 어쨌든 우리는 이를 닦았다. 그 다음, 별로 피곤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침실의 발코니에 나와 앉았다. 발코니는 도시의 지붕들을 향해 나 있다. 우리는 흰 벽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철책 사이로 밀어넣었다. 발이 허공에서 달랑거린다. 그러고서 우리는 별들은 쳐다본다. 그리고 나는 아빠를 생각한다.
나는 밤이면 아빠가 가끔 침실 창문으로 몸을 내밀고 별을 쳐다보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생각해 본다. 아마 오늘 저녁에도 아빠는 그러고 계실 테지. 그러면 나는 여기 스페인에서, 아빠는 파리에서 똑같은 작은 별을 보고 있는 거야. 저 많은 별들 중에서 우리는 똑같은 작은 별을 고른 거지.
˝무슨 생각해, 앙통?˝
˝너한테 말해야 해?˝
˝네 맘이지만...˝
˝그래. 그렇다면 말 안 할래. 넌 무슨 생각해?˝
˝난 네가 나의 제일 좋은 친구라는 생각을 해.˝
막스는 이따금 내가 자기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말하곤 했다. 나는 그 때마다 부끄러워서 가슴이 죄어든다. 그리고 나는 나도 그 애에게 ˝너도 나의 제일 친한 친구야.˝라고 대답해야 한다고 나 자신에게 말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막스에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다. 왜냐 하면 그건 거짓말이니까. 나는 니코나 파브리스, 베르나르, 아니면 알렉스나 피에르가 훨씬 더 좋다... 사실, 등수를 매겨 본다면 막스는 아마 아홉 번째쯤 될 것이다.
그리고 아홉 번째 순위란 결코 제일 좋은 친구가 차지할 자리가 아닌 것이다.
˝너, 때때로 우리가 어떤 사람들을 좋아하는데, 정작 그 사람들은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우리들을 훨씬 덜 사랑한다는 것 생각해 봤니?˝
막스는 내 질문에 놀란 것 같았다. 그 애는 내게 물었다.
˝우리 엄마 아빠 때문에 내게 그런 얘길 하는 거니?˝
천만에. 나는 그 애 부모님 생각을 한 게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내 대답은 이랬다.
˝물론이지.˝
˝그럼 넌 누가 누굴 더 사랑한다고 생각하니? 우리 아빨까, 아님 우리 엄말까?˝
˝난 알 수 없지. 난 너희 부모님을 잘 모르잖니.˝
막스는 내 말을 듣고 있지 않다. 그 애는 딴 생각을 하고 있다. 혼잣말을 하며 생각하는 중이다.
˝우리 아빠가 엄마를 더 사랑해. 확실히 아빠는 이혼하고 싶은 마음이 없으실 거야. 우리 셋이 이렇게 계속 같이 살기를 원하실 거야. 아무 걱정 없이. 늘 그랬던 것처럼 계속 학교 가고, 저녁 먹고, 주말 보내고, 방학이랑 생일을 맞고, 수영장에 가고, 수요일 저녁마다 피자집에 가고, 화살 던지기 놀이도 하고. 그러면 이기는 건 항상 엄마지만. 그리고 축구 시합 보러 가고, 그 동안 엄마는 혼자서 영화 보러 가고, 또 모래 언덕의 납작한 바위 위로 피크닉도 가고, 거기서 굴이랑 가재를 잡다 보면 밤이 되고, 굴 껍질에 레몬즙을 제대로 부으려면 아빠가 자동차 등을 켤 수밖에 없겠지...˝
막스는 제 팔을 발코니의 철책 사이로 뻗었다. 머리도 함께. 그 애의 몸이 앞으로 수그러져 있다. 나는 그 애가 슬프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나는 그냥 그 애의 어깨 위에 손을 얹는다.
만약 막스가 나의 제일 좋은 친구라면 지금 같은 순간 내 입에서 무언가 적절한 말이 나올 수 있을까? 그 애가 덜 슬프도록.
˝꼬마야, 몸 내밀지 마, 떨어져!˝
우리 아래, 정원에서 한 여자가 공중에 대고 팔을 휘젓고 있었다. 방금 소리친 건 그 여자였다.
