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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앞에 나오면(3) 딸이 치유받은 여인

마태복음 김필곤 목사............... 조회 수 1885 추천 수 0 2014.03.30 23:5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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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15:21-28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2014.2.16열린교회(용인) http://www.yeolin.or.kr 

예수 앞에 나오면(3) 딸이 치유받은 여인
마태복음15:21-28

어제 신문을 보니까 “북한 농아인축구팀 감독 맡는 이민교 선교사”의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이분은 본래 축구선수 출신이 아닌데 앞으로 3년 동안 북한 농아인 축구팀 감독으로 활동한다고 합니다. 본래 원불교 교무가 되는 게 꿈이었답니다. 그런데 소록도 봉사를 갔다가 '예수 믿으라'는 한센인들의 전도를 받고 목탁 치며 염불을 하다가 방언까지 터졌다고 합니다. 예수 믿고 선교사가 되어 1997년 우즈베키스탄에서 농아인들을 모아 축구를 통한 선교를 하면서 3년 만에 농아인 축구 국가대표팀을 구성해 아시안게임에서는 동메달까지 따게 했다고 합니다. 우즈벡에 가서 건국 이래 처음으로 농아인축구팀을 만들어 훈련시켰고 메달을 따게 만들었답니다. 2005년 카자흐스탄으로 임지를 옮겨 역시 농아인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아 2008년 농아인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따게 했다고 합니다. 이 선교사는 카자흐스탄 영주권자로서 북한 방문을 방문하여 북한 농아인 축구팀을 지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분의 믿음입니다.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람은 믿음대로 믿음만큼 일하는 것입니다. 그는 통일을 위해 이런 일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 포로에서 70년 만에 해방됐어요. 내년이면 한반도 분단 70년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허락하신다면 2015년 광복절에 남북한 농아인축구대회를 서울과 평양에서 개최했으면 좋겠어요. 농아인들이 축구로 교류하면서 통일의 물꼬를 튼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요." 세상에는 큰 믿음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 요소요소에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은 큰 믿음을 가지고 있는 분 2분이 소개 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 하인의 중풍병을 고치게 한 로마 백부장이고 둘째는 오늘 성경에 나온 가나안 여인입니다. 28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이 여인의 믿음을 어떻게 칭찬하고 있습니까?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께 나와 신앙 생활하면서 이렇게 예수님께 인정받을 만큼 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런 큰 믿음을 가지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1. 큰 믿음을 가지려면 문제의 벽을 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침묵 앞에서 문제를 통해 믿음의 대상되신 우리 주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22).
오늘 성경에 나오는 가나안 여인은 어떻게 큰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까?
자신의 한계 상황 때문에 이런 큰 믿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 여인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없는 지역에서 자랐습니다. 헬라인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고 마가복음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헬라어를 사용하는 족속이라는 말입니다. 혈통적 배경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이방여인이라는 말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예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사람들은 유대인에 대해서 아주 좋지 않는 감정을 품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믿음을 가지는 데는 태어나고 자라온 배경이 중요합니다. 불교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은 불교인이 되기 쉽습니다. 천주교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은 천주교인이 되기 쉽습니다. 회교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은 회교도가 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믿음을 가질 만한 신앙적 배경이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당시 헬라권에 속한 사람은 헬라의 신들을 섬겼습니다. 예수님께 나와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주라고 부릅니다(22, 25, 27).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을 주라고 부른 사람은 이 여인 밖에 없습니다. 제자들도 그렇게 부른 것으로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직 유일하게 이 여인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능력을 신뢰하는 믿음이 내포되어 있는 존칭어입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마15:22)"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가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는 말입니다. 성경에 능통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아로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오히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한 것이라고 거짓 비난을 하고 있는데 이 여인은 이런 큰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2년 넘게 쫓아다녔던 제자들도 아직 주라고 고백하고 있지 않은데 이 여인은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물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인간 편에서 보면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한계 상황 속에서 절박성 때문입니다. 절박한 상황이 오면 믿지 않은 사람도 하나님을 찾습니다. 자기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한계 상황 앞에서 예수님을 찾아 온 것입니다. 오직 딸의 구원을 위해 민족적 반감이나 개인적 자존심을 모두 팽개치고 예수께 메어 달린 것입니다. 예수님 발 앞에 모든 창피를 무릎 쓰고 겸손하게 엎드렸습니다.

