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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건축의 방해자는 남이 아닌 바로 나다.

에스라 궁극이............... 조회 수 1525 추천 수 0 2014.03.21 10: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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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스1:1-3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2000년대 설교 

1장 1절-3절.

 

1절-3절: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기도: 저희 인생은 뜬구름과 같고 지나가는 화살촉과 같아서 저희의 인생이 존재하는 그 기간 동안 시간이 멈춤이 없이 지나가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무리 오래 산다고 해야 인간은 6, 70년인데 모르는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6, 70년이 자기에게 해당되는 것처럼 생각을 하고 있다가 30도 못 돼서 세상을 떠나가는 사람도 있고, 10대도 못 돼서 세상을 떠나가는 사람도 있고, 낳자마자 세상을 떠나가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6, 70년을 혹은 100년을 장수하고 산댔자 과거사를 생각해 보면 하나의 헛된 꿈에 불과하고, 남은 것이라곤 노쇠와 백발밖에 없는 것을 우리는 인생들을 보고 느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도 깨닫지를 못하면 깨닫지 못한 중에 미래 없이 짐승의 생각을 가지고 짐승처럼 살다가 죽을 뻔한 저희들인데 아버지 하나님께서 불러주시고 깨닫게 해 주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다가 갈 수 있는 이 큰 은혜 주심을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저희들의 남은 인생길이 얼마나 될 런지 모르지만 아무리 깨달아도 또 비교를 해 보아도 예수님을 잘 믿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이 이상 좋은 것이 없는 것을 발견을 할 수가 있고 느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통해서 구구절절이 깨닫게 해 주시고, 이 세상에서 모든 역사가 나 하나를 똑바로 만들려고 하는 하나님의 구원역사인줄 알고 패역을 부리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서 잠깐 동안의 이 한 세상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만들어지며 살다 가는 복된 자가 될 수 있도록 축복을 해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우리가 성경을 역사적인 측면에서 보면 정확성이 없습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만든 연대표를 보면 많은 차질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어요. 이렇게 정확성이 없는 것이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은혜일지도 모릅니다. 그 이유는 뭔가 하니 성경을 연구할 때 역사에 얽매이지 말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계시를 깨닫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데까지는 역사를 연구를 할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역사에 매여 놓으면 하나님의 본뜻을 잊어버리고 만다 그 말이요.

 

성경은 몇 년 몇 월 며칠 이런 것을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 ‘몇 년 몇 월 며칠 날 예수님이 오신다. 전쟁이 난다’ 그런 걸 가르쳐줄 목적으로 돼 있지 않다 그 말이요. 성경 전체가 형용계시고 모형계시 상징계시 등 많단 말이요. 그러니까 우리는 ‘그런 것들을 들어서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 것인가’ 하는 그 면을 배워서 깨달으면 된다 그 말이요. ‘예수님이 몇 년 몇 월 며칠 날 온다’ 그런 거 몰라도 된다 그 말이요. 성경을 깨달으면 된다.

 

이제 정확도는 없지만 우리가 대강의 역사적인 면을 생각을 해 봅니다.

 

유대인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간 것은 주전 606년입니다. 유대인들을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아간 왕은 느부갓네살 왕만이 아닙니다. 그 뒤에 여러 왕들도 있는데, 느부갓네살 왕은 나포포리살이라는 왕인인데 625년에 건국을 해가지고 604년에 죽었습니다. 죽으면서 자기 아들 느부갓네살을 사령관으로 입명을 했는데 임명받을 때가 609년이었고,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1차 공격한 것이 606년입니다. 그 때에 많은 사람이 포로로 잡혀갔는데 다니엘과 세 청년도 잡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2차로 포로로 잡아갔는데 그 때가 597년. 이때는 여호야김 왕 때입니다. 그리고 이 때 에스겔 선지자를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그리고 586년에 3차로 포로로 잡아갔고, 그 후로 4차로 포로로 잡아갔는데 이 4차 포로는 잘 나타나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각 년대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대강은 그렇게 추정을 하는 거지요.

