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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의 구름과 함께 30일

더깊은신앙으로 이현주 목사............... 조회 수 1663 추천 수 0 2014.03.27 15:26:21
.........
출처 : 번역 이현주 

사랑만이 갈 수 있는 곳

-Where Only Love Can Go

 


[‘무지의 구름’과 함께 30일]

 

 

 

무지의 구름(The Cloud of Unknowing)

 


  14세기 어느 무렵, 영성생활에 상당한 경력이 있는 익명의 젊은이가 좀더 높은 경지의 명상에 들어 또 다른 익명의 영적 스승으로부터 특별한 조언을 들었다.

  6백 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가 들은 영적 조언들―무지의 구름(The Cloud of Unknowing)―과 그 속에 담긴 영적 전통, 하느님께로 다가가는 길에 대한 일반의 상식을 산산이 부수는 전통으로, 많은 영적 구도자들이 돌아가고 있다.

  우리는 하느님에 대하여 뭘 좀 안다고 생각하면서 자랐고 그렇게 늙어간다. 그동안 인류가 발견한 선하고 고상하고 아름답고 진실한 모든 것들, 진실로 우리가 존중하는 것들―때로는 개별적으로 그것을 좋아하지 않아도―을 하느님과 결부시킨다. 우리는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그러면서도 선하고 너그럽고 자비롭고 연민어린 사람한테서 그분의 얼굴을 본다고 생각해왔다. 그런가 하면 잔혹과 무관심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다. 진실로 하느님은 이 모든 것들이다. 그분은 그냥 크신 게 아니라 한없이 크시다.

  이것은 하느님을 아는 ‘긍정적인’(positive) 길이다. 그런데 하느님을 아는 또 다른 길, ‘무지의 구름’의 길이 있다. 그것은 서구 영성 전통에 깊숙이 뿌리박은 길이지만 위대한 신비주의 스승들만이 그 길을 걸었다. 이른바 ‘부정적인’(negative) 길이다. 이 전통은, 하느님이 우리의 생각하는 능력을 멀리 벗어나 계신 분이요, 아무리 탁월한 언어로도 담을 수 없는 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굳이 하느님에 대하여 생각하고 말하기를 고집한다면, “하느님은 무엇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분은 우리가 경험하거나 이름 지어 부를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훨씬 다르고 엉뚱하게 다른 분이시다.

  그런즉 우리는 머리로 궁리하여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려 하는 대신, 인식의 한계를 스스로 인정하고 우리가 가는 이 길이 오직 사랑만이 갈 수 있는 길임을 이해한다. 우리에게는 무엇을 알 수 있는 능력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 ‘무엇’이 하느님일 경우, 우리가 써야 할 것은 후자다.

  이것이 명상의 길이다. ‘무지의 구름’의 길이다. 이 길은 단순히 ‘다른 하나의’ 길이 아니다. 가장 높고 가장 좋은 길로 우리에게 제시된 길이다.

 


  우리는 이성(理性)만으로는 지음 받지 않은 유일한 분 하느님을 결코 알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의 무능과 실패 속에서도 우리는 진실로 하느님을 알 수 있다. 성 데니스가 말했듯이, “하느님을 아는 가장 참되고 성스러운 지식은 무지로써 알아지는 것(that which i s known by unknowing)이다.”

 


  이는 언어놀음이 아니다. 명상하는 사람은 무지의 구름 속에 머물기 위하여 머리로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뒤에 두거나 밀쳐두고 그리고 그것들을 잊는다. 이 구름은 항상 우리와 하느님 사이에 드리워져 있는데, 그런데 그 구름이 우리가 그분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그것은 지식이 아니라 사랑이다. 어둠을 몰아내고 거리를 없애주는 사랑이다. 명상하는 사람은 지금 여기에서 영원한 하늘생명을 산다. 이것이 더 이상 죽음이 없는 하느님께로 다가가는 유일한 길이다.

  하지만 명상의 높은 경지는커녕 이제 막 영성의 길에 들어선 초보자들의 경우는 어떠한가? ‘무지의 구름’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영적 도락(딜레탕트)에 불과한 건 아닐까? 그것이 말하는 ‘어둠’을, 하느님을 찾는 초보자의 길에도 어김없이 환한 빛을 비춰주는 어둠을, 이해한다면 그렇지 않다. 이 길이 어디로 가는 길인지를 일러주는 것보다 더 길을 밝혀주는 게 없다. 수 세기 전에도 비슷한 비판을 받았을 저자는, 아무리 순진한 초보자라도 단순하고 온전한 사랑 안에서 하느님과 하나 되는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구도의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우리 믿음과 사랑의 목적이 하느님, 오직 하느님께 있음을 분명히 아는 게 중요하다. 언어는 결코 실재가 아니다. ‘무지의 구름’은 우리에게 이 사실을 거듭 일깨워준다.

  저자는 책의 첫머리에서 이것이 깊고 진지한 요구들로 만들어진 책이요 여정임을 분명히 밝힌다. 이 책을 읽으려면 마음을 집중해야 한다. 영성의 세계가 어떤 건지 한번 맛이나 보려는 자들, 명상의 변두리에서 얼쩡거리는 자들, 하느님께로 가는 여정을 달콤한 솜사탕이나 아늑한 산책 정도로 생각하는 자들을 위한 책이 아니다. ‘무지의 구름과 함께 30일’ 프로그램은 우리 같은 초보자가 ‘무지의 구름’의 가르침에 좀더 친근하게 익숙해지도록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경고한다. 살아계신 하느님 손 안에 떨어진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중심에 들어가기 위해 있는 우리의 언어를 피하여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말라. 너무 큰 상실이다!

[아침 기도]

오, 하느님.

제 가슴을 들여다보시고

제 욕망들을 드러내시고

그리고 제 비밀들을 읽으소서.

말로 옮기지 못하는 제 말을 들으소서.

당신 성령으로 저를 깨끗하게 하사

오늘 하루 동안 좀더 온전히

당신을 찬미하고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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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일

 


[밝아오는 아침에]

성령 안에 있는 나의 사랑스런 벗이여,

이제까지 그대는 착하게 살았지만

평범한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대 친구들과 별로 다르지 않게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 하느님께서 그대를

좀더 높은 경지로 부르심이 분명하다.

그대가 창조되던 바로 그 순간부터

그대를 위하여 품으신 당신의 사랑 때문에,

그대를 더 이상 안이한 상태에 머물러 있도록

혼자 버려두지 않기로 하신 것이다.

바야흐로 그대를 무(無)에서 빚어내시고

당신 피 값으로 구원하신 하느님의 영원한 사랑을

특별한 방식으로 그대는 경험하게 되었다.

 


그대는 이제 

하느님과 멀리 떨어져 살면서

만족할 수 없게 되었다.

 


그분은, 당신께로 가까이 다가가서

당신과 하나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의 불꽃을

그대 가슴에 당겨주셨다.

완전한 삶에 대한 동경의 끈으로

그대를 묶어 당신한테로 당기신다.

 


그대가 지금 듣고 있는 이 특별한 부름에

부디 마음을 집중하기 바란다.

 


충심으로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그분의 은총 가운데 굳게 서서

지금 그대가 조심스레 취하고 있는

특별한 삶의 방식을 계속 유지하여라.

그리하여 세속의 미묘한 유혹과

영적 원수들의 공격으로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을 찾는 길에서

내려서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온종일]

동경의 끈으로 저를 당신에게 묶으소서.

 


[하루를 마감하며]

여기, 모여드는 밤의 어둠 속에,

제가 당신과 함께 있나이다.

모든 세속적이고 영적인 원수들의

미묘한 유혹과 공격에서 저를 회복시켜주소서.

당신의 용서를 믿고,

오늘 하루 저에게 베푸신 당신 사랑을

몰라보거나 외면한 저의 흔적들을

망각의 구름에 묻어 뒤로 넘기게 하소서.

 


더 이상 당신과 멀리 떨어져 살면서

만족하지 않게 하소서.

 


당신의 크신 은총 가운데,

당신께로 가까이 다가가

당신과 하나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의 불꽃을

제 가슴에 당겨주소서.

완전한 삶에 대한 동경의 끈으로

저를 당신에게 묶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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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일

 


[밝아오는 아침에]

지금은 뒤에 있는 것을 잊고 앞을 바라볼 때다.

그대에게 이미 있는 것 말고

앞으로 있어야 할 것에 눈길을 모을 때다.

 


그리고 앞에 있는 것은,

그대가 영적으로 진보코자 한다면,

하느님의 능력과 그대의 동의로

항상 그대 안에서 작용하는

간절한 욕망을 품고 사는 삶이다.

 


하느님이 질투하는 연인이심을 기억하여라.

그대가 오직 그분만을 기꺼이 찾고자 하지 않는 한,

하느님은 당신을 향한 욕망을

그대 안에 불러일으키지 아니하신다.

그분이 요구하시는 것은

그대의 도움이 아니라 그대 자신이다.

그대의 단순하고 흩어지지 않는 눈길을 그분은 원하신다.