˝체! 호텔 주인이야!˝
우리는 전속력으로 발코니에서 다리를 빼내고 후닥닥 일어나 흰 벽 뒤로 몸을 바짝 숨긴다. 내 심장이 너무나 빨린 뛴다.
우리는 그 자세로 꼼짝도 않는다. 그렇게 최악의 사태를 상상하며 세는 숫자가 백을 넘어간다. 그러나 나는 마음을 다잡고 막스 쪽으로 약간 몸을 돌린다. 같은 순간 막스도 내 쪽을 돌아본다.
우리는 서로 마주 보며 웃음을 터뜨린다.
땅! 땅! 땅!
우리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방금 누군가 우리 방문을 두드렸다.
3.
˝문 열까?˝
˝미쳤어? 우리를 죽일 텐데!˝
˝넌 왜 그 아줌마가 우릴 죽일 거라고 생각하니?˝
˝나도 몰라. 하지만 너도 봤잖아. 그 아줌마가 어떻게 소리치는지...˝
땅! 땅! 땅!
˝문 열래.˝
˝그러지 마, 막스! 부탁이야! 넌 나랑 제일 친한 친구야. 제일 친한 친구라니까...˝
막스는 내 말을 듣지 않는다. 문으로 다가가 열쇠를 돌리고 손잡이를 아래로 내린다. 오, 안 돼... 문을 열다니.
여주인이 들어온다. 그러더니 곧장 막스의 겨드랑이에 두 손을 끼워 넣고 땅바닥에서 1미터 위까지 들었다 놨다 한다. 그러면서 다시 고함치기 시작한다.
˝몸을 내밀면 안 돼. 꼬마야!˝
˝저 사람한테 ´그라시아스´라고 외쳐! 고맙다고 외치라니까!˝
나는 막스한테 말한다. 하지만 막스는 내 말대로 하지 않는다.
그 애는 ˝오케이˝라고 여주인에게 말한다. 심지어 목소리도 떨지 않는다. 마치 모든 걸 다 이해한 아저씨 같은 목소리로, ˝오케이, 오케이...˝
여주인은 막스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그러더니 손을 막스의 얼굴 쪽으로 가져가 그 애의 머리카락을 만진다.
˝넌 착한 애로구나... 왜 너희들은 자지 않는 거냐?˝
이제 여주인은 미소짓고 있다. 막스도 아줌마에게 웃어 보인다. 나만 빠진 것 같아 나도 그처럼 웃어 보려 한다. 하지만 억지로. 왜냐 하면 사실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유일한 일은 ˝살려 주세요!˝라고 소리치는 것이니까.
˝여긴 너무 더우니 나와 함께 광장으로 가자.˝
이 아줌마가 뭐라고 그런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네.
그저 내 눈에 보이는 건 여주인이 막스의 손을 잡고 이어 내 손도 잡는 모습이다. 그 다음 나는 내 손이 문을 향해, 바깥을 향해 이끌리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나는 반항하지 않는다.
우리 셋은 복도로 나온다.
그리고 층계를 내려간다.
작은 안뜰을 건넌다.
여주인의 손은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다. 꼭 수갑 같다. 이 여자가 우리를 납치하는 중인데 아무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구나.
˝막스? 우리 어디로 가는 거니, 막스?˝
˝나도 몰라, 앙통. 그냥 아줌마를 따라가자. 멋지지 않니?˝
그만둬, 막스! 항상 아무거나 멋지다고 생각하지 좀 말란 말야. 스페인 호텔 여주인의 손아귀에 목숨을 내맡기는 건 멋진 게 아냐. 하나도 멋지지 않다고. 너의 엄마 아빤 어디 있는 거지? 응? 어디 있어? 우익이든 좌익이든 간에 얘들은 보호할 수 있어야 되는 거 아냐? 최소한 그 정돈 해야 할 것 같은데! 난 여기서 떠나고 싶어. 이 바캉스가 지긋지긋하다고. 이봐 막스, 넌 내게 바닷가에서 지내게 될 거라고 했지... 근데 바다가 어디 있어? 어디 있냐고?
어어! 방금 내 손이 풀려났네.
