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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손에 들린 진흙(The Clay In His Hands)

예레미야 김영봉 목사............... 조회 수 1752 추천 수 0 2014.04.03 23:03:05
.........
성경본문 : 렘18:1-12 
설교자 : 김영봉 목사 
참고 : 와싱톤한인교회 http://www.kumcgw.org 

2013년 9월 8일 주일 설교
와싱톤한인교회  김영봉 목사
주님 손에 들린 진흙(The Clay In His Hands)
 예레미야(Jeremiah) 18:1-12

1.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성경은 여러 가지의 비유를 사용합니다.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에 비유하기도 하고, 사랑하는 남녀 관계에 비유하기도 하며, 목자와 양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렉셔너리(Lectionary)를 따라 읽은 오늘의 말씀은 토기장이와 진흙의 관계에 비유합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토기장이 집으로 가서 당신의 말씀을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말씀대로 그는 도자기를 만드는 집으로 내려가 구경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립니다. 물레에 흙덩이를 얹어 놓고 그릇을 빚어가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빚는 과정도, 손놀림도, 손놀림에 따라 드러나는 진흙의 모습도 예술입니다. 아무 형체도 없던 진흙 덩어리가 점점 형체를 가져가는 모습도 경이롭습니다. 그 일에 집중하고 있는 장인의 모습도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넋을 잃고 바라보게 됩니다.

그렇게, 넋을 잃고 구경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했습니다. 아, 하나님은 '현장 학습'(field education)을 의도하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아, 내가 이 토기장이와 같이 너희를 다룰 수가 없겠느냐? 나 주의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 안에 있듯이, 너희도 내 손 안에 있다. (6절)

토기장이 손 안에 있는 진흙. 이 이미지를 한 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이 진흙 덩어리라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혹시 기분이 언짢은 분은 없으신지요? '어디, 나를 저따위 형편 없는 진흙 덩어리에 비유하는가?' 싶은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정말 그럴까요? 창세기 2장에 잘 그려져 있듯, 우리 인간은 진흙에서 나왔고 또한 진흙으로 돌아갑니다. 때로 인간이 대단한 것 같지만, 진흙 덩어리만도 못하다는 자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심지어 성경은 인간을 '티끌'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창조되었음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며,
우리가 한갓 티끌임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고, 피고 지는 들꽃 같아,
바람 한 번 지나가면 곧 시들어,
그 있던 자리마져 알 수 없는 것이다. (시 104:14-16)

인생을 '티끌'에 비유한 것을 생각하면, 진흙 덩어리에 비유한 것은 그래도 많이 봐 준 것입니다.


2.

저는 이 비유를 처음 대했을 때, 비유에 억지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진흙은 무생물입니다. 생각도 없고 의지도 없습니다. 반면, 인간에게는 생각도 있고 의지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 중 인간에게만 '자유 의지'(free-will)를 주셨습니다. 토기장이와 진흙의 관계는 일방적이고,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쌍방적입니다. 그러니 비유가 딱 맞아 떨어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이 생각을 수정한 것은 도자기 장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입니다. 흙을 많이 만져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흙은 살아있다"고 말합니다. 진흙이라고 해서 다 같은 진흙이 아닙니다. 진흙마다 성질이 있고, 성깔이 있고, 취향이 있습니다. 토기장이의 손길을 따라 잘 움직여주는 진흙이 있는가 하면, 잘 길들여지지 않는 진흙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릇을 만드는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과정이 흙을 고르고 곱게 빻아 반죽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성품 좋은 진흙을 만들어야 좋은 그릇이 빚어집니다. 그러므로 인간을 진흙에 비유하는 것이 억지만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신 이유는 제 멋대로 살라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로봇처럼 조종하는대로 움직이는 존재가 되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또한 동물처럼 주어진 본능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차원에 머물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친구를 원하셨고 연인을 원하셨습니다.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이 좋아서 하나님을 섬기기를 기대하셨습니다. 그래서 자유 의지를 주셨습니다. 자유 의지가 진정한 '자유' 의지라면, 하나님이 기대한 것과 반대되는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을 선택하고 그분의 연인이 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토기장이는 산이나 들에서 진흙을 퍼다가 곧바로 반죽을 만들지 않습니다. 자연 상태 그대로의 진흙은 너무도 거칠고 흠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 상태로는 진흙 반죽을 만들기도 어렵고, 그릇으로 빚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토기장이는 퍼 온 흙을 망치로 빻아서 고운 가루로 만들과 물을 반죽하여 체로 쳐서 불순물을 제거합니다. 그런 다음, 오랜 시간 동안 숙성시켜야만 찰진 흙반죽이 됩니다. 그런 반죽이어야만 토기장이의 손길을 따라 빚어질 수 있습니다.

