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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 출처 : | lsc1349@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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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
율법주의자와(바리새인) 정치적 종교인(사두개인)들의 주장을 피하라
마16장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
5.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새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
6. 예슈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7. 제자들이 서로 논의하여 이르되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8. 예슈아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으므로 서로 논의하느냐
9.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10.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였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느냐
11.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2. 그제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예슈아님 당시 유대 사회를 이끌어가던 두 그룹이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해석의 전문가임을 자처하였고 모든 유전을 지켰으며 백성들 사이에서 광범한 존경을 받고 있었다. 사두개인들은 귀족 계급이었고 부유했으며 정치권력과 밀착하여 자기들의 이익을 추구했다. 그리고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바리새인들과 합세하여 마침내 예슈아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 (로뎀나무 목회자료 인용)
이방인들인 우리가 예슈아님이 이 땅에 계셨을 때의 유대 민족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당시의 유대민족은 세계의 다른 민족과는 전혀 다른 율법을 가진 독특한 종교적 사상으로 나타난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그리고 엣세네파 또 열심당원으로 나누어진 분파와 제사장 그룹들이 있었고 그밖에 유대 종교에 관련된 사람들과 왕과 정치적 세력들로 복잡한 사회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종교적 사상이나 민족적 감정 그리고 풍습, 생활방식이나 교육까지도 유대교 사상으로 생성된 히브리적 사유(思惟)는 몇 천년동안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다루어져 온 민족으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을 연구하면 할수록 이질적 이방인의 삶에 젖어있는 현재의 우리로서는 쉽게 공감을 형성시킬 수 있는 모멘트를 발견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나타내신 기록된 말씀으로 성경적 의미를 영적인 도해로 알아갈 뿐이다.
본문의 말씀에서 예슈아님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 즉, 그들이 주장하는 잘못된 성경적인 교리나 사상을 경계하라고 주시는 의도는 오늘날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자기의 백성인 유대인들 통하여 나타내고 있는데 유대 율법주의자들은 그들이 율법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 시키는 율법주의자로 전락하여 율법 보다도 더 엄한 규범을 만들어 죄를 가중시켜 사람들을 율법의 명목으로 매이게하고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인을 양산 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진정한 뜻을 알지 못하고 사람들을 정죄하는 그들의 변질된 신앙을 본받지 말고 (이것이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예슈아님의 말씀을 통해 성령의 음성으로 진리로 자유하는 말씀을 믿음으로 율법으로 매임을 당한 사람들을 자유케 하시려는 진정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하신다.
오늘날의 교회에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어떤 사람을 말하는가 구별하는 영적인 분별력을 주시는 주님의 지혜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 방심하는 사이에 그들의 누룩에 오염되어 버리면 함께 망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누룩은 부정적인 의미로 함께하는 (섞여있는 ) 상태에서는 변질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되기 때문에 예슈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거룩하고 성결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어야 하는 성도들에게는 절대적으로 분리되어 구별되어야 한다. (고후 6장 14-17)
떡을 구하기 위헤 사는 종교인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에 대한 말씀에서 제자들이 떡(빵) 을 말하는 내용이 나온다. 유대인의 주식인 빵에는 누룩을 넣어 부풀리는데 바리새인의 누룩에 대한 예슈아님의 말씀의 의도를 깨닫지 못하고 빵으로 오해하는 제자의 대답에 의미가 있다. 바리새인들의 누룩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변질 시키는 빵의 누룩 같은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주신 율법에 대한 진정한 의도를 알지 못하고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말씀의 교리를 곡해하고 변질 시켰다. 사실 악의로 의도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그들은 말씀을 아전인수격으로 자신들의 처세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들의 빵을 위해)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여 주장한 잘못이 있는 것이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교리는 다른 점이 많다. 오늘날 교단이나 교파들이 주장하는 일치되지 않은 교리와 같은 것이다. 예슈아님은 성경적인 교훈(진리로)으로 공평과 정의를 세상의 중심에 두시고 나타내시기를 원하셨다. 예슈아님의 이런 정직한 교리와 하나님의 의도에 대해서 그들은 마음의 찔림과 시기는 오히려 증오를 가중시키는 결과로 나타나 예슈아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중대한 범죄를 초래한 것이다.
