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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성전이 목적이냐, 보이지 않는 성전이 목적이냐?

에스라 궁극이............... 조회 수 1374 추천 수 0 2014.02.28 16:00:34
.........
성경본문 : 스4:7-16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2000년대 설교 

4장 7절-16절.

 

7절-16절: 아닥사스다 때에 비슬람과 미드르닷과 다브엘과 그 동료들이 바사 왕 아닥사스다에게 글을 올렸으니 그 글은 아람 문자와 아람 방언으로 써서 진술하였더라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가 아닥사스다왕에게 올려 예루살렘 백성을 고소한 그 글에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그 동료 디나 사람과 아바삿 사람과 다블래 사람과 아바새 사람과 아렉 사람과 바벨론 사람과 수산 사람과 데해 사람과 엘람 사람과 기타 백성 곧 존귀한 오스납발이 사마리아 성과 강 서편 다른 땅에 옮겨 둔 자들과 함께 고한다 하였더라 아닥사스다 왕에게 올린 그 글의 초본은 이러하니 강 서편에 있는 신복들은 왕에게 고하나이다 왕에게서 올라온 유다 사람들이 우리의 곳 예루살렘에 이르러 이 패역하고 악한 성읍을 건축하는데 이미 그 지대를 수축하고 성곽을 건축하오니 이제 왕은 아시옵소서 만일 이 성읍을 건축하며 그 성곽을 마치면 저 무리가 다시는 조공과 잡세와 부세를 바치지 아니하리니 필경 왕들에게 손해가 되리이다 우리가 이제 궁의 소금을 먹는고로 왕의 수치 당함을 차마 보지 못하여 보내어 왕에게 고하오니 왕은 열조의 사기를 살피시면 그 사기에서 이 성읍은 패역한 성읍이라 예로부터 그 중에서 항상 반역하는 일을 행하여 열왕과 각 도에 손해가 된 것을 보시고 아실찌라 이 성읍이 훼파됨도 이 까닭이니이다 이제 감히 왕에게 고하오니 이 성읍이 중건되어 성곽을 필역하면 이로 말미암아 왕의 강 서편 영지가 없어지리이다 하였더라.

 

우리가 무엇 때문에 예수를 믿느냐? 우리는 선민이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해야 하고, 천국 갈 자이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천국 갈 자가 아니면 신앙생활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천국에 가기 위해서 믿는 게 아닙니다. 또 지옥 갈 자인데 신앙생활을 잘 함으로써 천국에 데리고 가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살고 있지만 천국 갈 백성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기 때문에 가슴이 뿌듯하고 자부심이 생기는 겁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서 있어도 ‘우리는 선민이다’ 하는 이 우월성 우월감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예수 믿는 것이 자랑스럽고 영광스럽다 그 말이요.

 

이 세상에서 내가 살아있을 동안에 한 평생 하고 갈 것은 보이지 않는 성전 이것 하나 잘 짓고 가는 겁니다. 보이지 않는 성전. 개개인으로 보면 자기 몸이 성전이지요?

 

성전이라 그럴 때에 성전 안에 법궤가 있기 때문에 성전이라 그런다 그 말이요. 우리 성도의 몸은 육체 속에 하나님의 사죄 칭의 새생명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입혀진 것이 있기 때문에 성전이라고 하는 겁니다. 또 성전이라 하면 성령님이 거하신다 그 말이요. 그래서 귀중하고 중하다 그 말이요. 그게 없다면 하나의 고깃덩어리에 불과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치가 없다 그 말이요.

 

우리는 보이지 않는 성전, 질적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입어가는, 소원 목적적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입어가는 이 성전 하나 잘 짓고 가야 됩니다.

 

이것을 무시하게 되면, 그 성장성을 무시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몸을 쳐버립니다. 왜? 가치가 없는 인간이기 때문에 매질을 당한다 그 말이요. 어떤 매질을 당할지는 모르지요. 한 번 매질, 두 번 매질을 당할 적마다 자기의 몸은 그만큼 고통이 되는 겁니다. 자기 몸이 날아간단 말이요.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에 신경을 쓰는 겁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라 그럴 때 보이지 않는 식구, 보이지 않는 집. 보이지 않는 성전, 보이지 않는 나라, 즉 하나님의 나라. 보이지 않는 세계, 보이지 않는 자기를 잘 건축을 해야 될 거라 그 말이요. 가정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이 보이지 않는 거.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은 보이는 집, 보이는 나라, 보이는 세계, 보이는 자기, 종교적인 측면에서 보면 보이는 건물 이런 데다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 많지요. 우리가 어느 것에다 주 목적적으로 신경을 쓰느냐 그 말이요.

