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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왕하23:28-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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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 참고 : | http://www.john316.or.kr |
열왕기하(56) 초심을 회복해야 합니다
(열왕기하 23장 28-37절)
< 초심을 회복해야 합니다 >
요시야가 강력한 종교개혁을 했지만 미완의 개혁으로 끝나고 애굽 왕 바로 느고의 북진을 막으려다가 므깃도에서 예기치 못하게 죽습니다(29절). 그리고 유다 전체가 애굽의 간섭 하에 놓이게 됩니다. 그래서 백성들에 의해 왕으로 세워진 여호아하스가 바로 느고에 의해 폐위된 후 애굽으로 잡혀가 죽습니다. 그처럼 비참하게 된 유다의 모습을 보면서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이 성공적으로 완수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라가 바르게 서려면 종교가 바르게 서야 하고 특히 교회가 바로 서야 합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변화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망하기 전까지는 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변화를 주저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위기가 필요하고 위기의식이 필요합니다. 위기의식을 가지고 잘 준비하면 진짜 위기가 방지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회도 위기의식을 가지고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데 어떻게 변화되어야 합니까? 성공한 남을 따라 변화되려고 하지 말고 초심으로 돌아가서 신앙의 기초를 바로 세우려고 해야 합니다.
처음 예수님을 믿었을 때, 처음 교회에 나올 때, 그리고 매년 첫 날에 다짐했던 때 등에 가졌던 초심이 무엇보다도 효과적인 대안입니다. 초심을 잃으면 점차 더렵혀지고 무뎌지고 소리만 커지고 감정적으로 유치하게 변합니다. 또한 감사를 잊고 마음이 높아지면서 불안감도 커집니다. 초심을 잃는 것은 목표를 잃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어떤 수완이나 수단을 찾는 것보다 초심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전에 A 목사님이 교회개혁의 일환으로 담임목사 10년 임기제를 표방하고 교회를 섬기다가 약속대로 10년 만에 교회를 떠나 선교사로 나갔습니다. 그래서 많은 젊은이들과 뜻 있는 목회자들이 감동했습니다. 물론 선지자적인 소리를 내면 반대 소리도 큽니다. 특히 A 목사님은 너무 목회자의 구도적 측면만 강조하고 목회자의 너그럽고 편안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면서 ‘참 선지자상’은 되어도 ‘참 목회자상’과는 거리가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A 목사님이 교회개혁의 소리를 높인 이유는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본당에서 예배드릴 때는 은혜로운 주님의 교회지만 본당 뒤쪽으로 가면 너무 달라져서 마치 교회가 대기업의 중역실과 흡사한 모습을 보고 고민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교회의 주인은 주님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다 주님의 교회로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초심을 잃고 사람이 교회의 주인으로 행세하려 하면서 점차 사람의 교회로 변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왜 사람은 초심을 잃을까요? 시간이 흐르면서 초심을 잃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초심을 잃게 촉진시키는 것은 바로 능력에 대한 집착입니다. 사울이 왜 초심을 잃었습니까? 권력의 맛을 알면서 잃었습니다. 힘을 나눌 줄 모르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힘은 복된 힘이 아닙니다. 교회도 매력적인 능력을 추구하다 보면 초심을 잃을 가능성이 커집니다. 결국 ‘능력 목회, 능력 교회’라는 용어들은 주의해서 사용되어야 합니다. 능력 추구가 초심을 흔들고 참된 마음을 잃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질적인 것보다 비본질적인 것을 추구하면 학벌, 재산, 지위 등을 복의 핵심 내용으로 보면서 초심을 잃습니다. 세상에는 돈 많고 학벌이 좋고 지위가 높지만 도무지 인간의 향기가 나지 않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처럼 돈 많고 학벌이 좋고 지위가 높지만 도무지 예수님의 향기가 나지 않는 교인들도 있습니다. 능력보다 마음이 중요합니다. 결국 성도의 가장 중요한 기도제목 중의 하나는 초심을 잃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고민할 때 자신도 새로워지고 교회도 새로워집니다. 참된 마음에서 참된 능력도 나옵니다.
< 서로 협력하며 일하십시오 >
또 한 가지 요시야 왕의 개혁을 보면서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왕이 개혁의 광풍을 불게 했지만 그 개혁의 여파가 백성들에게 깊이 미치지 못했고 특히 자기 자녀를 변화시키지 못했던 점이 아쉽습니다. 요시야 왕의 아들 중에 3명이 유다의 왕이 됩니다. 17대 왕 여호아하스, 18대 왕 여호와김, 그리고 20대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입니다. 그들 중의 한 명이라도 선왕의 개혁의지가 전승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요시야 왕은 나쁜 것을 혁파하는 개혁은 잘했지만 좋은 것을 세우는 개혁은 못했습니다. 특히 한 사람의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개혁적이고 헌신적인 인물 한 명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개혁은 혼자 이룰 수 없습니다. 한 사람씩 인물을 키우고 그 인물들이 서로를 격려하고 후원하면서 개혁의 불씨를 일으킬 때 선한 개혁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왜 많은 개혁이 실패합니까? 일부 사람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추진되기 때문입니다. 먼저 사람들의 마음의 벽을 무너뜨리고 활기와 개혁의지를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다 얻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려고 기도하고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살면서 누군가 이렇게 한마디 해주면 큰 힘이 됩니다. “목사님! 이 상황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힘을 내십시오. 저도 돕겠습니다.” 개혁은 혼자 못합니다. 서로 마음을 합하고 기도하면서 할 때 참된 개혁이 이뤄집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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