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
| 성경본문 : | 왕하25:18-30 |
|---|---|
| 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 참고 : | 2014년 3월 7일 http://www.john316.or.kr |
열왕기하(59) 절망 중에 꽃피는 희망
(열왕기하 25장 18-30절)
유다 멸망 후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은 반란의 싹이 될 만한 인물들을 다 잡아 바벨론 왕에게 끌고 갔고 바벨론 왕은 그들을 다 쳐 죽였습니다(19-21절). 그리고 그달리야를 총독으로 세웠습니다(22절). 그달리야는 남은 백성들에게 잠시 바벨론을 섬기라고 했습니다(23-24절). 그 말은 예레미야가 많이 했던 말이었습니다. 당시 예레미야는 반역자란 오해를 받으면서도 바벨론의 지배를 잠시 받아들여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예언자는 헛된 꿈을 심어주지 않고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고 하나님의 뜻의 손길을 미리 살펴서 백성들에게 고해주어야 합니다.
그달리야가 그렇게 말했지만 기득권을 놓치기 싫어했던 사람들은 하나님이 설정하신 현실보다는 인기와 명분만 추구해서 그달리야를 원수 바벨론의 협력자요 매국노로 보고 반대했습니다. 결국 그달리야가 총독으로 임명되고 약 2개월이 지난 칠월에 왕족인 이스마엘이 부하 열 명을 거느리고 와서 그달리야를 쳐 죽였습니다. 그리고 후환을 두려워해서 백성과 군대 장관들이 다 애굽으로 피신했습니다(26절).
그 후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간 지 37년 만에 포로생활에서 풀려났고 후임 왕 에윌므로닥 왕의 큰 호의를 받았습니다. 비록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를 멸망시키고 끝까지 저항한 사람들을 잔인하게 쳐 죽였지만 점차 바벨론 왕은 유다 족속들을 다른 이방 족속들보다는 더 낫게 대우해준 것으로 추정됩니다. 더 나아가 에윌므로닥 왕이 즉위한 후부터는 여호야긴 왕가 유대인들을 더욱 높여주었습니다. 왜 그런 일이 있었을까요? 추정컨대 이름 없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인물들이 바벨론 왕의 마음을 샀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들은 대개 왕도 잘 섬깁니다. 그때 왕은 생각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저들이 저렇게 신실하게 나를 섬겨주는구나!” 자연히 그의 동족에게 은혜를 베풀고 싶은 마음이 들 것입니다. 나라를 빼앗겼을 때 무장투쟁만이 회복을 위한 해결책이 아닙니다. 때로는 정복한 나라의 왕을 믿음으로 감동시켜서 저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의 향해 마음을 열게 하는 해결책이 더욱 복된 해결책입니다.
그처럼 왕을 감동시킨 많은 인물들이 음지에서 활약했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인물이 다니엘이었습니다. 다니엘처럼 신실한 신하를 거느린 왕들은 자연히 다니엘의 동족에게 은혜를 베풀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슬람 교인인 이라크의 독재자 후세인조차 기독교인들을 더 신뢰해서 기독교인들을 정부 요직에 비교적 많이 등용했다고 합니다. 성도는 누구나 믿음을 인정해주는 믿음직한 인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인물 한 사람 때문에 국가가 망할 수도 있고 회복될 수도 있습니다.
< 절망 중에 꽃피는 희망 >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할 때는 겉으로는 전혀 희망이 있어 보이지 않지만 점차 음지에서 활약했던 인물들로 인해서 새싹이 돋아나는 모습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다가 다니엘과 같은 대 인물이 나와 절망적인 분위기는 급히 반전되어 마침내 여호야긴이 비록 포로 신세였지만 상당한 지위를 회복함으로 민족 회복의 희망도 구체화됩니다. 그런 장면을 보면 절망 중에도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절실하게 깨닫습니다.
이 세상에 빠져나오지 못할 터널은 없습니다. 터널을 통과하면 실제로는 산을 넘은 것입니다. 그처럼 절망은 언젠가는 끝나고 소망의 새 아침이 다가옵니다. 큰일을 이루려면 절망적인 순간을 통과해야 합니다. 절망의 골짜기에서 오히려 하나님이 더욱 뚜렷하게 보입니다. 그처럼 절망적인 상황에서 절망하지 않는 것이 진짜 복된 믿음입니다.
모든 상황은 하나님이 주신 상황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절망적인 상황도 꼭 필요한 상황이었음을 인정하고 절망까지 받아들이는 마음을 가질 때 마음의 용량이 커지면서 내일의 축복을 담을 용량이 큰 그릇이 됩니다. 진주조개는 자기 몸을 파고들어 상처를 입히고 고통을 주는 이물질을 품어서 진주로 빚어냅니다. 그처럼 상처와 고통을 끌어안고 진주와 같은 인생을 만들어내십시오.
특히 절망적인 상황에서는 희망이 넘치는 생각을 많이 하고 희망이 넘치는 언어를 많이 사용하십시오. 말은 씨가 되고 열매가 되고 결국 말한 대로 거두게 됩니다. 절망적인 말은 절망을 키우고 희망적인 말은 희망을 키웁니다. 그러므로 희망적인 말로 절망을 극복하고 절망을 희망으로 만들어냄으로 축복의 대로를 닦으십시오. 말은 희망의 나라로 가는 큰 배의 키와 같고 희망의 트랙을 닦는 트랙터와 같습니다.
현재의 모습은 부족해도 인물이 될 수 있고 인물을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준비하십시오. 미리 포기하지 마십시오. 인생 최대의 실수는 미리 포기하는 것이고 인생 최대의 실패는 미리 절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얼마든지 역전 인생이 가능합니다. 예배하고 기도하는 성도에게는 순간적인 절망은 있어도 지속적인 절망은 없습니다. 그처럼 늘 희망을 품고 삶 자체를 감사하면서 내일의 축복을 예비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