 

정신 의학자 해리스 박사에 의하면 인간은 세 가지 경우에 천성이 변한다고 합니다. 첫째, 현재 상황이 너무 괴로울 때 사람은 변할 수 있고 둘째는 소망이 안보일 때 인간은 변할 수 있으며, 셋째, 유레카 상황(Eureka Stage)에서 인간은 변할 수 있고 합니다. 어느날 자신도 모르게 큰 깨달음이 있을 때 변한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를 예수님을 떠나는 핑계거리로 만들지 말고 예수님께 가까이 가는 디딤돌로 활용해야 합니다. 문제가 거침돌이 되어 넘어지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디딤돌로 하여 인격적인 예수님, 구주 되신 예수님, 문제의 답을 가지고 계시는 예수님,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만 하면 말씀 한 마디로 질병을 고쳐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이 여인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딸이 흉악한 귀신에 들린 것은 결론적으로 보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심각한 문제가 있을 때 위선이 무너지고 가식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민낯을 보이는 것입니다. 교만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아집이 꺾이는 것입니다. 문제가 있을 때 문제에 치어 죽지 말아야 합니다. 문제는 주님께 나아가는 통로입니다. 우리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문제가 있기 때문에 주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고통이 믿음을 주기 위한 선물이었습니다. 지루한 인생이 아니라 의미 있는 인생을 살게 하시기 위해 시련의 과정을 통과하게 합니다. 시련 없는 스토리는 지루합니다. 진주는 고통 속에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고난의 현장이 새로운 세계로 가는 문이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예수님 앞에 이 여인이 나아갔는데 바로 치유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때 포기해 버렸다면 큰 믿음이라는 칭찬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체면 불구하고 주님께 나아가 소리칩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처절한 부르짖는 것입니다. 막연한 소원이 아닙니다. 아주 구체적인 소원입니다. 적당이 포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숨기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부끄러운 면을 드러내 놓고 공개적으로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23절을 보십시오.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 때 여인은 어떻게 합니까? 뒤에서 계속 소리를 지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야 말로 자신의 문제를 확실하게 풀어 주실 분이라고 확신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던 끝까지 매달립니다. 바로 들어 주시지 않아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매달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큰 믿음입니다. 문제를 않고 있는 나에게 주님이 침묵하신다고 생각될 때 문제에 집착하여 낙심하지 마시고 문제의 해답을 가지신 주님을 바라보면 주님께서 주시는 해답을 기대하여야 합니다. 문제를 통하여 더욱 주님과 가까워져야 합니다. 더욱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침묵 앞에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문제를 통해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고 문제를 통해 인간답게 되고, 문제를 통해 자신의 인식의 한계, 능력의 한계를 아시길 원합니다. 인격적으로 예수님과 교제하시길 원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을 성취하기 까지 25년을 기다렸습니다. 모세는 40년입니다. 다윗은 17여 년 동안을 기다렸습니다. 기다림을 통해 훈련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릇을 만드는 것입니다.

 

보험설계사들 가운데 60%가 1년 안에 회사를 그만두고 떨어져 나간다고 합니다. 골든타임을 기다리지 못해서라고 합니다. 고객을 6개월 만에 세 번 찾아간답니다. 처음 찾아갔을 때 보험에 관심이 없었고, 두 번째 찾아갔을 때 고객은 보험을 들 상황이 아니었고, 세 번째 찾아갔을 때는 볼일 때문에 정신이 없는 상태랍니다. 거기서 포기해 버린답니다. 그러면 골든타임의 기회를 놓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거절하던 사람이 어느 날 친구 남편이 사고로 한창 공부해야 할 아이 셋과 전업 맘으로 살아온 아내를 남겨두고 일찍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보험을 들어야 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때가 골든타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소원을 들어 주시는 골든타임이 있습니다. 그 때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유고에서 태어나 평생을 인도 캘커타의 가난한 동네에서 보내다가 1997년 세상을 떠난 테레사 수녀는 큰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빈손으로 병원과 보육원 등을 세웠고 그 빈손으로 가난한 자들을 먹여 살렸습니다. 어느 날 그녀가 인도 캘커타에 큰 보육원을 짓겠다고 발표했답니다. 그때 많은 기자들이 몰려와 그녀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며 물었답니다. "보육원 건축을 위한 기금은 얼마나 마련되어 있습니까?" 그러자 테레사 수녀가 대답했답니다. "지금 준비된 기금은 오직 3실링뿐입니다." 그러면서 테레사 수녀는 기자들이 둘러싼 책상 위에 정말 동전 세 닢을 올려놓았답니다. 그녀의 행동에 기자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답니다. 하지만 테레사 수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답니다. "여러분의 웃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3실링과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3실링이 하나님의 것이 될 때는 불가능이란 없습니다. 저는 이 돈이 반드시 하나님의 의지대로 쓰일 것을 굳게 믿습니다." 그녀의 결연한 의지가 담긴 큰 믿음 앞에 기자들은 더 이상 웃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3실링은 테레사 수녀의 큰 믿음대로 움직였습니다. 3실링은 사랑을 실천하는 귀중한 씨앗이 되어 많은 이들의 따뜻한 손길을 불러 모았습니다. 일년이 가고 2년이 가고 ...그리고 마침내 테레사 수녀는 기자들에게 약속한대로 보육원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굳은 의지와 가능하리라는 큰 믿음, 이것의 바로 테레사 수녀가 일으킨 많은 기적의 열쇠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17:20)" 믿음은 힘이 있습니다. 믿음은 위력이 있습니다. 믿음은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옮겨줍니다.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합니다. 믿음은 질병을 고칩니다. 믿음은 삶의 질을 바꾸어 줍니다. 믿음을 우리를 구원시켜 줍니다. 믿음의 크기가 인생의 크기를 만들어 줍니다. 우리 하나님은 오늘 이 불신 시대 속에서도 우리가 큰 믿음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한 것으로 주시는 분이십니다. 부르짖는 자에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큰 믿음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끝까지 버티는 사람들입니다.

