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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은 반드시 하나님의 설계대로 지어야 한다.

에스라 궁극이............... 조회 수 1322 추천 수 0 2014.03.07 13:11:15
.........
성경본문 : 스3:8-13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2000년대 설교 

3장 8절-13절.

 

8절-13절: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에 이른지 이년 이월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다른 형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무릇 사로잡혔다가 예루살렘에 돌아온 자들이 역사를 시작하고 이십 세 이상의 레위 사람들을 세워 여호와의 전 역사를 감독하게 하매 이에 예수아와 그 아들들과 그 형제들과 갓미엘과 그 아들들과 유다 자손과 헤나닷 자손과 그 형제 레위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하나님의 전 공장을 감독하니라 건축자가 여호와의 전 지대를 놓을 때에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들고 아삽 자손 레위 사람들은 제금을 들고 서서 이스라엘 왕 다윗의 규례대로 여호와를 찬송하되 서로 찬송가를 화답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가로되 주는 지선하시므로 그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하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전 지대가 놓임을 보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족장들 중에 여러 노인은 첫 성전을 보았던고로 이제 이 전 지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며 여러 사람은 기뻐하여 즐거이 부르니 백성의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변치 못하였느니라.

 

기도: 우리들의 잠깐 동안의 나그네 생활의 그 시간이 화살촉처럼 날아가고 있습니다. 잠깐 동안의 이 나그네 생활 속에서 저희들을 불러주시고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궁구함으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 아버지의 뜻이 곧 우리의 속에 또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저희들을 불러주심 감사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을 향하여 나갈지라도 저희들의 모든 소원 목적 시선과 욕망은 아버지 하나님께로 날마다 더욱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저희들을 말씀으로 영감으로 붙잡아 주시고, 저희들에게 큰 깨달음 주시되 잠깐 동안의 나그네 세상에서 헛 살지 않고 창조의 본 목적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저희들에게 축복을 해 주시옵소서.

 

성도들이 말씀대로 사는 발걸음이 참으로 귀한 줄 압니다. 이 발걸음을 세상은 모릅니다. 이 길을 가는 저희들에게 늘 성령의 영감으로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을 때에 어떻게 하나님을 믿느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보면 첫째는 신뢰적으로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신념적으로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 번째는 신의적으로 믿는 사람이 있고, 네 번째는 신앙적으로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방편이 여러 가지인 것을 볼 수가 있어요.

 

그런데 제일 많은 사람이 믿는 것은 어느 쪽인가 하니 신념적으로 믿는 사람이 가장 많습니다. 그럼 신념적으로 믿는다는 게 뭐냐? 그것은 ‘무엇이든지 인간 자기의 주관대로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하는 그 신앙이 신념적 신앙이다.

 

그러면 신뢰적 신앙은 어떤 거냐? ‘물질적으로 나에게 무조건 유익이 되게 해 주실 것이다. 손해는 안 되게 해 주실 것이다’ 하고 믿는 것.

 

그 다음에 신의적 신앙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약속한대로 그 약속을 변동 없이 지켜주실 것이다’ 하는 것. 내가 해야 할 부분은 등한시하고 하나님의 언약대로 해 주시리라고 하는 것이 신의적 믿음입니다. 자기가 할 거는 등한시하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이루어주실 것만 생각을 한다 그 말이요.

 

다시 말하면 신뢰적 신앙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조건 유익되게 해 주실 것이다. 손해는 안 되게 해 주실 것이다. 물질손해는 안 나게 해 줄 것이다’ 하는 것이고, 신념적 신앙은 ‘무조건 내 주관대로 다 해 주실 것이다. 이루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하는 것.

 

그 다음에 신앙적 믿음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명하신대로 내가 행하는 것. 아까 말씀드린 신의적 믿음과는 조금 다르지요? 하나님의 타율을, 하나님의 것을 자기의 법으로 삼고, 하나님의 객관을 자기의 주관으로 삼고 사는 것이 신앙적 믿음입니다.

 

우리는 신앙적 믿음을 가져야 하는데 그러면 왜 우리가 신앙적 믿음을 가져야 되느냐? 우리는 하나님을 기준을 삼아가지고 고쳐나가야 하기 때문에 신앙적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 말이요.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천국을 무시하면 어떤 믿음이 되는가 하니 신념적 신앙이라든지, 신의적 신앙을 갖게 된다 그 말이요.

