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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시작,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빌립보서 김필곤 목사............... 조회 수 1854 추천 수 0 2014.03.30 23:5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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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빌2:5-11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2014.1.26 열린교회(용인) http://www.yeolin.or.kr 

한 해의 시작,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빌2:5-11

2014년 1월 4번째 주일입니다. 올해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면서 갑절의 복을 받는 한 해를 만들자고 이사야서를 통해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첫 주에 ‘한 해의 시작’ 뜻을 정하고 출발하자고 다니엘서를 통해 말씀을 들었습니다. 갑절의 복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분명하고 흔들리지 않는 확실한 목표를 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주일에는 ‘한 해의 시작’, 바나바를 통하여 세 가지 충만, 즉 착함 충만, 믿음 충만, 성령 충만이라는 방향으로 올 한 해 배가의 복을 받자고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세 번째 주일은 다윗의 시편을 통해 한 해의 시작,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갑절의 축복을 누리자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인생의 짐도 맡기고, 인생의 계획도 맡기고, 인생의 염려도 맡기고 출발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빛나게 해 주실 것이라고 말씀을 통해 교훈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한 해의 시작” 마지막 말씀으로 갑절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 인간관계의 장애물을 넘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성과를 거두고, 승진하고, 성공을 하고, 승리하는 데는 인간관계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제 큰 딸이 어릴 때 아파 대학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의사에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입니다. 대학 병원 의사가 되면 그렇게 실력 차이가 크게 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독 그 의사만 좋은 소문이 나 환자들이 많이 모이는 것입니다. 한 달여 동안 있으면서 왜 그런가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역시 환자들이 많이 모이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아주 친절하게 환자 보호자에게 설명을 잘 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인간관계를 잘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관계의 달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간관계의 달인이 되면 무엇을 하든지 갑절의 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올 한 해 인간관계를 잘 하여 갑절의 축복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오늘 성경은 딱 한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면 됩니다. 어떤 경우도 사탄의 마음, 시기하는 마음, 원수 갚는 마음, 분노의 마음, 질투의 마음, 보복하는 마음, 탐욕의 마음... 등을 품지 않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인간관계는 근본적으로 마음의 문제입니다. 공자는 세상을 살펴보고 돌아와서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하늘도 문제가 아니고 땅도 문제가 아니다. 오직 사람의 마음보가 문제다." 이태리의 문인 빠삐니라는 사람도 말하기를 "오늘날 세계의 문제는 인간의 문제이며 인간의 문제는 마음의 문제이다"라고 갈파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 4:23)”라고 마음의 중요성을 말씀해 주십니다. 사탄은 마음에 암 덩어리를 심어줍니다. 그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 16:18)” 마음속에 이것이 심겨지면 그의 인생은 패망합니다.

