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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차등성 때문에라도 성전을 꼭 짓고 가야 합니다.

에스라 궁극이............... 조회 수 1223 추천 수 0 2014.03.14 10:00:10
.........
성경본문 : 스5:6-17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2000년대 설교 

5 6-17.

 

6-17: 강 서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 동료 강 서편 아바삭 사람이 다리오 왕에게 올린 글의 초본이 이러하니라 그 글에 일렀으되 다리오왕은 만안하옵소서 왕께 아시게 하나이다 우리가 유다도에 가서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 보온즉 전을 큰 돌로 세우며 벽에 나무를 얹고 부지런히 하므로 역사가 그 손에서 형통하옵기로 우리가 그 장로들에게 물어 보기를 누가 너희를 명하여 이 전을 건축하고 이 성곽을 마치게 하였느냐 하고 우리가 또 그 두목의 이름을 적어 왕에게 고하고자 하여 그 이름을 물은즉 저희가 우리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우리는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라 오랜 옛적에 건축되었던 전을 우리가 다시 건축하노라 이는 본래 이스라엘의 큰 왕이 완전히 건축한 것이더니 우리 열조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격노케 하였으므로 하나님이 저희를 갈대아 사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붙이시매 저가 이 전을 헐며 이 백성을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옮겼더니 바벨론 왕 고레스 원년에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려 하나님의 이 전을 건축하게 하고 또 느부갓네살의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속에서 금 은 기명을 옮겨다가 바벨론 신당에 두었던 것을 고레스 왕이 그 신당에서 취하여 그 세운 총독 세스바살이라 이름한 자에게 내어주고 일러 가로되 너는 이 기명들을 가지고 가서 예루살렘 전에 두고 하나님의 전을 그 본처에 건축하라 하매 이에 이 세스바살이 이르러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지대를 놓았고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건축하여 오나 오히려 필역하지 못하였다 하였사오니 이제 왕이 선히 여기시거든 바벨론에서 왕의 국고에 조사하사 과연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려 하나님의 이 전을 예루살렘에 건축하라 하셨는지 보시고 왕은 이 일에 대하여 왕의 기쁘신 뜻을 우리에게 보이소서 하였더라.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또 인격적인 존재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 인간이란 인간은 공통성이 있으면서 또 차등성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피조물들은 별로 차등성이 심하지를 않습니다. 목석이나 금수 같은 그런 종류를 한 번 생각해 보면, 예를 들면 까치라 하면 까치의 기능과 지능 면은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자기가 생긴 대로 산다 그 말이요. 이를 테면 무식한 까치가 있다든지, 둔감한 까치가 있다든지, 명철하고 지혜로운 까치가 있다든지 하는 그런 인격성에 관한 차등성은 없더라 그 말이요. 인간처럼 미모의 차등이나 향락의 차등이나 우열의 차등이나 고저의 차등은 없고 전부 다 비슷하다 그 말이요.

 

그러나 우리 인간이란 인간은 공통성도 있지만 차등성이 있다. 공통성은 인간이 정상적이라면 모든 인간이 어떻게 하든지 부귀와 공명과 행복을 소원하고 추구하는 공통성을 다 가졌습니다.

 

만일에 이 세상에서 그런 것이 없다고 한다면, 또 오는 세계에 있어서 그런 차등성이 없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인격자로 짓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금수와 똑같은 생활방식으로 살 거다 그 말이요. 경쟁성이나 욕망성이나 투쟁이 없을 것 같다. 그렇게 느껴진다 그 말이요.

 

금수의 세계에서는 나무집이나 무슨 벽돌집이나 그런 소원을 하지를 않더라 그 말이요. 존비귀천이라든지 빈부의 격차성이라든지 그런 게 없기 때문에 속에 그런 성분이 아예 없다 그 말이요. 그래서 짐승들의 세계는 그런 경쟁성이 없습니다. 다만 먹는 데만 경쟁을 합니다. 그러니까 정신적인 면에서는 경쟁이 없다 그 말이요. 개들도 가난한 집이 싫어서 부잣집으로 간다거나, 낮은 집에 사는 개가 높은 부잣집을 찾아가지를 않더라 그 말이요.

 

그런데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지나고 죽음 저 너머 세계에서 영원히 격차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 인간이란 인간은 영원히 없어져서 무로 돌아가지를 않는다 그 말이요.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절대로 무로 돌아가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보다 더 좋은 행복감을 맛보려고 하는 존재입니다.

