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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과 탐식

로마서 빛의 사자............... 조회 수 2880 추천 수 0 2014.04.08 13: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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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롬14:1-23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먹는 것과 탐식

본문: 로마서14: 1- 23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에서 선정한 ‘세계 10대 건강음식’을 소개합니다.

1. 토마토: 전립선암을 비롯한 각종 암 발생위험을 줄여주며, 감기바이러스와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을 높여준다.

2. 시금치: 성장기 어린이들 발육과 영양에 좋고, 야맹증을 예방한다.

3. 마늘: 식중독 등 다양한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에 대한 항균 효과가 있다.

4. 녹차: 항암효과를 가지며, 녹차를 많이 마시는 지역에서는 위암 발생율이 낮다.

5. 적포도주: 포도껍질의 자주색 색소가 강력한 항암작용을 한다.

6. 견과류: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몸에 나쁜 콜레스테롤을 낮춰주고, 노화 억제 및 항암효과가 있다.

7. 연어(고등어):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동맥경화증을 예방한다. 수험생 및 노인성 치매에도 효과가 있다.

8. 블루베리(가지): 동맥경화와 심장병 및 내졸증을 예방한다.

9. 브로컬리(양배추):유방암, 대장암, 위암과 같은 암 발생 억제 효과가 있다.

10. 귀리(보리): 해로운 콜레스테롤을 제거하고 또한 포만감을 느끼게 해 다이어트 효과가 있다.

 우리가 건강을 위해 좋은 음식들을 챙겨 먹듯이 우리의 영적 건강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섭취해야 합니다. 영육간에 강건하여 주님이 주신 일들을 잘 감당합시다.

  건강을 위해서는 음식을 선별하여 먹어야 합니다. 신명기14장 3- 20절과 레위기11장 1- 23절에는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에도 이 말씀대로 먹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참과 거짓 선지자의 영의 양식을 분별하여 먹을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무엇이 진짜 진리의 말씀이고, 생명의 말씀인가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고전10:25)

 우리 공동체 성도님들에게 각자 좋아하는 음식과 먹지 않는 음식이 무엇인가를 물었습니다. 의외로 보신탕과 뱀탕을 먹지 않는다고 대답하는 성도들이 많았습니다. 먹지 않는 이유는 잔인하고, 끔찍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성도는 두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못 먹는 게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첫째는 없어서 못 먹는 경우이고, 둘째는 안 줘서 못먹는 경우라는 말입니다. 저는 살면서 감사한 것 중 하나는, 식욕이 동한다는 것입니다. 음식을 봤을 때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건강하다는 표식일 것입니다.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본성이 바로 이 먹고 마시는 욕망입니다. 그런데 요사이는 이 욕망을 부추기는 것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방송국마다 하루에 한 번 이상 먹거리 방송을 내보냅니다. 새로운 맛집이 어디에 생겼고, 또 먹는 사람을 비추면서 이 음식이 얼마나 맛있는지 보여 줍니다. 우리의 먹성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음식 방송을 내 보낸 방송국이 조금 후엔 “여러분, 이제 다이어트를 할 때가 됐습니다.”라며 여러 다이어트 방법과 운동모습을 보여 주고 몸무게를 어떻게 줄여야 하는 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보면 그냥 먹고 싶고, 그러나 멋있는 몸매를 생각하면 절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사이에 두고 왔다 갔다합니다.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처럼 중요한 태도가 어디 있겠습니까? 성경은 “먹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즐거운 복”이라고 말합니다. 동시에 “먹는 것에 심취해서 거기에만 몰입하는 것은 ‘화’라고 이야기합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인간이 제일 먼저 타락하는 것이 먹거리 문제 때문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첫 번째 인간이었던 아담과 하와의 범죄가 무엇으로부터 시작됩니까? 막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 가장 쉬운 것이 먹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다가와서 말을 겁니다. “저것 봐라. 먹음직하지 않니? 보암직하지 않니? 지혜스럽게 할만큼 탐스럽지 않니? 하나님이 뭐라고 하시든 그냥 먹어라” 사탄은 그렇게 인간을 무너뜨리고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두 번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도 먹거리 문제로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금식으로 굶주려 있으실 때 사탄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미혹하기 시작했습니다.