우리가 갑절의 축복을 받는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가지려면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 예수님의 마음의 대표적인 특성 중의 하나가 겸손한 마음입니다. 이 예수님의 겸손한 마음을 품어야 어떤 인간관계에서도 우리는 갑절의 복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겸손한 마음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지 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 구체적으로 우리가 품어야 할 예수님의 겸손한 마음은 어떤 마음이겠습니까?
첫째,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는 것을 스스로 포기하고 낮추는 겸손한 마음입니다(6).
예수님은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본체란 단어는 하나님의 성품이나 본질을 포함해서 모든 것에 있어서 하나님과 다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습니다(요14:9; 요 10:30; 사 9:6)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시고 평강의 왕이십니다. 하나님으로서의 모든 영광을 다 누리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스스로 그것을 포기하셨습니다. 겸손은 마땅히 누려야할 권리를 포기하는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내 자존심의 꽃이 떨어져야 인간관계의 풍성한 열매는 맺히는 것입니다. 그릇이 비워지지 않으면 물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면서 하나님과 동등함을 취하지 않으시고 포기한 것과 같은 겸손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모두 왕이 되려고 하는데서 인간관계의 문제는 발생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하나 되어 주어진 목표, 주어진 사명을 성취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본문은 1절부터 이어지는 말씀으로 교회가 하나 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라고 하면서 그 마음 중에 겸손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슨 문제인지 4장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여자 성도님들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유럽에서 첫 번째 개척한 교회였습니다. 소아시아로 가지 말고 유럽으로 오라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 루디아의 집에서 개척한 교회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여인이 다툰 것입니다. 두 여인 사인의 개인적 불화가 얼마나 심했는지 감옥에 있는 바울에까지 전해졌습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의 갈등은 구체적으로 그 원인이 나와 있지 않지만 대부분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욕구 충돌입니다. 둘째는 가치관 충돌입니다. 셋째는 감정 충돌입니다. 우리는 살다보면 인간관계를 통해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 리서치에서 조사한 통계를 보니 우리나라 부부들은 1년에 평균 48번 부부싸움을 한다고 합니다. 자란 환경이 다르고, 취미, 성격, 신앙 스타일이 다른데 의견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모범적이라는 교회로 생각하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도 완전하였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히브리파 유대인과 헬라파 유대인들 사이에 갈등이 있었습니다(행6장). 아무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히브리파 사람들이 구제 헌금을 사용하는데 자신들과 가까운 홀로된 여인들을 더 많이 구제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헬라파 유대인들이 불평을 합니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일곱 집사님을 세웠습니다. 선교에 모범적이었던 안디옥 교회는 어떻습니까?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마가 문제로 다투었습니다. 바나바는 자신의 생질인 마가를 선교에 데리고 가려고 하였고 바울은 한번 배신한 전력이 있는 그를 데리고 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이런 인간관계의 갈등 문제는 그것 피해 도망간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에 가나 또 있습니다. 내 마음을 바꾸어 버려야 합니다. 같은 마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 예수님의 겸손한 마음을 품으면 되는 것입니다. 50% 50% 양보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의롭냐? 누가 옳으냐?”라는 의의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힘 있는 자에게, 능력 있는 자에게, 재력 있는 자에게, 신앙생활 오래한 자에게, 어떤 직분자에게 맞추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느 한 쪽을 따르고, 어느 한 쪽을 버리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식의 접근은 불만을 없애기는커녕, 파벌만 조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까? 모든 권리를 포기하신 겸손한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마11:29절에서 친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겸손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마땅히 하나님으로서 권리가 있는데도 그 권리를 주장하지 않은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권리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내세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스스로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공로의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고,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서 말입니다. 목사로서, 장로로서, 직분자로서 교회에서 마땅히 받아야 할 권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얽매이면 때때로 교회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포기해야 할 때는 과감히 포기해야 합니다. 자존심 세우며 서로 왕노릇하려고 하면 교회는 하나 될 수 없습니다. 당연한 권리일지라도 그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십자가를 통한 인류 구속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둘째는 우리는 예수님이 종의 형체를 입기까지 낮아지신 것처럼 겸손해져야 합니다(7).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종의 형체를 입으셨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모두가 다 주인 되려 하고, 왕노릇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종의 도를 가르치십니다. 서로 왕노릇하려고 하면 갈등과 분열은 끝없이 이어집니다. 인간관계에서 성공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3장 13절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 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느 정도까지 낮추셨습니까? 8절을 읽어 보세요.