 

신뢰적 신앙은 ‘내가 한 평생 사는 동안에 하나님께서는 나를 지켜주실 것이다.’ 그리고 또 신념적 신앙은 ‘내가 한 평생 사는 동안에 하나님께서는 나의 요구조건대로 다 해 주실 것이다.’ 천국을 무시하면 그런 신앙을 갖게 된다 그 말이요. 천국을 모르면 그런 신앙을 갖는다 그 말이요.

 

교회라고 하는 교회는 천국을 건설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니 없는 천국을 허허벌판에 건설한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고 미래에 가서 내가 실력대로 누릴 그 천국의 실력을 이 세상에서 건설을 한다 그 말이요. 자기의 영원한 그 실력을 교회에서 건설해 가는 것이다.

 

우리가 누릴 천국은 어떤 곳입니까? 또 천국에서의 생활은 어떤 것입니까? 천국에 가면 다 입을 다물고 있을까요? 찬송도 하고, 천군천사들 손잡고 꽃밭에서 놀기도 하고 그래요? 어쨌든 이 세상보다야 재미있을 것 같아. 천국에 가면 금강산보다도 더 아름다울 걸? 그 때는 구름 타고 날아갈 테지. 가고 싶다고 그러면 순식간에 가서 있을 거고.

 

교회는 천국의 대사관입니다. 그러니 교회에서 천국을 묻고, 또 천국을 안내를 받아야 한다 그 말이요. 교회에 나오신 분들은 전부 천국에 이민을 갈 분들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하늘로부터 비자만 나오면 간다 그 말이요. 그런고로 교역자는 천국을 잘 가르쳐 줘야 되겠습니다.

 

영체적인 부활체는 먹을 수도 있고 안 먹을 수도 있고, 안 먹어도 배가 안 고프고, 먹어도 배불러 죽는 것도 없고, 먹고 싶으면 마음대로 먹고 먹기 싫으면 안 먹고, 안 먹어도 배가 안 고프고. 하지만 천국에는 화장실은 없어요. 참말로 좋은 곳이요.

 

이 세상에서 살 때는 자기 육신에다 마음을 실어놓았기 때문에 내가 어디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거기 가서 있을 수 있어도 몸은 그 즉시로 못 가지요. 그런데 신령천국에서는 마음에다 몸을 실었기 때문에 어디에 가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면 몸도 이미 그곳에 가서 있다 그 말이요. 그리고 천국에 들어가서는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의사단일로 가까워진 것만큼 하나님과의 친근성이 돼요.

 

이러한 사실을 물론 교역자가 가르쳐 줘야 되겠고, 두 번째는 자기가 또 성경을 봐야 되겠고. 성경을 안 보면 빨리 깨달음이 올 수 없는 거고, 하나님과 그만큼 멀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만큼 성경을 가까이 해요. 하나님을 사랑치 않으면 성경을 딴 데다 처박아 놓지요. 그러니 우리 교인들은 성경을 읽어야 된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수록 자기의 영이 밝아지고 마음이 기쁘고, 하나님을 멀리할수록 말씀을 멀리할수록 자기에게는 고통이요. 세상으로 더 가까이 할수록 자기에게는 더 고통이요. 하나님을 가까이 한다고 해서 이 세상에서 밥 굶어 죽습니까? 거지 되어 죽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믿는다고 하지만 죽음 저 너머의 생활을 모르기 때문에 신뢰적 신앙을 갖고, 신념적 신앙을 갖고, 신의적 신앙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대부분 기복주의라 그 말이요. 기복주의는 뭐냐 하면 세상과 짝지어 주는 것. 세상과 연애시켜 주는 것. 세상과 접붙여 주는 교회는 천국대사관이 아닙니다. 그런 자는 주님의 종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을 때 이 세상에서 가장 보람 있게 믿는 것은 신념적 신앙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니 내가 소원하는 대로 다 하나님께서 이루어 준다는 식의 신앙을 갖는 것이 신념적 신앙이다. 그러니까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은 천국이 없어도 이 세상에서 그런 기대를 가지고 살아갈 테지요. 그러면 자기가 믿는 그대로 이루어 주는 거냐? 그것도 아니라 그 말이요.