우리는 호텔 앞 거리에 와 있었다. 그 도시의 광장 언저리에 온 것이다. 광장가엔 나무가 심어져 있고, 전깃줄 장식들이 빛을 비추고 있다. 이곳엔 사람이 많다. 정말 만원이다. 낮은 담벼락 위나 카페의 테라스에는 사람들이 잔뜩 모여 앉아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소리소리 지르며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광장 한복판에는 꼬맹이들이, 나보다 훨씬 어린애들이 있다. 그 애들은 서로의 뒤꽁무니를 쫓아 뛰어다니거나 숨바꼭질을 하거나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아기가 타고 있는 유모차도 하나 보인다. 그리고 그 아기도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눈이 말똥말똥하다. 전혀 잘 생각이 없는 눈 표정이다.
˝지금 몇 시니, 막스?˝
˝새벽 1시 20분이야.˝
˝내가 보고 있는 게 너한테도 보이지?˝
˝응.˝
˝우리가 아무도 자지 않는 사람들의 나라에 왔나 봐. 그렇지?˝
˝그런 거 같아.˝
˝막스, 스페인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나라야.˝
그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내 눈은 여주인과 마주친다. 아줌마는 내게서 2미터쯤 떨어진 곳에 앉아 다른 여자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여자들은 모두 손에 헝겊 조각을 하나씩 들고 바느질을 하거나 수를 놓고 있다. 근데, 저럴 수가... 호텔 주인 아줌마가 헝겊 조각에서 바늘을 빼서 자기 가슴에 꽂네. 진짜로, 바늘을 하나하나 꽂잖아. 바늘로 저렇게 자기 가슴을 찌르다니. 그러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말야. 저런 저런 저런! 바늘을 다시 빼면 피가 날 거야. 심장이 있는 자리에 바늘을 꽂았는데 피가 안 날 리 없어. 내 몸 여기저기가 너무너무 아프다. 안 돼. 저 바늘을 빼면 안 돼. 안 된다고!
4.
나는 한쪽 눈을 떠본다.
내 몸은 마치 물렁물렁한 반죽 덩어리 같다. 온몸이 덜덜 떨린다. 꼭 텅 빈 자리에 더운물을 채워 넣은 듯하다. 나를 쳐다보는 눈들과 나를 만지는 손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이 내게 괜찮냐고 묻는다. 막스도 내게 그렇게 묻는다. 나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이제 괜찮다는 걸 안 이상 대답할 필요가 없다. 다시 일어나야 한다. 사람들이 나를 부축한다. 그리고 나를 업는다. 스페인. 밤. 그리고 이혼. 이제 머릿속에 모든 것이 다시 떠오른다. 발코니 호텔 여주인, 그리고 광장, 일어났던 일들이 순서대로 하나하나 정리된다. 바늘, 가슴, 구멍난 피부. 그래, 내가 기절했었구나.
˝너 기절했었어.˝ 막스가 내게 말한다.
˝아, 그래.˝ 나는 대답한다.
˝나도 그랬다고 생각해.˝
나는 천천히 대답한다.
˝내 생각엔 네가 겁이 나서 그랬던 거 같아.˝
˝응?˝
˝하지만 겁낼 필요 없었는데, 앙통. 왜냐 하면 그 아줌마 가슴은...˝
막스는 웃음을 참는다.
˝... 그 아줌마 가슴은, 나한테도 보여 줬는데, 진짜가 아니래!˝
막스는 더 이상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배꼽을 쥐고 웃기 시작한다. 어찌나 우스운지 그 애는 눈물까지 흘린다.
˝정말이라니까. 아줌마가 나한테 보여 줬어. 손으로 만져 보라고까지 했는걸. 그건 그냥 헝겊 뭉치야. 말하자면 인공 가슴이지 뭐. 아줌마는 진짜 가슴은 하나밖에 없어. 나머지 하나는 잃어버렸대. 사람들이 잘라 냈어. 내가 웃으면서 말하고 있지만 맹세코 이건 정말이야.˝
˝난 내가 더워서 기절했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막스의 기분을 언짢게 만들 수 있는 사나운 말투로 말했다.