하느님이 당신 일을 그대 안에서 하시게 해드려라.

그대가 해야 하는 유일한 일은

그분 사랑으로부터

다른 데로 눈을 돌리게 할 수 있는 것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그대 영혼의 문과 창문들을 단속하는 것이다.

 


그대가 이 일을 기꺼이 하고자 할 때,

하느님이 그대에게 바라시는 것은

겸손히 기도로 그분의 사랑을 구하는 것뿐이다.

그분이 언제나, 곧장, 그대를 도우시리라.

 


그때 그분을 불러 모시어라.

기꺼이 그대를 돕고자, 그대를 기다리고 계신다.

어찌하여 망설이는가?

 


[온종일]

그분이 당신 일을 그대 안에서 하시게 해드려라.

 


[하루를 마감하며]

여기, 모여드는 밤의 어둠 속에,

제가 당신과 함께 있나이다.

제 뒤에 있는 모든 것을

제 마음에서 내려놓게 하소서.

이미 지나간 모든 일을 망각의 구름에 묻고,

저에게로 오시는 당신 말고는

그 무엇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제 영혼의 문과 창문들을 지키게 하소서.

 


당신은 당신하고만 함께 있고자 하는

간절한 욕망을 제 안에 불러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분, 질투하는 연인이십니다.

당신이 저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저의 도움이 아니라 제 가슴이고,

그 안에 있는 저의 모두입니다.

 


지극한 단순과 신뢰로 제 눈길을 당신께 모아,

제 가슴을 당신만의 것으로 삼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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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3일

 


[밝아오는 아침에]

그대 인생의 목적은 지금 그대 가슴을

순수한 사랑의 행위로 하느님께 들어 바치되,

그분이 그대에게 베푸시는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분 안에서 그분을 위하여 바치는 것이다.

 


오직 그분만 생각하여라.

그대 머리와 가슴으로 하여금

이리저리 떠돌아다니지 못하게 하여라.

 


하느님 아닌 다른 모든 것을,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피조물이라 하여도,

있는 힘을 다 하여 밀쳐두어라.

그리하여,

그대 생각이나 욕망들이

하느님 아닌 그 어떤 것도

향하지 않게 하여라.

그것들을 그냥 거기 있게 놔두고,

눈길조차 주지 마라.

 


하지만 미리 말해둔다.

그대가 그렇게 하느님께로 가서 닿는다 하여도

거기서 그대가 보게 될 것은

오직 어둠, 무지의 구름뿐이다.

이 구름이,

그대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언제나 그대와 그대의 하느님 사이에 있고,

영원히 있을 것이다.

그대는 이성(reason)의 빛으로 하느님을 분명하게 뵐 수 없다.

그대는 이 어둠 속에 안식하며

그대를 사랑하시는 그분을

끊임없이 부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대가 이 생에서

그분을 경험하고 그분을 뵙고자 한다면

그것은 언제나 이 구름,

이 어둠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라.

그러나 하느님을 경험코자 하는

그대의 단순한 시도 자체가

그분을 가장 기쁘시게 해드리는 몸짓이다.

뭇 성인과 천사들이 그렇게 하여 기쁨을 누리거니와,

그들이 그대와 함께 있으면서 그대를 돕고 있음을 알아라.

 


[온종일]

어둠 속에서 쉬어라.

 


[하루를 마감하며]

여기, 모여드는 밤의 어둠 속에,

제가 당신과 함께 있나이다.

저로 하여금

오늘 일들을 밀쳐두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게 하시고,

제 생각과 욕망이

당신 아닌 그 어떤 것도 향하지 않게 하소서.

낮에 있었던 일은 그냥 거기 있게 놔두고,

그쪽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고,

망각의 구름으로 묻어버리게 하소서.

 


제가 무슨 짓을 하여도,

저는 당신을 분명하게 뵐 수 없나이다.

하지만,

어둠 속, 무지의 구름 속에서

저는 안식을 얻겠고

그 속에서,

당신께 바치는 순수한 사랑의 불꽃을

제 가슴에 당겨주시는,

당신을 만날 수 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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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제4일

 


[밝아오는 아침에]

비록 영원히 우리의 이해범위를 벗어난 분이지만,

하느님은 우리 영혼의 차원에서 당신을 계시하신다.

우리를 당신 닮은 당신의 형상으로 빚으셨기에,

우리 영혼이 정확히 그분께 들어맞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의 너그러운 은총을 통하여 우리 영혼은

그분을 온전히 안아 모실 수 있게 되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알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두 가지 큰 힘,

천사들과 인류(humankind)를 주셨기 때문이다.

우리를 지으신 하느님은

영원토록 우리의 아는 힘을 벗어나신다.

하지만 우리의 사랑하는 힘은 크고 넉넉해서

우리의 아는 힘을 벗어나신 분,

무한하신 분에게까지 닿을 수 있다.

 


하느님 은총의 도움을 입어

그분의 한결같고 놀라운

사랑의 기적을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끝없는 행복을 맛보는 것이다.

반대로 그 사랑을 모른다면

그것은 끝없는 고통이 아닐 수 없다.

 


그런즉, 그대의 사랑하는 힘을 발휘하여라.

하느님의 모든 것을 그대에게 가져다주는

엄청난 사랑을 발견하리라.

 


[온종일]

사랑이 하느님을 우리에게 가까우신 분으로 만든다.

 


[하루를 마감하며]

여기, 모여드는 밤의 어둠 속에,

제가 당신과 함께 있나이다.

제 생각과 언어의 힘으로 주님께 닿고

주님을 안아 모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오직 사랑만이

당신 숨어 계시는 어둠을 찢고 들어갈 수 있나이다.

 


나의 주 하느님,

당신은 제 사랑의 힘에

영원토록 가까이 계십니다.

그 사랑의 힘은 크고 넉넉하여

저의 아는 힘으로 미칠 수 없는

무한하신 당신께 닿을 수 있나이다.

제발 그 사랑을 제 안에 심어주시고

더 강하게 키워주시어,

당신 사랑하는 끝없는 행복을 맛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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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제5일

 


[밝아오는 아침에]

때로, 영혼의 여정을 걸어가는 것이

지옥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 고통스런 길을 돌이켜

쉴 곳을 찾고 싶은 유혹도 있을 것이다.

그대가 찾는 위로가 부족하거나

너무 더디게 올 수도 있다.

육신의 위로를 얻고자

속세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그대를 보게도 되리라.

 


그래도 참고 견뎌라.

그대가 찾아 나선

진정한 위로와 완덕을 체험할 때가 있을 것이다.

 


하느님 은혜로 그대는

그대의 과거를 물들였던 많은 죄악이

지워지는 것을 느끼게 되리라.

여전히 길 가기가 고통스럽긴 하겠지만,

보아라,

그대는 이미 많이 수월해졌다.

남은 고통마저도 끝이 날 것이다.

여기는 지옥이 아니라 연옥이다.

이 죄 또는 저 죄가 아니라,

원죄의 짐이 남아 있을 따름이다.

 


머잖아 그대가 원하던 기쁨과 위로를 체험하리라.

그리하여 낙원이 가까이 있음을

몸으로 느낄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하느님이 그대에게 주시는 평안을 맛보며

그분의 현존을 감각으로 알게 되리라.

 


[온종일]

나는 뒤돌아가지 않겠다.

 


[하루를 마감하며]

여기, 모여드는 밤의 어둠 속에,

제가 당신과 함께 있나이다.

당신께로 가는 저의 길이 자주

위로보다 고통으로 가득 차 있음을 인정하나이다.

그래도, 발걸음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제가 바라는 쉼터가 아무리 멀리 있더라도,

뒤돌아가지 않고

앞으로 계속 나아갈 용기를 주소서.

 


나의 하느님,

이 길에서 당신만이 주실 수 있는 평안과

당신의 현존을 마침내 체험하는

행복을 저에게 베푸소서.

당신과 저 사이에는 언제나 무지의 구름이 있겠지요.

그래도 저에게 참을성을 주시고

위로의 순간들을 주시고

저에게 약속하신,

그 위에 제 가슴을 얹고 안식할,

완덕을 향하여 굽히지 않는 희망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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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제6일

 


[밝아오는 아침에]

우리와 하느님 사이에

항상 ‘무지의 구름’이 있듯이,

우리와 우리 사이, 

우리와 다른 모든 사물들 사이에

‘망각의 구름’을 두어야 한다.

방금 말한 “모든 사물들”에는

사물들 자체뿐 아니라

그것들이 지니고 있는

물질적 정신적 아름다움과 선함도 포함된다.

그것들이 때로

하느님의 놀라운 창조를 생각하게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무지의 구름을 찢고 들어가는 일에

걸림이 될 수도 있다.

 


하느님 아닌 어떤 것에 눈길을 주면

그것이 우리와 그분 사이를 가로막아

우리로 하여금 그분한테서

더욱 멀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하느님 아닌 모든 것을

망각의 구름에 묻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감히 말한다,

이 순간에는 하느님의 친절하심과 고귀하심,

또는 성모님이나 성인들,

또는 우리의 영을 먹여 살리는

천국의 기쁨을 생각하는 것조차

별로 큰 유익이 안 된다.