 

성경에 보면 ‘너는 이렇게 살아라. 이렇게 되어라. 이런 사람이 되어라. 성격이 성품이 인격이 이렇게 만들어져라’ 했으니 ‘그대로 만들어 지겠습니다’ 하는 신앙을 갖는 것이 신앙적 신앙입니다. 이 신앙적 신앙에 있어서의 표준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내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해야 예수님처럼 만들어진다 그 말이요. 신의 본질과 본성대로 만들어졌으면 나는 하나님의 본질과 본성대로 된 거라 그 말이요. 천국의 본질과 본성과 같다 그 말입니다.

 

양적 면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많이 만들어지는 것, 질적 면에서는 하나님과 같은 것. 둘 다 같지요? 하나님의 본질과 본성대로 만들어지는 것만큼 천국에 적응이 잘 된다 그 말이요. 그리고 이 세상에서도 예수 믿으면서 하나님의 의사 단일성과 적응이 잘 된단 말이요. 안 그러면 자꾸 대립이 돼. 대립이 되느니 만큼 자기에게는 고통입니다.

 

현재적으로는 자기가 이 고통을 모를 수도 있어요. 그러나 현재적으로 세상으로 기쁨을 삼는 그것이 얼마 가지 않아서 자기에게는 큰 고통으로 닥쳐오게 됩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얻어맞는다 그 말이요.

 

천국은 하나님의 성질에 딱 들어맞는 곳입니다. 그런고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 성질로 적응이 잘 돼야 되겠다 그 말이요. 우리가 천국에 가려면 어느 지방 어느 나라 사람에게 맞춰야 하는 겁니까? 기준을 하나님에게 맞출 것이라 그 말이요. 주님에게 맞출 것이다. 자기라고 하는 자기를 다 버려야 맞춰진다 그 말이요. 전부 바꿔져야 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천국 갈 자이기 때문에 다 바꿔야 된다 그 말이요.

 

믿기 전에는 각자 자기 개개인대로 개체 개별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천국에 가면 전부 다 성질이 하나님을 닮는다 그 말이요. 전부 다 동질이 되어버린다 그 말이요. 예수 믿으면 어느 나라 사람이건 어느 지역 사람이건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하나님의 표준에 전부 다 동질이 되어버린다. 천국은 그런 곳이라 그 말이요.

 

따라서 만약에 신념적 신앙을 가진 자가 그 신앙대로 세상 일이 잘 되었다고 해도 죽음 저 넘어 가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닮지를 못했으니까요.

 

우리의 영의 중생은 찰나적이고, 몸의 구속은 날마다 점차적으로 하나님의 본질과 본성적으로, 그리고 양적으로 부피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야 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념적 신앙이라든지 신의적 신앙이라든지 신뢰적 신앙이라든지 이런 것은 금물입니다.

 

그런데 신앙적 신앙 안에는 이제 말씀드린 그 세 가지가 다 들어있어요. 그러면 신념적 또는 신뢰적 또는 신의적 신앙 속에는 신앙적 신앙이 들어 있느냐? 그건 그렇지 않다 그 말이요.

 

히브리인들은 이방 땅에서 자기 백성들에게 율법과 율례와 계명을 가르쳤습니다. 그 때에 이방 땅에 포로로 잡혀갔으니 만큼 유형적 성전은 없었습니다. 성전이 불탔으니까. 그리고 모든 절기가 또 중단이 됐지요. 그러나 포로생활을 하는 70년간 무형적 성전을 지었습니다. 유형적 성전은 없으나 무형적 성전을 지었다 그 말이요. 그리고 무형적으로 유월절을 지키길 소원했고.