물레를 따라 돌아가면서 토기장이의 손길을 따라 빚어지는 반죽의 모습을 보면, 흙이 춤을 추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 모습을 잠시 보십시다.

(Video)

어떻습니까? 장인의 손과 진흙이 마치 능숙한 춤꾼 남녀가 손을 맞잡고 춤을 추는 것과 같지 않습니까? 그렇게 춤을 추는 동안에 빼어난 각선미를 뽑내며 아름다운 그릇이 탄생합니다. 진흙 덩어리가 장인의 손길을 따라 아름다운 춤을 추려면 그만한 정련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의 우리는 야산에서 굴러다니던 흙덩이와 같습니다. 어떤 흙덩이는 돌처럼 굳을대로 굳어져 버렸고, 어떤 흙덩이는 돌맹이와 뒤엉켰고, 또 어떤 흙덩이는 잡풀과 죽은 나무 가지와 섞여 버렸습니다. 자유 의지를 잘 못 사용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손길을 따라 춤을 출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제 고집대로, 제 욕심대로, 제 생각대로 살아가는 것에 더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 유다 백성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하자, 유다 백성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럴 필요 없다. 우리는 우리 생각대로 살아가겠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고집대로 행동하겠다. (12절)  

하나님에게서 받은 자유 의지를 잘 못 사용한 것입니다. 자유 의지는 하나님을 선택하도록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자유 의지를 오용하여 하나님을 등지고 살기를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고,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자유 의지를 그대로 틀켜 쥐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비유하자면 정련되지 못한 진흙 덩어리라 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그릇으로 빚어질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3.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의해 빚어지기를 소망하기 이전에 먼저 빚어질만한 진흙이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믿고 의지하고 있는가?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는가? 매일, 매 순간 그렇게 의지하고 사는가? 그분께 내 모든 자유 의지를 내려놓고 그분에 사로잡혀 살아가기를 소원하는가? 이런 질문을 끊임없이 제기하면서 하나님께서 빚으시기에 좋은 진흙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 교회 교우에게 들은 말 중 최고의 명언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을 누리며 사시는 분이 하신 말씀입니다. "저는 이제 자유 의지를 하나님께 반납하고 싶습니다. 이제 제 소원은 나는 없고 하나님만 사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준비하며 생각해 보니, 그 말은 하나님의 손길을 따라 춤을 추며 살고 싶다는 뜻이었습니다. 오늘의 비유에 적용한다면, "저는 하나님의 손길을 따라 신명나게 춤을 추고 싶습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게, 매일 하나님과 춤을 추고 사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삶인지요! 그리고 그렇게 매일 하나님과 춤을 추고 살다 보면, 어느 사이에 하나님께서 나를 빚어 나는 상상하지도 못한 아름다운 그릇을 만들어 내십니다.

그러니 생각할수록 이 비유가 얼마나 의미심장하고 매력적인지 모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이 비유를 매우 좋아합니다. 저의 간절한 소원도 제 인생이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진흙 덩어리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저의 매일의 삶이 하나님의 손과 함께 추는 춤이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토기장이와 진흙'(The Potter and the Clay)이라는 제목의 그림을 제 집의 벽에 걸어놓고 묵상하곤 합니다.

비슷한 비유입니다만, 저는 때로 제가 하나님의 손에 들린 인형이었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하곤 합니다. 인형에도 여러 인형이 있지만, 줄로 움직이는 인형, 말입니다. 
 
이렇게 저의 머리와 혀와 팔과 다리 그리고 모든 기관이 줄에 연결되어 하나님이 움직이시는대로 움직였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자유 의지를 모두 반납하기를 바랍니다. 시편에 있는 다윗의 유명한 고백이 생각납니다. 이 구절은 <개역성경>으로 읽어야 제 맛이 납니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시 19:14)

어디, 입의 말과 마음의 생각만 그렇습니까? 무의식의 깊은 곳에 있는 것들도, 꿈 속에서 보는 것, 손과 발의 행동까지도 주님의 마음에 들기를 소망합니다. 아니, 그 모든 것이 그분의 손에 달린 보이지 않는 끈에 의해 인도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럴 때, 나는 비로소 진짜 내가 되는 것이며, 나를 통해 진실로 의미있는 일들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4.