 


이 특별한 순간에는,

하느님의 친절하심을 묵상하고

그 때문에 그분을 사랑하고 찬미하는 것이

비록 좋기는 하지만,

그냥 그분께 의식을 모으고

그냥 그분을 사랑하고

그냥 찬미하는 것이 훨씬 더 좋다.

 


[온종일]

그냥 하느님을 그냥 사랑하고 그냥 찬미하자.

 


[하루를 마감하며]

여기, 모여드는 밤의 어둠 속에,

제가 당신과 함께 있나이다.

당신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좋은 줄은 압니다만,

그러나 그것이 곧 당신은 아닙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당신과 저 사이를 가로막아

저를 당신한테서 더욱 멀어지게 할 수 있나이다.

그런즉, 나의 하느님,

당신 아닌 모든 것을 망각의 구름에 묻게 하소서.

 


주 하느님,

당신의 선하심과 친절하심을 묵상하고

그 때문에 당신을 찬미하는 일이

좋고 즐거운 일이긴 하오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여기 어둠 속에서

저의 모든 것으로 오직 당신만 향하며

그냥 당신을

그냥 사랑하고

그냥 찬미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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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제7일

 


[밝아오는 아침에]

그대는 나에게 물을 권리가 있다.

“어떻게 하느님을 그냥 생각할 수 있는가?”

나는 대답할 수밖에 없다.                                  

“모른다.”고.

 


그대 질문은

내가 그대에게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는

바로 그 무지의 구름,

바로 그 어둠 속으로 나를 밀어 넣는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에 대하여,

하느님이 하신 일에 대하여,

하느님 은혜로

그것들을 알고 묵상하는 데

익숙해질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우리 가운데 누구도

하느님 그분을 생각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등지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기로 선택하였다.

하느님이,

가슴으로 사랑할 수는 있지만

머리로 그릴 수는 없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 생각을 멀리 벗어나 계시지만,

우리 사랑으로 미치고 잡을 수 있는 분이시다.

그러기에 때로

하느님의 선하심을 생각하는 게

좋은 일이긴 하지만,

그 생각들을 망각의 구름에 묻어두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이다.

우리와 하느님 사이의 어둠을 찢고 들어가려면

용기와 사랑이 필요하다.

 


사랑과 그리움의 날카로운 창날만이

무지의 구름의 두터운 어둠을 뚫을 수 있다.

 


[온종일]

사랑만이 어둠을 뚫을 수 있다.

 


[하루를 마감하며]

여기, 모여드는 밤의 어둠 속에,

제가 당신과 함께 있나이다.

당신 은총으로 제가

당신의 피조물과

당신이 하신 일을

묵상하고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냥 당신을

그냥 생각할 수는 없음을 인정하나이다.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하여

알고 싶은 충동을 무릎 꿇리는 용기로

제 영혼을 채워주소서.

 


나의 하느님,

저로 하여금 당신 계신 곳에 이르기 위하여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을 선택하게 하소서.

우리의 생각을 멀리 벗어나신 당신을

사랑으로만 미치고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곳,

무지의 구름의 두터운 어둠을 뚫을 수 있는

사랑과 그리움의 날카로운 창날이

제 속에 번뜩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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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제8일

 


[밝아오는 아침에]

무엇을 이해하려는 충동은 언제나

단순한 사랑 안에서 하느님께로 다가가려는

우리의 시도를 가로막는 강한 장애가 될 것이고,

그러므로 반드시 극복되어야 한다.

이해하려는 마음을 극복하지 못하면

그것이 그대가 추구하는 길을 무너뜨릴 것이다.

그대가 하느님께 닿고자 찢어버린 어둠을,

그것이 더욱 분명해 보이는

어떤 형상으로 대체할 것이나,

아무리 선하고 아름답고 하느님처럼 보이더라도,

그것은 하느님이 아니다.

 


하느님 그분만을 향한 우리의 눈먼 사랑이,

우리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그 자체만으로,

우리의 모든 생각들,

영의 세계에 대한 모든 분명한 이해들보다,

그렇다,

우리를 몸으로 마음으로 도와주는 친구들보다,

더욱 유익하고,

하느님과 성인들과 천사들을 기쁘시게 해드린다.

 


오해하지 마라.

선(good)과 영의 세계에 대한

소박한 생각들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다만,

무지의 구름의 어둠을 찢고 하느님께 닿으려는

우리의 노력을 그것들이

가로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하느님을 온전히 모시려면,

하느님 아닌 다른 무엇에 대한 의식에도

안주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온종일]

사랑으로 이해를 대체하자.

 


[하루를 마감하며]

여기, 모여드는 밤의 어둠 속에,

제가 당신과 함께 있나이다.

저의 분주한 영혼을 침묵으로 감싸소서.

하루의 나머지들을 고요히 잠재워

편히 쉬게 하소서.

낮 동안의 어지러웠던 일들을,

당신에 대한 생각들까지,

모두 지워주소서.

그것들은 당신이 아니고,

그것들로는 충분치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밤보다 깊은 어둠이 있고

거기에서만 당신을 찾을 수 있나이다.

 


그런즉, 사랑만이 갈 수 있는

그곳으로 저를 데려가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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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제9일

 


[밝아오는 아침에]

그대가 기도할 때 말을 쓸 것이냐,

안 쓸 것이냐,

쓴다면 어떤 말을 쓸 것이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대가 쓰는 말을 헤아리고

그것들을 분석, 평가하느라고

자신을 바쁘게 만들어,

그대의 침묵과 홀로 있기를

함부로 어지럽히지 않는 데 있다.

 


그대가 누구고

무엇이 하느님이냐에 대한

그대의 중첩된 생각들을

지니고 다니지 마라.

 


자기 존재만 두고

다른 모든 것을 벗어버린 채,

하느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는 시간,

그리하여 하느님의 임재 안에

‘그냥 그렇게 있는 것’이 기도다.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모셔라.

그대를 편하게 하려고

그분을 다른 어떤 분으로 만들려 하지 마라.

그분의 존재를 탐색하여 들어가지 말고,

하느님 아닌 모든 것을 비우고,

그냥 단순한 믿음에

그대 기도를 얹어놓는 것으로 만족하여라.

 


그때에만 하느님은,

그대로 하여금

당신을 있는 그대로 알고 체험하며,

그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알고 체험하게 해주실 수 있다.

 


[온종일]

하느님, 저에게 있는 그대로 하느님이 되어주소서.

 


[하루를 마감하며]

여기, 모여드는 밤의 어둠 속에,

제가 당신과 함께 있나이다.

저에게 여기는 고향 집 안방처럼 아늑한 곳입니다.

하지만,

당신에 대한 생각들이 자아내는 따뜻한 느낌들에

안주하지 않게 하소서.

그것들을 당신으로 착각하여,

좀더 단순하게

좀더 참되게 당신을 알라는

부르심을 듣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당신 사랑의 요구들에 제 영혼을 열어주시고,

이 밤의 고요한 안식을 훨씬 넘어,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찾고,

있는 그대로의 저를

당신께 바칠 준비를 갖추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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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제10일

 


[밝아오는 아침에]

그대 영적 여정의 성공은

그리움과 사랑의 날카로운 창으로,

그대와 하느님 사이를 가로막는

무지의 구름을 찢는

부단한 노력에 달려있다.

 


이 눈멀고 충동적인 사랑은

우리 안에 있는

죄의 뿌리와 바탕을 파멸함으로써

어둠을 뚫고 들어갈 수 있다.

그것이 우리 사랑의 유일한 대상인 하느님을 향한

애정에 버팀목이 되는 덕목들을 심고 길러준다.

사랑이야말로,

그것으로 말미암아

다른 모든 덕목들이 비로소 완전해지는

유일한 덕목이다.

 


오직 하느님만 향하는

그대 가슴의 그냥 사랑에 견주면,

그대가 얼마나 오래 단식을 하는지,

며칠이나 밤샘을 하는지,

얼마나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나는지,

그대의 침대가 얼마나 딱딱한지,

수도복이 얼마나 거친지,

그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뿐만 아니라,

무지의 구름의 어둠 속에 안식할

하느님을 향한 그냥 사랑과 그리움이 없으면,

그대가 본인의 죄 때문에

혹은 그리스도의 수난 때문에

아무리 많은 눈물을 흘린다 하여도,

하늘나라의 기쁨을 아무리 사모한다 하여도,

그것들 모두 아무것도 아니다.

물론 그것들이,

그리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다른 많은 것들이

우리에게 큰 유익이 되고

적잖은 도움과 은혜가 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하느님을 향한 그대의

눈멀고 충동적인 사랑에 견주면

그것들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음 또한 사실이다.

 


[온종일]

그냥 사랑 없이는, 다른 모든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다.

 


[하루를 마감하며]

여기, 모여드는 밤의 어둠 속에,

제가 당신과 함께 있나이다.