셋째, 우리는 예수님이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처럼 겸손해야 합니다(8).
죽기까지 복종하였습니다. 12영(약72,000명)도 더 되는 천사를 동원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그들을 진멸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어느 것도 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것을 요구하십니다. 순종하기 싫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님의 뜻이기 때문에 순종해야 되고, 자존심 상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창피당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수치와 모욕을 당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죽기까지 순종해야 됩니다. 사실 죽기까지 순종할 각오만 되어 있으면 우리의 삶에서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이런 겸손이 우리 예수님의 겸손한 마음입니다. 우리가 올 한 해 인간관계에서 갑절의 복을 누리려면 이런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고당 조만식 선생님이 일제 강점기 때 평양 산정현 교회 수석장로로 시무하고 계셨답니다. 그 때 고당은 제자인 주기철이라는 젊은 목사를 청빙하여 담임목사로 보필을 하였답니다. 당시 저명한 민족지도자였던 고당은 늘 바쁜 몸이었고 게다가 방문객이 많아서 항상 시간에 쫓기는 생활을 하였답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예배 시간에 지각하는 예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 어느 날 또 예배 시간에 몇 분 늦어 헐레벌떡 예배당에 들어서는 고당을 향하여 주 목사는 예배를 인도하다 말고 노기 띤 큰 목소리로 "조 장로님은 늦었으니 자리에 앉지 마시고 예배가 끝날 때까지 그 자리에 서 계시오." 호령이 추상같았다고 합니다. 이럴 때 보통사람 같았으면 그냥 나가든가, 의자에 앉아서 목사에게 욕을 하며 험한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당은 그 자리에 꼼짝 않고 화석처럼 한 시간 반 동안을 경건하게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예배 중이던 산정현 교회 교인들은 교회가 시험들 것을 염려하여 순간적으로 걱정이 태산 같았다고 합니다. 나중에 주 목사께서 설교를 마치고는 "서 계시는 조 장로님, 기도해 주십시오." 하니 기도하시는데 "하나님, 나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거룩한 주일에 하나님 만나는 것보다 사람 만나는 것을 더 중요시한 죄를 용서하옵소서..."라고 기도 드렸다고 합니다. 만약 고당이 사탄이 던져주는 교만의 암덩어리를 마음에 품었다면 그는 인간관계에서 실패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겸손한 고당의 모습을 본 교우들은 큰 감동을 받고 울음바다가 되었고 그 사건 이후 교인들은 고당의 고매한 인격에 감동하여 더욱 존경심에 불탔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겸손의 고지에 오른 고당의 높은 인격에 대한 유명한 실화입니다. 빈 수레는 요란하지만 가득 찬 수레는 그렇게 요란한 소리가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튀는 물고기 도마에 먼저 오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씨는 죽어야 새싹을 발하고 꽃은 떨어져야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2. 이런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해 주십니까?
낮아지신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높여 주셨듯이 우리를 높여 주십니다
어떻게 높여 주십니까? 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 주었듯이 우리를 높여 주십니다(9).
하나님이 지극히 높여 주십니다. 누가 높여 줍니까? 사람이 아닙니다. 상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높여 주는데 지극히 높여 주십니다. 어떻게 높여 주었습니까? 두 가지입니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9). 유명해졌다는 말입니다. 최고의 명예를 얻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인간적인 명예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높여주신 명예입니다. 모든 무릎이 그 앞에 꿇게 됩니다(10).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권위를 주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방법으로 일하십니다. 우리가 낮아지는 것이 손해가 아닙니다. 겸손해 지는 것이, 죽기까지 순종하는 것이, 나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왕 됨을 포기하는 것이,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고 지배욕을 내려 놓는 것이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높이는 자는 밑바닥까지 낮추십니다. 루시퍼(Lucifer)가 그러했습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사14:12-14)”
여러 사람들을 그렇게 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였다가 에덴에서 추방당하였습니다. 인간들이 끊임없이 하나님과 같아지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되어 마음대로 다른 사람을 통제하라고 합니다. 하나님 자리를 탐내라고 합니다. 인간은 장로님 앞에 하나님 같아지려고 하고, 목사님 앞에 하나님 같아지려고 하고, 집사님 앞에서, 사모 앞에서 하나님 같아지려고 하는 유혹을 끊임없이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 16:18)”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바로가 교만하다가 망했습니다(출 5:2). 웃시야가 강성하여 지매 제사장만이 하는 분향을 하다가 망한 것입니다.(대하 26:16) 히스기야가 은혜를 받고 질병에서 고침 받고 전쟁에서 이기고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칭찬하니까 마음이 교만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은 것입니다.(대하32:25) 느브갓네살이 잘 나가니까, 승승장구하니까 제힘으로 능력과 권세를 차지한 줄 교만하다가 망한 것입니다(단4:30) 사울이 왕이 되니까 세상 못할 일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제 자리 망각하고 제사장이 들여야 할 번제를 제멋대로 드리다 망한 것입니다(삼상13:8-15). 아마샤(왕하14:7-14)가, 웃시야(대하26:16-23)가, 헤롯이 망한 이유도 교만 때문입니다.
기러기 한 쌍이 남쪽으로 이동하려고 채비를 하고 있는데 개구리가 찾아와 자기도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답니다. 기러기는 데리고 갈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그러겠노라고 했답니다. 개구리는 갈대를 길게 엮어 가지고 왔답니다. 기러기가 양쪽 끝을 부리로 물고 그 중앙을 개구리가 입으로 물고 날았답니다. 이 광경을 본 개구리들이 부러워 여행기구가 참으로 훌륭하다면서 누가 만들었는지 그 지혜가 뛰어나다고 감탄했답니다. 개구리는 우쭐대며 입을 열어 말했답니다. "이 기구는 내가 만들었지요." 그 순간 개구리를 물고 있던 갈대를 놓쳐 땅으로 떨어져 죽고 말았답니다. 우리의 명예, 부, 권력, 건강, 지식 하나님이 놓으면 끝입니다. 그림자 같은 허상으로 교만하지 마십시오. 해 뜨면 다 살아집니다.

