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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의 이방여인을 철저히 내쫓는 게 신앙이다.

에스라 궁극이............... 조회 수 1837 추천 수 0 2014.04.05 10:02:08
.........
성경본문 : 스10:1-44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2000년대 설교 

10장 1절-44절.

 

1절-44절: 에스라가 하나님의 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심히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 하여 이 땅 이방여자를 취하여 아내를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오히려 소망이 있나니 곧 내 주의 교훈을 좇으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의논을 좇아 이 모든 아내와 그 소생을 다 내어 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이는 당신의 주장할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이에 에스라가 일어나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대로 행하기를 맹세하게 하매 무리가 맹세하는지라 이에 에스라가 하나님의 전 앞에서 일어나 엘리아십의 아들 여호하난의 방으로 들어가니라 저가 들어가서 사로잡혔던 자의 죄를 근심하여 떡도 먹지 아니하며 물도 마시지 아니하더니 유다와 예루살렘의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들에게 공포하기를 너희는 예루살렘으로 모이라 누구든지 방백들과 장로들의 훈시를 좇아 삼일 내에 오지 아니하면 그 재산을 적몰하고 사로잡혔던 자의 회에서 쫓아내리라 하매 유다와 베냐민 모든 사람이 삼일 내에 예루살렘에 모이니 때는 구월 이십일이라 무리가 하나님의 전 앞 광장에 앉아서 이 일과 큰 비를 인하여 떨더니 제사장 에스라가 일어서서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가 범죄 하여 이방여자로 아내를 삼아 이스라엘의 죄를 더하게 하였으니 이제 너희 열조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 뜻대로 행하여 이 땅 족속들과 이방여인을 끊어버리라 회 무리가 큰 소리로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의 말씀대로 우리가 마땅히 행할 것이니이다 그러나 백성이 많고 또 큰 비가 내리는 때니 능히 밖에 서지 못할 것이요 우리가 이 일로 크게 범죄 하였은즉 하루 이틀에 할 일이 아니오니 이제 온 회중을 위하여 우리 방백들을 세우고 우리 모든 성읍에 이방여자에게 장가든 자는 다 기한에 본성 장로들과 재판장과 함께 오게 하여 우리 하나님의 이 일로 인하신 진노가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하나 오직 아사헬의 아들 요나단과 디과의 아들 야스야가 일어나 그 일을 반대하고 므술람과 레위 사람 삽브대가 저희를 돕더라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그대로 한지라 제사장 에스라가 그 종족을 따라 각기 지명된 족장 몇 사람을 위임하고 시월 초하루에 앉아 그 일을 조사하여 정월 초하루에 이르러 이방여인을 취한 자의 일 조사하기를 마치니라 제사장의 무리 중에 이방여인을 취한 자는 예수아 자손 중 요사닥의 아들과 그 형제 마아세야와 엘리에셀과 야립과 그달랴라 저희가 다 손을 잡아 맹세하여 그 아내를 보내기로 하고 또 그 죄를 인하여 수양 하나를 속건제로 드렸으며 또 임멜 자손 중에는 하나니와 스바댜요 하림자손 중에는 마아세야와 엘리야와 스마야와 여히엘과 웃시야요 바스훌 자손 중에는 엘료에내와 마아세야와 이스마엘과 느다넬과 요사밧과 엘라사였더라 레위 사람 중에는 요사밧과 시므이와 글라야라 하는 글리다와 브다히야와 유다와 엘리에셀이었더라 노래하는 자 중에는 엘리아십이요 문지기 중에는 살룸과 델렘과 우리였더라 이스라엘 중에는 바로스 자손 중 라먀와 잇시야와 말기야와 미야민과 엘르아살과 말기야와 브나야요 엘람 자손 중 맛다냐와 스가랴와 여히엘과 압디와 여레못과 엘리야요 삿두 자손 중 엘료에내와 엘리아십과 맛다냐와 여레못과 사밧과 아시사요 베배 자손 중 여호하난과 하나냐와 삽배와 아들래요 바니 자손 중 므술람과 말룩과 아다야와 야숩과 스알과 여레못이요 바핫모압 자손 중 앗나와 글랄과 브나야와 마아세야와 맛다냐와 브살렐과 빈누이와 므낫세요 하림 자손 중 엘리에셀과 잇시야와 말기야와 스마야와 시므온과 베냐민과 말룩과 스마랴요 하숨 자손 중 맛드내와 맛닷다와 사밧과 엘리벨렛과 여레매와 므낫세와 시므이요 바니 자손 중 마아대와 아므람과 우엘과 브나야와 베드야와 글루히와 와냐와 므레못과 에랴십과 맛다냐와 맛드내와 야아수와 바니와 빈누이와 시므이와 셀레먀와 나단과 아다야와 막나드배와 사새와 사래와 아사렐과 셀레먀와 스마랴와 살룸과 아마랴와 요셉이요 느보 자손 중 여이엘과 맛디디야와 사밧과 스비내와 잇도와 요엘과 브나야더라 이상은 모두 이방여인을 취한 자라 그 중에 자녀를 낳은 여인도 있었더라.

