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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스6:3-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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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2000년대 설교 |
6장 3절-12절.
3절-12절: 고레스 왕 원년에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에 대하여 이르노니 이 전 곧 제사 드리는 처소를 건축하되 지대를 견고히 쌓고 그 전의 고는 육십 규빗으로, 광도 육십 규빗으로 하고 큰 돌 세 켜에 새 나무 한 켜를 놓으라 그 경비는 다 왕실에서 내리라 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전에서 취하여 바벨론으로 옮겼던 하나님의 전 금 은 기명을 돌려보내어 예루살렘 전에 가져다가 하나님의 전 안 각기 본처에 둘찌니라 하였더라 이제 강 서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너희 동료 강 서편 아바삭 사람들은 그곳을 멀리하여 하나님의 전 역사를 막지 말고 유다 총독과 장로들로 하나님의 이 전을 본처에 건축하게 하라 내가 또 조서를 내려서 하나님의 이 전을 건축함에 대하여 너희가 유다사람의 장로들에게 행할 것을 알게 하노니 왕의 재산 곧 강 서편 세금 중에서 그 경비를 이 사람들에게 신속히 주어 저희로 지체치 않게 하라 또 그 수용물 곧 하늘의 하나님께 드릴 번제의 수송아지와 수양과 어린 양과 또 밀과 소금과 포도주와 기름을 예루살렘 제사장의 소청대로 영락없이 날마다 주어 저희로 하늘의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을 드려 왕과 왕자들의 생명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라 내가 또 조서를 내리노니 무론 누구든지 이 명령을 변개하면 그 집에서 들보를 빼어내고 저를 그 위에 매어달게 하고 그 집은 이로 인하여 거름더미가 되게 하라 만일 열왕이나 백성이 이 조서를 변개하고 손을 들어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을 헐찐대 그곳에 이름을 두신 하나님이 저희를 멸하시기를 원하노라 나 다리오가 조서를 내렸노니 신속히 행할찌어다 하였더라.
본문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봅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한 구원사역은 우연적이거나 돌발적인 그런 사역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사역은 계획적이요 설계적이요 예정적이기 때문에 이 구원완성을 위해서 물질을 구비해 놓으시고, 또 비물질성도 구비해 놓으시고, 사건은 사건대로 설계를 다 해 놓은 겁니다. 우리의 큰 구원을 위해서.
이 큰 구원사역은 계획이 없이 목적이 없이 무계획적으로 그 시간 시간 인간의 행동에 따라서 성공도 되고 실패도 되고 하는 그런 것은 아니라 그 말이요. 우리 인간이 볼 때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하는 대로, 인간이 하자는 대로 인간을 좇아가면서 인간에게 동화되어가지고 서서히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가 쉽다 그 말이요. 신학자들은 그런 사고방식으로 많이 생각을 합니다.
또한 이 지구상에 인간을 만든 것도 작정 없이 한 것인가?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인간들이 산아제한을 할 것을 알았을까, 아니면 이것도 하나님 당신의 계획안에 설계 안에 들어 있을까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인간 제 마음대로 뱃속의 아이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니까 하나님의 예정에 계획된 그것이 꼭 무너지는 것 같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이 되지요?
또 한 예를 들면 하나님의 계획이 ‘이제 인간의 수가 다 찼으니 심판을 하겠다’ 그럴 때에 인간이 산아제한을 하면 인간의 숫자가 줄어들었으니까 하나님의 심판이 뒤로 물러가지 않겠느냐? 그렇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인간이 악하니까 하나님이 심판을 하지요? 그렇지 않아요? 노아홍수 때도, 또 마지막 때도 인간이 악하니까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는 걸로 보이지요? 그렇다면 누군가가 인간을 선하게 만들면 하나님께서 심판을 안 하겠지요? 그건 아닐 것 같아요? 자식도 말을 안 들으니까 부모가 두들겨 패고, 말을 잘 들으니까 상을 주던데? 우리 인간이 보기에는 꼭 그렇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전도도 많이 하고, 예수 믿는 사람이 많아지면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뒤로 물리는 것처럼 생각을 한단 말이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당신의 계획 속에 든 것은 그대로 진행해 나갑니다. 인간이 악하던 선하던 이 지구는 당신의 계획하신 그 날에는 불바다가 된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작정 설계 예정 안에 다 들었다 그 말이지요. 인간에 의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요.
