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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12) 성령 충만한 가정

마태복음 김필곤 목사............... 조회 수 1892 추천 수 0 2014.02.26 23:5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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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3:1-12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2013.12.22 열린교회(용인) http://www.yeolin.or.kr 

행복한 가정(12) 성령 충만한 가정
마3:1-12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도둑이 있었답니다. 도둑질하여 부자가 되어 자식을 낳아 아내와 함께 해외 여행도 다니고 좋은 차도 타고 다니며 자기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중병에 걸렸답니다. 중병에 걸렸는데 그래도 의리가 있는 아내가 끝까지 자신 곁을 떠나지 않고 간호를 해 주었답니다. 그래서 죽기 직전 너무 고마워 도둑이 아내에게 유언을 남겼답니다. “여보, 평생 애만 먹였는데 이렇게 곁에 있어주어서 고맙소. 그래서 당신한테 주먹만 한 루비 하나 남기고 가리다.” 이 말을 들은 아내가 대번에 “어디에 놔뒀지?”라며 물었답니다. “아, 옆 동네 강 회장 집 안방에 장롱이 있는데 거기 세 번째 서랍에 들어 있소.”라고 말하며 죽었답니다. 세상은 정직한 사람들이 잘 살고 도둑놈들, 악당들, 나쁜 놈들이 잘 못 살아야 하는데 때로는 그런 사람들이 더 잘 사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날 때도 그랬습니다. 당시 최고 통치자는 헤롯 대왕이었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대단한 토건 사업을 하여 46년간에 걸쳐 예루살렘 성전을 지었습니다. 토목 사업을 벌려 성채와 수로, 극장, 공공 건축물을 세웠습니다. 경제도 부흥하고 영토도 확장하고 유대 나라에 평화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약점이 있었습니다.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혈통이 순순 유대인이 아니라 부계나 모계나 다 이방인이었습니다. 유대인이 아닌 개종한 이두메 출신이었습니다. 아주 폭력적이었습니다. 권력의지가 강했습니다. 자신의 고모부를 처형한 김정은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베들레헴에서 2살 이하의 아이들을 죽인 것처럼 성격이 아주 잔인하였습니다. 32년 동안 통치하였는데 10명의 아내를 두었으나 정적으로 의심되는 아내와 장모, 동서 등 관계된 인물 45명과 함께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왕자 3명과 측근들을 처형하고 재산까지 몰수해 버렸습니다. 이런 세상을 사는 사람들은 새 시대가 오기를 간절히 고대합니다. 세상 확 뒤엎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게 됩니다. 그 정의로운 통치를 하는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신분제도가 철폐되는 사회, 경제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 악이 징계받고 정의가 승리하는 사회를 꿈꾸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메시아이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메시아는 오시지 않고 그가 병들어 죽자 세 아들이 땅을 나누어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활동하던 갈릴리 지방을 통치한 왕은 셋째 부인의 소생인 헤롯 빌립 1세였습니다. 약 40여년 동안 그 지역을 통치한 인물입니다. 백성들은 외국 물을 먹은 아들이니 그래도 개방적이고 인간적일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어릴 때 일종의 인질로 로마에 잡혀 로마에서 자라며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기대를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닮아 부도덕하고 잔인한 왕이었습니다. 로마로 가다가 배다른 동생 집에 갔는데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가 너무 아름다운 것입니다. 벌써 살로메라는 딸이 있는데도 서로 눈이 맞아 전처와 이혼하고 제수씨와 결혼하나 것입니다. 원래 조카였습니다. 그런데 삼촌이 조카인 동생의 아내와 살게 된 것입니다. 콩가루 집안이 된 것입니다. 그 범죄는 율법에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레 18:16, 20:21), 인륜에도 위배되는 파렴치한 범죄였습니다. 부당하게 이혼하고, 근친상간을 하니까 백성들이 수군거리는 것입니다. 요즈음 말로 하면 최고 통치자가 명백하게 법을 어긴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부소불의의 절대 권력 앞에 아무도 대놓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이 때 한 의로운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아주 담대하게 최고 권력자의 잘못을 지적하였습니다. 바로 그가 세례 요한입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정통 제사장 출신의 집안사람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기 6개월 전에 탄생하여 예수님을 예비한 사람이 있습니다. 한 시대 행복하게 살면서 위대한 일을 한 세례 요한의 가정의 원동력은 무엇이었겠습니까? 