 

예레미야의 예언이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다가 70년 만에 돌아온다고 했는데, 이 바벨론 포로는 1차 포로에서 계산을 한 겁니다. 606년에 1차 포로가 된 겁니다.

 

68년 후 메대 다리오 왕에 의해 망했고, 해방을 기대했지만 당시 다니엘이 국무총리를 했고, 또 사자 굴에 들어간 일이 있고, 섭정을 했습니다. 2년 후에 파사의 고레스 왕에 의해서 바벨론은 정복을 당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 앞에 충성스런 다니엘이 고레스 왕에게 이사야서를 보이지 않았겠나 짐작을 합니다. 이사야는 히스기야 왕 때부터 고레스 왕 때까지 활동을 했는데 이 이사야가 쓴 글을 다니엘이 고레스 왕에게 보여줬지 않았겠나 그렇게 생각한다 그 말이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지 70년 만에 1차 귀환을 하는데, 여호수아 제사장과 총독 스룹바벨이 돌아옵니다. 물론 이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도 있는데 이 여호수아는 아닙니다. 이 둘의 시대적 차이는 엄청납니다.

 

여호수아가 돌아온 지 2년 후에 성전을 짓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할 수 있고, 1장과 2장의 사이는 2년이라는 긴 세월이 있겠다 그렇게 추정을 하고, 3장 8절에서 2년 후에 성전을 짓기 시작했고, 4장에서는 원수들의 방해가 있었습니다.

 

3장에서부터 고레스의 명령에 의해서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2년 후에 이 왕은 죽고 아닥사스다가 왕으로 즉위를 했는데 당시는 정권을 넘겨줄 때는 항상 평화적이 아니고 혁명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레스가 죽은 것 역시도 흔히 있을 수 있는 피살입니다.

 

아닥사스다 왕이 즉위하니 성전건축 방해자들이 아닥사스다 왕에게 고소장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그 고소장은 기각이 돼버렸습니다. 그래서 성전건축을 할 수가 있었는데, 4장 1절로 보면 성전 기공식을 할 때에 고레스가 생존을 했었습니다.

 

유대 예루살렘 본토에는 혼혈족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이 혼혈족이 된 것은 앗수르 왕이 유대나라를 정복해서 유대인들을 분산정책을 썼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모이면 힘이 세지니까 앗수르 왕이 북조 이스라엘을 정복을 해서 그 북조에 살고 있던 이스라엘 청년들을 동방나라로 이민을 보내버렸습니다. 그리고 또 이방인들을 이스라엘 땅에 이주시켜서 본토에 남아있던 자들과 결혼을 하게 되니 혼혈족이 나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울러 이스라엘에 남아있는 자들 중에 아무나 끌어다가 제사장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이제 70년 후에 바벨론에 포로 되었던 유대인들이 돌아오니까 본토에 남아있으면서 이방인과 결혼을 해서 혼혈족이 된 자들이 유대의 주인행세를 한다 그 말이요. 이들이 바로 성전건축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해서 북조 이스라엘과 남조 유다는 서로 적대감을 가지기 시작한 겁니다. 남조 유다가 북조 이스라엘은 이방인이라고 하는 거지요.

 

우리가 주변에 외국인과 사는 걸 보는데 그것은 왜 보여주느냐? 신앙사상의 혼합성을 깨닫게 해 주려고 하는 거지요.

 

참고:

 

입다가 유브라데 강에서부터 홍해 시나이 반도까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축복으로 주신 땅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땅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무력으로 빼앗아 놓고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으로 주신 땅이다’ 그렇게 주장을 합니다. 말하자면 이스라엘 백성들로서는 그들의 신앙사상으로 말하기를 ‘이 땅이 내 것 같으면 너희들에게 줄 수 있다. 그러나 이 땅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사품으로 주셨기 때문에 너희들에게 줄 수 없다’ 하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도 보면 이스라엘에서 입다의 딸의 후손들은 여자군인들이 많다는 거지요. 몸에 피가 다할 때까지 하나님이 주신 유브라데 강에서부터 시나이 반도까지의 땅을 빼앗길 수가 없다는 겁니다. 육적으로 봐도 참 강한 정신이라 그 말이요.