당신의 사랑을 얻기 위한 저의 모든 노력들,

제 기도와 수고,

슬픔과 아픔이

아무것도 아님을 제 가슴에 일깨워주소서.

여기 어둠 속에서,

오직 사랑만이 문제인 어둠 속에서,

그 모든 것을 잊게 하소서.

 


제 사랑과 그리움의 날카로운 창으로

당신과 저 사이에 있는

무지의 구름의 어둠을 찢고 또 찢게 하소서.

이 사랑이 제 안에 있는

죄의 뿌리와 바탕을 파멸하게 하시고,

제 사랑의 유일한 대상인

당신을 향한 애모의 정을 키우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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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제11일

 


[밝아오는 아침에]

덕목들은,

그것이 우리의 아는 힘에서 나왔는지

아니면 사랑하는 힘에서 나왔는지,

우리가 스스로 보여줄 수 있는 것에서 나왔는지

아니면 온전한 사랑으로 하느님과 하나 될 때

그분이 우리 안에서 이루시는 것에서 나왔는지에 따라,

완전할 수도 있고 불완전할 수도 있다.

 


예컨대, 겸손이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참으로 알고

그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 말고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아는 힘을 동원하여 우리 자신을 성찰하고

그래서 드러난 진실을 받아들이는 능력으로

자기를 알게 되고

그 결과로 겸손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보는 것은 대개 죄악과 비열함의 역사다.

아는 힘이 우리를 데려다줄 수 있는 곳은 여기까지다.

 


반면에, 온전한 겸손은

우리의 사랑이 무지의 구름을 찢고

거기서 하느님의 넘치는 사랑을 발견할 때 일어난다.

하느님 앞에서 모든 피조물이 떨고

모든 배운 자들이 바보가 되고

천사와 성인들이 눈멀 때,

온전한 겸손이 우리 안에 생겨난다.

 


우리는 자신의 불완전한 빛이 아니라

그분의 완전한 빛으로

우리의 참 자아를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

 


[온종일]

하느님 앞에서는 모든 피조물이 떨고

모든 배운 자들이 바보가 된다.

 


[하루를 마감하며]

여기, 모여드는 밤의 어둠 속에,

제가 당신과 함께 있나이다.

자신이 누군지를 스스로 보는 데서 나오는 겸손이

제 안에 더욱 깊어지게 하소서.

저를 당신한테서 멀리 떨어지게 하는

죄악을 등지고 떠나게 하시고,

당신이 저에게 바라시는 것을 잊지 않게 하소서.

 


주 하느님,

당신의 넘치는 사랑으로

저의 무지에서 나오는 어둠을 밝혀주소서.

당신 앞에서 모든 피조물이 떨게 하시고,

배운 자들은 스스로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참으로 초라한 지식임을 깨닫게 하소서.

우리가 얼마나 당신을 모르는지,

천사와 성인들의 도움으로 알게 하소서.

그리하여 온전한 겸손이 우리 안에 생겨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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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제12일

 


[밝아오는 아침에]

주님이 막달라 마리아에게

“네 죄가 용서받았다.”고 말씀하신 것은

그 여자가 크게 슬퍼했거나

겸손히 자기 죄를 뉘우쳤기 때문이 아니라,

많이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생각해낼 수 있는 다른 어떤 장점들보다

숨겨진 사랑의 충동에 주님이 관심하셨음을

우리는 그녀 이야기에서 보게 된다.

 


의심할 나위 없이 그녀는

자기 죄로 말미암은 고통을 한평생 안고 살았다.

우리도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기억하자.

그녀는 과거의 자기 죄에 빠져서

사랑을 포기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

자기 죄에 빠져서 절망하는 것으로는

아무 성취도 이룰 수 없고,

오히려 용서보다 새로운 범죄로

자신을 데려갈 따름임을 그녀는 알았다.

그래서 차라리

무지의 구름 속으로 들어가 거기서

이 생에서는 볼 수도 알 수도 없는 것을

사랑하기로 했던 것이다.

 


자기 죄로 인한 슬픔이 비록 깊고 끝이 없어도,

그녀에게는 더 크게 후회되는 일이 있었다.

충분히 사랑하지 못한 것이 그것이었다.

 


놀랄 일이 아니다.

진실한 연인들은 더 많이 사랑할수록

더 많은 사랑을 갈망하는 법이다.

 


[온종일]

많이 사랑한 자가 많이 용서받는다.

 


[하루를 마감하며]

여기, 모여드는 밤의 어둠 속에,

제가 당신과 함께 있나이다.

지난날의 죄에 빠져

절망하려는 유혹을 제가 받나이다.

그러나 저로 하여금,

막달라 마리아와 함께,

절망으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음을 알게 하소서.

그러니 제 과거를 망각의 구름에 묻어버리고

당신 사랑하는 일에 나서게 하소서.

 


더 많이 사랑하면 더 많이

용서받는 것을 제가 아나이다.

제가 당신한테서 용서를 받는 것은

눈물 때문이 아니고

슬픈 뉘우침 때문도 아니고

오직 당신만을 간절하게

사랑하기 때문임을 알고 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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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제13일

 


[밝아오는 아침에]

눈먼 사랑의 충동 속에,

미묘하고 완벽하게 들어있는 박애(charity)가

우리로 하여금 무지의 구름을 찢고

거기서 안식을 찾게 한다.

그러나 박애를 실천함은,

하느님의 피조물들보다 하느님 그분을

사랑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똑같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진실로, 박애의 핵심은 하느님을 온전히 사랑하되,

고통과 괴로움에서 풀려나기 위하여,

큰 보상을 받기 위하여,

사랑하는 게 아니라,

한 마디로,

하느님만을,

우리가 사랑하는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만을,

기원하는 것이다.

 


바로 이 하느님께 드리는 온전한 사랑이

우리의 이웃 사랑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이제 막 구도의 길에 들어선 초보자라도

이 사랑에 의하여,

모든 사람을 특별한 상대로,

낯선 나그네가 아니라 친척으로,

적이 아니라 친구로 대할 수 있게 된다.

진실한 사랑은

우리를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특별한 친구로 삼으라고,

그래서 그들도 좋은 사람이 되기를 기도하라고,

우리에게 요구한다.

온 인류가 한 가족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우리 친구들이다.

아무도 낯선 나그네가 아니다.

 


[온종일]

모든 사람이 우리 가족의 일원이다.

 


[하루를 마감하며]

여기, 모여드는 밤의 어둠 속에,

제가 당신과 함께 있나이다.

사랑하기 힘든 사람들을 위해서,

저를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는 이들을 위해서,

특별히 기도하게 하소서.

그들 가운데 누구도

제 사랑 바깥에 나그네로 두지 말게 하시고

모든 사람을 가족의 일원으로,

저의 가까운 친구로 대하게 하소서.

 


온 인류를 제 사랑 안에 포함시켜야 한다면,

당신을 위하여

온전히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사랑의 핵심이요 근본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저로 하여금 무지의 구름을 찢고

거기서,

당신의 온전한 사랑 안에서,

저에게 주시는 유일한 보상인 안식을 찾게 할

눈먼 사랑의 작은 충동을

제 속에 불질러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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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제14일

 


[밝아오는 아침에]

하느님께만 드리는 온전한 사랑에 빈틈없는 사람도

이웃 사랑의 임무에서 면제되지 않는다.

 


우리에게 가까운 측근들이 있음은 자연스런 일이다.

(예수님도 측근이라 할 세 제자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단순하고 소박한 하느님 사랑으로,

우리 자신을 사랑하듯이,

사랑해야 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정 주님의 완벽한 제자가 되고 싶다면,

주님이 당신 친구들과 가족들만을 위해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무도 차별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위해서

당신 몸을 십자가에 높이 들어올리셨듯이,

다른 모든 사람을 위해

우리 영혼을 들어올려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분이 머리고 우리는 지체들이다.

한 지체가 아프면 따라서 온몸이 아프다.

한 지체가 건강하면 따라서 온몸이 건강하다.

모든 사람이,

하나도 빠짐없이,

우리 사랑의 대상이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하나도 빠짐없이,

그리스도의 수난으로 구원받았기 때문이다.

 


[온종일]

누구도, 무엇도, 우리 사랑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다.

 


[하루를 마감하며]

여기, 모여드는 밤의 어둠 속에,

제가 당신과 함께 있나이다.

주님을 사랑하려는 제 마음이,

제가 저를 사랑하듯이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임무에서

저를 제외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소서.

저로 하여금

그들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그들의 목소리를 묵살하지 않게 하소서.

친구든 적이든,

모두가 저에게는 사랑해야 할 대상입니다.

 


당신의 온전한 제자가 되고

당신의 몸이 되고

당신의 지체가 되는 것은,

당신이 십자가에 높이 달리셨듯이,

그렇게 높이 매달리는 것임을

의심하거나 망각하지 않게 하소서.