 

지옥에도 죽는 게 없어요. 영원히 존재하는 곳이라 그 말이요. 무로 돌아가지를 않는다 그 말이요. 성경에 보니까 유황불이 불철주야로 활활 타는 그런 곳이요, 구더기도 죽지 않는 곳이라. 이 땅에서 하루만 살다가 죽어서 그곳에 가게 되더라도 그곳은 영원히 안 죽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죽음이 없는 곳이다 그 말이요.

 

연옥을 주장하는 그런 종교인들이 있는데 지옥 아니면 천국이지 연옥은 없습니다. 연옥은 교인들 주머니 털려고 돈 짜내는 방식이라 그 말이요. 옛날에 천주교가 막 생겨날 때 돈 짜내는 그런 방식을 썼다 그 말이요. 부모가 하나님을 안 믿고 죽으면 자식이 돈을 많이 내면 연옥에 가고, 또 자식이 돈을 내면 죽은 부모가 연옥에 가고, 또 자식이 돈을 많이 내면 점점 천국으로 올라간다는 식으로 돈 짜내는 방식이다.

 

교회 안에도 돈 짜내는 방식이 많이 있을 수 있어요. 교인 하나마다 자기의 예배의자를 만들어가지고 거기다 이름을 써 붙이면 자손 대대로 거기 앉으면서 그걸 기념하게 된다고 하는 그게 돈 짜내는 방식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 세상에 격차가 있듯이 천국에도 격차가 있다고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어요. 이 세상에는 표면적으로 보면 격차가 많습니다. 대소의 격차, 미추의 격차, 빈부의 격차 등 상당히 많아요. 그런데 그 이면으로 보면 이면적인 격차가 더 많습니다. 아주 세밀적으로 많아요. 예를 들면 사과 하나를 먹어도 단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신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시고 달고 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술 담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고. 많단 말이요.

 

우리에게 미각의 미감성이라든지, 후각의 후감성이라든지, 시각의 시감성이라든지, 청각의 청감성이라든지, 촉각의 촉감성이 사람마다 격차가 다 있다 그 말이요. 어떤 사람은 빨리 느끼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덜 느끼기도 하고. 청각의 청감성으로 보면 어떤 사람은 음악을 들을 때 음률에 의해서 감정이 생기고, 어떤 사람들은 한국노래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외국노래를 좋아하고. 각각 다르더라 그 말이요. 후각도 마찬가지. 전부 다 격차가 있다.

 

산새 우는 소리도 듣는 사람에 의해서 그 느낌이 다르다 그 말이요. 슬픈 사람이 들으면 ‘산새가 운다’ 그러고, 기쁜 사람이 들으면 ‘산새가 노래한다’ 그렇게 듣는다 그 말이요.

 

우리 한국 사람들 귀에는 개가 어떻게 짖지요? ‘멍멍’ 짖는단 말이요. 한국 사람에게는 그렇게 들려. 그런데 외국 사람에게는 어떻게 들리는가 하니 ‘바우 바우’ 그렇게 들린단 말이요. 한국 닭 우는 소리나 미국 닭 우는 소리나 똑같은데 한국 사람에게는 어떻게 들리지요? ‘꼬끼오’ 그러지요. 그런데 미국사람의 귀에는 어떻게 들리는가 하니 ‘꼬끼오’로 안 들리고 ‘끼끼리끼’로 들린단 말이요. 똑같은데 듣는 사람 귀에 그래. 느낌이 다르다 그 말이요.

 

그런 것처럼 이 세상에는 이면적인 면으로 보면 느낌성이 아주 천차만별이야. 자기 보기는 안 좋은데 다른 사람 보기에는 좋다 그 말이요. 참 희한하다 그 말이요. 비슷한 것을 그렇게 본다면 이해가 가겠는데 담배 피는 이거 사람 망치는 거 아니요? 신체가 망하는 건데, 전봇대에 기대서 담배를 피우면 그게 그렇게 보기가 좋다 그 말이요. 느낌이 그렇게 달라요. 천차만별이야. 이 세상에는 격차가 있어.

 

천국에는 어떤 음악이 흘러나올까? 천국에도 음악이 있어요? 천국은 음악이 있는데 유행가가 없어. 주님 듣기 좋은 노래밖에 없어. 그러면 자기가 듣기는? 주님을 닮았으면 듣기가 좋을 거라 그 말이요. 성경에 보면 천국에 새 노래가 있지요? 계시록에도 보면 천국에서 14 4천 명이 노래를 부르잖아요?

