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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2: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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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상호 목사 |
참고 : | 공주세광교회 http://sk8404.or.kr |
알타반의 성탄예물
마2:1-12, 마25:40
2011. 12. 25, 성탄절
한 해를 힘차게 살아온 여러분들의 수고와 삶에 힘찬 격려를 보냅니다. 오늘은 성탄 주일이자 2011년의 송년 주일이기도 합니다. 숨 가쁘게 살아왔던 올 해가 저무는 마당에 주님이 2000년 전 유대 땅에 오셔야 했던 것을 생각해 봅니다.
로마의 꼭두각시인 에돔 사람인 헤롯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내와 아내의 조부, 어머니와 처남, 심지어 자신의 세 아들마저 살해한 극악무도한 집권자였습니다. 부패된 종교 지도자들과 결탁해서 백성들을 호도, 착취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라는 말이 있듯이 모든 권력, 재화는 로마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온 세상이 흑암으로 가득하고 폭력과 거짓, 사기와 결탁이 판을 치고 있던 세상에 빛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이 오셔야만 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의 모진 시련과 오랜 고난 끝에 그 거친 풍랑을 헤치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인간사회의 모든 죄악과 불의, 그 깊은 나락에서 지옥 권세를 뚫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주님은 인간의 죄를 씻고 태워서 맑고 깨끗하게 하셨고 우리 모두 갈 길 되시고 우리 모두 이룰 참이시며, 우리 삶의 힘과 보람이십니다.
* 주보에 나온 성탄절 유래와 의미를 나눈 후
어린 시절, 성탄절이 되면 어김없이 교회학교에서 성극을 마련하곤 했었습니다. 그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이 마리아, 요셉, 아기 예수, 목자와 동방 박사입니다. 동방박사, 그들은 박사로 불리기에 통념상 박사라는 단어에 대한 선입견이 없지 않습니다만 이들은 별을 연구하는 사람들로 성경학자들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 사제들이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국가 대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첨성술사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을 Magi 라고 부르며(이는 Magos의 복수형) 영어 성경 중에는 Three Wise men으로 번역한 곳도 있는데 이들을 Wise man으로 번역한 이유는 천문이란 글자 그대로 ‘하늘에 쓰여 있는 글’, 곧 '하늘의 메시지'입니다. 고대로부터 수많은 동방박사들이 그 메시지의 내용을 해독하기 위하여 별의 움직임을 관찰해 왔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너무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만 동방박사가 예수님께 경배하게 된 과정을 주목하려 합니다. 특히 성탄절만 되면 세 박사의 이야기만 했는데 동방의 제 4박사인 알타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해마다 기억하여 1년을 살고픈 이야기입니다.
동방에서는 원래 4명의 박사들이 베들레헴을 찾아 길을 떠났습니다.
아라비아에서 온 멜콰이어은 황금을
에디오피아에서 온 발타샨은 몰약을
탈사소에서 온 캐스팔은 유향을 각기 드리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파샤에서 온 알타반은 청옥, 루비, 진주를 가지고 길을 떠났으나 끝내 예수님을 만나보지 못한 불운의 제 4박사였습니다.
알타반! 그는 당시 40세의 파샤 사람 조로아스터교의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구약의 예언 “유대 땅에 새 왕이 탄생하실 것”이라는 약속에 항상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서쪽에 큰 별이 하나 떴다는 전갈을 받고 알타반은 수많은 사람들의 비웃음과 만류를 뿌리치고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여 왔던 보화 3가지 루비, 청옥, 진주를 가지고 동방의 3박사와 만나기로 한 2000리나 되는 먼 길을 홀로 떠났습니다.
밤이면 길가에서 쉬고 낮이면 말을 달려 오론테스 산기슭을 지나고 니키야 평야를 지나 유브라테스 강을 건넌지 10일 되던 그날, 다른 동방의 3박사와 만나기로 한 그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3시간 전에 떠나 버렸습니다. 다시 그들과 합류하기 위하여 말을 달려가던 그날의 황혼에 길가 종려나무 밑에서 이상한 물체 하나가 꿈틀 거리며 누워 신음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히브리 사람 하나가 병들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약속 시간 때문에, 동방의 3박사와 합류하기 위하여 알타반은 그 사람을 그냥 놔두고 말을 달리려 했습니다. 이때 병든 히브리 사람이 안타깝게 부르짖었습니다. “나를 살려 주시오”
알타반은 여기서 기도했습니다. “당신을 뵙기 위해 저는 이 사람을 지나쳐야 되지 않습니까? 이 사람을 돌보아 주면 저는 당신을 만날 길이 늦어지지 않습니까?” 그러나 알타반은 그냥 가지 않고 그 환자를 끌어 언덕에 등을 대게하고 물과 귀한 약을 부어 상처를 치료해 주었습니다. 눈물로 감사하던 히브리 사람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나는 알타반이요. 예루살렘에서 새 왕이 나셨다기에 만나 뵈러 가는 길이요”
이 말을 던지고 알타반은 빵과 약을 모두 주고 떠나려 했습니다. 이때 히브리 사람이 말했다.
“하나님의 은혜가 당신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그분은 예루살렘이 아니고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소.”