 

시나이 반도가 어디냐 하면 애굽을 건너가자마자 세모로 된 시내산 땅이 있지요. 그 끝까지를 ‘우리 땅이다’ 하면서 성경을 내놓고 증명을 한다 그 말이요. ‘우리가 범죄 했을 때는 너희들이 이 땅을 차지하고 살았지만 이제는 우리들에게 되돌려 준 것뿐이다’ 한단 말이요.

 

바벨론에서 포로로 살던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예언대로 7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서 성전을 짓는데, 북조 이스라엘이 망해서 이들이 갈대아 지방으로 이민정책을 당하면서 본토에 남은 자들은 혼혈족이 돼버렸습니다. 그래서 성전을 짓는데 혼혈족이 된 자들과는 같이 성전을 지을 수 없다고 하니까 그 보복으로 돌아온 자들을 미워하는 겁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이들은 본토에 남아있던 자들이 혼혈족이 돼버렸으니 이들을 개(犬)라고 그런단 말이요.

 

우리는 오늘날 예수 믿는 기독교 안에서도 이런 걸 볼 줄 알아야 된다 그 말이요. 순수한 진리사상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비진리적인 신앙자들과는 같이 성전을 지을 수가 없는 겁니다. 물론 이게 계시적인 뜻이 있는 거지만 사실 또 우리가 교회 안에서 예배당을 짓는 일이 있다고 할 때도 불신자들을 끌어들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과 일을 같이 하게 되면 거기에는 어떤 일이 벌어진다 그 말이요. 얼마든지 그게 있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성전을 같이 안 짓는다. 지으면 안 되지요.

 

이 히브리 민족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지요? 이들은 지독한 민족이라고 소문이 나 있습니다. 이들은 빈손을 들고 애굽에서 해방이 되었고, 해방이 된 후에 40년간 빈손으로 광야생활을 해 나가면서 군사훈련을 하고 무기를 만들고 했습니다. 참 그 깡아리 있는 백성들 아니요?

 

그리고 요단강 동편 쪽으로 올라오면서 동편에 있는 이방민족들을 정복을 하고 올라온다 그 말이요. 요단강 건너편 서쪽에 있는 여리고성만은 정복을 못한다고 했는데 이 히브리 민족 이스라엘 백성들은 배도 없이 요단강을 건넜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이 요단강은 급류란 말이요. 이 강물에 쓸려 내려가면 뼈도 못 추리고 사해바다로 떠내려가서 소금바다에 묻히고 마는 거거든요.

 

그해서 사람들이 어디로 다니느냐 하면 요단강이 이쪽으로 흐르면 애굽에서 홍해를 건너서 가사 지중해 쪽으로는 블레셋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장사꾼들이 거기로 왔다 갔다 하는 거지요.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가운데로 홍해가 흐르고 있고 동쪽으로 올라오면서 서쪽의 지름길인 가사 길로 오는 게 아니고 동쪽으로 정복을 하며 올라온다 그 말이요.

 

이 길을 통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요단강 서쪽에 있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면 요단강을 건너야 되는데 배도 없이 어떻게 이 요단강을 건너느냐 그 말이요. 그리고 요단강 서쪽에 여리고성이 있는데 이 성의 성벽이 얼마나 두꺼우냐 그 말이요. 그런데도 배도 없이 이 요단강을 건넜고, 그 성을 정복을 했다 그 말이요.

 

요단강을 건널 때에 여호수아의 지도 인도를 받으면서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요단강물에 들어서서 발이 닿자마자 그 가운데로 요단강물이 끊어져서 벽을 이루는 거지요.