 

모세는 죽었습니다. 죽었지만 없어진 것이 아니고 살아 있습니다. 그렇지요? 그 정신이 살아 있어서 오늘날 예수 믿는 기독자들 속에서 역사를 하고 있다 그 말이지요.

 

또 우리가 신약성경에서 보면 헐몬산에서 나타난 모세와 엘리야를 볼 수가 있지요? 살아있다 그 말이요. 보이지 않는 그 세계에 살고 있다 그 말이지요. 현재는 우리에게 육신의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언젠가 우리가 그 세계로 갈 수가 있습니다.

 

보이는 세계에는 빈부의 차별, 고저의 차별이 많습니다. 물론 가난보다 부요가 좋습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그 세계에서도 모든 면에서 빈부의 격차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불신자들은 보이는 이 세상에서 잘 살려고 노력들을 합니다. 그러면 오늘날 교회들은 어느 면에 부요성을 가지고 살고 있느냐? 어느 면에 부요성을 욕심을 내고 있느냐?

 

교회들을 보면 종교운동을 하는 교회, 국가운동을 하는 교회, 자기 교회의 가견적인 부흥을 부르짖는 교회가 많이 있지요. 또 지옥 갈 자들을 천국 가게 해 준다고 떠드는 그런 교회도 있고요. 우리는 보이는 이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건설을 하고 가는 겁니다. 자기는 보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아니하는 그 자기가 있지요. 교회라고 하면 대세를 따르지 않고 자기 혼자라도 그 길을 가는 겁니다.

 

세상에서 자기 집이 없으면 부끄러워하지요. 그러나 이것은 임시성이지요. 그런데 보이지 아니하는 영원한 자기 집이 없으면 분명히 영원히 부끄러운 자가 되는데 그 면에서는 알지를 못하고 있더라 그 말이요. 오늘날 우리 기독자들에게 이런 것을 알게 해 주려고 우리에게 부끄러운 마음을 넣어준 겁니다.

 

보이는 집은 자기 마음대로 안 됩니다. 보이는 교회는 자기 마음대로 안 됩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교회는 자기가 힘쓰고 애쓰고 연구하고 수종드느니 만큼 만들어 갈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보이는 예배당도 얕보게 되는 겁니다. 보이는 이게 다가 아니기 때문에 그 말이요. 안 보이는 성전, 안 보이는 자기 건설, 안 보이는 교회의 성장성을 알면 눈에 보이는 것은 얕보게 된다 그 말이요. 돋보지 않는다 그 말이요.

 

기독교는 이론과 논리가 다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실상이고 실지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이론과 논리를 전개하는 겁니다. 진리운동에서 모든 만물을 초월하게 되는 겁니다. 초절이 아니라 초월하게 된다 그 말이요.

 

보이지 않는 자기와 보이는 자기가 있는데 보이지 않는 자기 단장과 보이는 자기 단장 중에 어느 단장을 신경을 쓰고 갈 것이냐 그 말이요. 어느 자기에게 신경을 더 쓰느냐? 교회에서는 사치를 금하고 단장을 하는 겁니다. 영적인 미모성에 단장을 한다 그 말이요. 히브리인은 보이는 세계보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다 신경을 쓰고 가는 겁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히브리인이더라 그 말이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히브리인이면서 비 히브리인 즉, 애굽인으로 사는 자들도 있고, 중생은 했지만 보이는 세계 위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더라 그 말이요. 또 이방인이면서 히브리인의 일을 하는 자도 있더라 그 말이요. 이런 자는 중생을 못하고 대개는 이방종교로 쓰러지고 맙니다.

 

그 다음에 또 보면 히브리인으로서 히브리인으로 사는 자들도 있습니다. 즉 철저한 내세주의 신앙을 가지고 사는 것이란 말이요. 그 다음에 또 보면 이방인으로서 이방인으로 사는 자가 있습니다. 이건 현실주의이지요. 이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보면 고레스 왕이 성전을 건축하라고 그러지요.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은 보이지 않는 성전건축 중심입니다. 성전을 지을 때에는 안 보이는 성전을 지으면서 보이는 물질을 쓰게 되는 겁니다.

 

만일 성전을 지을 때 보이는 면에다 마음을 더 쓰면, 신경을 더 쓰면 외부의 도움을 원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불만이 생기게 돼요. 그렇게 되면 또 대립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불만이 생기게 되면 대립이 오게 된다.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가견적인 성전에 신경을 더 쓰게 되면 도움을 구하게 되고, 도움을 구할 때 안 주면 불만이 되고. 그렇지요? 불만이 되면 대립이 되고 뭐 이렇게 된다 그 말이요. 우리는 눈에 보이는 건물 그 이전에 눈에 안 보이는 성전을 먼저 짓는 거. 매우 중요하다 그 말이요.