“네가 지금 먹고 싶은 게 뭐냐? 빵 아니냐?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돌덩이들을 빵이 되게 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와 영웅이 나왔구나!’ 구세주가 나왔구나! 하면서 너에게 달려들 텐데 그렇게 해 뵈라”

그뿐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하면서 가장 먼저 부딪혔던 것 역시 먹는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먹는 것 때문에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했습니다. 노예의 삶이었는데도 그곳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입니다. 그곳에 있으면 가꿈 고기도 먹고, 향료를 친 음식도 먹을 수 있는데 광야에서는 먹을 것이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먹을 것 때문에 앞을 향해 가기보다 뒤돌아 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에게 먹고 마시는 것으로 시비를 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 너희 말이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눅7: 33- 35)

 

성경은 먹고 마시는 것이 즐거움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십계명을 받은 후 모세와 아론, 그리고 70명의 장로들은 하나님의 산에 오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즐거움으로 먹고 마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더라’(출24:11)

하나님 앞에서 감사와 기쁨으로 먹고 마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때로는 제자들과 함께, 때로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때로는 부자들과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에 대해 어떤 차별도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을 뿐입니다.

감사할 줄 알면서 먹고 마시는 것은 우리에게 축복입니다. 식욕을 주신 하나님,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하나님, 배설할 수 있도록 건강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먹으면 버릴 것이 없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요 탐식자를 사귀는 자는 아비를 욕되게 하는 자니라’(잠28:7)

‘술 취하고 탐식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자기를 즐겨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잠23: 21)

탐식이라는 것은 우리를 순간적인 유혹에 굴복시켜 버리는 죄악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모든 유혹, 그리고 모든 죄악에 그 순간성이라는게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잘못 판단하고 순간적으로 유혹에 굴복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순간적으로 강력한 우리에게 자극을 느끼게 하는 대표적인 욕구가 있다면 대체로 세 가지일 것입니다.

하나는 물욕, 둘째는 성욕, 그리고 세 번째는 식욕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 실천에 옮기기에 가장 쉬운 것이 아마 식욕일 것입니다. 물욕이라는 것은 물건을 보고서 욕심이 발동합니다. 그런데 욕심이 발동하지만 돈이 있어야 당장 살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 없이도 그 냥 가져가시는 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물욕을 이기지 못하고 도적질하거나 신용불량자가 됩니다. 또 성욕이라는 것도 이성을 보고서 내가 어떤 이상한 느낌을 갖고 콘트롤하기 불가능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도 행동에 옮기자면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연구를 많이 해 갖고 상대방을 유혹해야만 이것이 가능한 사건이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에 옮기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식욕이라는 것은 행동에 옮기기가 무척 쉽습니다. 음식을 보고서 그냥 느껴지자마자 잡수시면 되는 겁니다. 먹어치우시면 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실천에 옮기기가 가장 쉽기 때문에 그 만큼 빠지기에 쉬운 죄이고 따라서 우리가 그것을 죄라고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 탐식이라는 이름의 죄악인 것입니다. 에서가 그런 탐식의 순간적인 유혹 앞에 굴복한 아주 고전적인 케이스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에서가 오랫동안 기아에 허덕이다가 팥죽 한 그릇을 보고서 먹었다면 이건 충분한 동정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이 제 사냥하고 돌아왔고 그러니까 피곤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루 종일 사냥했으니까 피곤하고 출출 한 것도 사실이고. 그러다가 팥죽 한 그릇을 딱 봤어요. 그 순간 눈이 뒤집어져갖고 자기가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할 귀중한 가치도 팽개쳐 버리고 먹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에서의 탐식이라는 죄악을 볼 수가 있습니다. 창세기 25장 29절부터 읽겠습니다.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 부터 돌아와 심히 곤비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곤비하니 그 붉은 것을 나로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그런데 우리말 번역에는 그 붉은 것을 나로 먹게 하라 그래서 우리가 이 붉은 것이 팥죽 아니겠느냐? 보통 팥죽이라 그러는데 팥죽은 아니고 팥죽 비슷한 죽인데 우리하고 제일 팥죽하고 비슷하니까 그렇게 번역을 한 것입니다. 여기 보면 그 죽이라 그랬고 그 붉은 것 그랬습니다. 붉은 것. 그런데 이것을 히브리 말로 하면 하 아돔입니다. 하 아돔이 두 번 반복됩니다. 한 번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오 그 붉은 것. 오 붉은 것. 이 두 번 반복된 것입니다. 그래서 아돔이란 말에서 에서에게 나중에 별명이 붙여졌습니다. 이 아돔에서 에돔이 나와서 에서의 나중의 후예들이 에돔족속이 된 것입니다.