2. 큰 믿음을 가지려면 사람의 벽을 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나아가는데 방해하는 주변 사람보다 예수님께 더욱 집중해야 합니다.(23)
이 여인은 어떻게 예수님으로부터 그렇게 큰 믿음을 가졌다고 칭찬을 받았습니까? 23절을 보십시오. 계속 예수님 뒤를 따르면 외치자 제자들이 뭐라고 합니까?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니까 보내라는 것입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갈 때 예수님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제자들이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도와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쫓아냅니다. 돌려보내라는 것입니다. 성가시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사람은 있는 믿음도 없어집니다. 이렇게 교인들 다 그렇고 그렇다고 믿음이 없어집니다. 교회에 나가 봐야 소용이 없다고 믿음이 없어집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어떻게 합니까? 뒤에서 소리를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들은 채도 하지 않으신 예수님의 귀에 들어간 것입니다. 예수님께 나아갈 때 주변 사람들의 방해 요소를 극복해야 큰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방해 요소가 있으면 그것이 걸림돌이 되어 넘어지는 자가 되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디딤돌로 삼아 예수님께 더 가까이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방해하던 제자들이 오히려 이 여인이 예수님께 접근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되는 것입니다. 징검다리 역할을 한 것입니다. 아마 제자들이 호의적으로 대해 주고 제자들이 고쳐 주었다면 이 여인은 그저 병만 고침을 받았지 예수님에게 큰 믿음을 가졌다고 칭찬을 받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이 여인이 궁극적으로 만나고자 하시는 분은 예수님입니다. 제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보고 예수 믿는 것 아닙니다. 교회 보고 예수님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분은 우리 예수님입니다. 신앙 생활해보니 직분자들 “그렇고 그렇더라.” 하면서 신앙생활을 멀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그렇고 그렇더라.”하면서 예수님을 멀리 떠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신앙은 결국 예수님의 거룩한 인격에 매달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예수님입니다. 사람의지 했다가는 다 실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 부족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사람은 좋을 때 좋은 것입니다. 사람은 믿을 대상이 못됩니다. 오직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우리 주님이고 사람은 끝없이 용서해야 할 대상이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할 사랑의 대상입니다. 산은 넘으라고 있고 물은 건너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장애물에 치어 쓰러지는 사람이 아니라 장애물을 딛고 일어서는 사람이 되어야 큰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뿐 아니라 세상일도 수많은 사람의 장애물을 극복해야 합니다. 존 맥스웰이 지은 "실패를 딛고 전진하라"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성공한 사람들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들이 성공한 이유가 무엇일까를 조사했습니다. 집안 배경인 아니었다고 합니다. 성공한 사람들 가운데 많은 수가 깨어진 가정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부유함인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성공한 사람들 대부분이 재정적으로 중·하위 부류에 속해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기회도 도덕성도 아니었다고 합니다. 계속해서 빛을 발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구분하는 오직 한 가지 요인은 바로 실패에 대한 인식과 반응이었다고 합니다. 인생의 장애물이 있을 때 그 장애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하느냐에 달려 있었다고 합니다. 세상에 어떤 일을 하는데 방해받지 않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실패하지 않고 어떻게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그 장애물을 딛고 일어서야 합니다. 실로암 안과 병원 원목이고 보사부장관상, 대통령 표창, 국민훈장 동백장 등을 받은 김선태 맹인 목사님의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분 자기 인생을 ‘서른세 번 도전 끝에 이룬 신화'라는 책으로 말했습니다. 6·25 전쟁 중에 사랑하는 부모와 두 눈의 빛을 함께 잃어버렸답니다. 10살 이후의 세상은 그에게 갈퀴가 돼 상처만 주었다고 합니다.

