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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씨와 도둑>은 최용우 개인 책방의 이름입니다. 이곳은 최용우가 읽은 책의 기록을 남기는 공간입니다. 최용우 책방 구경하기 클릭! |
저자 : 김남준 | 출판사 : 생명의말씀사
판매가 : 13,000원 → 11,700원 (10.0%, 1,300↓)
우리의 영혼을 세우는 하나님의 방법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어머니 같은 교회의 품에서 배웁니다.목양의 관계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하나님께서 세우신 영혼 돌봄의 원리이며또한 그리스도인의 의무이자 특권입니다신앙의 필요는 느끼지만 목양의 필요는 느끼지 않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목자와 양의 관계는 우리의 영혼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며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해야 하는 신자의 의무이자 특권임을 가르쳐 주는 책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은 신앙의 필요는 느껴도 목양의 필요는 느끼지 않는다.오늘날 교회 안에서 성경적인 목양의 관계가 사라지고 있는 것은 영적 변화를 경험하는 신자가 줄고 자기 좋을 대로 신…[더보기▶] |
김남준 목사님의 <목자와 양>을 읽으면서 각 챕트마다 일부분을 옮겨적었습니다.
가능하면 읽어보는 것으로 만족하시고 죽 긁어다가 다른데로 옮기는 것은 좀 삼가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작권 문제 때문에 글이 여기저기 복사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아시겠지요?
햇볕같은이야기 4807-4854호까지 한편씩 나눔 -최용우
♥김남준 <목자와 양/생명의말씀사>중
1.짐승같은 종교생활
사역의 현장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중, 가장 가슴아픈 사람들은 도무지 목회자의 영향을 받으려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두드러진 특징은 절대 생각하려 하지 않으며, 자신의 단점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생각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는 것은 교회에서 사육을 받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교회에서 목양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지 사육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 성경적인 목양의 관계
오늘날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교회의 영적인 무기력함과 제멋대로 믿는 종교 생활은 교회의 타락과 목회자의 무기력, 교인들의 방종이 빚어낸 합작품입니다. 이 모든 상황의 근원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목회자와 그의 목양 아래서 신앙을 배우는 겸손한 교인들, 그리고 그러한 목양의 관계를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밖에는 소망할 것이 없습니다.
3.참 목자와 삯꾼
참된 목자의 섬김의 원천은 사랑입니다. 그러나 삯꾼들을 움직이는 것은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대가입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삯꾼 목자들은 자기가 삯꾼이라는 인식이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그들은 종교적인 일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렇게 삯꾼 노릇을 하며 살아가는 자기 자신 조차도 자기가 하나님의 종인지 아니면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부름 받은 사람인지 분명하게 선을 그을 수 없는 모호한 소명 속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고 하나님의 양떼들을 갈취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언제나 참된 교회 속에 있었습니다.
4. 끼리끼리 논다
오늘날 참된 목자가 드문 것은 한편으로 보면 잘못된 가르침에 만족함으로 반응하는 양무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은 참된 신앙생활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그런 거짓 목자의 목양 아래서 신앙생활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보다 많은 경우 그들의 거짓되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이 참된 목자의 목양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거짓된 신앙 생활을 해 나가는 사람들에게 참된 목자가 어울리겠습니까? 진실하고 참된 지식과 영적 생활에 기반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영적 판단이 있습니다.
5. 어떤 목자를 원하십니까?
만약 인간의 귀를 즐겁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고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옳다고 끊임없이 인정해주기만 하는 목자를 사랑하고, 그 목자 아래에서 목양 받기를 사모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진실한 양떼가 아닙니다.
6.목자를 아는 감각
동물들에게도 자기를 끌고 가는 사람이 도축업자임을 알아보는 본성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아는 은혜와 지식 가운데 바르게 신앙생활을 하여 왔다면 어떻게 참된 목자와 그렇지 않은 목자를 전혀 분간할 수 없을 정도가 되겠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이런 분간을 잘 할 수 없다면 이제까지 믿어 온 신앙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참된 양떼라면 참 목자가 누구인지를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요10:4-5)
7.양떼 곁에는 강도가 있다
거짓 목자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양떼를 목양하는 것을 삶의 보람으로 삼는 거룩한 소명에 불타는 목회자들이 아니라, 양떼를 치는 업을 통하여 자기의 실속을 챙기고 더러운 것을 탐하는 사람들입니다.