 

에스라가 무슨 큰 죄를 지었기에 통곡을 하고 자복을 하느냐? 그리고 왜 많은 백성들도 따라서 통곡을 하느냐 그 말이요.

 

죄를 자복하고 통곡하는 것을 분석을 해 보면 첫째는, 일반적으로 내가 남에게 큰 피해를 입혔을 때에 자기 스스로의 도덕심에서 자기 양심에서 우러나서 자기의 어리석고 미련함을 자복하면서 자기 가슴을 칩니다. 원통하고 분해서 자기 스스로에게 가슴을 치지요. 자기 양심에서 그렇게 안타까워서 그런다 그 말이요. 그러나 이런 경우 자신의 잘못을 자기 스스로 바로 잡을 수가 없습니다. 인간 자기 스스로가 죄를 바로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측면에서 사람이 도덕성적으로 더 악해지면 남에게 피해를 입혀도 양심적으로 자신의 죄를 깨닫고 우는 그것마저도 없습니다. 오늘날 이처럼 감각의 민감성이 굳어져 있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남에게 피해를 입혔어도 그저 덤덤하고 양심이 찔리지도 않는 사람을 봅니다. 사람을 죽여 놓고도 그저 덤덤한 살인자들을 많이 볼 수 있지요? 사형선고를 받고서도 그저 덤덤한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이 도덕의 민감성이 굳어져 버리면 사람이 이렇게 악랄해져요.

 

두 번째는 이것은 사회문제인데, 자기가 남에게 억울한 피해를 당했는데 사회에서 아무런 보상책이 없을 때에 통곡을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 앞에 영적 신앙적 죄 문제로 자복하고 통곡하는 게 있습니다. 이거는 행동 죄나 양심적인 죄보다도 하나님 앞에서의 영적인 죄를 말합니다. 이 자복은 다른 자복보다도 더 고상하고 높습니다.

 

처음에 말한 내가 남에게 피해를 입혔을 때에 그 죄에 대해 통곡을 하는 통곡성은 죄를 보는 그 기준이 인간이지요. 그러나 이제 말씀드린 세 번째의 영적 신앙적인 죄 문제로 인한 통곡은 하나님이 기준이 되어 있습니다.

 

영적 신앙적인 죄는 영의 눈이 밝지를 못하면 못 봅니다. 영적으로 피해를 입은 것을 영적으로 민감하게 느끼지 못하면 역시 통곡과 자복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그 죄를 못 보면 사람이 둔감해져요. 우리는 이 영적인 죄, 하나님 앞에서의 죄를 찾아서 깨닫고 회개하고 바로 잡아나가야 합니다.