당신과 당신이 사랑하는 이들을 사랑하는 것은

당신의 아픔과 희생을 나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십자가를 함께 지는 것 말고

당신을 사랑하는 다른 길이 없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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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제15일

 


[밝아오는 아침에]

무지의 구름으로 들어가

하느님과 하나 되는 여정에서

우리가 자신을 위해 해야 하는 일이 있고,

하느님이, 오직 하느님만이,

우리를 위해 하실 수 있는 일이 있다.

 


하느님이 하실 일에 대하여는

내게 언급할 자격도 없지만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우리 몫의 일에 대하여 몇 마디 하겠다.

 


우리가 무지의 구름으로 가까이 가려면,

하느님 그분만을 사랑코자 한다면,

치워야 하는 것들을 모두 망각의 구름에 묻어

등 뒤로 돌려야 한다.

그것은 어렵기도 하지만 끝이 없는 일이다.

그래도 해야 하는 우리 몫의 일이다.

그 밖의 다른 모든 일이 하느님께,

오직 하느님께 속해 있다.

우리 몫을 감당하려면,

크신 은총의 도움을 입는다 해도,

많은 수고가 있어야 한다.

 


그래도, 그대가 있는 힘을 다 쏟아

그대와 하느님 사이에 있는 것들을 모두

등 뒤로 돌려버린다면,

그래서 무지의 구름을 사정없이 두드린다면,

장담하거니와, 하느님께서

결코 그대를 잃지 아니하실 것이다.

 


하지만 그분은

그대가 그대 몫을 다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온종일]

사랑이 우리 몫이다.

나머지는 모두 하느님께 속한다.

 


[하루를 마감하며]

여기, 모여드는 밤의 어둠 속에,

제가 당신과 함께 있나이다.

오늘 밤,

저로 하여금 천국 문 두드리는 일을

잠시 그치게 하소서.

제 몫의 수고를 밀쳐두고

침묵과 신뢰에 잠겨 있는 동안,

제가 저를 위해서 할 수 없는 일,

당신만이 저를 위해서 하실 수 있는

그 일을 하소서.

이제는 당신 차례입니다.

 


저의 아는 힘이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고,

제 영혼의 모든 노력이 헛수고로 돌아가는 곳,

무지의 구름 그 깊은 어둠 속에서

당신은 저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니 이제 당신이 하실 일,

당신만이 하실 수 있는 그 일을 저에게 하소서.

저를 당신께로 하나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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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제16일

 


[밝아오는 아침에]

우리는 인간이기에 살아 있는 동안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두터운 무지의 구름을

항상 보고 느끼게 되어 있다.

 


그러나 지은 죄 때문에 또한 우리는,

하느님이 지으신 많은 피조물이

하느님과 우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고 관리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주인의 몸으로

오히려 그것들에 복종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런즉 우리는 다른 어떤 일보다 먼저

세계의 질서를 바로잡는 일에 힘써야 한다.

우리 양심을 깨끗하게 하고,

세상 모든 피조물들이

제 자리를 찾게 하기 위하여

수고와 고통을 감수하자는 얘기다.

우리에게 지은 죄가 크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더 많은 수고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망설일 것 없다.

하느님께서 자비로운 기적을 일으켜

우리 가운데 가장 보잘 것 없는 자에게

큰 은총을 베푸시기 때문이다.

심판 날에 그대는

이 생에서 별 가치가 없는 존재로

멸시받는 사람이

성인들과 천사들 틈에 자리를 얻고,

이 생에서 온갖 영예를 누리는 사람이

한 구석에 밀려나 있는 것을 보게 되리라.

 


아무도,

아무리 같잖아 보이는 사람도,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

 


[온종일]

다른 무엇보다 깨끗한 양심이 먼저다.

 


[하루를 마감하며]

여기, 모여드는 밤의 어둠 속에,

제가 당신과 함께 있나이다.

오늘 하루 동안에

어지러웠던 일들과

지은 죄를 씻어주소서.

세상 모든 것들이 제 자리를 잡아,

저를 지배하는 주인이 아니라,

주님이신 당신을 찾는 데 도움을 주는

종의 위치로 돌아가게 하소서.

 


오, 주님.

오랫동안 당신과 저 사이를 가로막으며

버텨온 저의 죄를

한 순간에 녹여버릴 수 있는 것은

오직 당신의 자비로운 기적뿐입니다.

그 자비로운 기적에 저를 굴복시키소서.

 


당신 사랑으로 제 영혼을 놀라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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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제17일

 


[밝아오는 아침에]

아무리 오래 애썼어도

그대의 낡은 습관과 죄에

새로운 습관과 죄가 보태어지며

그대와 하느님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것을 피할 순 없다.

하지만 그것들이 다시 나타난다고 해서

낙심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대로 신속히 그것들을

망각의 구름에 묻어버려라.

나타나는 대로 과거를 묻어버리고,

그대의 영적 전술을,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쓰는 데 망설이지 마라.

 


나는 자주 이렇게 한다.

그대도 해보기 바란다.

평소에,

성가신 방해꾼이 그대와 하느님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지 않는 듯이 처신하는 것이다.

사물이나 사람의 어깨너머를 넘겨다보듯이,

그것들 너머를 보아라.

거기, 비록 무지의 구름에 가려 보이지는 않지만,

하느님이 계신다.

잠시라도 그렇게 해보라.

반드시 어떤 작용이 느껴질 것이다.

그렇게 자주 할수록 그대의 임무 또한 쉬워진다.

 


얼핏 보면 사소한 잔꾀를 부리는 것 같지만

나는 확신한다.

제대로 그리고 깊게 이해된다면,

그것은 하느님을 향한 그대의 진한 그리움과

이 생에서 어떻게라도 하느님을 뵙고자 하는

그대의 간절한 열망을 나타내는 것이다.

충분히 해볼 만한 일이다.

 


[온종일]

떠오르는 대로, 과거를 묻어버려라.

 


[하루를 마감하며]

여기, 모여드는 밤의 어둠 속에,

제가 당신과 함께 있나이다.

오늘 다시 떠올라 제 삶을 어지럽히는

저의 낡은 죄와 습관을 깊게

그리고 신속히 묻게 하소서.

그것들이 나타난다고 해서

낙심하지 말게 하시고,

오히려 당신의 한결같은 사랑에서

용기를 얻게 하소서.

 


당신과 저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것들 너머에 계시는

당신의 존재를 느끼나이다.

비록 무지의 구름에 가려 보이지는 않지만,

당신은 언제나 저를 위하여 거기 계시옵니다.

저의 그리움으로 하여금

그 구름을 뚫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가 얼마나 간절히 이 생에서

당신을 뵙고자 하는지를 보여드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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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제18일

 


[밝아오는 아침에]

우리는 글을 읽거나 말을 들을 때

또는 특별한 무엇을 볼 때

하느님을 생각하고

기도와 명상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갑자기 자신의 죄와 사악함을 느끼거나

하느님의 선하심을 들여다보고 깜짝 놀랄 때도 있다.

그런 순간들을,

우리 노력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인 양,

우리가 스스로 보장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들은 하느님 것이다.

 


우리의 기도와 명상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하느님” 또는 “죄”라는 말 한 마디에

곧장 반응하는 자신을 보게 된다.

 


그 순간들이 우리에게 떠올려주는 말이나 깨달음을 분석하고

그 어원과 의미를 찾아내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대를 움직인 하느님의 은총이

그대를 기도로 이끌어

옹근 전체 속에 잠기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그때에는 두 마디 말보다 한 마디 말이 낫고,

성령 안에서 그분과 함께 침묵하는 것이 더 낫다.

중간 전달자 없이

그대의 기도가 곧장 하느님께로 올라가게 하여라.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명상할까를 궁리하지 마라.

자연스럽게 되어지는 대로 하되,

갑자기 화재현장이나

죽음의 위협 앞에 선 사람처럼 처신하여라.

그들에겐 조리 있는 말을 골라서 할 여유가 없다.

외마디 부르짖음이 있을 뿐이다.

그대도 그렇게 하여라.

 


[온종일]

하느님!

 


[하루를 마감하며]

여기, 모여드는 밤의 어둠 속에,

제가 당신과 함께 있나이다.

제 머리와 가슴을 어지럽게 채우고 있는

수천 마디 말과 형상들을,

당신만을 위해서 살려고 하는

바른 이유, 바른 생각, 바른 말을

그것들 안에서 찾으리라는 희망과 함께, 잠재우소서.

 


저의 기도로 하여금 곧장 당신께로 올라가게 하시고

아무것도 우리 사이에 끼어들지 못하게 하소서.

여기, 이 밤에 저는

따로 시간을 내어 명상하거나

당신께 드릴 말씀을 고르지 않겠나이다.

무엇이든지 되어지는 대로 하되,

다만 저에게 필요한

한 마디 부르짖음이 있을 따름입니다.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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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제19일

 


[밝아오는 아침에]

비록 죄 많은 영혼한테서,

하느님의 적으로 보이는 사람한테서,

나온 것이라 해도,

외마디 기도는 하늘을 뚫고

하느님 귀에 닿는다.

