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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고후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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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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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뒤에 오는 기쁨
본문 : 고후 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나는 매일 아들에게 "괜찮니?"라고 묻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늘 하던 대로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괜찮니?" "네, 괜찮아요." 아들은 이렇게 대답하더니 내게 되물었습니다.
"아빠는 괜찮아요?" 처음으로 아들이 내게 괜찮냐고 물었던 순간의 감격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아빠의 사랑에 반응을 보일 만큼 아이가 성장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기뻤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또한 우리와 사랑의 반응을 주고 받을 때 기쁘실 것입니다. 죄인이었던 우리가 의로우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분과 영원히 소통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죄로 인해 마땅히 죽어야 할 우리를 대신해 죄 없는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우리 죄를 대속하는 능력을 보이시고 우리를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더 이상 죄인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불해야 할 죄값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완납하셨기에 그분 안에 있는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고통을 참으신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 죄인을 구원한다는 기쁨이 고통보다 더 컸고, 또 죽음이 끝이 아님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러더포드의 말처럼 배는 돛 때문에 먼 바다까지 항해할 수 있고 성도는 십자가 때문에 천국을 향해 전진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가능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고난 속에서도 순종하십시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히5:8)
작자 미상의 글입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이 개최됩니다. 올림픽 때마다 그랬지만 올해 올림픽에서는 어떤 선수가 또 드라마틱한 메달을 따게 될지 기대가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금메달이라는 결과만 생각하지 그 과정은 간과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지난 베이징올림픽에서는 유도의 최민호 선수가 금메달을 따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기자들이 왜 그렇게 울었느냐는 질문에 고생한 것이 필름처럼 머릿속을 지나가서 그랬다고 했습니다.
4년이라는 고통의 세월이었지만 금메달을 따는 순간 그 고통이 기쁨의 눈물로 모두 다 녹아져 버린 것입니다.
이외수씨의 ‘하악하악’이라는 책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고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으니 나는 정말로 행복하다. 그리고 이 행복은 바로 먹고 싶을 때 먹지 못하고 자고 싶을 때 자지 못했던 젊음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 젊은 시절의 고생을 너무 힘들어 하거나 한탄하지 마십시오. 지금 하고 있는 고생은 더 깊은 행복과 더 큰 기쁨을 끌어올리는 마중물이기 때문입니다. 젊었을 때 먹을 것 다 먹고 잘 것 다 자면 행복의 원천과 기쁨의 깊이를 끝내 모른 채 나이만 먹어가게 될 것입니다.
나는 약 20년 가까이 지금의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먹는 것도 조절은 하지만 운동을 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평상시 따로 시간을 내기 힘들기 때문에 집에서 간단하게 5Kg의 바벨을 들었다 내렸다하고 윗몸일으키기 그리고 TV를 보며 헬스사이클을 타는 정도의 운동을 합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운동을 할 때 평상시보다 1개를 더 할 때 오는 고통이 있습니다. 그 근육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으로 배를 잡고 뒹굴기도 합니다. 하지만 뒤에는 야릇한 쾌감 같은 기쁨이 있습니다. 고통이 좋다고 까지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숨이 막히는 고통이었지만 되돌아보면 건강이 좋아지는 기막히게 좋은 것이 된 고통도 많습니다.
참기름은 참깨를 볶아 짜야 나옵니다. 정금도 용광로 속에 들어가야 나옵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23:10)
우리 삶도 고통과 인내를 참고 견뎌내야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이 이루워지고 죽음 역시 많은 고통을 수반합니다.
토머스머튼은 진리는 반드시 고통다음에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여러 번 그가 쓴 책에 반복한 것만 보아도 고통은 진리인 것만은 빼놓을 수 없는 정의와 같습니다.
여자들이 시집을 갑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데 그 분만의 고통은 인간이 겪는 고통 중 가장 큰 것이라고 합니다. 그때 우리 몸에 있는 마약 성분이 분비가 되는데 바로 엔도르핀이라는 것입니다. 이 엔도르핀은 병원에서 처방하는 모르핀이라는 마약성분보다 10배나 강합니다. 마약성분인 모르핀보다 10배나 강한 이 엔도르핀은 아이를 낳을 때 가장 많이 분비된다고 합니다. 그 고통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엔도르핀이 분비되지 않으면 사람이 견딜 수 없기 때문이랍니다. 사람의 몸은 정말 신비로운 것 같습니다.