 

온 세상을 잃어버린 상실감과 좌절감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은 신앙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의지한 것입니다. 그것이 오히려 더욱 예수님을 뜨겁게 의지할 수 있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고아원 생활, 거지 생활 갖은 고난이 오히려 그를 넘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더 주님을 의지하게 하여 그는 정상인의 10배나 되는 노력을 했다고 했습니다. 대학 입학을 하는데 당시 맹인에게는 대학입학시험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문교부에 찾아갔답니다. 거절합니다. 무려 33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결국 33번 문교부의 문을 두드린 끝에 시험허가를 받고 당당히 시험에 합격하고 숭실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고 합니다. 그는 미국 안과 의사들과 제휴해 여수에 수용돼있는 음성 한센 씨 환자 70여명에게 광명의 빛을 찾아 주었고 중국 조선족들을 찾아가 4백 여 명에게 무료 진료, 필리핀 바기오 지역 원주민들에게 개안 수술 등을 해주는 의료 선교 사업을 했답니다. 현재는 전국 20만 시각장애인과 5백만 저시력자들을 위해 농촌과 섬 지역 무료진료를 위해 실로암 안과병원 대형 버스로 순회 무료진료를 실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방해물이 사람이 될 수 있고, 돈이 될 수 있고, 질병이 될 수 있고, 제도가 될 수 있고, 평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신앙이 내 마음에 안들 수 있습니다. 목사님 장로님 신앙이 내 마음에 거슬릴 수 있습니다. 그러며 그것 때문에 신앙 잃지 말고 오히려 예수님께 더 집중하여 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신앙 생활하면서 사람의 장애물에 치어 쓰러지는 사람이 아니라 장애물을 딛고 일어나 큰 믿음으로 예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 큰 믿음을 가지려면 자기의 벽을 넘어야 합니다.
우리는 거절당할 때 인격적 모멸감과 훼손된 자존심을 내려놓고 겸손하게 주님의 은총을 간청해야 합니다(24-27).
이 여인은 어떻게 예수님으로부터 큰 믿음을 가졌다고 칭찬을 받았습니까? 24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그녀를 위해 오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26절에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고 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이방인을 개처럼 취급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겠습니까? 교회에서 내가 요구하는 것을 목회자가 조금만 거절해도 기분 나쁜데 이 여인은 아주 굴욕적인 말을 듣습니다. 개 취급을 합니다. 자존심 문제입니다. 지금 딸을 고치는데 자존심 싸움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영적 싸움입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싸움입니다. 우리가 큰 신앙을 가지는데 방해되는 마지막 부분이 저는 자존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자존심 싸움이 아닙니다. 영적 싸움입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싸움입니다. 자존심 얼마나 대단한 것입니까? 호흡 멈추면 아무도 쳐다보지 않습니다. 메시야 콤플렉스에 사로잡혀서는 안 됩니다. 내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 적입니다. 대단한 것 아닙니다. 칼 바르트는 "자존심이야말로 원죄의 뿌리다"라고 단언했습니다. 자존심의 벽을 허물고 여인은 겸손하게 주님께 무릎 끓습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 절하면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겸손하게 간구합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거절당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무시당합니다. 개처럼 취급당합니다. 그 때 어떻게 합니까? 27절을 보십시오.