 

이 영적 신앙적인 죄는 일반인들이 볼 때는 죄가 아닌 것 같지만 하나님 앞에서 영적인 면으로 볼 때는 굉장히 가슴이 아픈 죄들입니다. 이건 영적인 신앙이 깊은 성도들만이 깨닫는 죄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선민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지어 바벨론으로 잡혀갔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바벨론의 전쟁을 만나가지고 부모형제가 죽은 자들이 굉장히 많겠지요. 또한 처녀들과 여자들은 농락을 당하고, 포로 된 자들은 바벨론으로 잡혀가서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면서 갖은 수모를 당하는 것을 이 에스라는 직접 눈으로 본 것입니다.

 

신앙이 깊고 영적으로 민감한 자는 자기가 육적으로 직접 체험을 하지 않아도 그 면에 대한 느낌이 강합니다. 얘기만 들어도 그렇다 그 말이요. 모르는 자는 육적으로 당해도 영적 느낌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우리가 많이 볼 수 있지요?

 

부모형제가 무엇을 잘못해가지고 타로부터 고난을 받았다거나 억울한 피해를 입었다면 한 가족인 자기라면 마음이 어찌 아프지 않겠습니까? 만일에 아프지 않다면 이는 가족이 아닙니다. 자기 식구가 아니라 그 말이요. 또는 느낌이나 감각성이 죽었거나.

 

믿음의 동족들이 무슨 일로 죄를 지었거나 또는 의를 행했거나 간에 고난을 당하고 있다면 신앙이 깊고 믿음이 있는 자라면 그 마음이 왜 안 아프겠느냐 그 말이요. 마음이 아프다 그 말이요. 열조들이 지은 죄 때문에 포로가 됐었고, 현실적으로 에스라도 바벨론에서 같이 살았던 것인데 왜 그 피해의 고통을 모르겠느냐 그 말이요. 에스라는 다 안다 그 말이요.

 

그런데 70년 동안의 포로생활이 지긋지긋하고 몸서리가 쳐질 텐데 고향에 돌아온 지가 몇 년이나 되었다고 그 새 하나님 앞에 가증한 일을 행하고, 이방여자들과 통혼을 하고,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것이냐 그 말이요. 그래서 에스라가 통곡을 하고 운다 그 말이요. 70년 포로생활을 고달프게 하면서 무엇을 배웠느냐 그 말이지요. 무엇을 깨달았느냐 그 말입니다.

 

포로생활을 당해놓고도 그 포로생활에서 ‘내가 왜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가’ 하는 하나님 앞에서의 그 죄를 못 깨달으면 뭐가 되겠느냐 그 말이요.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그렇지 않겠느냐 그 말이요. 자기가 현재 고난을 당하면서도 ‘내가 왜 고난을 당하는가’ 하고 신앙적인 면에서 그 죄를 찾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느냐 그 말이요.

 

밤길을 가다가 걸려 넘어졌다. ‘내가 왜 넘어졌는가’ 하는 그걸 모른다면 그런 사람을 어디다 쓰겠느냐 그 말이요. 사람이 망하려면 할 수 없지요.

 

에스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성과 이스라엘 선민과의 관계적 섭리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는 신앙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포로를 모르는 사람은 그것도 모릅니다. 영적인 죄를 아는 자가 선지자요, 선지자는 이 죄를 놓고 하나님 앞에 자복하고 눈물을 흘립니다.

 

사람들이 보통 어떤 때 눈물을 흘리지요? 남에게 어떤 육적인 생활적인 면에서 물질적 피해를 입었을 때에 원통해서 울지요. 눈으로 보는 면이 아프다거나 눈으로 보는 면에 피해를 당했을 때에 마음이 안타깝게 생각을 하고 울지요. 그러나 우리는 내 자식이던 부모형제든 처와 자식이든 간에 하나님 앞을 떠나는 그 면을 생각을 하고 통곡을 하고 울 줄을 알아야 된다 그 말이요.

 

하나의 예를 든다면 하나님 앞에 말씀을 받으러 교회에 가야 할 주일날인데 학교에서나 또는 아는 사람이나 친구가 차를 타고 어디 놀라가자고 해서 놀러갔다면 이것이 하나님 앞에 죄인 줄 깨달아야 된다.