담대하게 최고 권력자의 잘못을 지적하며 백성들을 올바른 길로 살길을 가르쳐주었던 세례 요한의 가정의 특징은 무엇이겠습니까?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인 특징이 성령 충만한 가정입니다. 성령에 이끌이는 가정이었습니다. 성령에 지배받는 가정이었습니다. 성경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사가랴는 어떠했습니까? 누가복음 1장 67절을 찾아 밑줄을 그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하여 이르되(눅1:67)” 어머니가 엘리사벳인데 어머니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41절 말씀입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눅1:41)” 성령 충만한 부모가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세례 요한입니다. 요한은 어떠했을까요? 1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눅1:15)” 성령 충만에 밑줄을 그러 보시기 바랍니다. 아버지도 성령 충만, 어머니도 성령 충만, 아들도 성령 충만한 가정입니다. 우리 가정도 요한의 가정처럼 성령 충만한 가정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우리도 권력의 횡포에도 불구하고 정의롭게 살고, 부도덕한 사회 환경으로부터 거룩한 삶을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가정의 성령 충만이 필요합니다. 세례 요한의 가정은 예수님의 초림을 예비하는 가정으로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았는데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예비하며 사는 가정으로 역시 성령 충만한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가정은 성령 충만한 가장이었는데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은 성령 충만한 가정에서 자란 그리고 자신도 성령 충만한 삶을 산 세례 요한의 삶을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1. 우리 가정은 성령 충만하여 사역의 열매가 풍성하게 열리는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세례 요한이 유대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부패하고 부도덕한 절대 권력 앞에 새로운 세상을 외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최고 통치자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할 일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침묵하고 머리 좋은 이기주의자들은 이인직이나 이완용처럼 야합합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담대하게 개혁을 부르짖습니다. 새로운 세상, 하나님의 정의가 통치되는 세상을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3절은 보십시오. 그런데 그 사실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 이미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미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말 3:1)”라고 예언해 놓았습니다. 그 선지자가 올 때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부어 주신다고 했는데(욜2:28) 바로 세례 요한은 성령 충만한 선지자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세례 요한은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일생을 두고 한 주 사역이 무엇입니까? 큰 교회 이루어 은퇴금 200억 받는 것입니까? 자식에게 교회를 상속하는 것입니까? 신문사 만들어 주고 학교 만들어 주어 대대로 잘 먹고 잘살게 하는 것입니까? 회개를 촉구함으로 주의 길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주인공이신 예수님께 가는 길을 내는 것입니다. 살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왕되신 주님이 갈 수 있도록 길을 곧게 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외치면서 예수님의 사역을 예비하는 일입니다. 성령 충만한 세례 요한은 이 일을 어떻게 감당하였습니까? 자신에게 맡겨진 사역을 성공적으로 감당하였습니다.
(1)양적으로 성공적이었습니다. 5절 보십시오.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왔다고 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요한이 설교를 하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는 말입니다. 사업을 하는데 많은 고용창출을 하였습니다.
(2)시간적으로 성공한 것입니다. 여기서 나왔다는 말은 계속 나왔다는 말입니다. 한 번 나오고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하여 백성들이 요한에게 나왔습니다.
(3)질적으로 성공한 것입니다. 그들이 모여 무엇을 하였습니까? 6절 보십시오. 자기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질적인 변화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4)모든 사람들이 세례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겼습니다.