 

같은 찬송을 부를 때에도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고, 또 같은 찬송인데도 내가 그 전에 부를 때와 지금 부를 때의 그 느낌이 다르다 그 말이요. 어떤 때는 아무 뜻도 없이 부르고, 어떤 때는 느낌이 진하게 와서 가슴이 뭉클하고. 참 희한하지요?

 

우리가 늘 교회 나와서 ‘나 주를 멀리 떠났다’ 하고 부르니까 심심하잖아요? 덤덤하고. 그러나 핍박을 당했거나 어떤 일로 인해서 마음은 교회에 나가고 싶은데 교회도 못 나오고 있다가 이제 교회에 나와서 ‘나 이제 주를 멀리 떠났다 이제 옵니다’ 하고 부른다면 눈에서 눈물이 막 떨어진다 그 말이요. 그렇게 느낌이 달라요.

 

천국에서는 무엇을 먹겠느냐? 낙원에서는 생명과 먹지요? 그러면 밑으로 나오는 처리하는 장소는 어디냐? 물질계를 연상하면 걱정이 될 테지요. 그러나 그곳은 신령계요 신령체요, 어떤 것을 먹어도 먹는 그것으로 그냥 끝나는 겁니다. 참 신비롭지요?

생명과를 먹음에도 미감성에 차이가 있습니다. 생명과는 비물질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여기서 자기의 입맛을 고치고 가야 된다. 생명과를 입으로 먹는 게 아니고 귀로 먹는다 그 말이요. 자기의 귀맛을 고치고 가야 한다. 못 고치면 어떻게 되느냐? 못 고치면 자기에게 그만큼 쾌감성이 줄어듭니다. 친구들끼리도 의사성이 소통이 딱 되면 쾌감성이 있지요. 서로가 쾌감성이 있어. 그런데 의사성이 불통이 돼 놓으면 그 쾌감이 없어요. 그런 것처럼 그 말이요.

 

나의 입맛을 귀맛을 눈맛을 코맛을 촉감의 맛을 다 주님의 것으로 바꾸면 성경을 보는 것이 그렇게 맛이 있고 즐겁고 기쁘고, 그런데 고치지 못하면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아무 맛도 없고 잠만 펑펑 올 거라 그 말이요.

 

만약의 경우 천국에서 차등성이 없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지공성이 파괴가 되고 하나님의 공평성이 파괴가 됩니다. 천국에는 봐주는 게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불탈 구원이라든지 부끄러운 구원이라고 하는 것이 있더라 그 말이요.

 

만약에 ‘천국에 차등성이 없었으면 좋겠다’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어떤 사람이 그런 소리를 하겠어요? 게으른 사람이 그런 말을 하게 되지. 일 작게 해 놓고 돈 많이 받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처럼. 이런 사람은 신앙적으로 본다면 천국왕국 시대뿐 아니라 영원히 자기에게 사심판으로서 자체 심판을 갖게 됩니다.

 

성경에 성전을 지은 게 있는데, 성전을 지은 자와 못 지은 자가 천국에서 격차가 있어요. 만일에 격차가 없다고 한다면 순교당한 선지 사도들이 억울할 거라 그 말이요.

 

그런데 운 좋은 사나이가 있는데 누구지요? 천국은 격차가 있는데 매달리다시피 해서 천국에 들어간 자가 있어요. ,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우편 강도지요. 우편 강도가 평생 사람을 죽이다가 천국에 갔는데 자기에게 무슨 상이 있겠어요?

 

천국은 진리이치의 곳이요, 자체적 이치적인 세계인고로 자기에게 정확하게 적용이 되는 겁니다. 세상은 흐릿하지만 천국은 흐릿하지를 않습니다. 명확하다 그 말이요.

 

천국에서 제일 예민하고 민감하고 민첩하고 민활한 자가 예수님 다음에 앉게 됩니다. 즉 주님과 제일 잘 통하는 사람이 예수님 옆에 앉는다. 통하지 않으면 멀어지는 거라. 멀어지는 거는 자꾸 거리감이 생기는 거지요. 의사적으로 단축, 소원 목적적으로 단축. 주님과 제일 가까운 자는 주님을 제일 많이 닮은 자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세상의 것은 다 못 누리고 다 못 사용해도 천국만 생각을 하면 무엇이든지 다 참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운동은 억지나 강제가 아닙니다.