우리 교우님의 이야기를 하나 나누려 합니다. 2부 예배에 나오시는 장용석 권사님과 강준이 권사님 이야기입니다. 장용석 권사님은 한국에서 은행에 근무하다가 2000년 9월에 미국으로 이민을 오셔서 우리 교회에 나오셨습니다. 두 분은 매릴랜드에서 비즈니스를 하면서 신실하게 교회를 섬기셨습니다. 장권사님은 은행가의 경험을 활용하여 재무부에서 섬겼고, 강준이 권사님은 중고등부 교사로 섬기셨습니다.

그렇게, 이민 생활이 자리를 잡아갈 즈음, 2006년 5월 28일, Memorial Weekend의 주일이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가다가, 확인할 것이 있어서 잠시 가게에 들러 가기 위해 차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가게에 거의 다다랐을 때, 차를 훔쳐 도망가고 있던 십대 일행이 장권사님의 차를 들이받았습니다. 도피하는 중에 있었으니 얼마나 세게 들이받았는지는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사고로 인해 아내되시는 권사님은 4번과 5번 경추에 손상을 입었고, 가슴 이하의 전신이 마비되는 큰 사고를 입었습니다.
이 사고는 두 분에게서 거의 모든 것을 앗아갔습니다. 이민자로서의 꿈은 더 말할 것도 없었고, 치료비로 인해 사업체도 문을 닫았고, 장만했던 집도 날렸습니다. 분노와 좌절과 상실감으로 인해 남편 권사님은 깊은 우울증의 늪에 빠졌고, 믿음으로 견뎌내기 위해 무진 애를 썼던 아내 권사님도 자주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어둠의 늪으로 빠지곤 했습니다. 몇 년 동안 남편 권사님의 얼굴에서는 죽음의 그림자가 보였습니다. 살아 있으나 죽은 것과 다름이 없어 보였습니다.

두 분이 그 어둡고 침침한 구덩이에 빠져 있을 동안, 그분들을 끊임없이 찾아준 교우들이 있습니다. 매일 그분들을 위해 올리는 기도가 있었고,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음식을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가끔 바깥으로 나가 산책도 했습니다. 그분들은 교회가 무엇이며 성도의 교제가 무엇인지를 몸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들의 지치지 않는 기도와 사랑과 노력이 두 분을 그 깊은 구덩이로부터 끌어내 주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두 분의 얼굴에서 생명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미소가 보이기 시작했고, 빛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7월, 두 분이 전교우 수양회에 참석하셨습니다. '7년만의 외출'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수양회
자리에서 장권사님은 마치 옛날 영화의 변사와도 같이 열정적이고 감동적인 간증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사랑을 통해 두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켰고, 자신들이 어떻게 어둠의 동굴로부터 걸어 나오게 되었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로부터 몇 주일 후, 아내 권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한국에서부터 알고 지내던 신앙의 선배께서 총신대학교 교수로 은퇴를 하시고 남아프리카에서 선교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분이 얼마 전에 자신에게 연락하여 그곳에 와서 자신과 함께 선교 사역을 하자고 제안을 하셨습니다. 남편 권사님이 은행가였으니 재정 문제를 맡기고 싶다는 뜻이었습니다.

장 권사님은 그 제안에 대해 가당치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반신이 마비된 아내를 데리고 선교지로 가는 것은 선교를 돕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폐를 끼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내 권사님은 기도할수록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전화를 건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도록 도와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두고 기도하는 동안, 제게도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두 분이 사고를 당한 후에 지나 온 과정을 돌아보니, "이 때를 준비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별히 최근에 두 분을 영적으로 회복시켜 주신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런 믿음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며칠 더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강준이 권사님으로부터 또 전화가 왔습니다. 월요일 아침이었습니다. 남편 권사님이 남아프리카로 가기로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전 날,  "초심을 잃는 이유"라는 제목의 설교를 듣고는 하나님의 응답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며칠 후에 몇몇 교우들과 함께 두 분이 거하는 작은 아파트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두 분을 회복시켜 주신 것에 대해, 기가막힌 타이밍에 선교지로 불러 주신 것에 대해 그리고 그 부름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알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감사드렸습니다.

이제 두 분은 겨울이 오기 전에 평신도 선교사로서 남아프리카로 떠날 것이며, 우리 교회는 두 분의 선교 동역자가 될 것입니다.

제가 두 분의 이야기를 조금 장황하게 말씀 드린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다 보니, 지난 7년 동안 하나님께서 두 분을 그릇 만들기에 좋은 반죽으로 만들어 오셨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두 분은 교통사고로 인해 심하게 깨어졌습니다. 육신도, 정신도 그리고 영혼도 심하게 깨어졌습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을 원망도 했고, 몸만 예배의 자리에 와 있을 뿐 마음은 하나님께 죽어 있을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 분은 끝내 하나님을 떠나가지 않았습니다. 죽어도 하나님 앞에서 죽겠다는 심정으로 그분 앞에 머물렀습니다.