둘째, 하나님은 스스로를 낮추고 겸손하자를 인정받게 만들어 주십니다(9).
11절을 큰 소리로 읽어 보겠습니다. 모든 입이 그를 "주"로 고백하게 됩니다(11). 모든 사람이 왕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존심 내려놓고 겸손할 때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한 부부가 부부싸움을 하다 남편이 몹시 화가 났답니다. 화가 난 남편은 아내에게 소리를 질렀답니다. "나가 버려!" 아내도 화가 나서 벌떡 일어섰답니다, "나가라고 하면 못 나갈 줄 알아요!" 그런데 잠시 후 아내가 다시 자존심을 내려놓고 집으로 들어갔답니다.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남편은 왜 다시 들어오느냐고 소리를 질었답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두고 갔어요!" "그게 뭔데?" "바로 당신이에요!" 남편은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답니다. 그 후 남편은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우리가 부부싸움을 하면 뭐해! 이혼을 해도 당신이 위자료로 나를 청구할 텐데..." 라며 여유 있게 웃고 말았답니다. 얼마나 겸손함으로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가지고 사는 부부입니까?
하나님은 진정으로 겸손한 자는 들어 올려 인정받게 만들어 주십니다. 왕으로 대접받게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복을 주시겠습니까?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약4:6)”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벧전 5:5)”
올 해 갑절의 은혜를 받기를 원하시면 겸손한 주님의 마음을 품고 한 해를 사기길 바랍니다.