8.문으로 들어가는 목자
한 사람의 평범한 그리스도인이 목회자가 되기 위한 자격은 무엇입니까? 그가 가진 학위입니까? 병든 자를 고칠 수 있는 커다란 능력을 갖추는 것입니까? 고상한 인격입니까? 화려한 가문이나 문벌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한 사람을 목양을 위한 목회자로 부르시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을 경험하는 것이 목양에로 부름을 받은 이유입니다.
9.하늘로부터 온 중압감
교회를 목양하는 목사는 단지 예배를 위해 설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목사의 사명은 단지 교인들을 은혜 받게 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성도들을 향한 그의 피를 토하는 설교도, 눈물로 부르짖는 그의 기도도, 단지 여러분들이 교회 잘 다니는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의 모든 수고와 사역의 마지막은 여러분이 이 땅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두운 세상에서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알려 주는 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은혜는 이렇게 살다가 죽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이런 삶을 가리켜 '불꽃같은 삶'이라고 말합니다.
10.목자의 조건
목사가 학문도 깊지 않고, 인격적으로 다소 흠이 있고, 쳐다보기에 좋은 미모가 아니라도 한 가지는 분명하여야 합니다. 그는 그리스도께 붙잡힌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선한 목자일 수 없습니다. 비록 그가 선한 목자가 되기를 원한다 할지라도 그가 원하는 바와 실제로 그러한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목자는 양떼를 만나기 전에 먼저 그리스도를 깊이 만난 사람입니다. 그분을 경험하고 그분의 사랑에 붙잡혀서 피할 수 없는 소명으로 목양의 길에 들어선 사람입니다.
11.교회 전체의 검증이 필요하다
오늘날 한 사람의 목사가 되는 과정에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가 너무 많습니다. 그 중 하나가 소명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한 사람을 목사가 되기 위하여 신학교에 가도록 추천하는 과정입니다. 오늘날 목사의 도장 하나로 신학교에 들어가는 이러한 체제는 개선되어야 합니다. 자신이 목양에로 부르심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한 사람의 목사에게 뿐만 아니라 교회 전체의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검증된 사람들만이 교회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신학공부에 전념하여야 합니다.
12.건강한 목양의 관계
신앙적인 갈등 혹은 인간적인 갈등 때문에 곤고해 하는 교인들에게 저는 정직하게 충고합니다. "할 수만 있으면 믿음으로 그 모든 어려움을 이기십시오. 목회자와의 신뢰 어린 관계를 회복하십시오. 목회자를 위하여 마음을 다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러나 도저히 그 목회자와의 관계를 바르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깊이 기도하시고 새로운 목자를 만나도록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십시오." 라고 말입니다.
13. 별 사람을 다 부르셔서
저는 종종 목회의 길에 들어선 동역자들이 부르심을 받기 전에 어떤 일에 종사하였는지를 알게 될 때 너무나 흥미롭고 신비한 느낌을 받습니다. 한 교회가 서는 원리를 보십시오. 교회를 세우기 전 하나님께서는 먼저 목회자를 세우십니다. 할 일이 없이 지내다가 목회자로 소명을 받은 사람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의 직업에 열심히 종사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19세기 미국의 복음 전도자 빌리 센데이는 유명한 야구선수였습니다. 드와이트 무디는 제화 수선공이었습니다. 18세기의 전설적인 설교자 조지 휘트필드는 웨이터였으며, 찰스 피니는 법률가였고, 저 역시 서울 근교의 한적한 마을의 우체국장이었습니다.
14.인간관계의 끈
목회에 있어서 가장 나쁜 예는 끈끈한 인간관계를 기초로 맺어진 교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교회에서 거룩한 부흥과 영적 각성이 일어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방문한 어느 교회의 정문에 크게 붙여 놓은 다음과 같은 표어도 같은 문제를 보여줍니다. "우리교회는 가정같은 교회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교회의 목표는 '가정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처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이 문제에 관하여 더 이상 논쟁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명백한 교훈을 줍니다. 그것은 목사와 교인들 사이에 존재하여야 할 목양의 관계는 인간관계가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관계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교회가 끈끈한 인간의 정으로 맺어지는 것이야말로 가장 나쁜 목양의 형태라는 것입니다.