부랴부랴 예루살렘의 약속한 장소에 도착해 보니 동방의 3박사는 이미 떠나버린 후였습니다. 알타반은 심한 피로와 좌절과 허기로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어나 베들레헴을 홀로 찾아 갔습니다. 그가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동방의 3박사는 3일전 경배를 올리고 떠난 후였습니다.
한없이 고요하기만 한 베들레헴. 적막을 깨치고 한 여인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알타반은 물었습니다.
“새 아기 왕이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애굽으로 피난을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여인은 자기 품에 안긴 아기를 재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 아기는 낯설은 이방인의 가슴에 달린 황금줄을 붙잡고 활짝 웃는 것이 아닌가? 허탈감과 피로에 지친 알타반은 그 순간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때 집밖에서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헤롯의 군대가 어린아이를 모두 죽이러 온다는 한 여인의 고함소리를 듣고 애기 엄마는 애기를 가슴에 안고 어찌할 바를 몰라 실신한 사람처럼 서 있었습니다. 알타반은 그 여인과 아기를 집에 들여보내고 자기가 그 집 앞에 섰습니다. 군인들이 그 집을 수색하려 하자 알타반은 청옥을 내어 보여주면서
“이집에 들어가지 않으면 이 청옥을 주겠소”
그 보석을 보고 황홀해진 대장은
“이집엔 아무도 없어” 하고 소리 지르고는 가 버렸습니다.
알타반은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당신에게 바치려 했던 이 보석을 이 어린아이를 위해 썼습니다. 내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알타반은 여기에서 포기하지 않고 새아기 왕이 피신했다는 애굽으로 찾아 나섰습니다. 방방곡곡을 찾아 헤매고 또 찾아 다녔습니다. 괴로움과 실망과 피곤은 날로 더해만 갔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알타반은 하는 수 없이 루비를 팔았습니다.
그러나 진주만은 꼭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새 왕에게 바칠 마지막 남은 하나의 예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새 왕을 찾아 헤맨지 33년이 되던 어느 날 알타반은 지친 몸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골목골목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때마침 유월절이라 유대 사람들이 그곳으로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급하게 뛰기도하고 고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알타반은 지나가던 사람을 붙들고 물어 보았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오?”
“아니 당신은 여태 무슨 일이 일어난지도 모르고 있소? 두 강도가 사형을 당한다오. 그런데 그중에 하나 우리가 메시야로 믿었던 예수가 사형을 당한다오. 그는 이적을 베풀고 병자들을 고쳐 주었고 사랑을 가르친 우리들의 구세주였다오."
알타반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어찌하여 이 비극을 그대로 놔두십니까?”
알타반은 그 순간 한 생각에 잠겼습니다. 내게 있는 이 진주로 그 예수를 속량해 보리라. 성문을 향해 늙은 알타반은 최후의 힘을 다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성문 저편에서 병정 몇이 한 소녀를 붙잡아 끌고 오고 있었습니다. 옷은 찢어지고 머리는 흐트려 있고 그 소녀는 알타반을 향해 외쳤습니다.
“착하신 할아버지 나를 도와주세요.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빚 때문에 종으로 끌려갑니다. 나는 종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알타반은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이 진주는 저 사형당하는 왕을 위해 써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소녀를 위해 이 진주를 쓰면 왕은 죽고 맙니다.”
그러나 그 순간 알타반은 그 빛나는 진주를 여자의 주인에게 내어주어 그 소녀를 속량해 주었습니다. 이제 알타반에게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처음으로 평화를 경험하였습니다. 그에게는 두려움도, 미련도 없었습니다.
그때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천지를 흔들었습니다. 기와 하나가 떨어져 알타반의 머리를 쳤습니다. 그는 피를 흘리며 그 자리에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디서인지 은은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늙은 알타반의 입술이 힘없이 들먹거리고 있었습니다.
“언제 제가 당신이 배고플 때 음식을 주었고, 목마를 때 마실 것을 드렸으며, 병 들었을 때 돌보아 드렸습니까? 저는 당신을 뵙지도 못했습니다.”
“진실로 네게 이르로니 내 형제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행한 것이니 ... ”
창백했던 알타반의 얼굴이 기쁨으로 변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으로 불림받아 올라가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이 알타반에 대해 성경은 침묵하고 있으나 몇 가지 전통은 그에 대해 가능한 소상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알타반의 이야기. 전설이라도 좋고 역사적 사실이라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알타반의 이야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성탄의 의미를 전해주는 신앙적 지시가 있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성탄의 참 의미는, 아기 예수께 드리는 경배는 바로 알타반처럼 “사랑을 베풀며 살아가는 삶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각 교회들이 오늘 성탄절에 드리는 예물들이 동방의 제 4박사 알타반처럼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을 사랑하기에 섬기며 나누는 일에 쓰여진다면, 그것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사랑을 실천한 그러기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 25:40).
2011년도 성탄절에 임마누엘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들의 삶과 가정과 일터, 그리고 계획하시는 모든 일들 위에 내내 함께 하셔서 끝없는 사랑과 희망으로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은 송년주일이기에 주보에 나온 시 '베임'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가난한 살림에
마구잡이로 심은
나무들을 잘라냈다
열매없는 무익한 나무라 여겨
아파하는 나무를 아랑곳하지 않고
수종개량을 시도한다
오늘은 송년주일
한 해를 마무리하며
열매없는 자신을 돌아본다
이성구 교수 장로
김현 교수 권사 간증을 들으며
양지가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내년엔 열매맺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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