크리스천 의학자인 그 컬티스 우드 주니어. 닥터 우드라는 분이 쓴 글에 보니까 이 탐식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이 육체가 필요로 하는 화학적 요소에 그 균형 배런스가 깨질 때 일어나는, 음식에 대한 비정 상적인 갈망이다 라고 했습니다. 어떤 음식에 대한 욕구 자체를 우리가 정죄할 필요는 없고 음식은 꼭 필요한 것이고, 적절한 한계내의 즐거운 음식에 대한 섭취는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그러나 과도하게 자기 콘트롤을 넘어선 행동으로 옮겨 질 때 그것은 이미 죄악이 될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 먹는 것에서부터 인류의 그 타락이 시작되었다 하는 것을 우리가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창25장 28절 보면 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 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고 합니다. 에서의 아버지가 이삭이죠? 그런데 아버지 이삭이 아들 둘 중에서 야곱보다도 에서를 더 좋아했던 이유가 그 아들이 사냥해서 고기를 갖다 바치면 고기 먹는 재미에 그 아들을 더 좋아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이 에서가 사실은 우리가 아담에게서부터 물려 받은 인간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죄성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로 하여금 탐식이라는 죄악에 빠져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순간순간 우리를 패배시키는 그런 순간적인 유혹 앞에 우리를 굴복시키는 죄악의 유혹, 이것이 바로 탐식인 것입니다.

 

두 번 째는 탐식이라는 것은 우리를 우리의 영적 목표를 흐리게 하는 죄악입니다. 에서가 자기의 식탐을 해결하기 위해서, 음식에 대한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서 심지어 장자의 권한까지 팔았습니다.

창세기 25장 34절에 보면 이런 에서의 행동을 창세기의 기자는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어떻게요? 경홀히 여겼다 그랬습니다. 경홀히 여겼다. 이 히브리말로 빠자라는 말 경홀힌데요, 이것은 본래 이런 뜻입니다.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장자권한에 전혀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다. 이게 좀 문제가 있어요. 장자권한이라는 것은 히브리말로 뻬코라라고 불리워지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메시야의 언약사상, 또 메시야의 소망과 관련돼 있습니다. 왜냐하면 메시야는 장자의 그 계통을 통해서 오시도록 돼 있습니다. 그래서 더 소중한 것입니다.

어느 날 이 장자의 혈통과 계통을 타고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구세주가 메시아가 오신다. 그것을 믿었다면 이 장자의 권한이 단순한 장자권이 아니라 삶에 있어서 보다 나은 특권 정도가 아니라 이것이 영적인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통해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 그러나 이런 영적인 특권, 영적인 가치를 알아보지 못 했어요. 에서는 식탐 때문에. 영적인 눈이 흐려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먹는 순간, 음식에 대한 욕구가 발동하는 순간,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고 먹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만은 다 잊어버리고 하나님도 이웃도 인생의 귀중한 가치도 목적도 다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음식에 몰두하는 그 순간 음식이 그 사람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되면 음식이 그 사람의 주인이 되는 겁니다. 신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탐식은 우상숭배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사실은 이 탐식이라는 것을 영어로는 글라토니 라고 말합니다. 글라토니는 라전어의 글루투스라는 단어에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 뜻이 어떤 뜻이냐면 본래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쾌락의 뜻입니다.