 


그대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라 해도,

“불이야!” 하고 외치는 소리를 들을 때,

그 소리의 임자가 누구냐는 문제 되지 않는다.

그대는 그 소리에 담긴

경고와 두려움에 반응할 것이다.

그리하여 추운 겨울밤이라도

침상에서 일어나 불을 끄러 달려가거나

고통과 상실로 괴로워하는 그를 위로할 것이다.

 


주님, 비록 죄인이라도

자기 적을 위하여 자비와 동정을 베풀진대,

하물며,

고난 받는 영혼이 벼랑 끝에서

또는 더 내려갈 수 없는 밑바닥에서

저도 모르게 토하는 외마디 외침을

당신의 자비와 동정이 모른 척하실 수 있겠나이까?

 


하느님이 우리의 짧은 기도를 들으시는 이유는,

우리 육신의 기운과 영혼의 힘이

모두 그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자기처럼 남을 사랑하는 사랑과,

우리의 부르짖음에 응하시는 하느님이

그 짧은 외마디에 들어 있기에,

그래서 그것은 완벽한 기도다.

 


[온종일]

한 마디 짧은 기도가 어둠을 뚫는다.

 


[하루를 마감하며]

여기, 모여드는 밤의 어둠 속에,

제가 당신과 함께 있나이다.

외마디 기도가,

비록 그것이 저처럼 죄 많은 영혼이나

자주 기도하지 않는 자한테서

나온 것이라 해도,

무지의 구름을 찢고

어두운 하늘을 뚫고

당신 귀에 닿을 줄 믿나이다.

 


제가 짧은 한 마디 기도를 바칩니다.

그 안에 제 육신의 기운과

영혼의 힘을 모두 담게 하소서.

그것이 저한테 있는 전부입니다.

하느님, 제 부르짖음을 들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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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제20일

 


[밝아오는 아침에]

기도는,

선을 얻고 악을 떨쳐버리기 위하여

온몸과 마음으로

하느님께 돌아서는 것 이상이 아니다.

그런 까닭에,

기도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말은

“하느님” 그리고 “죄”

이 두 마디로 충분하다.

이 두 마디 안에,

우리의 기도가 담아야 하고

담을 수 있는 모든 내용이 들어 있다.

 


그런즉 우리한테서 죄가 씻겨지기를 기도할 때에는

“죄”라고 한 마디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기도가 없다.

또한, 온몸과 마음으로 선을 얻고자 할 때에는

생각이나 말로

“하느님.”

한 마디 부르는 것 말고 다른 말이 필요 없다.

 


진실로 말하거니와,

이 두 마디 말보다

더 짧고 폭 넓은 말을 내가 알았더라면

서슴없이 그 말로 내 영혼이 부르짖었으리라.

은총이 그대를 움직일 때마다

이 두 마디로 기도를 계속하여라.

그대의 소원이 모두 이루어지기까지

기도를 멈추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불이야!”하고 외치는 자가

불더미에서 구출되기 전에

그 소리를 그칠 것이라고 그대는 생각하는가? 

 


[온종일]

응답될 때까지 기도하라.

 


[하루를 마감하며]

여기, 모여드는 밤의 어둠 속에,

제가 당신과 함께 있나이다.

제가 기도로 당신께 돌아가나이다.

제 삶에서 죄를 불살라주소서.

당신과 저 사이에 있는 것들을 모두 집어삼키는

한 마디 말로 제 영혼이 부르짖게 하소서.

 


“죄”라고 말하기를 멈추지 않겠나이다.

제 가슴의 아픔을 들어주소서.

 


한 마디 말에,

당신을,

오직 당신만을 향한

제 영혼의 그리움을 모두 담게 하소서.

이 목마른 그리움이 채워지기까지,

당신 이름 부르기를 결코 멈추지 말게 하소서.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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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제21일

 


[밝아오는 아침에]

위대한 성인들은 기도할 때

질투, 게으름, 탐욕 또는 탐식 따위

어느 한 가지 죄에 마음을 묶어두지 아니하고

죄의 일반적 성질에 집중한다.

자기네를 하느님께로부터 떨어뜨려놓는

죄 자체를 생각하며 기도드린다.

 


“하느님”을 부르며 기도할 때도

그분이 하시는 특별한 일,

자기네 영혼이 관심하고 있는

겸손, 사랑, 인내, 절제 같은 것들에 마음을 두지 않고

“하느님”이란 말의 영적 의미에 집중한다.

 


하느님을 모시면 다른 모든 좋은 것을 가지게 될 터인즉,

그래서 그들은 어느 특별한 것에 마음을 두지 않고

하느님 한 분만 생각하며 기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위대한 성인이라도

이 땅에 살아가는 한,

죄에 시달리고 죄의 그늘에 묻히게 마련인지라,

한번은 하느님께 또 한번은 죄에 마음을 모으며 기도한다.

그대도 그렇게 하여라.

하느님 은총으로 그대 기도의 중심에

오직 하느님 한 분만 모시게 될 때까지 그렇게 하여라.

그대 머리의 생각하는 힘과 가슴의 사랑하는 힘이

다른 어떤 대상을 향하게 하지 마라.

 


[온종일]

하느님을 모시면 다른 모든 좋은 것을 가지게 된다.

 


[하루를 마감하며]

여기, 모여드는 밤의 어둠 속에,

제가 당신과 함께 있나이다.

제가 당신 한 분만 모시게 되기를 바라나이다.

그러나 이 땅에 사는 한,

저는 죄에 시달리고

죄의 그늘에 묻힐 것임을 알고 있나이다.

제 기도를 들어주소서.

저를 용서하소서.

저를 지켜주소서.

당신께 바치는 사랑으로 견디게 하소서.

 


위대한 성인들과 함께 저도,

하느님 당신을 모시면

제가 간절히 바라는 다른 모든 좋은 것을

가지게 될 줄 압니다.

그런즉 여기 하루를 마감하는 자리에서

제 기도와 제 머리와 가슴을

오직 당신 한 분께만 모으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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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제22일

 


[밝아오는 아침에]

초보자들은 영적 여정을 물질의 차원에서 생각하여,

육신을 단련하고 강한 의지력을 발휘해야

하느님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수 있으리라고 믿기 쉽다.

그들은 가슴을 하느님께 들어올리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런데 그 말을 물질의 차원에서 듣고는

몸의 건강을 해치고 정신질환이 생길 정도로

자신을 가혹하게 몰아붙인다.

그리하여 얼마 안 되어 지치고 약해져서

스스로 허망한 가짜 위안들을 찾아 고개를 돌린다.

자기의 격한 감정을 하느님의 은총으로

잘못 알고 쉽게 속은 것이다.

 


그런즉 하느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으려면

영의 갈망을 육신의 노력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그대의 몸과 정서에 억지를 가하지 마라.

하느님께로 나아가 그분과 하나 되는 데는

육신의 단련이나 흥분된 감정이 아니라

숙련된 영의 기술이 요구된다.

몸과 영혼으로 부드럽고 평화스럽고 그리고

뜨겁게 사랑하는 법을 배워라.

공손하고 겸손하게 그리고

꾸준히 주님의 뜻을 기다려라.

아무리 배고프더라도

탐욕스런 짐승처럼 성급히 움켜잡으려 하지 마라.

 


[온종일]

꾸준히 주님의 뜻을 기다려라.

 


[하루를 마감하며]

여기, 모여드는 밤의 어둠 속에,

제가 당신과 함께 있나이다.

오, 하느님.

저로 하여금 많은 초보자들처럼,

스스로 속아서 제 격한 감정을

당신의 은총과 혼동하지 말게 하소서.

육신의 단련과 강한 의지력으로

당신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수 있다고 믿지 말게 하소서.

저의 조급한 굶주림을 비우고

그 자리를 당신의 참된 은총으로 채우게 하소서.

 


당신과 하나 됨에 아무리 굶주려 있더라도

그것을 탐욕스런 짐승처럼

성급히 움켜잡으려 하지 말게 하소서.

그보다는, 참 사랑이란 부드럽고 평화스럽게

몸과 마음으로 하는 것임을 가르쳐주소서.

오, 주님.

저로 하여금 공손하고 겸손하게 그리고

꾸준히 당신의 뜻을 기다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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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제23일

 


[밝아오는 아침에]

우리는 하늘로 올라가시는 주님과

땅으로 내려오시는 하느님의 영을 말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단지 은유(metaphor)일 뿐이다.

 


영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인간의 언어에 담으려면

우리가 이해하고 상상할 수 있는 것으로

그 내용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의 영은 아무 제한도 받지 않는다.

 


우리가 오직 하늘에 있고자 간절히 바랄 때,

그 순간 우리 영은 하늘에 있는 것이다.

 


하늘에는 ‘위’가 없다.

하늘에는 ‘아래’가 없다.

하늘에는 ‘밖’이 없다.

하늘에는 ‘안’이 없다.

거기에는 높은 길도 없고 지름길도 없다.

하늘로 가는 길은 야드가 아니라

간절한 마음으로 재어지기 때문이다.