그 때는 몰랐습니다. 이제 돌아보니, 하나님은 그 동안에 망치로 빻아 고운 가루로 만들고 체로 쳐서 불순물을 골라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두 분의 눈물과 사랑하는 교우들의 눈물을 섞어 찰진 진흙 덩어리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찰진 진흙 덩어리와 같은 두 분을 물레에 올려 놓고 빚어가실 것입니다. 두 분은 이제 자유 의지를 모두 내려 놓고, 그분이 움직이시는 대로 따라갈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평신도 선교사로서 하나님께 맡기고 사는 하루 하루의 삶이 신명나는 춤이 될 것이며, 그렇게 하루 하루 춤 추며 살 때, 하나님께서 당신의 작품을 만들어 내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5.

장용석 권사님과 강준이 권사님이 당한 사고를 어떻게 설명할지, 저에게는 대답이 없습니다. 하지만 두 분이 하나님 앞에서 물러서기를 거부하고 머물러 있자, 하나님께서는 두 분을 새로운 그릇으로 빚으신 준비를 하셨습니다. 두 분에게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결코 생각해 보지 않았을 길을 준비하시고 또한 그 길을 여셨습니다. 휠체어에 앉아 하루하루를 죽이는 삶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살리는 삶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루하루 연명하는 것 외에는 다른 소망이 없던 장권사님에게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진흙 덩어리와 같은 우리 존재가 그분의 손에 들리면 이렇게 달라집니다. 대단한 인생 계획도 없고 남들에게 말할만한 꿈도 없이 하루하루 연명하는 것처럼 산다 해도, 하나님의 손에 자신을 맡기고 매일 그분의 손길을 따라 춤을 추며 살다 보면 하나님께서 새롭게 빚어가십니다. 굳이 선교사로 부름받지 않아도 좋습니다. 이렇게 설교 중에 간증할만한 일이 아니어도 상관 없습니다. 나 혼자로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주님 손에 들림으로써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어떤 상태에 있습니까? 여러분은 산과 들에 제 멋대로 굴러다니는 흙덩어리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유다 백성들이 말한 것처럼, 제 멋에 겨워, 제 멋대로 살다가 가려 합니까? '그것도 괜찮은 선택이 아닌가?'라고 생각하십니까? 부디, 자신의 인생이 무엇을 위해 주어졌는지를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창조주의 손에 잡히지 않은 피조물은 다만 먼지요 흙덩이에 불과합니다.

혹시 여러분은 지금 견디기 힘든 고난 중에 있습니까? 믿음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강한 시련을 겪고 있습니까? '어째서 나에게만 이러나?' 싶을 정도로 힘겨운 일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까? 그 고난을 명쾌하게 설명할 재간이 제게는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신을 가지고 말씀 드릴 것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물러나지 마십시오. 죽어도 하나님 앞에서 죽겠다고 생각하고 그분들 붙드십시오. 하나님 안에 머무는 사람에게 고난은 체로 쳐서 불순물을 골라내고 고운 가루로 만드는 과정이 됩니다.

아니면, 여러분은 지금 물레 위에서 토기장이의 손길을 따라 춤을 추고 있습니까? 축하드립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이 의도하신 인생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우리의 모든 자유 의지를 내려 놓고, 내 안에 주님 계시고 주님 내 안에 계시어, 둘이 한 몸이 된 듯이 서로 어울려 춤을 추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뿐 아니라, 우리의 가정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어디를 가든지, 창조주 하나님의 손길을 따라 춤을 추는 것입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작품을 만들어 내실 것입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진흙과 같아야 합니다. 물레 위에 올려져 하나님의 손길을 따라 그분의 뜻대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올 해로 우리는 62년의 역사를 기록하게 됩니다. 62년이 되었으니, 우리는 이미 구워낸 그릇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교회를 빚어가시도록 해야 합니다. 만일 교회가 하나님의 손에 빚어지기를 사양하면 생명을 잃어 버립니다.

오늘 오후 2시에 우리는 센터빌 캠퍼스 6주년을 감사하는 예배를 드립니다. 6년 전에 캠퍼스를 연 것은 하나님의 빚으시는 손길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2년 전에 센터빌 캠퍼스를 자립 교회로 독립시키기로 결정한 것도 하나님의 빚으시는 손길로 인한 것이었다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빚어가게 해야 합니다. 센터빌 캠퍼스가 성공하는 길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의 손길에 빚어지는 데 있습니다.