탐식이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쾌락을 말합니다. 음식을 넘길 때가 얼마나 즐겁습니까? 쾌락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먹을 땐 그렇게 즐겁고 쾌락이 있는데 그 결과가 어디에서 나옵니까? 배에 가서 그 결과가 나중에 나옵니다. 쾌락에만 탐닉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되면 큰일입니다. 그러니까 먹는 것은 필요한데 먹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3장 19절에서 ‘저희들의 마침은 멸망이고 그 다음에 저희들의 신은 배라고 했습니다. 배가, 먹는 것이 신이 되어 버렸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먹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되어 버리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먹는 것은 필요하지만. 우리가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우리는 살기 위해서 먹는 것입니다. 살기 위해서 먹지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은 아니에요. 근데 어떤 사람들 보면 꼭 먹기 위해서 사는 거 같습니다. 아침 먹고 나서 점심 뭐 먹을 까? 점심 먹고 나서 저녁 뭐 먹을 까? 하루종일 생각하는 것이 먹는 거 밖에는 생각이 없어요. 또 어떤 사람들은 좋은 음식점. 몸에 좋은 거 찾아서 일년 내내 성지순례 다니 듯 식당 찾아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말입니다. 대단히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사람 이 이 죄에 깊이 빠져 있다는 증거입니다. 일 년에 한두 번 식구들이 모여서 혹은 좋은 친구들이 만나서 음식을 즐긴다는 것 가지고 우리가 너무 핏대 올리고 정죄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뭐냐하면 그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그 사람이 깊숙한 죄악의 경지 속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눈이 어두워지고 영적인 목표가 사라집니다. 가치가 보이지 않아요. 삶의 방향이 흔들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탐식이라는 것은 우리의 영적 목표를 흐리게 만드는 죄악인 것입니다.

세 번째로 이 탐식이라는 것은 자신을 파멸시키는 죄악입니다. 우리를 궁극적으로 파멸시킬 수밖에 없는 죄악이 바로 이 탐식이라는 이름의 죄악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에 보시면 바울사도가 그리스도인들의 몸을 가리켜서 너희의 몸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는 전인줄 알지 못하느냐?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성전인 육체를 우리가 부담스럽게 한다든지 고통스럽게 만들면 그게 바로 죄입니다. 이 탐식은 우리의 육체, 하나님의 성전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그것을 궁극적으로는 파괴시킬 수 있는 죄악인 것입니다.

비만증은 정말로 건강에 해롭습니다. 의학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의 수명이 점점 길어지고 그에 따라 성인병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비만증은 대부분의 성인병과 관련돼 있습니다. 고혈압, 당뇨병, 뇌졸증, 심근경색증, 고지혈증, 순연무호흡 증, 만성신부전 등 무수한 성인병이 비만증과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비만한 사람은 정상체격의 사람에 비해 평균적으로 더 많은 병을 가지게 되고 평균수명도 비만도 에 비례하여 점점 떨어지게 됩니다. 극단적인 예로 일본의 스모선수들처럼 비만한 경우는 일반인에 비해 사망률이 10배 이상 증가합니다.

모압 왕 에글론은 에웃이 칼을 차고 들어가 찌를려고 할 때 비만한 몸집으로 인해 그 칼을 피하지 못하고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제사장 엘리는 의자에 앉아 있다가 넘어졌는데 그 비둔한 몸집으로 인해 목이 뿌러졌더라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것이 우리의 육체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는 범 죄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우리 육체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 우리의 영성까지도 파괴할 수가 있습니다. 이 에 서 사건을 나중에 신약성경에서 기록 할 때 히브리서 12장에 보면 히브리서 12장 16절 이하에서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에서를 가리켜서 망령된 자라 이렇게 말합니다.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될까를 두려워하라. 여기서 망령된 자란 말이 영어에는 가들레스란 말입니다. 가들레스는 경건하지 못한 사람이란 말입니다.