˝아 그랬어... 어쨌든 너 때문에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어. 갑자기 죽은 것처럼 쓰러졌잖아.˝
˝별거 아냐. 난 가끔 그러거든.˝
문득 우리 주변에 모여든 온 마을 사람들이 우리를 관찰하고 있는 게 느껴진다. 그들은 부드러운 눈매에 미소를 띠고 있다. 안심한 엄마 아빠의 표정 같다. 여주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의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아줌마는 내게 다가와 몸을 굽히더니 뽀뽀를 한다.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내 눈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더니... 앗, 그러지 좀 말지! 글쎄 바늘이 꽂혀 있는 가슴을 자기 주먹으로 때리는 것이다.
˝멋지지! 멋지지!˝
˝그래요.˝ 나는 대답한다. 됐다니까요. 하지만 아줌마는 계속 자기 가슴을 때린다. 정말 난처하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 모두가 아줌마가 가슴 두드리는 소리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 한다. ´멋지지! 멋지지!´ ... 악몽처럼 끔찍한 노래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한다. 우선 내 두 주먹을 공중으로 올린다. 그리고 으르렁거리면서 주먹으로 가슴을 내리친다. 나는 내 가슴을 북처럼 두드린다. 나는 타잔이다. 나는 타잔의 고함 소리를 낸다.
˝오오오오오오오..... 웨오! 웨오! 웨오오오!˝
내 고함 소리가 광장에 올려 퍼진다. 주변에선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다. 이런, 난 소리지르는 것을 중단한다. 얼굴이 새빨개진다. 그러자 웃음소리가 터지지 시작하는 게 들린다. 내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 다시 생기가 돈다. 마을 사람들은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웃는다. 사람들은 상냥하게 웃더니 각자의 자리로 흩어져 되돌아간다. 노인들은 벤치로, 아이들은 롤러스케이트를 타러.
나는 기운이 하나도 없다. 나는 막스가 웃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 애는 마치 내가 방금 모든 사람들 앞에서 팬티를 내리기라도 한 듯 나를 쳐다보고 있다.
호텔 여주인이 내 어깨를 친다.
그리고 내 손을 쥐더니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도록 돌린다. 그 다음 그 위에 노란 동전 다섯 개를 올려놓는다. 동전들은 꼭 금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
˝오백 페세타네. 꽤 많은 액수인걸.˝하고 막스가 말한다.
여주인이 다시 내 어깨를 두드린다.
아줌마는 손가락으로 어느 방향을 가리킨다. 조그만 내리막 골목 쪽이다. 이제 아줌마는 내가 자기 이야기를 하나도 알아듣지 못한다는 걸 깨닫고, 내게 말을 하느라 공연히 힘을 빼지 않는다. 아줌마의 손가락이 내 손바닥의 동전들을 건드린다. 꼭 새 부리처럼. 부리는 다시 공중을 향하더니 그 작은 길을 가리킨다. 무슨 관계가 있는 게 틀림없는데.
˝아줌마는 우리가 저 길로 갔으면 하나 봐, 앙통. 저기 가면 뭔가 살 수 있는 게 틀림없어.˝
고마워, 막스. 나도 이해했어. 하지만 아줌마가 돈을 준 사람은 어디까지나 나라는 걸 좀 기억해 줬으면 고맙겠는데. 가끔씩 느끼는 건데, 너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나를 짜증나게 만들 수 있는 거니?
나는 여주인 쪽으로 몸을 돌려 또렷또렷하게 발음한다.
˝그라시아스, 그라시아스 에 아디오스.˝
내가 스페인 어로 점점 더 똘똘하게 요령을 부릴 수 있게 되어 간다는 생각이 든다.
5.
뻥!
나는 막스와 함께 또 다른 광장에 다다랐다. 거기엔 또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뻥!
주로 우리 또래, 아니면 한 열다섯 살까지도 되어 보이는 약간 더 큰 아이들의 무리다.
뻥!
음악이 있고 조명이 있다. 그리고 음료수 마시는 곳도.
뻥!
그리고 광장 한가운데에는 범퍼 카 시합장이 하나 마련되어 있었다.
뻥!