"그러면 사람으로부터라 할까 하였으나 모든 사람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하는지라(막11:32)"
(5)예수님을 메시아로 소개하고 사람들은 예수님께 이끌었습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 1:29)"
안드레가 바로 세례 요한의 제자였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좇았고 베드로를 전도하였습니다.
요한을 따르던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 예수님께 갔다고 말씀합니다.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요3:26)"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성공적으로 감당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비결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세례 요한이 성령 충만하였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도 세례 요한처럼 성령 충만하여 한 평생 맡겨준 일을 성공적으로 감당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이 시대 우리가 우리에게 맡겨준 사명을 성공적으로 감당하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힘으로 능으로 못하지만 성령의 능력이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4:6)”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성도님에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입니까? 공부입니까? 예술입니까? 운동입니까? 사업입니까? 직장입니까? 전도입니까? 양육입니까? 내 힘으로 안 된다고 좌절하지 말고 성령 충만하여 풍성한 사역의 열매를 맺혀야 합니다. 성령 충만하여 사역의 풍성한 열매가 있는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성령의 충만을 받자 사람이 할 수 없는 기적을 일으켜 사명을 완수합니다. 브사렐이 성령에 충만하여 당시까지 한 번도 만들어 보지 않은 성막을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충만히 임하니까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를 발휘하여 성막을 짓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후계자가 되어 안수를 받을 때 지혜의 영이 그에게 충만히 임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령 충만하여 백성들을 다스리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그의 말을 순종하였습니다(신 34:9)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죽음의 두려움을 물리치고 순교하며 사명을 이루어 드렸습니다(사도행전 6:5절 행7:55) 사도바울은 성령 충만하여 엘루마의 본성을 알았고 그를 꾸짖은 결과 엘루마는 소경이 되어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행13:9) 인식의 한계를 초월하게 합니다. 사도행전 16장에서 성령 충만한 바울은 아시아에서 전도하고자 했으나 성령께서 허락하지 않으시자 성령의 인도에 따라 마게도냐로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성령 충만하여 바른 방법으로 사역을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1:24의 바나바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여 육신의 욕망을 물리치고 성령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힘없다고 인식의 한계, 능력의 한계 앞에서 좌절하지 말고 기도하여 성령 충만을 받아 주어진 사명을 다 이루어 드리는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성령 충만하여 재림하실 예수님을 예비하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2. 우리 가정은 성령 충만하여 도덕적으로 거룩한 삶을 사는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한 세례 요한은 어떻게 살았습니까?
(1)그는 생활이 검소했습니다. 성경 4절을 보십시오. 약대 털옷을 입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돌꿀)을 먹고 살아갑니다. 부패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검소하게 살아갑니다. 끝없는 욕심의 노예가 되지 않았습니다. 성령의 통제를 받으면 절제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의 통제에서 벗어나니까 욕심의 노예가 됩니다. 호화 호식하지 않았습니다. 인기 있는 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습니다. 얼마든지 부하게 살 수 있는 여건이 됩니다. 지금 말하면 3만명, 10만명 교인이 출석하는 목회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2)그는 사생활이 깨끗합니다. 파리의 여인이 있지 않았습니다. 명예와 부를 위해, 인기를 위해 일하지 않았습니다. 청렴결백하였습니다. 그는 술 취하고 방탕하지 않았습니다. 눅1:15절을 보십시오.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눅 1:15)"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않았습니다.