 

사람이 아무리 공부를 잘 해도 소용이 없고, 아무리 부자로 살아도 소용이 없고, 아무리 정직해도 소용이 없고, 문제는 ‘내가 하나님 앞에 바로 사느냐, 안 사느냐’ 하는 이걸 놓고 하나님 앞에 통곡을 할 줄 알아야 되는 겁니다. 자기가 하나님이 백성이고, 자기가 성도란 다면 그 면을 놓고 울 줄을 알아야 되는 겁니다. 그 면에 대해서 울 줄을 모른다면 이건 망할 사람이요, 포로로 잡혀갈 사람이요, 하나님 앞에 얻어맞을 사람입니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전 앞에서 통곡을 하고 자복을 하니 에스라가 왜 우는가 싶어서 백성들이 몰려왔습니다. 몰려와서 백성들도 같이 통곡을 합니다. 왜냐? 에스라가 죄를 자복하고 통곡하는 소리를 옆에서 가만 들으니까 그것이 자기들 죄 때문이거든요. 그래서 백성들이 몰려와서 같이 우니까 울음바다가 된 거지요.

 

우는 것도 감염이 됩니까? 우는 것도 감염이 돼야 되요. 무엇 때문에 우는지 그 우는 울음성, 죄를 자복하는 그 죄의 자복성에 대한 울음이 감염이 돼야 되요. 에스라의 마음을 아는 자는 같이 웁니다. 이게 선지자의 마음이요.

 

하나님의 법 기준에서 볼 때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는 일반 도덕적인 죄와는 달리 이중 삼중으로 피해가 큽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으면 구원중단이 되지요, 누림으로 산 것이지요. 세상 짝짓고 영적 실력에 무능력자가 되지요, 하나님 앞에 진노를 불러일으키게 되는 거지요.

 

그 다음에 2절로 4절을 보니까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의 통곡성을 알고 ‘우리가 하나님께 범죄를 했습니다’ 라고 합니다. 스가냐는 죄의 기준을 찾았지요? 에스라의 자복과 통곡성을 옆에서 듣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하는 건 그가 하나님 앞에서의 죄의 기준을 찾았다 그 말이요.

 

두 번째는 이방여자를 취했지만 소망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왜 소망이 있다고 그러지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범죄를 하고 이방여자를 취했지만 소망이 있습니다.’ 왜 그 소리가 나왔지요? 선지자가 있기 때문에. 에스라가 있기 때문에.

 

세 번째는 이제는 당신의 교훈을 좇겠다.

 

네 번째는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하고.

 

다섯 번째는 이방여자는 내어좇겠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여자를 내어좇겠다.

 

이 스가냐는 죄의 기준을 바로 붙잡았고, 누림성과 인정성을 끊겠다는 겁니다. 이거 대단한 결심이지요.

 

사람이 정이 들면 끊기가 힘이 듭니다. 참 끊기가 힘든 일이지요? 덜 힘든 자는 누굴까요? 이방여자와 끊기는 끊는데 덜 힘든 자는 누굴까요? 예? 아직 결혼도 안 하고 사귀고 있는 자겠지요. 끊기가 조금 더 힘든 자는? 신혼부부지요. 그러면 아주 힘든 자는? 자식 낳고 사는 자들이지요. 이방여자를 내보낸다는 것은 이방사상과 정을 떼고, 누림성을 끊는다는 말이요.

 

우리 믿는 자는 안 믿는 여자에게 장가보내지 말고, 안 믿는 남자에게 시집을 보내지 말아야지요. 몰라서 이미 결혼을 하고 자식 낳고 사는 이건 앞으로 믿도록 힘을 쓰고 그래야 되겠지요.

 

안 믿는 남자나 안 믿는 여자를 선택을 해서 결혼을 하게 되면 언제 가서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자기가 모르는 일이고, 어쨌든 믿는 일에 그만큼 지장이 생겨요. 왜냐하면 한 노선이 아니면 그만큼 안 통하는 거니까. 대화가 안 통하면 자동적으로 대립이지요. 자동적으로 대립이 되면 고깃덩어리 만족만 누리며 살 거요? 그건 더 비참하지.