하나님은 전지전능 무소부재 하십니다. 이 세상 시작과 종말까지 인간이 몇 명이 날 것이고, 몇 명이 죽는 것까지 다 하나님의 예정 속에 들어 있습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인간을 에덴동산에서 영원히 살도록 한 것입니까, 에덴동산에 살다가 쫓겨나는 것도 하나님의 예정 안에 들었습니까?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하는 것도, 창조의 양도 다 설계가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 쉽게 예를 들어봅시다. 인간이 집을 지으려고 설계를 할 때에 ‘나무가 어느 정도 들 것이다. 돌이 어느 정도 들 것이다. 벽돌이 어느 정도 들 것이다. 못이 어느 정도 들 것이다’ 하는 그걸 정해놓고 합니까, 그냥 무턱대고 하는 겁니까? 그게 어느 정도 설계자 머릿속에는 다 정해져 있단 말이요. 하물며 하나님께서 성육신 하시는 것까지 설계가 없이 하겠느냐 그 말이요.
조류와 어류 동물 식물 무생물 파충류 전부 다 하나님의 계획과 설계 속에 다 듭니다. 말하자면 우리의 구원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이처럼 치밀하다 그 말이요. 너무나도 과학적이고 너무나도 체계적이고 너무나도 빈틈이 없다 그 말이요. 모든 것이 맞물려 돌아가면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그렇게 하도록 했다 그 말이요. 큰 사건 작은 사건, 풍년과 흉년, 질병과 가난, 불행과 행복 모두 다 하나님의 계획안에 드는 겁니다. ‘그러니 너는 이런 것 저런 것 걱정을 하지 말아라. 성전을 짓는 것은 너희들이 걱정할 일이 아니다.’
내가 성전을 지으려고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모두 다 준비를 해 주신다 그 말이요. 그러니 무엇이 없어서 성전을 못 짓는다고 하는 것은 핑계일 뿐이다. 성경에 보니 성전 지을 게 전부 다 딴 데서 나오잖아요. 성전을 짓는 재료는 하나님이 모두 다 주시더라 그 말이요. ‘모든 경비는 왕실에서 내리라’ 그랬지요?
고레스가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성전을 지으라고 할 때에 유대인들은 왕실에서 경비가 나오리라고 하는 것을 예측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즉시 성전을 짓지 못하고 2년 동안 공치고 있다가 2년 1월에 성전을 짓기 시작했다 그 말이요. 성전건축의 하나님의 예비성 설계성을 모르니 그렇게 되더라 그 말이요.
본문에 보니까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짓기 위해 물질만 예비해 놓은 것이 아니고 사람들까지 다 준비해 놓았더라 그 말이요. 왕실에서 경비를 내는 일에 있어서 누구를 동원시켰느냐? 강 서편에 있는 사람들.
고소자들은 닷드내와 스달보스내 등인데 이들이 곧 성전 방해자들입니다. 왕이 이 고소자들에게 성전에서 멀리 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고레스의 명령에는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의 말까지 넣어서 고소자들에게 성전건축을 하는데 도우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고소장이 결국은 성전건축 청원서로 돼버렸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라 그 말이요. 고레스 왕이 성전을 지으라고 그랬는데 그 때에 유대인들에게는 예산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면적으로 보니 하나님께서 다 준비해 놓으셨다 그 말이요.
하나님의 일이 인간의 형편에 따라서 하고 못하고 하는 것이냐? 하나님의 일이 인간의 어떤 형편에 따라서 하고 못하고가 있느냐 그 말이요. 그게 없어요. 하나님은 철두철미하고 계획적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그 일에는 인간이 다 달라붙어서 반대를 한다고 해도 안 된다 그 말이요.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반대자를 들어서 일이 더 잘 되게 만들어 버린다 그 말이요. 그럼에도 성전을 안 지은 이유가 뭐냐? 이유는 불신이라 그 말이요. 자기 속의 불신이라. 믿지 않는 마음이라.
우리 인간이 보기에는 고소하는 자들이 원수 같으나 하나님은 그들을 성전건축의 협조자로 보낸 겁니다. 인간 보기에는, 이스라엘이 보기에는 이들이 성전건축의 방해자들인데 하나님께서는 방해가 아니라 협조자들로 보냈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우리는 부지런히 성전만 지으면 됩니다. 부지런히 성전만 지으면 돼요. 그런데 그들은 물질걱정만 했다 그 말이요. 안일만 걱정을 한 것이라 그 말이요.
