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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다.

출애굽기 정용섭 목사............... 조회 수 1141 추천 수 0 2014.03.05 00:36:27
.........
성경본문 : 출24:12-18 
설교자 : 정용섭 목사 
참고 : 2014.3.2 http://dabia.net/xe/sermon/74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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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다.

출24:12-18, 주현절 마지막 주일, 2014년 3월2일

 
 
구약성경은 유대인들의 성경입니다. 기독교는 유대인들의 성경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이게 상식과는 배치되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로마 총독에게 넘겨준 이들이 유대인들입니다. 전체 유대인은 아니라도 그들을 대표하는 유대교 고위층이라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복음서가 그걸 확인하고 있고, 이에 근거해서 지난 2천년 동안 유럽 사람들은 예수님을 살해한 사람들이 바로 유대인들이라고 보고, 그들을 배척했습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초기 기독교는 구약성경을 거부하는 게 상식적인 겁니다. 그런데 그걸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가장 큰 이유는 구약성경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명한다고 생각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에 대한 흔적은 성경 안팎에 많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오늘 성서일과로 주어진 제1독서와 제3독서의 연관성입니다. 제1독서인 출 24:12-18절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에 일어난 특별한 현상에 대한 이야기이고, 제3독서인 마 17:1-9절은 예수님이 변화산에 올라갔을 때에 일어난 특별한 현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두 이야기에는 서로 통하는 게 많습니다. 비슷한 코드가 많이 숨어 있습니다. 먼저 변화산 이야기를 보겠습니다. 이를 통해서 초기 기독교가 왜 구약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마 17:1절은 ‘엿새 후에’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엿새 후에 예수님은 수제자로 일컬어지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의 모습이 변형되었다고 합니다. 얼굴이 해 같이 빛나고 옷이 빛처럼 희게 빛났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거기 함께 가 있던 제자들은 생전 처음 보는 현상이었습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습니다. 늘 나서기 좋아하는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음과 같은 제안을 했습니다. 여기 산위에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한 초막 세 채를 만들어서 계속 머물자는 겁니다. 그 때 갑자기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마 17:5절에 따르면 구름 속에서 이런 말이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제자들은 엎드려 크게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일으켜 세우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서 주변을 다시 살펴보자 모든 게 원래 상태로 돌아갔습니다. 이 이야기는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도 똑같이 나옵니다. 이 이야기가 초기 기독교에 아주 잘 알려진 것이었으며, 예수님의 정체를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전승이었다는 게 분명해보입니다.

 

예수님의 이 변화산 이야기는 출 24:12-18절에 나오는 모세의 시내산 이야기와 직결됩니다. 모세는 지금 유대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를 횡단하는 중입니다.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게 출애굽의 일차 목적이기는 하지만 이방인 원주민들이 선점하고 있는 가나안에 들어가서 소수 민족의 한계를 극복하여 자리 잡을 준비를 하는 게 또한 중요했습니다. 광야생활 40년 동안 그걸 준비해야만 했습니다. 이 준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게 율법의 체계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논의가 모세를 비롯해서 당시 지도층 사이에서 많았을 겁니다. 모든 결정은 모세의 이름으로 실행되어야만 했습니다. 모세는 예수님께서 세 명의 제자들과 함께 변화산에 올라가셨던 것처럼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를 비롯해서 이스라엘 장로 칠십 명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해서 시내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모세는 산 아래까지만 그들을 데리고 갔고, 산위로 올라갈 때는 여호수아 한 사람만 데리고 갔습니다. 13절은 그 사실을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모세가 그의 부하 여호수아와 함께 일어나 모세가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가며, 장로들에게는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기 까지 기다리라....

 
여기서 산위까지 모세를 마치 경호 실장처럼 단독으로 수행한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로서, 모세가 죽은 뒤에 유대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들어간 인물입니다. 모세가 출애굽의 물꼬를 트고 방향을 잡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여호수아는 그것을 완성한 사람입니다. 여호수아라는 이름은 재미있게도 헬라어로 ‘예수’입니다. 예수님의 변화산 사건에서 모세가 예수님과 함께 했던 것처럼 모세의 시내산 이야기에서는 여호수아가, 즉 예수가 모세와 함께 했습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이런 방식으로 이 두 이야기를 한데 엮어서 읽었습니다. 모세의 시내산 이야기를 좀더 따라가겠습니다.