지금의 기독교라 칭하는 교회에서 벌어지는 상황도 예슈아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와 다를것이 없다. 오히려 유대인들보다도 오늘날의 교회가 더 심한 탈수 증상으로 생명력을 잃어가는 나무와 같은 모습이다. 기독교의 교리를 떠나서 어떤 종교라도 종교적인 생명은 도덕적인 규범을 통해 절제와 자신을 성찰하여 죄악되고 부패한 세상을 방지하는데 있다고 주장하며 시작을 했지만 지금의 모든 종교는 마치 이권을 쟁탈하려는 세력 집단 같은 모습으로 할 수만 있다면 세상을 자신들의 영향권에 두려고 애를 쓰는 모습으로 노골화되어 가고 있다. 지금의 종교 세력은 경제권과 정치적 영향권으로 깊숙이 개입되어 그 내면적으로는 악한 욕망의 화신 처럼 도사리고 있는 모습으로 보이고 있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세속화 되는 것을 멀리하는 교리를 가진 종교가 이제는 더 세속화되어 정치적인 행사에 빠지지 않고 이권을 챙기려고 다니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영적 전쟁에서 패한 종교인은 악령에 사로잡히다.
다른 종교와는 달리 기독교가 변질되고 세속화되면 오히려 악의 영들이 주도하는 타 종교들이 더 부흥하는 역 현상을 보이는 것은 영적인 전쟁에서 패하는 세력이 점령 당하고 빼앗기는 것은 당연한 현상인 것이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들이 벌인 전쟁은 종교 전쟁이었다. 악령을 섬기는 가나안의 족속들을 유일신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민족과의 화합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일치 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가나인 족속의 씨도 남기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땅을 정복하고 그들을 쳐서 멸하여 가나안은 한동안 유일하신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지만 이후에 신앙이 흐려져 우상을 섬기고 이방 사람과 교류하면서 사사기와 같이 그들에게 점령당하는 고통을 당하였다. 주께서 오셨을 때 유대민족은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고 그들의 왕인 헤롯도 이두메인으로 사실상 이방인이었다. 유대 종교도 사분오열되고 제사장들은 부패하였고 성결을 상실하고 있었다. 목자 없는 양들이 유리하고 있다고 예슈아님은 한탄하셨다. 그 당시 유대에는 제사장이 600-700명 정도였다고 보는데 그리고 바리새인, 서기관, 율법학자 들 랍비들 외적으로는 부족하지 않고 넘치는데 목자가 없는 예루살렘을 한탄하시고 자신의 머리를 둘 곳이 없다고 하셨다. 오늘날의 교회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이 이런 현상을 주는 교훈이 있는데 골리앗과 사울의 전쟁에서 골리앗이 사울에게 소리치며 말하기를
사무엘상 17:9
"그가 능히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기어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골리앗은 사울을 향해 일대일로 싸워서 지는 자는 이기는 자의 종이 되게하자는 제안을 하고있다. 이 제안에 대하여 사울을 겁에 질려서 자신의 장막안에 숨어서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하나님이 보시기에 사울은 블레셋의 골리앗(마귀의 세력) 에게 진것이다. 사울은 이 때부터 악령에 시달리고 마음이 변하여 악한 사람이 되어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고 하나님의 제사장들을 죽이고 악한 왕이 되었다 오늘날의 목회자도 영적인 싸움에서 패하면 자신이 함께하는 모든 사람도 패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의 교회가 정체 상태에 머물러 있는 현상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지 소수의 목소리만 메아리로 돌아오고 있다. 정체만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세상의 영인 암몬의 영과 우상의 영인 음녀의 영이 점령하고 있는 우상의 전이 되었는지 오래다. 기독교가 타 종교와는 구별되게 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세상의 목소리들이 말하는 개신교는 타 종교와 배타적인 종교라는 비난을 감당하지 못하고 종교가 하나가 되자는 에큐메니칼 운동에 동참하는 교회나 목회자들이 종교적인 세력화를 꾀하는데 동참하고 있는 가증한 모습을 보이고 있음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어떻게 예슈아와 다른 종교의 신이 한 자리에 함께 할 수 있는가? 세계종교가 하나로 연합하는 것이 인류 공존과 번영을 위하고 평화를 이루는 것이라는 미명아래 악의 영들의 세력에 동참하는 악한 사상에 대해 누룩으로 여기지 않는가? 오직 예슈아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주라는 교리를 알면서도 타 종교와의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다른 종교에도 길이 있다는 둥 이상한 말을 하는 자들이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교회 지도자들이 세상적인 영향을 행사하는 자리에 앉아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주님께 민망스럽다 못해 그들에게 적개심 마져 생기게 된다. 예슈아님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 이라고 원색적인 표현을 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영적으로 볼때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마귀의 종들로 어두움의 세력 안에 속한 자들이기 때문이었다. (마3:7) 개신교회의 이름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높이기 좋아하는 자들이 영적으로는 마귀의 세력에 속한 거짓 목자들은 나쁜 열매를 맺게 마련이다.