 

인격적 사상적으로, 또는 신앙노선적으로 어찌하든지 같이 힘을 써서 가도록 해야 돼요. 안 그러면 그만큼 힘이 들어요. 결혼은 인격적 결합이 아니요? 이미 저질러진 것은 어쨌든 주님의 노선으로 자꾸 끌어들여야 돼요. 그 수밖에 없는 거지요.

 

본문으로 돌아가서 이방여자라고 하는 것은 이방사상, 세상적 누림성을 말하고, 그리고 이방여자로부터 자식을 낳았다고 하는 것은 이방사상에서 나온 열매를 말합니다. 어떤 행동 활동을 한 그 결과. 하나의 예를 든다면 믿는 사람이 주일도 어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를 않고 세상에 나가서 사업을 해서 돈을 벌어서 사업체가 하나 생겼다고 하면 이게 말하자면 이방여자란 말이요. 이방여자를 데리고 산다 그 말이요.

 

그런데 예수 바로 믿고 난 후에 이제 그런 사상에서 정을 떼려니까 굉장히 어렵겠지요. 참 어려워요. 그런데 스가냐가 ‘에스라의 교훈을 좇아서 말씀대로 살겠다. 그리고 당신을 도와서 이 일을 하겠다’ 하는 건 잘하는 일이지요. 참 잘하는 일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사업이 조금 덜 되더라도 믿는 일에 힘을 쓰고, 아닌 말로 믿는 일에 힘을 쓰다가 사업이 망했다 하더라도 거기에 신앙이 좌우되면 안 됩니다.

 

에스라가 하는 교훈을 좇아서 그렇게 한다는 건 대단한 결심 아니요? 이걸 역사적으로 볼 때도 어려운 일 아니요? 그런데 현재 오늘날 우리가 신앙사상적인 면으로 생각을 할 때에도 이게 엄청난 결심이 아니냐 그 말이요. 참 옳은 사상이다. 참 잘하는 사상이다.

 

그 다음에 6절로 17절까지 보니까 그 일을 실천을 합니다. 모두 하나님 앞에 맹세를 하고, 그리고 3일 안에 예루살렘으로 모이라고 합니다. 모여서 실천을 하자 그 말이지. 3일 안에 오지 않으면 재산을 몰수하고 동족성을 끊겠다 그 말이지요. 이 잘하는 거요. 우리의 신앙도 예루살렘으로 모이는 거 아니요?

 

여기서 우리가 이걸 오늘날 교인들처럼 한 번 생각을 해 봅시다. 에스라가 ‘3일 안에 예루살렘으로 모이라. 안 오면 재산을 몰수하고 동족성을 끊겠다’ 하니까 교인들이 하는 말이 ‘신앙은 자유다. 안 가도 된다’ 할 수도 있겠지요? 오늘날 교인들이 예수 믿는 것을 볼 때에 얼마든지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다 그 말이요. 그렇지요? ‘믿던지 안 믿든지 하는 건 내 마음이다’ 그렇게 하 수 있다 그 말이요.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불신자들처럼 그렇게 말을 해서는 안 되고 에스라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야 되는 겁니다. 절대지요. 그렇지 않겠어요? 절대요 절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그 명령을 거스르고 대든다면 절대로 안 된다 그 말이요. 자기에게 어렵다고 해도, 자기 마음에 안 맞는다고 하더라도 그게 하나님의 뜻일진대 그 말에는 ‘아멘, 하겠습니다’ 하고 따라가야 된다 그 말이요. 거기에 대립을 하고 거스른다면 그거는 앙화입니다.