(3)자신이 흠잡혀 매도될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권력 앞에서 비굴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헤롯이 왕이었습니다. 그는 포악한 왕이었습니다. 동생의 아내를 빼앗았습니다.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막 6:18)" 헤롯이 얼마나 요한을 죽이려고 했겠습니까? 권력자들이 자신의 부당한 권력을 합리화하기 위해 쓸 수 있는 방법은 상대를 매도하는 것입니다. 김정은이가 자신의 고모부를 처형하기 위해 개방주의 자, 부정부패 주의 자라를 딱지를 붙입니다. 우리나라는 용공, 종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매도하였습니까?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자신의 허물을 감추기 위해 검찰총장의 사생활을 뒤집니다. 자신의 조상의 허물을 덥고 자신의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교과서를 바꿉니다. 종교인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정보기관을 통해 종교인의 허물을 들추어냅니다. 헤롯도 얼마나 요한의 제거하기 위해 그의 사생활을 조사했겠습니까? 그런 그는 깨끗하였습니다. 포악한 군주이지만 세례요한을 두려워했습니다. 막6:20절을 보십시오.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러라(막6:20)"

우리는 도덕적으로 깨끗한 삶을 삶으로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아무리 오염되고 더러운 세상일지라도 성령 충만하면 도덕적으로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자살론(自殺論)]으로 유명한 듀르켕은 욕망을 억제시키는 공통의 가치와 도덕 기준을 상실한 혼란 상태를 아노미 현상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도시화, 기계화, 핵가족화 등 근대화 과정이 빚어낸 자기중심적인 욕망으로 머리통만 크고 이 욕망을 자제하는 도덕적 가슴은 새가슴만큼 작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웃을 모릅니다. 인간된 참 가치를 모릅니다. 도덕적 기준을 상실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상대화되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거룩성을 유지하려면 다른 비결이 없습니다. 성령 충만입니다. 오늘날 도덕적 위기의 특징인 선정성(음란성), 폭력성, 사기성으로부터 보호받으려면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해야 사람을 노리개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해야 사람의 생명의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성령 충만해야 음란한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하지 못하면 힘센 삼손도 금방 무너집니다. 성냥불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계속 기름을 공급받는 등불이 되어야 세상을 오래도록 밝힐 수 있습니다. 성령의 기름을 공급받아야 마지막까지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돈 충만, 쾌락 충만, 권력 충만, 물질 충만하면 결국 거룩성을 상실합니다. 성령 충만해야 맘몬 숭배자, 돈 숭배자가 되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해야 쾌락 숭배자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유혹으로 벗어나 오랜 세월 깊은 산속에 들어가 수도한 수도자가 제자들을 모아 놓고 "우리가 앉아 있는 이 들판에 잡초가 가득하다. 어떻게 하면 잡초를 모두 없앨 수 있느냐?"라고 물었답니다. 제자들은 "삽으로 땅을 갈아엎으면 됩니다." "불로 태워 버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뿌리째 뽑아 버리면 됩니다." 그 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답니다. "이것은 마지막 수업이다. 모두 집으로 돌아가서 자신이 말한 대로 마음속의 잡초를 없애 보거라. 만약 잡초를 없애지 못했다면, 일 년 뒤에 다시 이 자리에서 만나기로 하자." 일 년 뒤, 제자들은 무성하게 자란 마음속 잡초 때문에 고민하다가 다시 그곳으로 모였답니다. 그런데 예전에 잡초로 가득했던 들판은 곡식이 가득한 밭으로 바뀌어 있었답니다. 그곳에 가보니 스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이런 글귀가 적힌 팻말 하나만 꽂혀 있었습니다. 『들판의 잡초를 없애는 방법은 딱 한 가지뿐이다. 바로 그 자리에 곡식을 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마음속에 자라는 잡초는 성령을 좇아 행할 때 몰아낼 수 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5:16)
오늘 이 시대는 세례 요한처럼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많은 것이 있어도 도덕적으로 거룩하지 못하면 행복한 가정이 아닙니다. 우리 가정이 도덕적으로 거룩한 삶을 사는 비결은 성령 충만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은 세례 요한의 가정처럼 성령 충만하여 거룩한 사람을 만드는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우리 가정은 성령 충만하여 예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 땅에서 명예도 얻고 돈도 많이 벌고, 권력도 쌓았고 맡겨진 분야에서 일인자가 되어 도덕적으로 흠없이 살아갔다할지라도 예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행복한 가정이 아닙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인정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마11:11)