성 바울로는 말한다.

“비록 몸은 땅에 있지만 우리는 하늘에 산다.”

영은 자기가 사랑하는 곳에 있다.

영이 우리 몸을 있게 하고

땅에서 우리 몸으로 살고 있음은 진실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하늘에 오르고자 한다면

자기 영을 위로 또는 아래로,

이리로 또는 저리로,

밀고 당기고 할 게 아니다.

 


우리를 그리로 데려가는 것은

그리로 가고 싶은 우리의 간절한 마음이다.

 


[온종일]

영은 자기가 사랑하는 곳에 있다.

 


[하루를 마감하며]

이 밤의 어둠 속에서

제가 언어나 형상에

또는 제 방의 벽이나 우주의 벽에 갇힌다면

그것은 저의 선택입니다.

제 몸이 어디에 있느냐는 문제 되지 않습니다.

제 영이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있을 수 있으니까요.

만일 제가 당신과 함께 있기를 원한다면

그 순간 저는 영으로 당신과 함께 있는 겁니다.

 


주님, 저는 당신과 함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당신은 여기 계십니다.

제가 하늘에 있기를 간절히 바랄 때,

그 순간 저는 하늘에 있나이다.

당신께로 가는 여정은

야드가 아니라 간절한 마음으로 재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진실로 간절히

당신과 함께 있기를 바라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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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제24일

 


[밝아오는 아침에]

그대 가슴 속 겸손한 사랑의 선동에 따라서 움직여라.

그것이 그대의 이번 생을 인도하여

다음 생까지 데려가게 하여라.

그것 없이는

어떠한 선행도 비롯될 수 없고 마쳐질 수 없는

그대 선한 사랑의 가슴이

하느님께로 향하는 선한 의지이기 때문이다.

이 선한 의지가 모든 완덕의 핵심이다.

영적이고 정서적인 위안들은,

그것이 아무리 거룩해보여도,

결국은 그대의 선한 의지가 빚는 행복한 산물이다.

그것들은 전적으로 그대 가슴 속에 있는

겸손한 사랑의 선동에 의존한다.

 


그 위안들을 이 생에서 반드시 받아야 하는 건 아니다.

그것들이 있든 없든

실제로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이다.

주어지는 위안들을 거절해야 한다는 얘기는 물론 아니다.

하느님은 당신이 하나로 엮어놓으신

우리의 육과 영을 나누지 말라고 하신다.

인간으로서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당신을 섬기고

육과 영으로 함께 기쁨의 축복을 누리라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다.

우리가 말없는 사랑으로 하느님께 돌아가고

그분과 친구로서 대화하는 순간들이 올 것이다.

아무튼 간에,

그대 가슴 속 사랑의 선동을 따라서,

그대를 하느님께로 향하게 하는 선한 의지를 실현하여라.

 


[온종일]

선한 의지가 모든 완덕의 핵심이다.

 


[하루를 마감하며]

여기, 모여드는 밤의 어둠 속에,

제가 당신과 함께 있나이다.

당신이 저의 육과 영에 베푸신 축복에 대한

기쁨과 감사로 제 가슴을 채워주소서.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저에게 반드시 있어야 하는,

제 가슴 속 사랑을 대체하는 일만큼은 없게 하소서.

 


당신은 저의 따뜻한 느낌들이 아니라

제 가슴 속 사랑의

겸손한 선동 안에서 발견되는 분이십니다.

오직 당신만을 향하려는 선한 의지가

저의 이번 생을 인도하여

다음 생까지 저를 데려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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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제25일

 


[밝아오는 아침에]

정서적인 위안들이 찾아올 때

그것들이 아무리 우리를 즐겁게 하고

우리를 하느님께로 가까이 데려간다 하여도

무심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것들이 오면 기꺼이 환영하되

그것들에 의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하느님이 주시는 선물 때문에

하느님을 사랑하기가 너무 쉽다.

그 선물들이 그대한테서 거두어질 때

불평하여 투덜거린다면

그대가 바로 이 유혹에 빠진 것임을 알게 되리라.

 


그런 위안들을 계속 받는 사람도 있지만

아주 드물게 경험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하느님 뜻에 달려있다.

우리 가운데는 너무 약해서

자주 달콤한 위안을 받지 않으면

이 생의 고달픔과 유혹을

견뎌내지 못할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자기 내면의 단순한 위안 하나로

충분할 만큼 강한 사람들도 물론 있다.

누가 더 복된 사람일까?

나는 모른다.

하느님만이 아신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스스로 사랑의 선동에 집중하고

그에 따라서 움직이되,

그것이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뜻이라면

다른 위안이 없어도 그렇게 움직이는 것이다.

 


[온종일]

사랑의 위안이 아니라 사랑이 모든 것을 바꾼다.

 


[하루를 마감하며]

여기, 모여드는 밤의 어둠 속에,

제가 당신과 함께 있나이다.

하느님, 당신의 위안을 받지 않으면

이 생의 고달픔과 유혹을 견뎌낼 수 없을 만큼

약한 영혼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저임을 고백하나이다.

하오나, 저로 하여금

그 위안들을 의존하지 말게 하소서.

선물 주는 이보다 선물을 더 좋아하기가

너무 쉽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위안들이

아무리 저를 당신께로 가까이 가게 한다 하여도

그것들을 무심으로 받아들이게 하소서.

저에게 중요한 것은

스스로 사랑의 선동에 집중하고

그에 따라서 움직이되,

그것이 저를 위한 하느님의 뜻이라면

다른 위안이 없어도 그렇게 움직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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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제26일

 


[밝아오는 아침에]

하느님과 하나 되고자 하는 그대 안에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움직임이

묘하게 일어나는 순간이 있다.

그것이 그대로 하여금,

영문도 모른 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곳으로 향하게 한다.

하느님이 그대 안에서 하시는 일이다.

그분이 당신 일을 하시게 해드려라.

당신 뜻대로 그대를 이끄시도록 해드려라.

그분은 다만

그대의 동의(同意)가 필요하실 따름이다.

 


그분 길에서 비켜서라.

그분이 그대 안에서

그대를 위하여

하시는 일을 망치지 않으려면,

그분을 그대 수단으로 도와드리지 마라.

그대는 나무요 그분은 목수시다.

그대는 집이요 그분은 집주인이시다.

보지 못하는 것에 만족하고,

알아야겠다는 마음을 내려놓아라.

누군가 그대 안에서

사랑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받아들여라.

아직은 모르겠지만,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다.

그러니 단순하게 그리고 곧장 하느님을 향하여라.

그대의 뜻과 욕망을 움직이는 이가 그분임을 믿어라.

오직 그분이시다.

다른 누구도 아니다.

그대와 하느님 사이에 아무도 없다.

 


악마 따위를 겁내지 마라.

그가 아무리 간교하다 하여도

그대 뜻을 직접 움직이지는 못한다.

천사도 그렇게 못한다.

 


하느님 한 분 말고는

누구도 그대 뜻을 움직일 수 없다.

그분이 그대 안에서 일하시는 것이다.

 


[온종일]

하느님의 길에서 비켜서라.

 


[하루를 마감하며]

여기, 모여드는 밤의 어둠 속에,

제가 당신과 함께 있나이다.

저는 나무요 당신은 목수십니다.

저는 집이요 당신은 집주인이십니다.

당신이 제 안에서 하시는 일을 망치지 않도록,

저로 하여금 당신 길에서 비켜서게 하소서.

 


제가 볼 수 있는 것 너머로,

제가 알 수 있는 것 너머로,

제 안에서 사랑으로 일하시는 이가

하느님, 당신임을 믿어 의지하게 하소서.

하느님, 당신이 하시는 일입니다.

다른 누구도 아닙니다.

 


제가 단순하게 그리고 곧장

당신을 향하여 손을 내미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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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제27일

 


[밝아오는 아침에]

모든 일에 절제하여라.

먹고 마시고 잠자고

기도를 준비하거나 남들과 대화할 때에,

항상 절제하는 모습을 보여라.

그대가 진정으로

하느님과 하나 되기를 바란다면,

무엇을 얼마나 하면 충분한지

그대 영이 가르쳐줄 것이다.

 


그대가 항상 깨어서 마음을 집중할 수는 없는 일이다.

병이 들거나 무슨 일로 마음이 어지러워질 수 있다.

그런 일이 있으면

그럴 때마다

겸손하게 하느님의 은총을 기다려라.

모든 일이 다 잘될 것이다.

 


그대가 병들거나 무슨 일로 시달릴 때

참고 견디며 하느님을 바라는 것이,

그대가 건강할 때 맘먹고 헌신하는 것보다

하느님을 더욱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음을 기억하여라.

아무튼지 간에,

하느님의 사랑을 위하여,

그대 자신을 돌보는 일이 중요하다.

하느님과 고요히 하나 되려면,

건강한 몸에 건강한 영혼과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온함이 필요하다.

 


[온종일]

하느님의 뜻을 구하여라.

모든 일이 다 잘될 것이다.