먹든 굶든 생의 목표가 뚜렷하면 성전건축에 있어서 모든 것이 예비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쉬운 예를 들 수가 있는데,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이 주일날 기차에 사람 태우고 왔다 갔다 하고, 전기도 보내고 수돗물도 보내고 그러지요.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성전을 지으라고(주일예배를 드리라고) 그렇게 들어 쓴다 그 말이요.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세계 각국을 다 준비해 놨습니다. 학개서에 보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안 지으니 재앙이 옵니다. 성전의 기초를 놓으니까 모든 것이 몇 배가 많아집니다.
고소자들을 알고 보면 성전을 짓게 하는 보조자들이라. 그러니까 이 세상은 성전을 짓는데 대립이 아니고 전부 다 협조자들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위해 가는데 있어서 우리와 함께 탄 탑승자들이라 그 말이요. 그러니까 알고 보면 성전건축을 하는데 있어서 반대자들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눈을 닦고 봐도 반대자들은 없다 그 말이요.
성전을 짓는 모든 경비는 왕실에서 낸다고 했습니다. 왕실에서 성전을 짓는 경비를 보낼 때 왕과 신하들이 허리끈을 졸라매며 보내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또 성전을 지을 때에 허리띠를 조르고 짓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먹고 남음이 있도록 더 잘 먹더라 그 말이요. 보니까 수송아지와 수양과 양과 밀과 소금과 포도주와 기름을 막 보낸다 그 말이요. 그리고 번제 드릴 수송아지를 주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소금도 주라고 했는데 성전을 짓는데 소금이 필요합니까?
성전을 짓는데 방해자들이 재료만 준 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협조자가 된 거지요. 다리오 왕이 그들에게 ‘성전을 짓는데 협조를 안 하면 너희들 집의 들보를 다 허물어뜨리고 거름더미를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달라는 대로 다 도와주라는 거지요. 만일에 자기의 명령을 거역을 하면 하나님께서 그 집에 벼락을 내리길 원하기까지 아주 저주를 해버린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성전을 짓는 일에 얼마나 세밀적이냐 그 말이요. 그런데도 왜 성전을 안 짓느냐 그 말이요. 각자 자기 마음속에 무형의 성전을 왜 안 짓느냐 그 말이요. 재료뿐만 아니고 성전을 짓는 사람의 식량까지 준비를 해 놓았습니다. 성전만 잘 지으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든지 준비를 해 놓았다 그 말이요. 우리 인간들은 몰라도 다 준비를 해 놓았다.
언제 그렇게 준비를 해 놓았느냐? 어제 했을까요, 그제 했을까요, 일 년 전에 준비해 놨을까요? 언제부터 준비를 해 놨을까요? 창조 때부터. 창조를 하면서 다 준비해 놨다 그 말이요.
이제 고소자들로 인해서 모든 것이 풍부하니까 고소자들을 미워해야 됩니까, 고맙다고 감사해야 됩니까? 깨닫고 보면 고마워해야 하는 거지요. 안 그래요?
내 속에서 상대를 미워하면 그 미움은 나의 소산이니 나한테서 나간 미움이란 말이요. 그러니까 그 미움이 죽음 저 너머까지 나를 끌고 주님 앞에 심판을 받으러 간다 그 말이요.
하나님께서 ‘네 미움이 어디서 나왔느냐?’ 그러니까 ‘아무개 집사 속에서 나왔다’ 그러고, ‘아무개 장로 속에서 나왔다’ 그럽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을 끌고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으러 나간다 그 말이요. 그래서 성경에 보면 자기 입으로 직고한다고 그랬지요. 그리고 또 요한계시록에 보면 백보좌 심판도 있고. 이게 다 자체적인 심판이거든요.
그래서 정면으로 보면 반대자인데 그 이면으로 돌아가서 보니까 이게 반대자가 아니고 협조자다. 뭐 하는데 협조자지요? 성전을 짓는데 협조자라.
미움은 나를 하나님의 심판대 앞으로 인도하고, 사랑과 진실은 나를 시상대 앞으로 인도합니다. 상을 받는단 말이요.