높임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벧전 5:6)”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약 4:10)”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마 23:12)”
올 해 갑절의 높임을 받기 원하시면 겸손한 주님의 마음을 품고 한 해를 사기길 바랍니다.

영예를 얻습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잠 29:23)”
올 해 갑절의 명예를 받기 원하시면 겸손한 주님의 마음을 품고 한 해를 사기길 바랍니다.

붙들어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들은 붙드시고 악인들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는도다 (시 147:6)”
올 해 갑절의 붙들림을 받기 원하시면 겸손한 주님의 마음을 품고 한 해를 사기길 바랍니다.

기도응답을 받으십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대하 7:14)”
므낫세가 크게 겸비하여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셨고(대하33:10-13), 요시야 왕이 겸비하여 기도할 때에 들어 주셨고(대하34:27), 에스라가 겸비한 자리에서 기도하니까 들어 주셨습니다(에스라8:21-23).
올 해 갑절의 기도 응답을 받기 원하시면 겸손한 주님의 마음을 품고 한 해를 사기길 바랍니다.

그가 처한 위치에서 오래 머물 수 있습니다.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 (신 17:20)”리라
올 해 갑절의 지위를 누리기 원하시면 겸손한 주님의 마음을 품고 한 해를 사기길 바랍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겸손한 자에게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가난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사 29:19)”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니, 높여 주시니, 영예가 있으니, 붙들어 주시니, 구원해 주시니, 영혼을 소성시켜 주시니, 지혜가 있으니, 기도를 응답받으니, 그가 처한 자리에 오래 머물므로 기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올 해 갑절의 기쁨을 받기 원하시면 겸손한 주님의 마음을 품고 한 해를 사기길 바랍니다.

기독교의 역사가운데 성자라고 불릴 만큼 큰 업적과 아울러 흠모할만한 신앙과 인격을 지녔던 어거스틴에게 어떤 사람이 찾아가서 질문 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첫째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거스틴은 "겸손입니다."라고 대답했답니다. "둘째는 무엇 입니까?" "겸손입니다," "그럼 셋째는 무엇입니까?" "셋째도 겸손입니다." 하였답니다. 어거스틴은 "천사를 마귀로 만든 것은 교만이며 인간을 천사로 만든 것은 겸손이다."이라고 했고 "모든 미덕의 바구니가 겸손"이라고 했습니다. 지식도 겸손의 바구니에 담겨져야 가치가 있습니다. 능력도, 돈도, 아름다움도, 권력도 겸손의 바구니에 담겨질 때 아름답습니다. 겸손한 자 앞에 모든 인간관계의 장애물은 따뜻한 햇볕에 눈 녹듯 살아집니다. 우리 온 성도님들이 올 한 해 예수님의 겸손의 마음을 품고 갑절의 복을 누리시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4.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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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03 마태복음 예수 앞에 나오면(3) 딸이 치유받은 여인 마15:21-28  김필곤 목사  2014-03-30 1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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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01 마태복음 예수 앞에 나오면(1)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 마9:1-8  김필곤 목사  2014-03-30 2492
» 빌립보서 한 해의 시작,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빌2:5-11  김필곤 목사  2014-03-30 1854
10499 요한일서 기도했으면 응답을 받으라 요일3:21-22  강종수 목사  2014-03-30 1121
10498 에스라 성전건축에 내가 빠져도 되는가? 스8:15-20  김경형 목사  2014-03-29 1138
10497 에스라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성전건축의 재료감들이다 스6:3-12  김경형 목사  2014-03-29 1190
10496 누가복음 하나님 뜻대로 살라 눅22:39-46  한태완 목사  2014-03-29 2092
10495 로마서 끊을 수 없는 사랑 롬8:34-39  한태완 목사  2014-03-28 2512
10494 골로새서 하나님의 비밀 골1:24-29  오준철 목사  2014-03-28 1862
10493 예레미야 하나님의 비밀창고 렘33:1~33  홍문수 목사  2014-03-28 1715
10492 누가복음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리 눅15:11-24  이한규 목사  2014-03-28 1487
10491 열왕기상 임종 때 남긴 마지막 말 [1] 왕상 2: 1- 10  한태완 목사  2014-03-27 2552
10490 예레미야 뿌리 깊은 신앙(나무) -신년주일 렘17:7-8  이상호 목사  2014-03-26 2252
10489 고린도후 건강하게 성장하여 열매를 맺었는가? (송년주일) 고후12:5-10  이상호 목사  2014-03-26 1394
10488 마태복음 예수 그리스도 임마누엘(성탄주일) 마1:18-25  이상호 목사  2014-03-26 1872
10487 이사야 오실 주님의 모습 사11:1-10  이상호 목사  2014-03-26 1197
10486 요한복음 사랑의 주님을 가다립니다. 요3:16-21  이상호 목사  2014-03-26 1164
10485 이사야 오실 메시야를 바로 모시자 사9:1-7  이상호 목사  2014-03-26 1233
10484 누가복음 변화산의 부흥회 눅9:28-36  이상호 목사  2014-03-26 1316
10483 마태복음 실족케 하지 말라 마18:5-9  이상호 목사  2014-03-26 2406
10482 신명기 감사하라. (맥추감사주일) 신16:9-12  이상호 목사  2014-03-26 2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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