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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7: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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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2014년 2월 26일 http://www.john316.or.kr |
산상수훈(25) 비판과 관련된 4가지 교훈
(마태복음 7장 1-6절)
1. 비판을 주의하라
예수님은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고 했다(1절). 이 말씀은 비판을 전혀 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건강한 사회가 되려면 건강한 비판은 필요하다. 비판 자체가 영혼과 공동체를 망치는 것은 아니다. 옳은 판단에 근거한 용기 있는 비판은 필요하다. 그러나 쉽게 비판하면 안 된다. 결국 비판하지 말라는 말은 비판을 남용하지 말라는 말이다. 비판의 남용은 상처를 키우고 문제를 키운다. 비판과 비난은 다르다. 정당한 비판은 문제를 해결하지만 남용된 비난은 문제를 더 악화시킨다.
비판을 잘하는 사람은 자신이 바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생각하는 바름이 문제를 더 얽히게 만들고 공동체를 어렵게 만들 때가 많다. 오직과 바름과 그름 문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정당한 비판을 잘 받아들이게 하는 지혜이다. 바른 비판자는 남의 허물을 보면 안타까워하지만 비판 중독자는 남의 허물을 찾으면 희열을 느끼면서 지저분한 정보를 수집하고 단점을 들춰내기를 좋아한다. 그처럼 잦은 비판은 비판 중독을 낳기에 비판을 남용하지 말아야 한다.
2. 심판하지 말라
본문 1절에서 ‘비판’이란 말은 원어로는 ‘심판’을 뜻의 포함하고 있다. 결국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은 “심판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왜 심판하지 말아야 하는가? 사람은 최종 심판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심판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 그 주권을 망각하고 남을 심판하듯이 말하면 오히려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그래서 비판하면 비판을 받고 헤아리면 헤아림을 받는다(2절). 비판은 잘못을 바로 잡으려는 것이지 사람을 심판하고 정죄하려는 것이 아니다. 정죄는 하나님만 하실 수 있다.
비판이 습관화되면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어투와 태도가 나오게 된다. 그처럼 비판을 함부로 하면 자신이 의인이란 교만한 착각에 빠지며 정죄하게 되기에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먼저 심판하신다. 그처럼 많이 아는 것 때문에 심판자가 된 것처럼 비판하게 된다면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낫다. 자기가 심판자가 된 것처럼 행동하는 것만큼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하는 위험한 태도는 없다. 그러므로 지식과 경험이 많아도 자신이 심판자가 된 것처럼 정죄하는 태도는 최대한 절제해야 한다.
3. 자기를 돌아보라
비판 중독자는 남의 눈에 있는 작은 티를 보면서 자기 눈에 있는 큰 들보를 보지 못할 때가 많다(3절). 그러므로 남을 둘러보며 비판하기 전에 자기를 돌아보며 회개하는 일부터 잘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너무 남의 일에 신경 쓴다. 말거리를 찾는데 너무 바쁘지 말라. 그런 일에 바쁜 사람은 최근에 떠도는 루머를 열심히 퍼뜨리기를 좋아한다. “집사님! 소식 들었어요? 들으면 조금 속상하시겠지만 사람들이 이렇게 말해요.” 그런 말들을 퍼뜨리지 말고 자기 일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하나님은 성도를 영적인 경찰로 부르지 않았다. 여기저기 순찰하며 남의 일을 상세히 알려고 하거나 여러 말거리를 수집해 퍼뜨려서 일거리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에 대해 가십을 계속 전하면 지혜롭게 말하라. “집사님! 그런 말은 그만 하고 그를 위해 기도합시다.” 사람의 귀는 남에 대한 온갖 종류의 쓰레기 같은 정보를 담는 쓰레기통이 아니다. 그러므로 남을 살피면서 루머를 퍼뜨리지 말고 그럴 시간에 자기를 돌아보고 자기 일에 더욱 힘쓰라.
4. 외식하지 말라
큰 자기 허물을 보지 못하고 작은 남의 허물만 크게 보는 자는 결국 외식하는 자이다(5절). 외식적인 비판 중독자는 상대의 좋은 장점들을 발로 밟고 심지어는 그의 인격과 성품과 존재를 찢어 상하게 만든다. 그렇게 상대를 깎아내려야 자신이 올라가는 줄 알기 때문이다. 그처럼 무자비한 비판자나 정죄자가 되지 않으려면 남을 칭찬해줄 줄 아는 성품을 끊임없이 훈련하고 실천해야 한다.
요한복음 8장을 보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 앞에 한 여인을 끌고 와서 말했다. “선생님! 이 여인이 간음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 율법에 의하면 그녀를 돌로 치라고 했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말하시겠습니까?” 그때 예수님은 허리를 숙이고 땅에 무엇인가를 쓰시며 그들의 얘기를 무시했다. 어떤 주석은 그 부분을 이렇게 주석했다. “예수께서 아무 말도 듣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셨다.” 하나님은 ‘비판자의 비판’도 듣지 않으시고 더 나아가 ‘비판자의 기도’도 듣지 않는다. 결국 비판은 기도응답을 막는 최대 장애물이다.
어떤 사람은 말할지 모른다. “목사님! 그는 정말 나빠요.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큰 죄입니다.” 그가 나쁜 죄인일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는 그런 죄인에게 필요한 것이지 의인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만약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없었다면 우리 자신도 지금 비참하게 되었을 것이다. 비판하는 것이 비판 받는 사람의 잘못된 행위보다 더 잘못된 것이 될 수도 있기에 복된 삶을 원하면 잘못된 비판이 입술에서 쉽게 나오지 않도록 잘 조절해야 한다. 입술만 잘 조절하면 인생도 잘 조절할 수 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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