 

이것이 역사적으로 있었던 일인데 그 역사를 들어서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느냐? 여기에는 신앙의 계시사상이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가면, 진리말씀을 붙잡고 나가면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 정지가 된다. 사망성이 정지가 된다 그 말이요. 그걸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신앙생활 속에는 그런 게 들어있다 그 말이요. 그런 걸 우습게 여기지 말라 그 말이요. 예수 믿고 교회 다니는 이것을 하나의 종교로 생각을 하지를 말아라 그 말이요. 사망성을 끊어놓고 생명성으로 들어간다 그 말이지요. 말씀의 역사가 있다 그 말이요. 죄를 이긴다 그 말이요.

 

여호와 하나님의 법궤가 이스라엘을 도운다고 하면 이방민족들은 꼼짝을 못합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이걸 알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지을 때에 ‘이들이 범죄를 하도록 만들자. 그러면 약해진다’ 하면서 이스라엘이 범죄 하도록 만드는 거지요.

 

다니엘의 경우도 이방인들이 다니엘을 탁 잡아서 자기들 손으로 사자굴 속으로 떨어뜨리면 자기네들이 죄를 받으니까 다니엘이 스스로 범죄 하도록 만드는 거지요. 그래서 ‘30일간 다리오만 섬겨라. 딴 걸 섬기면 사자 굴이 집어넣는다’ 하는 법을 만들었지요.

 

그렇지만 다니엘은 하나님을 섬겼지요. 그래서 모함하는 자들이 ‘이 때다’ 하고 다니엘을 붙잡아서 사자 굴에 집어넣었지요. 그러니까 스스로 올가미에 걸리도록 하는 거지요. 그렇게 해서 망하도록 하자는 건데 다니엘은 그런 꾀에 속지를 않지요.

 

결국 신앙생활을 바로 하는 사람들은 그 자자손손 후손은 절대로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어떤 면으로? 어떤 면으로 건 잘 되어나가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 말이요. 우리가 이것을 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섭리가 그렇다 그 말이요. 신앙생활 속에는 모든 비법이 다 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다 들어있다 그 말이요.

 

모압 왕이 발람 선지자의 축복을 들어서 이스라엘에 저주를 만들라고 그랬지요? 그래서 발람 선지자가 모압의 미녀들을 파송해 가지고 히브리 교훈을 받는 이스라엘 청년 특공대원들에게 제사음식을 먹이고 모압의 미녀들과 음행을 하게 했지요.

 

그렇게 되니까 하나님께서 그 이스라엘 청년들을 그냥 쳐버리지요.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거나 우상의 제물을 먹거나 다른 신을 섬기거나 하면 하나님께서는 인정사정 보지 않고 쳐버린단 말이요. 틀림이 없단 말이요. 이러한 사실을 모압 왕 바락이 발람 선지자로부터 전해 듣고 이스라엘 청년들로 하여금 우상의 제물을 먹고 음행을 하게 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게 한 것입니다.

 

4장 2절에 보면 ‘성전을 짓는데 우리도 같이 짓자’ 하는 게 표면적으로는 호응이지요. 그러나 이면적으로 보면 방해를 하려고 들어온다 그 말이요. ‘진리를 양보하면 너희들의 일을 협조하겠다.’ 이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진리를 양보하면 내가 다음에 너에게 더 잘 해 줄게. 오늘 교회 안 나가면 다음부터 내가 나가주마.’ 절대로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속아 넘어가면 안 돼요. 진리를 양보하는 것은 천금이 오더라도 소용이 없는 짓입니다. 마귀가 그런 수법을 쓰는 거지요.

 

4장 3절로 보면 여호수아가 나오는데 이 여호수아는 그 이름이 예수도 되고, 예수이름이 호세아도 되고 호세아 이름이 예수아도 됩니다. 모두 같은 말입니다. 히브리 문자에 모음이라고 하는 글씨가 있는데 그 글씨가 붙고 안 붙고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집니다.

 

어쨌든 이 히브리 민족들이 ‘이스라엘 너희들은 성전을 짓는데 상관이 없다’고 그랬다 그 말이요. 이게 무슨 말인가 하니 성전을 지을 때는 인본주의를 쓰지 말라는 겁니다.