 

이건 절대적인 명령이에요.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에 인간이 대립을 시키면 안 돼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면 자기에게 큰 앙화요. 예를 들어서 ‘교회 가자’ 그럴 때에 ‘너 보기 싫어서 안 간다’ 그 말 할 수 있지요? 그런 마음이 있을 수 있지요. 그러나 그건 안 되지요. 그 사람의 말에 의해서 교회에 가고 안 가고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명령이라 그 말이요. 그걸 붙잡고 교회를 간다 그 말이요. 그런 면을 우리가 느낄 줄 알아야 되겠다. 특히 자식들보고 ‘교회 가자’ 그러면 가기 싫어하고 딴 데로 내빼고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지요. 몰라서 그런 거지.

 

어쨌든 몰라서 그랬든 그거는 하나님 앞에 그만큼 자기의 은혜가, 자기의 축복이 감소가 돼요. 몰라서 자꾸 그렇게 하다가 교회 안 가는 것이 버릇이 돼 버렸다. 그러면 그 자식이 커서 뭐가 되겠어요. 하나님 앞에 진노의 대상이지요. 멸망의 대상이고 심판의 대상이지요. 그걸 우리가 볼 줄 알아야 된다. 그런 걸 보고 눈물을 흘릴 줄 알고 통곡을 할 줄 알아야 된다.

 

이제 3일 안에  백성들이 전 앞에 모였는데 그 때 마침 하늘에서 뭐가 왔다고 그랬지요? 큰 비가 왔다고 그랬어요.

 

이 큰 비를 혹자들은 비가 오는 철이라 그렇게 많은 비가 온 것이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많은 비가 온 것이 하나님이 어떤 뜻이 있는 게 아니라 비가 많이 오는 철이기 때문에 많은 비가 온 것뿐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큰 비가 내리는 것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어떤 그런 걸 느꼈다 그 말이요. 자기들이 죄는 지었지, 그래서 하나님의 전 앞에 이렇게 꿇어 엎드리고 있는데 하늘에서 억수비가 쏟아졌단 말이요. 번개가 치고 뇌성이 발하고 그러니까 ‘이게 하나님의 진노인가’ 하고 두려움에 떨었다 그 말이요.

 

우리는 이것을 보고 비 오는 철이라서 큰 비가 온 것이던 아니던 간에 백성들은 신앙심으로 그걸 잘 생각을 한 것이고, 이런 그들이 회개하고 결단을 내리게 하는데 하늘도 합세해서 도운 것이라고 보는 것이 좋습니다. 조금 보는 각도가 달라지지요?

 

‘비가 많이 오는 철이라서 비가 오는 것인데도 백성들이 그것도 모르고 하나님의 진노로 느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보다도 비가 오는 철이던 아니든 간에 인간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로 사는 것이기 때문에 비가 내린 것이 그들이 신앙결단을 내리는데 있어서 하늘도 합세해서 도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좋고 옳단 말이요.

 

그 때에 많은 비가 내린 것이 하나님의 대국적인 섭리, 그러니까 많은 비를 내려서 그들로 두려워 떨게 하여 백성들이 이방여자들과 끊는 면에 더 가세가 되는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는 봐야 된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우리는 비가 많이 온다거나, 바람이 강하게 분다거나, 땅에서 어떤 큰 사건이 일어난다거나 할 때 하나님의 주권섭리가 없는, 나의 신앙에 관계가 없는 우연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거지요.

 

이제 이방여인을 취한 자들의 숫자를 철저히 파악을 하고, 그리고 사로잡혔던 자들이 그대로 실천을 합니다. 그러니까 철저한 관찰을 통해 구석구석 분별을 해서 철저히 회개를 하는 겁니다.

 

에스라를 도와서 이 일을 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이런 중에도 이 일을 반대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이걸 영적 신앙적 면으로 볼 때에 이런 일이 있을 때 나는 어느 쪽을 돕겠느냐?

 

포로가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깨닫지 못한 자는 이 실천을 못합니다. 할 수가 없습니다. 영적 포로가 뭔지 민감하게 알지 못한 자는 물질풍부를 하나님의 축복의 누림성으로 보게 되는 겁니다. 성도는 이것을 볼 줄 모르면 안 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18절로 마지막 절까지 보면 이방여인들을 버린 자들의 명단이 공개가 되어 있습니다.