나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찾아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를 주님의 손에 잡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만들기 위해 때론 체질을 하시고 때론 망치로 빻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때론 눈물로, 때론 땀으로, 때론 은혜의 빗물로 빚으시고 찰진 반죽으로 만들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내 인생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작품을 빚으려 하시니, 또한 감사합니다. 매일 보이지 않는 손으로 인도하시니 감사합니다. 모든 희망을 하나님께 걸고, 죽어도 하나님 앞에서 죽기를 결심하고, 그분 앞에서 머물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래서 감사할 것 밖에 없고, 그래서 찬송할 것 밖에 없습니다. 할렐루야!


주님,
찬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저희를 찾으심에,
저희를 체질하심에,
저희를 빻으심에,
저희를 찰진 진흙으로 만드심에
감사합니다.
저희가 자유 의지를 내려 놓습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
주님의 손길을 잡고 춤을 춥니다.
주님,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아멘.
 

<속회자료> 2013년 9월 8일 주일 설교
"하나님의 손에 들린 진흙"(The Clay in His Hands)

1. 찬송을 부르며 시작합니다. 420장(통 212)
2. 한 사람이 대표로 기도합니다.
3. 예레미야서 18장 1-12절을 읽습니다. 토기장이와 진흙의 비유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10분)
4. 말씀의 요약 (한 사람이 말씀을 요약하여 발표합니다. 10분)
5. 말씀의 나눔 (한 질문에 대해 15분 정도를 할애하십시오. 전체 나눔 시간이 90분을 넘지 않게 하십시오.)
1) 오늘의 말씀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으면 한 가지만 나누어 주십시오.
2) 도자기를 빚어 본 일이 있습니까? 구경해 본 적이 있습니까? 느낀 점을 나누어 보십시오.    
3) 당신을 진흙이라고 비유한다면, 어떤 상태에 있다고 생각합니까? 찰진 반죽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
4) 믿음 생활은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을 따라 춤 추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당신은 얼마나 춤을 즐기고 삽니까?     
6. 기도
1) 찰진 흙반죽이 되도록 기도하십시오.
2) 6주년을 맞는 센터빌 캠퍼스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7. 중보기도
돌아가면서 기도 제목을 나누십시오. 각자 다른 사람의 기도 제목을 적어 두고 매일 한 번씩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8. 찬송을 부르며 헌금을 드립니다. 425장(통 217)
9.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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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19 빌립보서 인생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빌3: 12- 14  한태완 목사  2014-04-02 1896
10518 요한복음 하나님의 어린양 요한복음1 ; 29 - 34  이영화목사  2014-04-02 1754
10517 히브리서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신 대제사장 히4:14-16  민병석 목사  2014-04-01 2280
10516 히브리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히4:14-16  민병석 목사  2014-04-01 1573
10515 히브리서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히4:12-13  민병석 목사  2014-04-01 2832
10514 히브리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 히4:12-13  민병석 목사  2014-04-01 1932
10513 히브리서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 히4:10-11  민병석 목사  2014-04-01 1250
10512 히브리서 제 칠일의 성경적 의미 히4:4-9  민병석 목사  2014-04-01 1024
10511 히브리서 가나안 안식의 참 뜻 [2] 히4:2-3  민병석 목사  2014-04-01 1734
10510 히브리서 아직 남아 있는 안식의 약속 히4:1-8  민병석 목사  2014-04-01 1012
10509 히브리서 믿음으로 들어가는 안식의 땅 히3:15-19  민병석 목사  2014-04-01 1006
10508 히브리서 끝까지 견고히 잡으라 히3:14  민병석 목사  2014-04-01 1225
10507 로마서 복음(3) 복음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롬10:4  김필곤 목사  2014-03-30 1409
10506 로마서 복음(2) 복음은 능력입니다. 롬1:16-17  김필곤 목사  2014-03-30 1955
10505 갈라디아 복음(1)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갈1:6-10  김필곤 목사  2014-03-30 1923
10504 마태복음 예수 앞에 나오면(4) 자리 경쟁하는 제자들 마18:1-14  김필곤 목사  2014-03-30 1419
10503 마태복음 예수 앞에 나오면(3) 딸이 치유받은 여인 마15:21-28  김필곤 목사  2014-03-30 1884
10502 마태복음 예수 앞에 나오면(2) 눈은 뜬 맹인들 마9:27-31  김필곤 목사  2014-03-30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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