우리가 갖고 있는 마지막 동전이 사라지는 중이다. 운전은 막스가 한다. 뻥! 토할 것 같은걸!
˝조심해, 막스. 난간이야! 주의하라니까! 차를 돌려!˝
막스는 어떻게 해야 차가 도는지 모른다. 그 애가 운전대를 돌리자 우리는 계속 뒤쪽으로만 움직인다.
˝근데, 앙통. 사람이 가슴을 하나만 가지고 살 수 있을까?˝
˝그런 바보 같은 얘기를 지껄이느니 차라리 네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나 좀 쳐다보지 그래.˝
˝싫어. 이건 심각한 질문인걸!˝
˝알았어. 내가 보기에 그 아줌마는 쌩쌩한 것 같은데. 안 그래?˝
˝으응... 그러면 부모가 한 사람뿐이어도 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활할 수 있을까?˝
˝그런 거라면, 난 하나도 모르겠어, 막스...˝
˝예를 들어서 넌 어때? 아빠랑만 사는 게?˝
˝내 경우엔, 난 항상 아빠랑 둘이서만 살았잖니. 한 번도 부모님이 둘이었던 적이 없으니까. 난 비교할 수 없어.˝
˝넌 지금 우리 엄마 아빠가 주무실 것 같지?˝
˝잠깐! 막스! 노란 차야... 노란 차가 온다니까!˝
뻥!
˝내 생각엔 엄마 아빠는 주무시지 않아. 두 분은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것 같아. 나에 관해서 말야.˝
˝내가 운전대를 잡을까, 막스?˝
˝나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서로 묻겠지. 내가 둘 중 누구랑 살고 싶어할지.˝
˝그럼 넌 누구랑 살았으면 좋겠어?˝
˝아빠랑... 아니면 엄마랑. 아니면 할아버지네서. 아니면 너네 집도 좋아. 난 너네 아빠하고 너랑 같이 살면 정말 좋겠어.˝
˝너 알지. 우리 집엔 침실이 두 개밖에 없다는 거. 응? 그리고 이 점을 알아야 하는데, 우리 아빠는 그럴 정도로 멋진 분이 아니라고...˝
˝아무튼, 우리 엄마 아빠가 내가 너네 집에 가서 사는 걸 절대 원하지 않으리란 건 확실해.˝
˝어서 막스! 저 노란 차에 복수할 수 있어. 정면으로 달려들어... 아니, 파랑 말고 노...˝
뻥!
˝펑크났어, 앙통...˝
˝어차피 거의 끝날 시간이야. 끝나면 호텔로 돌아가자.˝
˝싫어. 거긴 지긋지긋해.˝
˝앗, 조심해. 지금 자동차에서 나가면 안 된단 말야!˝
막스가 자리에서 일어서 있었다. 그 애는 범퍼 카 주행로 한가운데서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모든 차들이 막스를 피하기 위해 그 애 주위를 맴돈다. 계산대 쪽에서 한 남자가 막스한테 뭐라고 소리치고 있다. 하지만 막스는 아무 말도 못 들은 것 같다. 그 애는 가장자리로 나가려고 한다. 막스는 침착하게 걸어서 주행로 한복판을 가로지른다. 저러다간 차에 치일 것이다.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리고 갑자기 모든 자동차들이 단숨에 덜컥 서 버린다. 나는 최대한 빨리 몸을 빼내어 시합장 바깥으로 빠져 나온다. 나는 사람들 속에서 막스를 찾아내기 위해 약간의 뜸을 들인다. 그리고 그 애를 좇아 달려간다. 막스는 꼭 유령처럼, 아니 줄타는 곡예사처럼 걸어가고 있다. 마치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물들과 부딪치는 것이 무섭지 않은 사람처럼.
˝이봐 막스, 나 좀 기다려! 나 좀 기다리라니까!˝
˝가서 자자, 앙통. 엄마가 사람은 자야 하는 거라고 말씀하셨어. 밤에 자지 않는 건 비정상적인 거야... 너도 그게 비정상적이라는 건 잘 알고 있지... 왜냐 하면, 만약 사람이 밤에 활동하기 시작한다면 낮엔 뭘 하겠어. 그렇지? 낮엔 뭘 하겠어?˝
나는 막스에게 달리 대답할 말이 없다. 그저 그 애를 따라갈 뿐.