15. 우정 충만과 성령 충만은 다르다
교회가 우정으로 충만해지는 것과 신령한 은혜로 충만해지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에 대한 갈망을 끈끈한 인간의 정으로 대신할 때 즐거운 교회생활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맛본 자만이 알 수 있는 값진 고뇌와 신령한 결단으로 나아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교 단체와 같은 목양지에서는 목양의 관계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목양의 관계는 우정을 토대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하여 구축되기 때문입니다.
16.이상한 모집광고
한 교회에 목자를 보내주시는 주권은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오늘날 조국 교회에서 널리 유행하고 있는 목회자 청빙의 관습은 너무나 세속적입니다. 여러 가지 좋은 조건들을 따라서 목양지를 옮겨다니는 사람들도 문제지만 자신들의 영혼을 돌볼 목자를 신입사원 공채 하는 것처럼 모집하는 교회도 문제입니다. 교인들을 선동해서 목회자를 모셔오는 일에 앞장선 사람들이 1년도 되기 전에 그 목회자를 내보내는 일에 주동자가 되는 교회도 몇 번이나 보았습니다. 교인들에게 상처받은 목회자와 목회자에게 상처받은 양떼들 사이에서 목양의 관계가 사라져갈 때 박수칠 자는 오직 마귀뿐입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교회 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초 중 하나가 허물어졌기 때문입니다.
17.아름다운 목회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을 성경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어줍지 않은 민주주의적인 사고방식 때문입니다. 도무지 권위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태도가 오늘날 현대인의 특징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풍조가 신앙의 세계에서도 당연한 것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사고방식과 상황을 중요하게 생각할 뿐,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가에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교회 옮겨 다니기를 밥 먹듯 하는 것도 바로 이 같은 경박한 이기심 때문입니다.
18.말씀과 목양
성경적인 목양의 관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음성을 전해줄 수 있는 목자가 있어야 하고, 둘째는 목자의 음성에 순종하며 따를 수 있는 양떼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양떼들이 목자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목회자의 인간적인 결점이나 약점 때문에도 그렇지만, 자신들 안에 있는 불순종의 경향성 때문에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리챠드 백스터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교인들이 설교에 마음을 기울여 청종하는 것은 목회자가 진리를 설교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19. 아쉬운 간증
우리는 주위에서 격정적인 신앙의 열정에 사로잡혔다가 곧 식어버리고 구태의연한 옛 생활로 돌아가 버리는 교인들을 많이 만납니다. 문제는 감정적인 체험이나 느낌만을 가지고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견고하게 이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참된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합니다.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거룩하고 분투하는 삶입니다. 그러한 견고함을 위해서는 진리를 깊이 깨닫고 그리스도께 인격적으로 승복하는 일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목양의 관계는 이러한 목표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정하신 통로입니다.
20. 신앙의 출발
하나님께서 제일 슬퍼하시는 것은 스스로의 힘으로 씩씩하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 얼마든지 혼자 힘으로 잘 살 수 있다고 믿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가장 슬퍼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그렇게 살 수 없도록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출발은 하나님의 보호가 아니면 살 수 없다는 절대 의존적인 마음의 고백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다" 라는 말은 바로 이렇게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손길과 보호하시는 자비를 절대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21.양들의 모본인 목자
성경은 목자가 앞서가면 양들이 따라온다고 말씀하십니다. 목자가 양에 앞서 행함으로 그들의 모본이 되어 갈 길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선한 목자는 자신도 걸어가지 못하는 길을 양들에게 가도록 뒤에서 윽박지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말과 삶과 신앙, 모든 사고에 있어서 양떼들의 모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걸어가는 목자는 자신의 참된 목양의 모본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직접 배울 수 있습니다.
22.매우 특별한 관계
사랑하는 여러분! 목양의 관계는 매우 특별한 관계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고자 하는 목회자의 거룩한 열심과 진실한 열망, 그를 따라가는 양들의 마음에 가득한 진리의 빛이 있는 곳에는 이 목양의 관계가 양떼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배우게 하는 말할 수 없이 소중한 통로가 됩니다. 그러나 목회자가 정결한 심령을 잃어버리고 도덕적으로 파산하여 인간의 사악한 욕심에 사로잡힐 때, 또한 양떼들의 마음에 진리의 빛 대신 무지의 어두움이 드리워질 때, 그 목양의 관계는 사악한 인간관계로 전락하고 맙니다.