탐심은 우리 육체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영성을 파괴시킵니다. 그러니까 죄악입니다. 탐식 그럴 때 우리가 너무 또 음식만 생각하시면 안되고 우리가 술 같은 것도 마찬가지죠. 알코올도 마찬가집니다. 또 담배 같은 것도 마찬가지고. 이건 자신을 파멸 시키는 죄악인 것입니다. 그니까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정말 중요 한 질문은 우리가 어떻게 여기에서 해방될 수가 있느냐? 우리가 탐심이라는 이름의 유혹을 우리가 어떻게 극복할 수가 있느냐? 그리고 탐심에 서 해방된 건강한 삶을 어떻게 살아 갈 수가 있느냐? 두 가지만 강조하고자 합니다.

첫째는 순간순간 결단을 계속해야 합니다. 순간순간 결단을 계속하 십시다. 매 순간순간 결단을 계속하십시다. 왜냐면 이 먹는 행사를 안 할 순 없잖아요? 평생 먹어야 되니까. 먹을 때마다 결단하자는 것입니다. 잠언 23장 2절에 보면 무서운 경고의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탐식자여든 네 목에 칼을 두라.’ 얼마나 무시무시합니까? 이렇게 엄숙한 경고를 통해서 결단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먹을 때마다 우리가 결심해야 됩니다. 내가 덜 먹기로 결심해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뭐 운동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주장하는 분도 있는데 여기에는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습니다. 우선 운동을 너무 과신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수영장에서 비만증을 치료하기 위해 수영하러 오신 분들이 수영이 끝나면 떡을 한 보따리씩 가져 와서 먹으면서 수영을 해도 살이 빠지지 않는다고 푸념한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살이 더 쪘으면 쪘지 빠지지 않습니다. 보통 수영 한 시간 열심히 하면 약 5백 칼로리 정도가 소모되는데 이것은 라면 하나의 열량 밖에 되지 않습니다. 즉, 수영 한 시간 열심히 해 보았자 라면 하나 더 먹으면 다시 도루묵이 되는 것입니다.

운동요법은 다이어트가 동반되지 않으면 절대로 성공하지 못합니다. 허지만 다이어트로 굉장히 조심해야 할 부분 이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살을 빼라고 하면 고기는 일절 먹지 않고 보리밥에 된장국만 먹을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게 되면 우리 몸에 필요한 필수 아미노산의 결핍으로 살을 빼는 데는 성공할지 몰라도 건강을 망쳐 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적절하게 한계 내에서 조금씩 단백질과 비타민 그리고 적당량의 육류와 과일을 섭취해 주는 것이 다이어트를 하면서 건강을 해치지 않는 가장 좋은 비결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날마다 날마다 목욕을 할 때마다 벗은 몸으로 거울 앞에 서 보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한 번 돌아봅시다. 균형잡히고 아름답다고 하나님 주신 몸이라고 느끼는지 아니면 풍성해서 그만 흉물스럽게 보이지는 않는지 그리고 후자의 경우라면 이제 과감히 자신의 탐식으로 인해 학대 당하고 있는 하나님의 성전을 새로 단장하는 작업을 시작하자입니다. 이 계속적이고 지속적인 결단입니다. 어떤 사람은 뭐 결단해 봤자 그게 작심삼일인데요 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뭐 작심삼일이면 어떻습니까? 그러면 사흘마다 한 번씩 또 결심하여 결심을 계속하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주변의 이웃들이 돕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괜히 놀리고 그러지 말고 서로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잠언 23장 20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술을 즐겨 하는 자와 고기를 탐하는 자로 더불어 사귀지 말라.’ 그런 사람하고 놀지도 말라 하셨습니다. 서로 도와야 됩니다. 필요하다면 우리가 일주일에 한 번씩 규칙적인 금식을 한다든지 혹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우리가 금식하면서 그 시간을 영적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기도하면서 정말 이웃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으로 쓴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더 풍성해질까요? 결심을 해야 됩니다. 중요한 것은 결심. 우리가 의지의 결단이 중요합니다.