 

당시에 이스라엘에서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러간 자가 있었고, 또 바벨론에서 70년이 지나는 동안에 바벨론에서 태어난 자가 있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고향에 돌아와서 성전을 지을 때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은 과거의 솔로몬 성전을 봤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솔로몬 성전을 못 봤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에 아버지 다윗이 40년간 정복을 해서 많은 것을 끌어 모은 것으로 지었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은 성전을 짓고 남은 것을 가지고 14년간 자기 궁궐을 잘 지었습니다. 궁궐을 지은 후에 첩들을 한 방에 모두 둔 게 아니고 방이 천 개요 별장이 여러 개가 있기 때문에 각각의 집을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전 짓는 설계도를 주었습니다. 그런고로 솔로몬은 자기 느낌 자기 주관대로는 성전을 짓지는 않았어요. 하나님의 설계가 ‘전면은 이렇게 짓고, 후면은 이렇게 짓고, 측면과 측면은 이렇게 지어라. 방은 몇 개 이렇게 지어라’ 한 대로 모두 설계대로 지었습니다. 돈이 많던 적던, 물질 많던 적던 설계를 변경시키지를 아니 했어요. 설계대로 지었다 그 말이요.

 

아버지 다윗은 성전을 지을 재료 수집을 40년간 했습니다. 그 아들 솔로몬은 성전을 7년 동안 지었고, 자기 궁궐은 14년 동안을 지었습니다.

 

자, 이렇게 볼 때에 어느 수고가 더 큽니까? 어느 수고가 더 커요? 성전 지을 재료는 40년간 준비를 했고, 성전은 7년간 짓고, 왕궁은 14년간 짓고. 어느 수고가 더 큽니까? 햇수로 보면 40년간 재료를 수집한 것이 수고가 더 크지요. 하지만 솔로몬은 보이는 성전을 짓고, 다윗은 자본을 모으고 했으니 말하자면 둘이 같이 지은 셈이지요.

 

다윗은 성전을 짓기 위한 재료를 모으기 위해 피와 땀을 많이 흘렸습니다. 이에 비하면 솔로몬은 성전을 짓는데 다윗보다는 힘이 덜 들었습니다. 성전의 설계는 하나님께서 주셨고, 성전을 짓기는 일꾼이 지었지 솔로몬 자기가 지었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설계대로 성전을 지었습니다.

 

반면에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는 포로생활의 탄압 아래서 살다 돌아왔습니다. 그러니 성전을 지을 자본은 없었습니다. 그러면 이럴 때 돈이 없으니 돈에 맞도록 성전을 짓고, 돈이 많으면 많은 그 돈에 맞게 성전을 지어야 하느냐? 성전은 어떻게 지어야지요? 하나님의 설계대로 지어야 한다.

 

그런데 왜 성전건축이 중단이 되었나?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고 고레스 왕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레스 왕도 하나님의 감동으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설계대로 지은 솔로몬의 성전이 왜 허물어졌느냐? 솔로몬이 이방여자들을 끌어다가 그 안에서 이방신을 섬기고, 또 그 안에서 이방우상을 만들고 못된 짓을 하며 돌아가니까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불러서 부수게 한 것이 아닙니까?

 

물론 바벨론에 잡혀가기 그 이전에 솔로몬이 성전 짓고 난 뒤에 이방여자들을 데리고 못된 짓하고 우상을 섬기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두 조각을 만들었지요. 그래서 북조 이스라엘과 남조 유다로 갈라졌습니다.

 

그러니까 솔로몬 시대와 스룹바벨이 바벨론에서 포로로 살다가 돌아오는 그 시대의 차이가 200여년이 넘는 거예요. 그 기간 동안에 솔로몬 다음에 르호보암 왕이 있고, 남조 유다 왕들이 20대 왕으로 있어요. 북조는 19대 왕으로 있고요. 남조 유대의 스무 명이나 되는 왕이 다 지나가니 바벨론 군사들이 와서 성전을 전부 불태워 버리는 거지요. 그 동안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지자들을 보냈지만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았지요.

 

그래, 이제 이방인들이 여자를 취하는 걸 가만히 보면 눈에 턱 보기에 눈썹을 그려 붙이고, 입술도 붙이고, 옷도 매력적인 옷을 입고, 머리를 지지고 볶고 한 걸 본단 말이요.

 

사람을 볼 때는 그 사람의 속을 봐야 되는데 지금도 안 믿는 사람들은 사람의 껍데기를 자꾸 보잖아요. ‘키가 얼마나 크냐? 직장의 월급이 얼마냐?’ 하는 이게 전부 껍데기거든요. 속을 보려고 안 해요. 예수 믿는 사람도 사람의 속을 봐야 하는데 껍데기만 보면 큰 실수를 해요. 그러나 속을 보면 별로 실수가 없어.