6.
˝일어나라 얘들아. 그만 자라니까! 낮 열두 시가 다 됐다.˝
나는 한쪽 눈을 떴다.
막스의 아버지는 면도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우리에게 이야기하면서 우리의 세면도구를 주머니 안에 정리해 넣고 있다. 시간을 허비할 틈이 없으니 이제 그만 일어나서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씻지도 않고. 그는 우리가 파리로 되돌아갈 거라고 말했다.
˝엄만 어딨어요?˝하고 막스가 묻는다.
막스의 아버지가 침대 위에 앉는다.
˝엄만 툴루즈의 삼촌네로 갔단다. 오늘 아침 내가 공항까지 바래다주고 왔다. 네 엄만 비행기를 타고 돌아갔단다. 우린 싸웠거든.˝
그 다음, 막스의 아버지는 대화를 바꾸고 싶었는지 내게 말을 걸었다.
˝내가 너희 아버지께 연락드렸다. 앙통. 우리가 되돌아간다는 걸 알고 기다리고 계신다.˝
그는 우리의 가방 두 개를 어깨에 걸친 후, 문을 열고 나간다.
˝난 자동차 있는 데로 가니 꾸물거리지 말아라, 응?˝
막스의 아버지는 사라진다. 나는 옷을 다 입은 채로 잤다. 신발까지 신고서. 막스는 아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 이유는 우선 나는 아직 완전히 잠이 깬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고 다음엔,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정말로 모르기 때문이다.
˝괜찮니, 막스?˝
˝난 섭섭해, 앙통.˝
막스는 단번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옷을 걸쳐 입고 방에서 나간다. 나는 침대 밑에 놔 둔 물건이 없는지 확인해 보지도 않은 채 막스를 뒤따른다.
호텔 여주인 앞을 지나칠 때 아줌마는 우리에게 각각 두 번씩 뽀뽀를 해 준다.
˝아디오스.˝
˝아디오스.˝
그리고 나서 아줌마는 다시 막스를 꼭 안아 준다. 마치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우리는 차를 타고 달린다. 국경을 넘어 계속 달린다. 고속 도로 변에 있는 셀프 서비스 식당에서 밥을 먹고 다시 달린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자정이 거의 다 되었다. 파리까지는 몇 킬로나 남은 걸까? 나는 침묵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남자게? 여자게? 놀이 할까요?˝
막스도 막스의 아버지도 내게 대답하지 않는다.
다시 차창 밖을 본다. 내 뺨을 거기 대 본다. 차갑다.
˝됐다.˝하고 갑자기 막스가 말한다. ˝나 하나 찾았어. 이제 물어 봐.˝
˝좋아.˝하고 나는 대답한다. ˝남자야, 여자야?˝
˝여자야.˝
˝살아 있어, 죽었어?˝
˝살아 있어.˝
˝으음, 유명해?˝
˝아니.˝
˝내가 아는 여자야?˝
˝우리 셋 다 아는 여자야.˝
˝3학년 맡은 드노와이예 선생님.˝
˝틀렸어.˝
˝화살 던지기 놀이를 잘 하는 여자니?˝하고 갑자기 막스의 아버지가 묻는다.
˝네, 굉장히 잘 해요.˝라고 막스가 대답한다.
˝누군지 알겠다.˝
막스의 아버지가 말한다. 그러면서 날 보더니 힌트를 하나 주겠다고 한다. 그 여자는 좌익에 투표한단다.
이제 나는 답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걸 말할 수 없다. 어떻게 막스한테 ´너네 엄마야.´라고 대답한단 말인가. 어떻게 여기, 한밤을 달리고 있는 이 차 안에서 그 ´엄마´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엄마´라는 말이 갑자기 내게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사실 내겐 ´이혼´이라는 말보다 훨씬 겁나는 말이 그거다. 그래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우리 엄마야, 앙통. 난 우리 엄마를 생각했어... 너 졌네.˝
˝에이, 난 바보야...˝
그리고 또다시 무거운 침묵이다.