 

우리가 여기서 입장구원이 있는데, 여호수아는 한 입장에 섭니다. 같은 입장이라 그 말이요. 그러나 일반 유대인은 불신자적 입장입니다. 믿는 사람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런 입장이 있다 그 말이요. 불신자적 입장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불신자적 입장에 서가지고 성전을 짓는데 거들겠다는 거지요. 이거 큰일 난단 말이요. 우리가 내적으로 이런 걸 볼 줄 알아야 돼요.

 

단일 입장이 안 되면 대적이 돼 버립니다. 같은 유대인이면서도 대립이 돼요. 같은 교인인데도 대립이 되고, 같은 교회인데도 대립이 되고. 사람은 안 만들어지고 일이 크게 되면 교만한 뿔이 생기게 됩니다. 이 뿔로 받아 넘기기 시작하는 거지요.

 

일반 유대인은 ‘우리가 도와줄 테니 성전을 빨리 짓자’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 빨리 짓는단 말이요. 성전을 빨리 짓자고 하는데 그게 왜 나쁘냐 그 말이지요. 성전을 빨리 짓자고 하는 것과, 성전을 천천히 짓자고 하는 것과 어느 쪽이 나쁘게 들리느냐 그 말이요. 빨리 짓자고 하는 것이 뭐가 나쁘냐 그 말이요. 힘 안 들이고 빨리 짓자고 하는 게 왜 나쁘냐?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의 차원에 이르지 못하면 빨리 짓자고 하는 그것이 그만 대립이 돼요. 그러니까 사업은 지연이 되더라도 인간부터 만들자.

 

노아는 120년 동안 방주를 지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눈 깜짝할 사이에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인간에게 시키느냐 그 말이요. 사람을 만들자 그 말이요. 사람을 만드는 위주라. 세상눈은 이면보다도 일 크게 하는 그것을 봅니다.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입장에 서 있습니다. 이런 성도는 대립이 되는 입장에 서기가 쉬워진다 그 말이요. 이렇게 되면 성전건축의 중단령이 내려집니다. 왜 중단령이 내려지느냐? 성전을 짓는데 협조해 주겠다는 그 협조를 거절하니까 아닥사스다 왕이 금지를 시켰지요?

 

이렇게 되니 일반 유대인들은 하는 말이 ‘그것 봐라. 참 꼴좋다’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니까 두 사람이 고립이 되지요. 왜 고립이 되느냐? 차원이 높기 때문에 고립이 된단 말이요. 신앙을 생각하는 그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고립이 된단 말이요.

 

그러니까 성전건축에 같이 하자고 하는 걸 거부를 하니까 하나는 중단령이 있고, 또 하나는 성전건축에 같이 하지고 한 자들이 이방인들과 한 패거리이기 때문에 ‘그것 봐라’ 하며 빈정거리고 고소해 한단 말이요.

 

하지만 여호수아와 스룹바벨로서는 비록 아닥사스다 왕이 성전건축 중단령을 내렸지만 이면적 신앙적으로 볼 때는 잘 됐다 그 말이요. 잘 된 거다 그 말이지요. 아닥사스다 왕은 고소하는 자들의 말을 듣고 중지를 시킨 거지만 두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신앙적으로 볼 때에는 그 중지된 것이 옳다 그 말이요.

 

그런데 일반 유대인들은, 고소한 이들은 ‘그것 봐라. 우리가 협조를 안 하니까 중지가 됐다. 성전을 못 지으니 꼴좋다’ 그런 면이 돼 나온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이 면도 있고, 이 면도 있는데 어느 면이 신앙에 바른 입장이냐 그 말이요. 보이는 성전은 중단이 됐으나 안 보이는 성전은 두 사람 속에 계속 건축이 되어가고 있다 그 말이요. 이해 가지요? 이게 다른 겁니다.

두 사람은 마음에 자극을 받아가지고 안 보이는 성전건축이 계속 되어가고 있다 그 말이요. 이게 놀라운 사실이라. 그러나 일반 유대인들은 보이는 성전건축이 중단된 그것만 보이지요. 물론 안 보이는 성전건축도 중단이 돼 있는 거지. 어느 면의 성전건설이 안 되는 것이 피눈물 나는 일이냐 그 말이요.

 

성전건축 중단령이 내려질 때에 또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 성전건축이 중단이 되었지만 16년 후에 보이는 성전건축이 다시 되는데, 그런데 일반 유대인들은 성전건축이 중단이 된 그 사이에 ‘우리 집이나 짓자’ 하고서 경제 시간 정력과 물질을 자기 집에다 쳐 발랐다 그 말이요. 그러면 이건 어떻게 된 거냐? 전대에 구멍이 난 셈이 된 거고, 농사짓는 것은 메뚜기가 먹고 깜부기가 나고. 이래저래 오그랑 망태기가 된 거라 그 말이요.