탐식의 반대는 절제라기보다 감사할 줄 아는 마음입니다. 감사할 줄 알게 되면 절제가 생깁니다.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은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고, 내가 귀한만큼 남도 귀한 줄 알게 됩니다.

‘ ..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딤전4:3-4)

감사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잔치’라고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마22:2)

천국은 자기 아들을 위해서 베풀고 많은 사람들이 다 와서 먹고 마셔라 내가 주는 풍요를 누리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탕자의 비유에서도 멀리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둘째 아들을 맞이하면서 아버지는 기뻐하며 아버지의 심정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눅15: 23- 24)

 

끝으로 하나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미래를 소중히 여깁시다. 날마다 순간 순간 마다의 결단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미래를 소중히 여기는 태도입니다. 여러분. 탐식이라는 것은 미래를 포기하는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탐식이란 것은 우리로 하여금 현재에 만 그리고 순간에만 몰두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먹는 것이 좋거든요. 그러나 우리의 남아 있는 여생. 살아야 할 여생과 시간, 하나님이 주신 복된 미래. 이 축복된 미래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 섬기고 또 건강하게 이웃 들을 섬기면서 아름답게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오늘 내가 하나씩 날마다의 결단으로써 내 몸에 대한 성실한 청지기가 되겠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태도인지 모릅니다.

여러분, 우리가 앞으로 살아야 할 미래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주신 미래를 아름답게 가꾸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기 위해서 적당한 자기 콘트롤을 통해서 탐식에서 부터 자유한 인생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산상수훈에서 이런 교훈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너희가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너무 그거 가지고 염려하지 말아라.’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더 귀중한 가치 더 중요한 인생의 목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 부분이 무엇으로 끝나는 줄 아십니까? 마지막 끝나는 말씀이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입니다.

다시 말하면 먹긴 먹어야 되는데 먹고 그 다음에 내가 이웃들을 어떻게 섬길까 내가 어떻게 누구한테 전도할까 오늘 내 주변에 고통당하고 있는 이웃들을 내가 어떻게 돌아볼 것인가 늘 이런 생각으로 채워진 인생을 사세요. 아니면 아침 먹고 뭐 먹을까 어디 갈까 뭐 저녁에 어디 먹을까 밤낮 이거만 생각하지 말고 우리가 보다 고귀한 가치인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즉 하나님 나라 건설과 확장을 위해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만 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합니다.(마6:9- 10)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우리 안에 있습니다.(눅17:21)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 17)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내 인생에 대한 남은 미래 아름다운 인생을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름다운 미래를 붙들고 주 앞에 살게 될 것입니다. 이제 선택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음식이 나를 콘트롤하여 먹을 거나 생각하고 겨우 살아가는 인생을 살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된 삶을 살 것인가 그 선택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 기도: 참 좋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보릿고개 건너가기 힘들던 시절이 지나가고 지금은 먹는 것이 풍요로운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이 풍요 속에서 우리 마음에는 감사가 사라졌습니다. 영서하여 주시고 아직도 먹지 못하는 이웃들의 연약함을 돌아보며 먹게 하시옵소서. 우리가 탐식의 죄를 범하지 않도록 우리가 지나치게 늘 먹는 거 생각하며 살아가는 인생이 안되도록 우리를 탐식에서 자유케 하시고 일체의 욕망에서 자유케 하옵소서. 자유인답게 하나님 백성답게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고 이웃들을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인생이 되도록 우리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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