나는 막스의 아버지에게 물어 본다.
˝저, 음악 좀 틀어 주시겠어요?˝
막스의 아버지가 카세트를 하나 집어넣는다. 이런, 클래식 음악이다.
나는 차창에 기댄다. 멀리 수많은 불빛이 보인다. 파리일 것이다. 다시 아빠를 만나게 되겠지. 아마 내가 먹을 걸 준비해 놓으셨을 거야. 그럼 난 응접실 탁자에서 혼자 음식을 먹겠지. 아빠는 내 맞은편 바닥에 앉으실 거야. 초가 있고 음악이 있고 노래가 있고. 창문들은 열려 있겠지. 아버지가 이 이혼 얘기 때문에 약간 거북해하실 거라는 생각이 든다. 바캉스치곤 그렇게 나쁘지 않았으니 괜찮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선 내가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할 거야. 엄청나게 짧은 여행이었지만 나쁘진 않았어. 그런데 아빠에게 도대체 무슨 얘길 해야 하지?
아, 알겠어. 아빠한테 우익인지 좌익인지 물어 봐야겠어. 게다가, 그건 틀림없이 아빠가 아주 좋아하게 될 종류의 문제인걸... 그렇더라도, 문제치고 그다지 멋진 건 아닌데...
아빠, 말해 보세요. 단둘이서만 사는 걸론 충분하지 않아요?
아빠, 말해 보세요. 아빠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과 같이 살 건가요? 그 사람이 언젠가는 더 이상 우리랑 같이 살기를 원하지 않게 되더라도요?
아빠, 말해 보세요. 가짜 가슴에 대해 잘 알고 있어요?
파리의 불빛들이다. 길들과 몽파르타스 역을 알아볼 수 있다. 곧 아빠를 보게 되겠구나. 이제 아주 가까이 계셔. 아빠가 벌써 팔을 벌리고 계신다.
자동차가 우리 집 골목으로 들어간다.
막스의 아버지는 주차할 자리를 찾지 못하고 골목을 돌아 나온다. 아무 말이 없어도 그 애의 아버지가 짜증이 나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저 혼자 내릴 수 있어요. 건물 현관이 바로 저기인걸요.˝
˝응? 그럴 수 있겠니?˝
뻥!
막스의 아버지가 방금 레위니옹 섬 식 레스토랑 앞에 세워 놓은 트럭의 문을 범퍼로 들이받은 것이다. 이제 내가 이 자동차와 헤어질 시간이다.
˝저 여기서 내릴게요. 괜찮죠?˝
˝그래라, 앙통. 내일 내가 아버지께 전화드린다고 말씀드리거라. 그리고 미안하다고... 네 짐이 트렁크에 있던가?˝
˝아뇨 아뇨. 제 배낭 여기 있어요.˝
나는 두 개의 앞좌석 사이로 몸을 굽혀 뺨에 막스 아버지의 뽀뽀를 받은 후 차문을 연다. 그리고 막스에게 손을 내민다. 하지만 막스는 우리가 악수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 애는 내게 제 뺨을 내민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나는 그 애에게 뽀뽀를 해 준다.
´잘 자´라고 말한 후 나는 차문을 탁 닫는다.
7.
나는 침대 이불 위에 그냥 누워 버렸다. 하지만 자지는 않는다.
사실 아빠는, 내가 먹을 것을 전혀 준비해 두지 않았다. 내가 도착을 때 아빠는 전화를 하고 있었다. 아빠는 내게 뽀뽀하기 위해 전화를 끊지도 않으셨다.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 때 아빠가 나를 보러 왔다. 나는 말을 꺼낼 수 없어서 그냥 아빠 말을 듣기만 했다. 아빠는 시간이 늦었고 내가 몹시 피곤해 보이니 얼른 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자, 어서! 더 빨리 움직여라. 네 가방은 내일 풀도록 하자. 이제 정말 잘 시간이야. 내가 불을 끄마..´ 그래. 아빠는 불을 끄셨다. 아빠는 막스가 좀 어떠냐고 묻지 않으셨다. 내가 배고프지 않은지도.
