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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티일기600】대영이용원
소방서옆 대영이용원이 사라졌습니다. 우리동네에 오는 분들에게 버스 정류장에 앉아 길 건너편에 있는 '대영이용원'을 소개하곤 했는데, 이제 그럴 일도 없어졌네요. 대영이용원이 57년만에 문을 닫았습니다.
대영이용원은 1958년도에 생긴 이발소인데 칼 가는 피대나 머리 감겨주는 조루가 아직도 그대로 있어 텔레비전 드라마에나 나오는 추억의 이발소입니다. 이발소 문을 열면서 지어진 건물과 간판은 세월의 흐름이 묻어 있어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60-70년대 이발 기구, 액자, 그림, 장롱등의 내부 물품들은 과거로 돌아간 듯 한 느낌을 주는 곳입니다.
지금이야 남자들도 미장원으로 이발을 하러가기 때문에 이곳의 손님은 당연 동네 어르신들이고, 이곳은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 향수를 느끼며 담소를 나누는 장소였습니다.
1945년 대평리의 금강다리 근처에서 살다가 수해로 인해 이곳으로 옮기면서 아버지가 10년 그리고 지금 사장님이 47년째 운영하고 있는데 이제 은퇴하신다고 하네요. 이발소를 헐고 3층짜리 부동산사무실을 지을거라 합니다. ⓒ최용우 2014.4.13 주일
헐리기 전 / 헐리고 공사중
47년 된 동네 전통이발소 “역사 속으로“[세종인] 이발사 정년퇴직한 금남면 대영이용원 강택섭 사장
수십년 된 담장이 덩쿨이 돋보이는 대영이용원이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게 됐다. |
강택섭 대영이용원 사장은 조상 때부터 살아온 용포리 121번지에서 출생하여 금남초등학교와 금호중학교를 나와 명문 공주사대부속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집안 형편으로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강 사장은 바로 공무원 시험을 보고 당시 대전시 선화동 충남도청 옆에 있는 농어촌공사 전신인 수리조합연합회에서 1년 6개월을 근무했다.
하지만 당시 월급이 너무 적어 직장을 그만 두고 몇 년간 놀면서 선친이 현재의 건물에 종업원을 두고 이발소를 차려서 사업이 잘 되는 것을 관망하고 있다가 이발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직접 경영에 나섰다. 이발업이 잘 될 때에는 종업원을 4명이나 두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이발소는 사양산업이 되고 미장원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예전에 이발소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매장 한가운데 놓여 있는 커다란 난로, 그리고 손으로 직접 만드는 면도거품, 물조리개 등이 추억 속에 떠오른다. 대영이용원에도 바리깡(머리깎는 기계의 일본말)만 사라지고 대부분 남아있었다.
취재를 간 날 오전에 두 명의 손님을 받았던 대영이용원은 오후에 친구가 찾아오자, 바람을 쐬기 위해 잠시 이용원을 비웠다.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는 대영이용원에는 이발과 상관 없이 하루 평균 10여 명의 동네 친구들과 지인들이 찾아와 놀고 간다.
“5년 전에 고향친구들과 부부 동반으로 일본 대마도에 구경 간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동네를 바라보니 조그만 동네 이발소가 눈에 보이고 머리가 하얀 노인이 이발소 앞을 열심히 청소하는 있었습니다. 동업자라는 기분에 반갑기도 해서 바로 그 곳에 가서 손짓 발짓으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분은 당시 80세의 나이로 이발사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일하고 있어 장인정신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대영이용원은 동네 사랑방이다. 이발소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친구들이 매일 모여 세상돌아가는 얘기를 나눈다. |
어릴 적 아버지 손잡고 다녔던 동네 이발소가 어느 순간부터 하나 둘 사라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전통 이발소는 이제 역사가 되고 있다. 이발 도구는 물론 거품으로 면도를 해주던 그 때 그 시절 면도방법까지, 지난 47년 간 옛 방식을 고수하며 이발소의 명맥을 이어 온 대영이용원은 2014년 4월 7일 문을 닫고 그곳에는 건평 50평짜리 3층 건물이 들어선다.
강택섭 사장 일가는 금남초등학교에 4대가 다닐 정도로 금남면 토박이이다. 원래 발산리에 신촌 강씨 집성촌이 있었을 정도로 강씨들이 많이 살았다. 강 사장의 선친 강내홍씨가 금남초등학교 11회이고 강택섭 사장이 31회이며 강 사장의 장남 강목씨도 금남초를 나왔고, 손자 강세형(금남초 3학년) 강승현(금남초 1학년) 형제도 현재 다니고 있다.
동네 후배인 오공식씨(71)는 ‘강 선배는 초지일관하시는 분으로 동네에서 착실하기로 소문난 분이어서 많이 의지가 된다“고 말했다.
“젊어서는 이발업을 택한 것에 대해 후회를 한 적도 많았다”고 회상하는 강 사장은 “이제 나이가 들어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면서 건강관리에 힘쓰고, 좋은 친구들과 자주 만나 그동안 못다 한 정을 나누며 살고 싶다”고 속내를 털어 놓았다.
지금은 보기 힘든 말가죽으로 된 피대에 면도칼을 갈고있는 강택섭 사장 |
빛이 바랜 연기군 시절 이용사 면허증과 세종특별자치시의 영업신고증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
전통 이발소에 남아있는 비누칠 하는 솔과 수동 면도기들이 정겹다. |
수십년 된 빗과 가위가 이발소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
머리감을 때 사용하는 물조리개와 세수하는 곳이 60년대 시절을 보여주고 있다. |
대영이용원은 7일 철거되고 이 자리에 3층 규모의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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