 

모세가 산에 오르자 구름이 산을 가렸습니다. 이 구름은 변화산 사건에서도 나타난 현상입니다. 그런 현상이 엿새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앞에서 짚은 것처럼 변화산 사건에서도 예수님은 엿새 후에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일곱째 날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셨다고 합니다. 변화산 사건에서도 예수님 모습의 변형이 일어난 날이 일곱째 날입니다. 마태복음 기자는 모세 이야기를 염두에 둔 게 틀림없습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사십일 동안 머무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 말씀의 내용이 25장부터 나오는데, 그게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입니다.

 

유대 백성들에게 율법은 하나님이 직접 내려주신 말씀입니다. 율법이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종교적 전통이 되었습니다. 특히 기원후 70년에 끝난 유대전쟁으로 인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다음에는 성전 중심의 제사장 계급은 힘을 잃게 되었고, 율법을 중심으로 하는 바리새파 사람들이 유대의 종교적 주도권을 쥐게 되었습니다. 이런 율법 전통의 역사적 근거가 바로 오늘 설교 본문이 말하고 있는 모세의 시내산 경험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직접 받았다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서 유대인들은 율법을 강조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의 생각은 좀 복잡할 겁니다. 도대체 저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단 말인가, 하고 이상하게 여길 수도 있습니다. 저런 이야기는 자연현상을 알지 못하던 고대인들의 오해에서 벌어진 거라고 우습게 생각할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본문이 묘사하고 있는 현상은 화산폭발과 비슷합니다. 구름, 맹렬한 불이라는 표현이 그렇습니다. 비슷한 이야기를 전하는 출 19:16절은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합니다.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아주 크게 들렸다고 말입니다. 고대 유대인들의 눈에 화산폭발은 당연히 하나님의 임재로 보였을 겁니다. 이들의 자연현상에 대한 오해는 여기서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고대 유대인들이 그런 방식으로 전하려고 한 내용이 무엇인지를 아는 게 중요합니다. 만나와 메추라기가 미디안 광야에서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는 먹을거리였지만 고대 유대인들이 광야를 횡단하면서 생존을 책임지시는 하나님을 이런 방식으로 경험했다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렇습니다. 구름과 맹렬한 불로 묘사되는 시내산 전승의 핵심은 고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16절은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산 위에 머물렀다고 말합니다. 17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고...