마태복음 11장 11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마 11:11)" 수많은 선지자들이 메시아 예수님에 대하여 예언을 하였지만 요한은 직접 예수님을 보고 증거하였습니다. 받은바 은혜와 계시에 있어 당시 요한 만큼 명확하게 하나님의 뜻을 헤아린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요한은 참으로 큰 자였습니다. 물론 우리는 더 명확하게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은 오직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위하여 살았습니다. 세례 요한의 인기가 한참 올라갔습니다. 그 때 사람들은 세례 요한을 보며 혹 그리스도가 아닌가 의논합니다(눅3:15). 그 때 요한이 뭐라고 합니까?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눅 3:16)"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자신이 메시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주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소개합니까? 예수님은 무명의 사람이고 자신은 인기가 하늘을 치솟을 때입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 1:29)"
나중에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갑니다.(요 3:26) 그 때 요한이 어떻게 합니까? 그들을 저주하고 욕을 퍼부어 대지 않습니다. 배신자라고 낙인찍지 않습니다. 그 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요 3:30)"
그가 예수님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지금 말하면 자신이 안수하여 목사를 세웠습니다. 나이도 많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모든 성도님이 다 그 제자에게 가버렸습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 고백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그는 분명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았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았습니다. 주의 일을 위하여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사람임을 알았습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 (막 1:2)"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요 1:6)" 그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을 분명히 안 사람입니다.
당시 신약 성경이 기록되지도 않았는데 무엇으로 이것이 가능했겠습니까? 성령충만입니다. 성령에 이끌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교만하지 않습니다. 분별력을 잃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않습니다. 성령이 떠나 버리니까 사울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다 망합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한 가정이 되어 주님께만 영광을 돌리며 주님으로부터 인정받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챈 헤롯 왕조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영원한 왕은 헤롯이 아니라 예수님이십니다. 김일성이 살아 온 날 수를 계산하여 25550개의 돌로 주체탑을 세우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 김일성 왕조 영원하지 못합니다. 권력도 잠깐입니다. 부모, 명예도, 인기도 지식도, 아름다움도 무한하지 않습니다. 오늘의 시대는 '자기 피알(PR) 시대'인데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에 초점을 맞추느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것은 생존의 문제이고 다른 사람에게 지배당하는 것보다 지배하는 삶을 숭배하고 있는 시대에서 힘만이 최고의 덕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스타를 만드는 문화에서 자기선전은 미덕이고, 자기선전 없이 스타가 되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과시하고 싶은 욕망이나, 남보다 돋보이고 싶은 감정은 지칠 줄 모르는 자아도취로 일종의 자기 숭배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만은 모든 죄악의 어머니다'라는 표현했습니다. 교만은 죄의 한 특성이라기보다는 죄의 본질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인간은 하나님과 같이 되려 함으로써 교만을 드러내었습니다. 하나님 보다 높아지려는 영적인 암이 교만입니다. 헤롯처럼 하나님의 존재를 무시하다가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교만은 이 세상에 들어온 첫 번째 죄이지만 그것은 또한 정복되어야 할 마지막 죄이기도 합니다. 교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어떤 인간도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없고 어떤 공동체도 건강하게 존속될 수 없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때 왕으로 삼으려는 군중의 인기에 예수님은 영합하지 않았습니다(요6:15). 베드로나 바울도 자기들을 향해서 절을 하거나 경배하려는 스타의 유혹에 빠지지 않았습니다(행10:26,14:15). 그러나 헤롯왕은 자기를 신격화시키는 무리들에게 넘어가 파멸했습니다(행12:22-23).
성경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 고 말씀하십니다.