 


[하루를 마감하며]

여기, 모여드는 밤의 어둠 속에,

제가 당신과 함께 있나이다.

저로 하여금,

아직 한참 더 가야지만

당신을 향한 제 사랑을 보여드릴 수 있으리라고 믿는

초심자의 남용과 약함을 인정하고

그것을 밀쳐놓게 도와주십시오.

무엇을 얼마나 하면 충분한지,

저에게 말씀해주소서.

주님은 제가 과도하기를 원치 아니하십니다.

근심걱정으로 가득 찬 제 가슴의 어지러움을 잠재워주소서.

당신의 은총과 제 영혼의 고요한 평온과

모든 것이 다 잘 되리라는 확신을 겸손히 기다리게 하소서.

그 안에서만 저는,

따로 절제할 것도 없이,

당신과 하나 되기를 구할 수 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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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제28일

 


[밝아오는 아침에]

모든 것이 망각의 구름에 묻힐 때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만을 알고 경험하게 된다.

이 자아를 넘어서려면

아주 특별하고 희귀한 하느님의 은총과

우리 자신의 역시 희귀한 능력이 필요하다.

 


이 생에서 어떻게든지

하느님을 알고 경험하고자

진심으로 갈망하는 마지막 순간에 우리는

그 길을 가로막고 서 있는 게

바로 죄 많은 자신임을 깨닫는다.

 


그토록 갈망하던

하느님과의 하나 됨을 방해하는

마지막 장애가 바로 자기 자신임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견딜 수 없는 슬픔이다.

하느님을 향한 갈망이 죽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그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

지금까지 그러셨듯이,

하느님이 붙들어주시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음은 물론이요

그 슬픔을 견딜 수도 없고

자기에게 가장 무거운 짐이 되어버린 자기를

차마 바라볼 수도 없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으로 우리는,

존재하는 것 하나만으로 너무나 기쁘고

이 큰 선물을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온종일]

알고 보니 우리 자신이 우리의 마지막 장애물이다.

 


[하루를 마감하며]

여기, 모여드는 밤의 어둠 속에,

제가 당신과 함께 있나이다.

주님과 저 사이에 있는 것을 모두 치웠더니

거기 저의 ‘나’가 남아 있네요.

죄 많은 저를 저는 피할 수 없습니다.

제가 저한테 가장 무거운 짐이요

가장 큰 장애입니다.

당신 사랑의 길에서 저의 ‘나’를 치워주소서.

 


이제 저는,

당신 사랑과 저 사이를 여전히 가로막고 있는

최대 장애물이 바로 저임을 아나이다.

저에게 은총을 베푸시어,

이렇게 존재하는 것 하나로 기뻐하게 하시고

생명을 선물로 주신 당신께 감사드리게 하소서.

 


당신 향한 저의 갈망은 죽을 수 없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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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제29일

 


[밝아오는 아침에]

우리가 영적인 것이든 육적인 것이든,

모든 피조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하느님께 들어올려져 그분과 하나로 되면

드디어 자아를 넘어설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는 하느님의 피조물이다.

우리가 자아를 넘어서는 것은,

자연의 힘만으로는 가서 닿을 수 없고

오직 하느님의 은총으로 주어지는 생명을,

말하자면 우리 뜻과 그분의 뜻이 완전 합일되어

영과 사랑 안에서 하느님과 하나 된 생명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는 하느님의 피조물이다.

그분은 본디 하느님이시고 처음부터 그러셨다.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분의 사랑과 힘이

우리를 존재케 하시는 까닭에

여기 이렇게 있다.

 


영 안에서 그분과 더 이상 분리되지 않고,

지금 그리고 여기 그리고 영원토록

그분과 하나 되어

하늘나라 기쁨을 맛보는 것은

오직 그분의 자비와 은총 덕분이다.

 


[온종일]

오직 그분의 자비에 의하여

우리는 그분과 하나 될 수 있다.

 


[하루를 마감하며]

여기, 모여드는 밤의 어둠 속에,

제가 당신과 함께 있나이다.

당신이 거기에서 저를 불러내시어,

당신 은총 아니면 닿을 수 없는

생명과 빛으로 데려오신,

아무것도 없는 어둠을 생각합니다.

제 기도를 들으소서.

저를 당신께 결합하소서.

 


제가 아무것도 아닌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당신 사랑과 힘으로

이렇게 여기 있나이다.

지금 그리고 여기 그리고 영원토록

저를 당신과 하나로 만드시어,

하늘나라 기쁨을 맛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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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제30일

 


[밝아오는 아침에]

하느님을 알아가는 과정에

우리의 감각을 의존해서는 안 된다.

창조되지 않은 하느님한테는

우리가 피조물을 통하여 

알 수 있는 성품들(qualities)이 없으시다.

우리는 하느님을 잴 수 없다.

우리는 그분을 눈으로 볼 수 없고

코로 냄새 맡거나

혀로 맛볼 수도 없다.

 


하느님은 ‘어느 것’도 아니시다.

 


우리는 그분을 어느 한 곳에 모실 수 없다.

그분은 어떤 장소가 아니시다.

 


하느님은 ‘어디’에도 안 계신다.

 


아무도 이성(reason)을 통해서는,

창조되지 않은 유일한 분인

하느님에 대한 지식에 이를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무능 안에서,

우리의 실패 안에서,

우리는 진실로 하느님을 알 수 있다.

성 데니스가 말했듯이,

“하느님에 대한 성스런 지식은

무지(unknowing)를 통해서 알아지는 것이다.”

그런즉 우리는 우리의 감각을 넘어서야 하고,

창조된 무엇을 통해서

하느님을 알겠다는 희망을 버려야 한다.

 


그보다 우리는 무지의 구름의

‘아무것도 아님’(nothing) 안에서,

‘어디도 아님’(nowhere) 안에서

수고하라는 부름을 받은 몸이다.

 


[온종일]

하느님은 ‘어느 것’도 아니시다.

하느님은 ‘어디’에도 안 계신다.

 


[하루를 마감하며]

여기, 모여드는 밤의 어둠 속에,

제가 당신과 함께 있나이다.

당신의 피조물을 통해서

당신을 알게 되리라는 희망을

포기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저는 당신이 어딘가에 계시기를 원합니다.

저는 당신이 무엇인가로 계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제 원대로 마시고

참 당신으로 저에게 계십시오.

 


저는 당신을 잴 수 없나이다.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코로 냄새 맡을 수도 없고

혀로 맛볼 수도 없나이다.

하느님은 ‘어느 것’도 아니십니다.

하느님은 ‘어디’에도 안 계십니다.

당신은 오직 무지로만 알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존재하는 모든 것이요,

저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며,

제가 찾는 모든 것입니다.

 


제 말씀을 들어주소서.

 

 

 

끝으로 한 마디

 


이 책은 하나의 문―한 영성서적의 지혜와 그대 자신의 영적 오솔길로 들어가는 문―으로 읽히고자 만들어진 것이다. 그대는 익명의 저자가 남긴 불후의 영성서적, ‘무지의 구름’에 기록된 내용을, 그대가 깊이 그리고 가까이 따르고 싶은 하느님 체험의 안내문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터인데, 그렇다면 ‘무지의 구름’을 읽고 이 책에서 기도한 것처럼 기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내용이 그대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잊지 말라, 우리에겐 ‘무지의 구름’을 쓴 저자 말고도 많은 교사들이 있다. 그들 가운데 그대에게 특별히 맞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그대는 그대의 선생을 만나야 하고 마침내 그대의 길을 찾아야 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하듯이, 선생이 먼저 그대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대가 그를 찾아다니지도 않을 것이다. 어쨌든 간에, ‘무지의 구름’은 한 가지 중요한 충고이자 마지막 축복을 지난 수백 년 동안 우리에게 끊임없이 주고 있다.

하느님은 우리를 구원으로 부르신다. 그리고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은 묵상의 삶을 통하여 완덕에 도달하라는 부름을 받는다. 그대가 어떤 부름을 받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대가 그분의 부름에, 그것이 어떤 부름이든 간에, 제대로 응답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느님이 그대에게 어떤 소명(召命)을 주셨든지, 그대는 하느님을 찬미하고 당신 은총에 온전히 응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드려라. 그러나 버릇없이 하느님께 무엇을 하시라고 말씀드리는 일은 없도록 하여라. 그분 길에서 비켜서라. 그분 홀로 하시게 해드려라. 당신의 지혜와 능력으로, 당신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러시듯이, 그대를 위해서도 가장 좋은 일을 하실 것이다.

그분의 은총이 어떤 방식으로 그대 삶에 들어오든지, 평안한 마음으로 소명을 받아들여라. 그대가 노력해서 어떤 소명을 선택하여 받는 게 아님을 기억하여라. “나 없이는 네가 아무것도 못한다.”고 그분은 말씀하셨다.

 


그런즉, 내 영의 벗들이여,

잘 있어라.

하느님과 나의 축복을 기억하여라.

참 평화며

영적 위안이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풍성한 은총과

능력으로

항상 그대와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곁에

계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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