 

보이는 일을 할 때에는 보이지 않는 일을 위주로 해야 된다. 우리 기독자들은 보이는 일이 목적이 아니라 그 말이요. 보이는 그건 하나의 방편들이고 보이지 않는 그 면에 신경을 써라 그 말이요. 보이는 일을 하는데 있어서 그의 마음이 어떻게 돌아가느냐?

 

안 믿는 사람들은 이면적인 그 면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의식을 못합니다. 그러니까 보이는 일만 빨리 하려고 애를 쓰지요. 안 믿는 사람은 그래요. 우리 기독자들은 성전건축은 구원건설을 보여주는 것이니 구원건설에 인본주의를 쓰면 안 된단 말이요. 우리는 왜 보이지 않는 이것을 해야 되느냐? 이것은 자체적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입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전도는 도를 전하고 도를 받는 겁니다. 그런데 보면 가난하면 예수전도가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어요. 그건 잘못된 소리지요.

 

요한계시록 3장 12절로 보면 면류관을 빼앗기지 말라고 그랬지요. 이 면류관은 마귀가 빼앗아 가는 게 아니고 동역자가 빼앗아 갑니다. 동료가 빼앗아 간다 그 말이요. 예를 들면 마라톤을 하는데 구경꾼은 안 뛰기 때문에 면류관이 필요가 없잖아요. 그러면 면류관을 누가 빼앗아 가느냐? 같이 뛰는 사람 중에 빼앗아 간다 그 말이요. ‘행한 대로 갚아준다. 선한 싸움을 싸워라.’ 천국은 경기장의 경주와 같습니다. 모두 격차성이 있는 말들입니다.

 

4장에서 성전건축 중지령이 내리고 구원중단이 됐습니다. 이로부터 5장에 이르기까지 15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1장에서 5장까지 17년이 걸린 셈이지요. 6장에서 7장 사이는 60년 내지 70년이 걸리고, 10장까지는 근 100년이 걸립니다.

 

5장에서 보면 학개 스가랴가 나오고, 15년 만에 아닥사스다가 죽고 다리오 2세가 즉위를 하지요. 이렇게 되니까 옛날 사람들이 성전건축 하는 걸 또 방해를 합니다.

 

고레스 원년에 성전을 지으라고 했는데 이들이 다리오 왕에게 고소를 합니다. 그러나 ‘파사 나라의 법은 변개치 않는 법이다’ 하고서 즉시 명령을 해가지고 ‘유대인들이 성전을 짓는데 세금은 모두 예루살렘으로 보내라’ 하고 다리오 왕 2세가 명령을 내린다 그 말이요. 이래서 이제 반대자는 처형이 되는 거고 성전은 완공이 되는 겁니다.

 

성전을 짓는 것을 도와주어야 하듯이 구원건설을 하려면 성전을 지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하는 거지요. 하나님이 환경을 만들어 주지 아니하면 자기 혼자서는 못한다 그 말이요.

 

기독자가 성전을 짓는데 있어서 세상 누구든지 그 무엇이든지 알고 보면 협조자들입니다. 아무리 강한 원수라도 협조자들이지요. 구원건설, 영적 성전을 짓는 면에 전부 다 협조자들이다.

가룟유다 자기는 주님을 해치려고 했지만 예수님은 해를 받았어요, 안 받았어요? 인간 편에서 보면 해를 받은 것 같지. 그러나 해를 안 받았어요. 도리어 이용을 했지요. 가료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먹음으로 해서 예수님께서 하나님 앞에 구원건설을 100% 무난하게 이루었지 않았느냐 그 말이요. ‘자기의 피로 사람들을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이용을 한다 그 말이요.

 

권투선수가 링에서 면류관을 따려면 상대가 있어야 될 거 아니요? 자기를 치는 상대가 있어야 된단 말이요. 아무도 없이 혼자서 헛손질을 할 수 있느냐? 안 되지요. 상대가 있어야 그를 이용해서 면류관을 딸 수가 있는 거지요. 그런 것처럼 그 말이요.