23.맹목적인 추종을 삼가라
우리는 목양의 관계에 있어서 맹목적인 추종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의 목회자에게 순종하며 신앙생활을 해야 하지만 이단 추종자들이 교주를 따라가는 것과 같은 우매하고 맹목적인 자세로 목회자를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따라갔을 때에 그가 입은 영혼의 손해는 잘못된 길로 인도한 목회자 혼자만의 책임이 아니라, 그렇게 따라간 자신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노예적인 복종을 성도들에게 명령하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24. 권위의 기초
참된 목자와 거짓된 목자를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시금석 가운데 하나는 말씀을 통한 참회가 없는 영혼들을 향한 가슴 저미는 고통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목회자를 세우신 것은 단지 한 교회를 관리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목회자를 세우신 것은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모르는 무지에서 벗어나 보다 풍성하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영적으로 변화를 받고 그리스도 앞에 인격적으로 승복한 사람이 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풍성한 삶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목회자는 바로 이 일을 위하여 부름을 받았습니다.
25.신앙생활의 두 가지 어려움
신앙생활의 대부분의 어려움은 무지와 불순종 때문입니다. 무지는 은밀히 저지르게 되는 악들을 담대히 행하게 할 뿐 아니라, 그의 양심으로 하여금 죄에 대하여 관대하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무지는 거의 악입니다. 불순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불순종은 거듭나기 전 소유했던 패역한 성품과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으려는 불신앙의 본성이 여전히 그 안에 남아있는 것으로,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면서도 그분의 뜻을 거스르게 만듭니다.
26. 위폐와 정폐
반짝이는 재치와 짜릿한 미담으로, 인간의 영혼이 아니라 감정을 자극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만나고 온 목회자의 할 도리가 아닙니다. 설교는 사람을 울리고 웃기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설교자는 자신들은 빛이 아니요, 단지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사람들일 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영혼의 변화는 인간적인 감동을 통하여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의 빛이 어두운 영혼에 비추어질 때 일어나는 입니다. 그리고 목회자는 이러한 영혼의 변화를 위하여 부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목양의 관계가 영혼의 변화를 가져온다고 말하기보다는 영혼의 변화를 통하여 목양의 관계가 이루어진다는 것이 훨씬 옳은 표현입니다.
27. 중심이신 그리스도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서는 결코 성도 중심의 교회나 목회자 중심의 교회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서는 철저히 그리스도 중심적인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양도, 목자도 그들이 만난 교회도 모두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시라는 교리적인 진술이 얼마나 잘 나타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왕이라고 고백하면서도 사실은 입헌군주국의 왕처럼 명목상의 임금으로만 생각하고, 모든 일들을 자기 중심적으로 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같은 상황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교회의 주인으로 인정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28.목회의 영광
목회의 영광은 커다란 교회 건물이나 집회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아닙니다. 목양의 관계를 통해 자신과 관계를 갖는 사람들마다 진리를 아는 지식에 비추임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풍성한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29. 하나님을 포기합니까?
풍성한 삶을 포기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약속을 주실 때에 성취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시고 주십니다. 풍성한 삶을 살도록 우리를 부르시는 것은 그분이 당신의 고난과 죽음, 가르침을 통하여 그 모든 일을 예비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풍성한 삶을 포기하는 것은 그분께서 행하신 모든 일을 무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30.진리를 떠난 삶의 비극
예수님을 믿었어도 진리를 아는 지식이 심각하게 결핍되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십시오. 기독교의 옷은 입었지만 옛 삶의 내용은 청산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외관적인 삶은 복음을 따라 사는 것 같지만, 그 종교적인 껍질 속에 들어있는 인간은 도무지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영혼의 상태와 가치 체계들은 무너지지 아니하고 건재합니다. 그런식의 삶이 그에게 행복을 줄 리가 없습니다. 그 속에는 끊임없는 갈등과 좌절이 있을 뿐입니다.
31.진리로 오신 예수님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과 그분을 향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모든 진리는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백성들을 예수님께서 당신의 능하신 팔로 목양하심으로, 우리는 컴컴한 밤 같은 세상에서 불꽃처럼 살 수 있는 것입니다.