 

그런데 이스라엘 여자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별로 꾸민 게 없어요. 쉽게 말하면 내적인 마음을 잘 닦아. 이처럼 사람은 속이 아름다워야 참 복을 받는 사람인데 솔로몬은 눈이 멀었던 거지. 한 여자로는 한이 안 찼던 모양이야.

 

어쨌든 원로들은 솔로몬 성전을 알고 있었어요. 봤단 말이요. 그런데 스룹바벨과 여호수아가 돌아와서 성전의 기초공사 하는 것을 보고 이들이 과거 솔로몬의 성전과 비교할 때 너무나도 초라하니까 대성통곡을 한 거지요. 반면에 성전지대가 놓이는 것을 보고 기뻐서 날뛰는 사람들은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살면서 출생된 자들이기 때문에 솔로몬 성전을 보지 못했단 말이요.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 당시 때로 와서 보면 이 스룹바벨의 성전을 헤롯이 46년 동안 수리를 하면서 야금야금 탈바꿈을 시켰거든요. 이렇게 해서 완공된 성전이 아주 웅장했지요.

 

그러니까 이 헤롯의 성전을 보고 좋아한 자들은 누구였지요?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지요. 예수님의 제자들이 헤롯성전을 보고 좋아했단 말이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 성전을 보고 대성통곡을 한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성전건축의 이치와 구원건설의 이치를 아는 자들은 하나님의 설계대로 되지 않는 것을 볼 때 대성통곡을 하는 겁니다.

 

지금도 예배당이 성전은 아니지만 ‘예배당을 지을 때 어떻게 지었느냐’ 하는 그걸 보고 하나님의 설계대로 지어진 것이 아닐 때는 구원도리를 아는 사람들은 대성통곡을 한다 그 말이요. 그러나 신출래기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야, 크다’ 하고 좋아합니까?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형편대로가 아니고 하나님의 설계대로 하나님의 기준대로 지어야 한다. 절대적이란 말이요. 그런데 일반적인 이치로는 돈대로 짓는 거지요. 돈이 많으면 크게 짓기도 하고, 돈이 적으면 작게 짓기도 하고. 그렇지만 우리의 성전은 하나님의 기준대로 짓는 것이다.

 

‘하나님의 설계대로 성전을 짓자’ 하면 성전을 지을 자본은 누가 대주느냐? 하나님께서 대준다 그 말이요. 무슨 자본이냐? 크고 작은 사건 환경을 하나님께서 대준다. 그게 자본이라 그 말이요.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가 기준입니다. 그런고로 설계대로만 하면 누구든지 예수님을 닮을 수 있다 그 말이요.

 

성전을 지을 때 사람을 보지 말라. 인간을 기준하지 말라 그 말이요. 그 어떤 환경 속에서도 힘쓰는 것만큼 구원을 이룰 수 있다. 자기의 형편대로 보이지 않는 성전을 짓지 말라 그 말이요.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입니다. 이 성전을 지을 자본은 하나님께서 대주십니다. 자본이 뭐라고 그랬지요? 모든 사건 환경이 자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자본을 대주는 이것을 육적으로 생각을 했다 그 말이요. 얼마나 큰 잘못인지? 즉 육적으로 누렸다 그 말이요. 좋은 환경을 주니 누렸고, 나쁜 환경을 주니 원망 불평을 했다. 그게 다 성전을 지으라는 자본인데 하나님께서 주신 자본을 육으로 다 써버렸어. 그러니 성전이 어디 있느냐? 성전이 날아갈 수밖에 없단 말이요. 안 보이는 성전이 날아간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보이는 성전을 날아가게 한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우리가 현실에서 하나님께서 빈이면 빈 부요면 부요, 또 어려운 사건 환경을 주시는 것은 우리의 무형적 성전을 하나님의 설계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잘 지으라고 준다 그 말이요. 그럼에도 우리에게 주신 이 환경을 육이 좋다고 누리고 육이 안 좋다고 불평불만하며 전부 다 육적으로 써버려 놓으면 나중에 어떻게 될까? 자기에게는 큰 고통이 올 수밖에 없다 그 말이요.