 

누가 기독자 자기를 해치느냐? 누가 자기를 해치는 것 같아요? 자기이겠습니까, 남이겠습니까? 자기지요. 그렇지요. 가만 보면 자기가 자기를 해쳐요. 확실히 깨달을 수가 있어요.

 

저는 젊으나 늙으나 많이 봐요. 가만 보면 고생을 안 할 것도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남이 고생을 시키는 게 아니고 자기가 머리를 못써가지고 그렇게 고생을 하고 있다 그 말이요. 모든 게 그래요.

 

내가 타로부터 얻어맞는 게 왜 얻어맞느냐? ‘남이 나를 때리기 때문에 얻어맞는다’ 그런 해석보다도 ‘내가 실력이 없기 때문에 얻어맞는다’ 이렇게 되어야 내가 노력을 하게 되지. 그렇지 않겠어요? 우리가 간혹 그런 거 볼 수가 있지요? 운동세계에서 실컷 얻어맞았다 했을 때 ‘옳지, 내가 실력을 길러야지. 다음번에는 내가 저 놈을 두들겨 패서 넘겨뜨려야지’ 하는 거 있잖아요.

 

실력만 키우면 되는 걸 내 실력은 키우지 않고 얻어맞고 남 원망만 하는 그건 안 된단 말이요. 그러니까 뭐냐? 실력이 없으면 피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 후에 실력을 길러가지고 싸워서 승리를 하는 수밖에 없지 않느냐 그 말이요. 실력이 없는데 어떻게 싸우느냐? 못 싸우지요. 얻어맞아 죽는 수밖에 없는 거지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를 해칠 자는 오직 자기뿐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자식들도 다 컸고, 못 사는 것도 아니고 다 밥숫갈놓고 먹는데 왜 저렇게 아옹다옹 고생을 하나? 가만 보면 자기 스스로 자기를 축소를 시키고 있고, 이런 사람의 말을 가만 들어보면 맨 다른 사람에 대해 원망이 가 있고 그렇단 말이요. 그러니 자기 속에서 그 성질이 자기에게 고통을 주고 있어요. 자기가 자기를 치고 있어. 얼마나 미련하냐? 답답하더라 그 말이요.

 

우리 기독자들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런 면을 잘 발견을 하고 깨닫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 못된 자기를 이길 수가 있고, 다른 사람을 이길 수가 있고, 세상에서 지혜롭게 성전건축을 즉, 구원건설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바로 살 수가 있다 그 말이요. 그런데 깨닫지를 않으려고 그런단 말이요.

 