32. 짐승만도 못한 교인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포기하거나 짐승처럼 살기로 작정하지 않는 한, 하나님에 대해서 배우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애쓰며 힘써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러한 중요한 신앙생활의 목표가 하찮게 취급되고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진리에 대하여 배우려 하지 않고 거룩한 삶을 살려 하지 않는다면 그는 자기를 낳은 아비의 얼굴에 침을 뱉고 길러 준 어미를 발로 차는 것과 꼭 같은 것입니다.
33.진리의 교회
교회가 가장 먼저 소유하여야 할 것은 참된 진리입니다. 진리를 사랑하는 성도들과 그 진리를 위해 목숨을 건 목회자와의 만남이 아니면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목양의 관계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에 대치할 수 없는 소명은 진리를 소유하고 그 진리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가 교회 안에 충만히 거하고 교회에 들어온 성도들이 그 진리의 빛 앞에서 더 이상 무지를 벗삼을 수 없을 때, 그 교회는 풍성한 삶을 나누어주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34. 목자 당신은 누구입니까?
교회는 그리스도 밖에 있는 용서받지 못한 죄인들의 비참함에 대하여 설교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게 되는 풍성한 삶에 대해서도 설교하여야 합니다. 곤고함 가운데 살아가는 삶을 운명처럼 생각하며 실패에 익숙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의 풍성한 삶에 대한 약속을 보여주어 그런 삶을 갈망하도록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35 겸손하게 되는 길
교회가 영혼을 변화시키는 거룩한 진리의 능력을 소유하고 있지 못할 때, 성도들은 교회 안에서 겸손해야 할 이유를 잃어버립니다. 성령께서 교회를 다스리시고 이끌어가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의 마지막 소망은 좋은 제도와 기발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목양의 관계는 제도와 기능만 존재하는 기계적인 관계가 아니라 성령과 진리 안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관계입니다.
36 실패를 아멘으로(?)
현재의 삶에 대해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신앙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실패를 아멘으로(?) 받아들입니다. 가난한 삶에 적응이 된 사람, 실패하는 것을 운명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풍성한 삶을 향해 어떠한 기대도 하지 않습니다. 젊은 시절의 열심 있는 신앙이 곧장 일평생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젊은 날에는 뜨거운 복음의 감격 속에서 살다가, 나이가 든 후에는 예배당의 빈자리를 메워주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살아가는 돌덩이 같은 그리스도인들을 많이 만납니다.
37 불완전한 목회자
목회자는 교회를 짓거나 교육관을 짓거나 땅을 사고 버스를 구입하기 위해서 보냄을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물론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 가는 일에 있어 피할 수 없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목양의 관계가 파괴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양떼들의 영혼에 유익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교회를 이끌어가는 행정에 있어 커다란 원칙과 계획을 세워놓고 그 틀 안에서 일꾼들을 세워 자발적으로 일하게 하고 결정적인 일 외에는 세세한 일에 깊이 관여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38 풍성한 삶을 누리지 못한 이유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풍성한 삶을 누리지 못한 이유는 결국 목자이신 그리스도께 대한 인격적인 승복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진리의 빛을 거절하고 풍성한 은혜로부터 멀어진 삶을 사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거스르며 사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고 보면 이전에 당연한 것처럼 살았던 옛 삶이 얼마나 완고하고 지독하게 고집스러운 죄악 된 삶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39 행복한 포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여러분이 말씀을 깨닫고 그분의 선한 목자 되심 앞에 인격적으로 승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그러한 인격적 승복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한없이 즐거워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목자"라는 말이 주는 또 하나의 교훈입니다. 그렇습니다. 목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그분만이 가장 완전하시고 선하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목자와의 관계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40. 목자와 양
어디서 신앙생활을 하든지 우리는 제일 먼저 자신의 신앙생활에 목자가 될 하나님의 일꾼들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보이시고 그 성품을 알게 하셔서 하나님 앞에 승복된 삶을 살도록, 자기를 인도할 목자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정상적인 목양의 관계를 가지고 신앙생활 할 수 없다고 판단된다면 다른 교회를 찾아야 합니다.