 

세상 모든 인간이 머리를 짜고 활동을 하고 노력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해질까’ 하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으로 통해서 이런 저런 명령을 하시는 것은 우리를 저질적으로 만들고 우리를 더 못되게 만들려고 하는 건 아니더라 그 말이요. 영원히 잘 되되 더 잘 되게 해 주려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행복에 대해 염려를 하고 걱정을 하고 계시지요. 우리 역시 행복해지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인간은 임시적인 행복을 염려를 하고, 하나님은 영원한 행복을 염려를 하십니다.. 다르단 말이요.

 

누구의 방편이 제일 빠른 것 같으냐?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하면 불행해지고, 내가 내 마음대로 하면 행복해질 것 같지요? 사람들의 느낌이 그렇지 않아요? 아닌 말로 누구의 방편대로 하면 이 세상에서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겠느냐? 우리가 가만 생각해 봐요. 그런데 우리가 자꾸 하나님을 떠나거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하면 불행해지는 것 같아. 꼭 그렇게 생각이 된단 말이요.

 

이 세상에서 아무리 날고 기는 사람이라도 모든 사람의 속에 공통성으로 들어있는 게 뭐지요? 행복하게 사는 것. 그거 빼버리면 없잖아요. 인간이 이 행복운동을 한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인간 자기가 자기의 불행운동을 하고 있다 그 말이요. 인간 자기가 자기의 불행운동을 해.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우리 인간의 지식이 정확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지식이 절대 정확하겠습니까? 아무렴 하나님이지요. 해가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집니다. 이게 지구가 돈 것 같습니까. 해가 돈 것 같습니까? 지구가 돈 거지요. 그런데 인간들이 볼 때는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으로 보인단 말이요. 그러니까 그런 말은 믿지 말아라. 그런 눈은 믿지 말아라 그 말이요.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고 하는 그런 거 믿지 말아라 그 말이요. 자기 지식 자기 눈이 정확하다고 믿으면 안 된다 그 말이요.

 

우리 인간은 인간으로 생겨났다 그러면 불멸의 존재입니다. 두 번째는 영원히 격차적인 존재입니다. 금생내세에 영원히 격차적인 존재다. 세 번째는 영원히 행복과 존영의 존재로 살아야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고 하나님의 이치대로 사는 게 자기에게 행복이라 그 말이요. 네 번째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내가 나를 존귀한 자로 만드는 것보다도 하나님 당신은 나를 존귀하게 만드시고자 하는 면에 대해 나보다도 더 신경을 쓰시는 분이시다.

 

다섯 번째는 하나님은 나를 영원히 존영자로 지었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믿을 만합니다. 왕은 우상을 향해서 절을 하면 내가 존귀해진다고 말하면서 절을 하라고 그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을 안 해야 존귀해진다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다니엘의 세 친구는 타 죽을 각오를 하고 절을 하지 않아서 불속에 떨어졌지요.

 

그래, 왕의 말대로 그들이 타 죽었습니까? 안 타죽었지요. 누구의 말씀대로 하니까 존영자가 됐지요? 하나님의 말씀이지요. 그게 믿어지느냐 그 말이요. 현재가 과거가 되고, 미래가 현재가 되니 틀림이 없다 그 말이요. 그런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 말이요.

 

우리는 매사에 모든 사건 환경 속에서 성전을 잘 짓고 가야 된다. 그 노력의 대가는 나타나게 된다. 미래가 현재가 되고, 현재가 과거가 되는 그 날에는 나타나게 된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지식대로,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는 것이 자기에게 존영이 온다. 영원히 존영자가 된다 그 말이요.

 

기도 올립시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을 영원한 존영자로 만들어 주고 싶으셔서 구약의 사건과 존재들을 일으켜서 그 속에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심 감사합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겪은 사건을 들어서 우리의 눈앞에 경계로 깨닫게 해 주심 감사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의 진리지식대로 명령대로 잘 믿으려 하지를 않습니다. 인간 자기의 마음이 세상이 좋아하자는 대로 따라가면 자기가 행복해질 것처럼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분명히 믿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지식, 절대적인 지혜의 그 말씀을 가지고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니 현재가 과거가 되고, 미래가 현재가 되는 그 날에 분명히 절대 정확한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저희들은 믿습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 저희들이 잠깐 사는 동안에 말씀대로 살다가 가는 복된 당신의 자녀들이 다 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타이핑 했습니다)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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