 

명단이 이렇게 공개가 돼서 만 사람 앞에 드러났을 때에 공개된 이 명단에 올려진 사람들의 마음이 어떨까요? 수치와 부끄러움이지요. 그렇지요? 또 한 편 이것을 좋게 본다면 이방여인을 끊은 것을 다른 사람이 볼 때에 ‘참 결단을 잘 했다’ 그러지 않겠어요? 우리는 여기서 수치와 부끄러움만 보입니까? 이 결단을 내린다고 하는 거, 끊는다고 하는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 어려운 일에 명단에 올라간 사람들은 ‘참 그 일을 잘 했다’ 그렇게 보는 자들도 있게 됩니다. 본인은 수치와 부끄러움으로 여길 것이고, 또 한 편 다른 사람들은 칭찬을 하기도 하고. 어쨌든 이런 명단에는 안 올려져 있는 게 좋지요.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타이핑 했습니다)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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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31 창세기 하나님을 만날만한 곳"(A Place to Meet God) 창16:7-16  김영봉 목사  2014-04-03 1836
10530 시편 인생은 순례길 (Life Is Pilgrimage) 시84:1-12  김영봉 목사  2014-04-03 1962
10529 사도행전 없어서는 안 되는 교회 (The Church That Makes Difference) 행8:1-8  김영봉 목사  2014-04-03 1977
10528 누가복음 겨자씨를 심는 마음 (Like Planting Mustard Seed) 눅17:5-6  김영봉 목사  2014-04-03 1911
10527 누가복음 나를 찾는 이가 있다(Someone Is Seeking Me) 눅15:1-10  김영봉 목사  2014-04-03 1721
10526 예레미야 주님 손에 들린 진흙(The Clay In His Hands) 렘18:1-12  김영봉 목사  2014-04-03 1815
10525 예레미야 샘과 저수지(Wellspring and Reservoir) 렘2:4-13  김영봉 목사  2014-04-03 1659
10524 누가복음 두려워하지 말아라(Fear Not) 눅12:32-34  김영봉 목사  2014-04-03 1720
10523 누가복음 하나님께 부요한 자 (Those Who Are Rich for God) 눅12:13-21  김영봉 목사  2014-04-03 1787
10522 호세아 바람 난 마음(Our Wanton Heart) 호1:2-10  김영봉 목사  2014-04-03 1341
10521 예레미야 부족한 것에 감사 렘23;1-22  최장환 목사  2014-04-02 1277
10520 이사야 삶에서 소중한 것은 사23;1-18  최장환 목사  2014-04-02 1225
10519 빌립보서 인생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빌3: 12- 14  한태완 목사  2014-04-02 1949
10518 요한복음 하나님의 어린양 요한복음1 ; 29 - 34  이영화목사  2014-04-02 1788
10517 히브리서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신 대제사장 히4:14-16  민병석 목사  2014-04-01 2408
10516 히브리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히4:14-16  민병석 목사  2014-04-01 1661
10515 히브리서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히4:12-13  민병석 목사  2014-04-01 2973
10514 히브리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 히4:12-13  민병석 목사  2014-04-01 2008
10513 히브리서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 히4:10-11  민병석 목사  2014-04-01 1276
10512 히브리서 제 칠일의 성경적 의미 히4:4-9  민병석 목사  2014-04-01 1059
10511 히브리서 가나안 안식의 참 뜻 [2] 히4:2-3  민병석 목사  2014-04-01 1777
10510 히브리서 아직 남아 있는 안식의 약속 히4:1-8  민병석 목사  2014-04-01 1037
10509 히브리서 믿음으로 들어가는 안식의 땅 히3:15-19  민병석 목사  2014-04-01 1029
10508 히브리서 끝까지 견고히 잡으라 히3:14  민병석 목사  2014-04-01 1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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