 

무형적인 성전건축을 하는 이 면을 모르고, 또 보이는 성전건축도 중단시켜 놓고 ‘자기 집이나 잘 짓자’ 하며 자기 위주 세상 위주로 해 놓으면 그 가정의 식구들에게는 안 보이는 성전건축 중단이 돼 있으니 보이는 그 가족 속에 뭘로 건설이 돼 있겠어요? 세상 판이란 말이요. 그 면에서 농사적으로 말한다면 이거는 완전히 헛농사라 그 말이지요. 얼마 안 가서 오그랑 망태기가 돼버린단 말이요.

 

안 보이는 그 면을 우리가 잘 알아야 돼요. 너희들(학생들)도 안 보이는 그 면을 잘 알아야 돼요. 공부 잘 한다 그게 문제가 아니고 안 보이는 그 면 그 정신 그 향방이 있어. 그 면에서 비뚤어지는 이걸 하나님 말씀에서 깨닫지 못하면 얼마 안 가서 영적인 면에서도 완전히 오그랑 망태기가 되고, 육신은 부자가 되고 성공이 돼서 잘 나갈지 모르겠지만 그것 잡고 얼마나 누리겠어? 그 다음에 오는 것은 하나님의 불심판이다.

 

먼저 차원 낮은 내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고, 보이지 않는 자기 건설, 보이지 않는 자기 집, 보이지 않는 성전을 잘 건설을 하고, 이렇게 하면 자기의 인격이 올라간다. 인격이 올라가게 돼 있다 그 말이요. 반드시 올라가게 돼 있어요.

 

인격이 안 올라가면 아무리 공부를 잘 했던 좋은 기술을 가졌던 인격 면에서는 완전히 저차원이야. 짐승과 똑같다. 본능적으로 산다 그 말이요. 자기 성격 자기 성질 못 고치고 자기의 인격의 고상한 넓은 마음을 못 가지고 전부 다 오그랑 망태기가 돼버린다. 그러니까 밥은 잘 먹고 잘 살 런지 모르지만 이제 사람이 아니다.

 

오늘날 가만 봐 봐요. 일반적으로 볼 때도 굶는 사람이 별로 없어. 다 잘 사는데 사람 속을 들여다보면 전부 다 오그랑 망태기야. 사람이 아니야.

 

안 보이는 성전을 잘 짓는데 대적이 하나가 생기는 것보다 많이 생기는 것이 더 좋고, 대립이 작은 것보다 큰 것이 더 좋다 그 말이요. 이치가 그렇습니다. 대적이 많거나 적거나 어쨌든 죽을힘을 대 내서 하면 된다 그 말이요. 하나 정복한 것보다 많이 정복을 하면 정복한 양이 많아서 좋습니다.

 

누굴 위해서 대적을 동원하는 것이냐? 다 사람을 위해서 동원이 되더라 그 말이요. 눈에 보이지 않는 이면적인 성전건축을 하는 그 사람을 위해서 아닥사스다 왕도 동원이 되고, 비 유대인들 이방인들 유대인들이 전부 다 동원이 되더라 그 말이요. 그러니까 이 대적자들은 겉으로 보면 방해자들이지만 이면적으로 보면, 알고 보면 협조자들입니다.

 

모든 사람을 인용해서 성전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런고로 나는 선민인고로 성전을 지어야 합니다. 보이는 곳이 소외된다 할지라도 보이지 않는 그 면을, 보이지 않는 그 세계를 건설하고 가야 된다 그 말이요.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백성이요, 교회가 할 일이요, 히브리인의 긍지를 가지고 있는 성도라 그 말이요.

 

기도 올립시다.

 

감사합니다. 세상사람들은 보이는 것을 소원 목적하고, 보이는 것이 안 될까 싶어서 왈가왈부하고 서로 죽이면서 서로 미워하면서 서로 헐뜯으면서 사람을 집고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달음박질하고 싸우며 가는 이 세상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희들에게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백성이요 히브리인으로서 신앙의 긍지를 갖고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면을 우리가 똑바로 보고 보이지 않는 그 세계를, 보이지 않는 그 성전을 우리 각자가 건설을 하고 갈 수 있게 해 주시니 이 큰 은혜 감사합니다.

 

가정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우리 교회적으로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다 인용하고 이용하고 보이지 않는 이 세계를 건설하고 정복하고 가는 복되고 지혜롭고 총명 있고 명철한 당신의 자녀들이 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타이핑 했습니다)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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