 

기도 올립시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북쪽은 앗수르로 잡혀가고 남조 유다는 바벨론으로 잡혀갔습니다. 잡혀가기 전에 선지자들을 보내서 회개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그렇게 목매어 외쳤지만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그 선지자들을 같은 자기 백성이 다 죽였습니다.

 

유형 성전을 주셨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형적 성전을 짓지 못하고 육이 누리기 좋다고 해서 다 누리고 써버리고, 육의 사건 환경이 어려워지니 이방으로 붙어서 육으로 다 써버리니 하나님께서 노하셔서 전부 다 포로로 잡혀가게 만들었습니다. 나라를 잃었습니다. 부모형제를 잃었습니다. 결국은 바벨론 70년 포로생활 노예생활을 하면서 그곳에서 하나님을 찾은 자들은 노예샐활 중에도 무형적인 성전을 잘 지었습니다.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의 예언대로 70년 후에 고향으로 돌아와서 성전을 지으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재료들을 다 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 말씀일까요? 현재적으로 하나님의 그 영적인 깊은 뜻을 바로 깨달아서 오늘날 저희들도 비록 몸은 세상에 노예생활을 하는 것처럼 있으나 무형적 성전을 하나님의 설계대로 말씀대로 잘 짓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어려운 사건 환경을 붙여주실 때에 그것을 다 재료로 삼아서 무형적 성전을 잘 지어갈 수 있는 복 받는 당신의 자녀들이 될 수 있도록 축복을 해 주옵소서.

 

저희들에게 명철한 지혜와 총명을 주시고 성령의 영에 밝은 눈이 있도록 저희와 늘 함께 해 주시옵소서. 말씀 깨달음을 날마다 허락해 주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타이핑 했습니다)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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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95 고린도후 고난을 극복하는 세 가지 길 고후4:16-18  조용기 목사  2014-03-05 2372
10394 야고보서 언어를 선택하라 약3:1-12  조용기 목사  2014-03-05 1528
10393 고린도후 질그릇에 담긴 보배 고후4:11-12  조용기 목사  2014-03-05 2084
10392 마태복음 적은 일에 대한 많은 보상 마25:21-23  강종수 목사  2014-03-02 1349
10391 야고보서 참된 신앙인과 구제 약2:15-16  한태완 목사  2014-03-01 1495
10390 에스라 세상으로 살이 쪄 있는 자는 성전건축을 하지 못한다. 스3:8-13  김경형 목사  2014-02-28 1471
10389 에스라 보이는 성전이 목적이냐, 보이지 않는 성전이 목적이냐? 스4:7-16  김경형 목사  2014-02-28 1375
10388 누가복음 쓰임받는 자 눅8:1-18  최장환 목사  2014-02-27 1955
10387 요한복음 기다리시는 하나님 요2:1-25  최장환 목사  2014-02-27 1743
10386 시편 한 해의 시작, 하나님께 맡기기 시37:5-6  김필곤 목사  2014-02-26 2106
10385 사도행전 한 해의 시작, 세 가지 충만으로 행11:24  김필곤 목사  2014-02-26 1854
10384 다니엘 한 해의 시작, 뜻을 정하고 단1:8-9  김필곤 목사  2014-02-26 2107
10383 시편 한 해의 끝, 만족한 결산을 하려면 시81:8-16  김필곤 목사  2014-02-26 1936
10382 마태복음 행복한 가정(12) 성령 충만한 가정 마3:1-12  김필곤 목사  2014-02-26 1892
10381 창세기 행복한 가정(11) 발전의 의지가 있는 가정 창12:1-3  김필곤 목사  2014-02-26 1589
10380 마가복음 행복한 가정(10) 역경을 극복하는 가정 막5:35-43  김필곤 목사  2014-02-26 1929
10379 히브리서 행복한 가정(9) 새로운 세상 천국을 소망하는 가정 히11:7  김필곤 목사  2014-02-26 1579
10378 시편 행복한 가정(8) 기쁨을 잃지 않는 가정 시90:10-17  김필곤 목사  2014-02-26 1785
10377 시편 행복한 가정(7) 감사하는 가정 시136:1-6  김필곤 목사  2014-02-26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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