41 소명 받은 사람의 특징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 양떼들이 생명을 얻고 풍성하게 살아가는 삶이 기쁨이 되지 않는다면 그 소명은 거짓입니다. 고난이 있지만 그 고난이 목양의 즐거움을 앗아가지 못합니다. 여인이 해산을 한 후 태어난 아이를 보면 해산의 고통을 잊는 것처럼, 한 영혼이 생명을 얻고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되는 목회의 열매를 볼 때 그러한 열매를 얻기까지 지불했던 슬픔과 고통은 생각나지 않고 감격스러운 결과만 기억에 남는 것입니다.
42 목양의 사역에 열매가 없다면
목회를 위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열매가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개인의 능력이나 하나님의 축복, 주위 여건에 따라 그 열매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열매가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만약, 목양의 사역에 열매가 없다면 그는 자신의 부르심이 진실한지를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불러주신 일 없이도 얼마든지 목양의 사역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43 자만하십니까?
저는 목회사역에 들어선 동역자들 중에 병들어가고 있는 목양지를 섬기면서도 하늘을 찌를 듯한 자만심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여럿 만났습니다. 설교하기 위해 섰을 때, 설교자인 저의 마음에 영혼들이 거의 죽은 자와 방불할 정도로 생명과 풍성한 삶과는 거리가 먼 것이 느껴지는데 정작 그들의 목회자는 그 작고 병든 목양지에 대해 뻐기는 듯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커다란 교회의 목회자가 그 목회적인 업적이 마치 자신의 것인 것처럼 으스대는 것만큼이나 꼴불견입니다. 그리스도께로부터 목양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목회도 없고 목양지도 없다는 절박하고 가난한 마음이 있습니다.
44. 포기하시렵니까?
그 사람이 목회자이든 성도이든 마음이 하나님께로부터 떠나면 목양의 관계를 향해서도 마음이 떠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생명과 풍성한 삶을 누리던 영적 삶도 당연히 병들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기서 매우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즉, 예수 그리스도 자신과 양떼들 사이에 일어나는 관계와 자기의 목자가 되어 주신 하나님과 당신 자신 사이에 일어난 관계가 놀라운 일치를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관계를 닮아 있습니다.
45.떠나지 마라
저는 일신상의 이유나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 때문에 그리고 이를 인내할 수 있는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목회지를 떠난 많은 동역자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목회지를 떠난 다음에 그들이 경험하는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과 영적인 무기력은 목회 현장에서 당하던 갈등과 고난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세워주신 자리에서 고난을 받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46.목자는 용사다
목자의 삶은 맹수와의 피 튀기는 싸움의 삶이고, 수시로 악한 세력의 도전에 직면하는 분투하는 삶입니다. 따라서 선한 목자라면 거룩한 목양의 사역을 모두 마친 후에 충성스러웠던 목회자로서의 삶을 피 묻은 전투복으로 증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지상에서 즐겨 입었던 옷은 존귀한 세마포 옷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늘에서나 입을 옷이었고 이 땅에서 즐겨 입었던 옷은 피 묻은 전투복이었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모두 바친 목자들이 세마포 옷으로 갈아입고 우리 주님께 칭찬을 받을 때, 깨끗한 옷으로 한가한 목양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은 다 떨어진 내복 차림으로 한 구석에 서 있지 않겠습니까? 순교의 정신으로 살아온 목자의 영광이 크면 클수록 그 사람의 부끄러움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후회로 이어질 것입니다.
47. 감사함으로 이 길을
피할 수 없는 부르심에 붙잡혀 목회의 길을 걸어가는 일꾼들은 자신의 목양의 힘든 것을 인하여 불평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나 교회가 자신을 불러 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부르신 사람이고, 그 사랑에 사로잡혀 목회의 길에 들어섰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버리시지 않는 한 낙망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거룩한 능력에 사로잡혀 양떼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건 싸움을 마다하지 말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결코 약해서는 안 되는 사람입니다.
48.아낌없이 주련다
목자가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은 목양을 위한 목자의 희생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영혼을 섬기기 위해 부름을 받은 목회자는 자기에게 맡겨진 영혼들 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하나님 앞에 삶으로 고백하면서 섬겨야 합니다. 만약에 누군가가 목숨보다 더 귀중한 것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목숨입니다. 목양의 현장은 결코 아름답고 유쾌한 장면들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고난이 있고 고통스러운 긴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요구하는 희생이 뒤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죽는 것만큼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김남준 (열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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