정치적인 사두게인 의 세속화
사두개인들은 경제와 정치적인 종교인들 이었다. 그들은 사회 지도층이나 기득권을 가진 유력한 집단이었다. 그들은 힘이 있었다. 돈과 권력과 명예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로서 오늘날 교회에서 유력하고 우월한 직임(?)에 있는 사람들과 성격이 비슷하다. 어느 목회자의 사설에서 교회가 세상을 이끌고 변화를 주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사회 활동과 정치적인 영향을 발휘하여 민주주의를 발전 시켜 나가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글을 본적이 있다. 예슈아님이 정치적 이나 사회를 이끌기 위해 영향을 행사 했다는 기록이 없다는 것을 부인하는 자들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자들은 예슈아님 보다 정치적인 열심당원인 바라바를 예슈아님과 바꾼 사람들이 아닌가 의심이 간다.
바리새인들은 종교적인 율법 주의자들로서 사두개인과는 다른 계층으로 중간 계층의 사람들이었지만 어릴때 부터 엄격한 교육을 통해 율법서를 통째로 외울 정도의 지식을 소유한 자들이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고수 하려는 열심으로 성경의 율법외에 많은 규범을 만들어 스스로 매이는 율법주의자로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도 잘못된 교리로 고통을 주는 결과를 초래 하였다. 마치 오늘날의 교회의 잘못된 교리나 사상으로 가르치는 목회자들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교회를 자신의 중심으로 모으기 위하여 성경의 말씀을 하나님의 의도와는 맞지 않는 구절을 인용하여 두려움을 주는 설교나 헌금을 모으는 수단으로 말씀을 이용하는 것과 자신의 세력을 구축하려고 직임을 주는등 이런 부정적인 말들이 사람들을 실망케하고 있다. 이처럼 예슈아님 당시에 바리새인 들이나 사두개인들은 오늘날 목회자나 유력한 직임을 가진자 들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신앙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이 끼친 폐해는 성경이 잘 말해주고 있다. 바리새인들의 율법주의와 세상적인 권력과 경제력과 유력한 힘을 가진 사두개인들이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서 존재하고 있음에 대하여 인정하고 스스로를 성경의 거울에 비쳐 볼 때가 되었지만 성령의 감동으로 변화된 마음을 갖지 않은 자들은 정직한 사람의 목소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육신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안타깝다.
소수의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 남아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예슈아님께 찿아온 공회원인(지금의 국회의원) 니고데모나 십자가 밑으로 달려가 예슈아님의 시신을 거두어 자신의 무덤에 넣은 부자(富者)인 아리마대 요셉 같은 사람들이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유력한 인사들로서 예슈아님을 존경하고 변호한 의로운 자들이었다. 비록 사람들의 눈을 피해 예슈아님께 다가 왔지만 십자가에서는 자신들의 입장을 염려하여 피하지 아니하고 제자들도 하지 못한 예슈아님의 시신을 모시는 허락을 받아내어 장례를 치룬 그들이 진정한 믿음과 용기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들은 그 후에 아마도 계속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관원의 자리에 머물러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는 자신을 부인하고 주님 앞으로 나아가 죽음에 동참하는 믿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목회자나 장로나 교회의 유력한 인사들이 믿음으로 십자가로 달려가는 의로운 자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기도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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