 

"주여 옳소이다."라고 말합니다. 이게 큰 믿음입니다. 어떻게 우리 주님이 응답해 주시던지 그것은 주님이 옳습니다. 100% 수용하는 것입니다. 이해가 안 되어도 수용하는 것입니다. 손해가 되어도 수용하는 것입니다.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섭리하신 하나님의 뜻이 옳습니다. 이렇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하시는 분이 주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합니다. 주인되심, 메시아 되심을 인정합니다. 예수의 절대적인 주권과 능력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자존심이 뭉개져도 예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유대인의 우선권과 특수한 권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비천한 존재 개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죄인 중의 괴수,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무엇을 요구합니까?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부스러기 은혜라도 달라는 것입니다. 그녀는 마치 상아래서 꼬리를 흔들고 주인의 호의를 기다리는 귀여운 강아지도 부스러기를 먹듯이 자신과 자신의 딸에게도 그런 은혜를 베풀어 달라는 것입니다. '개'라는 말로 자신을 지칭할 때 받는 인격적 모멸감과 훼손된 자존심을 개의치 않고 주의 은총을 간청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이렇지 못했습니다. 우월의식과 오만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달랐습니다.

 

저는 개라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부스러기라도 먹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냉대와 멸시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자신에게 '부스러기 은혜라도'주실 것을 호소하면서 겸손히 엎드렸습니다. 어떤 수모를 당하고 수치를 당한다고 할지라도 딸을 위해서는 그 모든 수모를 감당하는 것입니다. 자존심 상한다고 회사 그만 두고, 자존심 상한다고 신앙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톨스토이는 말하기를 '성자일수록 자신을 죄인의 괴수라고 생각하고 도덕적으로 겸손하게 살며, 적당하게 나쁜 사람은 자신은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별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제일 악한 사람은 자신이 사는 것이 바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내 딸이 죽을 지경인데 자존심이 문제이겠습니까? 아무리 짓밟는다고 해도 매달려야 합니다. 들어 줄 때까지 매달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많은 병자를 고쳐 주었지만 다 고쳐 주신 것은 아닙니다. 은혜이고 자비일 뿐입니다. 안 고쳐주면 어쩔 것입니까? 아무리 자존심이 상하고 아무리 거절하여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28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시험(테스트)에 합격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녀를 시험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첫째는 믿음이 크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많은 사람이 따랐지만 로마의 백부장과 이 여인만 이 칭찬을 들었습니다. 줄기찬 인내력, 예수님에 대한 신뢰도, 예수님에 대한 집중도, 끈기 있는 신앙, 안 보이는 것을 보는 것처럼 믿는 신앙, 자존심을 내려놓는 신앙 이 모든 것이 합격점수를 맞은 것입니다. 주님만이 문제의 해결자 이심을 믿었습니다. 주님은 불가능이 없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사람 됨됨이는 직분이나 신앙의 연조나 인종, 지식의 규모, 돈의 양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크기에 달려 있습니다. 믿음이 큰 사람이 진정 큰 사람입니다.

둘째는 네 소원대로 되라고 말씀합니다. '네가 원하는 것만큼'되어 진다는 말입니다. 주님의 축복은 인간이 수용할 수 있는 그릇의 크기만큼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 수용의 그릇이 바로 믿음의 그릇입니다. 우리 주님은 큰 믿음을 원하십니다. 믿음으로 구원받고 믿음으로 소원을 이루어 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이해하는 것, 오직 그로 말미암은 구원에 대한 확신과 간절한 기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죄인임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는 겸손과 순종,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신뢰, 이것이 곧 큰 믿음을 이루는 요소들입니다. 믿음이 큰 만큼 인생은 커지고 믿음의 크기만큼 마음의 크기도 삶의 폭도 넓어집니다. 믿음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합니다. 믿음은 이룰 수 없는 것들을 이루게 합니다. 믿음은 신비한 에너지가 있어 믿는대로 되어지는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믿음은 자신감을 주고 인생을 행복하게 해 줍니다. 성경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히11:6)"고 했습니다. 우리는 큰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부르짖어도 침묵하고 있다고 생각됩니까? 풀어도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까? 기도해도 기도해도 응답되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까? 사람으로 인해 주님께 나아가는데 방해되는 것이 있습니까? 심각하게 자존심 상하도록 거절당하는 일들이 있습니까?
큰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나오시기 바랍니다. 문제에 집착하지 말고 문제의 해답을 가지고 계시는 주님께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방해 되는 것이 있다고 하여도 그것을 디딤돌로 삼고 일어서기 바랍니다. 주님은 그것을 넘어가면 바로 앞에 있습니다. 아무리 자존심 상하는 일이 있다하여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주님 붙들고 네 소원대로 되라는 말을 들으시길 바랍니다. 자존심의 꽃이 지면 기적의 열매가 맺힙니다. 28절 같이 큰 소리로 읽겠습니다.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마 15:28)" 여자의 이름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 한 번 외어 보겠습니다. 이 말씀이 저와 우리 성도님이 순간순간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으로부터 듣는 말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14.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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