그러면 여자들이 아이를 낳을 때 그냥 낳을까? 아닙니다. 그냥 비명만 지르고 낳는 여자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여자도 많습니다. 여자들이 애를 낳을 때 자기 남편 욕을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내가 그 인간 때문에 이렇게 아파 죽게 되었다는 둥 다시는 애를 낳는가 두고 보라고 둥하면서 있는 욕 없는 욕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는 애를 낳지 않겠다고 합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그럴까요? 그렇게 생고생을 해서 아이를 낳으면 그 고통은 온데간데 없습니다. 아이 때문입니다.
그 아이로 인한 기쁨 때문에 그 고통은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다시는 애를 낳지 않겠다던 그 다짐 아닌 다짐은 어디가고 둘, 셋씩 낳습니다. 왜 그런가? 고통보다 기쁨이 크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떨림이 그들을 사로잡으니 고통이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 같도다’(시48:6)
지금 무엇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시험일 수도 있고 취업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결혼이나 해외 선교일 수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될 수 있습니다.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한 과정은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받는 이 고통도 훗날 기쁨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견뎌냅시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시34:19)
누구나 고통이라는 학교에 입학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고통은 우리 인생을 성장시키시는 하나님의 신비한 비밀입니다. 고통이 있기에 살아있음을 스스로 확인합니다. 고통이 찾아올 때 원망보다 그 뒤에 숨겨진 하나님의 손길을 봐야 합니다. 고통은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약5:13)
복음성가 ‘주님 손잡고 일어서세요’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마세요
고난의 뒤편에 있는 주님이 주실 축복 미리 보면서 감사하세요.
너무 견디기 힘든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이 일하고 계시잖아요.
남들은 지쳐 앉아있을지라도 당신만은 일어서세요.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이 손잡고 계시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 함을 믿는다면 어떤 역경도 이길 수 있잖아요.
왜 이런 슬픔 찾아왔는지 원망하지 마세요.
당신이 잃은 것 보다 주님께 받은 은혜 더욱 많음에 감사하세요.
너무 견디기 힘든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이 일하고 계시잖아요.
남들은 지쳐 앉아있을지라도 당신만은 일어서세요.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이 손잡고 계시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 함을 믿는다면 어떤 고난도 견딜 수 있잖아요. 어떤 슬픔도 참을 수 있잖아요
한 할머니가 16년 동안이나 온몸의 통증으로 사지를 움직일 수 없는 병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할머니는 주변 사람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감사하며 살아갔다고 합니다. 신체의 모든 부분이 마비되었어도, 오른쪽 엄지 손가락만은 아직 쓸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어느 날 이 할머니는 자신을 위로하러 온 한 방문자에게 “나는 감사할 일이 너무 많아요. 나의 모든 죄가 용서함을 받았으니 이제는 나의 구주 예수님의 크신 사랑 안에서 거할 수 있으며, 그 사랑을 마음껏 느낄 수가 있거든요” 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자 방문자는 의아해 하며 “때로는 낙심되지 않으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주저하지 않고 기쁨과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주님이 저를 이 세상에서 지켜주시는 한, 이곳에 누워 만족할 뿐입니다. 또 언제든지 주께서 부르시면 이 세상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감사는 평안입니다. 감사는 더 큰 감사를 낳습니다. 기쁨과 감사로 가득찬 생활을 합시다. 십자가의 고통 뒤에는 부활의 기쁨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고후1:5)
* 기도: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나의 생명이 되신 주님, 이 세상에 고통이 많은 것은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고난을 통해서 깊은 차원의 진리를 찾게 하옵소서. 고난 중에 위로와 평화의 주님을 바라보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서 늘 참고 기도하게 하소서. 우리에게 오는 고통 중에 삶의 의미를 찾고, 신앙의 힘으로 극복하여 성장의 기회로 삼게 하옵소서. 고통스럽고 힘든 일을 당할 때가 주께서 연단하시는 때임을 믿고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다리게 하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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