기도 올립시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신 이 성경말씀은 하나의 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역사할 수 있는 하나님의 역사요 모든 사물을 뚫어보고, 보이지 않는 그 이면까지 보고 깨닫고 지혜를 쓸 줄 아는 이런 사람이 될 수가 있는 말씀인데 하나님 아버지, 모르면 당할 수밖에 없고, 모르면 자기가 고통을 당하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경험을 하고 세상에서 지금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럼에도 하나님을 바로 찾는 사람이 없고, 진리를 붙잡는 사람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자기를 하나님 앞에 존영자로 만들어 볼까’ 하는 그런 사람이 참으로 보기가 드뭅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은 깨닫습니까? 깨닫는 족족 하나님 앞에 옳고 바르고 지혜롭고 슬기롭고 명철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지금도 현실세상에서도 우리의 몸 안팎으로 모든 사건 환경이 많이 있는데 알고 보면 나로 하여금 실력을 키우기를 원하고 키워주려고 모든 것을 주시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들은 어리석어서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인간 멋대로 살다가 죽음으로 끝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을 강력하게 붙잡고 역사해 주시고, 하나님을 깨닫게 해 주시고, 인간의 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확실히 깨닫고 사는 복된 자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타이핑 했습니다)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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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72 요한복음 성탄날에 '회개'하라 요7:18  허태수 목사  2014-03-25 1017
10471 에배소서 그리스도인의 입체적인 인격에 대해서 엡3:19  허태수 목사  2014-03-25 1188
10470 마태복음 성서를 배우고 깨닫는 일에 대한 두 비유 마22:1-14  허태수 목사  2014-03-25 1209
10469 미가 이제, 우리의 신앙 농사는 미5:3  허태수 목사  2014-03-25 1064
10468 마태복음 허목사의 1년 농사를 추수함 마13:3-8  허태수 목사  2014-03-25 1319
10467 열왕기하 물 위로 떠오르는 도끼의 연금술이 필요한 시간 열하6:6  허태수 목사  2014-03-25 1236
10466 마가복음 더 이상 가난한 여인의 '두렙돈'을 들먹이지 말라. 막12:42  허태수 목사  2014-03-25 1464
10465 잠언 자녀 교육에 실패하지 말라 잠22:6  한태완 목사  2014-03-24 2103
10464 야고보서 경건한 생활을 하라 약1:26-27  한태완 목사  2014-03-24 1690
10463 유다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라 유1:17-25  신대현 목사  2014-03-23 1697
10462 요한복음 박해를 받아봤는가? 요15:18-20  강종수 목사  2014-03-23 916
10461 사무엘상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삼상15:22  한태완 목사  2014-03-22 6088
10460 마태복음 도전과 적극성 마11:12  한태완 목사  2014-03-22 1434
10459 에스라 성전 건축이 성도들이 본업이다. 스6:1-12  김경형 목사  2014-03-21 1301
» 에스라 성전 건축의 방해자는 남이 아닌 바로 나다. 스1:1-3  김경형 목사  2014-03-21 1525
10457 예레미야 기회를 선용하자 렘22:10-30  최장환 목사  2014-03-19 1348
10456 이사야 하나님의 지혜 사22:1-25  최장환 목사  2014-03-19 1185
10455 고린도후 생명에 이르는 사랑의 향기 고후2:14-16  한태완 목사  2014-03-18 2079
10454 마태복음 인간 생명의 가치 마16:26  한태완 목사  2014-03-18 1652
10453 고린도전 믿음은 능력이 있어야 한다 고전2:1-5  강종수 목사  2014-03-16 1381
10452 사도행전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 행2:36  김남준 목사  2014-03-15 2334
10451 사사기 생명과 번영을 주시는 하나님 사44:1-4  김남준 목사  2014-03-15 1409
10450 시편 내 얼굴을 찾으라 시27:8-9  김남준 목사  2014-03-15 2095
10449 레위기 무엇으로 감사할까? 레7:12  김남준 목사  2014-03-15 1843
10448 시편 가장 큰 감사 시116:12-14  김동호 목사  2014-03-15 1949
10447 마태복음 하나님이 주인이신 교회 마16:13-20  김동호 목사  2014-03-15 1915
10446 사사기 강할 때와 약할 때 삿15:14-19  김남준 목사  2014-03-15 2122
10445 로마서 권위와 권위주의 롬13:1-7  김동호 목사  2014-03-15 1399
10444 시편 방황하기 쉬운 인생 시119:10  한태완 목사  2014-03-15 1627
10443 에스라 성전건축을 안 하면 포로로 잡혀 갑니다. 스5:6-17  김경형목사  2014-03-14 1268
10442 에스라 천국의 차등성 때문에라도 성전을 꼭 짓고 가야 합니다. 스5:6-17  김경형목사  2014-03-14 1229
10441 요한일서 죄의 사슬을 벗는 길 요일3: 4-5  한태완 목사  2014-03-13 1639
10440 창세기 준비를 철저히 창48;1-22  최장환 목사  2014-03-12 1454
10439 출애굽기 믿음으로 하자 출14;1-25  최장환 목사  2014-03-12 1240
10438 로마서 하나님 나라 건설과 확장의 사명 롬14:17  한태완 목사  2014-03-12 1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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