사실 내 느낌으론, 아빠가 나를 보게 된 것이 하나도 기쁘지 않았던 듯싶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는다. 내 앞엔 창문이 활짝 열려 있다. 그리고 그 창 안에는, 별들로 가득한 밤이 보인다. 나는 어제 저녁 내가 골랐던 별을 다시 찾아본다. 하지만 찾을 수 없다. 만약 막스가 자기 집에서 잠드는 데 성공했다면 그건 정말 놀랄 일일 것이다. 나는 자기 창 발코니에 팔꿈치를 괴고 있을 그 애 모습을 아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건 정말로 아주 분명한 영상이다. 바로 이 순간 막스가 자기 방 창가에서 밤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리란 사실에 나는 백만금을 걸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애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안다. 맹세할 수 있다. 그건 마치 텔레파시 같은 것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는 그 애 목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우리 엄마 아빠가 더 이상 서로 사랑하지 않는 건 내 탓이 아니야. 내 탓이 아니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간다. 나는 막스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 오직 생각의 힘만으로. 나는 두 손으로 발코니의 난간을 꽉 쥔다. 내 눈을 달 아주 가까이 있는 어느 외딴별 하나에 모은다. ´막스? 내 말 들리니, 막스? 틀림없이 넌 내 말을 듣고 있을 거야... 그래. 난 내가 너한테 아주 잘 해 주지는 못했다고 생각해. 나는 내가 해야 할 행동을 하지 못했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의 부모님 일 때문에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다는 건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을 거야. 하긴 그래도 불쌍히 여기는 게 때로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나은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막스가 내 말을 좀더 잘 들을 수 있도록 눈을 감는다...
´네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가 아니라고 해서 내가 너의 제일 좋은 친구가 될 수 없는 건 아니야.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네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좀 복잡한 얘기니까. 게다가 이렇게 텔레파시로 말하려니까... 알겠니. 난 네가 좋아하는 친구들 중 첫 번째 자리에 있고 싶어. 비록 네가 내게는 아홉 번째밖에 안 되더라도... 하지만, 어쨌든 어저께 저녁 이후로 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다섯 명 안에 든다고 생각돼... 자, 이게 내가 말하려던 전부야... 일년 후에 우리 둘이 서로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지 어떨지. 그건 미리 알 수 없는 거야. 모든 건 자꾸 변하니까...´
˝앙통이냐? 앙통이구나!˝
이건 아빠의 목소리다. 나는 눈을 뜬다. 아빠가 아빠 방 창문에서 몸을 내밀고 있다. 우리 아파트는 사람들이 이웃 창에 대고 서로를 부를 수 있게 지어졌다.
˝너 안 자니? 어디 안 좋은 거냐?˝
아빠는 이웃 사람들을 깨우지 않기 위해 조그만 소리로 속삭인다.
˝아빤?˝ 나는 묻는다. ˝아빤 잠이 안 오세요?˝
˝안 오는구나... 저기, 앙통. 내 너한테 물어 볼 말이 있는데. 그러기 전에 우선 나한테 진실만을 말한다고 약속해 다오.˝
˝좋아요, 아빠... 아빠도 알다시피 전 항상 진실만을 말하는걸요... 그것 때문에 주무시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 말하자면 그렇다...˝
˝그럼 말해 보세요...˝
˝만약 우리 집에 누군가 다른 사람이 와서 살게 되면 넌 싫으니?˝
생각해 볼 필요도 없다. 나는 창에서 몸을 뗀다. 그리고 내 방에서 나온다. 나는 아파트를 가로질러 아빠 방을 향해 뛰어간다. 거기 다다르자 나는 아빠 침대로 뛰어든다. 그리고 공중으로 펄쩍펄쩍 뛴다. 그 다음,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은 채 가만히 있는다.
퍼뜩, 별들이 소원을 들어 준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비록 그 별들이 별똥별이 아니더라도. 그리고 비록 소원이 굳이 말로 표현되지 않더라도.
나는 머리를 들어 아빠를 바라본다. 아빠는 아무 말씀도 하려 하지 않으신다. 그럼 내가 묻는 수밖에 없다.
˝그게 누군데요? 누구예요? 누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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