나에게서 나오는 미움은 남에게 아무 해를 끼치지를 못합니다. 그러면 누구에게 해를 끼치지요? 자기. 그렇지요. 미워하면 누가 고통스럽지요? 자기만 고통스러워요. 그 이치를 우리가 알아야 돼요. 남의 눈을 하나 뽑으면 자기 눈은 둘을 뽑아야 돼요. 상대방의 눈을 하나 빼내면 자기 눈을 둘을 뽑아야 돼요. 심은 대로 거둔다고 그랬단 말이요.
그러니까 미워하지 말라고 한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한 말입니까, 자기를 위해서 한 말입니까? 자기지요. 그런데 그렇게 됩니까?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그러면 꼭 원수에게 좋게 해 주라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상대를 미워하지 말라고 그러면 꼭 나를 해코자하는 것 같고. 늘 반대로 생각이 되지요?
독생자까지 주신 하나님께서 무엇이 아깝겠느냐? 안 그래요? 여러분들이 다 독생자 예수님까지 받았잖아요. 구원 받았잖아요. 영이 중생이 됐잖아요. 이런 나에게 독생자까지 주시는 그 하나님이신데 무엇이 아까워서 못 주겠느냐? 성전건축을 하는 그 자에게 무엇이 아깝겠느냐? 하나도 아깝지 않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우리가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만물이 다 준비되어 있다 그 말이요. 다 준비되어 있어. 그러니 어떤 사건 환경 속에서도 성전만 잘 지어라 그 말이요.
성전을 짓는다는 말의 의미가 뭐요? 진리이치로 자기를 지혜롭게 자체화 시키고 사상화 시키고 인격성장화 시키고 하면 사람이 고상해지지요. 영특해지지요. 총명해지지요. 지혜로워지지요. 이게 성전건축을 해 나가는 거란 그 말이요. 그런데 그건 안 하고 자꾸 현실에 대한 불만, 상대와 대적, 말하자면 모든 잘잘못을 상대에게만 계속 갖다 붙이지요? 안 그래요?
자기 속을 들여다보고 자기를 훑어보면 자기가 지혜로워지고 영특해지고 올라가고, 말하자면 리더십이 돼 나간단 말이요. 그런데 성전은 안 짓고 왜 그러고 있느냐? 왜 원망불평만 하느냐?
원망불평은 어디서 나와요? 누림성에서 원망불평이 나오게 되어 있다 그 말이요. 자기가 현재 있는 처소에서 잘 누리고 있다면 원망불평이 안 나오느냐? 그렇지 않아요? 누림성에서 원망불평이 나오고, 성전을 안 짓는데서 원망불평이 나오고 그런 거라 그 말이요.
우리가 보이는 면에서 여러 가지 재로를 줄 때에 빨리 빨리 성전을 지어나가야 된다 그 말이요. 무형적인 성전을 부지런히 지어나가. 반대하는 자들이 죽음의 선을 넘어오기까지 따라오겠어요? 안 그래요?
그런데 성전은 짓지 않고 항상 원망불평으로 세월만 보내고 시간만 보내고, 일생을 그렇게 다 보내면 그게 뭐요? 그게 뭐가 될까? 그렇게 되면 누구에게 심판이 떨어지겠느냐? 자기에게 심판이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기도 올립시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에게 영적 이치를 가르쳐 주시니 감사합니다.
불신세상과 영의 눈이 어두운 사람들은 단순히 육의 눈으로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육의 눈으로 보는 것으로 왈가왈부하며 사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에스라서에서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보니 나를 반대하던 자들이 알고 보니 성전을 짓게 하는 하나의 협조자들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이 사실을 지식적으로는 알았습니다마는 마음 깊은 속에서 아직까지 세상에 대하여, 다른 사람에게 대하여 원망스러운 것이 많이 있습니다.
어찌하든지 시간과 세월과 나의 인생이 다 가기 전에 우리 각자 자기의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전을 질 짓고 갈 수 있는 복된 자들이 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사사건건이 오는 모든 존재와 사건 환경은 알고 보면 성전을 짓게 하는 재료감들이요, 이게 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인데 그것을 알지를 못하고 그것 잡고 싸우느라고 자기의 일생을 다 보낸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인 줄 압니다.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의 소원 목적대로 저희들이 영특해져서 무형의 성전,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이 성전, 하나님께서 보실 수 있는 이 성전, 내가 알 수 있는 이 성전을 잘 짓고 가는 복된 자들이 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타이핑 했습니다)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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