 
아무런 생존의 근거나 대책이 없었던 미디안 광야에서 그들은 놀랍게도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했습니다. 이런 경험에 근거해서 그들은 광야의 악조건을 버텨낼 수 있었고, 가나안에 들어간 뒤에서도 하나님 신앙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말은 현대인들에게 낯섭니다. 하나님이라는 단어조차 감이 잡히지 않는데, 거기에다가 영광이라는 단어가 겹쳐 있으니 엎친데 겹친 격입니다. 대개의 기독교 신자들은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그런 건 몰라도 신앙생활을 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살이가 너무 힘들어서 이런 문제에는 신경을 쓸 여유가 없기도 합니다. 취업, 융자, 부부생활, 자식걱정, 돈벌이, 노후설계 등등만으로도 삶의 에너지가 다 빠져나갈 정도입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보면 우리의 실제적인 삶과 하나님의 영광은 무관한 게 아니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가장 실질적으로 생각하는 게 남녀사랑이니, 그걸 비교하는 게 이해하는데 적합할 것 같습니다. 깊은 사랑에 빠져본 분들은 다른 게 좀 부족해도 삶의 활기가 넘친다는 걸 알 겁니다. 모든 게 새롭습니다. 그전에는 비가 오면 짜증이 나더니 이제는 낭만적으로 느껴집니다. 날씨가 맑으면 맑은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다 멋있습니다. 그런 경험이 없으신 분들은 경험이 있으신 분들에게 물어보십시오. 문제는 이런 사랑의 상태가 지속되지 않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뜨겁다가 시간이 지나면 식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대상은 이걸 피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실존적 한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한 사람은 뜨겁다가 식는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어지고 더 강렬해집니다. 바울이 고후 4:16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설교 조의 그런 이야기는 우리가 다 알고 있으니, 시내산에 있었던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의 오늘 현실에 맞춰서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보라고 저에게 요구할 분들이 계실 겁니다. 지나친 요구입니다. 그런 설명은 아무도 못합니다. 그걸 설명할 수 있으면 그는 신을 직접 본 자입니다. 사람으로서는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모세도 그걸 못했습니다. 오늘 본문이 다루고 있는 시내산 이야기가 거의 끝나가는 지점인 33장에서 이와 연관된, 약간 특이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모세가 시내산 위에 있을 때 산 아래서 유대백성들은 모세를 기다리다 지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것을 신으로 섬겼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문제를 해결한 모세는 하나님께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출 33:18)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체적으로 알려달라는 요구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출 33:23). 아무도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볼 수는 없습니다. 아무도 생명의 궁극적인 비밀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영광이 임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은 설명할 수 있습니다. 놀라움, 두려움, 떨림이 그것입니다. 앞에서 인용한 출 19:16절도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과 나팔소리 앞에서 백성들이 다 떨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본문인 출 24:17절이 말하는 ‘맹렬한 불’이라는 표현도 두려움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무장 강도나 전쟁, 또는 불치병처럼 우리를 짜증나게 하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병들게 하는 공포가 아니라 우리를 영혼의 저 중심부로부터 살리는 ‘거룩한 두려움’입니다. 루돌프 오토의 표현을 빌리면 그것은 누미노제 경험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우리는 너무 작아지기에, 그리고 자아마저 없어져야 하기에 한편으로 두렵기는 하지만 우리의 유한성을 넘어서 영원한 생명의 불길에 휩싸이도록 하기에 황홀하기도 합니다. 그런 경험이 여러분들에게 있으신가요?

 

이렇게 생각해보십시오. 우리의 삶은 아주 단순합니다.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와서 일정한 세월을 살다가 다시 무덤이라는 일종의 자궁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 과정에서 매 순간 우리는 일희일비 하면서 삽니다. 몸을 갖고 살기에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일생 전체를 내려다보고 있는 분이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해서 우리의 일생 전체와 신비한 방식으로 함께 하는 분이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분은 우리의 미래까지 모든 것을 이미 내다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삶의 표면만 보고 살지만 그분은 삶의 중심까지 비밀한 방식으로 뚫어보시고 통치하는 분이십니다. 그런 분을 상상할 수 있나요? 그런 분을 실질로 인식하고 느끼고 신뢰할 수 있으신가요? 모세의 시내산 전승에 참여한 고대 유대인들은 바로 그런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고 믿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임재가 곧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자신들의 모든 예상과 기대를 넘어서는 능력이기에 맹렬한 불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고대 유대인들의 인식과 경험을 초기 기독교인들은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렇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즉 우리의 모든 생각과 경험을 뛰어넘은 하나님의 임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온전하게 나타났다고 믿었습니다. 그런 믿음이 앞에서 설명한 예수님의 변화산 이야기로 표현된 것입니다. 제자들은 거기서 정말 놀라운 것을 보았습니다. 변화된 예수님의 모습은 생명의 궁극적인 비밀이었습니다. 초막 세 채를 짓고 거기에 그대로 머물자는 베드로의 제안은 허튼 소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이 본 것은 천기누설과 같아서 아무에게나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며, 말해도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산에서 내려오면서 제자들에게 죽은 자들로부터의 부활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기독교인들의 삶도 제자들의 운명과 같습니다.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세상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세상의 마지막이 오기 전까지 그것은 비밀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불안해하지는 마십시오.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으니, 그것을 너무 떠벌일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시내산의 모세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이 변화산의 예수님에게서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바로 그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사람은 생명의 극치인 하나님의 영광에 신비한 방식으로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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