세례 요한은 초림하신 예수님을 예비하면 산 사람이라면 우리는 언젠가 재림하실 예수님을 예비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겠습니까?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하겠습니까? 제국 시민이 아니라 천국 시민으로 성령 충만하여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붙들고 그 사명을 다 이루어 드리는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령 충만하여 거룩한 가정을 만들어 하겠습니다. 성령 충만하여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하겠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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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07 에스라 성전건축 재료는 하나님께서 다 준비해 놓으셨다. 스5:1-5  김경형 목사  2014-03-07 1099
10406 에스라 성전은 반드시 하나님의 설계대로 지어야 한다. 스3:8-13  김경형 목사  2014-03-07 1322
10405 요한복음 우리 서로 사랑하며 살자 요15:9  한태완 목사  2014-03-06 1955
10404 민수기 하나님의 인도 민11:1-17  최장환 목사  2014-03-05 1570
10403 신명기 은혜를 기억하는 자 신16:1-17  최장환 목사  2014-03-05 1445
10402 히브리서 사사들의 믿음 히11:32  이정원 목사  2014-03-05 1499
10401 히브리서 구원받는 믿음 히11:31  이정원 목사  2014-03-05 1583
10400 히브리서 정복하는 믿음 히11:30  이정원 목사  2014-03-05 1093
10399 히브리서 홍해를 건넌 믿음 히11:27-29  이정원 목사  2014-03-05 2160
10398 히브리서 구원을 확신하는 믿음 히11:27-29  이정원 목사  2014-03-05 1420
10397 출애굽기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다. 출24:12-18  정용섭 목사  2014-03-05 1145
10396 마태복음 원수사랑, 가능한가? 마5:38-48  정용섭 목사  2014-03-05 1392
10395 고린도후 고난을 극복하는 세 가지 길 고후4:16-18  조용기 목사  2014-03-05 2372
10394 야고보서 언어를 선택하라 약3:1-12  조용기 목사  2014-03-05 1528
10393 고린도후 질그릇에 담긴 보배 고후4:11-12  조용기 목사  2014-03-05 2084
10392 마태복음 적은 일에 대한 많은 보상 마25:21-23  강종수 목사  2014-03-02 1349
10391 야고보서 참된 신앙인과 구제 약2:15-16  한태완 목사  2014-03-01 1495
10390 에스라 세상으로 살이 쪄 있는 자는 성전건축을 하지 못한다. 스3:8-13  김경형 목사  2014-02-28 1471
10389 에스라 보이는 성전이 목적이냐, 보이지 않는 성전이 목적이냐? 스4:7-16  김경형 목사  2014-02-28 1375
10388 누가복음 쓰임받는 자 눅8:1-18  최장환 목사  2014-02-27 1955
10387 요한복음 기다리시는 하나님 요2:1-25  최장환 목사  2014-02-27 1743
10386 시편 한 해의 시작, 하나님께 맡기기 시37:5-6  김필곤 목사  2014-02-26 2106
10385 사도행전 한 해의 시작, 세 가지 충만으로 행11:24  김필곤 목사  2014-02-26 1854
10384 다니엘 한 해의 시작, 뜻을 정하고 단1:8-9  김필곤 목사  2014-02-26 2107
10383 시편 한 해의 끝, 만족한 결산을 하려면 시81:8-16  김필곤 목사  2014-02-26 1936
» 마태복음 행복한 가정(12) 성령 충만한 가정 마3:1-12  김필곤 목사  2014-02-26 1892
10381 창세기 행복한 가정(11) 발전의 의지가 있는 가정 창12:1-3  김필곤 목사  2014-02-26 1589
10380 마가복음 행복한 가정(10) 역경을 극복하는 가정 막5:35-43  김필곤 목사  2014-02-26 1929
10379 히브리서 행복한 가정(9) 새로운 세상 천국을 소망하는 가정 히11:7  김필곤 목사  2014-02-26 1579
10378 시편 행복한 가정(8) 기쁨을 잃지 않는 가정 시90:10-17  김필곤 목사  2014-02-26 1785
10377 시편 행복한 가정(7) 감사하는 가정 시136:1-6  김필곤 목사  2014-02-26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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